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이 아프다사식이가 피식 웃으며 원경릉에게, “원 언니, 변덕스런 여자 보셨어요? 딱 이래요.”원경릉도 웃으며, “됐어, 그만 괴롭히고 얘기해 줘.”사식이가 그제서야, “방금 사람을 보내서 제왕 전하께서 이틀간 병으로 열과 기침이 심하니 몸이 좋아지면 다시 오겠다고 하셨어요.”“아팠다고? 심하데?” 원용의가 듣더니 긴장했다.“말로는 꽤 심한 가봐요, 경조부도 못 나가고 하인이 전하러 왔을 때 아직 열이 난다고 했으니까.” 원용의가 걱정이 돼서, “열이 난다고? 줄곧 몸이 약했는데 의원에게 보였겠죠?”“내가 있다가 사람을 시켜 해열제 보낼 게 걱정하지 마.” 원경릉이 말했다.원용의가 ‘네’하고 생각해보더니, “밖에 비가 많이 와서 별장 갈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제가 다녀올 게요. 약 저한테 주세요.”“정말 언니가 가려고요?” 사식이가 원용의에게 상당히 경고하는 듯한 말투로, “만약 가면 제왕 전하는 언니가 마음을 돌리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언니한테 더 심하게 매달릴걸요.”“부부가 아니어도 친구잖아. 위급한 걸 보고 가만 있을 수는 없어.” 원용의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뭐가 위급하다는 거야? 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야. 그냥 열 좀 나는 건데? 요즘 날씨가 따듯했다 추웠다 해서 아픈 사람 많아. 태상황 폐하도 요 며칠 또 기침하시는 걸.”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제가 가볼게요.” 원용의는 체면도 잊고 원경릉에게 약을 달라고 했다.원경릉과 사식이가 눈을 마주치고 약을 건네 주며, “봐요, 언니가 갈 줄 알았다니까.”사식이가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언니, 어색하게 굴지 좀 마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서 약 가져다 주러 가는 건 또 뭐예요? 됐어요, 이제 가면 제왕 전하는 또다시 형부인 걸로.”원용의가 사식이를 팰 듯하자 사식이가 웃으며 도망가고 원용의가 콧방귀를 뀌며, “갔다 와서 봐 너.”“알았으니까 일찍 다녀와. 밖에 날이 어둡고 길이 미끄러운데다 비가 많이 오니까 조심하고, 말은 문 앞에 준비해 놨어.
태상황의 당부“좋아요!” 원용의가 약을 입안에 넣자 약에서 맑고 향기로운 향이 난다고 생각했다. 먹고 나자 몸이 따듯해 지는 게 감탄이 절로 났다. “진짜 신기한 약이네요.”상선이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뜨더니, “어서 가세요, 어서요. 길에서 시간 버리지 마시고.”원용의가 붉은 색 약을 다시 병에 넣고 주머니에 잘 챙기더니, 날아오라 말에 타서 손을 흔들며, “상선, 어서 들어가세요. 젖어서 감기 걸리지 말고.”원용의가 채찍을 휘두르자 말이 쏜살같이 빗속을 달렸다.상선이 웃으며 돌아서서 천천히 침전으로 돌아가 보고했다.“태상황 폐하, 아가씨가 약 드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먹은 게 녹색이지?”“예, 녹색입니다.” 태상황이 ‘음’하더니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감고, “이 일은 해결된 셈이지? 아직도 애를 써야 하다니 원.”상선이 우울하게, “해결이 되기는 됐는데, 수단이 좀 비열하긴 합니다.”“비열하긴 뭐가?” 태상황이 눈을 부라리며, “서로 좋아하는데 뭐가 비열해? 비열하기로 치면 원씨네 그 계집애가 비열하지. 약은 걔가 가져다 주는 거니까 내 손자를 원망 못해.”“원노부인이 만만치 않으실 텐데요. 나중에 번거로워지면 곤란합니다.” 