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문 날조그런 생각에 근심이 깊어가고, “사실 이거 말해도 될지 잘 모르겠는데.”“무슨 말인데?” 둘째 부인이 물었다.주명양이 목소리를 낮춰, “저도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걸 그냥 들은 거라, 사실 여부는 몰라요. 이모님이 알아서 판단하세요. 할아버지 말씀이 냉정언이 아직 혼인하지 않은 게 속사정이 있다고.”“속사정? 무슨 사정?” 둘째 부인이 경각심이 확 생겼다.주명양이 순간 떠올린 말로 속이 시끄러워서 바로 완전한 얘기는 못 만들고 대충 주워섬기며, “냉정언이 원래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가로막히는 바람에…… 어쨌든 장가를 못 가게 됐다고.”“서로 좋아하는 사람?” 둘째 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냉정언은 책만 파고드는 성현인데 어떻게 혼인도 하기 전에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어? 그럴 거면 장가를 들지?”“장가들 수가 없었 데요. 그 여자가…… 그 여자가 남편이 있는 여자라고.” 주명양이 머리를 굴려봐도 어느 집 딸이라고 떠오르지 않아 되는대로, “냉정언과 태자비 원경릉이 사통한지가 몇 년 됐다고 해요.”둘째 부인과 구정민이 순간 화들짝 놀라며, “뭐라고?”주명양이 경고하며, “이 일을 알게 된 지 얼마 안돼서 계속 말씀 못 드렸어요. 두 분도 절대 밖으로 얘기가 새 나가서는 안되고 속으로만 아세요. 안 그러면 할아버지께서 제가 퍼트렸다고 절 때려 죽이실 거예요. 정민이를 시집 보낼 지 말지 이모께서 숙고해 보세요.”둘째 부인은 주명양의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고, “태자 부부가 사이가 좋던데. 원경릉도 그런 사람 같지 않고.”“사람은 생긴 거만 봐서 모르죠. 하지만 사실여부는 저도 정말 몰라요.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거라.”주재상이 얘기했으니 그건 분명 사실이다. 둘째 부인 마음에 증오심이 생겼는데 제일 혐오하는 게 바로 이런 식의 불륜으로 특히 원경릉은 현 태자비가 아닌가.구정민도 완전 넋이 나간 게 냉정언을 몇 번 봤지만 품위 있는 군자라 소녀의 마음은 벌써 냉정언에게 폭 빠져 있었다. 그런 그가 이런 더러운 일을 저
들키다둘째 부인도 심란해서, “민아, 그럼 냉씨 집안은 고려하지 말까?”구정민이 그럴 리가? 소녀의 순정은 온통 냉정언 뿐인데 전에 무슨 일을 했던 뭐라고 하던 구정민 마음 속엔 냉정언에게 시집가고 싶은 마음 뿐으로, “어머니, 만약 그이와 그 천한 여자가 왕래를 끊으면 저도 따지지 않을 테니 오빠에게 가서 얘기해 보라고 하세요.”주명양이 듣고 얼른, “절대 구사에게 물어보게 하면 안됩니다. 구사는 태자 전하와 친한 사이라 구사가 알면 반드시 태자 전하께 알릴 건데 어떻게 태자 전하를 모욕할 수 있겠어요? 먼저 냉대인을 찾아가 담판을 지을 게 분명한데 냉대인의 명예가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건 물론이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둘째 부인이 듣고 마음 속으로 안타깝지만 이렇게 복잡하다니 냉정언은 그래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고 딸이 고집을 피우니 일단 달래기로 했다.주명양은 구씨 집을 나와 근심이 가득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들어오자 마자 우문군이 음침한 얼굴로 본관에 앉아 있고 노비와 시동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며 얼굴이 잔뜩 부어 있는 것이 매질을 당한 것 같다.주명양은 가슴이 철렁해서 모르는 척하고 웃음을 띤 채, “오늘 왜 이렇게 일찍 돌아오셨어요?”우문군이 주명양을 노려보며, “말해, 내 지폐를 네가 가져갔나?”주명양이 놀라며, “무슨 지폐요? 제가 왜 당신 지폐를 가져가요?”우문군이 탁자를 치고 발을 구르며 사납게, “내 만 냥 짜리 지폐가 없어졌어. 문을 억지로 연 흔적이 없으니 집안의 도둑 소행인데 도대체 누가 가져 갔지? 불지 않으면 바로 관아에 고발할 것이다.”관아에 고발한다는 말에 주명양의 얼굴색이 변해서 냉소를 지으며, “관아에 고발하는 건 급하지 않고 문을 억지로 열지 않았으면 분명 집안사람 짓이네요. 제가 저들을 심문하지요.”우문군이 음험한 눈으로, “네가 심문한다고?”주명양은 우문군의 이런 눈빛에 겁을 잔뜩 먹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듯, “왜요? 절 의심하시는 건가요?”우문군이 한 손으로 주명
