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양상원경릉은 다음날 일찍 할머니를 모시고 제왕부로 갔다.어의는 할머니를 지극히 존경하는 태도로 대했고 할머니가 진맥을 한 뒤 세사람이 의견을 나누더니 처방전을 약간 고치고 분량을 그에 맞게 증가시켰다.할머니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 원용의의 상황은 비교적 심각하나 원용의는 무술을 연만한 사람으로 체력이 있어서 빠르게 출혈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이면 중량을 늘려야 하는데 무공으로 인한 기본 체력이 있으므로 약을 증량해도 원용의는 버틸 수 있다.어의도 자신이 처방한 약이 다소 경미하다는 생각은 했으나 제왕비는 존귀한 신분으로 함부로 용량을 늘릴 수 없었는데 할머니가 이렇게 지적해 주시니 얼른 용량 증가에 동의했다.원경릉도 엽산을 남겨두며 영양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고 당부하며 예를 들어 양젖이나 과일을 먹으라고 했다.할머니의 처방은 어의의 약에 기초해 용량을 증가시킨 것으로 어의의 동의를 얻어 처방전을 궁으로 보냈다. 황후가 원판을 불러 처방전 내용을 분석하게 했더니 원판이 이렇게 약을 쓰면 효과가 더 좋아질 거라고 했다.황후가 원판의 분석을 듣고 처방을 보존한 뒤 명령을 내려 어의에게 이 처방대로 하고 효과가 어떤 지 지켜보라고 했다.이 처방대로 5일쯤 복용하고 나자 점점 효과를 보이며 원용의는 출혈이 없어졌으나 어의의 분부대로 열흘 간은 계속 침대에 누워지내며 관찰하기로 했다.제왕부에 소복단(銷服丹)이 더 왔는데 이번엔 원용의의 구토와 어지러움을 어느 정도 멎게 해서 원용의도 좀 편안해 지고 먹는 것도 늘어서 상황이 점점 호전되고 있다.제왕은 좋아 죽겠는지 매일 경조부에서 돌아와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아내 곁을 지켰다.원용의는 원래 제왕의 진심을 조금 의심하고 있었던 게 어쨌든 둘은 태상황의 약때문에 다시 하나로 묶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제왕이 이렇게 자상하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마음 속의 불안이 서서히 사라졌다.5월 28일, 숙나라와 대주, 북당의 전쟁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전쟁이 시작된 이래 원경릉은 매일 가슴을 졸이며 밤에
홍엽의 반역독고가 저지른 짓은 6국의 분노를 샀으나, 누구도 쉽게 전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특히 목표가 자기가 아니므로 출병해서 군비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을 한 번 치르면 은자 천만 냥은 훅 나가는 데다 경제, 농경이 어려워 지는 건 이루 말할 수가 없다.하지만 때론 국가의 존엄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번 토론에서 대흥과 대염(大炎) 왕조는 출병해서 지원하며 이번 7국의 난국을 하루빨리 끝내기를 간절히 원했다.가장 중요한 건 숙나라 독고의 야심이 너무 커서 만약 제압하지 않으면 다시 전쟁이 일어날 화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당도 좋은 소식을 전해왔는데 마침내 무기가 제조되어 전차는 무성까지 운행해 다음 전투부터 참전이 가능하게 되었다.포위전은 개전 4개월 만에 결국 돌파구를 찾았다.숙나라는 이미 멸망 일보직전으로, 특히 정권을 빼앗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을 시작해 조정 중신들의 반발이 상당했고, 조정 대신의 과반수 이상은 전왕조인 성원제(聖元帝)의 원로 대신으로 국내에서도 독고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일었다.그리고 뜻밖에 이 성토 물결의 복판엔 홍엽 친왕이 있었다.홍엽 친왕은 성원제의 자손을 황제로 옹립해야 한다는 쪽을 옹호하며 독고의 폐위를 주장했다.대의를 위해 가족에게 단호하게 칼을 들이대는 모습은 숙나라에서 큰 환영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독고는 북당에서 데리고 돌아온 사생아가 마지막에 자신의 천하통일 꿈을 부수고, 심지어 산사태가 나듯 자신의 병력을 패배 시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만들 거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독고는 격노했으나 전쟁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로 몸을 빼 홍엽과 대적할 수조차 없었다.홍엽은 이때 신비하게 사라져 버렸는데 동시에 그 10만의 병력도 사라졌다.원경릉은 이제 임신 4개월째가 되어 대략 우문호는 자신이 임신 6개월일 때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던 원경릉은 이날 무거운 배를 이끌고 황귀비에게 문안인사를 하기 위해 입
