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하긴 했죠. 정화 군주를 찾아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데.. 말리느라 죽을뻔 했습니다. 최씨 집안에서 잡아다가 아주 가죽을 홀랑 벗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구사가 어이없어했다.우문호는 구사가 밤새 위왕을 돌보느라 피곤함에 지친 것을 보고 말했다. “됐어, 가봐. 이 일은 나한테 맡기고.”“예, 전 갑니다!” 구사가 하품을 하며 나갔다.원경릉도 옷을 걸치며 상황을 묻더니 약간 걱정스레 말했다. “탕양한테 가서 며칠 지내며 지켜보라고 하자.”“그래도 되겠군!”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탕양에게 가서 짐을 꾸려 위왕부에서 며칠 묵으며 위왕이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도록 돌보도록 했다.초왕부는 당분간은 큰 일이 없으니 탕양이 며칠 자리를 비워도 별문제 없다고 했다. 우문호의 분부를 받고 탕양은 바로 짐을 싸 말을 달려 위왕부로 갔다.한편 정화 군주는 결정을 마치자마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결국 별다른 의식도 없이최씨 집을 나왔다. 그녀는 심지어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혼사를 마친 뒤 바로 새집으로 이사한 뒤에야 각 왕부에 사람을 보내 새 집에 차 마시러 오라고 했다.그러자 요 부인이 오늘도 상자 몇 개에 담긴 물건을 가지고 왔다. 다들 선물을 가지고 왔지만 요 부인처럼 이렇게 거대하지는 않았다.정화 군주 집은 혜민문대가 뒤쪽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규모가 작지 않은 것이 어찌 됐든 군주라는 봉호에 걸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은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로 주변에 많은 빈민들이 사는 데다가 집값도 싼 게 원래 상인의 집으로 낮은 가격에 내놓은 것을 얼른 사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손 왕비는 집 주변을 쓰윽 보더니 마음에 안 든 듯한 말투로 말했다. “이 집은 크기만 너무 크고 썰렁해. 게다가 주변이 이렇게나 정신이 없는데, 너 대체 여기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여기 좋아, 널찍하니!” 정화 군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집 안을 정돈하고 장식을 더하니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보기에도 확실히 위엄이 있고 마당이 3개에 사랑채가 2
정화 군주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난……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아니야, 왜 그런 생각을 해? 그게 나한테 무슨 괴로움이라고?”“너 지금 아이를 잃어서 이러는 거잖아?” 손 왕비가 똥 오줌을 못 가리고 흥분한 나머지 뒷일 생각없이 대놓고 질러버렸다.“형님!” 원경릉이 놀라 돌아보며 손 왕비를 꾸짖었다.손 왕비는 말을 뱉은 후 실언했다는 걸 알았지만 아예 무시하고 더 못된 말을 퍼부었다. “사실이 그런데, 말 못할 게 뭐 있어? 이미 지난 일인데 또 그 일때문에 평생 자신을 못 살게 굴어야 직성이 풀려? 네가 전신에게 시집간다고 하는 것도 네 선택을 존중하라고 태자비가 말려서 그래, 따지지 말자, 존중하자 하고 넘어갔어. 그런데 애들을 거둬서 키운다고?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행동이야? 그게 얼마나 책임이 큰 일인 줄 알기나 해? 애들로 너의 결핍을 채우려 하는 거면 애들을 망치고 네 자신도 망치는 길이야.”“됐어요, 형님 그만하세요. 정화 군주 얘기부터 좀 듣자고요!” 원경릉이 못 참고 손 왕비를 끌어당겨 의자에 앉히고 차를 한 잔 건넸다. “진정해요, 진정!”손 왕비는 차를 받고 고개를 돌리더니 몰래 눈물을 훔쳤다.그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모두 정화 군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손 왕비의 말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다들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화 군주가 한숨을 쉬고 조금 화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제가 뭘 하려고만 하면 전부 이전 일을 끌고 들어오는 거죠? 도대체 제가 새 삶을 살기 싫어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럴 기회를 안 주는 건가요?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제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얘들을 키운다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그저 제가 가서 봤을 때 아이들이 가여웠어요. 명월암이 철거된 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안당에 보내질 텐데 아직 너무나도 어린 아기들이라 반드시 따로 돌봐야 해요. 그런데 마침 전 그런 능력도 있고 돈도 있죠. 유모를 고용할 수 있고, 걔들을 돌볼 능력이 있어요. 제 자신도