임소와 주명양주명양이 손전무 집에 와서 문지기가 문을 열자마자 바로 뛰어들어가 허둥거리며 쉰 목소리로, “손전무, 당장 나오지 못해.”문지기가 손전무가 없다고 얘기했지만 주명양은 여기저기 막 찾아 다니는데 이미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만약 손전무에게서 돈을 찾아오지 않으면 우문군은 자신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고 그 부인들도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주명양이 울부짖으며 찾는데, “손전무, 네가 날 죽일 셈이야, 널 가만 두지 않겠어. 내가 지금 널 어찌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 만약 돌아가서 할아버지께 알리면 할아버지도 반드시 날 위해 나서실 테니 당장 나와서 내돈 돌려내.”손전무가 분명 집에 없는 게 주명양이 온 집안을 찾고 다녔지만 찾지 못하고 정신이 없어서 복도 앞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이때 한 줄기 그림자가 자신을 덮자 주명양은 손전무가 돌아온 줄 알고 번쩍 고개를 들고 소리 쳤으나 손전무가 아니고 그날 봤던 그 손님이다.손님이 내려다보며 교활한 눈빛으로, “첫째 황자비 마마, 오랜만에 뵙습니다.”주명양이 일어나 의혹의 눈길로, ‘오랜만에 보다니? 엊그제 처음 본 거 아닌가?’“손전무를 찾으십니까? 그분 지인이시군요. 그가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주명양이 눈물을 훔치고 물었다.이 사람은 임소로 주명양을 보는 눈빛이 교활한 것이 자세히 보면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때의 악의 그 자체다.하지만 주명양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그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절하게 물었다.임소가 손수건을 꺼내 주명양 눈가의 눈물을 닦아 주자 주명양이 얼른 뒤로 피하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뭐하는 짓이예요?”임소가 작게 한숨을 쉬며, “첫째 황자비 마마, 기억력이 정말 안 좋으십니다. 이렇게 빨리 저를 잊으셨나요? 전 첫째 황자비 마마를 그리워 하고 있었는데.”이 말이 벼락처럼 주명양의 머리 속에 내리 꽂히며 눈을 크게 떴다. 눈에서 이글이글 불꽃이 튀고 얼굴색도 붉어지더니 손을 들어 임소의 얼굴에
날 위해 기꺼이그 치욕을 주명양이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한밤중에 악몽으로 보던 자가 지금 눈 앞에 나타났는데도, 치욕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돈 문제만 빨리 해결하고 싶다.자기는 내로라하는 주씨 집안의 딸이자 첫째 황자비라 절대 길거리에 나앉을 수 없다.임소가 품에서 만 냥 짜리 지폐를 꺼내 주명양에게 주며, “일단 급한 불은 꺼.”주명양이 만 냥 짜리 지폐를 보고 의혹의 눈으로, “내가 만 냥이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죠?” 계속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설마?“이자 줘야하는 거 아닌가?”주명양이 그제서야 의심을 풀고 받으며, “이 만 냥은 우선 받고 손전무한테 돈을 받으면 돌려주겠어요.”임소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럴 필요 없어, 당신은 내 사랑이니까. 내 돈은 당신에게만 쓰고 싶어.”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임소를 차갑게 노려본 주명양이, “닥쳐요. 목소리만 들어도 토 나올 거 같으니까.”임소가 한숨을 쉬며, “먼저 가.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복도가(福到街) 18호를 찾아오면 돼.”주명양이 씩씩거리며 갔다.임소는 주명양의 뒷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곧 손전무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뒷짐을 지고 오더니, “임 나리, 왜 바로 수백만 냥 은자를 가지고 주명양이 일을 진행하게 협박하지 않으십니까?”임소가 한 손가락을 세워서 흔들며, “급할 거 없어, 날 위해 기꺼이 일하게 하려면 분노에 차 있는 상태로는 안되지. 그럼 일을 그르치기 쉽거든. 만약 일이 실패하면 신속하게 당신이나 나한테 자백하게 해야 하니까.”“주명양이 기꺼이 하게 만들겠다고요? 안 될 겁니다!” 손전무는 이 주명양이란 인간도 상대할 만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임소가 웃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지금까지 날 위해 기꺼이 일하지 않았던 여자는 없었어. 우문호의 수하였던 소홍천마저도 다를 거 하나 없던데? 몰래 와서 내 품에 안기지 않았어?”손전무가 하하 웃으며 예를 취하더니, “과연 존경스럽습니다!”초왕부에서는 원경릉이 오늘 정말 기분이