명원제에게 임신 사실을호비가 계속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만약 다른 비빈이 들었으면 호비가 총애를 믿고 거만하게 군다고 하겠지만 황귀비는 호비의 성격이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말을 돌려서 하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웃으며, “말은 그렇지만 어쨌든 황조부시니 폐하께서 아셔야지.”“이번에 태자비가 그이에게 보여주려고 자랑스럽게 입궁한 거 아니예요?” 호비가 웃으며 원경릉에게, “그이에게 오라고 할까?”원경릉이 얼른, “그럴 수는 없지요, 아바마마께서 바쁘신 일을 마치시면 문안 드리러 가겠습니다.” 호비는 걸핏하면 황제에게 오라고 하지만 태자비는 그럴 수 없는 것이 법도를 지켜야 하기 때문으로 만약 법도를 어기면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된다.황귀비가 이미 사람을 시켜 황제가 쉬시면 바로 와서 알리라고 했고 원경릉이 반 시진 정도 앉아있으니 어전에서 사람이 와서 황제가 간식을 드실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이때 태자비가 문안을 드리러 가도 되겠다고 했다.황귀비가 태자비와 같이 가고 호비는 가지 않은 게 십황자를 데리러 가야 했다.명원제는 편전 온돌방에서 간식을 먹는데 이때 만약 낮잠을 자지 않을 경우 대부분 차를 마시며 정신을 차린다. 원경릉이 곧 온다는 얘기를 듣고 간식을 1인분 더 준비시켰다.“태자비도 한동안 입궁하지 않았군.” 명원제가 땀을 닦는데 상당히 덥다.목여태감이 웃으며, “그러게요, 폐하께서 지난번 제왕부에 가서 제왕비의 태아를 돌보는 일을 금하신 후로 태자비 마마를 뵌 적이 없습니다.”“쩨쩨해!” 명원제가 콧방귀를 뀌며, “반드시 태자비가 아니면 안되는 것도 아닌데 제왕비의 태아는 지금 잘 크지 않느냐?”“폐하, 그건 노마님이 직접 가서 약재 분량을 조절하시고서야 태아가 안정된 것으로, 노마님께 가시자고 청한 것도 태자비입니다.” 목여태감이 일깨워 주었다.명원제가 얼음을 채운 매실차를 마시고, “흠, 태자비의 공로라고 할 수 있겠군. 나중에 상을 내리마.”“태자비 마마는 받은 상을 전부 모아두셨습니다.” 목여태감이 입을 가리고 몰래 웃
원경릉에게 남은 기한“살찐 거군!” 명원제는 실망을 금하지 못했다.황귀비가 황제의 실망을 눈치 채고 다가와 살짝 밀며, “폐하, 살쪄서 좋지 않습니까? 살이 찌면 통통한 아이를 낳을 수 있어요.”명원제가 대답하며, “맞아 그렇지, 통통한 아이를 낳는 건 좋은 일이야. 열째 삼촌처럼…… 아니다, 됐다. 열째 삼촌은 닮지 마라. 그 꼬마 돼지가 얼마나 무거운지 짐이 이제 안지도 못 하겠어.”십황자는 확실히 토실토실한데 어릴 때부터 먹는 걸 좋아하고 방귀를 잘 뀌지만 귀엽게 생겨서 포동포동한 양 손을 뻗으면 명원제의 애간장이 살살 녹는다.그래서 아들 얘기를 할때 얼굴은 싫은 표정이지만 눈빛엔 사랑이 깊이 베어 있다.명원제는 원경릉이 임신한 사실이 좋았는데 이 기쁨을 감추지 않고 차용증이 아니라 번쩍이는 금을 하사하고 창고에 가서 이름난 산해진미를 원경릉이 가지고 가서 먹고 싶으면 뭐든 먹으라고 했다.둘째는 구출되었고 다섯째는 승전을 앞두고 있으며 두 며느리가 임신을 했으니 명원제는 일시에 인생이 절정이 올랐다는 생각이 들며 대 사면을 명했다.대 사면은 일종의 특별 사면으로 북당은 인구가 밀집된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노동력이 사실 부족한 편이라 대사면 후 범죄자가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북당의 노동력이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사형수는 사형 범위에서 제외된다.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가 막 1개월을 지날 때였고 지금 4개월째로, 즉 주지가 제시한 3개월의 기한이 이미 다 됐다.원경릉은 몸에 이상을 느끼지 못한 것이 후배가 성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도했다.원경릉 생각에 이 일은 아무도 모르므로 몰래 어려운 고비를 한번 넘은 것이다.궁에서 나온 지 3일째 되는 날 저녁,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서 얘기를 들려 주는데 만두가 갑자기 원경릉의 목을 안고, “엄마는 왜 아직 안 돌아가요?”원경릉은 별 생각없이, “어디로 돌아가는데?”“돌아가서 주사 놓게요. 엄마 약효가 거의 떨어져 가요.” 만두가 원경릉의 무릎에 엎드려 말했다.원경릉이 만두
