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여도를 외웠다고?“기억나?” 우문호가 화들짝 놀라다가 곧 원경릉이 오해했다는 것을 알고, “어디가 바뀐 건지를 아는 것으론 부족해. 바뀌기 전이 뭐였는지 알아야 하거든.”“나 기억하는데, 그 부호…… 부호 아니고 그건 일종의 문자야. 말했잖아 나 안다고. 자기들이 계속 연구한 게 병여도였어? 제조 방식이 아니고? 고쳐진 부분 내가 자기한테 얘기했는데.” 원경릉이 이마를 쳤다. 원경릉은 계속 그들이 어떻게 주조할지 궁리하고 있다고 생각한 게, 병여도를 해석하는 사람을 대주에서 보내오지 않은 게 중도에 살해당했다고 생각했지 아직 바뀐 부분을 규명하고 있을 줄 몰랐다.우문호가, “당신이 얘기 했지. 하지만 바뀐 부분이 원래 뭐였는지 얘기 안 했어. 그리고 이 일은 꽤 신중해야만 하는 일로 당신도 알아야 해. 작은 부분 하나라도 그르치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어. 우리가 이런 전차에 대해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그 구조나 작동방식을 알지 못해. 정정에게 들었는데 그 전차 제조에 성공한 뒤 말이 끌 필요가 없고 사람은 안에 앉아서 발판을 밟으면 앞으로 갔다고 해. 그리고 보호덮개로 전차를 모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하니 작은 부분도 실수해서는 안돼. 작은 오차에도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원경릉이, “전차 제조에 대해 난 아는 게 없고, 구동방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지만 자기가 나한테 병여도를 그려보라고 하면 그릴 수 있거든. 못 믿겠으면 내가 그려줄 게. 다 그린 다음에 그 부호를 문자로 바꿔줄 테니 병부에 가져가서 보여봐. 병부 주조서(鑄造署)는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난 그릴 수만 있고 해석은 못해. 자기가 잘 생각해봐.”우문호는 원경릉이 이토록 수월한 듯 얘기하니 차마 흥을 깰 수가 없어서, “그래 당신이 만일 시험삼아 그리면 일곱째를 시켜 병부에 가져가서 그 가짜 병여도를 가져와 당신이 회상한 게 완벽한지 볼 수 있게 해 줄게.”“그럴 필요 없어, 가짜를 나에게 줘. 내가 혼란 시킬 수 있어. 내 머릿속에 기억한 건 전부 진짜 병여도야.”
병여도가 드디어제왕이 병여도를 가져와서 우문호는 제왕과 함께 서재 문을 밀고 들어가니, 원경릉이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들고 바닥에 놓인 병여도의 먹을 말리고 있는 것이 벌써 다 그렸다.우문호가 놀라서 손에 든 가짜 병여도를 펼쳐 두 폭의 그림을 찬찬히 비교하는데 놀랍게도 바뀐 부분을 제외하고 정말 완전히 똑같다.만약 먹 흔적이 아직 젖어 있지 않았다면 우문호는 원경릉의 이 그림이 원래 잃어버렸던 병여도라고 생각할 뻔 했지만 물론 종이질도 다르기는 하다.제왕이 화들짝 놀라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원경릉을 숭배의 눈동자로 바라보며, “세상에, 형수님은 정말 신이십니다.”우문호도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이 감격해 원경릉을 안고 몇 번이고 뽀뽀하며, “원 선생 머리 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전부다 기억하고 있다니 너무 대단해,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원경릉은 만아에게 불을 건네 주더니 손목 관절을 풀고, “내 잘못이야, 진작에 자기가 아직도 병여도 원본 그림에 매달려 있는 줄 알았더라면 그려줬을 것을. 하지만 자기도 잘못 했어. 예전에 어디가 바뀌었는지 얘기했는데, 똑바로 기억하지 않다니.”우문호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이 말을 듣고, “당신 기억력이 이렇게 엄청날 줄 내가 어떻게 알아? 당신은 바뀐 부분이 어디인지만 알고 원본이 어땠는지 기억 못하는 줄 알았지. 그리고 당신이 얘기한 변경된 부분에 대해 나도 확실하지 않고.”“대주에서 보낸 기술자는 입막음을 당한 거야?” 원경릉이 물었다.“응.” 우문호가 분하다는 듯, 지금 병여도가 있는데 주조 기술자가 살해당해 북당이 무기를 제조하는 길은 아직도 더듬어 가야 한다.“다시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면 안돼?” 이제 병여도가 있으니 병장기 제조에 참여한 적이 있는 사람이 오기만 하면 되는데 쉬운 일 아닌가?“요청했지. 하지만 대주에 핵심 기술자가 많지 않은 데다 대주가 전쟁을 앞두고 있어 한창 제작 중이라 파견할 수가 없어, 대주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을 더이상 잃어서는