만아가 돌아왔다만아가 본관까지 가기도 전에 우리 떡들이 달려오며 와와 함성을 질러 마당이 왁자지껄해졌다. 만아는 아이들을 보고 미친듯이 달려가고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을 보니 코끝이 찡한 게 ‘정말 좋아, 진짜 좋다. 여기 돌아오길 정말 잘 했어. 남강에서 매일 얼마나 그리웠는데 초왕부에는 하나하나 영혼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지. 어떻게 떨어져서 지내?’만아가 우리 떡들을 안고 원경릉에게 인사 드리러 들어가 무릎을 꿇으려고 하는데 원경릉이 만아를 끌어서, “됐어. 이번에 경성에 온 건 남강왕의 신분으로 온 거니 이제 더이상 초왕부의 시녀가 아니야.”만아도 코끝이 찡해지며 목이 메서, “초왕부에는 남강왕이 없어요. 쇤네는 영원히 마마의 만아 예요.”원경릉이 감동해서 만아의 손을 쥐고, “그래 만아야, 오느라 힘들었지? 일단 가서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나오면 밥 먹으러 가자. 저녁으로 기상궁이 네가 좋아하는 거 요리 했어.”만아가 눈가를 훔치며 기쁜 듯, “좋아요, 쇤네 상궁마마께 인사 드리고요, 맞다. 왕야께서 그러셨는데 집으로 옷 갈아입으러 오신다고 초왕부에서 식사 하시고 가신데요.”원경릉이 웃으며, “좋아!”만아가 예를 취하고 나가자 사식이가 밖에서 기다렸다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같이 갔다. 기라와 녹주도 이들을 둘러싸고 아가씨들끼리 쫑알쫑알 얘기가 그치지 않는다. 원경릉은 복도에 서서 아이들이 잡기놀이를 하며 노는 것을 보는데 초왕부가 마침내 예전의 모습이구나 싶다.우문호와 순왕도 문 앞에서 만나 같이 들어오는데 순왕이 한시도 지체하지 못하겠는지 남강의 사정을 보고하는데 굉장히 흥분했다. 우문호는 아홉째도 발전 했다며 대견하다는 표정이다.식탁에서도 순왕이 계속 얘기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자 원경릉이, “일단 식사부터 하시고 다음에 형이랑 천천히 말씀 나누세요.”“안돼요,” 순왕이 밥을 막 입에 퍼 넣으며, “소신 조금 있다가 입궁해야 하는데 시간을 지체하면 궁문이 닫혀서 내일 다시 가야 하거든요.”“왜? 아바마마께서 부르셨어?
만아의 변신저녁에 우문호에게 만아와 순왕에 대해 얘기하자 우문호가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아홉째는 아직 어리니 혼인을 서두를 필요 없어.”“어디가 아직 어리다는 거야? 벌써 20대 초반이야.”“23~24에 혼례 얘기를 꺼내도 안 늦어.” 우문호가 눈을 문지르는데 최근 밤을 많이 새서 눈에 다크 서클이 심했다. “그리고 형님이 그러시는데 당신 그쪽은 20살에 혼인하는 예가 적다면서. 형님 나이가 그렇게 많은데도 미혼이시고.”“시대가 다르지, 자기는 만아 싫어?”우문호가 고개를 돌리며, “아니 그냥 아홉째가 만아한테 장가들면, 남강에서 만아 곁에 있어야 하니까 1년에 한 번 오기도 어려울 거야.”“아쉬워?” 원경릉이 웃었지만 우문호에게 이렇게 감성적인 구석이 있는 줄 몰랐다. 하지만 자기 딸을 멀리 시집 보내기 싫은 엄마는 있어도, 동생을 멀리 장가보내기 싫은 형은 없지 않나?우문호는 분명 좀 아쉬운 감이 있다. 당장이야 아홉째를 남강에 보냈지만 남강 일을 마친 뒤에는 돌아온다. 형제가 몇 있어도 셋째형은 경성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고, 넷째도 가야 한다. 그래서 아홉째만큼은 경성에서 자기 곁에 남아 주길 바랬다.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원경릉을 깨웠는데, “사실 아홉째랑 만아가 혼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러면 아홉째는 명실상부하게 남강을 다스릴 수 있고 8~10년 후에 남강이 안정되면 아홉째도 통일전쟁을 역할을 완수하는 거니까.”원경릉은 잠결에, “자자, 이건 그냥 우리들 추측일 뿐이고 아직 결정된 것도 아니야.”우문호가 머리를 괴고 누워, “자세히 생각해 보니 역시 좋은 일이야. 정해지지 않은 거면 맺어주면 되지.”원경릉이 눈을 뜨고, “자기 왜 이렇게 귀여워? 잠들기 전에는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 하더니 이제 또 맺어주겠다고? 정치나 대세에만 관심있지? 만약 내가 나라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면 나도 팔아먹는 거 아냐 이거?”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그건 안되지. 당신이 천하 통일에 즉효약이라고 해도 난 안 팔아. 당신없는
눈 맞았네원경릉도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만아가 전에 초왕부에 있을 때는 머리는 대충 틀어 올리고 분도 바르지 않아서 선머슴 같았는데, 얼굴형과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꼼꼼하게 꾸미고 나니 이국적 분위기가 풍겼다. 게다가 키가 크고 날씬하니 허리를 조이는 흰 치마가 더욱 맵시 있어 보였다.“바보 아가씨야, 당연히 너지, 봐 얼마나 예뻐.” 사식이가 웃었다.녹주가 뛰어들어와, “순왕 전하께서 맞으러 오셨어요. 순왕 전하도 오늘 굉장히 멋지게 차리셨습니다.”다들 만아와 같이 나갔다. 과연 아홉째는 보라색 친왕의 조복을 입고 걸어 들어오는데 머리카락은 금옥관으로 묶고 잘 생긴 외모에 애송이 느낌이 사라져서 정말 녹주 말 대로 굉장히 멋지다.아홉째가 만아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만아가 다가오자 그제서야 어색하게 쑥스러워 하며, “어,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 했어요. 