상선이 걱정했다.“과인은 더 만만치 않아!” 태상황이 한숨을 쉬며, “과인은 이미 관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데 원노부인이 어디 간이 크면 와보라고 해.”상선이 웃으며, “약한 것도 이유가 되네요.”태상황이 천천히 일어나서 밖에 빗소리를 듣더니, “그러고보니, 주대유가 한동안 안 왔어.”“아프시답니다.”그동안 주대유는 계속 건강하고 과인은 계속 큰 병 작은 병이 끊이지 않았지. 그만할 때가 됐어. 주대유도 좀 쉬어야 해. 지금 태자도 보니 쓸 만하고 이번 정세가 안정되면 주대유도 이선으로 물러날 수 있겠어. 더는 북당을 위해 물불을 가리고 돌진하지 않아도 되게 말이야. 그동안 북당은 주대유에게 큰 빚을 졌어.”“그러게 말입니다. 희야도 사실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있어요. 가서 시중을 들고 싶어도 태상황 폐
제왕을 찾아간 원용의원경릉이 약상자를 들고 밖에 서 있는데 비바람이 불지만 안에서 싸우는 낮은 소리가 아주 또렷하게 귀에 들어와 박혔다.괜한 말다툼으로 상선도 대담하게 들이 받았지만 사실 눈 앞에 닥친 현실을 얘기한 것이다.태상황은 올해 68세, 상선도 71세로 둘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지내며 하고 많은 일을 겪어왔다. 이름은 주종관계라고 하지만 감정은 이미 가족을 이기고도 남는다.인생에서 제일 힘든 건 바로 그렇게 평생을 함께 한 사람을 갑자기 잃은 것이다.원경릉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 안으로 들어갔다.안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뚝 그쳤다. 원경릉이 입꼬리를 올리고 붉어진 눈가를 가리며, “환자분, 혈압, 심장소리, 맥박 검사하고 약 드리러 왔습니다.”태상황은 상선과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는 듯 원경릉에게, “마침 잘 왔어, 내일 성질 급한 인간이 주대유더러 별장에 와서 요양하라는 성지를 전하러 가는데 태자비가 좀 같이 봐줘.”“알겠습니다!” 원경릉이 웃으며, “희상궁이 좋아서 죽겠는데요.”태상황이 킥킥 웃으며, “오늘밤 기쁜 사람은 희상궁 한 사람이 아니야. 일곱째도 좋아서 죽을 걸.”“제왕 전하가요? 당연히 좋겠죠. 원 아가씨가 보러 갔는데.”“혼례 준비해. 황제가 또 은자를 써야겠어.” 태상황이 말했다.원경릉이, “왜요? 오늘밤 무슨 일 있었어요?”태상황이, “안 그래? 이렇게 큰 비가 내리는 밤에 아파서 병석에 누워있는 사람과, 비바람을 뚫고 약을 전하는 사람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원경릉이 태상황을 곁눈질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또또 무슨 수작을 벌이셨죠?”태상황이 순진한 얼굴로, “알약 두 알.”“무슨 약이요?” 원경릉이 태상황을 보고, 상선을 보더니 순간 알았다는 듯, “맙소사, 어르신. 이런 엄청난 사고를 치시면 어떡해요? 그건 두사람이 서로 좋아서 원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약을 쓸 수가 있어요? 만약 난리가 나면 어떻게 수습하시려고요?”“네 생각은 너무
