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 일출우문호와 원경릉 가족은 위풍당당하게 만불산에 도착해 경호까지 등산했다. 만두와 아이들은 교외 나들이가 드물어서 흥분한 나머지 산꼭대기를 뱅뱅 돌며 노느라 여념이 없다.원경릉은 아이들을 데리고 경호에 가려고 마음이 급한데 날은 벌써 저물어 가고, 경호 쪽은 바람이 불어서 뛰며 노느라 땀이 흠뻑 난 아이들이 바람을 맞아 감기에 걸릴까 봐 하는 수없이 오늘 밤은 묵고 내일 일찍 가기로 했다.도장에서는 원경릉 일행의 신분을 알아서 도사가 최고의 예의를 갖춰 접대하고 말린 나물에 야채로 식사도 한사코 산해진미로 차려냈다.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 적막한 산중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잠자는 것뿐이라 도사가 차를 대접했으나 산을 오르느라 피곤해서 우문호도 몇 마디 건성으로 맞춰주고 돌아와 원 선생과 같이 꿈나라로 갔다.다음날 아직 날이 밝기 저에 우문호가 흥분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흔들어 깨우더니 나가서 일출을 보자고 했다. 어렵사리 등산을 했으니 모처럼 일출 보는 것도 좋은데? 의관을 정제하고 부부는 몰래 빠져나갔다.우문호가 원경릉을 산 정상으로 데리고 갔다. 사실 도장 자체가 이미 거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우문호는 정상에서 일출을 보는 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정상은 운무가 짙었는데 우문호는 그럴 줄 알고 미리 옷을 하나 더 입고 와서 벗어서 풀밭에 깔고 하늘이 푸르스름해지는 것을 지켜봤다.원경릉이 고개를 우문호 어깨에 기대자 우문호는 원경릉의 허리를 감싸고 차가운 얼굴에 키스하는데 감동이 밀려왔다. “원 선생, 우리 여기서 일출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같이 못 해 본 일이 산처럼 많을걸.”“당신 돌아가면 목록 만들어줘. 우리 하나씩 해치우자.” 우문호의 짙은 눈썹 아래 사랑의 눈짓을 하며 말했다.원경릉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래!”하늘에 옅은 오렌지빛이 번져가고 아직 태양이 보이지 않는데 우문호는 벌써 흥분해서 아이처럼 소리쳤다. “빨리 좀 봐!”오렌지빛이 점점
소용돌이뒤이어 쌍둥이도 되똥되똥 걸어오는 게 보여 안으려고 두 손을 벌렸다.원경릉이 이걸 보고 웃으며 말했다. “자기 말이 맞네, 눈 늑대랑 호랑이로도 바빠 죽겠어. 봉황은 무슨 봉황?”방으로 돌아가 아침을 먹고 일행은 씩씩하게 경호로 갔다.날이 덥고 오래 비가 오지 않아 대부분 호수가 말랐는데, 경호 물은 예전 모습 그대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감을 자아냈다.소용돌이도 여전히 있었다. 하나 하나가 마치 아래에 보이지 않는 물결이 있는 듯 원경릉이 뚫어지게 보니 눈이 뱅뱅 돌아서 오래 응시할 수가 없고 고개를 돌려 우리 떡들에게 말했다.“너희들 좀 봐줘, 이 소용돌이 안에 뭐가 있니?”홍엽이 얼른 다가와 기대하는 눈빛으로 우리 떡들을 봤다.우리 떡들이 기슭에 쪼그리고 앉아 가장 가까운 소용돌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한참 보고 만두가 외쳤다. “엄마, 이 소용돌이 안에 길이 있어요.”“길?” 원경릉이 약간 의문스러워서 말했다.“길이야? 사람은 없고?”“없어요. 사람이 있는지 안 보여요.” 만두가 말했다.원경릉이 경단이와 찰떡이를 보자 둘 다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사람은 없어요,. 그냥 길이에요.”“어떤 길이니?” 우문호가 열심히 봐도 소용돌이는 소용돌이일 뿐 어디 길이 있다는 거지?“큰 길이에요.” 만두가 손으로 흉내 내며 말했다.“이렇게 커요.” “이게 큰 거야?” 만두가 두 손을 펼친 걸 보고 우문호가 이게 큰 길이라고?“어쨌든 엄청 큰길이에요. 제가 손을 편 거보다 훨씬 크단 말이에요.” 만두가 길을 봐도 딱히 예쁜 게 없어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슭에 엎드려 다른 소용돌이를 한참을 주목하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세상에, 여기 기린이 엄청 많아요.”“기린? 무슨 기린?” 우문호도 같이 봤지만 소용돌이는 기슭에 붙어있어 썩은 잎이 말려 올라가 있고 여전히 시커먼 덩어리일 뿐이다.“외할머니 집에 있을 때 우리 데리고 갔던 그, 게임하는데 옆에 동물원이요.” 만두가 또 뚫어지게 보고 작은 얼
