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이 아빠?어렵사리 서일에게 사식이가 임신한 사실을 설명하자 서일은 여전히 믿지 못하고 계속 사식이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식이는 피임약을 먹어서 임신할 리가 없는데.’화가 나서 원씨 가문의 노마님도 서일이 다쳤다는 걸 무시하고 머리에 꿀밤을 때리며 물었다.“이 바보 멍청이야, 피임약이 그렇게 완벽해?”“할머니!” 사식이는 마음이 아파서 급히 남편을 감싸며 물었다.“왜 때리세요? 안 그래도 머리가 나쁜데 더 때려서 머저리가 되면 누가 배상해 줄 건데요?”다들 깔깔 웃었다.원씨 가문의 노마님은 바로 항복했다. “힘들게 딸 키워서 시집보낸 지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남편 편만 들고, 이래서 딸 키워봤자 소용없다니까.”우문호가 천천히 말했다.“그렇게 말씀 하시면 안 되죠. 만약 서일과 사식이라 그러면 전 사식이 같은 딸을 원하지, 서일 같은 아들은 필요 없어요. 바보잖아요.”서일이 그제야 태자를 봤다는 듯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전하, 독고는……”“독고는 완전히 패했어.”서일이 감격에 겨워서 외쳤다.“정말입니까? 너무 잘됐네요!”“서일!” 원경릉이 주의를 주었다.“지금 네가 아빠가 되는 얘기를 하고 있잖아.”서일이 사식이를 보고 말했다. “나도 알아 다들 내 기분을 맞춰주는 거지.”“네 기분을 왜 맞춰줘? 진짜라니까, 사식이가 네 아이를 가졌다고! 네가 아빠가 될 거란 말이야.” 원용의가 매부에게 완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한마디 했다.“언니!” 사식이가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됐어, 내가 직접 얘기할게.”서일이 그제서야 표정을 가다듬고 사식이를 빤히 쳐다보는데 입술이 부르르 떨며 물었다.“정말이야?”사식이가 입술을 깨물고 얼굴이 빨개져서 답했다.“정말이야, 네 아이를 가졌어.”“아!” 서일은 이번에 정말 감격해서 앉아서 사식이를 안으려고 애쓰며,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약을 먹었는데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지?”이 둔탱이 같은 머리로는 당분간 이해하기는 글러
위왕 홍엽 탕양 북막의 군대가 국경에 주둔한 일로 호 대장군은 이미 군대를 이끌고 변경을 지키고 있으나 전쟁이 일촉즉발 상태라 대군도 일찌감치 출발해야 했다.위왕이 출정 전에 정화를 찾아갔다.위왕이 정화에게 물었다.“내가 이참에 확 변해서 돌아오면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어?”정화는 맨손으로 차를 집어 위왕 앞에 올려주며 말했다.“차로 술을 대신해 대장군의 개선을 기원합니다!”위왕은 차를 받지 않고 다시 한번 물었다.“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수 있냐고?정화가 눈을 내리 깔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말했다.“전 이 생에 다시 시집갈 수 없어요.”위왕이 정화를 보고 말했다.“그럼 나도 이생은 다시 아내를 맞지 않겠어. 라라(羅羅)야, 넌 항상 내 마음속에 있었어. 너한테 미안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너의 용서를 구할 자격이 없지만 이생에서 가장 영광이었던 건 널 왕비로 맞았던 거고, 이생에서 가장 불행한 건 내가 네 손을 놓은 거야.”정화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부부가 아니어도 친구나 친척일 수도 있죠.”위왕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어떤 형태로든 이번 생은 난 당신 곁을 지킬 거야. 당신이 싫어해도 증오해도 좋아 날 쫓아내지만 마, 내가 돌아오길 기다려 줘.”위왕은 말을 마치고 갑옷을 여미고 떠났다.정화는 위왕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정화는 아직 위왕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정화가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 위왕을 내려놓지 못하는 만큼 위왕이 저지른 짓을 잊지 못했던 것이었다.사람은 정말 모순덩어리다.모든 시비가 가라앉고 명원제가 직접 태상황을 조정으로 돌아오시도록 맞아들이고 안풍친왕 부부는 평남왕 세자를 데리고 벌써 떠났다. 이는 태상황이 허락한 것으로 명원제와 우문호에게 모두 묻지 않았지만 세자는 평남왕을 이용했고 안풍친왕 부부가 가장 아끼는 것이 평남왕으로 평남왕을 다치게 한 자를 쉽사리 용서할 리가 절대 없기 때문이었다.홍엽의 상처도 서서히 나아져 깨어났고
