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 2592화

작가: 유애
손 왕비가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난 동서들처럼 그렇게 배운 것도 많이 없으니까 그냥 이렇게 하는 게 정화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어쩌면 태자비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정화가 기쁜 게 제일 중요하니깐. 태자비는 나랑 정화 사이를 잘 모르겠지만 난 정말 정화를 내 친 동생이라고 생각해. 근데 그런 정화를 셋째 아주버님께 빼앗겠지. 그렇게 조용하던 애가 온갖 악한 소문에 시달리면서도 다 참아내고 다소곳이 셋째와 부부의 연을 맺고 다른 사람들이 셋째 아주버님을 비난하지 못하도록 막았지. 원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아서 나도 셋째 아주버님을 남동생처럼 여겼어. 셋째가 정화를 납치해서 장가든 것으로 벌을 받을 때 정화가 나서서 셋째를 감싸던 순간, 정화에게 잘 해줘야겠구나 결심 했어…… 지금도 정화를 아껴서 그런 거지, 정화를 인정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니야.”

“네, 알아요. 두 분 사이 좋은 거. 형님이 정화 군주를 진심으로 아끼는 것도 당연히 알고요. 그러니 인정해 주기로 해요. 정화 군주는 형님의 인정이 너무도 필요해요!” 원경릉이 말했다.

“알았어.” 손 왕비가 말했다.

친왕이 위왕을 따로 데리고 가 얘기하다가 축전 연회가 시작되자 다시 돌아와서 참석했다. 하지만 위왕은 그들과 같이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정화 군주와 최씨 집안 사람들이 있는 걸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홉째는 다른 친왕들과 같이 있지 않고 팔황자와 같이 놀다가 손잡고 연회 자리로 들어왔다.

그는 좀 전에 팔황자와 어화원에서 놀다가 정화 군주와 집안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에 캄캄해진것 같았다. 그래서 연회 자리에서 우문호와 제왕, 회왕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위왕이 없는 것을 보고 얼른 우문호를 잡아 끌고는 다급하게 물었다. “정화 군주가 혼인을 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입니까?”

우문호가 누가 들을까 얼른 주위를 돌아보았는데 셋째는 이미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아홉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조용히 해. 아무 말도 하지 마.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명의 왕비   제 2593화

    위왕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얼굴에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버티고 있었지만 귀가 윙윙 울리는 게 아무것도 똑똑히 들리지 않았다.그가 줄곧 두려워하던 일이 드디어 터져 버린 것이다.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단 사실이었다. 어느 날 라라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려고 할 때 자신이 어떤 태도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수도 없이 상상해 왔다.“셋째 형, 아바마마께서 축배를 드셨어요!” 한참 뒤 귓가에 우문호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우문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위왕은 기계적으로 잔을 들고 아바마마를 바라봤다.아바마마가 환희로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얘기하자 위왕도 따라 웃었다. 아바마마께서 잔을 들고 다 마시자, 위왕도 잔을 비웠다. 술은 더할 나위 없이 쓰고 독했는데 목구멍을 타고 지나가자 그게 또 더할 나위 없이 통쾌했다.모두 웃고 기뻐했다. 위왕이 정화를 보니 그녀도 입술에 미소를 띤 채 역시 즐거워하고 있다.오늘은 기쁜 날이기에 이례적으로 신하들과 아녀자들이 궁 안에서 한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다. 그 중 특히나 정화 군주는 정말 기뻐 보였다. 웃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녀는 더 웃으며 지내야 했다. 앞으로 그 사람이 정화 군주와 혼인하고 그녀를 늘 기쁘게 해 줄 수 있기를 바랐다.난 왜 전장에서 죽지 않았을까? 위왕은 자신이 적의 손에 난도질 되어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머릿속은 어지러웠고 생각 없이 술을 한 잔 두 잔 들이켰다. 주량이 꽤 되는데 몇 잔 마시니 취기가 올라 더는 마시지 않았다. 실수할까 두려워서였다. 위왕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실패한 전적이 있으니 이제 자신을 제대로 통제해야 겠다고 결심했다.다행히도 위왕은 이 장면을 수천 번을 예상했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우문호는 줄곧 위왕을 지켜보며 사고라도 치지 않나 주목했으나 다행히 태산처럼 묵묵히 앉아 있기만 하고 술을 들이붓지도 않았다. 그저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는 게 정말 성숙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축전

