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태상황 우울한 우문호건곤전에는 여전히 어두운 공기가 짙게 깔려 있고 상선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아서 며칠 전 우연히 깼다가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한마디 하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의가 중풍으로 오는 잠이라고 하지만 태상황은 여전히 걱정하며 종일 상선을 지키고 있다.명원제 부자가 같이 오는 것을 보고 약간 의외인지 그들과 같이 복도에 나가서 앉았다.3세대가 한 자리에 앉아 있으니 오히려 할 말이 없는데 특히 태상황의 심정이 여전히 안 좋다.명원제는 계속 말이 없고 아버지 앞에서는 더욱 말수가 줄어서 우문호 혼자 화제를 찾아보지만, 같이 얘기할 만한 게 없어서 결국 명원제는 자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일부러 자리를 피해 할아버지와 손자만 남겨두니 분위기가 비로소 부드러워 졌다.우문호가 태상황을 위로하며, “상선은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태상황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지도, 상선도 마침내 쉴 수 있겠어. 과인의 시중을 드느라 한평생을 다 보냈지, 고생 했어.”태상황은 원경릉의 상황을 묻더니 듣고나서 더욱 어두워졌다.우문호는 잠시 함께 있다가 나와서 초왕부로 돌아오니 냉정언이 집에 와 있길래 그와 서재에서 잠시 얘기를 나눴다.“어제 올라 온 상소를 폐하께서 답을 내리셨는데 형부 쪽에 있던 넷째 사람을 전부 전출 시키셨어, 폐하께 무슨 생각이 있으신 모양이야. 하지만 이 일은 천천히 해야 해. 한 방에 넷째 사람을 추락시킬 수 없지, 이렇게만 해도 대대적으로 정비하시는 거야.”“알았어.” 우문호가 조용히 말하는데 지금 그 일은 그다지 서두르지 않고 있다.“그리고, 안왕비 쪽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아.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쳤는데 상처가 계속 덧나고 좋아지지 않는 게, 이동중이라 제대로 된 의원도 없고 상당히 난감한 모양이야.” 냉정언이 계속 말했다.우문호가, “자네가 계속 사람을 보내 살폈어?”“폐하께서 보낸 사람에게서 매일 소식이 날아오니까.”“가는 길에도 유명한 의원이 있는데 왜 멈춰서 치료하
강북부만두는 연속으로 보름을 갔고 너무 즐거워서 돌아오는 걸 잊을 지경이었다.슬슬 우문호는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구술만 가능해서 이 임무때문에 만두가 조금 힘든 게 편지를 외워야 하기 때문이다.만두가 돌아와 우문호에게 자신이 이미 원씨 집안에서 스타가 되었다며 다들 자기를 보고 싶어 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한다고 했다.우문호는 순간 과분한 사랑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장문의 편지를 썼는데, 10줄도 넘게 원경릉을 잘 대해줄 것, 아이들을 잘 가르칠 것, 할머니께 효도할 것을 약속하고 모두에게 한 마디 씩 안부를 묻고 날씨 얘기까지 덧붙여 편지의 요소를 모두 갖추었다.그리고 우문호가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주지의 말로 만두는 매일 진전이 있다고 했다. 약은 이미 개발되어 첫 시험을 거쳤고 지금 두번째 시험이 시작됐으며 위급한 상황이라 시험기간을 상당히 단축했다고 했다.만약 두번째 시험도 통과하면 보름 이내에 사용할 수 있다.보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나 하루하루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고통스럽다.안왕은 이미 강북부에 도착했다.