무슨 약원용의는 집사 손에 약을 억지로 찔러 넣고 돌아가는데 집사가 한숨을 쉬며, “만약 마마께서 오셨는데 들어오지도 않은 걸 왕야께서 아시면 분명 쫓아가실 텐데, 비가 이렇게 심하는 오는데 아픈 왕야께서……”원용의가 발걸음을 멈추고 하는 수 없다는 듯, “알았어, 내가 들어가서 약 드시는 거 지켜볼 게.”집사가 신나서, “예, 마마 어서 가세요. 소인이 직접 물 길어 가겠습니다.”원용의가 방 문 앞에 서서 한동안 주저하다가 겨우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거대한 방에 촛불 두 자루가 켜 있어 빛은 어둑어둑한데 침대 휘장이 드리워져 있고 약이 탁자에 놓여 싸늘하게 식어 있다.제왕이 침대에 누워 심한 코맹맹이 소리로, “나가, 난 약 안 먹어.”원용의가 서서히 다가가서 휘장을 걷자 제왕이 이불 두개를 덮고 누워 있는 것을 보니 병색이 완연하다.제왕이 뚫어지게 원용의를 보고도 믿기지 않는지 벌떡 일어나, “왔어? 진짜로?”원용의가 목을 가다듬고 어색하게, “약 가져다 주러 왔어요.”원용의는 약을 침대 위에 두고, “잊지 말고 드세요.”그때 제왕이 재빠르게 손목을 잡더니 힘껏 원용의를 끌어 당겨 자신의 가슴에 넘어뜨리자, 남자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데 원용의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얼른 제왕을 밀치고, “놔요.”제왕은 원용의의 손을 잡고 죽기 살기로 놓지 않더니 목이 메인 소리로, “안 놔, 내가 놓으면 넌 도망갈 테니까.”“먼저 약을 드세요!” 원용의는 일부러 딴 데를 보며 작열하는 제왕의 눈빛을 보지 않는데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원용의가 힘껏 몸부림을 치며 침대에 쏟아진 알약을 집어 들자 마침 집사가 물을 가지고 들어와 원용의는 몸을 뺄 수 있었는데, 속이 후끈한 게 이 방에 온돌을 너무 세게 피워 놓은 거 아냐? 날씨도 따듯해 졌는데 뭘 이렇게 뜨겁게 지폈어.집사는 물만 탁자위에 두고 나갔다.원용의가 불러도 돌아오지 않자 약을 손바닥에 놓고, “이 약은 태상황 폐하께서 주신 것으로 먼저 드세요. 다음에 태
뜻대로 되지 않는다원용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제왕에게 가까이 가면서 놀라, “이 약, 태상황 폐하께서 주신 약으로 저도 한 알 먹었어요.”제왕은 열 때문인지 아니면 약을 먹었기 때문인지 눈앞이 흐릿하고 천천히 다가가 입술을 원용의의 볼에 포개고 거친 숨을 쉬었다.원용의는 방어선이 무너지며 제왕의 가슴에 쌓여 하늘과 땅이 빙빙 돈다는 생각이 들면서……밖에는 비바람이 치는 늦은 봄, 심한 천둥이 울렸다.별장에서 원경릉은 사람을 시켜 대문을 잠그게 하고 보아하니 오늘밤 원용의는 돌아오지 않을 게 틀림없다.그리고 원용의는 그날 밤 돌아오지 않을 뿐 아니라 다음날도 돌아오지 않고 다다음날도 다다 다음날도 보이지 않았다.비는 진작에 멎었고 사식이는 복도에 앉아 멍하니 있는데 만아가 와서, “무슨 생각 하세요?”사식이가 고개를 돌려 만아에게 불만스럽다는 듯, “만아는 혼인을 생각해 본 적 있어?”만아가 앉아서,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왜 혼인을 해야 해요? 왜요? 혼인하시고 싶으세요?”“내가 혼인을 하고 싶고 말고가 아니라, 언니와 제왕 전하께서 잘 되셨으니까 집에서는 분명 내 혼담을 거론하실 거야. 지난번 돌아갔을 때 어머님이 내 혼사를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더 끌면 노처녀 된다고.”만아가, “아가씨께서 혼인하시면 태자비 마마 곁에 계시지 못하겠죠?”“난 원 언니를 따르고 싶어. 시집을 가면 앞으로 안채에 묶여서 지혜로운 아내가 되야 할 거야. 난 싫은데.” 사식이가 걱정했다.만아도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맞아요, 혼인을 하면 집에서 남편을 돕고 자녀를 양육해야죠. 지금처럼 이렇게 태자비 마마를 따라 여기저기 갈 수 없네요.”사식이가 긴 한숨을 쉬며, “고민이야!”만아가 히히 웃으며, “그럼 서대인께 시집가시면 되죠.”사식이가 째려보며 엄숙하게, “만아야 다시는 내 앞에서 서일 얘기하지 마. 그 사람한테 호감 없어. 그 사람은…… 장점이라고 눈곱만큼도 없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제 생각엔 서대인 참 좋으신데요!