한편, 정화 군주는 손 왕비가 걱정됐다. 하지만 방금 몇 마디 말다툼한 정도로 둘 사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정화 군주는 손 왕비의 손을 잡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앞으로 가르쳐 달라고 할 일이 엄청 많으니까 꼭 와야 돼.”“당연히 가지!” 손 왕비가 정화 군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그만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방금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원, 마음에 두지 마.”그러자 정화 군주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동서가 뭐라고 했는지 난 다 까먹은지 오래야.”나아진 분위기에 모두 서로 마주 보며 웃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여자들이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계집종이 와서 위왕이 정화 군주를 보러 왔다고 고했다.손 왕비가 벌떡 일어나 깔보며 소리쳤다. “안 본다고, 꺼지라고 해!”요 부인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금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놀린다? 볼지 말지 네가 정해?”손 왕비가 뚜껑이 열려서 대꾸했다. “아니 이 상황에 오긴 왜 와? 분란만 일으키는 거 아닌가요?”“난 괜찮아, 오면 오는 거지. 나도 할 말이 있고.”그리고 정화 군주가 고개를 돌려 계집종에게 말했다. “위왕 전하께 편청에서 기다리시라고 해, 내가 금방 가겠다고!”“예!” 그러자 옆에 있던 원경릉이 정화 군주에게 물었다. “정말 만나려고요?”정화 군주가 찻잔을 받쳐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시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전 지금 괜찮으니까 염려할 필요 없어요.”정화 군주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고 헛웃음을 지었다. “제 걱정 마세요. 전 지금 희망을 전부 내려놨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다들 저 때문에 걱정하시면 너무 모순 아닌가요? 차 드세요. 이 차 진짜 좋은 거예요. 사촌 오빠가 대흥에서 절 위해 가지고 오신 거니까 남기지 말고 다 드셔야 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치마에 떨어진 차 가루를 떨고 일어서 나갔다.위왕은 계집종이 이끄는 대로 우선 편청으로 갔
위왕은 편청에 앉았지만 여전히 머리가 답답해 무거웠다. 오겠다고 굳이 고집을 부린 건 불안해서였다.문 입구에 옷자락이 슬쩍 보이는가 싶어 얼른 고개를 들자, 정화 군주의 순결한 얼굴이 눈동자에 맺히고 위왕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정화 군주가 걸어와 위왕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앉으세요!”위왕은 앉아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 정중한 자세를 취했다. 위왕은 정화 군주에게 늘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정화 군주가 위왕 맞은 편에 앉아서 물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 있으세요?”“당신……” 위왕이 입을 뗐으나 목이 메였다.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 정말 누군가에게 시집을 가는 거면 나도 말릴 생각 없고, 난처하게 하지도 않아.”정화 군주가 고개를 저었다. “전 이게 정말 좋아요.”위왕이 정화를 보니 눈동자에서 평안이 느껴져 마치 예전 같이 느껴졌지만 이건 거짓일거라고 생각했다. “난 안 믿어!”“믿던 안 믿던 다 좋아요. 전 이미 이렇게 했으니까,” 정화 군주가 위왕을 바라보며 시원하고 투명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전 새로운 삶을 살 거고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래요. 당신이 아내를 맞으셔야 한다면 제가 어떻게 느낄까 고민하실 필요 없어요. 과거는 다 지난 일인 걸요. 우린 다 내려놔야 해요. 살아가려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 까지고 과거 일에 연연해서는 안돼요. 안 그러면 앞으로 길고 긴 여생을 어떻게 버틸 수가 있겠어요?”위왕의 눈가가 조금 붉어졌고 살짝 내려간 눈꼬리가 한없이 고집스러웠다. “난 이미 왕비가 있고, 이 생에 다른 사람과 혼인 안 해!”정화 군주가 위왕에게 말했다. “그럼 가서 당신이 하셔야 할 일을 하세요. 왕야는 황제 폐하의 아들이시라 당신 인생에 남녀 문제가 다가 아닙니다.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지고 계세요. 그래서 감히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으시고 해야 할 일은 하시길 바래요.”“그게 당신이 원하는 건가?” 위왕의 목소리가 떨려왔다.정화 군주가 말