꿈꾸고 싶어아이들을 얼러서 재우고 원경릉은 거울 앞에 자신의 머리를 비춰보며 아이들의 능력은 자신에게서 온 것이니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건 자신도 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제 아무리 유전이라도 아이들에게 유전된 뒤로 그녀 본인에게는 이 능력이 사라졌다고 하는 건 말이 안된다.몸에 주사한 약품 때문이라고 쳐도 이럴 수 없는 게, 약품을 주사해서 이미 그녀의 세포가 변했는데 변해버린 게 어떻게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거지?그럼 주지가 이번에 주사에 성공했다고 치면 원경릉은 일정 시간 후에 또 한번 주사를 놔야 하는게 아닐까?만두가 말한 빛이 난다는 가설은 원래의 신체가 지금 신체를 제어하는 연결점으로 만약 연결이 끊어지면, 의식도 주지가 말한 약품 능력에서 온 것이므로 이 신체를 제어할 수 없다. 그 말은 이 신체는 뇌사상태에 빠진다는 건가?인체의 호흡 중추는 간뇌에 있어서 간뇌의 기능 손상은 호흡기능 정지를 가져오고, 신체의 기타 기관과 조직도 산소공급이 없기 때문에 점차 기능을 상실하다가 뇌가 사망한 후 이 신체도 죽는다.원경릉이 여기까지 생각하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우문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도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원경릉은 죽을 수 없다.주지는 원경릉을 속인 걸까 아니면 연구에 성공할 수 없었던 걸까?마음속으로 여러 번 생각하고 약상자를 열며 기적을 볼 수 있기를 바랬다. 주지가 말하길 약상자는 원경릉의 의식이 제어하는 것으로 원경릉은 지금 간절히 그 약품이 필요하다.하지만 반복해서 여러 번 약상자를 열었다 닫았다 해봐도 마음속으로 바랬던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원경릉은 이번에 정말 절망했다. 그리고 이 절망의 기운은 계속 원경릉을 휩싸고 돌아 떨쳐버릴 수 없었다.불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가서 엎치락뒤치락 잠이 들지 않는데 여기서의 모든 것 모든 가족, 아이들을 전부 잃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아니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 모든 희망을 주지에게 걸 수는 없어, 원경릉은 꿈 속으로
한 맺힌 손왕 부부이것이 현재 유일한 방법이다.다시 말해 그녀는 위험을 피할 방법이 없다. 주지가 지금 하려는 것은 원경릉의 남은 약효를 추출해 호흡 시스템,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녀를 위해 시간을 벌어주어 원경릉과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다.현 단계에서 원경릉은 주지를 완전히 믿을 수 밖에 없다.그래서 원경릉은 자신의 일을 최대한 처리했는데 특히 이 일은 할머니에게 말하고 때가 돼서 원경릉이 의식 불명상태로 휴면에 들어가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전부 할머니의 협조가 필요하다.원경릉이 이 소식을 말하자 할머니가 충격을 받았으나 금방 반대로 원경릉을 다독이며 주지가 원경릉에게 반드시 끝까지 돕겠다고 약속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원경릉이 할머니를 안고 목이 메면서, “미안해요, 맨날 걱정만 끼쳐드리고.”할머니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바보야, 할미가 뭐 하러 여기 왔는데? 너 걱정 덜어주고 위험할 때 구해주기 위해서야. 아무리 엄청난 일이 닥쳐도 걱정 마라, 할미가 있어. 하늘 안 무너진다.”