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청이정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 청이가 18살이 되던 해 몰래 마을을 떠나 대마왕을 찾아가서 얘기했죠. 자기의 기구한 팔자는 어떤 살도 눌러 버릴 수 있고 그와 평생 함께할 수 있다고 말이죠. 대마왕은 마음이 움직여서 청이를 측실로 맞아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딸도 하나 낳았어요.”“아니 왜 정실이 아니고 측실이예요?”정집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왜냐면 대마왕의 어머니는 계속 유약한 그 여자에게 마음이 있어서 대마왕이 그 여자와 혼인하지 않아도 정실의 위치는 그 여자를 위해 남겨두어 집안에서 그녀의 자리를 지켜 준 거죠.”“하지만 마을 장로들이 성녀가 대마왕과 혼인하는 걸 내버려 둘까요?” 정집사가 고개를 흔들고, “방금 말했듯이 성녀는 몰래 도망쳐 나와서 아무도 성녀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을 뿐더러 성녀가 대마왕에게 시집갔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마을에 있을 때도 성녀는 대마왕을 사모하면서도 여전히 겉으로는 불구대천지 원수처럼 적대시했으니까요. 아무도 청이가 성녀의 존귀한 지위를 버리고 대마왕에게 시집갈 거란 생각을 할 수 없었죠.”만아가 긴장해서, “그럼 만약 장로들에게 발각되는 날엔 어떻게 해요?”정집사가 미간을 움찔거리더니 입술을 떨며, “성녀를 잡아가서 성약(聖藥)을 먹여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능지처참하듯 칼질을 하고 온천에 넣어두죠, 능지 도법은 대단해서 피를 많이 흘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죠. 그리고 성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정신을 잃지도 않은 채로 12시진을 물에 담가져 있다가 건져낸 후 살을 벗기고 뼈를 부러뜨리죠, 그때 죽게 되는 겁니다.”만아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서, “맙소사, 너무 잔인해요.”“성녀는 이건 잔인한 축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잔인한 건 발각되는 즉시 남편과 아이와 헤어져야 하는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마을 장로가 성녀의 행방을 찾아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성녀는 잠시 숨을 수밖에 없었죠……”정집사가 두 손으로 양팔을 꽉 잡고 표정도 상당히 고통스럽게 변하더니, “하지만 성녀는
진짜 신분만아가 정집사의 얘기에 완전히 빠져 성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원래 재미있는 이야기인 줄 알고 원경릉에게 들려주려 했는데 다 듣고 보니 원경릉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아 들려주기엔 적합하지 않았다.하지만 만아가 계속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걸 원경릉이 알아차리고, “만아야, 왜 그래? 저녁 내내 우거지상이네.”원경릉은 사실 정집사가 만아에게 신분을 밝혔을 까봐 걱정이 됐지만 또 정집사가 그렇게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다.“쇤네 아무 일도 없어요!” 만아가 생각을 좀 하더니 역시 못 참겠는지, “성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원경릉이, “어느 성녀가 불쌍해?”만아는 원래 뭘 감추는 성격이 못돼서 정집사 얘기를 원경릉에게 전해주었다.얘기가 끝나자 원경릉은 한동안 놀라서 당황하고 만아 본인도 눈물을 흘렸다. “죄송해요, 쇤네 이런 얘기를 해 드리면 안되는데. 괴롭게 해드렸네요.”원경릉이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흔들며, “괜찮아, 그냥 얘기인데 뭘. 진짜가 아니라.”“쇤네 생각에 정집사가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마치 자기 얘기를 하는 것처럼 울 것 같은 모습을 봤거든요.”“울 것 같다고 다 자기얘기를 한다고 할 수는 없어. 너도 정집사 얘기를 듣고 나하테 전하면서 울잖아. 그냥 인간의 동정심이야. 그래, 생각하지 마. 얼른 가서 씻고 자.” 원경릉은 만아가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호수에 뛰어드는 일이 생길 까봐 걱정이 됐다.“그럼 쇤네는 물러갑니다!” 정집사는 용감하게 사랑하고 미워했던 사람이다. 남강왕을 지독하게 사랑했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남강 북쪽을 배반한 채 남강왕과 함께 하며 자식을 낳았던 게 분명하다. 이토록 사랑하는 두 사람이 죽음으로 인해 영원히 헤어져야 했으니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야?원경릉은 요즘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해 진 게 어쩌면 임신 때문인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자신을 잘 대입하곤 한다. 만약 자기가 목청청이면 남편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달려갔는데 모든 게 잿더미로