논공행상서일은 아빠가 된다는 소식을 온 세상 방방곡곡에 떠들지 못하는 것이 한이라는 듯 초왕부에서 자기를 보러 들어오는 사람에게 자기 능력을 떠들어댔다. ‘피임약을 먹었는데도 임신이 되다니 태자 전하보다 더 대단한 거 아닌가요?’사식이는 애초에 서일 위주로 움직였고 반드시 환자 우선이라지만, 서일이 촐랑거리며 아무한테나 입방정을 떠는 게 화가 나서 심하게 혼내자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사식이는 유산 조심이 있어서 침대에서 잠자코 있으라는 엄명을 받고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일은 내상이 아직 낫지 않아 움직일 수 없으므로 부부는 저택 안에 갇혀 있었다. 게다가 사식이 엄마가 시녀를 데려와 직접 돌보다 보니 서일은 자연스럽게 체면을 차려 장모 앞에서 버릇없이 굴지 못했다.반면 우문호는 매우 분주하게 각종 조사에 참석해야 했다. 독고 사람이 적지 않게 잡혀 아직도 잠복해 있는 첩자가 있는지 그들 입을 열게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며칠을 바쁘게 보내고 거의 정리가 됐을 때 제왕을 데리고 입궁해 결과를 보고했다.명원제가 입을 열었다.‘병석에서 일어나’ 다시 조정에 나가 논공행상을 진행했다.조정을 통틀어 상을 받을 명단을 선포하고 특별히 성지를 내려 지혜와 용기를 겸비하고 은일 자중하는 도리를 깨달아 독고와 첩자를 전부 소탕할 수 있었던 태자를 칭찬했다. 논공행상에서 황실의 사위 이리율은 북국공(北國公)으로 봉해져 북막성(北漠城)을 봉지로 받았으나, 사위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봉지가 꽤나 멀리 있는 데다 전부 황무지였다. 그런 땅을 받으면 조세를 거둘 가망이 거의 없었고 경제를 진작시키려면 사재를 털어야 했다.이 말은 즉슨 봉지를 임명 받은 것이 아닌 짐을 떠맡은 거나 다름없었다.서일은 태자가 직접 공훈을 인정해 3품 중랑장(中郎將)으로 봉해졌다.소홍천의 홍매문은 동궁의 여자 경호대로 조직되어 태자비와 황태손 등 황손을 보호하는 역할을 전담해 조정의 봉록을 받게 되었다.무과 장원 박원은 정원장군(定遠將軍)으로 봉해져 명원제가 직접 박원과
임신의 비법남자는 남자들끼리 얘기하고 여자는 여자들끼리 차를 마시며 담소했다.미색이 사식이의 임신 소식을 듣고 게다가 피임약을 복용한 뒤에 임신했다는 말에 상처받지 않을 수 없었다.몇 번이고 한숨을 쉬더니 도저히 못 참겠는지 다들 흥미진진할 때 푸념을 터트렸다. “제 운명은 참 기구하기도 하죠, 도대체 옥황상제 어디를 잘못 건드렸길래 절 이렇게 대하시는 걸까요?”다들 미색을 위로하며 조급할 필요 없다고 때가 되면 다 생길 거라고 했다.하지만 이 말은 미색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처음엔 그녀도 그렇게 자기 합리화했지만, 지금은 피임약을 먹은 사식이마저 뜻밖에 임신했는데 자신에게만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전 최근 계속 좋은 일을 하고, 누구를 대하든 웃으면서 각박하게 대하지 않았는데 왜 저한테만 그런 거죠? 할머니 약도 적지 않게 먹었고 태자비 마마도 제 몸은 좋다고 했잖아요. 왜 전 회임이 안 되는 거예요?” 미색이 무척 슬퍼했다.모두가 미색의 불평을 들은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손왕비, 제왕비와 원경릉은 하도 들어서 외울 지경이어서 대체 어떻게 위로해 줘야할지 몰라 했다.하지만 정화 군주는 진지하게 듣더니 미색에게 말했다.“회왕비 마마, 저한테 방법이 있는데 믿으실지 모르겠네요?”미색이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무슨 방법이요? 믿어요, 저 뭐든 다 믿어요. 빨리 말해주세요.”정화군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근데 하실 수 있을지는 모르죠. 이건 반드시 해내야만 효과가 있는 거라서요.”‘말만 해주세요. 제가 반드시 해낼 테니까.” 미색이 마음이 많이 조급하긴 한 모양이었다.다들 정화 군주를 보며 무슨 방법을 얘기할까 궁금해했다.정화 군주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이 방법은 몇 단계로 나눠지는데, 첫 단계는 월경이 끝나면 합방해서는 안 되고, 부부가 10일간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이 기간에는 서로 만나서도 안 되고 보약은 계속 챙겨 먹어야 해요. 10일 후 부부가 다시 만나는데 집안에서 만나면 안 되고 여섯째