원경릉은 가슴이 너무 아픈 게 만약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를 이 세계 시공간에 떨궈 놓는다는 말이라 불효 막심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아이들도 요즘 약간 어쩔 줄 몰라서 원경릉에게 들러붙어 있는데 특히 찰떡이는 원경릉이 목욕이나 샤워하는 동안도 밖에서 지키고 있고 잠도 가서 자지 않고 원경릉과 같이 잔다.찰떡이가 심하게 불안해 하고 경단이와 만두는 좀 나은 편이지만 긴장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만두는 최근 늘 혼자 생각하다가 경단이와 어떻게 하면 엄마를 도울 수 있을까 얘기했다. 경단이는 모르고 찰떡이도 모르고 세 아들은 심각하게 고민했다.아이들은 남다른 능력이 있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고 원경릉의 뱃속에서 나와서 신체는 원경릉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에너지는 원경릉보다 엄청 대단할 게 틀림없다.주지는 원경릉이 꿈을 꿀 때 한 말 뜻은 안다. 원경릉이 이 신체의 일상적인 활동을 유지하는데 이미 에너지의 일부분을 상당히 사용했
특수 능력원경릉은 이때 연회에 참석할 마음이 아니고 언제 쓰러질지 몰라 매일 극도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래서 손왕비의 초청을 거절하며 몸이 불편하다고 다음에 방문하겠다고 했다.하지만 미색이 요즘 원경릉이 집에서 심심한 것을 보고 와서 내일 분명 연극을 볼 수 있다고 꼬시며 같이 가서 신나게 보자고 했다.미색은 원경릉이 3개월때 알고도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속으론 부러운 게 자기는 임신하고 싶은데 임신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할머니도 원경릉에게 종일 집에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좀 나가라고 했다. 원경릉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두려움만 커져가고 계속 집에 있어 봤 자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미색에게 알겠으니 내일 같이 손왕부에 가자고 했다.우리 떡들은 밤에 원경릉에게 찰싹 붙어 잠이 들었고 원경릉은 침대에 누워서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오히려 또렷해 졌다.원경릉이 배를 만지자 4개월이 좀 넘으니 태동이 있어 매일 원경릉 뱃속에서 아이가 움직이지만 원경릉은 이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엄마 뱃속에 있는 아가는 남동생이예요 여동생이예요?” 찰떡이는 원경릉 배에 엎드려 물었다.“모르겠네, 찰떡이는 남동생이었으면 좋겠어 여동생이었으면 좋겠어?” 원경릉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남동생이요.” 찰떡이는 경단이와 만두를 부러워하는 게 둘 다 남동생이 있기 때문이다.“여동생이요!” 만두와 경단이가 반대하는 게 자기들은 남동생은 있지만 여동생은 없다.원경릉이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너희들은 엄마 머리 속에 있는 것도 보잖아? 그럼 너희들이 직접 봐, 엄마 뱃속에 아이는 남동생이야 여동생이야?”만두가 원경릉을 보고 엄마는 멍청하다고 생각하며, “엄마 머리에는 빛나는 게 있어서 볼 수 있는 거고, 여동생은 반짝이지 않는데 어떻게 봐요?”원경릉이 만두를 안고, “그럼 너는 경단이와 찰떡이 머리에 있는 빛나는 물체도 볼 수 있어?”세 사람이 서로 쳐다보더니, “우린 빛 안 나는데요.”“안 나?” 원경릉은 상당히 이상하다고 생각
손왕비를 만나다“그이는 먼저 가고 전 태자비 마중 온 거예요.” 미색이 뛰어내려 찰떡이를 안아 올리며, “어머 어머, 우리 꼬마 어르신, 더 무거워졌네.”“여섯째 숙모, 우리 엄마 무거워요. 안을 수가 없어요.” 찰떡이가 애기 티를 내며 얘기했다.우리 떡들은 오늘 똑같이 붉은 색 짧은 비단옷을 입었는데 날씨가 덥기 때문으로 옷을 특별히 짧게 만들어 다리가 드러나고 머리카락은 입하(入夏)때 잘라서 짤막하니 정수리에 조그맣게 상투를 틀고 옷과 같은 붉은색으로 머리 띠를 묶어 선명하고 예쁘다.미색이 세 꼬맹이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원경릉에게, “제가 아기를 못 낳으면 하나 데려와서 키울 거예요. 아니면 배속에 있는 그 아이 저 주세요.”원경릉이 아직 답하기 전에 세 아이가 한 마디로 거절하며, “안돼요, 저 애는 우리 거예요.”미색이 하하 웃으며, “너희들 놀린 거야, 너네 엄마 배가 이렇게 부른데 딱 봐도 엄청 잘 먹을 거 같은데 숙모가 데려가면 숙모 재산 다 먹어 치워 버릴 걸?”