왕강과 소홍천원경릉은 마음이 어지러워, “그럼 우리가 만아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만아가 남강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면 말이야.”“적어도 만아를 위한 세력을 공고히 해서 조정의 지원을 얻어내고, 남강에서 입지를 튼튼히 할 수 있도록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도록 해 주는 거지.”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안도하며 약간 놀리듯이, “그럼 만아에게 남편감을 하나 찾아줘야 하나?”“난 중매 안 서, 우리 집에는 어디다 내놔도 부끄러운 서일만 있고, 마땅한 사람이 어딨어?” 우문호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더니, “사촌 소형 어때? 나이도 적지 않고, 그리고 왕 선생도 있고.”“왕 선생 아직 아내가 없어?” 원경릉이 놀란 것이 천문을 좋아하는 왕강은 결코 나이가 적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눈이 천정에 붙어서 잠자리 시침을 드는 사람은 있는 모양인데 아내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어.”원경릉이 머리를 흔들며, “됐어, 쓸데없이 소개하지 마, 안 어울려.”만아는 성격이 단순하고 왕강은 겉으로는 박식해 보이지만 눈빛이 좀 그게……순수하지 않은 게 단순히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 같지 않다.부부가 얘기하고 있는데 기라가 알리러 왔다. “나리, 소 문주님이 오셨습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흘끔 보고, “남강이나 홍엽관련 소식이 있는 게 틀림없어.”“얼른 가봐!”우문호가 원경릉 손을 잡고, “같이 가서 듣자, 어쨌든 지금 당신이 알면 안되는 일도 없으니.”“지금 없다는 건, 예전엔 있었다는 소리야?” 원경릉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전에도 없었어.” 고개를 들고 원경릉을 부축해 문지방을 넘더니 그녀의 배를 보고 머리를 치며, “입궁해서 태상황 폐하께 청진기 빌려 달라는 걸 또 까먹었네.”원경릉이 눈을 빛내며, “내일 내가 할머니 모시고 입궁하니 태상황 폐하께 물어볼게.”“그래, 갈 때 조심하고.” 우문호가 잔소리를 했다.만아가 소홍천을 서재로 모시고 왔다. 소홍천이 자리에 앉자마자 우문호 부부가 들어왔다.원경릉이 들어와 소홍천을 보는데 순간 눈앞이
소홍천이 가져온 소식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을 부라리며, “예의 없이 굴래 진짜!”우문호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여자를 앞에 두고 화장한 걸 가지고 농담하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지 말이다.“진짜 안 이쁜데.” 우문호가 구시렁거리며, “전에 청순한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아.”“닥쳐!” 원경릉이 소리를 지르고 소홍천에게 사과하며, “소문주님 상식으로 저이를 판단하지 마세요. 상남자가 이렇게 분위기를 몰라요.”“안 예뻐요?” 소홍천이 얼굴을 만지며 원경릉에게 물었다.“예뻐요……하지만 솔직히 지금 화장은 진한 편이라 좀 연한 게 문주님께 잘 맞는 것 같아요.” 원경릉은 소홍천이 진심으로 의견을 구하는 눈빛이라 망설이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분장이야!” 우문호가 눈을 부릅떴다.소홍천이 약간 당황해서, “홍매문 사람들은 이게 이쁘다고 했는데.”“화장이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 그만 따지고, 이렇게 늦게 온 건 무슨 소식이 있어서야?” 우문호가 물었다.소홍천이 표정을 가다듬고 원경릉을 흘끔 보더니, “에……태자비 마마께서 아셔도 되나요?”“괜찮아,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소홍천이 안도하며, “그럼 다행이예요, 태자 전하께서 전에 저에게 알아보라고 하셨던 일을 조사해 보니 심인(沁人)이라는 아가씨 더군요. 취춘루(醉春樓)의 간판으로 외모도 애교도 으뜸이죠. 당연히 태자 전하도 직접 본적이 있을 것으로 이 점은 굳이 제가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게 그렇지 않으면 우리 홍매문이 나서서 알아보게 할 리가 없었겠죠. 하지만 태자 전하께서 모르고 있는 점이 이 여자는 상당히 요염하고 몸이 굉장히 유연한데 두 다리를 어깨 위로 구부릴 수 있을 정도로 어떤 자세도 어렵지 않게 소화한다는 군요. 이것도 이 여자가 취춘루의 간판이 된 원인이기도 한데 수많은 거상, 관리, 명문 세가의 자제들, 심지어 태자 전하를 포함한 황실 종친에 이르기까지 이 여자에게 달려들어 천금을 바쳐서 라도 같이 지내지 못해 안달이죠.”소홍천이 말을 마치고 원경릉을 보고 탄복하며, “남자의 저
