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부인에게 무슨 일이?저녁때 미색은 먼저 회왕부로 돌아갔지만, 요부인은 가고 싶지 않다며 원경릉의 초왕부에서 하룻밤 머물고 싶다고 했다.자기 쪽에서 남아서 하룻밤 묵겠다고 한 건 전에 없던 일로 원경릉이 요부인에게, “왜 그래요?”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불평하며, “왜라뇨? 여기 하룻밤 묵는 것도 이유를 얘기해야 해요? 반기지 않는 건가요?”원경릉이 웃으며, “반기죠. 하지만 강아지는 걱정 안 돼요?”요즘 강아지 바보가 되신 요부인은 입버릇처럼 강아지와 서로 의지하며 살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밤새 밥도 안 주고 괜찮을까?하지만 요부인이, “오늘 올 때 데리고 와서 지금 마당에 있어요. 기라에게 나 대신 봐주라고 했으니 벌써 밥 먹었겠네.”원경릉이 이를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 “같이 왔다는 건, 이미 오늘 올 때부터 여기서 하룻밤 잘 생각했다는 말인가요?”“어쩌면……”요부인이 싱글싱글 웃으며, “사흘을 묵을지 일주일을 묵을지 만아의 혼사를 치르고 갈 건지도 아직 안 정했는데요.”“무슨 일 생겼어요?” 원경릉이 더욱 확신하는 눈빛으로 요부인을 뚫어지게 보며, “우문군이나 주명양이 또 찾아온 거예요?”임소와 주명양이 찾아온 뒤로 요부인은 그나마 안정적이었지만, 구정민 쪽은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격으로 둘째 부인이 아주 노발대발 난리가 났었다. 주명양은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만사를 귀찮아하고 혼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양쪽을 막 대했다.요부인이 고개를 흔들며 별다른 표정 없이, “그냥 와서 며칠 묵는 건데 반기지 않는다면 친정으로 가죠.”말을 마치고 일어났다.원경릉이 얼른 잡으며, “알았어요, 안 물을게요. 묵고 싶은 만큼 묵어요. 요부인은 진짜 말릴 수가 없다니까. 요부인이 굳이 하고 싶지 않은 말은, 제가 입을 비틀어 열어도 한마디도 안 하시죠. 됐다 싶을 만큼 묵어요. 됐죠?”요부인이 농담으로, “좋아요, 평생 묵어야겠네.”“바라는 바죠!” 원경릉이 뾰로통하게 말하는데 요부인이 여전히 웃는 것을 보니, 뭔가 엄청난 위기는 아닌 것
희성이의 실수“엄밀히 따진다면 요부인이 약간 수모를 당한 건 맞죠. 임소에게 따귀를 맞았으니까! 제가 좀 늦게 왔거든요.” 훼천이 말했다.“그 쓰레기 같은 녀석, 가만 안 둬.” 미색이 이를 갈았다.훼천이 기와 수리를 마치고 경공으로 내려와서 하는 김에 나무 문까지 고쳐 놓았다.훼천이 수리에 매진하는 모습을 본 미색이가 말했다.“그래, 별일 없었으니 뭐, 문득 외로워져서 초왕부의 흥겨움에 끌린 걸지도. 어쨌든 혼자 오랫동안 지냈으니까.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딨어?”“저도 혼자 삽니다!” 훼천이 담담하게 말했다.“넌 정상이 아니잖아!” 미색이 말을 마치고 떠났다.그날 임소와 주명양이 진짜 요부인을 괴롭히진 못했다는 말에 원경릉이 그제야 안심했다. 원경릉은 요부인에게 묻거나 따지지 않고 겸사겸사 사람을 시켜 희성이를 데려와 같이 있게 했다.희성이는 원래 요부인과 한동안 살았던 적이 있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더러 엄마를 넘보지 못하게 하는 거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답답했는지 외할머니댁으로 가게 되었다. 가기 전에 희성이가 제일 헤어지기 아쉬워한 건 요부인이 아니라 뜻밖에도 훼천이었다.왜냐면 훼천은 하늘을 날 줄 알았고, 희성이가 직접 훼천이 지붕이나 나무 꼭대기에 날아오르는 걸 보고 자기도 데리고 한 바퀴 날아 달라고 했다. 그러자 훼천은 하늘로 날아 희성이에게 꽃 한 송이를 따 주었다.그래서 희성이가 초왕부에 온 뒤 요부인에게 말했다.“엄마, 시간 나면 우리 훼천 아저씨 보러 가요.”요부인이 얼굴이 살짝 굳어지며 대답했다. “뭐 하게?”“보고 싶었거든요. 절 데리고 날아올라 줬으면 좋겠어요.” 희성이가 웃으며 말했다.“다섯째 작은아버지께 널 데리고 날아 달라고 해, 다섯째 작은아버지도 경공하실 줄 아니까.”“다섯째 작은아버지랑 훼천 아저씨 경공은 차이가 엄청나요.”그건 사실이었다. 우문호는 무공이 뛰어나지만, 훼천은 경공이 압권이다. 천하에서 독보적인 존재라고 하기엔 다소 과장일 수 있겠지만, 무림으로 따져봤을 때 경공으로 훼