이심전심다음날 원경릉이 손왕부로 가고 얼마 되지 않아 우문호에게 입궁하라는 성지가 내렸다.명원제가 병여도를 보더니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몇 번이고, “정말 태자비가 그려낸 것이냐?”“맹세코 그렇습니다!” 우문호가 상당히 으쓱했다.“말도 안돼!” 명원제가 기뻐하다가 곧 뻔뻔스럽게, “그려낼 수 있었으면서 왜 지금까지 끌었지?”“소자 태자비가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습니다.”“물어보지 그랬어?”“어떻게 물어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일도 그렇지만 전부 태자비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정사라 여자가 간섭해서는 안되지요.”명원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태자비가 무슨 여자야? 지금 일당백의 남자로 상을 줘야겠구나.”“차용증 망극합니다 아바마마!” 우문호가 얼른 한쪽 무릎을 꿇고 감사의 예를 올렸다.명원제는 우문호가 시대의 요구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 매우 흡족해서, “금족하는 기간동안 뭘 배웠느냐?”“무공을 단련했고, 병서를 조금 더 읽었으며, 위태부가 보내 온 치국책도 읽었습니다.”“꽤 충실했구나. 짐을 욕한 적은 없었느냐?”우문호가 활짝 웃으며, “감히 어찌, 소신 아바마마께서 멀리 내다보신 것에 경탄했습니다. 그런데 아바마마께서는 숙나라의 변화를 어찌 아셨습니까? 설마 진작부터 밀정을 심어 놓으신 건지요?”명원제가 콧방귀를 뀌며, “홍엽이 북당에 사람을 심어 놓을 줄 아는데, 짐이라고 독고 주변에 사람을 심어 놓을 줄 모를까? 독고의 일거수일투족을 짐은 손바닥 보듯 훤히 들여다 보고 있지. 선비 황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부터 있었으니 이번 사태는 오래전부터 계획해 왔던 건데 짐이 대비하지 않을 리가 있나?” “아바마마께서는 참으로 현명하고 능력이 출중하십니다!” 우문호가 탄복하는데, 황제가 된다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로 뭐든 사람들보다 앞을 내다보고 생각해야 한다.“단지……” 명원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예상밖으로 네 둘째형이 경솔하게 나서고 말았어. 주변에 쓸 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 큰 일을 아무도 언질을 주지 않
손왕비에게 당부를손왕비가, “정말 얘기한 거야? 다섯째가 화 낸 거 아냐?”원경릉이 웃으며, “화냈죠, 자기가 왜 그렇게 흥을 깨는 소리를 했는지 화냈어요. 하지만 좋은 뜻에서 였어요. 형이 멀리 간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숙나라까지 가시게 되니 숙나라와 우리가 긴장 관계인 걸 알아서 걱정한 거죠. 다른 뜻은 없었어요. 싫은 소리 한 뒤에 잘못을 깨달었더라고요. 하지만 금족 기간이라 나올 수가 없네요. 안 그랬으면 오늘 직접 와서 둘째형에게 사과했을 거예요. 나중에 둘째 아주버님께 말씀 전해주세요. 동생 미워하시지 않게요.”“자네 둘째 아주버님은 싫은 건 기억 안 해. 벌써 원망은 잊었지. 오늘 다섯째에게 술을 보냈는 걸,” 손왕비도 형제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길까 걱정했는데 원경릉의 이 말을 듣고 안심하며 원경릉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 “우리 안에서 얘기해. 미색이랑 안왕비도 왔어.”“형님,”원경릉이 발걸음을 멈추고, “먼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얘기는 그 다음에 해요.”“그래, 우리 편청으로 가자.” 손왕비가 원경릉을 데리고 앞장섰다.편청에 들어가서 원경릉도 차를 들이라 하지 않고 앉자마자 손왕비에게, “이번에 먼 길을 가시는데, 아주버님께서 원행을 거의 하지 않으셨으니 믿을 만하고 눈치 빠른 인재를 데리고 가시는 게 좋겠어요. 사촌 소 아주버님은 식견이 넓고 천하를 주유하셔서 데려 가시기 안성맞춤이예요. 적어도 가는 길에 무슨 뜻밖에 일이 생겨도 소 아주버님이면 해결하실 거예요.”손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태자비 말이 일리가 있네. 소씨 집안 작은 도련님이 전에 남편 문하로 들어왔던데 마침 잘 됐어, 태자비 말 대로 상식이 풍부하고 밖을 오래 돌아다닌 사람을 데리고 가면 안심이지.”“맞아요. 그리고 호신에 무술 정통한 사람을 붙여야 해요, 어쨌든 이번에 가시는 곳이 숙나라인지라, 능력 있는 사람이 몇 명 있어야 저희도 안심이 되죠. 안 그래요?” 손왕비가 웃으며, “역시 태자비가 꼼꼼하네. 좋아, 있다가 남편에게 얘기할 게.”원경릉
뭐 오만냥?원경릉은 정말 웃지 못하겠는 게 둘째 아주버님은 나서지 않는 사람이지만 음모와 이어지는 계략을 버티지 못하실 텐데. 원경릉도 아무 생각없이 먹고 마시다가 두통이란 핑계를 대고 미색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다.길에서 원경릉이 미색에게, “수하에 절세 무공의 사람이 적지 않다고 들었어. 이번에 몇 명 딸려 보낼 수 있을까? 그 사람들 움직이는데 은자가 얼마나 들어? 내가 낼 게.”미색이, “몇 명이나 필요하신 데요?”“3~4명이 좋겠어. 아니면 5~6명?”미색이 주판을 두드려 보더니, “이번에 가는 숙나라는 적국이라 위험도가 높아요, 우리와 늑대파가 수익을 5대5로 나누는데 늑대파 수익은 안 받고 그 사람들 고용하는 비용만도 5만냥이고, 깎아줘서 4만냥 정도로 하죠.”원경릉이 이를 악물고 4만냥을 쓰는 건 가슴이 미어지지만 늑대파 고수는 이 돈 만한 가치가 있으며 단가로 치면 사실 비싼 게 아닌 게 두 달을 가는데 한 명당 고작 8천냥이니 안전확보라는 측면에서 이 돈은 지불할 만 했다. “좋아, 그럼 5명 준비해줘. 