가는 길에 안왕비의 상황은 좋았다 나빴다 했고 상처는 낫지 않았지만 아주 심하게 악화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부부는 이전처럼 그렇게 서로 사랑하지 않고 안왕비는 대부분 아무 말이 없고 안왕도 안왕비를 보러 가지 않은 채 사람을 보내 보고만 받았다.강북부는 가난해서 사람들이 우악스럽고 조정의 다스림을 따르지 않았으나, 위왕이 온 뒤로 강북부 관아와 백성을 구휼하는 일련의 정책을 실시하고 반란군을 진압해 점점 평화로워 졌다.하지만 여기는 경성의 번화함과 비교할 바가 못 되고 먹고 쓰는 것 모두 조악해서 의관도 의원도 있지만 의술은 상당히 낙후해 있었다.안왕 일행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성에서 의원이 하나 내려왔는데 태자가 보낸 사람으로 의원을 위왕 쪽으로 일단 보낸 뒤 다시 위왕이 안왕에게 보냈다.안왕이 위왕에게 냉소를 지으며, “왜? 원수를 은혜로 갚으시겠다? 다섯째가 언제부터
위왕의 폭로안왕은 욱한 마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위왕에겐 켕기는 구석이 있어서 위왕이 멋대로 지껄이는 걸 참아야 했다.“그럼 형을 식사 초대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그럴 필요 없어, 의사가 진찰을 마치면 가서 그녀 얼굴을 보고 몇 마디만 묻고 바로 갈 거야.”안왕이 놀라서, “그녀를 만난다고? 형이 왜 만납니까?”“좀 물어보게, 자기가 마차에서 뛰어 내린 건지 아니면 네가 민 건지.” 위왕이 차갑게 말했다.안왕이 순간 길길이 날뛰며, “당신의 악랄한 흑심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밀었다고 그녀를 압박하려 하다니. 그래서 상소문에 아내를 살해하려 한 죄까지 씌우려고?”“상소문?” 위왕이 웃으며 위험한 눈빛이 일렁이더니, “널 때리면 되는데 상소 왜 해. 너에 대해 상소를 올리면 왔다 갔다 적어도 한달은 걸리지만 널 때리는 건 바로 효과가 있거든!”“우문위!” 안왕이 탁자를 치고, “사람을 지나치게 괴롭히지 마, 지난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면 당신이 여기서 함부로 떠들게 가만 놔뒀을 것 같아? 오냐오냐 해주니까 욕심 작작 부려.”위왕은 조금도 꿀리지 않고, “욕심을 작작 부릴 사람은 너지, 아바마마께서 병환이실 때 너 다섯째한테 뭐라고 그랬어? 형제 사이에 싸움을 멈추고 왕자의 난으로 아바마마를 상심 시키지 말자고? 외부에서 노릴 틈을 주지 말자 더니 그리고 너 무슨 음모를 꾸몄어? 너랑 홍엽이 결탁한 일, 대충 넘어갈 생각 하지도 마, 결판을 지을 때가 오니까.”“막말로, 형은 여전히 고지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안왕은 오히려 냉정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비웃으며, “전부 나한테 덮어 씌웠지만 고지의 미혼술이 왜 원경릉한테는 안 먹혔게? 감정에 솔직하면 효과가 없지. 그런데 유독 형한테는 효과가 있었지? 형이 만약 정말 솔직하게 사랑이 깊었으면 고지의 사술에는 왜 걸렸어? 게다가 그녀와 아이까지 가지고.”“그 애가 내 아이인가?” 위왕은 별로 화내지 않고, 오히려 냉정하게, “네가 좋은 뜻으로 그런 추악한 일을 얘기하는 모양인데, 넌 정
안왕비와 위왕위왕은 안왕과 말싸움을 하며 하인이 가져온 현지 차를 마셨는데 차 기운이 강한데 마시는 동안 습관이 되었다.이에 반해 안왕은 한 입 맛보고 잔을 던지며, 이게 뭐야!잠시 후 의원이 나와 보고하길, “왕야, 안왕비 마마의 상처는 지금도 고름이 있는 상황이고 미열이 나고 있어서 상처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지도 모릅니다.”안왕이 듣더니 웃으며, “그렇게 심각해?”“왕야, “ 의원이 예를 취하고, “왕비 마마의 이마에 이미 부종이 엄청나게 심한 것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상처 주변에 고름이 쌓여 부어 올랐습니다. 