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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50화

Author: 유애
원경릉은 황귀비 일을 우문호에게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우문호가 지금 성격이 많이 누그러졌다고 해도 가끔 욱할 때가 있기에 지금 시점에 황제를 들이받는 건 영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문호는 들어가 태상황과 잠시 얘기를 나눈 뒤 바로 주재상 상태를 보고 건곤전을 나갔다. 사실 공무가 바빠 궁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문호는 건곤전을 나서며 오랫동안 황귀비 마마한테 문안을 드리지 못했음을 떠올렸다. 사고가 일어난 날 건곤전을 지키던 황귀비의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문안 하러 간 김에 몇 마디 당부의 말도 올려야지 생각했다.

우문호가 막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구사가 큰 걸음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어디가? 난 이제 곧 교대인데 홍엽이랑 냉대인이랑 같이 한 잔 안할래? 요즘 너무 심심해서 재미난 일 뭐 없나 싶네.”

“술 마실 시간 없어. 일이……” 우문호가 잠시 뜸을 들여 생각하더니, 제방 수축하는 일에 관해 마침 냉대인의 의견을 듣고 싶던 참이기에 언젠가 한번을 날을 잡아야 했으므로 말을 바꿔 대답했다. “그래, 일단 황귀비 마마께 먼저 문안 인사부터 드리고.”

“황귀비 마마? 그럼 잘못 왔어. 황귀비 마마께서는 이미 장문전으로 침전을 옮기셨어!” 구사가 말했다.

우문호가 놀라서 물었다. “왜?”

구사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말했다. “황제 폐하와 다투셨대. 호비 궁 사람한테 듣기로 황귀비 마마께서 태자비가 호비 마마를 진찰하지 못하게 하셨다더군. 황제 폐하께서 화가 나서 황귀비의 따귀를 때리고 황귀비 마마께서 상심한 나머지 후궁의 권한을 내려놓고 장문전으로 옮겨 가셨대.”

“정말이야?”

“이런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호비 궁 사람 입으로 따귀를 심하게 때리셨다고.” 구사도 마음이 영 좋지 못한 것이 궁에서 일직을 서고 있으면 황귀비가 늘 구사를 챙겨 주셨다. “그리고 폐하께서 최근 채명전 사람들 전부에게 벌을 내리셨어. 호비 마마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곤장을 맞고 십황자도 곤장을 맞았다더군. 십황자는 곤장을 맞고 많이 얌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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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우문호가 소리쳤다. “잘못인 줄 아시면서 왜 사과하지 못하십니까?”“짐은 천자니라!” 명원제가 일갈했지만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닫. “호비 마마께는 사과하신 적이 있으시죠? 호비 마마마저도 하실 수 있는 일인데 왜 어마마마께는 하실 수 없는 겁니까?”명원제가 관자놀이를 누르는데 시퍼런 핏줄이 불끈거리고 말투도 차갑기가 이를 데 없었다. “다 떠들었어? 언제부터 짐과 비빈의 일에 태자의 의견을 들어야 했지? 짐이 어쩌다 태상황 폐하의 말씀은 들을 수 있지만, 네 의견까지 들어야 해? 넌 네 주제가 뭔지 알고 있느냐?”싸움이 커지는 것을 보고 목여태감이 얼른 앞으로 나와 우문호를 말렸다. “전하 그만하세요. 부자 지간에 말다툼이 생기면 화목을 해칩니다. 어서 잘못했다고 빌고 가시지요!”목여태감의 이 말은 우문호에게 권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명원제 보고 들으라는 소리로 부자의 정을 생각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들된 도리로 어마마마를 위해 한 마디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며, 이 일은 집안일로 처리 해야지 물불 못 가리고 군신관계로 다뤄서는 안된다는 소리였다.목여태감이 명원제의 시중을 오래 들어왔기 때문에 목여태감이 명원제를 알듯 명원제도 목여태감의 말을 못 알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명원제도 분노를 조금 가라앉히고 우문호를 대했다. “넌 일단 돌아가거라. 짐이 있다가 장문전으로 가볼 것이니 더는 이 일로 소란하게 하지 말도록 하거라. 짐은 너와 부자의 화목을 상하고 싶지 않구나.”우문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조금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바마마, 소신이 어찌 아바마마와의 화목을 상하게 하고 싶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어마마마 생각에 마음이 아팠던 것으로, 지난 세월을 함께 해온 어마마마를 보시고 아바마마께서 평하시기를 온화하고 공손하며 검소하다고 하셨습니다. 어질고 덕이 있다고도 하셨죠. 그러나 자신의 남편을 지키고 싶지 않는 여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마마마는 아바마마를 떠올리고 서운한 마음을 삼킨 것입니다. 아바마마께서