집으로 가는 길이날 경호에서 거의 해질 무렵까지 있다가 돌아갔는데 밥도 도중에 사람을 시켜 가져오라고 했다. 목적은 우리 떡들이 소용돌이 속 환상이 변하는 장면을 확실히 보게 하려는 것이었다.원경릉은 대략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했다. 이 소용돌이는 시간 터널이지만 계속 바뀌어서 원경릉이 있는 세계화 정확하게 동기화하려면 규칙을 분명하게 탐색해야만 했다.그래서 우리 떡들이 보면서 얘기하면 원경릉이 바로 받아 적었다. 이런 어지러운 데이터 속에서라도 일정한 규칙을 찾아내고 싶었다.원경릉이 진지하게 집중한 것을 보고 우문호는 감히 방해 못 하고, 홍엽도 다른 세상에 대한 간절한 염원 때문에 원경릉이 규칙을 밝혀내기를 바랬다. 홍엽은 날고 기는 인재지만 이쪽 분야는 몰라서 아무것도 도울 수 있는 게 없었다.우리 떡들은 처음엔 귀찮아하며 몇 개 보고 그만 보려 했는데, 많이 보면 볼수록 환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에 빠져들었다. 소용돌이 속에서 볼 수 있는 건 아이들이 본 적도 없고 접촉해 본 적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찰떡이는 전에 없던 주의력과 관심을 가지고 피곤함도 잊고 소용돌이를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봤다.일련의 규칙을 더듬어 내는데 하루만 보는 걸로는 부족해서 그들은 경호에서 열흘이고 아니면 그보다 더 길게 묵었다.우문호는 눈에 띄게 심심했다. 우문호는 사실 관광하고 즐기러 온 건데 결과적으로 모자 넷이 매일 기슭에 엎드려 소용돌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하루면 그나마 괜찮은데 연속으로 사나흘을 그러니 우문호는 눈이 다 짓무를 지경이다.한쪽에서 열심히 딴생각에 빠져 있는 원경릉에게 우문호가 말을 걸었다. “쌍둥이를 데리고 뒷산에 다녀올까?”“응, 가봐!” 원경릉이 노트에 적으며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우문호는 서러운지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너무 무리하지 말고, 눈 피로하지 않게 해. 다들 이렇게 뚫어지게 보면 순간 뭐가 뭔지 구분 안 되니까 좀 쉬면서……”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갑자기 고개를 들어 우문호를 보는데 눈알
기쁜 원경릉“맞아, 이 소용돌이는 시진과 방위에 따라 변하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이 교점을 골라야 하는 거야.” 원경릉이 말을 마치고 신나서 걸어갔다.우문호가 뒤를 돌아 홍엽을 보고 이번엔 정말 1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도대체 무슨 소리야?”홍엽도 더는 아는 척할 수 없어서 말했다. “모르겠어요!”우문호는 홍엽에게 기대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마당으로 가서 되똥되똥 걸어오는 쌍둥이를 안고 말했다. “가자, 형아들 마중 가야지, 형아들 아직 경호에 있어.”경호에 도착하자 못난이가 아이들과 같이 여기 있고 만두와 경단이는 돌아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찰떡이는 완전 빠져들어서 기슭에 엎드려 소용돌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우문호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우문호가 쌍둥이를 내려놓고 다가가서 찰떡이 등을 들어 올리자 그제야 깨어난 듯 한참 놀라더니 말했다. “아빠, 저 뛰어들어가서 좀 볼게요.”“안돼!” 우문호가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서 찰떡이를 잡아채더니 데리고 갔다. 있다가 원 선생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야지 안 그러면 찰떡이 정말 뛰어내리겠다.“저 어떻게 돌아오는지 알아요.” 찰떡이가 툴툴거렸다.“그래도 안돼!” 우문호가 혼을 냈다.찰떡이는 아빠가 화난 걸 보고 더는 아무 말도 못하고 미련이 철철 흐르지만 아빠를 따라갔다.도장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하자 원경릉이 그러자고 했다. “그럼 우리 내일 돌아가자, 대충 어떻게 되는지 알았으니까.”“응, 그럼 됐네!”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뽀뽀하고 말했다.“우리 사람들한테 짐 꾸리라고 하고 내일 일찍 가자.”원경릉이 일어나 우문호를 안더니 말했다. “자기야, 지금도 나랑 같이 돌아가고 싶어?”“당신이 가고 싶으면 난 꼭 당신과 같이 갈 거야. 하지만 돌아간 다음에 반드시 다시 돌아와야 해.” 우문호 말했다.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만약 못 돌아오면 우리 거기서 살지 뭐.”우문호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호비의 둘째 임신짐을 꾸려 경성으로 돌아왔다.경성은 점점 정상을 되찾았고 제왕은 정식으로 경조부 부윤 직을 맡았으며, 여섯째 회왕도 안일하게 지낼 수만은 없는지 전에 일곱째가 담당했던 경조부 보좌관에 임명됐다.