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의 입궐우문호가 무안해 하며, “황조부를 그리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약간 바빠서. 증손자들은 내일 꼭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합니다.”“옆구리 찔러서 절 받냐, 됐어!” 태상황이 쌀쌀맞게 말했다.우문호가 곤혹스러워 허허 웃으며 속으로, ‘원 선생, 너 또 사고 쳤어.’출궁해서 원경릉에게 알리니 원경릉도 자기가 오랫동안 입궐해서 곁에 있어드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최근 일이 많은 게 주된 원인이고 거기에 안왕비가 출산을 앞두고 안왕부에 들려야 해서 입궐해 문안드릴 타이밍을 놓쳤다.이제 귀비가 안왕부에 산다. 귀비가 전에 우문호를 찾아 자신의 적씨 가문 자제를 관직에 앉혀줄 것을 시도한 적이 있어 명원제가 분노한 나머지 짐 싸서 나가게 했기 때문으로 궁밖에서 안왕과 같이 살도록 냉대하는 것으로 반성하라는 뜻이다.사실 명원제는 귀비가 자식을 끔찍하게 여긴다는 걸 알고 안왕비가 아이를 낳은 뒤엔 안왕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강북부로 돌아갈 것이므로 경성에 있을 동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게 해주려는 배려라는 걸 원경릉은 알고 있다.귀비가 안왕부에 간 뒤 안왕비의 배가 잘 뭉쳐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원경릉을 집으로 오라고 청했다. 이게 바로 원경릉이 바쁠 수밖에 없는 이유다.하지만 다음날 아무리 바빠도 어르신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원경릉은 독수리 오형제를 데리고 문안 드리러 입궐했다.태상황이 원경릉에게는 심드렁하고 우리 떡들과 쌍둥이들만 소중히 여기는데 손주들이 매달리는 기분이 장난 아니라 태상황은 기쁘기가 한량없다.원경릉은 마침 입궐한 김에 만아와 순왕 일을 슬쩍 입을 땠다.태상황이 나서 주기만 하면 이 일은 일사천리로 전에 우문호가 황제에게 그렇게 세세히 얘기했는데 황제도 반대하지 않은 게, 기왕 반대하지 않은 김에 확 밀어붙여서 일을 다 마치고 경성을 떠나는 게 최고다.원경릉이 이 일을 언급하니 태상황이 듣고, “경사는 맞는데 둘은 그걸 원해? 억지로 하면 안되지.”“그런 생각이 있는 걸로 보여요.”태상황이 칠성이와 환타를 안
사혼(賜婚)황귀비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여서, “후궁을 맡은 뒤로 쉰 적이 없었으니 아픈 핑계로 쉬는 것도 좋겠어. 호비와 노비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주면 맡겨볼까.”원경릉은 황귀비가 지쳤다는 걸 알고 쉬어야 한다고 신신당부 한 뒤 고부간에 얘기를 나누는데 역시 순왕과 만아 얘기를 꺼내자 황귀비도 좋다며 의견까지 냈다, “귀비가 궁 밖에 있으니 순왕과 만아의 혼사가 정해지거든 귀비에게 준비를 좀 도와 달라고 해. 나귀빈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순왕도 가련한 처지가 아닌가. 귀비는 어쨌든 지위가 존귀하니 귀비가 이 일을 맡아주면 순왕도 체면이 조금은 서지 않겠어.” 곧 한 마디 더해서, “원래 내가 나서서 하면 좋은데 지금 병중이라 사실 힘에 부쳐. 자네가 보고 진행해. 귀비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순왕이 혼사를 준비해준 인정을 받아준다면 앞으로 안왕과도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형제 간의 화목을 위한 계책이니 좀 귀찮아도 자네가 양해하게.”원경릉은 황귀비가 멀리 내다보는구나 생각했다. 순왕이 남강에 가서 남강왕의 남편이 되면 어머니가 죄목을 쓰고 죽었기 때문이라고 멸시 당할 까봐 걱정해서다. 만약 귀비라는 존귀한 신분이 순왕의 혼례를 맡아 혼례 전에 절을 올리고 모자간의 연을 맺는다면 앞으로 남강에서도 사람들이 순왕을 가벼이 여기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상황에 안왕 쪽에서 다소 꺼릴 수 있다.원경릉이 생각해보더니 가능하다 싶어서, “그러지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직접 가서 귀비에게 부탁하지 말고 방법을 생각해. 귀비 본인이 직접 이 일을 떠맡도록 만들어.”황귀비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원경릉도 이해했다. 원경릉이 가서 부탁하면 귀비는 오히려 바라지 않을 것이나 자기쪽에서 부탁하면 반드시 잘 해낼 것이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어서방에 가서 명원제에게 문안인사를 드렸는데 당연히 핵심은 순왕과 만아의 일이다.명원제는 일찍부터 이 일을 동의했으나 바로 사람을 시켜 진행시키지 않다가 원경릉이 입궐해 얘기하니, “사혼(賜婚, 황명으로 신하의 혼처와