  • 명의 왕비   제 2594화

    “흥분하긴 했죠. 정화 군주를 찾아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데.. 말리느라 죽을뻔 했습니다. 최씨 집안에서 잡아다가 아주 가죽을 홀랑 벗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구사가 어이없어했다.우문호는 구사가 밤새 위왕을 돌보느라 피곤함에 지친 것을 보고 말했다. “됐어, 가봐. 이 일은 나한테 맡기고.”“예, 전 갑니다!” 구사가 하품을 하며 나갔다.원경릉도 옷을 걸치며 상황을 묻더니 약간 걱정스레 말했다. “탕양한테 가서 며칠 지내며 지켜보라고 하자.”“그래도 되겠군!”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탕양에게 가서 짐을 꾸려 위왕부에서 며칠 묵으며 위왕이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도록 돌보도록 했다.초왕부는 당분간은 큰 일이 없으니 탕양이 며칠 자리를 비워도 별문제 없다고 했다. 우문호의 분부를 받고 탕양은 바로 짐을 싸 말을 달려 위왕부로 갔다.한편 정화 군주는 결정을 마치자마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결국 별다른 의식도 없이최씨 집을 나왔다. 그녀는 심지어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혼사를 마친 뒤 바로 새집으로 이사한 뒤에야 각 왕부에 사람을 보내 새 집에 차 마시러 오라고 했다.그러자 요 부인이 오늘도 상자 몇 개에 담긴 물건을 가지고 왔다. 다들 선물을 가지고 왔지만 요 부인처럼 이렇게 거대하지는 않았다.정화 군주 집은 혜민문대가 뒤쪽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규모가 작지 않은 것이 어찌 됐든 군주라는 봉호에 걸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은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로 주변에 많은 빈민들이 사는 데다가 집값도 싼 게 원래 상인의 집으로 낮은 가격에 내놓은 것을 얼른 사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손 왕비는 집 주변을 쓰윽 보더니 마음에 안 든 듯한 말투로 말했다. “이 집은 크기만 너무 크고 썰렁해. 게다가 주변이 이렇게나 정신이 없는데, 너 대체 여기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여기 좋아, 널찍하니!” 정화 군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집 안을 정돈하고 장식을 더하니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보기에도 확실히 위엄이 있고 마당이 3개에 사랑채가 2

  • 명의 왕비   제 2595화

    정화 군주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난……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아니야, 왜 그런 생각을 해? 그게 나한테 무슨 괴로움이라고?”“너 지금 아이를 잃어서 이러는 거잖아?” 손 왕비가 똥 오줌을 못 가리고 흥분한 나머지 뒷일 생각없이 대놓고 질러버렸다.“형님!” 원경릉이 놀라 돌아보며 손 왕비를 꾸짖었다.손 왕비는 말을 뱉은 후 실언했다는 걸 알았지만 아예 무시하고 더 못된 말을 퍼부었다. “사실이 그런데, 말 못할 게 뭐 있어? 이미 지난 일인데 또 그 일때문에 평생 자신을 못 살게 굴어야 직성이 풀려? 네가 전신에게 시집간다고 하는 것도 네 선택을 존중하라고 태자비가 말려서 그래, 따지지 말자, 존중하자 하고 넘어갔어. 그런데 애들을 거둬서 키운다고?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행동이야? 그게 얼마나 책임이 큰 일인 줄 알기나 해? 애들로 너의 결핍을 채우려 하는 거면 애들을 망치고 네 자신도 망치는 길이야.”“됐어요, 형님 그만하세요. 정화 군주 얘기부터 좀 듣자고요!” 원경릉이 못 참고 손 왕비를 끌어당겨 의자에 앉히고 차를 한 잔 건넸다. “진정해요, 진정!”손 왕비는 차를 받고 고개를 돌리더니 몰래 눈물을 훔쳤다.그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모두 정화 군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손 왕비의 말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다들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화 군주가 한숨을 쉬고 조금 화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제가 뭘 하려고만 하면 전부 이전 일을 끌고 들어오는 거죠? 도대체 제가 새 삶을 살기 싫어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럴 기회를 안 주는 건가요?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제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얘들을 키운다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그저 제가 가서 봤을 때 아이들이 가여웠어요. 명월암이 철거된 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안당에 보내질 텐데 아직 너무나도 어린 아기들이라 반드시 따로 돌봐야 해요. 그런데 마침 전 그런 능력도 있고 돈도 있죠. 유모를 고용할 수 있고, 걔들을 돌볼 능력이 있어요. 제 자신도