똥줄 타는 둘째 부인요부인이 자기 생각에도 일을 크게 만들었는지라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있다가 희성이한테 얘기할게요.”“여기서 잔다고 할 때부터 낌새가 이상했어요. 희성이를 오라고 했더니 바로 애를 울리고 평소 부인답지 않았아요.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죠? 나한테 말해줄 수 없어요?”요부인이 씁쓸한 눈으로 말했다. “없어요, 그냥 이름 모를 초조함이라 잘 다스리면 괜찮아요. 미안해요, 귀찮게 해서.”요부인이 여전히 말하고 싶지 않아 하자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헸다. “서먹서먹하네요.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하지만 가서 희성이 잘 달래 줘요. 어렵사리 엄마를 만난 건데 따스한 엄마 정을 느끼게 해주기는커녕 오자마자 원칙을 따져서 혼을 내다니 제 기분이 상해요.”말을 마치고 원경릉도 요부인을 신경 쓰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요부인이 고뇌하더니 잠시 후 따라 나와 희성이를 달랬다.만아의 혼례를 치를 동안 주명양과 임소 두 사람은 계속 왕래했다. 임소가 손 전무에게서 은자를 받아 주지 못했지만 주명양을 위해 이자를 지불해 주었다.둘째 부인은 원래 돈을 돌려받으려 했으나 밖에 유언비어가 나돈 일로 은자를 생각할 겨를이 없고 오직 온 힘을 다해 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자 했다. 이미 신고를 했지만, 관아에서 찾는 건 차일피일 미뤄져 마음이 급해 견딜 수가 없었다.냉씨 집안도 정식으로 거절해왔다. 심지어 냉부인이 직접 들러 예물을 주고 바깥에 도는 유언비어 때문이 아니라 냉정언이 아직 혼인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2년 동안 혼인 의사가 없다고 했다.둘째 부인은 당연히 핑계라는 걸 알았지만 당장 어떻게 강요할 수가 있어? 냉부인이 직접 이렇게 온 것만으로도 체면을 세워 준 것인 데다 구씨 가문을 위해 앞으로 2년 내 냉정언이 혼인하지 않겠다고 해준 것이다. 구정민의 혼담을 거절한 뒤 다른 집에 혼담을 넣으면 사람들이 바로 구정민의 명성이 이렇게 돼서 거절당했다고 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둘째 부인은 초조한데 진
돈놀이를 들키다.우문군은 주명양이 체면 차리는 인간이란 걸 안다. 만약 친구에게 가는 거면 분명 시녀를 데리고 갈 텐데 왜 자기 혼자 간 거지?시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쇤네는 모릅니다.”우문군은 최근 저녁 일을 떠올리고 주명양이 본체만체해도 새 옷을 장만해서 기분이 전보다 좋아졌다고만 생각했다. 찍어 바르고 꾸미는 걸 좋아하니까.우문군은 순간 의심이 일었다.주명양은 전과가 있다. 이 여자는 분수를 모르고 이상만 추구한다. 허영심에 사치와 향락을 즐긴다. 다시 상류사회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지은 죄가 있으니, 말은 못 해도 얼굴에 불만이 고스란히 보였다.‘설마 또 남자와 그렇고 그런 건 아니겠지?’둘째 부인은 애간장이 타서 돈을 빌려준 주인장이 우문군이 소개해 준 사람이란 걸 생각해내고 급히 말했다.“첫째 황자 전하, 비록 이 일은 전하께 물어서는 안 되지만 명양이를 찾을 수 없으니 일단 전하게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명양이가 제 은자를 빌려 갔는데 3~5일 안에 갚겠다더니 그러고도 한참을 지났는데 아직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대신 그 주인장에게 물어봐 주실 수 있는지요, 도대체 언제 은자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겁니까?”“무슨 은자를 말인가?” 우문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둘째 부인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이어갔다.“은자에 대해 모르셨습니까? 명양이가 제 돈 수십만 냥을 이자를 받고 돈놀이했는데 돈을 빌려 간 자가 첫째 황자 전하께서 소개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강남의 거부로 손 주인장이라고.”“수십만 냥?” 우문군이 화들짝 놀라 펄쩍 뛰었다.“예, 삼십만 냥입니다!” 둘째 부인 목소리가 약간 변하면서 열변했다. “이 일을 모르셨습니까? 전하께서는 손주인장을 모르시는군요?”우문군은 주명양이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 ‘수십만 냥으로 돈놀이를 했으면 한 달에 이자를 얼마나 받아 처먹은 거야? 그렇게 돈을 많이 벌고 있으면서 잘도 날 속였겠다.’“손 주인장은 내가 알고 있지!