순왕의 혼례적귀비가 이 일을 맡게 하려면 머리를 써야 한다.원경릉이 이날 안왕부에 안왕비 태아 검사를 위해 가는데 적귀비가 그 자리에 있는 틈에 자연스럽게 이 일을 화제로 꺼냈다.“태상황 폐하께서 아홉째와 만아의 혼사를 정해 주셨는데 아마 혼례를 마치고 남강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아직 길일을 택하지 않았지만 제발 형님 출산 예정일과 겹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럼 형님은 잔치에 참석을 못하잖아요.”적귀비가 듣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게 뭐가 중해? 잔치에 가든 말든 본인이 애를 낳는 게 중요하지.”안왕비가 눈치를 채고 원경릉이 아무 이유 없이 어마마마 앞에서 순왕의 혼사를 꺼냈을 리가 없으므로, “경사가 아닌가, 가서 흥겨울 수 있으면 좋지. 성지는 내렸어?”“성지의 골자를 잡고 있어요. 곧 내려올 겁니다.” 원경릉이 갑자기 또 고심하는 듯, “그런데 태상황 폐하께서 원래 황귀비 마마께서 아홉째 혼사를 주관하게 하실 생각이었는데 황귀비 마마께서 지금 몸이 불편하신 관계로 못 하실 것 같아요.”“노비 마마나 진비 마마께서 계시잖아?” 안왕비가 말했다.원경릉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만아가 이제 남강왕인데 태상황 폐하와 황제 폐하는 순왕 전하의 신분을 좀 높여 주시고 싶어하세요. 당연히 지위가 존귀한 분이 순왕 전하를 위해 혼사를 주관하길 바라시죠. 어쨌든 아홉째 생모 나귀빈도 없으니 전하의 혼사를 맡는 다는 건 어마마마의 지위를 인정한다는 것과 동일하니까요.”적귀비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동해서, “나도 아홉째를 위해 혼사를 담당할 수 있지.”순왕은 이미 예전의 천덕꾸러기가 아니다. 더욱이 이제 남강왕을 아내로 맞고 태자의 눈에 들었을 뿐 아니라 외할아버지는 귀영위의 수장이다. 원경릉이 말한 대로 순왕의 혼사를 맡는 것이 어마마마로 인정받는 것과 같다면 적귀비는 이 기회를 잡고 싶었다. 지금 적씨 집안은 기댈 데가 못되고 황제 폐하도 자신을 아들 곁에 있게 하는 게 사실 자신의 지위를 낮춰 출궁시키는 것과 뭐가 달라?자신이 여전히 귀비지만
가슴 뛰는 순왕과 만아순왕이 좋아져 입이 귀에 걸리고 턱이 빠질 지경으로 맑은 눈동자가 행복으로 일렁이며, “마음에 듭니다. 마음에 들어요.”“마음에 든다는 건 만아에게 일찍부터 마음이 있었다는 말씀이죠?” 원경릉이 일부러 물었다.순왕도 수줍어하지 않고 형수 앞에서 대놓고, “최근 아침 저녁으로 마주하면서 만아 같이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을 수 있다면 제 평생 영광일 거라고,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병풍 뒤에서 만아가 이 얘기를 듣고 가슴이 쿵쾅쿵쾅, 얼굴은 노을 빛으로 물들고 기쁨으로 가슴이 벌렁거렸다.원경릉은 기쁘면서도 탄식이 나왔다. 만아가 자신을 따른 요 몇년간 정말 동생 같았는데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은 정말정말 기쁘지만 혼례를 치르고 남강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니 감상적이 되고 만다.원경릉이 부드럽게, “만아야 나와!”순왕이 놀라서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다가 만아가 부끄러워하며 병풍 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방금 자기의 경망스런 말이 떠올라 엄청 곤혹스러워 하며, “여……여기 있었어?”만아가 몰래 순왕을 흘끔 보고 나니 가슴이 계속 쿵쿵 난리가 났는데 붉어진 얼굴로 순왕과 같이 원경릉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소매를 쥐어짜며, “저 계속 여기 있었어요.”