조정은 독고가 난을 일으키기 전에 이미 한차례 피바람이 불었던지라 이상적인 새 사람을 발탁했다. 우문호는 이 신인 발탁을 통해 북당은 생명력이 왕성해질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우문호가 경조부를 떠난 뒤 동궁 작은 조정도 정식으로 설립되어 우문호가 여전히 병부 상서를 역임하며 병권을 장악했다.변경에서 상소가 올라왔는데 북막이 꿈틀꿈틀 움직이려 하고 있으나 북당은 이미 준비에 만전을 기해서 만약 북막이 감히 국경을 쳐들어오면 정면으로 강력하게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며칠 전 우문호는 대주에 서신을 보내 대주의 진정정 장군이 직접 전차와 무기를 변경으로 호송해 위왕에게 인수인계해달라고 했다.이와 동시에 호 대장군이 남강으로 가서 순왕과 남강왕을 도와 내란을 평정하게 해 남강 통일이 실현되는 순간이 그리 멀지 않았다.안왕은 상처가 나은 뒤 경성을 떠나겠다는 성지를 청했다. 경성을 떠나기 전에 안왕비는 안왕부에서 연회를 열어 모두를 집으로 초대해 석별의 정을 나눴다. 그래도 다행히 평화로운 마음으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정화 군주는 경성을 떠나지 않았으나 최씨 집안에 머무르지 않고 밖에 방을 구해 시녀 둘과 혼자 살았다.그리고 궁중에서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호비가 회임을 했다는 것이다.명원제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전에는 열째가 제일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호비가 자신을 위해 하나 더 가질 줄이야.명원제는 호비의 이번 임신에 상당히 긴장해 며느리 원경릉에게 시간을 내 입궁해 호비를 보도록 했다.원경릉은 당연히 부르면 반드시 왔는데 분명 큰 경사일 게 틀림없다.호비의 태아는 상당히 안정적이라 어쩌면 또 아들이 아닐까 했다. 호비는 울적해하며 원경릉에게 딸은 엄마랑 마음도 잘 맞는다던데 딸을 낳고 싶다고 했다. 제왕비와 안
황귀비의 충격적인 소식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진한 뒤 심박을 듣고 물었다. “배 아프세요?”“약간, 설사를 이렇게 많이 했는데 어떻게 안 아파?” 황귀비가 따질 힘도 없는지 말했다. “어지러워 죽겠네.”“만약 아직 설사가 나면 금식하셔야 해요.” 원경릉이 명을 내리고 처방전을 쓰며 물었다. “월경은 언제 있었나요?”“요 1년 동안 두세 달 만에 한 번씩 금방 끝났어. 최근 한번 한 게 두 달 전일 거야.” 황귀비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원경릉이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지 황귀비에게 말했다.“임신일 리는 없으세요?”황귀비는 이 말을 듣고 ‘풉’하고 웃으며 원경릉에게 말했다. “놀리지 마, 아주 날 홀랑 가지고 놀고 말이야.”원경릉은 침착하게 임신 테스트기를 꺼냈다. 최근 이게 아주 대 활약을 펼치고 있는데 북당이 좋은 일이 연달아 있는 김에 미색도 얼른 쓸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황귀비는 별로 검사해보고 싶지 않았지만 원경릉이 겸사를 하지 않으면 약을 쓰기 어렵다고 고집을 부렸다.황귀비는 거스를 수 없어 구시렁거렸다. “그건 불가능해, 내가 올해로 사십이 넘었고 만약 정말 그런 복이 있으면 지금은 손주도 있는 데다 일 년에 폐하 시중을 한두 번밖에 못 들겠어? 지난번 시중도 두세 달 전이었어.”이렇게 말하면서도 풍집사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에 갔다.원경릉은 사실 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전에 우문호가 말하는 걸 들었는데 지금 아바마마께서 호비를 총애하고 궁중의 다른 비빈들은 나이가 많아서 아들과 손자가 있으니 마음이 아예 그쪽으로는 없는지 가끔 폐하께서 가셔도 그렇게 기쁘게 맞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황귀비는 슬하에 자식이 없어 우문호가 양자가 된 뒤로, 우리 떡들과 쌍둥이가 자주 궁에 드나들고 황귀비 본인도 방대한 후궁을 관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폐하의 시중을 들 정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거기다 폐경 전후라 황귀비가 방금 말한 대로 1년에 한두 번 하는 건 부부 사이 의무방어전 정도 의미다.잠시 후 풍 집사가 임신