자객에게 당한 우문군한밤중에 우문호가 비몽사몽 중에 깼는데 탕양이 서둘러 들어오며 말했다. “전하, 어서 일어나세요, 제왕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 첫째 황자 전하께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우문호가 휘장을 젖히고 잠이 덜 깬 상태로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사고가 나다니? 무슨 사고?”“중상을 입으셨는데 밤에 굳이 달려와 경조부에 보고한 게 버티기 힘드시다고 합니다, 제왕 전하께서 이미 가셨고 사람을 보내 전하께 알리신 겁니다.”원경릉이 중상이란 얘기를 듣고 같이 일어나 외쳤다. “나도 같이 가지.”두 사람이 의관을 정제하고 나오자 서일도 밖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출발했다.원경릉은 약상자를 준비하고 우문호의 손을 잡았다.방금 탕양이 말한 무서운 한 마디는 바로 견디기 힘들다는 것으로, 원경릉은 우문호가 순간 황망해하는 것을 보았다. 우문군이 악한 짓을 하고 수많은 사달을 일으켜 몇 번이고 우문호를 죽이려 했다. 특히 처음 칼부림을 했을 때는 하마터면 우문호가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 우문군은 백 번 죽어도 마땅하다. 하지만 어쨌든 형제가 아닌가, 우문호는 마음속으로 아무리 미워해도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데 아무 느낌이 없을 수 없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마주 꼭 잡더니 위로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괜찮아.”마차는 어둠을 몰아내며 서일이가 직접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 반 시진이 되지 않아 우문군의 집에 도착했다.집안은 등이 밝혀져 있고 제왕과 경조부 사람이 와있는데 심지어 제왕의 말은 묶여 있지도 않고 밖에 돌아다녀서 서일이가 나무에 묶어주고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경조부의 검시관이 따라 들어왔는데 한밤중에 신고가 들어와 순간 상황파악을 못 하고 경조부 포도대장이 검시관을 찾아간 것이었다. 다행히 검시관이 의술을 알아 오자마자 신속하게 구급 조치를 취하고 제왕도 사람을 보내 의원을 청했다. 하지만 이때 아직 의원이 도착하지 않아 원경릉이 먼저 온 것이었다.셋이 안으로 들어가자, 제왕이 오더니 얼굴이 새하얘져서 외마디 비
쾌검우문호가 직접 검상을 보니 상처에 칼을 그대로 넣었다 뺀 것으로, 반항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상처는 절대로 주명양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명양이 어설픈 무공을 조금 한다고 하지만 우문군을 죽이는 건 쉽지 않은 게 내공이 심후하지 않은 사람이 검을 쓰면 호흡이 요동칠 수 있어 발각될 가능성이 크고 발각되지 않았다고 해도 검이 들어간 후 우문군이 놀라서 깨나면 검을 뽑지 못해 상처가 비스듬하게 생긴다.그러나 이 범인은 쾌검을 사용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내공이 심후해 내공으로 검을 더욱 빠르게 움직여 알아채기 쉽지 않았다.즉 검이 들어가서 나오는 고통이 느껴지기도 전에 범인은 이미 도망쳤을 가능성이 클 정도로 검법이 놀랍도록 빠르다.우문호가 시동에게 물었다.“낮에 누가 왔었나?”“구씨 가문의 둘째 부인께서 오셨는데 역시 은자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첫째 황자 전하께서 부인께 은자를 돌려주실 거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둘째 부인께서는 바로 가셨고요.”우문군 부부가 싸운 원인은 돈놀이했던 은자인 것이 틀림없고, 둘째 부인이 오늘 와서 돈놀이한 게 들통나자, 우무군이 격노해서 주명양과 싸웠다. 하지만 주명양이 나갈 때 우문군은 아직 멀쩡했다. 즉 주명양이 간 뒤에 범인이 온 것이다.‘임소인가?’우문호는 즉시 부정했다. 임소는 계속 귀영위가 감시하고 있었는데 임소가 와서 살인을 저질렀다면 귀영위가 반드시 알렸을 것이다.제왕이 사람을 데리고 자세히 조사하고 돌아와서 물었다.“형, 포도대장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범인은 쾌검을 쓰는 사람이라는데 이 상처는 어쩌다 생긴 것일 수도 있잖아요, 반드시 쾌검이어야 하나요?”“이 상처가 만약 다른 사람 몸에 있었으면 쾌검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우문군의 몸에 났기 때문에 쾌검에 의한 게 틀림없어. 우문군은 무공이 뛰어나고 내공도 상당히 심후해서 취해서 자는 중이이어도 검기를 감지할 수 있어. 막는 건 늦어도 상처에 넣은 칼을 뺄 때 움직여 상처가
