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런 탕 부인경단이가 씩 웃으며, “엄마, 탕대인이 우리에게 기근을 대비해서 곡식을 비축하는 걸 가르쳐 주셨어요. 지금 저에게 돈이 있으니 일단 저축하며 앞으로 굶어죽는 걸 대비하면, 앞으로 아빠처럼 악처와 결혼해도 돈 못 쓰는 거 걱정 안 해도 돼요.”원경릉이 그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혀서, “너 대체 종일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엄마가 그렇게 무서워?”“지금은 예전보다 더 무서워졌어요. 아빠가 얼마나 가엾은 데요.” 경단이는 어쨌든 못된 짓이 들켰으니 더 이상 비위를 맞추며 속이지 말고 오히려 죽음을 무릅쓰고 솔직히 말하기로 다짐했다.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아니, 전에 너희들은 전부 아빠를 무서워하면서 아빠가 걸핏하면 때린다고 했잖아. 어떻게 지금은 바뀐 거야?”“아빠가 최근에는 잘 안 때려요. 며칠동안이나 아빠를 볼 수도 없고, 봐도 화를 안 내요. 게다가 우리를 안아주기도 해요.”원경릉이 화가 나서, “원래 때리던 사람이 지금 안 때리면 좋은 거야? 아빠는 며칠씩 너희와 같이 있지 않지만 엄마는 매일 너희랑 같이 있는데 엄마는 싫고?”경단이가 억울하다는 듯, “엄마도 계속 같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쩌다 같이 있으면 공부한 걸 물어보고 억지 부리거나 말 안 들으면 무섭잖아요.”원경릉이 원래 화가 났다가 이 말을 듣고 순간 놀라서 경단이를 봤는데 ‘최근 자신이 이렇게 아이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나?’생각해보니 그동안 아이들과 같이 있는다고 하면서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오라고 해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애들이 억지를 부리거나 장난 친 건 없는지 물어보고, 전처럼 그렇게 같이 옛날얘기를 들려주고 애기를 나누지 못했다.반성하는 모습으로 경단이에게 빈틈을 주자 경단이가 얌전하게 달라붙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마가 바쁜 거 알았어요. 매일 고생하시니, 제가 앞으로 착하게 살게요.”원경릉이 경단이를 안아올려서 뽀뽀했다. 아이가 크면서 성격이 점점 형성돼가니 더욱 잘 가르쳐야겠다. 경단이를 보내고 탕 부인 문제를 생각했다
탕 부인을 시험하는 세 왕비두 사람은 상의 끝에, 사람을 보내 살펴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상대방의 무공수준을 모르기 때문에 무턱대고 사식이에게 가보라고 할 수 없으니 원경릉이 다음날 일찍 사람을 시켜 미색에게 오라고 했다.미색은 전에 늑대파의 이인자로 무공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탕 부인의 무공이 높아도 미색이 몸을 빼서 도망치기엔 문제 없다.미색이 상황을 듣고 단번에 수락했으나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발견 못한 상황에 오히려 탕 대인에게 들킬 경우 발뺌할 이유를 만들어 둬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지 않기 때문이다.어쨌든 탕 대인은 부인에게 잘하고 믿고 있으며 틀림없이 의심해 본 적 없을 것이다.요 부인이, “이렇게 하죠. 밤에 가서 살펴보는 건 오히려 좋지 않으니 잠깐 저랑 미색이 손님으로 가고, 회 왕비가 마당을 다니며 정말 구멍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잖아요.”미색과 원경릉도 찬성했다. 이게 제일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원경릉이 사람을 시켜 선물을 준비하고 미색과 요 부인이 같이 탕양의 집에 갔다.옆집 사이니 명함첩을 돌릴 필요 없이 바로 방문 왔다며 선물을 들고 예의를 갖췄다.탕 대인이 오늘은 경조부에 가서 제왕이 사건을 조사하는 걸 돕느라 집에 아직 없었다.집에는 시중을 드는 계집종 하나만 멍하니 있는데 여기로 이사 와서 탕양이 찾은 아이로 기민하지는 않지만 우직하게 일하는 타입이다. 태자비들이 오는 것을 보고 얼른 안으로 맞아들였다.넓은 본관은 방이 서로 연결되어 병풍으로 나눠져 있고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병풍도 없던 것이 기억나서 지금 고목 병풍을 세워 공간을 나눠놓으니 집에 있다는 느낌이라기보다 원경릉에게는 기숙사 느낌이다.탕 부인은 푸른색 상의에 담황색 허리띠를 하고 긴 머리는 간단하게 말아 올려 별반 장식이 없고 소박한 얼굴이라 엷은 분조차 바르지 않아 광대뼈 위에 엷은 갈색 얼룩을 볼 수 있는데 보기 흉하지 않지만 약간 나이가 들어 보였다.탕 부인이 계집종에게 태자비와 회 왕비 및 요