  • 명의 왕비   제 2652화

    명원제는 주필을 손에 쥔 채 복잡한 심경으로 호비한테 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아이를 잃은 명원제도 마음이 괴로워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다.예전이었으면 황귀비에게 가서 차를 마시며 얘기 하다 보면 지혜로운 황귀비가 명원제의 근심을 덜어주며 자신의 마음을 한결 가볍고 명랑하게 만들어 주었다.하지만 황귀비가 장문전으로 옮겨간 것을 보면 명원제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가도 아마 황귀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걸 듣게 될 것이고, 지금 속이 너무 시끄러우니 황귀비가 징징거리며 애원하는 것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속으로 황귀비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한참 뒤 명원제가 느릿느릿 고개를 들었다. “짐이 한동안 황후를 만나러 가본 적이 없구나.”“황후 마마는 금족 중으로 재상이 사고가 났을 때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폐하…… 께서 성은을 베푸사 황후 마마께서 재상을 보러 갈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것인지요?” 목여태감이 물었다.“짐이 황후에게 금족을 해제한지 오래 되었으니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해.” 명원제는 황후가 보기 싫어졌다. 방금 순간적으로 과거 시절이 떠올라 잠시 행복했지만 부부의 정이 다했으니 다시 본다해도 딱히 할 말도 없었다.“짐이 진비를 보러 가지.” 명원제가 벌떡 일어났다. 우문군이 죽은 뒤로 진비와 말 해 본 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목여태감이 눈을 들어 아뢨다. “폐하, 장문전에 한 번 가보심이 어떠신지요?”명원제가 싸늘하게 목여태감을 노려보았다. “그 말은 진비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떤가?”목여태감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명원제가 진비 궁으로 가겠다고 하시는 걸 굳이 장문전으로 가시라고 청한 걸 진비가 알면 목여태감을 아주 잡아 죽이려 들 것이다.진비는 황제가 다시 그녀를 찾아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황제의 가마가 도착했다는 전언을 듣고 진비는 미친듯이 감동해서 정신없이 달려나갔다. 그리고정말 황제가 온 것을 보고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부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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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원제는 진비 궁에서 저녁 수라를 들고 같이 앉아 옛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힘든 추억이 떠올랐으나 다행히 명원제가 닥친 고통은 해소 되었다.“넌……넌 누구냐? 어째서 함부로……” 순간 대경실색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더니 곧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다가 멈췄다.명원제가 살짝 놀라 주렴밖에 서있던 목여태감에게 분부했다. “가서 무슨 일인지 보고 오너라!”“예!” 목여태감이 돌아서자 퍼뜩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자를 견제하려는 찰나 검은 그림자의 손 날이 잽싸게 목여태감의 목덜미에 떨어졌다. 목여태감은 순간 둔탁한 통증을 느끼고 머리가 윙윙거리더니 기절해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눈 앞에 검은 그림자가 누구인지조차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주렴이 걷히고 다시 내려지자 거대한 그림자가 주렴에 가려지는 게 이내 진비 궁 안으로 들어갔다.명원제 표정이 진노에서 경악으로 바뀌며 소리쳤다. “큰아버지?”진비는 깜짝 놀랐다가 들어온 사람이 누군지 보고 기분이 상해져서 말했다. “친왕께서 어찌 후궁으로 곧바로 쳐들어 오십니까? 이곳은 제 침전으로 친왕께서는 언행을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안풍친왕이 냉담한 눈빛으로 진비 얼굴을 쏘아보자 진비가 바로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아니……”“나가!” 안풍친왕이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침전이 울리도록 묵직하게 말했다. 마치 메아리라도 들릴 듯 위력이 정말 대단했다.진비가 명원제를 보자 명원제가 손을 내저었다. “당신은 이만 나가봐!”진비는 안풍친왕이 좋은 뜻으로 온 것이 아님을 보고 얼른 예를 취하고 자리를 떴다.이제 침전엔 두 남자가 대치하고 있을 뿐이었다. 안풍친왕은 키가 190으로 훤칠해서 신장처럼 장대해 명원제라는 유약한 군주를 압도했다. 명원제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서 물었다. “큰아버지, 무슨 일이십니까?”명원제는 주렴밖에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목여태감을 흘끔 보고 순간 아차 싶은 예감이 들었다. ‘설마… 목여태감을

