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순왕과 만아순왕이 좋아져 입이 귀에 걸리고 턱이 빠질 지경으로 맑은 눈동자가 행복으로 일렁이며, “마음에 듭니다. 마음에 들어요.”“마음에 든다는 건 만아에게 일찍부터 마음이 있었다는 말씀이죠?” 원경릉이 일부러 물었다.순왕도 수줍어하지 않고 형수 앞에서 대놓고, “최근 아침 저녁으로 마주하면서 만아 같이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을 수 있다면 제 평생 영광일 거라고,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병풍 뒤에서 만아가 이 얘기를 듣고 가슴이 쿵쾅쿵쾅, 얼굴은 노을 빛으로 물들고 기쁨으로 가슴이 벌렁거렸다.원경릉은 기쁘면서도 탄식이 나왔다. 만아가 자신을 따른 요 몇년간 정말 동생 같았는데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은 정말정말 기쁘지만 혼례를 치르고 남강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니 감상적이 되고 만다.원경릉이 부드럽게, “만아야 나와!”순왕이 놀라서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다가 만아가 부끄러워하며 병풍 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방금 자기의 경망스런 말이 떠올라 엄청 곤혹스러워 하며, “여……여기 있었어?”만아가 몰래 순왕을 흘끔 보고 나니 가슴이 계속 쿵쿵 난리가 났는데 붉어진 얼굴로 순왕과 같이 원경릉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소매를 쥐어짜며, “저 계속 여기 있었어요.”순왕이 만아 얼굴이 빨개진 게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지라 가슴이 막 웅장해짐과 동시에 조심스럽게, “그럼 만아는……나한테 시집올 거야?”만아 얼굴이 더 빨개지더니 옷깃 사이로 살짝 보이는 목까지 물든 채 고개를 숙이고 찰랑거리는 속눈썹과 빛나는 눈동자, 입술을 작게 떨며 모기만한 소리로, “전……전 물론 원해요.”순왕이 이 말을 듣고 눈에서 사랑의 불똥이 튀더니 만아 손을 꽉 쥐는데 만아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손을 빼지 않고 괜히 얼굴을 돌리는데 얼굴이 어떻게 더 빨개질 수 있나 할 만큼 빨갛다.원경릉은 오늘 이 자리에서 둘이 ‘꽁냥거릴’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둘이 수줍어했다가 흥분했다가 하는 모습이 풋풋한 게 ‘좋을 때다.’ 원경릉과 우문호는 진작
둘 만의 디너원경릉은 이렇게 자신을 위로했지만 마음 속으로 저들의 결혼 생활이 더이상 번잡한 일이나 사나운 격랑에 휘말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두 사람의 세계를 살 수 있기를, 조금 더 낭만적이기를. 이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이런 생각을 하다가 우문호가 오늘 저녁에 일찍 들어올 수 있는지 서일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우문호가 오늘밤은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해서 원경릉은 정성을 다해 캔들 디너를 준비했다. 그리고 독수리 오형제를 유모들과 희상궁에게 쫓아 보낸 뒤, 자기는 현대에서 몰래 숨겨서 가져온 와인 한 병을 미리 따서 디캔팅 해 두었다. 원경릉은 잘 못 마시지만 한 입 맛볼 수 있고 우문호는 술을 마시면 꽤 재밌어지는게 원경릉에게 찰싹 붙어서 사랑을 속삭인다.‘에휴, 오래된 부부는 고작 이런 희망밖에 없다니까.’오늘 밤 초왕부 사람은 전부 태자비가 태자와 둘 만의 세계를 원한다는 걸 알고 우리 떡들조차 감이 왔는지 귀찮게 굴지 않았다. 비록 우리 떡들은 캔들 디너를 너무 먹고 싶었지만 엄마가 오늘 밤 따라 무섭고 자기들은 오면 안된다고 했으니 그럼 안되는 거다.원경릉이 준비를 마친 뒤 직접 나가서 매화 가지 하나를 잘라와 옥으로 된 꽃병에 꽂자 온 방에 향이 피어났다.유시(오후5시~7시) 끝 무렵 하늘이 벌써 어둑어둑한데 우문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전에는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다고 하면 유시에는 오곤 했는데 이제 유시에서 술시로 넘어가려 는데 아직 기척도 없다.음식이 다 식었지만 다행히 방에 난로를 피워서 나중에 좀더 구우면 나름 별미다.와인도 다 깬 상태인데 우문호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 맛이 없어질 까봐 일단 봉해 두었다.술시(오후 7시~9시)까지 기다렸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자 원경릉이 배가 고파서 가만 있기 힘든데 막 사람을 보내 물어보려는 찰나 서일이 우문호를 부축하고 들어왔다. 우문호는 술냄새를 확 풍기며 이미 곤드레만드레 취했다.원경릉이 화가 치밀었으나 취한 인간을 부축하는 걸 돕고 서일에게, “돌아와서 저녁