화난 소홍천우문호도 깜짝 놀라 바로, “어떻게 그럴 수가? 우리도 만불산에 가서 옥허도사를 만났는데 사숙조는 광인이 되어 경호에 뛰어든 뒤 익사했다고 했어. 그런데 홍엽은 사숙조와 무슨 비밀스런 얘기한 거지?”“아뇨,” 소홍천이 어리둥절해 하며, “정보를 잘못 탐문한 건가? 어쩐지 보고한 사람이 그 사숙조가 옥허도사보다 어려 보인다고 하더라니. 틀렸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옥허도사가 그 사람을 사숙조라고 부르는 걸 분명 들었다고 했으니 옥허가 나중에 들어온 제자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사숙조가 나중에 될 수는 없잖아요? 옥허가 다른 문파에서 갈아탄 걸지도 모르죠?”“다시 알아보세요!” 원경릉이 의자 손잡이를 꽉 잡고 심하게 긴장했다.소홍천이 원경릉의 안색을 보더니, “태자비 마마, 괜찮으세요? 안색이 굉장히 안 좋으신 데.”원경릉이 가슴을 누르며, “배가 나오다 보니 숨이 좀 차서 그래요.”“아!” 소홍천이 동정의 시선을 보냄과 동시에 우문호를 원망하며, “태자비 마마께서 전하의 아이를 품고 계신데 간판 기생이나 찾아 다닐 때예요, 집에서 마마 곁에 있어드리세요.”“좀 조용히 못해!” 우문호가 퉁명스럽게, “공무 때문이라고 공무, 귀가 먹었어?”소홍천이 진정하라고 손짓하며, “알았어요. 그만 할 게요. 시간도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죠.”소홍천이 일어나 예를 취하고 나가다가 문득 돌아서서 원경릉에게, “제 화장이……정말 별로 예요?”원경릉이 영혼 없이, “약간 진해서 조금만 옅게 하면 딱 좋을 것 같아요.”“그럼…… 태자비 마마 화장대를 잠깐 빌려도 괜찮을 까요? 다시 한 번 해 보게요.”“이렇게 늦은 시간에 뭘 또 해봐?” 우문호가 밖으로 쫓아내며, “가 가, 어서.”소홍천이, “있다가 누굴 만나야 된다고요!”“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구를 만난다는 거야? 게다가 이렇게 야하게 입고?” 우문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럽다는 듯 따졌다.“전하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렇게 따져요? 화장대를 빌려서 화장 좀 고치겠다는 건데 태자 전하 걸 쓰는
소홍천의 사랑원경릉은 그 일에 아무 느낌도 없는데 괜히 우문호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 간이 작으면 하지를 말던가. 원경릉이 걸으며, “난 소홍천이 자기와 오래 된 사이니, 그녀에게 지금처럼 그렇게 박정하게 대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야.”“우리는 늘 이렇게 치고 받는 사이야. 전진 장군, 왕강, 사촌 소형까지 이건 우리들의 우정의 표현이라고.”원경릉은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견고한지 털끝만치도 의심하지 않지만, “다른 일은 치고 받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소홍천을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내면서 지금처럼 정성을 다해 화장한 걸 본 적 있어?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는 거야. 그녀가 오늘 밤 만날 사람은 분명 그녀에게 있어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람일 거야. 유달리 긴장하고 있던 거 못 느꼈어?”“하지만 소홍천이 좋아하는 그 사람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야.”“사람은 평생 한 사람만 좋아하는 건 아니야.” 원경릉이 어이없다는 듯 우문호를 보며, ‘누구는 쓰레기 같은 찌질이들 안 만나봤는 줄 알아? 그런 인간들 겪고 난 뒤엔 행복해 질 수 없기라도 해?’우문호는 ‘쿵’하고 한 방 맞은 느낌으로 얼른, “사람은 평생 한 사람만 좋아할 수 있어, 원 선생의 그 생각은 위험한 거야.”원경릉이 째려보며, “나랑 자기는 이미 혼인을 했고 지금까지 이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우린 예가 될 수 없지만, 소홍천이 전에 만났던 그 사람은 무슨 이유로 그녀와 맺어질 수 없었는지 몰라도 이미 끝난 일은 다시 걱정하지 마, 소홍천은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좋은 사람을 만나면 우리가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워 줘야지.”원경릉은 원래 몇 마디 더 하려고 했다. 소홍천이 자신을 많이 도와줬고 공무든 아니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에 온 몸을 바쳐왔기에 원경릉 부부는 소홍천에게 빚을 많이 졌다. 원경릉은 소홍천과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 돕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우문호는 절친이니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비록 원경릉이 캐묻지 않았지만 우문호는 취춘루 간