여자가 2명이어서 둘째 형님을 밀착 경호했으면 좋겠어.”“그런것도 가능해요 한 명당 4만냥이니 5명이면 20만냥, 지폐로 줄 거예요 아니면 금은으로?” 미색이 물었다.원경릉이 숨이 꼴까닥 넘어갈 듯 뭐, 20만냥? 아이고 맙소사, 차라리 날 죽여라, 날 죽여!“속 쓰린 거 알아요,” 미색이 입을 가리고 몰래 웃으며, “이렇게 하죠, 이 은자는 제가 낼 게요. 어차피 전 돈 걱정 없으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계속 공짜로 도움만 받고 살 수는 없어. 미색 은자도 땅 파서 나온 거 아니고, 이리나리가 그러시는데 미색이 쥐고 있는 은자는 전부 전에 임무로 벌어들인 거라고. 그거 전부 목숨 걸고 번 돈이잖아. 그걸 아까워서 어떻게 써.”“그게 뭐요? 전 아직 젊어서 다 쓰면 또 벌면 되는데요.”원경릉이 쓴웃음을 지으며, “나 좀 살려줘, 여섯째가 알면 미쳐버릴 게 틀림없어.”미색이 잘 이해가 안되는지, “그런데
식어버린 여자 마음다음날 위풍 당당하게 사절단이 출발했다.미색은 5명을 사촌 소형과 같이 내부에 따라 보내 전부 6명으로, 그 중 두사람은 여자 자객에 강호에서도 상위 50위 안에 들어가는 자들이지만 손왕 부부에게는 신분을 숨기고 초왕부에서 시중 들라고 배치해 준 하인이라고 했다.가기 전에 우문호는 사촌 소형에게 신신당부하며 수행하는 5명의 진짜 신분을 알려주고 오가는 길과 숙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들과 상의하면 된다고 했다.사촌 소형은 이 일의 위험성을 알고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했으며, 그저 무탈하게 돌아오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사절단이 출발한 뒤 성지가 초왕부에 도착해, 태자는 원직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주조서에서 무기를 주조하고 감독하는 것을 돕도록 했다.태상황의 병세가 호전되었으나 별장에서 지내는 게 편해서 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두에게 문안오는 것도 면해 주어, 시간 나면 가서 보고 짬이 안나면 각자 바쁜 일을 볼 수 있게 했다.원경릉은 여전히 아이들을 데리고 별장에 살았고, 사식이도 가서 초왕부는 다시 우문호 혼자 있는 상태가 되어 탕양, 서일 등 몇몇 남자들과 같이 지냈으나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오니 바빠서 기진맥진했다.원경릉도 사실 별로 시간이 나지 않는 게 의대에 가서 돕고, 때때로 초왕부에 돌아가서 남편 비위도 맞춰주고 양쪽 살림을 하느라 바빴지만 충실한 나날이었다.그러던 중 원용의가 갑자기 짐을 싸 들고 별장에 와서 원경릉이 태상황 시중을 드는 걸 돕겠다고 했다.사식이가, “언니는 지금은 황실의 며느리도 아닌데 왜 태상황 시중을 들어요?”원용의가 자기 집 동생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태상황 폐하는 북당 백성의 황조부신데 내가 와서 시중들면 안돼?”사식이가 구시렁거리며, “가능하긴 한데 원래 집에서 할머니 시중든다고 하지 않았어요?”“할머니 주변엔 사람이 많고 별장에는 사람이 적으니까.” 원용의가 약간 켕기는 게 있어 보였다.“할머니가 언니한테 또 남편감 찾아보라고 한 거 아니예
안절부절별장으로 오는 건 훨씬 번거롭지만 원씨 집안사람의 안색을 살필 필요는 없었다. 원씨 집안 사람이 사실 제왕에게 호의가 있는 게 아니라 한사코 선물을 들고 가지만 언제든 대문밖으로 쫓겨날 가능성이 있었다.제왕이 원용의에게 들러붙기 전에는 냉정하고 도도한 이미지더니, 지금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철면피다.원경릉은 원래 원용의를 설득할 생각이었으나 그러면 원용의에게 반감만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왕은 여자들은 전부 겉 다르고 속 다르다며 뚱땡이가 말로는 싫다고 해도 정말 싫은 게 아니라며 심리적 방어선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을 뿐이며 이렇게 죽자고 철면피처럼 매달리는 거엔 그녀가 화낼 리 없고, 자기가 이렇게 철면피처럼 매달리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낼 거라고 했다.원경릉은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어느 날 과연 제왕이 오지 않자 원용의가 그날 종일 안절부절 대문 쪽만 계속 바라보면서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했다.다음날 제왕이 또 오지 않자 원용의가 못 버티겠는지 밥 먹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봐요, 제가 그랬잖아요. 한때라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여자보다 심하다니까요.”마침내, “변덕쟁이, 믿을 수가 없어!”사식이와 원경릉은 몰래 웃으며 둘이 말을 이어서 할 차례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희상궁이 원용의의 이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생기긴 무슨 일이 생겨요? 들고날때 사람을 줄줄 데리고 다니는데.” 원용의가 구시렁거렸다.“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병에 걸리셨으면 아무리 사람이 따라다녀도 걸릴 병은 걸리고 말죠.” 희상궁이 사람을 시켜 들어와 식탁을 정리하게 하고 한숨을 쉬며, “사람이란 말이죠, 애들 장난 같아요. 언제 사라질 지 장담할 수 없으니 소중한 건 소중히 여겨야 해요.”원용의가 희상궁 말에 살짝 두려워져서, “그럴리가요?”“누가 압니까? 어떤 사람은 말이죠, 아차 하고 떠나 보내면 그게 평생이랍니다. 저한테 배우시면 안 돼요. 아가씨.” 희상궁이 말을 마치고 나갔다.원용의의