바늘 시험원경릉이 일어나 병풍 쪽으로 가더니, 처음 왔을 때 이 병풍은 본 적이 없는데 조각이 상당히 정교한데요! 이거 탕 대인이 맞추신 거죠? 저 잠시 감상 좀 할게요!”원경릉이 기회를 봐서 병풍 뒤를 한 번 쓱 보니 안에는 아무 것도 없고 장 하나, 침대 하나, 침대에 이불 2개 뿐, 그 외에 다른 건 없이 단순함 그 자체였다.여기는 확실히 가정이라고 할 수 없다.원경릉이 돌아와서, “이 방에 물건이 참 간소한데 어떻게 좀더 두지 않으세요? 벽에 붙여 두면 걸리적거리지 않을 거 같은데.”탕 부인이, “전 이렇게 지내는 게 좋아요, 사람은 세끼 밥에 밤에 잠만 잘 수 있으면 되니까요.”말하는 동안 미색이 밖에서 들어왔는데 원경릉을 향해 발견한 게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원경릉과 요 부인도 서로 마주보며 ‘설마.. 정말 잘못 의심한 건가?’미색이 들어와 계집종에게, “실이랑 바늘 있어요?”계집종이, “있습니다. 왕비마마 잠시만 기다리세요, 쇤네가 찾아오겠습니다.”원경릉이, “무슨 일이에요?”“방금 밖을 도는 데 나뭇가지에 걸려서 옷이 찢어지는 바람에 꿰매려고요.” 원경릉이 보니 미색 옷이 분명 찢어져 있다. 그녀가 이 옷을 입은 걸 서너 번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색이 상당히 좋아하는 옷으로 미색은 같은 옷을 3번 이상 잘 입지 않는 사람이라 그렇다는 건 진짜 좋아한다는 뜻이다.계집종이 실바늘을 가지고 와서, “왕비 마마, 마마께서 벗어주시면 쇤네가 꿰매겠습니다.”“괜찮아, 내가 직접 하지. 자네는 물러나게 시중들 필요 없으니.” 미색이 실바늘을 받고 일단 계집종을 내보냈다. 요 부인에게 자리를 옮기게 하고 미색이 탕 부인 곁에서 바느질을 했다.그때 탕 부인이 유감스러운 듯, “죄송해요. 밖에 나무를 몇 그루 심었는데 제가 눈이 안 보여서 정리를 소홀히 하다 보니 왕비 마마 옷을 찢을 줄 몰랐습니다.”미색이 빠르게 바늘을 놀리며,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제가 조심을 못해서 생긴 일인데요. 담벼락 쪽에 호미로 지렁
귀뜸원경릉이, “방금 나에게 고개를 흔든 건 마당에서 구덩이를 찾지 못했다는 거 아냐? 그리고 담장 귀퉁에서 호미질한 게 마음을 어지럽혔다더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땅에는 구덩이가 없었으니 위에 흙으로 메웠을 수도 있고. 담벼락에서 호미를 한 자루 발견했는데 호미에 흙이 묻은 게 흙을 파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죠. 탕 부인이 나중에 와서 메웠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요.”“그래서 미색이 호미 얘기를 할 때 마음이 어지러워진 거로군.” 요 부인이 말했다.미색이 정중하게 원경릉에게, “이 일은 반드시 바로 탕 대인에게 알려요. 방금 탕 부인은 우리가 자신을 시험해 본 걸 이미 알아차린 게 틀림없으니까요.”원경릉도 분명 그럴 거라고 이번 시험은 좀 경솔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시험하지 않고 무턱대고 탕양에게 알리는 것도 부부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의심을 살 수 있다. 어쨌든 탕양의 부부관계가 이렇게 좋으니까 말이다.초왕부로 돌아와 사람을 시켜 탕 대인이 돌아오면 바로 오라고 했다. 탕양은 거의 해가 떨어질 무렵 초왕부로 돌아와 하인의 얘기를 듣고 소월각으로 원경릉을 찾아왔다.탕양은 자객 일을 묻는 줄 알고 원경릉을 보자, “제왕 전하께서 어젯밤 이미 철야로 몇 명을 심문하셨고 오늘도 종일 심문하셨지만 돈을 받고 마마와 만아를 납치하려던 것만 알아냈을 뿐입니다. 지금 이미 사람을 보내 이들의 배경을 조사하고 있는데 돈으로 고용된 조수들은 배후 인물과 접촉한 적이 없는 게 확실합니다!”“내 신분을 알고도 이 일을 받아들일 정도면 상대가 준 은자가 많은가 봐?” 탕양이 손가락 5개를 세우더니, “두 분을 납치하면 은제 오만 냥을 준다고 했습니다.”원경릉의 눈빛이 싸늘해 지며, “보아하니 배후의 검은 그림자는 은자는 충분한 모양이군.”“임소와 손 주인장이면 확실히 은자가 부족하지는 않지요. 주명양이 그들에게 거둬들여준 돈만 수백만 냥이니까요.” 탕양이 담담하게 말했다.원경릉이 한숨을 쉬며, “정말 생각도 못 했어. 지금까지도 이 자매