순왕이 만아 얼굴이 빨개진 게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지라 가슴이 막 웅장해짐과 동시에 조심스럽게, “그럼 만아는……나한테 시집올 거야?”만아 얼굴이 더 빨개지더니 옷깃 사이로 살짝 보이는 목까지 물든 채 고개를 숙이고 찰랑거리는 속눈썹과 빛나는 눈동자, 입술을 작게 떨며 모기만한 소리로, “전……전 물론 원해요.”순왕이 이 말을 듣고 눈에서 사랑의 불똥이 튀더니 만아 손을 꽉 쥐는데 만아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손을 빼지 않고 괜히 얼굴을 돌리는데 얼굴이 어떻게 더 빨개질 수 있나 할 만큼 빨갛다.원경릉은 오늘 이 자리에서 둘이 ‘꽁냥거릴’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둘이 수줍어했다가 흥분했다가 하는 모습이 풋풋한 게 ‘좋을 때다.’ 원경릉과 우문호는 진작
둘 만의 디너원경릉은 이렇게 자신을 위로했지만 마음 속으로 저들의 결혼 생활이 더이상 번잡한 일이나 사나운 격랑에 휘말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두 사람의 세계를 살 수 있기를, 조금 더 낭만적이기를. 이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이런 생각을 하다가 우문호가 오늘 저녁에 일찍 들어올 수 있는지 서일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우문호가 오늘밤은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해서 원경릉은 정성을 다해 캔들 디너를 준비했다. 그리고 독수리 오형제를 유모들과 희상궁에게 쫓아 보낸 뒤, 자기는 현대에서 몰래 숨겨서 가져온 와인 한 병을 미리 따서 디캔팅 해 두었다. 원경릉은 잘 못 마시지만 한 입 맛볼 수 있고 우문호는 술을 마시면 꽤 재밌어지는게 원경릉에게 찰싹 붙어서 사랑을 속삭인다.‘에휴, 오래된 부부는 고작 이런 희망밖에 없다니까.’오늘 밤 초왕부 사람은 전부 태자비가 태자와 둘 만의 세계를 원한다는 걸 알고 우리 떡들조차 감이 왔는지 귀찮게 굴지 않았다. 비록 우리 떡들은 캔들 디너를 너무 먹고 싶었지만 엄마가 오늘 밤 따라 무섭고 자기들은 오면 안된다고 했으니 그럼 안되는 거다.원경릉이 준비를 마친 뒤 직접 나가서 매화 가지 하나를 잘라와 옥으로 된 꽃병에 꽂자 온 방에 향이 피어났다.유시(오후5시~7시) 끝 무렵 하늘이 벌써 어둑어둑한데 우문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전에는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다고 하면 유시에는 오곤 했는데 이제 유시에서 술시로 넘어가려 는데 아직 기척도 없다.음식이 다 식었지만 다행히 방에 난로를 피워서 나중에 좀더 구우면 나름 별미다.와인도 다 깬 상태인데 우문호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 맛이 없어질 까봐 일단 봉해 두었다.술시(오후 7시~9시)까지 기다렸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자 원경릉이 배가 고파서 가만 있기 힘든데 막 사람을 보내 물어보려는 찰나 서일이 우문호를 부축하고 들어왔다. 우문호는 술냄새를 확 풍기며 이미 곤드레만드레 취했다.원경릉이 화가 치밀었으나 취한 인간을 부축하는 걸 돕고 서일에게, “돌아와서 저녁
술이 깨다.오늘 본 만아와 순왕의 알콩달콩이 부러운 것도 옛날. 이젠 그런 마음도 없다. 우문호도 원경릉을 마음속의 최고라고 여기고 있으면 됐으니까.술 깨는 약이 다 돼서 원경릉은 우문호를 일으켜, “자, 쭉 마셔.”초왕부 특제 술 깨는 약은 전부 할머니가 조제하신 것으로, 술을 깨고 간과 위를 보호하는 데 특히 간을 보호하는데 역점을 뒀다. 사위가 요즘 업무가 많아서 늦게 자고 간이 상한 상태라 집에서 그때그때 처방을 내려 준비하고 있었다.우문호는 술에 취해 괴롭다. 진작부터 속이 안 좋고 정신이 몽롱했지만 약 마시라는 얘기에 억지로 눈을 떠 원경릉 손을 잡고 단숨에 꿀떡꿀떡 마셨다.약이 따듯해서 마시자, 위가 편안해지고 정신도 약간 들었다. 기라가 한 잔 더 준비했다면서 더 마실 건지 물어보고 그렇다고 하자 또 가지고 왔다.약을 마시고 반 시진쯤 지날 동안 두세 번 화장실을 다녀오며 술기운을 없애고 나니 상당히 정신이 맑아졌다.방에 자신을 위해 준비된 요리를 보고 미안한 마음에 원경릉의 손을 잡고, “미안해, 돌아와서 같이 밥 먹겠다고 했는데 거짓말이 돼 버렸어.”