제왕이 아프다사식이가 피식 웃으며 원경릉에게, “원 언니, 변덕스런 여자 보셨어요? 딱 이래요.”원경릉도 웃으며, “됐어, 그만 괴롭히고 얘기해 줘.”사식이가 그제서야, “방금 사람을 보내서 제왕 전하께서 이틀간 병으로 열과 기침이 심하니 몸이 좋아지면 다시 오겠다고 하셨어요.”“아팠다고? 심하데?” 원용의가 듣더니 긴장했다.“말로는 꽤 심한 가봐요, 경조부도 못 나가고 하인이 전하러 왔을 때 아직 열이 난다고 했으니까.” 원용의가 걱정이 돼서, “열이 난다고? 줄곧 몸이 약했는데 의원에게 보였겠죠?”“내가 있다가 사람을 시켜 해열제 보낼 게 걱정하지 마.” 원경릉이 말했다.원용의가 ‘네’하고 생각해보더니, “밖에 비가 많이 와서 별장 갈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제가 다녀올 게요. 약 저한테 주세요.”“정말 언니가 가려고요?” 사식이가 원용의에게 상당히 경고하는 듯한 말투로, “만약 가면 제왕 전하는 언니가 마음을 돌리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언니한테 더 심하게 매달릴걸요.”“부부가 아니어도 친구잖아. 위급한 걸 보고 가만 있을 수는 없어.” 원용의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뭐가 위급하다는 거야? 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야. 그냥 열 좀 나는 건데? 요즘 날씨가 따듯했다 추웠다 해서 아픈 사람 많아. 태상황 폐하도 요 며칠 또 기침하시는 걸.”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제가 가볼게요.” 원용의는 체면도 잊고 원경릉에게 약을 달라고 했다.원경릉과 사식이가 눈을 마주치고 약을 건네 주며, “봐요, 언니가 갈 줄 알았다니까.”사식이가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언니, 어색하게 굴지 좀 마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서 약 가져다 주러 가는 건 또 뭐예요? 됐어요, 이제 가면 제왕 전하는 또다시 형부인 걸로.”원용의가 사식이를 팰 듯하자 사식이가 웃으며 도망가고 원용의가 콧방귀를 뀌며, “갔다 와서 봐 너.”“알았으니까 일찍 다녀와. 밖에 날이 어둡고 길이 미끄러운데다 비가 많이 오니까 조심하고, 말은 문 앞에 준비해 놨어.
체온을 측정해 보니 무려 40도였다.“고열이오. 또 다른 증상은 없소?”원경릉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 병까지 든 다섯째가 안쓰러워졌다.우문호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소. 그저 재채기 몇 번에 조금 어지럽고, 코가 막히며 목이 약간 찌릿한 정도네. 별일 아니네.”원경릉은 서둘러 청진기를 꺼내 심장과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비를 맞아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듯했고,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다.그녀가 말했다.“해열제를 먼저 먹고 주사를 맞은 후, 푹 자고 나면 내일 괜찮아질 것이오.”그녀는 해열제를 찾아내자, 서일이 바로 물을 준비해 왔다. 우문호는 해열제를 삼킨 뒤, 바로 물을 마셨다.이는 그가 약을 먹을 때 늘 하는 습관이었다.원경릉은 주사기를 꺼내 약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사기를 손에 들자마자, 우문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꼭 이걸 맞아야 하오?”“주사를 맞으면 빨리 낫습니다. 바쁘다 하지 않았소?”원경릉이 부드럽게 그를 달랬다. 우문호는 약은 한 움큼씩 먹을 수 있는 반면, 주사는 몹시 무서워했다.옆에서 서일도 말을 보탰다.“아프지 않습니다. 금방 끝날 겁니다.”“근육 주사가 제일 빠르오. 정말 안 아플 거라네.”원경릉이 웃으며 덧붙였다.우문호는 바쁜 나랏일을 떠올리며 더 이상 아프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주사의 아픔을 참기만 하면 내일 나은 몸으로 조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좋소. 그럼 빨리 낫게 두 대 놓으시게!”우문호가 용기를 내어 웃으며 말했다.“마마…!“그때 밖에서 녹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쥐들이 갑자기 우리를 부수고 탈출했습니다. 궁녀를 시켜 잡았지만, 두 마리나 놓쳐 버렸습니다.”원경릉은 쥐들이 대나무 우리를 부술 정도로 강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급히 주사기를 약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다섯째, 조금 있다가 돌아와서 다시 주사 놓겠소.”그러자 우문호