황귀비의 임신, 미색의 불임황귀비가 중얼거렸다. “늘그막에 자식을 보는 건가?”원경릉은 황귀비가 이렇게 자조하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어마마마, 기쁘십니까?”“기뻐 죽을 것 같아!” 황귀비가 천천히 자리에 앉아 몸을 약간 떨었다. 고여서 썩은 물 같던 나날이 갑자기 벅찬 환희가 되어 황귀비는 감히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 이 모든 게 꿈인 것만 같아서 원경릉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실수는 아니겠지?”“그럼 어의를 불러 다시 한번 진맥을 하세요!” 원경릉이 말했다.황귀비는 이렇게 큰일을 경솔하게 처리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여러 차례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단 본인부터 믿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풍집사가 급하게 알리러 간 게 원망스러운 것이 나중에 혹시라도 회임이 아니라고 하면 꼴이 우습기 때문이다.원판이 어의 몇 명을 데리고 왔다. 돌아가며 다가와 진맥하는 동안 명원제도 왔는데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고 놀라움에 차서 황귀비를 바라봤다.마지막으로 원판이 황귀비 마마는 분명 회임하셨다고 선포하고 이미 두 달이 되어 심지어 호비마마보다 약간 앞선다고 했다.명원제는 좋아 죽을 것 같다. 남자는 말이지, 아빠가 되는 거라면 몇 번이라도 좋다. 낳으면 키울 수 있으니까.황귀비가 기쁨에 벅차 눈물을 흘리자 원판이 정상이라며 임부는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게 당연하다며 따지고 들면 안 된다고 했다.황귀비는 기쁨에 겨워 울고 걱정이 돼서 눈물이 났다. 최근 며칠 동안 계속 설사를 했기 때문에 아이를 잃을까 걱정이 됐다.다행히 원경릉이 당분간은 괜찮으니 음식을 담백하게 드시면 곧 좋아질 거라고 했다.황귀비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아직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 계속 되뇌었다. “노부인께 정말 감사드리네. 노부인이 나에게 처방해 준 약을 두세 달 먹고 이렇게 회임할 줄 몰랐어. 노부인은 자식을 점지해주는 삼신할미시다.”황귀비가 이 말을 한 지 사흘도 되지 않아 온 경성에 소문이 쫙 퍼져서 일순간에 할머니의 명성이 경성에
못난이가 준 탕미색의 뒷모습을 보니 원경릉도 기분이 착잡했다. 미색과 여섯째는 맥으로 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고 할머니도 그들 맥을 짚었으나 맥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물론 여섯째 쪽 올챙이가 힘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만약 그런 문제라면 정화 군주의 방법이 어느 정도 유용할 것이다.원경릉이 집으로 돌아와 계속 경호의 수수께끼를 파고들고 있었다. 홍엽은 요즘 일이 있든지 없든지 초왕부를 찾아와 어슬렁거렸다. 주요 이유는 진도를 파악하는 것으로 원경릉이 홍엽에게 설명하기를 보기엔 쉽지만 계산하는 건 상당히 복잡해서 1~2년 안에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 홍엽은 상당히 실망한 눈치다.하지만 홍엽은 여전히 매일 와서 매번 우문호와 원경릉에게 탕을 선물했다. 못난이가 새로 배운 요리라는데 맛있다.하지만 우문호는 마시지 않고 매번 전부 버렸다. 왜냐면 이 탕은 국물 말고 아무것도 없어서 뭘 끓인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며칠 온 뒤 홍엽이 탕을 마시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물었다. 서일 이 녀석은 솔직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해서 말했다. “안 먹었어요. 전부 버렸습니다.”“버렸다고?” 홍엽이 화를 내며 말했다. “못난이의 정성인데 당신들 어떻게 버릴 수가 있지?”우문호가 서일을 째려보고 홍엽에게 변명했다. “뭘 끓인 건지 모르는데 누가 감히 먹을 수 있어? 그리고 못난이는…… 늘 원 선생에게 엄청 적의를 품고 있는데 몰래 뭔가 수작을 부렸을 수도 있잖아?”“어떻게 그런 식으로 사람을 의심할 수 있습니까? 만약 독이 걱정됐으면 저한테 말하면 될 것을 그럼 제가 먹는 걸 보여 드렸을 텐데. 못난이가 생긴 건 그렇지만 마음은 선량하단 말입니다.” 홍엽이 화를 냈다.“그래, 못난이 마음이 선량하다고 쳐. 그런데 왜 우리에게 탕을 주는 건데? 음식솜씨를 연습하는 거면 자네가 먹으면 되잖아.” 우문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걸 아예 이참에 까놓고 말했다.홍엽이 입을 다물고 한참 있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쨌든 당신들에게 필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