경호로“경호 쪽에 한 번 가봐야 할까?” 원경릉 마음이 편치 않다. 홍엽이 만불산에 간 건 우연일까 아니면 고의일까?홍엽이 제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원경릉이 미래에서 왔다는 건 알 수 없겠지?우문호도 상당히 이상하게 여기고 잠시 고민해 보더니, “내가 이틀 후에 직접 가볼 게, 어쩌면 홍엽과 부딪혀야 할지도 몰라.”원경릉은 원래 이 시기에 우문호가 멀리 가는 게 싫지만 홍엽이 경호에 간 일은 자신도 불안해서 차라리 가보는 게 낫겠다.우문호는 다음날 입궁해 만아의 신분을 명원제에게 알리고 명원제는 전부터 남강왕의 딸이 경성에 살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소문이려니 했다. 하지만 사실인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며, “그렇군, 남강왕의 추종자가 전부 모여들 수 있겠어. 우리가 남강을 평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전에 남강왕을 따랐던 사람은 조정에 소속감이 있어서 뭉치면 강대한 힘으로, 조정에서 병사를 파견할 필요없이 남강의 남북이 서로 대항해 저절로 길이 열리게 것이다.부자는 인식을 공유하고 만아의 신분을 잠시 비밀에 붙인 채, 경성에 최근 온 남강사람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경성으로 들어온 경로를 추적하게 했다.우문호는 건곤전에도 가서 예전에 두명의 자객이 결백했음을 밝히고, 사람을 시켜 시신을 화장한 곳에 무명비를 세우도록 했다.이 일을 마치고 태상황에게 청진기를 빌리는 걸 또 깜박해서 아차 싶었다.다음날 우문호는 곧 새신랑이 될 서일을 데리고 바로 서주로 달려갔는데 가기 전에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전에 경호에 갔을 때 옥허도인에게 은자를 주며 사숙조 소식이 있으면 바로 경성에 알려 달라고 했던 걸 얘기했다. 우문호는 당연히 거액을 불전함에 넣어서 당시 몇 날 며칠 배가 아팠던 걸 기억하고 옥허도인이 사기꾼이면 산 아래로 끌고 내려가 관아에 넘겨버리겠다고 생각했다.서일이 이번에 유난히 감상적이 돼서 말위에서 흔들거리며 말없이 탄식하곤 했다.“아주 땅 꺼지겠네.” 우문호가 듣자 듣자 하니 아무래도 화가 났다.“나리, 저희 며칠을 갑니까?”
가로 막기옥허도인이 두 사람을 보자 원경릉이 가기 직전에 신분을 밝힌 게 떠오르고, 서일의 앞니가 표식이 되어 한 눈에 알아 봤다.하지만 대전에 사람이 많은 관계로 그들은 사랑채로 모셨다.들어가 얼른 예를 취한 뒤,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우문호가 보니 헤어진 지 2년만에 상당히 늙어서 세월 참 빠르구나 싶다.자리에 앉아 우문호가, “사숙조께서 돌아오셨다고 하던데 그런 가?”옥허도인이 얼른, “아뢰옵기로, 그렇습니다.”우문호가 불쾌한 듯, “사숙조가 돌아오면 바로 경성으로 보고하라고 하지 않았던가?”옥허도인이 당황해서, “전하, 사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태자 전하께서 사숙조를 청하지 않으셨습니다.”“사람을 보넀다고?” 우문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옥허를 보니 표정이 진심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초왕부로 사람을 보넀나?”“보낸 자가 초왕부의 신하를 만나서 사숙조 일을 전했습니다. 태자전하 믿지 못하시겠으면 그자를 불러올 테니 직접 하문 하십시오.”“들라 하라!” 초왕부 신하라고? 탕양인가? 하지만 탕양은 이 일을 보고한 적이 없다.옥허도인이 일어나 나가자 잠시 후 청년 도인 하나를 데려왔는데 스무 살 초반정도로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청색 도복을 입었는데 옥허가 우문호의 신분을 얘기했는지 들어와 꿇어앉아 인사를 했다.우문호가, “일어나서 답하라, 경성 초왕부에 간 적이 있느냐?”청년 도인이 감사 인사 후 일어나 공손하게 두 손을 넓은 도포 소맷자락에 넣고, “아뢰옵기로, 초왕부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경성에 막 들어가 거리에서 초왕부 위치를 묻자 누군가 와서 초왕부의 가신이라고 했습니다.”서일이 기가 막혀서, “아니 길거리에서 길을 묻다가, 누가 초왕부 사람이라고 하면 믿어버립니까?”“본인이 초왕부의 탕대인이라고 했습니다.” 청년 도인은 얼굴이 빨개져서, “경성에 들어갈 때 물어봤는데 태자 전하 주변에 분명 가신으로 탕양이란 사람이 있다고.”서일이, “명패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까?”“했습니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