상황이 비교적 좋지 않습니다. 방금 제가 왕비마마의 상처를 씻고 약분말을 도포했고 이 약분말은 썩은 살을 제하는 작용을 해서 탕약을 배합해서 앞으로 적어도 보름은 치료를 하시면 차도를 보이실 것입니다.”안왕이 입을 꾹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으며 음침한 표정이다.위왕이, “왕비는 지금 의식이 또렷한가? 몇 마디 물을 말이 있는데.”“왕야께 아룁니다. 왕비 마마는 의식이 맑으십니다.”위왕이 일어나, “그럼 됐네, 자네는 나와 같이 한 번 더 가고 시녀 둘에게 안에서 시중을 들게 해라.”안왕이 벌떡 일어나 막으려 하자 위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훑어보며, “그녀를 다치게 할 마음이 없는데 넌 뭐가 초조해?”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안왕은 열 받아서 얼굴이 굳어지고 고민 끝에 역시 따라갔지만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서 있는데 안색이 복잡하다.안왕비가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의원이 방금 약을 발라서 시녀는 누워서 쉬라고 권했지만 싫다고 하고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위왕을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나 예를 취하며, “셋째 아주버님을 뵙습니다!”“예는 됐습니다. 앉으세요!” 위왕이 안왕비의 상처를 보니 확실히 심하다. 온 이마가 띵띵 부어 올라서 혹부리 영감의 혹이 이마에 달린 거 같은 게 놀랄 정도다.다시 보니 몸은 홀쭉하게 말랐는데 안색이 창백하고 눈가도 붉게 부은 것이 계속 울었던 모양이다.
안왕비의 부탁안왕비가 작은 소리로, “쓸데없는 생각 하지 않아요. 태자 전하께서 정말 그이와 맞서려 하시면 널린 게 구실인데, 계속 당하는 입장에 있지 않으셨겠죠. 하지만 이번엔 분명히 제가 뛰어 내린 겁니다. 그이와는 상관 없어요.”“정말 입니까?” 위왕이 미심쩍어 했다.“예,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이가……어떤 사람인지를 떠나 저에게는 잘해요.” 안왕비의 눈빛이 복잡하다.위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됐습니다. 구체적인 건 저도 묻지 않겠습니다. 잘 쉬세요. 저는 갑니다.”“아주버님 안녕히 가세요!” 안왕비가 바로 일어났다.“배웅하실 필요 없습니다. 쉬세요!” 위왕이 돌아서서 성큼성큼 나갔다.문이 열리자 안왕이 얼른 돌아서 복도 저쪽으로 가는게 보였다. 위왕은 안왕의 부자연스런 동작을 노려보고 냉소를 짓더니 사라졌다.위왕이 가자 안왕이 천천히 돌아와 입구에서 주춤거리다가 결국 다시 뒤를 돌았다.“왕야, 기왕 오셨으니 안으로 들어오세요.” 안에서 안왕비 목소리가 들렸다.안왕이 진정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안왕비는 의자에 앉아 서책을 들었는데, 말라 비틀어진 얼굴에 안색은 창백한 채로 상처는 벌겋게 부어올라 있다. 며칠을 피해오던 안왕의 차가운 심장이 훅 무너져 내렸다.“적응은 좀 됐어?” 안왕이 작게 물었다.안왕비가 가볍게 한숨을 쉬고, “여기는 경성과 비교할 수 없지만 마음은 편해요.”“당신은 걱정할 필요 없어, 여기 오래 있을 거 아니니까. 돌아갈 방법이 있어.”안왕비가 고개를 흔들며, “여기가 싫어요? 전 여기서 일생을 보내고 싶어요.”안왕이 차갑게, “그래, 넌 결국 그런 식이야. 외부 사람을 도우면서 날 비난하지.”안왕비가 서책을 내려 놓고 걸어와 안왕의 손을 잡고 은은하게, “이렇게 지내요 네? 우리 돌아가지 말고 경성에서의 모든 일은 다 잊고, 싸움 없이, 권력다툼 없이, 명예도 영화도 필요 없어요. 그저 우리 둘이 같이 지내요 네?”안왕이 복잡한 눈빛으로 안왕비를 보며, “난 모르겠어. 쉽게 대답할 수가 없어.”