  • 명의 왕비   제 2596화

    한편, 정화 군주는 손 왕비가 걱정됐다. 하지만 방금 몇 마디 말다툼한 정도로 둘 사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정화 군주는 손 왕비의 손을 잡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앞으로 가르쳐 달라고 할 일이 엄청 많으니까 꼭 와야 돼.”“당연히 가지!” 손 왕비가 정화 군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그만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방금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원, 마음에 두지 마.”그러자 정화 군주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동서가 뭐라고 했는지 난 다 까먹은지 오래야.”나아진 분위기에 모두 서로 마주 보며 웃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여자들이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계집종이 와서 위왕이 정화 군주를 보러 왔다고 고했다.손 왕비가 벌떡 일어나 깔보며 소리쳤다. “안 본다고, 꺼지라고 해!”요 부인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금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놀린다? 볼지 말지 네가 정해?”손 왕비가 뚜껑이 열려서 대꾸했다. “아니 이 상황에 오긴 왜 와? 분란만 일으키는 거 아닌가요?”“난 괜찮아, 오면 오는 거지. 나도 할 말이 있고.”그리고 정화 군주가 고개를 돌려 계집종에게 말했다. “위왕 전하께 편청에서 기다리시라고 해, 내가 금방 가겠다고!”“예!” 그러자 옆에 있던 원경릉이 정화 군주에게 물었다. “정말 만나려고요?”정화 군주가 찻잔을 받쳐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시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전 지금 괜찮으니까 염려할 필요 없어요.”정화 군주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고 헛웃음을 지었다. “제 걱정 마세요. 전 지금 희망을 전부 내려놨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다들 저 때문에 걱정하시면 너무 모순 아닌가요? 차 드세요. 이 차 진짜 좋은 거예요. 사촌 오빠가 대흥에서 절 위해 가지고 오신 거니까 남기지 말고 다 드셔야 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치마에 떨어진 차 가루를 떨고 일어서 나갔다.위왕은 계집종이 이끄는 대로 우선 편청으로 갔

  • 명의 왕비   제 2597화

    위왕은 편청에 앉았지만 여전히 머리가 답답해 무거웠다. 오겠다고 굳이 고집을 부린 건 불안해서였다.문 입구에 옷자락이 슬쩍 보이는가 싶어 얼른 고개를 들자, 정화 군주의 순결한 얼굴이 눈동자에 맺히고 위왕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정화 군주가 걸어와 위왕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앉으세요!”위왕은 앉아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 정중한 자세를 취했다. 위왕은 정화 군주에게 늘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정화 군주가 위왕 맞은 편에 앉아서 물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 있으세요?”“당신……” 위왕이 입을 뗐으나 목이 메였다.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 정말 누군가에게 시집을 가는 거면 나도 말릴 생각 없고, 난처하게 하지도 않아.”정화 군주가 고개를 저었다. “전 이게 정말 좋아요.”위왕이 정화를 보니 눈동자에서 평안이 느껴져 마치 예전 같이 느껴졌지만 이건 거짓일거라고 생각했다. “난 안 믿어!”“믿던 안 믿던 다 좋아요. 전 이미 이렇게 했으니까,” 정화 군주가 위왕을 바라보며 시원하고 투명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전 새로운 삶을 살 거고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래요. 당신이 아내를 맞으셔야 한다면 제가 어떻게 느낄까 고민하실 필요 없어요. 과거는 다 지난 일인 걸요. 우린 다 내려놔야 해요. 살아가려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 까지고 과거 일에 연연해서는 안돼요. 안 그러면 앞으로 길고 긴 여생을 어떻게 버틸 수가 있겠어요?”위왕의 눈가가 조금 붉어졌고 살짝 내려간 눈꼬리가 한없이 고집스러웠다. “난 이미 왕비가 있고, 이 생에 다른 사람과 혼인 안 해!”정화 군주가 위왕에게 말했다. “그럼 가서 당신이 하셔야 할 일을 하세요. 왕야는 황제 폐하의 아들이시라 당신 인생에 남녀 문제가 다가 아닙니다.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지고 계세요. 그래서 감히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으시고 해야 할 일은 하시길 바래요.”“그게 당신이 원하는 건가?” 위왕의 목소리가 떨려왔다.정화 군주가 말