탕 부인의 비밀사실 원경릉 마음속에 살짝 의문이 드는 게 탕 대인은 상당히 신중한 성격이고, 사람을 아주 치밀하게 관찰하는데 어째서 전혀 느끼지 못했을까?탕양의 얼굴에 드러난 반응으로 볼 때 탕양은 아마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밤낮을 함께 하는 부부가…… 원경릉은 순간 우문호가 한 말이 떠올랐다. 탕 대인이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나중에 왜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고 이 사람과 결혼했는지 모르겠다며,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같이 자는 듯한 게 침대에 이불이 두 장이었다.“알았습니다. 유념하겠습니다.” 탕양이 어두운 눈으로 말했다.원경릉은 탕양의 근심스러운 빛을 보고 바로, “탕 대인과 부인의 일을…… 제가 얘기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소년 시절 그녀의 눈을 다치게 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인가요? 아니면 부인이 탕 대인을 그렇게 오랜 시간을 묵묵히 기다렸기 때문인가요?”탕양이 뭔가 말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제가 아내와 혼인한 건 단순히 양심의 가책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밤 그녀와 술을 마시고 완전 취하는 바람에 큰 실수를 저질렀죠. 거기다가 일이 일어난 뒤 그녀는 날 오래 기다렸다고 했어요. 눈 때문에 혼담이 없다는데 어쨌든 어릴 때 알던 사람으로 이런 사람을 매정하게 떨쳐버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녀와 혼인하겠다고 승낙하고 그녀의 반평생을 돌보기로 한 겁니다.”“뜻밖에도 그렇게 된 것이로군요? 그럼 그 뒤로 그녀에 대해 조사해 보지 않았나요? 결국 두 분이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었으니 그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고 싶잖아요?” 원경릉은 여전히 탕양이 그렇게 경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당시 우문호의 말에 따르면 탕양은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여러가지로 증명해 본 뒤에 힘들게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당연히 조사했습니다. 그녀는 그동안 상당히 힘들게 지냈고, 눈 때문에 계속 사람들에게 모욕과 업신여김을 당했습니다. 궁핍하고 어려운 나날을 조사해 보지 않았
탕양의 대세 판단원경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탕양이 혼자 조용히 생각하게 놔뒀다.탕양이 한참 후 생각을 정리하고, “홍엽이 아닌 것이 홍엽의 첩자는 거의 우리에게 들켰고 홍엽 자신이 북당에 있어서 더 이상 첩자를 잠복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잠복한다고 치더라도 본인이 초왕부와 접촉할 수 있는데 굳이 초왕부에 사람을 안배한다는 건 눈에 띌 수 있고 일단 발각되면 오히려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자비 마마께서 홍엽을 말씀하시다니, 당시 태자 전하께서 책봉되실 때 북막의 진대장군이 왔을 때를 아직 기억하시나 봅니다. 당시 우리 쪽 사람들은 진대장군과 홍엽이 모두 안왕 전하와 사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지금 우리는 선비의 첩자 중 일부는 안왕의 후궁 아라가 깔아 놓은 것으로 아라는 독고 세자 사람이라는 걸 압니다. 즉 당시 안왕을 찾은 두 사람, 홍엽과 진대장군에서 안왕 전하께서는 홍엽을 돕는 쪽을 택하지 않고 진대장군을 택했던 거죠. 지금 우리가 다시 한발 물러나서, 북막과 선비가 동맹을 맺도록 촉진한 건 홍엽이나 마지막에 등장한 건 독고 세자였죠. 그래서 아라는 도대체 독고 세자 사람인지 아니면 진대장군 사람인지 이제 알 수 없지만요. 하지만 중간의 복잡다단한 관계는 전부 북막의 진대장군과 얽혀있습니다.”탕양의 얘기가 약간 꼬였으나 원경릉은 잘 알아듣고 조용히 탕양이 계속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다.탕양이 자신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 계속 분석하며, “당시 북막과 선비의 동맹은 연합하여 대주를 공격하는 것이었으나, 북막은 오히려 대주의 진근영에게 호된 공격을 당했고 선비는 북막을 지원하지 않았죠. 선비는 적당히 늙고 병든 병사를 골라 보내 중간에 섬멸당했으며 이런 전술은 홍엽 공자가 준비한 것입니다. 북막과 선비를 분열시켜 선비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지도록 한 뒤 독고가 지고 숙나라가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태자비 마마께서 자세히 살피실 것이 독고 장군은 줄곧 진정으로 북막과 서로 미워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계속 북막 사람이 계략을