남강의 상황부부의 대화는 여기부터 교착 상태에 빠졌다. 안왕비는 말재주가 없어서 안왕을 설득할 방법이 없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안왕이 강북부에 있으니 아무리 태자의 자리를 원해도 결국 몸이 천리나 떨어져 있다. 하지만 안왕은 돌아가기 전에 진정으로 사과의 말을 했다. “그날 마차에서 내가 했던 말은 지금 생각해보니 바보 같았어, 용서해 줘. 앞으로 다시는 그렇게 당신을 의심하지 않을 게. 하지만 당신도 이렇게 자해하지 마. 난 어쨌든 당신이 마음에 걸려. 내가 아무리 바보 같은 짓을 많이 해도 당신의 마음을 다치게 한 적은 없어.”안왕은 말을 마치고 갔다.안왕비는 한동안 슬퍼하다가 돌아가 자리에 누웠다. 속으로 경성이 그리웠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어, 돌아가면 또 예전처럼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게 되겠지. 순진한 척 하던 가면을 벗어버렸으니, 이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할 수 없으니까.’북당의 대군은 조정으로 돌아오고 숙나라는 참패 후 영토를 할양했는데, 대주는 숙나라의 영토를 할양받는 대신 오히려 원래 선비족 성제(聖帝)의 손자를 황제로 옹립하는 것을 도왔다.독고가 전사하고 집안은 처참하다고 하리 만치 홍엽공자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홍엽의 행방이 밝혀졌는데, 그가 남강으로 들어가 재빠르게 남강 북쪽의 지지와 추대를 받은 것으로 볼 때 남강에서의 활동이 상당히 오래 되었으며, 남강은 홍엽의 퇴로라는 것을 알 수 있다.상기할 수 밖에 없는 게 10년 전 남강왕이 살해되면서 남강은 오합지졸이 되었던 것도 홍엽의 작품이었다.이건 물론 추측일 뿐 증거는 없다.남강은 북당의 국토지만 서북쪽에 치우쳐 있고 북막과 접경 지역으로, 북막과 남강 본토 사람이 모여서 살고 있는데 남강은 조정과 계속 사이가 좋지 않고 그나마 남북의 나뉘어 있다가, 45년전 헌제가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 남강에 주둔시키며 남강왕을 추대했다. 이 남강왕은 자연스럽게 조정에 충성을 다해서 북당은 남북의 분할 통치를 타파하고 정권을 하나로 통일해 남강은 안정을 찾았다.하지만
팔황자와 구황자팔황자는 기뻐서 구황자를 안고 웃고 뛰며 자기 방에서 보물 한 무더기 골라 아홉째 동생에게 주겠다고 했다.그 보물들은 다른 사람들에겐 쓰레기일지 몰라도 여덟째 형에게 있어 진귀한 보배라는 걸 아홉째는 알고 있었다.여덟째의 보물에는 장난감, 등나무공, 붓, 직접 만든 화첩에 나무로 조각한 호랑이 상이 있는데 터럭 하나하나 살아있는 듯한 조각으로 구황자가 앞으로 분명히 산을 내려온 호랑이처럼 위엄이 넘칠 거라고 했다.그리고 우문천은 명원제에게 상으로 받은 황금 500냥 중 절반을 뚝 떼서 팔황자에게 주었는데 팔황자는 황금을 좋아하지 않고 어마마마한테 많다고 했다.하지만 우문천은 자기 힘으로 번 첫 포상이니 형과 나누고 싶다고 해서 팔황자가 받기로 하고 자신의 보물상자 안에 넣어두도록 했다.팔황자 곁에 사람은 거의 황후가 배치한 사람이라 우문천이 팔황자를 찾아온 것을 황후에게 보고했다.황후는 우문천에게 마음속으로 응어리가 맺혀 있다. 비록 나귀빈이 자신을 죽이려 한 사실은 진상이 밝혀졌으나 그동안 황후는 나귀빈의 두 아이를 못 살게 굴어 왔다. 지금 우문천이 다 커서 옛일을 떠올린 다면 원한이 생기지 않을 리 없으므로, 우문천이 자기 팔황자를 해칠 까봐 상당히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황후는 불안했다. 