둘째 부인과 주명양비록 주명양과 구씨 가문 둘째 부인에게 살인 혐의는 없지만 낮에 둘째 부인인 돈 문제로 찾아왔고 저녁에 주명양이 돈 때문에 우문군과 싸우다 몸싸움이 있었으므로 경조부는 양쪽 모두를 사정 청취하기로 했다.둘째 부인은 오늘 우문군에게 물어본 뒤 십중팔구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속은 좀 끓였지만, 이자를 괜찮게 번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그런데 한밤중에 경조부 사람이 와서 자신을 깨우더니 첫째 황자가 자객에게 당했다니 정신이 아득했다.첫째 황자에게 사고가 났으니 경조부에서도 밤중에 달려왔고 구 후작 나리도 오고 구씨 가문에 살고 있는 어른들도 하나둘 일어나 사정을 물었다.둘째 부인의 돈은 원래 비자금으로 그동안 사실 가문의 돈을 슬쩍 할 일이 적지 않았는데 몇 년전 구 후작 부인이 와병 중이라 둘째 부인에게 집안일을 맡긴 뒤, 몇 년간 적지 않은 은자를 슬쩍해 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혼자 힘으로 어떻게 수십만 냥을 모아?그래서 가문의 가장인 구 후작이 있고 장방에서 회계를 보는 자도 자리에 있으니, 둘째 부인은 감히 돈놀이 얘기는 입도 뻥긋 못하고 은자 몇천 냥을 주명양에게 빌려줬는데 오래도록 갚지 않아 집에 가서 독촉한 것으로 주명양이 없어서 첫째 황자 전하께 말씀드렸다고 했다.구 후작 부인이 이상하다고 느낀 게 둘째 부인을 잘 아는데, 성격이 소심하고 주명양 어머니에게 아부를 떨다가 죽고 나니 주명양이란 조카에게 진심으로 잘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주명양이 돈을 뜯으러 왔으면 진짜 체면상 열 냥쯤 줘서 쫓아 보냈지! 은자 수천 냥을 빌려준다는 건 불가능했다.단지 지금 경조부에서 와서 물으니 분명 더 이상 얘기하지 않을 것으로 이런 예의상의 사정 청취는 쫓아 보내면 그만이다.하지만 구사와 원경병은 생각이 있어서 경조부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뒤, 구사가 구 후작을 찾아가 이 일을 얘기했다. 구 후작이 듣고 격노하더니 작은 나리를 불러 둘째 부인 일을 깨끗하게 처리해 후작부가 연루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작은 나
다친 주명양과 우문군주명양이 주씨 가문으로 돌아오자, 빚 독촉을 하러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집사는 안으로 들여야 할지 어쩔지 주재상에게 보고하자 주재상이 말했다. “빚을 졌으면 갚는 게 천지의 도리지. 채주가 와서 빚을 달라고 하는데 어찌 문밖에 세워 둘 수 있나? 전부 안으로 들어와 첫째 황자비를 찾아가라고 해.”주 재상의 말에 빚쟁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삽시간에 집안이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빚쟁이여도 이 집에서 감히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주명양은 자기 몸이 다친 것을 핑계로 손 주인장을 찾아가 빚을 독촉하는 걸 잠시 유예하고 사람들에게 돌아가서 기다리거나 직접 손 주인장을 찾아가도 된다고 했다.하지만 그 돈은 전부 주명양의 손을 거쳐 빌려준 것이니 본인들이 손 주인장을 찾아가도 소용없다. 따라서 원래는 주명양에게 삿대질할 빚쟁이들이 기세등등하여 주명양을 오히려 보살처럼 떠받들며 다음날 보약을 들고 하루빨리 상처가 나아서 손 주인장에게 돈을 받아 와 주기를 바랐다.주명양이 며칠 상처를 돌보는데 주재상이 사람을 보내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냐고 했다.주명양은 당연히 주 씨 저택을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주재상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비구니가 될지언정 돌아가서 첫째 황자를 다시 모시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명양 말로는 첫째 황자와 이미 부부간의 애정이 식어 인연을 끊었다는 것이다.주재상은 억지로 보내지 않고 집에 머물라고 허락했는데 주명양은 울고불고 죽겠다고 해야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주명양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빚을 졌기 때문에 이렇게 친정에 눌러앉아 있는 동안 밖에 함부로 나갈 수 없었다.우문군이 지금 생사도 분명치 않은 상태인데 계측 기계가 없으므로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 원경릉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우문군 사건이 터진 다음날 우문호가 직접 입궐해서 명원제에게 보고하는데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었고 진비에게는 감추고 있었다.명원제가 보고를 듣고 별말 없이 심지어 슬픈 기색도 없는 게, 마치 자기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