이 약은 사실 원경릉이 맡은 프로젝트가 아닌, 그녀의 실험실에 있던 다른 전문가팀이 진행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전문가가 뜻밖의 사고로 행방불명이 되면서 양여혜가 그녀에게 팀을 이끌고 연구를 이어가도록 했다.원경릉은 연구 단계에 처한 약을 약상자에 넣어 가져온 후 실험용 쥐에게 주사했다. 그녀는 궁에 간단한 실험실을 마련해 실험용 쥐를 관찰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기본적인 작업을 했다. 하지만 심도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현대로 돌아가야만 했다.부부는 각자의 일로 바삐 보내며, 이삼일 동안 식사도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전형적인 바쁜 부부의 모습이었다.며칠 밤을 상의한 끝에 우문호는 과거시험 문제를 정하고 주 시험관을 명했다. 그리고 천제를 올려, 이번 과거시험에서 나라에 유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늘에 기원했다.그렇게 천제 의식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의식은 중단되었다. 제단 위에 있는 우문호와 대신들은 비에 흠뻑 젖었지만, 의식을 끝까지 마쳐야 했다. 천제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비를 맞은 탓에 연신 재채기 했다.그는 궁으로 돌아가자마자 녹주가 끓여준 생강차를 연거푸 두 그릇 마셨다. 원경릉이 아직 돌아오지 않자, 우문호는 다시 어서방으로 가서 내각에서 올린 상소문을 검토했다. 내각에서 올리는 상소문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일반적인 문제는 냉정언이 먼저 확인한 후, 바로 처리했다.자시까지 바삐 보내고 난 후, 우문호는 몸 상태가 점점 이상하고 어지럽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문턱에 앉아서 졸고 있는 목여 태감을 보며, 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버거움을 느꼈다.황위에 오른 후, 우문호는 거의 아픈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달아 밤을 새우고 비까지 맞은 데다 환절기에 찬바람을 맞으니 감당하기에 더욱 어려웠다.하지만 우문호는 일을 마저 처리하려 억지로 애를 썼다.목이 조금 말랐지만, 목여 태감을 깨우기 귀찮아진 그는 차갑게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을 이어갔다. 상소문을 보자마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물었다.“참, 아이들과 그룹… 채팅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계란이가 이 일을 안다고 한 적 있소?”“우린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소.”원경릉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나도 들어갈 수 있소?”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마 안 될 것이오. 그룹 채팅은 단지 별칭일 뿐, 당신이 현대에서 본 통신 앱과 같은 것이 아니오. 우리는 의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라, 당신은 함께할 수 없소.”“그렇군.”우문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원경릉은 그가 조금 서운해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를 안고 말했다.“당신도 참. 지금까지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당신한테 숨긴 적 없이 모두 말해줬으니, 기분 나빠하지 마시오.”“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계란이가 모르고 있다가 속상해할까 봐 걱정되는 것 뿐이라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시오. 계란이는 아직 사내를 좋아할 나이가 아니오.”우문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의 노파심으로 인해 작은 문제도 크게 보기 마련이었다.이 드넓은 세상을 아이들이 마음껏 탐험하는 것은 괜찮지만, 혹여나 아이들이 속상해할까 봐 늘 걱정이었다.한편, 요즘 다섯째는 과거시험으로 인해 바쁜 일상에 조금 지쳐 있었다.과거 시험장은 항상 부정행위로 난무하는 곳이었다. 과거로 인재를 등용하려는 조정의 목적과 달리, 일부 관리들은 그저 돈 벌 기회로 여길 뿐이었다.그래서 지금 주 시험관 자리를 차지하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지난해까지는 냉 수보가 항상 주 시험관을 맡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시험관들의 부정행위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이 일로 우문호는 3년에 한 번씩 화를 내곤 했다.올해 냉 수보는 주 시험관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겠다고 말하고 이 직책을 내려놓았다.최근 새로운 세금 제도를 추진하느라 바쁜 터라, 주 시험관직까지 겸할 시간이 없었다. 이에 우문호가 직접 시험관 선발 과정을 엄격히 관리하기로 했다.북당