  • 명의 왕비   제 2654화

    안풍친왕이 눈꼬리를 치켜 뜨고 말했다. “소리칠 필요 없네. 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 황성을 포위 했다. 모든 금군은 전부 내 통제 하에 있고 오늘밤 내가 자네를 죽이고 내일 보위에 올라도 자네를 도와주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어.”이 말에 명원제가 크게 분노했다. “감히 모반하겠다는 것이냐? 간도 크구나. 천하의 사람들이 침 뱉고 욕하는 것이 두렵지도 않나? 아바마께서 이 조서를 인정하실 리가 없어. 만약 짐을 죽이고 보위에 오르면 그건 역적이다. 두고두고 그 추악함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야!”안풍친왕이 냉소를 지으며 승리에 대한 확신을 쥔 듯, 치켜 올린 눈매가 조금 과장된 미치광이 느낌을 풍기기 딱 이었다. “역사는 늘 승리한 사람이 쓴 기록이지. 내가 보위에 오른 뒤 사관들은 명원제가 제위에 있던 기간을 기록하며 공적도 덕도 없고 진부한데다 멍청했다고 기록할 거야. 그리고 내가 천명을 받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았다고 하겠지. 보위에 오른 뒤 우선 네 처첩을 죽이고 네 생전의 공적을 없애 버린 뒤 온 황궁을 피로 한바탕 씻어버리는 거야. 너에게 충성을 바친 사람을 전부 죽여 없애는 것부터. 과연 앞으로 누가 널 위해 한마디라도 할 수 있을지 두고 볼까? 역사도 내가 원하는 대로 쓰여지겠지?”명원제가 너무 놀라서 당황한 듯 물었다. “어떻게..! 그래서 방금 목여를 죽인 것인가?”“죽였지!” 안풍친왕은 마치 개미 한 마리 죽였다는 것처럼 별거 아닌 듯한 말투로 답했다.그러자 명원제는 순간 목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오면서 분노가 점점 폭발하기 시작했다. “너……”하지만 안풍친왕은 명원제를 비웃었다. “목여태감 죽이는 걸로 끝일 것 같아? 지금 후궁에 아마 피바람이 한차례 불고 지나갔을 걸. 네가 좋아하던 호비, 네 아들, 다른 비빈들도 아마 저 세상에서 황천을 건너고 있겠지. 좋은 시절은 다 갔어. 우문익.”명원제는 어지러워 하늘이 뱅뱅 돌며 목구멍을 타고 선혈이 넘어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만 뿜고야 말았는데 몸이 몇 번 휘청거리며 정신을 잃기 직전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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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원제는 안풍친왕의 말에 소름이 끼쳐 등골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당장이라도 변명하고 싶지만 할 말이 없었다.안풍친왕이 계속 말을 이었다. “태자를 책봉할 때도 모든 친왕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고 네가 편애하는 친왕 중심으로 정했지. 알랑거리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다른 건 일체 고려하지 않은 채 주변 사람마저도 다 무시 했어. 결국 국본을 세우는 일로 형제가 치고 받게 만들다 못해 피바람을 불러 일으켰지. 우문호를 태자로 확정한 뒤로도 넌 마음에 들지 않았어. 늘 잘못 뽑았다고 생각해서 우문안 세력을 키웠지. 태자가 저지하지 않았으면 우문안의 야심은 지금도 여전했을 걸. 어디 문둥산의 일을 돌아볼까? 당시 나라에 조건이 열악하고 주변국에서 여러차례 침략이 있었지. 선비와 북막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나라의 힘의 대부분이 전부 변경에 가 있는 상황이었어. 네가 보위에 오르면 민생을 수습하고 의료, 교육을 개혁할 수 있었지만 넌 아무것도 안 했어. 여전히 전에 아바마마가 어쩔 수 없이 하던 방법 고대로 할 뿐, 유일하게 태자비를 문둥산에 병자를 치료하러 보냈을 뿐이었어. 그러다가 넌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자 개혁의 뜻을 세웠어. 요 몇 년 동안 넌 큰 실수를 한 게 없지만 큰 공을 세운 적도 없지. 당초에 북막에 출병하는 것도 넌 여러 번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최적의 시기를 놓치고 말았어. 다행히 태자가 네 말을 안 듣고 몰래 무기개발을 진행시켰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 이 북당의 황궁은 벌써 피바다가 되었고 네가 보좌에 올라 앉아 신하들에게 호령이나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그리고 네 핑계도 고작해야 등극하고 다음해까지 밖에 안돼. 회강 홍수 때 직접 재해지역을 가서 삼일 밤낮 침식을 잊었다는 걸, 사람을 시켜 노래를 만들게 하고 일년간 네 덕을 칭송하게 만들었어. 민간에 일년내내 네가 성군이라는 얘기가 돌면 뭐해, 지금 넌 제방을 보수하지 않아서 재해의 우환이 여전히 상존하는대. 그동안 네가 편안하게 지냈던 건 네가 운이 좋아 서가 아니라 주씨네