술이 깨다.오늘 본 만아와 순왕의 알콩달콩이 부러운 것도 옛날. 이젠 그런 마음도 없다. 우문호도 원경릉을 마음속의 최고라고 여기고 있으면 됐으니까.술 깨는 약이 다 돼서 원경릉은 우문호를 일으켜, “자, 쭉 마셔.”초왕부 특제 술 깨는 약은 전부 할머니가 조제하신 것으로, 술을 깨고 간과 위를 보호하는 데 특히 간을 보호하는데 역점을 뒀다. 사위가 요즘 업무가 많아서 늦게 자고 간이 상한 상태라 집에서 그때그때 처방을 내려 준비하고 있었다.우문호는 술에 취해 괴롭다. 진작부터 속이 안 좋고 정신이 몽롱했지만 약 마시라는 얘기에 억지로 눈을 떠 원경릉 손을 잡고 단숨에 꿀떡꿀떡 마셨다.약이 따듯해서 마시자, 위가 편안해지고 정신도 약간 들었다. 기라가 한 잔 더 준비했다면서 더 마실 건지 물어보고 그렇다고 하자 또 가지고 왔다.약을 마시고 반 시진쯤 지날 동안 두세 번 화장실을 다녀오며 술기운을 없애고 나니 상당히 정신이 맑아졌다.방에 자신을 위해 준비된 요리를 보고 미안한 마음에 원경릉의 손을 잡고, “미안해, 돌아와서 같이 밥 먹겠다고 했는데 거짓말이 돼 버렸어.”원경릉이 뜨거운 물로 다시 이마가 반질반질해지게 닦아주자, 술기운이 거의 사라졌다. 약간 남아있던 숙취가 가시자, 정신이 맑아지며 다 큰 아이를 돌보느라 바쁜 엄마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경릉을 안아 앞에 앉히더니, “원 선생.”기라가 부끄러워하며 급히 도망갔다.원경릉이 우문호의 이마를 주물러주며 함박웃음을 짓는데, “좀 좋아졌어?”우문호가 원경릉의 이마에 입 맞추고 술기운이 확 꺾인 상태로, “많이 편해졌어. 할머니 술 깨는 약은 정말 효과가 대단한데.”“잘 됐다. 한 잔 더 할래?” 우문호가 고개를 흔들고, “아니, 그보다 밥도 못 먹고 빈속에 술만 마셨더니 배가 좀 고프네.”우문호는 원경릉을 내려놓고 식탁에 가서 앉더니 놀라면서도 기뻐하며, “맛있는 게 이렇게 많아? 당신은 먹었어?”“안 먹었지, 자기 기다렸다고!” 원경릉이 앉아서 조금 아쉬워하며, “다
혼수뜨겁게 구워진 닭 다리를 가져와서 먹으며 우문호가, “큰 방향은 이미 있어. 이번에 뽑은 사람들은 진취적이고 기존의 나이 든 신하들은 보수적이거든. 즉 진보와 보수가 대치하는 상황이지. 이번에 남강에 대해 상의할 때, 진보 쪽 몇몇이 남강에 우리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지 않으니 어느 정도 병력을 주둔시켜야 한다는 거야. 반면에 위태부를 위시한 보수파에서는 지금 병사를 이끌고 남강에 들어가면 오히려 마찰만 일으킬 것으로, 남강 남쪽 사람들조차 조정을 믿지 못하게 될 거라며 갑론을박이 계속됐지.”“그럼, 진보 쪽은 병마를 얼마나 보내기를 원하는데?“반드시 얼마를 파견해야 하는 건 아니야. 나도 사실 사람을 좀 보낼지 하는 생각이 있어. 당연히 남강을 두렵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아홉째가 그쪽에서 기댈 구석이 있도록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정말 고립무원이잖아.”“그래서 자기는 진보파를 지지한다?”우문호가 원경릉에게 고기를 구워 주며, “그들을 지지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위태부의 생각도 일리가 있거든. 이 시기에 파병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어. 백성들이 병마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일단 오해가 생기는 날엔 남강 북쪽 사람들이 쉽게 조정에 반감을 유도할 수 있으니까.”“자기가 일부 병력을 파견해서 아홉째를 지원하고 싶다면 천명이면 충분하겠지?”“응, 내 생각도 천명 정도야.”“그럼, 천 명을 뽑아서 혼수로 보내면 되겠네.”“혼수?” 우문호가 당황했다.원경릉이 시원시원하게, “맞아, 혼사는 적귀비 마마께서 준비해서 진행하기로 오늘 성지가 내려왔어. 원래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로 친정에서 몸종과 하인을 데려가잖아? 순왕은 남강으로 장가드는 거니까 혼수로 집안 병사와 하인 천여 명 데려가는 건 별로 과하지 않지.”우문호가 이마를 치며 기뻐하더니, “맞아, 혼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원 선생. 역시 당신은 머리가 좋다니까.”원경릉을 안고 입 맞추는데 기름이 번들번들한 입술이 원경릉의 희고 부드러운 얼굴에 닿자 얼른 밀쳤다. 고민이 깨끗하게