택란은 순간 단순히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대한 보답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린 황제는 어린 시절부터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기에, 란이라는 자의 언니와 몇 년을 함께 보내며 정이 생겼을 가능성이 충분했다.어쨌든, 단순히 은혜를 갚기 위해 은인의 언니와 결혼하는 것은 말이 안 되었고, 다소 억지스러웠다. 게다가 그가 왜 그 란이라는 사람이 정말 자신의 은인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사람을 데려갔을지도 의문이었다. 어쩌면 일을 맡은 부하가 임무를 대충 하며 거짓말을 꾸며냈으니, 어린 황제가 그 란이라는 사람에 대한 은혜 때문에 섣불리 믿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어린 시절의 감정이 가장 순수한 법이니까.“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오직 발전만을 목표로 합니다!”주 아가씨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감정 문제는 공주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아직 어리기도 하기에 혼담은 스무 살까지 미뤄도 늦지 않았다. 아니면 그녀처럼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한편,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냉명여가 짐을 싸는 택란을 보며 물었다.“누나, 멀리 가는 것입니까?”“금국 량주에 다녀오려고 한다.”택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싸는 손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그러자 냉명여의 눈이 반짝였다.“량주요? 그럼 나도 데려가면 안 됩니까? 량주에 변신술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가고 싶으냐? 그래.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말을 잘 들어야 한다!”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잘 듣겠습니다! 꼭 약속하지요!”냉명여가 급히 다짐했다.“좋다. 그럼 가서 짐을 싸거라. 내일 출발할 것이니 서둘러야 할 것이다.”택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냉명여는 기쁜 얼굴로 쏜살같이 방으로 달려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이때, 이를 본 주 아가씨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데려간다니요? 아직 어린아이인데… 귀찮게 굴지 않을까요?”“괜찮소. 지금 아직 어리니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해야 하오. 계속 저택 안에만 두면 아무것도 스스로 못하는 아이로 자랄 뿐이네. 그건 냉 대인과 홍엽 아
세월이 흘러, 택란이 열한 살 되던 해에 드디어 만두가 돌아왔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으로 성장해 돌아왔다. 그리고 떡들 세 명은 만으로 따지면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다.만두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황제의 허락을 받고 군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국경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력이 항상 군사력의 안정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군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먼저 군심을 얻어야 한다.우문호는 그의 선택을 전폭 지지하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를 작은 병사로 임명하여 군에 들여보냈다. 약도성은 이미 재건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다. 백성들도 마음을 다잡았고, 이제는 본격적인 발전만 남아 있었다. 이리 나리와 홍엽이 이곳에 왔을 때, 냉명여를 약도성에 남겨두었는데, 호명이 챙기려 했으나, 냉명여는 택란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꽤 고집이 센 아이기에 그는 그저 놔두기로 했다. 