기가 막힌 꼬맹이들희상궁과 주재상은 신경전을 한 판하고 결국 주재상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으나 반드시 몸이 다 나아야 돌아가는 것으로 했다.그리고 우리 떡들의 두 돌 생일은 성대하지 않게 별장에서 조촐하게 치르는 것으로 돌잔치때와 비교하면 너무 초라할 정도였지만, 명원제도 직접 별장에 와서 태상황 폐하께 문안하고 찬찬히 부자의 정을 즐기는 기회가 되었다.이윽고 우리 떡들이 벌써 무공을 익히기 시작했다는 말에 명원제가 뿌듯해 하며 와서 한번 해보라고 했다. 우리 떡들은 힘차게 권법을 휘두르는데 권법을 가르쳐주는 사부는 서일이었는데, 이 권법은 행운유수(行雲流水)로 마지막 초식이 천지건곤(天地乾坤)이라 뛰어오르며 주먹을 내질러야 했다. 자그마한 세 그림자가 붉은 옷을 입고 남쪽 벽을 향해 뛰어올라 주먹을 뻗었다. 아무런 변화도 볼 수 없었지만 자세가 아주 좋았다.명원제가 박수를 치고 막 칭찬하더려던 찰나 ‘콰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쪽 담장이 무너져 내리고 우리 떡들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자욱한 먼지더미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는데 천진한 미소에서 장난끼 20%, 우쭐함 30%가 느껴졌다.모두들 놀라 자빠졌다.여기엔 우문호와 원경릉도 포함되어 있다.우문호와 원경릉은 애들이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비범한 재능을 타고 났다는 걸 알고 최대한 감춰왔다. 원경릉은 계속 주시하고 있었으나 최근 1년간 아이들이 특이한 능력을 드러낸 적이 없어서, 이제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두 살 생일날 크게 한 방 터트릴 줄이야.다들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고 원경릉과 우문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다행히 그 자리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함구령을 내리면 새나갈 것 같지는 않다.‘쪼꼬맹이’가 이런 능력을 가질 거라고 얼마나 생각 하겠어?태상황은 상선에게 화를 내며, “담장 고치란 얘기를 언제 했는데 아직도 안 했어? 나이가 들더니 트미해 가지고, 뭘 시킬 수가 있어야지.”상선이 얼른 사죄하며, “태상황 폐하 잘못했습니다. 지난번 비로 담장이 무너지기
비범한 아이들우문호는 거의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아……아니……나는 것도 안돼.”“나는 것도 안 돼요? 그럼 불은 붙여도 돼요?” 경단이가 말했다.“불장난 안돼, 불장난은 위험해.” 우문호가 경고하더니 잠시 후, “네가 말한 불 붙이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탕양이 품에서 부싯돌 2개를 꺼내 우문호 앞에서 비비고 우문호가 약간 안심하며, “이렇게 불을 붙이는 건 너희들이 할 필요 없어, 유모가……”‘화륵’하는 소리와 함께 부싯돌에서 섬광이 나오더니 경단이가 후 하고 불자 불이 우문호 앞에서 갑자기 커지며 눈썹과 머리카락을 ‘지지직’ 소리가 나게 태웠다.원경릉이 깜짝 놀라 손에 잡히는 대로 물 한 잔을 뿌려서 불을 껐다.우문호가 화가 잔뜩 나서 두 손으로 얼굴을 닦는데 손이 온통 재투성이에 얼굴과 미간이 따끔거렸다. “눈썹이 없어졌어.”원경릉이 닦아 주며, “괜찮아. 있다가 그려줄 게.”“원 선생, 쟤들……”자기는 거의 미쳐버릴 거 같은데 원 선생은 아직 이렇게 침착하다니, “만약 쟤들이 하늘을 날고 땅으로 숨는 걸 사람들이 아는 날엔……”“땅에 숨는 건 못해요.” 셋이 입을 모아 말했다.“조용!” 우문호가 소리쳤다.원경릉이 달래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요. 잘 관리하면 돼요. 이 아이들 능력이 큰 건 좋은 일이죠, 어쨌든 바보 멍청이보다 나은 거니까.”“바보 멍청이여도 좋아, 정상이 제일 좋은 거야. 이건 위험하다고,” 우문호가 말투를 바꿨다. 이렇게 무섭게 하면 쟤들이 놀랄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지금 본인도 세 아이들을 이길지 장담할 수 없는 것으로 분하지만, “다 자라서 능력이 큰 건 괜찮아, 자기가 분수를 아니까. 하지만 이제 고작 두 살인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세상을 놀라게 할 재주가 있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원경릉이 연고를 꺼내 우문호에게 발라주며, “앞으로 잘 관리할 게. 함부로 능력을 드러내지 않도록. 자기가 시간을 봐서 우리가 주지에게 가던지 아니면 주지에게 경성으로 오라고 해도 되고.”“