이렇게 훌쩍 자라서.”아홉째의 이 말에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깔깔 웃고 사식이가 와서, “훌쩍 자라 긴요, 원래 이랬 어요. 단지 전보다 예뻐진 거죠.”아홉째는 말이 빗나간 게 미안했는지 잘생긴 얼굴이 발그레해 졌다. 이렇게 멋진 남자는 3초만에 다시 덜렁이로 돌아왔다.만아 얼굴도 빨갛게 돼서 순왕을 몰래 훔쳐보고, “왕야께서도 오늘 위풍당당하십니다.”아홉째가 발그레한 채로, “그건 조복을 평소에 안 입어서. 옷 버릴 까봐. 오늘 아바마마께서 만아가 입궐하는 걸 마중하라 하셔서 고민하다가 정식으로 입어서 그래.”“선남선녀로고!” 사식이가 추임새를 넣으며 분위기를 살렸다.원래는 무심코 던진 말인데 듣는 사람은 의미를 둬서 만아와 아홉째는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 두 사람의 눈빛이 순간 마주치자 얼른 눈을 돌리는데 두 사람 얼굴은 불에 덴 것처럼 빨갛게 타올랐다. 남강에서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맞대고 살았는데 청춘 남녀가 아무 느낌이 없다면 그게 거짓말일 것이다.두 사람이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나가고 원경릉이 복도에 서서 둘을 바라보는데 우문호가 어젯밤 했던 말이
구사에게 묻다사식이는 혼인한 뒤로 이런 남녀 사이 일에 특히 민감해서 만아가 이유 없이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분명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고 원경릉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아홉째가 만아에게 장가들 거라는 생각은 우문호 뿐 아니라 명원제도 하고 있었다. 아홉째가 남강왕의 남편이 되면 많이 일이 술술 풀려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서두르지 않는 게 우문호가 말했듯이 저들이 경성에 몇 개월 머무를 것이고 만약 막 남강왕으로 봉해지자 마자 바로 혼사를 치르면 계획적이란 의심을 사기 쉽기 때문이다.이때 구사 집안 둘째 부인은 그날 주명양에게 비밀을 들은 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얘기만 없었어도 냉정언은 최고의 사윗감인데, 태자비와의 관계가 깨끗하지 못하다니 이제 와서 왕래를 끊는다고 해도 앞으로 태자가 알게 되는 날엔 경을 칠 게 틀림없다.만약 정민이가 시집을 간다면 같이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둘째 부인은 어째야 좋을 지 모르겠는데 구정민은 무조건 냉정언에게 시집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미치고 환장하겠다.그래서 주명양이 절대 물어보지 말라고 했지만 몰래 구사를 찾아갔다.구사는 다섯째 동생이 냉씨 집안과 혼사를 치르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일은 좀 가망이 적지 않은가 생각했다. 왜냐면 냉씨 집안에서 태도를 표시하지 않는게,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거절하지 못해 침묵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생각이 있으면 이미 혼담을 넣고도 남았다.혼담이 없다는 건 적어도 냉씨 집안 쪽에서는 혼담을 넣을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냉정언이 동의하고 말고까지 갈 필요도 없다.“넌 냉대인과 태자 전하 일로 왕래가 있을 텐데, 냉대인의 인품에 대해서…… 네가 평소 주의를 기울여봤던 느낌은 어때?”구사가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서, “주의를 기울여요? 냉대인이 청렴 결백하다는 건 조정에서 다 아는 사실입니다.”“청렴 결백하는 외부 사람들 들으라는 거고, 우리가 모르는 비밀 같은 거 있지? 예를 들어 잠자리 시중을 드는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
“그렇다면 아버지 말씀을 잘 듣거라. 네 양아버지께서는 아바마마처럼 늘 칭찬하고 좋은 말만 해주시지 않느냐? 집안에서 누군가는 엄격하고 누군가는 따뜻한 법이다. 애정 어린 따스함을 즐겨도 되지만, 엄격한 가르침 또한 잘 따라야 한다.”하지만 냉명여는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말했다.“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여, 나중에 꼭 누나를 도와드리러 오겠습니다.”택란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좋다. 그럼, 너를 기다리마!”냉명여는 뜨거워진 자신의 얼굴이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못내 편안하게 느껴졌다.