  • 명의 왕비   제 2598화

    정화 군주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집사를 불러 위왕을 환송해 드리라고 명했다. 위왕은 두어 걸음 걷다가 자꾸 뒤를 돌아서 정화 군주가 사라진 복도 쪽을 보고 또 보더니 미련을 잔뜩 남긴 채 떠났다.본관으로 돌아오니 모두 정화 군주에게 눈길이 쏠렸다. 그녀가 서서히 웃으며 다가왔다. “우리 안 싸웠어요!”정화 군주가 아직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안심이 됐다. 요 부인이 얼른 화제를 옮겼다. “제가 가져온 배냇저고리 좀 볼래요? 이웃 사람들과 같이 사흘에 걸쳐 만들었는데 정말 예뻐요!”“네, 보고 싶어요!” 미색은 배냇저고리를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얼른 대꾸했다.상자가 열리고 배냇저고리가 한 벌 씩 펼쳐지자 각양각색에 앙증맞고 귀엽다. 정화 군주는 그중 하나를 들어 옷감을 만져보고 요 부인을 칭찬했다. “옷감이 정말 부드러워요. 애들 피부에 딱 이네요.”“순면이라 입기 딱 좋지!” 요 부인이 말했다.“아직 부족하죠?”“서두르고 있으니 안심해요. 나중에 애들 오면 바꿔 입힐 거니까요.” 요 부인은 역시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다.정화 군주의 눈빛에 자애로운 느낌이 돌았다. “그럼 됐네요.” 원경릉이 말했다. “저기 우리집에도 입던 배냇저고리가 있는데 드릴 수 있어요.”“뱃속에 아기를 위해서 남겨두지 않고요?”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그렇게나 많이 못 입어요. 형이 다섯 명인데 어디 다 입어 보기나 하겠어요?” 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그리고 아가가 물려받지 못할 수도 있을 걸요? 공주님일 수도 있잖아요.” 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 원용의는 태자의 마음을 잘 알아서 원 언니가 이번에 가진 아이가 딸이기를 바랬다. 그래야 태자가 자기 집에 와서 딸을 납치해가자는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태자는 남의 집 딸을 볼 때마다 자기 집에 못 데리고 가는 게 한이란 표정이었다. 정화 군주가 기뻐하며 답했다. “그거 정말 잘 됐네요. 제가 같이 가서 가져올게요.”“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어요. 사람을 시켜서 보내면 되니깐요.” 원경릉이 말했다.“