아이들의 결심우문호는 아이들의 조그만 뒷모습이 문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며, “사실 마음은 기뻤는데, 방금 걔들한테 무섭게 하는게 아니었어.”“괜찮아, 애들도 알아.” 눈썹이 타버린 우문호를 보고 원경릉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아직 아파? 약 좀 더 발라 줄게.”“별로 안 아파, 애들의 이런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아마도…… 유전이지 않을까!” 원경릉이 말하면서도 약간 찔리는 기분이다.“유전?” 우문호가 생각해보더니, “유전이라면 너한테 있거나 나한테 있어야 하는 거잖아? 난 불 못 뿜어, 당신은?”“나도 못해.” 원경릉이 웃으며, “파고 들지 마, 하늘이 내린 비범한 재능이겠지. 평범한 부부도 천재 아들을 낳을 수 있어.”우문호는 찰떡이가 방안을 날던 모습을 생각하자 그때는 가슴이 철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꽤 멋진 게 이런 경공은 천하에 독보적인 거란 말이지.하지만 마음 속여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는 것이 능력이 큰 사람은 겪는 고난도 많다.아이를 품고 있을 때 그들 부부의 소망은 하나로 아이들이 큰 재주 갖기를 바라지 않고 그저 평안하게 일생을 사는 것이었다.원경릉 부부와 상반되게 명원제는 오늘 매우 기쁜 것이 마치 북당 강산이 길이길이 계승되어 세세토록 눈부신 것을 본 듯했다. 어른으로 자손이 잘나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세 꼬맹이는 방으로 돌아와 각자 손가락을 꼽기 시작하는데, “날면 안됨, 불 피우면 안됨. 벽을 치면 안됨, 사람을 때리면 안됨, 탕대인과 공부할 것.”“형, “ 찰떡이가 침대에 앉아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더니 보드라운 얼굴을 내밀고, “하지만 탕대인이 말하는 그건 우리 다 아는데.”‘아빠는 너무 무서워, 아빠가 하라는 대로 하자. 맞으면 안돼,” 만두가 애늙은이처럼 한숨을 쉬더니, “남에게 얹혀사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까.”“’아빠는 나 안 때려.” 찰떡이가 말했다.“그만해!” 만두가 째려보더니, “걸핏하면 울고, 매번 울때마다 이유가 뭐든 아빠는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물었다.“참, 아이들과 그룹… 채팅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계란이가 이 일을 안다고 한 적 있소?”“우린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소.”원경릉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나도 들어갈 수 있소?”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마 안 될 것이오. 그룹 채팅은 단지 별칭일 뿐, 당신이 현대에서 본 통신 앱과 같은 것이 아니오. 우리는 의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라, 당신은 함께할 수 없소.”“그렇군.”우문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원경릉은 그가 조금 서운해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를 안고 말했다.“당신도 참. 지금까지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당신한테 숨긴 적 없이 모두 말해줬으니, 기분 나빠하지 마시오.”“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계란이가 모르고 있다가 속상해할까 봐 걱정되는 것 뿐이라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시오. 계란이는 아직 사내를 좋아할 나이가 아니오.”우문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의 노파심으로 인해 작은 문제도 크게 보기 마련이었다.이 드넓은 세상을 아이들이 마음껏 탐험하는 것은 괜찮지만, 혹여나 아이들이 속상해할까 봐 늘 걱정이었다.한편, 요즘 다섯째는 과거시험으로 인해 바쁜 일상에 조금 지쳐 있었다.과거 시험장은 항상 부정행위로 난무하는 곳이었다. 과거로 인재를 등용하려는 조정의 목적과 달리, 일부 관리들은 그저 돈 벌 기회로 여길 뿐이었다.그래서 지금 주 시험관 자리를 차지하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지난해까지는 냉 수보가 항상 주 시험관을 맡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시험관들의 부정행위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이 일로 우문호는 3년에 한 번씩 화를 내곤 했다.올해 냉 수보는 주 시험관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겠다고 말하고 이 직책을 내려놓았다.최근 새로운 세금 제도를 추진하느라 바쁜 터라, 주 시험관직까지 겸할 시간이 없었다. 이에 우문호가 직접 시험관 선발 과정을 엄격히 관리하기로 했다.북당