  • 명의 왕비   제 2656화

    그리고 명원제는 ‘농업을 크게 발전시키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거야? 백성들이 배불리 먹기만 하면 국력이 커지는대.’라며 상업무역 경제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요 몇 년 계속 발전해 온 것이 다섯째가 이미 하고자 했던 거긴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다섯째와는 상충되는 것도 없었고 심지어 공주를 이리율에게 시집보내 상인의 지위를 높여줬기 때문이다. 명원제는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다 했다고 믿었다. 안풍친왕 말처럼 절박하지 않았던 건 국력이 받쳐주지 못해서 자신도 어쩔 수 없어서 였다. 명원제가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는 동안 안풍친왕이 또 한마디 했다. “앞으로 20 년 시간은 전부 네가 발전하도록 주어진 시간이 아니야, 국내의 모순, 주변국과의 마찰 등 20년 동안 끊임없이 각종 모순이 터져 나올 것이야. 따라서 게을러서도 해이해져서도 시간을 지체해서도 안돼. 황제란 공 이 없는 게 바로 큰 잘못이다!”명원제가 당황해서 안풍친왕을 바라보고는 속으로 ‘자신에게 퇴위를 압박하기 위해 온 게 아닌가? 왜 아직 훈계를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안풍친왕이 다시 명원제에게 말했다. “이제 네가 어리석었던 걸 인정하나? 내가 방금 물었던 거 기억나? 왜 내가 그동안 오지 않다가 지금 에서야 왔는지? 넌 심지어 다른 가능성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어. 그저 내가 황위를 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나 하지. 천하가 크니 매사엔 각각 이유가 다르고 모든 원인이 하나가 아니야. 네 머리에 든 게 내내 변하지 않고 제자리 걸음만 하다가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지 못하면 북당은 너처럼 영원히 정체돼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거다!”“그래서 퇴위를 압박하기 위해서가 아닌 겁니까?” 명원제가 물었다. 그러자 안풍친왕이 명원제의 어깨를 두드리며 설명했다. “나라에 위기는 항상 어디서나 존재한다. 한 번 잘 생각해 보거라. 자신은 크게 잘못한 게 없다고 떠들지만 말고. 널 처음 세웠을 때 네가 평범하다는 걸 알고 네 아바마마는 전심전력을 다해 널 위해 준비 해왔어. 여러 해