다른 한편, 탕 대인과 일곱째 아가씨도 약도성에 도착해, 약도성의 관저는 순식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호명은 이제 조정의 명을 받고 약도성의 관리로 임명되었는데, 조정에서 약도성을 시찰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약도성에서 장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의부인 탕양과 일곱째 아가씨를 극진히 모셨다.일곱째 아가씨는 재력이 뛰어나니, 그녀가 약도성에서 장사를 시작한다면, 도성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독산이요?”이때, 그녀가 갑자기 독산에 관심을 보이자, 호명이 멈칫했다.“독산은 굉장히 위험한 곳입니다. 이곳 백성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리지요. 안에 미혼진이 있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탕 대인이 말했다.“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틀 후, 우리는 독산에 따로 갈 계획이다. 그러니 그 전에 일곱째 아가씨를 잘 모시고, 도성 곳곳과 약도성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아가씨가 독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50만 냥을 투자할 것이고, 그중 30만 냥은 약도성의 길을 만들고 발전을 위해 쓰이게 할 것이다.”그러자 호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30만 냥이라니요! 정말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많은 길이 끊기고, 집들이 무너졌습니다. 인근 주부에서 도움을 주고, 조정에서도 예산을 지원해 주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
택란은 금나라 어린 황제의 의도를 들은 후 화들짝 놀랐다. 그는 택란이 금나라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시신을 찾을 수 없으니, 그녀의 가족에게 묘를 만들게 시켜 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전하러 왔던 것이었다.또한, 택란은 어린 황제가 정말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꽤 의외였다. 게다가 충직하게 그녀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길을 잃은 원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려 했으니 말이다.“그가 실망하겠소. 이 도성에 다섯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딸 이름이 택란인 자는 없을 테니.”그러자 주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정말 찾았지 뭡니까? 서자림 근처 마을에 다섯째라 불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마침 집안에 란이라는 딸아이가 6개월 전부터 종적을 감추었지요. 게다가 다섯째라는 사람은 지진으로 두 다리를 잃은 상태였고, 집안에 란이의 언니도 있어서 금나라 어린 황제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데려갔다고 합니다.”“정말 그런 우연이 있단 말이오?”택란이 놀라며 말했다.“예. 그 다섯째 사람도 딸이 죽은 줄 알고 슬피 울면서 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후에 딸과 함께 황제의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택란이 피식 웃었다. 정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다만 그의 딸의 이름은 란이인데, 그녀는 금나라 어린 황제에게 자신의 이름이 택란이라고 했다.한 글자 차이로 생긴 오해였다. 어쨌든 금나라 어린 황제가 은혜를 갚기 위해 한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어린 황제가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금나라에 무슨 변화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해가 바뀌며 어린 황제도 이제 14살이 되었기에, 만약 조정 대신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권력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었다.그와의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택란은 그가 권력을 되찾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권력을 잡으면 약도성에도 좋은 일일 것이기에, 만약 실현이 된다면, 택란은 금나라에 가서 두 나라 간 자원 채굴을 논의할 계획이었다.한편, 서일이 떠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