  • 명의 왕비   제 2599화

    이틀 뒤 명월암이 철거 되자 원경릉은 사람을 정화 군주 집으로 보내고 자신도 가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아이들은 전부 13살으로 남자 아이는 셋, 여자 아이는 총 열명이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가 한 살 반, 제일 어린 아이가 막 2달을 지났다.남자아이 셋은 전부 장애가 있었는데 하나는 청각장애였고, 또 하나는 얼굴에 큰 반점이 거의 얼굴 절반을 덮었는데 신기하게 나머지 절반은 아주 잘생겼다. 세번째 남자아이는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아이가 한 살 반으로 제일 나이가 많았다.같이 따라온 비구니가 모두에게 얘기했다. “여자는 버려진 애들로 가난한 집에 딸을 많이 낳다 보니 다 키울 수 없어서 몰래 암자 앞에 버리고 간 겁니다. 남자는 보통 차마 못 버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키우지만 셋은 장애가 있어서 차마 죽게 두지는 못하겠으니 암자 앞에 버리고 간 거겠지요. 나무아미타불, 군주님께서 얘들을 거둬 주셨기 망정이지 소승도 얘들을 어떻게 할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비구니가 이 말을 하며 정화 군주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정화 군주는 언청이인 아이를 안고 황급히 답례했다. “감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이 좋아서 그런걸요!”비구니가 말했다. “군주께서 아이들을 잘 대해 주실 것을 알지만 노파심에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선한 인연을 맺으셨으니 군주께서는 부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아이들을 나 몰라라 내버리시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절대로 애들을 버릴 리는 없습니다!” 정화 군주가 살살 언청이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비구니가 합장하고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했다.그리고 원경릉은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며 질병이 있는지 살폈다. 여자 애들은 별 문제 없고 단지 쇠약했을 뿐으로, 비구니 암자다 보니 제대로 먹을 게 없어서 몸짓이 다 작았다. 다른 건 못 먹고 멀건 미음만 먹었기 때문이다. 비구니들은 채소만 먹으니 당연히 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못했던 것이다. 원경릉은 실명한 남자 아이의 실명 원인을 바로

  • 명의 왕비   제 2600화

    남자아이 셋은 다 부를 돌림자로 언청이인 아이는 최부진, 점이 있는 아이는 최부용, 실명한 아이는 최부생이라고 했다.원경릉은 정화 군주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소월각으로 가자 아이들이 모두 쿨쿨 잠들어 있었다. 최근 애들이 서로 현대 할머니 쪽으로 가겠다며 앞다투어 기회를 노렸다. 원경릉은 피로해서 관자놀이를 주무르면서도 내심 기쁜 것이 주진이 얼른 결과를 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원숭이의 대뇌에 대해서는 홍엽에게 말해야 할지 사실 망설여졌다. 원숭이에 정이 깊은 홍엽은 원숭이가 다른 몸 또는 의식으로 다른 시공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기뻐할 게 틀림없지만 고집스러운 개성으로 보건대 찾으러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아무런 방향성 없이 찾으면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다. 원숭이가 과연 어느 시공에 있는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으며 존재 여부 자체도 미지수기 때문이다.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원경릉은 일단 홍엽에게 알리지 않고 주진 쪽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결과가 나왔을 때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다음날 희상궁이 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원경릉이 식구들을 이끌고 희상궁과 같이 궁으로 갔다. 희상궁은 며칠 동안 궁에서 시중을 들었다. 아이들이 궁에 없으니 애들이 보고싶어 초왕부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결국 희상궁이 다시 초왕부로 돌아오자 궁중에 세 어르신들이 앞다투어 희상궁을 궁으로 돌려보내라고 난리셨다.희상궁은 자기를 둘로 쪼갤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하나는 궁에 하나는 초왕부에 있으면 좋을 텐데. 애들도 어르신들도 도통 신경이 쓰여서 어쩔 줄 모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으로 가는 길에 희상궁은 구시렁거렸다. “앞으로 양쪽을 왔다 갔다 할까 봐요. 열흘은 궁에 있고 또 열흘은 초왕부에 있고.”“희상궁,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요. 우리가 보고 싶을 때마다 우리가 궁으로 만나러 갈게요!” 만두가 귀염을 떨며 말했다.희상궁이 만두를 와락 안더니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 황태손은 정말 착하기도 하시지. 벌써 철이 다 들었어

최신 챕터

  • 명의 왕비   제3374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 명의 왕비   제3373화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 명의 왕비   제3372화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 명의 왕비   제3371화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 명의 왕비   제3370화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 명의 왕비   제3369화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명의 왕비   제3368화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 명의 왕비   제3367화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 명의 왕비   제3366화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