정화 군주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집사를 불러 위왕을 환송해 드리라고 명했다. 위왕은 두어 걸음 걷다가 자꾸 뒤를 돌아서 정화 군주가 사라진 복도 쪽을 보고 또 보더니 미련을 잔뜩 남긴 채 떠났다.본관으로 돌아오니 모두 정화 군주에게 눈길이 쏠렸다. 그녀가 서서히 웃으며 다가왔다. “우리 안 싸웠어요!”정화 군주가 아직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안심이 됐다. 요 부인이 얼른 화제를 옮겼다. “제가 가져온 배냇저고리 좀 볼래요? 이웃 사람들과 같이 사흘에 걸쳐 만들었는데 정말 예뻐요!”“네, 보고 싶어요!” 미색은 배냇저고리를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얼른 대꾸했다.상자가 열리고 배냇저고리가 한 벌 씩 펼쳐지자 각양각색에 앙증맞고 귀엽다. 정화 군주는 그중 하나를 들어 옷감을 만져보고 요 부인을 칭찬했다. “옷감이 정말 부드러워요. 애들 피부에 딱 이네요.”“순면이라 입기 딱 좋지!” 요 부인이 말했다.“아직 부족하죠?”“서두르고 있으니 안심해요. 나중에 애들 오면 바꿔 입힐 거니까요.” 요 부인은 역시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다.정화 군주의 눈빛에 자애로운 느낌이 돌았다. “그럼 됐네요.” 원경릉이 말했다. “저기 우리집에도 입던 배냇저고리가 있는데 드릴 수 있어요.”“뱃속에 아기를 위해서 남겨두지 않고요?”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그렇게나 많이 못 입어요. 형이 다섯 명인데 어디 다 입어 보기나 하겠어요?” 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그리고 아가가 물려받지 못할 수도 있을 걸요? 공주님일 수도 있잖아요.” 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 원용의는 태자의 마음을 잘 알아서 원 언니가 이번에 가진 아이가 딸이기를 바랬다. 그래야 태자가 자기 집에 와서 딸을 납치해가자는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태자는 남의 집 딸을 볼 때마다 자기 집에 못 데리고 가는 게 한이란 표정이었다. 정화 군주가 기뻐하며 답했다. “그거 정말 잘 됐네요. 제가 같이 가서 가져올게요.”“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어요. 사람을 시켜서 보내면 되니깐요.” 원경릉이 말했다.“
이틀 뒤 명월암이 철거 되자 원경릉은 사람을 정화 군주 집으로 보내고 자신도 가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아이들은 전부 13살으로 남자 아이는 셋, 여자 아이는 총 열명이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가 한 살 반, 제일 어린 아이가 막 2달을 지났다.남자아이 셋은 전부 장애가 있었는데 하나는 청각장애였고, 또 하나는 얼굴에 큰 반점이 거의 얼굴 절반을 덮었는데 신기하게 나머지 절반은 아주 잘생겼다. 세번째 남자아이는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아이가 한 살 반으로 제일 나이가 많았다.같이 따라온 비구니가 모두에게 얘기했다. “여자는 버려진 애들로 가난한 집에 딸을 많이 낳다 보니 다 키울 수 없어서 몰래 암자 앞에 버리고 간 겁니다. 남자는 보통 차마 못 버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키우지만 셋은 장애가 있어서 차마 죽게 두지는 못하겠으니 암자 앞에 버리고 간 거겠지요. 나무아미타불, 군주님께서 얘들을 거둬 주셨기 망정이지 소승도 얘들을 어떻게 할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비구니가 이 말을 하며 정화 군주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정화 군주는 언청이인 아이를 안고 황급히 답례했다. “감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이 좋아서 그런걸요!”비구니가 말했다. “군주께서 아이들을 잘 대해 주실 것을 알지만 노파심에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선한 인연을 맺으셨으니 군주께서는 부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아이들을 나 몰라라 내버리시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절대로 애들을 버릴 리는 없습니다!” 정화 군주가 살살 언청이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비구니가 합장하고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했다.그리고 원경릉은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며 질병이 있는지 살폈다. 여자 애들은 별 문제 없고 단지 쇠약했을 뿐으로, 비구니 암자다 보니 제대로 먹을 게 없어서 몸짓이 다 작았다. 다른 건 못 먹고 멀건 미음만 먹었기 때문이다. 비구니들은 채소만 먹으니 당연히 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못했던 것이다. 원경릉은 실명한 남자 아이의 실명 원인을 바로