변경은 심지를 단련하기에 좋은 곳이었고, 호명이 보살펴 주며 저택 안에 거주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제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는 원래 약도성 접경 지역에 새롭게 지은 곳으로 옮겨졌고, 이름 또한 량주로 바뀌었다. 금나라는 이제 공식적으로 량주를 수도로 정했다.이 소식이 약도성에 전해지자, 택란은 무척 기뻐하며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이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도 될 것 같소. 금나라에 한 번 가볼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그 해 택란은 훌쩍 성장해 주 아가씨보다 조금 더 커 있었다. 주 아가씨는 때때로 그녀를 보며, 대나무가 환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 사이에 또 훌쩍 자란 것이다.택란의 아이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훨씬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도성의 거센 바람과 강한 햇빛 때문에 원래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빛을
우문호는 정정이 계란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보아하니 혼인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은 합의를 봐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정정 대장군 부부는 경성에서 반 달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정정과 우문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타거나, 군영과 산을 누비며 백성들을 살폈다.대두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비록 처음 이틀 동안은 계속 만두를 보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만두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는 란이와도 갈등을 풀었고, 오히려 제일 친해져서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했다.그렇게 2주가 지나 정정이 작별을 고하기 전, 우문호에게 대두의 배필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대두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누구요?”정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말할 수 없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잘못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네.”“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어딨소?”우문호는 그의 말에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그러자 정정이 더욱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들으면 자네가 조급해질까 봐 그러네!”우문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지금 이미 엄청 조급하네.”정정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철썩 때리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게. 계란이는 아니네. 계란이는 내 딸이기도 하니, 절대 며느리가 될 수 없소.”다른 남자가 계란이를 자기 딸이라 부른 건 처음이었지만, 우문호는 반감 없이 오히려 매우 기뻐, 활짝 웃으며 말했다.“맞네, 자네 말이 맞아. 계란이는 자네 딸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의 착한 딸이지.”근영군주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원경릉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우리가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맞는 말입니다!”원경릉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장구치자 근영군주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봅시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다는 말입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눈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