  • 명의 왕비   제 2657화

    안풍친왕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 옷자락을 휘날리며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처럼 사라졌다.비록 위기는 이미 물러갔으나 명원제는 조금도 다행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안풍친왕이 가기 직전에 남긴 말이 명원제에게 커다란 압박감과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황의가 한 말은 마치 명원제의 것이 아니라 훔쳐간 것이니, 안풍친왕이 언제든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목여태감이 깨어나 후다닥 주렴을 젖히고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폐하!”명원제가 피로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안풍친왕이었어!”바닥에 명원제가 토한 피가 뚝뚝 떨어져 있는데 마치 전에 태상황이 토했던 피 같았다. 명원제는 태상황이 그날 얼마나 격노했고 애가 탔으면 그렇게 피를 토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목여태감은 안풍친왕이란 얘기를 듣고 다소 마음을 놓았다. “그래도 다행입니다!”주변에 있던 진비와 사람들도 달려와 가슴을 움켜쥐고 울었다. “너무 놀랐습니다. 너무 놀랐어요!”명원제가 진비를 보며 순간 진비를 찾아온 건 지혜로운 결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안풍친왕 말 대로 직면하고 싶지 않아 피하고 있을 뿐이었다.정치를 펼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건 무시하고 쉬운 것만 했다. 실수할 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결과가 어마무시하기 때문에 재임기간 동안 큰 실수를 범하지 않으면 후세에 어리석은 왕이란 평가는 받지 않을 테니 말이다.“진비, 짐이 현명한가?” 명원제가 물었다.진바가 울다가 문득 어리둥절해 하며 답했다. “현명하시지요, 폐하께서는 성군이시고 영명하십니다. 천하백성들도 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폐하.”“그건 그들이 진정한 성군, 진짜 강인하고 현명한 군왕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야. 진짜 강대한 군왕만이 북당을 강대하게 변화시킬 수 있지. 짐은 재위 기간동안 늘 타협해 왔어. 매사에 타협하고 일단 타협을 하다 보니 국민들은 날로 연약해 졌지.” 명원제는 우는 것처럼 웃더니 휘청거리며 걸어 나갔다. 올해는 명원제가 등극하고 12년째로 요 며칠간 터진 일이 명원제가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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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다른 방법이 없다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황제의 포석이 근시안적이라는 걸 알았네. 집안과 나라도 구분을 못하고 말이야.” 태상황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앞으로 정치를 펼치면서도 황제와 태자의 다툼은 계속 될 거야. 모순은 일정한 수준까지 쌓여만 갈 거고 상대적으로 황제의 십황자에 대한 편애는 갈수록 심해지겠지. 5년, 10년, 심지어 20년 뒤에는 태자를 폐하고 십황자를 세우려는 마음이 황제에게 일 것이고 그때 과인은 막을 수도 없어. 그저 속수무책으로 황제 손에 북당이 심연으로 빠져드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이점을 걱정하지 않았으면 이번에 황제에게 이렇게 심각하게 훈계할 필요는 없다.”안풍친왕이 위로하며 말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네 말년이나 잘 지낼 생각을 해. 나랑 네 형수가 상의했는데 십년간 여기 북당에 머물러 있을 수 있으니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돌아와 태자가 보위에 오르는 걸 돕도록 하지. 너는 말이야, 이미 물러났으니 소일거리를 좀 찾아. 맨날 세 늙은이끼리 어울리지 말고, 같이 어울려 봤자 살날이 적다는 생각밖에 더해?”태상황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쟤들이랑 같이 안 어울리면 난 대체 누구랑 어울려 놀라는 것인가?”“좀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젊을 때 해본 적 별로 없는.”하지만 태상황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않다. “과인이 젊을 때 안 해본 일이 어디 있어? 알면서 그래.”안풍친왕이 미소를 지으며 태상황에게 다시 물었다. “여자는 좋아해 봤어?”“왜 안 좋아해? 남자라면 다 좋아하지.”“네가 말하는 그런 가볍게 좋아하는 거 말고. 희상궁이랑 주재상 같이, 나랑 네 형수랑 같이 그런 사랑하는 감정 말이야.”태상황이 더욱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뭐가 달라?”“그녀와 얘기하는 게 너무 좋고, 아무 말 없이 그냥 같이 앉아 있기만 해도 아주 편안하게 느껴지는 게 다르지.”태상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이 있긴 해.”“누구?”“대흥궁에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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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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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 명의 왕비   제3375화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 명의 왕비   제3374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 명의 왕비   제3373화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 명의 왕비   제3372화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 명의 왕비   제3371화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 명의 왕비   제3370화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 명의 왕비   제3369화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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