남자아이 셋은 다 부를 돌림자로 언청이인 아이는 최부진, 점이 있는 아이는 최부용, 실명한 아이는 최부생이라고 했다.원경릉은 정화 군주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소월각으로 가자 아이들이 모두 쿨쿨 잠들어 있었다. 최근 애들이 서로 현대 할머니 쪽으로 가겠다며 앞다투어 기회를 노렸다. 원경릉은 피로해서 관자놀이를 주무르면서도 내심 기쁜 것이 주진이 얼른 결과를 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원숭이의 대뇌에 대해서는 홍엽에게 말해야 할지 사실 망설여졌다. 원숭이에 정이 깊은 홍엽은 원숭이가 다른 몸 또는 의식으로 다른 시공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기뻐할 게 틀림없지만 고집스러운 개성으로 보건대 찾으러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아무런 방향성 없이 찾으면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다. 원숭이가 과연 어느 시공에 있는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으며 존재 여부 자체도 미지수기 때문이다.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원경릉은 일단 홍엽에게 알리지 않고 주진 쪽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결과가 나왔을 때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다음날 희상궁이 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원경릉이 식구들을 이끌고 희상궁과 같이 궁으로 갔다. 희상궁은 며칠 동안 궁에서 시중을 들었다. 아이들이 궁에 없으니 애들이 보고싶어 초왕부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결국 희상궁이 다시 초왕부로 돌아오자 궁중에 세 어르신들이 앞다투어 희상궁을 궁으로 돌려보내라고 난리셨다.희상궁은 자기를 둘로 쪼갤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하나는 궁에 하나는 초왕부에 있으면 좋을 텐데. 애들도 어르신들도 도통 신경이 쓰여서 어쩔 줄 모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으로 가는 길에 희상궁은 구시렁거렸다. “앞으로 양쪽을 왔다 갔다 할까 봐요. 열흘은 궁에 있고 또 열흘은 초왕부에 있고.”“희상궁,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요. 우리가 보고 싶을 때마다 우리가 궁으로 만나러 갈게요!” 만두가 귀염을 떨며 말했다.희상궁이 만두를 와락 안더니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 황태손은 정말 착하기도 하시지. 벌써 철이 다 들었어
태상황의 말은 즉 원경릉 배 속에 아이가 딸이란 소리로, 증손녀의 할아버지로서 여아홍을 땅에 묻었다가 우리 복덩이가 시집갈 때 파내서 마신다는 말이었다.원경릉이 돌연 호기심이 발동해서 물었다. “폐하는 여아홍을 묻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세요?”“과인은 알아.” 태상황이 단정적으로 말했다.“어떻게 아시는데요?” “50년 전에 관상가가 그랬어. 과인이 올해 손녀를 하나 더 볼 거라고.”“그럼, 미색이 낳는 아이일 수도 있겠네요.”“그럼, 손녀 둘을 보는 거지!” 아주 여유만만이다.원경릉이 배시시 웃으며, “미색이 쌍둥이면요!”태상황은 눈동자를 굴리며 허둥지둥하더니, “그럼, 셋이 더 생기는 걸로!”“미색도 딸을 낳나 봐요?” 원경릉은 아주 장난기가 발동했다.태상황은 원경릉의 말에 아예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관상가의 말을 안 믿다니 천벌받지.원경릉이 일어나 세 어르신을 안으로 불러 맥을 짚어 보았다.소요공의 건강은 여전했으며, 심폐기능은 젊은 사람보다 오히려 나을 정도로 손발이 민첩하고 허리가 튼튼했다. 소요공은 이에 자만해서 자신이 백 년은 너끈히 살 수 있다고 했다.태상황이 일부러 못되게 말했다. “보통 건강한 사람이 먼저 죽더라.”소요공이 태상황에게 눈을 흘기며, “먼저 죽으면 복 받은 거죠. 두 사람 다 죽고 나 혼자 남으면 너무 외로울 테니까요!”태상황과 주재상이 고개를 들어 소요공을 보는 눈동자에 무언가 천천히 떠오르더니 무거운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짐작하고 있는 게 있었다. 어느 날, 그리 멀지 않아 세 늙은이 중 하나가 먼저 죽고, 둘이 남았다가 마지막엔 결국 혼자 남을 것을 말이다.어릴 때부터 함께 늙어간다는 건 하늘이 내려 주신 복이자 귀한 인연이지만 그것도 결국 다하는 날이 오기 마련이다.청진기를 들고 있던 원경릉도 순간 먹먹했다.주재상이 곁에 있는 희상궁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다음 생이 또 있으니까. 희망이 언제나 있지.”희상궁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다음 생이 또 있으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