남강왕의 혼인 준비혼사가 4월 초로 정해졌고, 이는 안 왕비의 출산 예정일과 상당히 가까웠다.적 귀비 역시 ‘금수저’라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동원해 혼사가 번듯하게 치러지도록 애썼다.순왕도 사리에 밝아서 혼례에 관한 모든 것은 전부 귀비의 뜻을 따르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귀비에게 물어보곤 했다.적 귀비는 한창 잘나가고 있는 순왕이 이렇게 겸손할 줄 생각 못 했으나, 매사에 자신을 존중하는 것을 보고 순왕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따라서 순왕과 얘기할 때도 태도가 상당히 온화해졌다. 처음에 순왕의 혼례를 주관하겠다고 한 건 공을 세워 총애를 차지하려는 것으로 진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순왕을 위해 매사 직접 나서서 챙겼다.만아는 초왕부에서 시집을 가는 것이니, 예전에 서일이 혼인하던 때와 같았다. 만아가 시집가는 만큼 초왕부도 상당히 힘을 들여야 했고, 원경릉은 혼수를 장만해 주고 혼례복을 만들어줘야 했다.만아의 혼례복은 기 상궁과 희 상궁 두 사람이 직접 짓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희 상궁이 궁에서 몇 명 상궁을 불러 4월이 오기 전에 완성할 목표로 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혼례복을 전담하는 동안 나머지 일은 원경릉과 사식이가 주관했다. 다행히 동서들이 한가하고 특히 미색은 떠들썩한 걸 좋아해서 만아가 시집을 가는데 심지어 동서가 된다며 아예 초왕부에 눌러앉아 각종 준비를 하는데 초왕부 전체에 돈바람을 몰고 다녔다.미색은 일 처리가 깔끔한 것이 전부 돈으로 해결해서 뭐가 되든 최고였다. 마련한 혼수 대부분은 귀중품들로 원경릉이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침대까지 새로 만들어 침대를 지고 시집가게 했을 것이다.금과 옥으로 만든 진귀한 것들은 조정에서도 내려 주셨다. 만아를 남강왕으로 책봉했으니 입 씻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우문호는 지금 남강 경제가 심하게 낙후해서 10년 전 남강 왕이 있을 때와 한참 거리가 있고, 최근 유랑민들이 그쪽으로 흘러 들어가 약탈을 일삼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강
요부인에게 무슨 일이?저녁때 미색은 먼저 회왕부로 돌아갔지만, 요부인은 가고 싶지 않다며 원경릉의 초왕부에서 하룻밤 머물고 싶다고 했다.자기 쪽에서 남아서 하룻밤 묵겠다고 한 건 전에 없던 일로 원경릉이 요부인에게, “왜 그래요?”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불평하며, “왜라뇨? 여기 하룻밤 묵는 것도 이유를 얘기해야 해요? 반기지 않는 건가요?”원경릉이 웃으며, “반기죠. 하지만 강아지는 걱정 안 돼요?”요즘 강아지 바보가 되신 요부인은 입버릇처럼 강아지와 서로 의지하며 살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밤새 밥도 안 주고 괜찮을까?하지만 요부인이, “오늘 올 때 데리고 와서 지금 마당에 있어요. 기라에게 나 대신 봐주라고 했으니 벌써 밥 먹었겠네.”원경릉이 이를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 “같이 왔다는 건, 이미 오늘 올 때부터 여기서 하룻밤 잘 생각했다는 말인가요?”“어쩌면……”요부인이 싱글싱글 웃으며, “사흘을 묵을지 일주일을 묵을지 만아의 혼사를 치르고 갈 건지도 아직 안 정했는데요.”“무슨 일 생겼어요?” 원경릉이 더욱 확신하는 눈빛으로 요부인을 뚫어지게 보며, “우문군이나 주명양이 또 찾아온 거예요?”임소와 주명양이 찾아온 뒤로 요부인은 그나마 안정적이었지만, 구정민 쪽은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격으로 둘째 부인이 아주 노발대발 난리가 났었다. 주명양은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만사를 귀찮아하고 혼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양쪽을 막 대했다.요부인이 고개를 흔들며 별다른 표정 없이, “그냥 와서 며칠 묵는 건데 반기지 않는다면 친정으로 가죠.”말을 마치고 일어났다.원경릉이 얼른 잡으며, “알았어요, 안 물을게요. 묵고 싶은 만큼 묵어요. 요부인은 진짜 말릴 수가 없다니까. 요부인이 굳이 하고 싶지 않은 말은, 제가 입을 비틀어 열어도 한마디도 안 하시죠. 됐다 싶을 만큼 묵어요. 됐죠?”요부인이 농담으로, “좋아요, 평생 묵어야겠네.”“바라는 바죠!” 원경릉이 뾰로통하게 말하는데 요부인이 여전히 웃는 것을 보니, 뭔가 엄청난 위기는 아닌 것