자신이 비록 중궁의 자리에 있지만 황제의 미움을 받는 황후인 데다 미련한 아들과 맹한 아들이 딸려 있고 친정도 받쳐주지 않으니 황후 자리가 결코 편하지 않았다.그래서 고심 끝에 우문천을 오라고 불렀다.우문천은 황후를 상당히 두려워하는 게 예전에 황후가 나타난다는 건 재앙이 생긴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군에서 단련되고 전쟁에 참전하면서 마음의 공포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깨달았다.중궁에 도착해 예의를 다해 황후에게 대례를 취했다.황후는 구황자의 태도가 정중하고, 친왕으로 책봉을 받았으므로 이전처럼 대할 수 없었다.어마마마의 신분으로 화기애애하게 군에서의 생활을 묻자 우문천은 일일이 대답하며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의젓했다.구
발길을 끊어우문천이 놀라 얼른 변명하며, “어마마마, 소신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네가 그렇지 않은 걸 나도 안다, 네가 팔황자에게 잘 하는 것도,” 황후가 웃고 있으나 눈은 쌀쌀맞게, “하지만 네 여덟째형은 보통 사람과 달라서 보호가 필요하고 난 그 아이의 모친으로 반드시 그 아이를 지켜야 해, 다른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이용당하지 않도록.”우문천의 눈빛에 어둠이 스치며, “소자, 형을 이용한 적 없습니다.”황후가 웃으며, “그간 내가 널 어떻게 대했든 네 여덟째형은 늘 네 편을 들고 널 위해 나셨지. 순수한 마음으로 너에게 잘하는 것에 감동 했어. 그래서 네가 그를 이용했든 아니든 다 지난 일이니 앞으로 너희 형제 두 사람은 갈 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고 왕래를 삼갔으면 좋겠구나. 그 아이가 너에게 너무 기대해서 부담이 되지 않게 말이야. 넌 총명하니 내 말뜻을 알겠지?”우문천은 눈을 내리 깔고, “소자 알겠습니다.”황후는 우문천에 위로하듯, “그럼 됐어, 넌 철든 아이라는 걸 안다. 맞아, 여덟째가 너에게 준 장난감, 전부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니 함부로 못쓰게 하면 안돼, 그 물건은 너에겐 별 쓸모도 없는 것들이니 가져가지 말고 여덟째에게 돌려주거라.”우문천이 이 말을 듣고 당황하며 바로 코끝이 찡해 지더니 눈을 들어 거의 애원하다시피, “어마마마, 형이 저에게 준 건 전부 소중히 간직할 겁니다. 소신이 가져가게 허락해 주세요.”황후는 좀 기분이 상해서, “폐하께서 널 순친왕(順親王)이라고 봉하실 때 순(順)의 뜻을 알고 있느냐?”우문천은 무릎을 꿇고 간절히, “어마마마, 소자 보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최대한 여덟째형을 찾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물건은 소신에게 추억으로 남겨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황후는 순왕의 이런 비굴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좀 편안해 지면서, “내가 널 위해 예물을 준비했으니 넌 그 예물을 가지고 궁을 나가거라, 가, 내가 좀 피곤하구나.”“어마마마!” 우문천이 마음이 급해서 한 걸음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