아이들이 듣고 얼굴 색이 살짝 변하더니 걱정스럽게 원경릉을 바라보는데 진짜 잘 먹게 생겼다.원경릉이 세 아이들을 안으며, “요 바보 녀석들, 여섯째 숙모가 너희를 놀린 거야. 숙모네 재산은 우리 5식구가 10번을 태어나도 다 못 먹어 치워.”경단이가 울적한 얼굴을 하고 미색 앞으로 비집고 오더니 손을 뻗어 미색의 목을 잡고 조그만 얼굴을 대고, “여섯째 숙모, 숙모를 좋아해요. 저 집으로 데리고 가실 래요?”미색이 하하 웃으며 한 손으로 경단이를 안더니 원경릉에게, “봐요, 이 녀석 기둥서방 소질이 있어요.”원경릉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웃고 떠들며 손왕부에 도착해서 만아는 제일 무거운 만두를 안고 마차에서 내리고 미색은 한 손에 하나씩 안고 사람들에게 원경릉이 넘어지지 않게 부축하라고 시켰다.손왕비가 입구에서 기다리며 원경릉이 오는 것을 보고, 일단 배를 보고 놀라고 다가와 안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해서, “태자비, 살아서 돌아와 만날 수 있어서
역병이 거의 통제되자, 일행은 오계부를 떠나려 했다.그치만 오계부 일대의 풍경이 워낙 아름답고 바쁜 일도 마무리 지었기에, 그들은 천천히 길에 올라 풍경을 감상하며, 백성들의 모습과 풍습을 구경하기로 했다. 드디어 모두의 바람대로 이번 순행을 여행처럼 즐길 수 있었다.한편, 현대에서 지내는 삼대 거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행을 즐기고 있었는데, 소요공의 영상이 인기를 끈 이후, 그들은 가는 곳마다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아직은 국내에서만 여행 중이기에, 가이드는 그들을 위해 캠핑카를 준비해 주었다.그 덕분에 그들은 도착하는 곳에서도 편히 잘 수 있었다.곳곳을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여러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 게다가 몇몇 인플루언서들이 쫓아다닐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특히 소요공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가는 곳마다 영상을 찍으며 무예를 자랑했다.만약 추 어르신과 무상황이 단호하게 막지 않았다면, 그는 경공까지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가 정말 경공을 보여주었다면, 다들 여행은 커녕 숨어다녀야 할 것이었다.경공은 원래 있는 것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무예를 익히지 않았기에, 소용공은 사람들이 무예를 배우도록 격려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그렇게 소요공이 원하는 대로, 그는 무예를 배우는 열풍을 일으켰다.경공을 공연하지는 않았지만, 무술을 할 때의 무술과 권법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하며, 존경하게 했다. 게다가 무술을 배우고 있는 몇몇 블로거들이 소요공과 무예를 겨루겠다며, 그들을 따라다녔다.어떤 사람은 그저 조회수를 위한 것이고, 어떤 사람은 진지하게 실력을 겨루고 싶었지만, 소요공은 웬만한 자들은 모두 무시할 뿐이었다.그런데, 그 중 유아독존이라는 자가 계속해서 소요공의 영상에 늙은이가 CG를 사용한 것이라며 욕설이 담긴 댓글을 남겼다. 게다가 발차기할 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타를 썼다고 단언까지 했다.처음에는 욕만 했지만, 나중에는 직접 겨뤄보겠다며 전쟁을 선포했는데, 소요공은 결국 화가 치밀어
사흘 후, 황제와 황후는 조정 신하들, 그리고 오계부의 각 관리와 함께 각 곳의 의관을 찾아, 고마움과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들이 역병이 돌고 있던 시기에 헌신한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마다, 백성들은 모두 크게 환호를 해주었다. 모두들 모여들어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보려고 했다. 다들 황제와 황후를 보고, 젊고 아름다우시며, 다정하고 친근하다며 입을 모아 칭찬했다. 다들 그들을 따라다니며 ‘황제 만세, 황후 만세’를 외쳤다. 위로를 받은 의원들은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 게다가 특히 황제는 그들과 악수까지 했다. 