원경릉이 뜨거운 물로 다시 이마가 반질반질해지게 닦아주자, 술기운이 거의 사라졌다. 약간 남아있던 숙취가 가시자, 정신이 맑아지며 다 큰 아이를 돌보느라 바쁜 엄마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경릉을 안아 앞에 앉히더니, “원 선생.”기라가 부끄러워하며 급히 도망갔다.원경릉이 우문호의 이마를 주물러주며 함박웃음을 짓는데, “좀 좋아졌어?”우문호가 원경릉의 이마에 입 맞추고 술기운이 확 꺾인 상태로, “많이 편해졌어. 할머니 술 깨는 약은 정말 효과가 대단한데.”“잘 됐다. 한 잔 더 할래?” 우문호가 고개를 흔들고, “아니, 그보다 밥도 못 먹고 빈속에 술만 마셨더니 배가 좀 고프네.”우문호는 원경릉을 내려놓고 식탁에 가서 앉더니 놀라면서도 기뻐하며, “맛있는 게 이렇게 많아? 당신은 먹었어?”“안 먹었지, 자기 기다렸다고!” 원경릉이 앉아서 조금 아쉬워하며, “다
혼수뜨겁게 구워진 닭 다리를 가져와서 먹으며 우문호가, “큰 방향은 이미 있어. 이번에 뽑은 사람들은 진취적이고 기존의 나이 든 신하들은 보수적이거든. 즉 진보와 보수가 대치하는 상황이지. 이번에 남강에 대해 상의할 때, 진보 쪽 몇몇이 남강에 우리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지 않으니 어느 정도 병력을 주둔시켜야 한다는 거야. 반면에 위태부를 위시한 보수파에서는 지금 병사를 이끌고 남강에 들어가면 오히려 마찰만 일으킬 것으로, 남강 남쪽 사람들조차 조정을 믿지 못하게 될 거라며 갑론을박이 계속됐지.”“그럼, 진보 쪽은 병마를 얼마나 보내기를 원하는데?“반드시 얼마를 파견해야 하는 건 아니야. 나도 사실 사람을 좀 보낼지 하는 생각이 있어. 당연히 남강을 두렵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아홉째가 그쪽에서 기댈 구석이 있도록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정말 고립무원이잖아.”“그래서 자기는 진보파를 지지한다?”우문호가 원경릉에게 고기를 구워 주며, “그들을 지지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위태부의 생각도 일리가 있거든. 이 시기에 파병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어. 백성들이 병마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일단 오해가 생기는 날엔 남강 북쪽 사람들이 쉽게 조정에 반감을 유도할 수 있으니까.”“자기가 일부 병력을 파견해서 아홉째를 지원하고 싶다면 천명이면 충분하겠지?”“응, 내 생각도 천명 정도야.”“그럼, 천 명을 뽑아서 혼수로 보내면 되겠네.”“혼수?” 우문호가 당황했다.원경릉이 시원시원하게, “맞아, 혼사는 적귀비 마마께서 준비해서 진행하기로 오늘 성지가 내려왔어. 원래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로 친정에서 몸종과 하인을 데려가잖아? 순왕은 남강으로 장가드는 거니까 혼수로 집안 병사와 하인 천여 명 데려가는 건 별로 과하지 않지.”우문호가 이마를 치며 기뻐하더니, “맞아, 혼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원 선생. 역시 당신은 머리가 좋다니까.”원경릉을 안고 입 맞추는데 기름이 번들번들한 입술이 원경릉의 희고 부드러운 얼굴에 닿자 얼른 밀쳤다. 고민이 깨끗하게
남강왕의 혼인 준비혼사가 4월 초로 정해졌고, 이는 안 왕비의 출산 예정일과 상당히 가까웠다.적 귀비 역시 ‘금수저’라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동원해 혼사가 번듯하게 치러지도록 애썼다.순왕도 사리에 밝아서 혼례에 관한 모든 것은 전부 귀비의 뜻을 따르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귀비에게 물어보곤 했다.적 귀비는 한창 잘나가고 있는 순왕이 이렇게 겸손할 줄 생각 못 했으나, 매사에 자신을 존중하는 것을 보고 순왕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따라서 순왕과 얘기할 때도 태도가 상당히 온화해졌다. 처음에 순왕의 혼례를 주관하겠다고 한 건 공을 세워 총애를 차지하려는 것으로 진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순왕을 위해 매사 직접 나서서 챙겼다.만아는 초왕부에서 시집을 가는 것이니, 예전에 서일이 혼인하던 때와 같았다. 만아가 시집가는 만큼 초왕부도 상당히 힘을 들여야 했고, 원경릉은 혼수를 장만해 주고 혼례복을 만들어줘야 했다.