불안한 원경릉독고라는 이름은 수도 없이 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독고에 대해 평하는 걸 들어서 그의 잔학함과 포악, 냉혈함을 안다. 더욱이 그가 홍엽에게 한 일을 알고 이 사람에 대해 더욱 공포스럽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다행히 그가 죽었으니 다시는 화를 입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탕양의 분석을 듣고 있자니 이 나쁜 놈은 정말 천 년간 재앙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탕양이 일어나며, “어쨌든 얼른 태자 전하께서 돌아오시게 하고 계책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너무 가볍게 생각한 듯하네요. 만약 배후의 인물이 정말 독고라면, 태자 전하께서 이번에 는 어쩌면 정말 험한 경우도 만나실 수 있을겁니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안색이 크게 변해서, “그럼 어서 사람을 보내 돌아오라고 해요.”“태자비 마마 안심하세요. 제가 우선 야행복으로 갈아입고 직접 다녀오겠습니다.” 탕양이 말을 마치고 예를 취한 뒤 물러났다.탕양의 말에 원경릉은 있어 몸서리를 쳤다. 독고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이제 와서 갑자기 그 이름을 다시 들으니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자신이 습격당한 게 독고가 보낸 사람일 가능성이 있어 원경릉은 자기도 모르게 소름 끼쳤다.그리고 만약 독고가 죽지 않았고 정말 북당과 맞서려 한다면 그는 지금 어디 있을까?북당 경성에 있지 않을까?거의 밤새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밝아올 때 겨우 어슴푸레 잠이 들었다.일어난 뒤 눈 밑이 계속 뛰는데 당연히 원경릉은 미신을 믿지 않지만 눈꺼풀이 떨리는 건 뭔가가 생길 징조라고 했다. 어젯밤 제대로 잠을 못 자서 눈꺼풀이 떨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고작 잠 좀 못 잤다고 눈꺼풀이 또 계속 떨리다니 어쨌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원경릉이 약 상자를 들고 만아 약을 갈아주러 갔는데 아홉째도 있었다. 아내를 너무 아껴서 다친 아내 곁에서 내내 지키고 있었다.그러자, 원경릉이 온 것을 보고 얼른 약 상자를 대신 들며, “형수님, 만아가 어젯밤 열이 있었는데, 지금은 심각
어디로 갔지?원경릉이, “잘 못 잤지만 괜찮아. 나중에 더 자면 되니까. 넌 어때? 상처는 안 아파?”만아가 순왕에게 짜증을 내며, “전 괜찮아요. 이런 작은 상처는 신경 쓰이지도 않는데 저이는 어찌나 쓸데없이 긴장 하는지.”순왕은 원경릉이 만아의 상처를 열자 상처에 피와 살이 덩어리진 것이 상당히 끔찍한데 가슴이 너무 아픈 나머지, “어떻게 쓸데없는 긴장이야. 상처가 조금만 더 깊었어도 뼈가 잘렸을 거라고.”만아가, “그러니까 뼈가 잘린게 아니잖아요? 쓸데없이 긴장한다니까 인정을 안 해요.”원경릉은 두 사람이 치고받는 걸 듣고 아주 사랑이 넘치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저절로 느긋해졌다.상처 처리를 마치고 사식이도 와서 원경릉은 사식이에게 경단이를 데리고 전장 일을 처리하게 하고 이리 나리가 준 지폐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돌려 주되 함부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특히 은자는 받아서는 안된다고 경단이에게 단단히 한 번 더 단속했다.경단이는 마음이 아팠지만 엄마가 이렇게 엄격하게 경고했으므로 감히 반항할 수 없어서 사식이를 따라가서 지폐를 물렸다.이리 나리는 담담하게 사식이에게, “걔는 작은 일에 크게 놀란다니까. 옹색하기는. 고작 은자 약간을 가지고. 애한테 장난감이나 사주고 싶었던 건데 뭘 사야 할지 몰라서 은자로 준 거지.”사식이가 웃으며, “이리 나리, 보통 우리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줄 때는 100문 이하예요. 걸핏하면 만 냥짜리 지폐를 꺼내시면, 우리의 퇴로가 차단시키시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앞으로 또 뭘 줄 수나 있겠어요?”이리 나리가 느릿느릿하게 지폐를 다시 받고 고개를 흔들며, “가난뱅이 녀석들!”“이리 나리와 비교하면 북당에서 가난뱅이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나요?”“어릴 때부터 부유해서 앞으로 은자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 이런 식의 교육방침을 원경릉은 이해를 못해.”“원 언니 아이니, 어떻게 가르치던 언니가 알아서 하라 하세요.”사식이가 경단이를 데리고 돌아갔고 만두 늑대도 따라가서 이리 나리는 매우 마음이 갑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