비록 의원들은 악수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황제와 손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그들은 황제와 마주한 손을 바라보며, 역병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이라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하루 종일 바삐 돌아다닌 탓에, 경성에서 온 신하들이 지치기도 전에 오계부 관리들이 먼저 지치고 말았다. 아무래도 관직에 오른 이후로, 그들은 마차가 아닌 두 발로 오랫동안 걸은 적도 없었기에 힘든게 당연했다. 이때 사식이가 몰래 원경릉에게 말했다. "원 언니, 백성들이 이렇게 폐하를 좋아하는 것을 보니, 저도 감동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원경릉이 웃으며 대답했다. "백성들은 배불리 잘 살게 해주는 황제를 좋아하니깐." "네, 폐하께서 더 대단해 보이십니다." 사식이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뒤에서 걷고 있던 미색이 그들의 대화를 어렴풋이 듣고는 다가가 물었다. "누가 대단히 취했단 말이냐?" "하하하. 머리에 술만 있는 것이오?" 사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힐긋 노려보았다. "당연한 소리. 밖으로 나왔으니, 술도 한잔하고 풍경도 보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반 달도 넘게 아무것도 즐기지 못했으니." 미색이 답했다. "힘든 것이냐?" 원경릉이 물었다. "힘들진 않지만, 오계부 일을 마지막으로 이번 순행에 다시는 문제가 생기지 않기만
일행은 주 지부를 따라가며, 먼저 마스크를 착용했다. 사식이는 말을 타고 바르르 떨고 있는 주 지부를 보고는, 몰래 미색에게 말했다. "지부 대인 참 불쌍하오. 이렇게 아프면 하인을 보내 맞이하면 되지, 굳이 직접 나오다니." 사식이는 궁에 오래 지내며, 우문호와 원경릉과 가족처럼 지냈는데, 우문호와 원경릉은 늘 그녀에게 매우 잘해주었고, 아껴주었다. 그래서 사식에게 있어, 우문호는 여전히 초왕 오라버니였고, 원경릉은 여전히 그녀의 원 언니였다. 미색이 웃으며 말했다. "사식아, 주 지부에게 황제는 하늘과도 같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신데, 맞이하지 않을 셈이냐?" 사식이 웃으며 답했다. "그럼, 맞이해야 하겠네." 관아에 도착한 후, 우문호는 먼저 원 할머니를 뵈러 갔다. 그러고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아, 관아 관리들의 예를 받았다. 관아의 모든 사람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우문호는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고, 그저 역병 퇴치를 위해 전력을 다하라는 명만 내렸다. 전 오계부가 하나가 되어 힘을 합친 결과, 5일 만에 병에 걸린 환자 수가 집계되었기에, 의서는 특별히 중증 환자를 전담하고 치료하는 곳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원경릉과 원 할머니가 직접 나서서 치료를 도맡게 했다. 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한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오계부의 의원을 동원해야 했기에, 우문호는 주 지부에게 외부에 공지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리고 그가 이곳에서 상황을 지휘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식이 퍼지자, 각지의 의원들은 매우 협조적이었다. 다들 낮은 진료비를 받고 백성들을 치료했다. 치료에 쓰이는 약재는 모두 나라에서 각 의원에 배분해, 의관에 약값 부담을 주지 않게 했다. 다들 한마음이 되어 사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의 목표, 즉 역병을 치료하고 퇴치하여 황제에게 성과를 보이려 했다. 다들 오계부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황제가 알아주기만을 바랐다. 그들은 황제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다. 황제 덕분에 그들은 평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