만아의 혼례복은 기 상궁과 희 상궁 두 사람이 직접 짓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희 상궁이 궁에서 몇 명 상궁을 불러 4월이 오기 전에 완성할 목표로 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혼례복을 전담하는 동안 나머지 일은 원경릉과 사식이가 주관했다. 다행히 동서들이 한가하고 특히 미색은 떠들썩한 걸 좋아해서 만아가 시집을 가는데 심지어 동서가 된다며 아예 초왕부에 눌러앉아 각종 준비를 하는데 초왕부 전체에 돈바람을 몰고 다녔다.미색은 일 처리가 깔끔한 것이 전부 돈으로 해결해서 뭐가 되든 최고였다. 마련한 혼수 대부분은 귀중품들로 원경릉이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침대까지 새로 만들어 침대를 지고 시집가게 했을 것이다.금과 옥으로 만든 진귀한 것들은 조정에서도 내려 주셨다. 만아를 남강왕으로 책봉했으니 입 씻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우문호는 지금 남강 경제가 심하게 낙후해서 10년 전 남강 왕이 있을 때와 한참 거리가 있고, 최근 유랑민들이 그쪽으로 흘러 들어가 약탈을 일삼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강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
“그렇다면 아버지 말씀을 잘 듣거라. 네 양아버지께서는 아바마마처럼 늘 칭찬하고 좋은 말만 해주시지 않느냐? 집안에서 누군가는 엄격하고 누군가는 따뜻한 법이다. 애정 어린 따스함을 즐겨도 되지만, 엄격한 가르침 또한 잘 따라야 한다.”하지만 냉명여는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말했다.“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여, 나중에 꼭 누나를 도와드리러 오겠습니다.”택란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좋다. 그럼, 너를 기다리마!”냉명여는 뜨거워진 자신의 얼굴이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못내 편안하게 느껴졌다.다른 한편, 탕 대인과 일곱째 아가씨도 약도성에 도착해, 약도성의 관저는 순식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호명은 이제 조정의 명을 받고 약도성의 관리로 임명되었는데, 조정에서 약도성을 시찰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약도성에서 장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의부인 탕양과 일곱째 아가씨를 극진히 모셨다.일곱째 아가씨는 재력이 뛰어나니, 그녀가 약도성에서 장사를 시작한다면, 도성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독산이요?”이때, 그녀가 갑자기 독산에 관심을 보이자, 호명이 멈칫했다.“독산은 굉장히 위험한 곳입니다. 이곳 백성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리지요. 안에 미혼진이 있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탕 대인이 말했다.“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틀 후, 우리는 독산에 따로 갈 계획이다. 그러니 그 전에 일곱째 아가씨를 잘 모시고, 도성 곳곳과 약도성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아가씨가 독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50만 냥을 투자할 것이고, 그중 30만 냥은 약도성의 길을 만들고 발전을 위해 쓰이게 할 것이다.”그러자 호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30만 냥이라니요! 정말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많은 길이 끊기고, 집들이 무너졌습니다. 인근 주부에서 도움을 주고, 조정에서도 예산을 지원해 주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