희성이의 실수“엄밀히 따진다면 요부인이 약간 수모를 당한 건 맞죠. 임소에게 따귀를 맞았으니까! 제가 좀 늦게 왔거든요.” 훼천이 말했다.“그 쓰레기 같은 녀석, 가만 안 둬.” 미색이 이를 갈았다.훼천이 기와 수리를 마치고 경공으로 내려와서 하는 김에 나무 문까지 고쳐 놓았다.훼천이 수리에 매진하는 모습을 본 미색이가 말했다.“그래, 별일 없었으니 뭐, 문득 외로워져서 초왕부의 흥겨움에 끌린 걸지도. 어쨌든 혼자 오랫동안 지냈으니까.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딨어?”“저도 혼자 삽니다!” 훼천이 담담하게 말했다.“넌 정상이 아니잖아!” 미색이 말을 마치고 떠났다.그날 임소와 주명양이 진짜 요부인을 괴롭히진 못했다는 말에 원경릉이 그제야 안심했다. 원경릉은 요부인에게 묻거나 따지지 않고 겸사겸사 사람을 시켜 희성이를 데려와 같이 있게 했다.희성이는 원래 요부인과 한동안 살았던 적이 있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더러 엄마를 넘보지 못하게 하는 거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답답했는지 외할머니댁으로 가게 되었다. 가기 전에 희성이가 제일 헤어지기 아쉬워한 건 요부인이 아니라 뜻밖에도 훼천이었다.왜냐면 훼천은 하늘을 날 줄 알았고, 희성이가 직접 훼천이 지붕이나 나무 꼭대기에 날아오르는 걸 보고 자기도 데리고 한 바퀴 날아 달라고 했다. 그러자 훼천은 하늘로 날아 희성이에게 꽃 한 송이를 따 주었다.그래서 희성이가 초왕부에 온 뒤 요부인에게 말했다.“엄마, 시간 나면 우리 훼천 아저씨 보러 가요.”요부인이 얼굴이 살짝 굳어지며 대답했다. “뭐 하게?”“보고 싶었거든요. 절 데리고 날아올라 줬으면 좋겠어요.” 희성이가 웃으며 말했다.“다섯째 작은아버지께 널 데리고 날아 달라고 해, 다섯째 작은아버지도 경공하실 줄 아니까.”“다섯째 작은아버지랑 훼천 아저씨 경공은 차이가 엄청나요.”그건 사실이었다. 우문호는 무공이 뛰어나지만, 훼천은 경공이 압권이다. 천하에서 독보적인 존재라고 하기엔 다소 과장일 수 있겠지만, 무림으로 따져봤을 때 경공으로 훼
똥줄 타는 둘째 부인요부인이 자기 생각에도 일을 크게 만들었는지라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있다가 희성이한테 얘기할게요.”“여기서 잔다고 할 때부터 낌새가 이상했어요. 희성이를 오라고 했더니 바로 애를 울리고 평소 부인답지 않았아요.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죠? 나한테 말해줄 수 없어요?”요부인이 씁쓸한 눈으로 말했다. “없어요, 그냥 이름 모를 초조함이라 잘 다스리면 괜찮아요. 미안해요, 귀찮게 해서.”요부인이 여전히 말하고 싶지 않아 하자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헸다. “서먹서먹하네요.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하지만 가서 희성이 잘 달래 줘요. 어렵사리 엄마를 만난 건데 따스한 엄마 정을 느끼게 해주기는커녕 오자마자 원칙을 따져서 혼을 내다니 제 기분이 상해요.”말을 마치고 원경릉도 요부인을 신경 쓰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요부인이 고뇌하더니 잠시 후 따라 나와 희성이를 달랬다.만아의 혼례를 치를 동안 주명양과 임소 두 사람은 계속 왕래했다. 임소가 손 전무에게서 은자를 받아 주지 못했지만 주명양을 위해 이자를 지불해 주었다.둘째 부인은 원래 돈을 돌려받으려 했으나 밖에 유언비어가 나돈 일로 은자를 생각할 겨를이 없고 오직 온 힘을 다해 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자 했다. 이미 신고를 했지만, 관아에서 찾는 건 차일피일 미뤄져 마음이 급해 견딜 수가 없었다.냉씨 집안도 정식으로 거절해왔다. 심지어 냉부인이 직접 들러 예물을 주고 바깥에 도는 유언비어 때문이 아니라 냉정언이 아직 혼인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2년 동안 혼인 의사가 없다고 했다.둘째 부인은 당연히 핑계라는 걸 알았지만 당장 어떻게 강요할 수가 있어? 냉부인이 직접 이렇게 온 것만으로도 체면을 세워 준 것인 데다 구씨 가문을 위해 앞으로 2년 내 냉정언이 혼인하지 않겠다고 해준 것이다. 구정민의 혼담을 거절한 뒤 다른 집에 혼담을 넣으면 사람들이 바로 구정민의 명성이 이렇게 돼서 거절당했다고 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둘째 부인은 초조한데 진
원경릉은 못내 조금 흥분했지만, 이내 다시 차분해졌다.약상자에 어떤 약이 나타났든, 지금 상황에는 여전히 위험이 컸다. 그리고 그 약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요부인의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게다가 두 번째 층에는 출산 중 사용할 응급 약도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다 그들의 팔자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우문호는 말하면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어찌 고민할 때마다 이마를 찡그리는 것이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리프팅을 해야 하네.""당신은 리프팅 안 했소."원경릉은 웃으면서 말했다."난 괜찮소. 리프팅을 했든 안 했든, 예전보다 확실히 젊어 보이니 괜찮소."우문호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어쨌든, 원경릉이 좋아하면 되었다."