경호에 갈 약속정화 군주와 요부인의 말을 듣고 미색은 무의식적으로 원경릉에게 말했다.“이 방법은 효과가 있을까요?”어쨌든 그와 10일간이나 떨어져 있어야 하니 이 방법에 드는 본전이 적지 않으므로 확실히 해야 한다. 당연히 효과만 있다면 10일이 뭐가 문제겠느냐마는.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일리가 있는 게 맞네요. 미색의 몸은 문제가 없고 여섯째도 약간 몸이 약하긴 하지만. 둘이 매일 밤 반드시 그거 하는 건 아니죠?”미색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당연히 매일 하죠. 이게 다 빨리 아이를 낳으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한 번이라도 기회를 놓치면 안 되죠.”“아니지, 너 전에 안 하는 날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손 왕비가 말했다.미색이 고개를 끄덕이며, “네, 며칠은 안 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제가 월경이라서요.”“여섯째가 진짜 고생이구나.”손 왕비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고생은 무슨? 제가 바라지 않을 때도 하고 싶어 해요. 밤새 그것도 몇 번씩.” 미색은 절세 미모로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데 마치 일상을 얘기하는 것처럼 말한다.다들 웃으며 말했다.‘어쩐지, 신혼부부였네. 다섯 번도 일곱 번도 다 정상이지.’미색은 이 비방을 마음에 잘 새겼다. 마침 오늘이 월경 마지막 날이니 내일 핑곗거리를 찾아 일하러 나가는 거다. 물론 여섯 째에게 아이를 낳는 비방을 얘기할 수 없는 게 얘기하면 협조해주지 않을 것이다.연회가 지나고 우문호가 잔뜩 취했다. 우문호는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취해본 적이 없는 게 방으로 돌아와 두 번이나 토해 원경릉이 깜짝 놀라 수액을 맞춰야 하나 생각했다.다행히 술 깨는 약과 물을 몇 잔 마시고 좀 정신이 돌아와서 원경릉을 품에 안고 원경릉의 턱을 잡더니 눈이 보이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이 미인께서는 어디 분이신지? 올해 혼인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생기셨나요?”원경릉이 우문호를 툭 때리고, “큰일 치르고 나더니 또 깨방정 떨기 시작했네.”우문호가 고개를 숙여 원경릉의
탕양의 의붓어머니와 아들원경릉이 놀라며 탕양에게 말했다.“집은 탕대인에게 준 거니 탕대인 거예요. 돌려받을 수 없어요.”“그럴 순 없습니다. 전 혈혈단신으로 필요 없어요. 기상궁께 드리죠. 기상궁은 태자 전하께 오랜 세월 충성을 다했고, 열이도 커서 장가를 들어야 하는데 집이 있어야죠. 열이 말을 꺼내니까 말인데 태자비 마마께 상의 드릴 일이 있습니다. 제가 슬하에 자식이 없으니 열이와 호명이를 양자로 들여 잘 키워서 나중에 태자 전하께 쓰였으면 해서요.”원경릉이 탕양이 원래 열이를 좋아하고 호명이의 심성을 잘 본 것을 알고 말했다.“이 일은 탕대인이 주관하시면 됩니다. 전 되는 걸 지켜볼게요.”“결국 태자비 마마께 의견을 여쭤봐야 해서요. 열이는 집안 노비로 노비문서가 있고, 호명이도 초왕부에 팔려온 몸으로 만약 태자비 마마께서 다른 의견이 없으시면 소인 열이와 호명이의 노비문서를 태워 주셨으면 합니다.”“좋아요!” 원경릉이 단숨에 동의했다.탕양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태자비 마마의 선하심에 기상궁이 분명 기뻐할 겁니다.”“기상궁이 태자 전하를 이토록 오래 보살펴주었는데 초왕부에서 기상궁 조손을 홀대할 수야 없죠. 그리고 기상궁이 사실 탕대인을 아들처럼 대하니 기왕 양자를 입적하려면 양어머니를 모시는 게 더 나을 거예요. 같이 저택에 살면 한가족이죠, 어때요?” 원경릉은 탕양이 혼자인 게 줄곧 걱정이었으나 탕양은 걱정을 가슴에 묻어두는 타입이라 분명 자신에게 마음속 괴로움을 드러낼 리가 없다.탕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습니다. 태자비 마마 제안이 좋은데요.”원경릉은 탕양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봤으나 이 기쁨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지 않는 것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탕대인, 만약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전부 얘기하세요.”“예!” 탕양이 대답했다.“태자비 마마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사양하지 않고 소인 태자비 마마께 한달의 휴가를 청합니다. 나가서 일을 좀 보려고요.”“그래요, 어디로 가세요?” 원경릉이 무