택란은 금나라 어린 황제의 의도를 들은 후 화들짝 놀랐다. 그는 택란이 금나라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시신을 찾을 수 없으니, 그녀의 가족에게 묘를 만들게 시켜 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전하러 왔던 것이었다.또한, 택란은 어린 황제가 정말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꽤 의외였다. 게다가 충직하게 그녀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길을 잃은 원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려 했으니 말이다.“그가 실망하겠소. 이 도성에 다섯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딸 이름이 택란인 자는 없을 테니.”그러자 주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정말 찾았지 뭡니까? 서자림 근처 마을에 다섯째라 불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마침 집안에 란이라는 딸아이가 6개월 전부터 종적을 감추었지요. 게다가 다섯째라는 사람은 지진으로 두 다리를 잃은 상태였고, 집안에 란이의 언니도 있어서 금나라 어린 황제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데려갔다고 합니다.”“정말 그런 우연이 있단 말이오?”택란이 놀라며 말했다.“예. 그 다섯째 사람도 딸이 죽은 줄 알고 슬피 울면서 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후에 딸과 함께 황제의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택란이 피식 웃었다. 정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다만 그의 딸의 이름은 란이인데, 그녀는 금나라 어린 황제에게 자신의 이름이 택란이라고 했다.한 글자 차이로 생긴 오해였다. 어쨌든 금나라 어린 황제가 은혜를 갚기 위해 한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어린 황제가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금나라에 무슨 변화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해가 바뀌며 어린 황제도 이제 14살이 되었기에, 만약 조정 대신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권력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었다.그와의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택란은 그가 권력을 되찾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권력을 잡으면 약도성에도 좋은 일일 것이기에, 만약 실현이 된다면, 택란은 금나라에 가서 두 나라 간 자원 채굴을 논의할 계획이었다.한편, 서일이 떠난 지
택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마도 아닐 것이오. 아마 금나라 어린 황제가 보낸 사람일 것이오.”“그가 어찌 마마를 찾는 것입니까?”주 아가씨는 몹시 놀랐다. 금나라는 늘 진국왕이 주도하고 있어, 그 어린 황제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모르겠소.”그 어린 황제가 왜 갑자기 자신을 찾는 것인지 택란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 알아본 바로는 자기가 죽은 줄 알고, 어빙술을 사용해 진국왕을 공격했다고 했기에, 택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들이 다섯째를 어찌 찾는 것인지 알아보시오.”“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내 알아보겠습니다. 이제 막 돌아오셨으니, 먼저 들어가서 쉬시지요. 오시느라 고되었을 것입니다.”주 아가씨는 밖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힐끗 보더니 바로 알아차리곤 말했다.“저분이 바로 서 대인입니까? 그가 마마를 호위한 것입니까?”“맞소. 서일 삼촌이네. 거처를 마련하여 머물게 해주시게.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누군가가 나를 찾아다닌다는 사실을 모르게 해야 하오. 