정말 리프팅 안 했소. 다 그 약 덕분이오."원경릉이 말했다."정말이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다행이오. 난 당신이 내가 늙었다고 싫어할 줄 알았소."원경릉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소? 사랑하는 사람의 흰머리를 볼 수 있다는 건, 사실 행복한 일이네."우문호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맞소."원경릉이 그의 품에 기대며 조용히 말했다."아마 오늘 밤 요부인과 훼천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오."정말 그러했다.모두가 나가자마자, 요부인이 약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훼천은 그녀 곁에 있었지만, 위로는 서투른 사람이라,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곁에 있었다.이 아이는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가 오지 않았으면 이런 슬픔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삶도 잘 흘러갔을 것이다.왔지만 떠나니, 정말 상처가 될 뿐이었다. 앞으로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플 것이다."어르신을 찾으러 가겠네."요부인이 갑자기 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훼천은 누구를 말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숙왕부에 가려 하니, 함께 가시게."요부인이 벌
원경릉은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약을 다 처방한 후에 원경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일부터 약을 드시게. 잊을 수도 있으니, 며칠 동안 자주 올 것이네. 게다가 또..."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바로 그녀의 말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약을 먹는 과정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다.그들은 이 나이에 아이를 낳든, 낙태하든, 모두 위험이 따른다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당부를 마친 후, 훼천이 그녀들을 배웅했다.모두 지금은 그들이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아이와 함께, 셋이 하루를 보낼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오늘 하루만이 남아 있었다.미색은 집을 나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한참 뒤 눈물을 닦고 나서 원경릉에게 물었다."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정말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그저 지지하기로 하지 않았느냐."미색 또한 이 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기에, 원경릉은 더 이상 위험에 관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요부인의 목숨이 더 중요한 법이지요."미색은 말을 마친 후, 말을 타고 그곳을 떠났다."며칠 동안 계속 그녀의 곁을 지킬 셈 같아 보이니,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원용의가 말했다."그래. 나도 올 것이다."그러자 손왕비가 덧붙였다.한편, 궁에 돌아온 원경릉은 바로 실험실로 가지 않고,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셨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슬픔에 가득 찬 요부인의 얼굴만이 떠올랐다.강한 여자의 눈물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저녁 무렵, 다섯째가 돌아왔다. 그는 원경릉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는 대충 눈치챘다. 그는 다가가서 그녀를 안으며 물었다."요부인의 상태가 좋지 않소?""알아챈 것이오?""나이가 나이인지라."우문호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결국 아이를 포기하기로 했소?""그렇소.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원경릉은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