탕양과 그녀탕양이 바로 길을 떠나야 했고, 원경릉과 우문호도 경호를 가야 해서 기상궁과 탕양의 결연식은 최대한 빨리 거행됐다.크게 차릴 필요없이 초왕부에서 모두 하하 웃는 주연을 마련하기만 하면 됐다.최근 연달아 주연이 열려 한껏 들떠 있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분위기다.모두 눈물을 글썽이는 가운데 탕양이 기상궁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 열이와 호명이가 또 무릎을 꿇고 탕양에게 절을 올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증인을 서며 넷은 한가족이 되었다.탕양 저택 기존 설계가 영 엉망이라 방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 넷이 들어가 살아야 해서 적어도 방을 넷으로 꾸미기 위해 재시공을 할 필요가 있었다.마침 서일의 상처도 점점 호전되어 이 일은 서일이 맡아 공사감독을 진행하기로 했다.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서일이 원경릉에게 전에 탕 부인 물건이 아직 몇 개 방에 있는데 버리거나 태워야 하는지 물었다.원경릉은 자신이 결정하기가 그래서 서일에게 탕양이 내일 출발하니 일단 정확하게 해두라고 했다.서일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하지만 묻기가 좀. 다른 사람이 그 얘기를 꺼내는 걸 싫어하는 거 같던데요.”원경릉이 말했다.“그럼 내가 가서 물어볼게, 서일은 인부들과 우선 도면부터 치고 있어.”원경릉도 본인이 묻기 그래서 우문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남자들 일은 남자들끼리 소통하는 게 아무래도 낫지 싶어서다.우문호는 세심함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라, 별일 아니므로 저녁 먹은 뒤 탕양과 서재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그 부인 물건 아직 필요해? 아니면 보고 태워버리든가 버리든가?”“버리든 태우든 상관없습니다.”“추억으로 남길 건?” 우문호가 문을 밀고 들어서며 물었다.“추억할 것도 없어요.”“이미 죽은 사람이니 미워하지 말고.”탕양이 우문호의 서탁을 정리해 주며 공문 몇 개를 뽑아서 말했다. “이건 경조부에서 온 건데 제왕 전하께서 보내신 것으로 태자 전하께서 직접 보시라고 하셨습니다.”“여기 둬, 있다가 볼게. 앉아 봐. 얘
경호로 가는 길공문을 들고 보다가 우문호가 말했다.“그동안 그 부인이랑 같이 지냈는데 정말 건드린 적 없어?”“항상 예의를 지켰습니다.” 탕양이 조금 허탈한 눈빛으로 말했다.“전하는 도대체 뭘 묻고 싶으신 겁니까?”“그냥 호기심일 뿐이야, 그녀에 대한 감정이 어떤 거였어?”탕양이 의자를 잡아끌더니 우문호에게 말했다. “두 가지였죠, 하나는 그녀가 독고의 첩자가 된 전 제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미안함, 두 번째는 그녀가 제 사랑하는 사람을 저버리도록 하였다는 거. 제 곁에 매복해서 저를 이용해 정보를 캐낸 게 증오스럽죠. 그게 답니다.”우문호는 탕양이 갑자기 이렇게 진지해지자 코를 만지며 말했다. “그래, 그 여자 얘기 안 할게.”탕양이 약간 불안해하며 말했다.“전하를 해친 그자가 만약 살아있었다면 전하께서는 그녀를 증오하실 수 있지만 그자가 죽었으니 전하는 증오할 데조차 없어요. 마치 주명취에 대해 그러셨던 것과 같습니다.”우문호는 공문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약간 어리둥절했다. “주명취가 누군지 한참 생각했어.”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잊으셨으니 다행입니다.”우문호가 따분하다 못해 마침내 말했다. “그때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내가 주명취를 아내로 맞았으면 지금 어떤 상황일까?”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전하는 이렇게 상상력이 뛰어나지 않으시니 태자비 마마께 오셔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시라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우문호가 한가롭게 말했다. “됐어, 분명 비참하게 지내고 있을 테니까.”탕양은 엄처시하에서 살겠다는 생존의 일념이 가득한 우문호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다음날 탕양이 한 달간 휴가를 내서 출타하자 사람들이 부러워했다.홍엽 쪽도 상처가 거의 좋아져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우문호가 공무를 인수인계하고 마차는 보무도 당당하게 만불산 경호를 향해 갔다.이번 여정은 가족들을 거느리고 갈 뿐 아니라 눈 늑대와 호랑이, 시중을 드는 유모와 하녀까지 마차가 몇 대나 갔다.원경릉이 몰래 우문호에게 말했다. “다음번엔 우리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