이틀 후, 이곳을 떠나게 할 것이오.”서일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가 금나라 어린 황제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북당 전체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금나라의 어린 황제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이를 알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되었다.주 아가씨가 호명에게 가서 서일을 잘 안배하라는 공주의 명을 전하자, 호명이 웃으며 말했다.“서 대인께서 오셨군요. 제가 술을 준비하여 잘 대접해야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제게 맡기십시오.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을 보내 약도성에서 가장 좋은 술을 사 오게 하고는, 일단 서일을 취하게 하기로 계획했다.서일은 오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강북부에 도착해 황자들과 헤어지자마자 특별히 택란을 약도성까지 데려다주었다. 택란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약도성의 상황을 살폈다.처음에 그는 거처에 정착한
우문호는 즉시 얼굴에 기쁨을 띠며 종이를 구겼다.“뭘 가져왔는가? 한 잔 마시겠네. 지금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네!”목여 태감이 바로 들어와 차를 올리며 말했다.“어의가 처방한 화기와 열을 내려주는 약입니다. 약간 달면서도 쓴맛이 나는데, 등심초와 하기초, 그리고 연심을 조금 넣어, 열을 내리기에 제일 맞을 겁니다. 폐하께서 쓴맛을 싫어하실까 봐 꿀대추도 하나 넣었습니다!”그는 약을 탁자 위에 놓고 부채를 찾아 부쳐주려 했지만, 우문호는 이미 손으로 약그릇을 들어 가까이 가져가 불며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날씨가 조금 추운 탓에 약이 미지근한 상태로 전달되어, 몇 번 불어 마시기에 딱 적당했다.그는 약을 단번에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은 후, 목여 태감을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자네가 세심하군. 앞으로 짐의 기거와 음식은 자네가 더 신경 쓰게.”“이것은 소신의 본분입니다!”목여 태감은 다소 감격하며 말했다.“자네는 짐이 원로 신하들과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모르네. 앞으로 자네가 옆에 있으면서 짐을 도와 몇 마디 해주시게. 도통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니.”목여 태감이 안쓰럽게 말했다.“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폐하가 계신 곳에는 항상 제가 함께하며 결코 폐하 홀로 싸우지 않게 하겠습니다.”우문호의 침울했던 눈빛이 갑자기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 선생이 언제나 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었기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늘 그의 삶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우문호 부모님의 생신도 잊지 않았고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돌보며 곁을 함께 했다. 그와 동시에 원경릉은 자기 일도 바쁘게 처리하고 있었다.가끔 피곤하다고 느낄 때 그녀를 떠올리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곤 했다.“폐하? 지금 황후마마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까?”목여 태감은 바로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조금 있으니, 소월궁으로 돌아가 황후마마와 함께 식사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좋네. 어서 돌아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