택란은 순간 단순히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대한 보답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린 황제는 어린 시절부터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기에, 란이라는 자의 언니와 몇 년을 함께 보내며 정이 생겼을 가능성이 충분했다.어쨌든, 단순히 은혜를 갚기 위해 은인의 언니와 결혼하는 것은 말이 안 되었고, 다소 억지스러웠다. 게다가 그가 왜 그 란이라는 사람이 정말 자신의 은인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사람을 데려갔을지도 의문이었다. 어쩌면 일을 맡은 부하가 임무를 대충 하며 거짓말을 꾸며냈으니, 어린 황제가 그 란이라는 사람에 대한 은혜 때문에 섣불리 믿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어린 시절의 감정이 가장 순수한 법이니까.“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오직 발전만을 목표로 합니다!”주 아가씨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감정 문제는 공주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아직 어리기도 하기에 혼담은 스무 살까지 미뤄도 늦지 않았다. 아니면 그녀처럼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한편,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냉명여가 짐을 싸는 택란을 보며 물었다.“누나, 멀리 가는 것입니까?”“금국 량주에 다녀오려고 한다.”택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싸는 손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그러자 냉명여의 눈이 반짝였다.“량주요? 그럼 나도 데려가면 안 됩니까? 량주에 변신술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가고 싶으냐? 그래.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말을 잘 들어야 한다!”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잘 듣겠습니다! 꼭 약속하지요!”냉명여가 급히 다짐했다.“좋다. 그럼 가서 짐을 싸거라. 내일 출발할 것이니 서둘러야 할 것이다.”택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냉명여는 기쁜 얼굴로 쏜살같이 방으로 달려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이때, 이를 본 주 아가씨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데려간다니요? 아직 어린아이인데… 귀찮게 굴지 않을까요?”“괜찮소. 지금 아직 어리니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해야 하오. 계속 저택 안에만 두면 아무것도 스스로 못하는 아이로 자랄 뿐이네. 그건 냉 대인과 홍엽 아
세월이 흘러, 택란이 열한 살 되던 해에 드디어 만두가 돌아왔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으로 성장해 돌아왔다. 그리고 떡들 세 명은 만으로 따지면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다.만두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황제의 허락을 받고 군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국경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력이 항상 군사력의 안정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군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먼저 군심을 얻어야 한다.우문호는 그의 선택을 전폭 지지하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를 작은 병사로 임명하여 군에 들여보냈다. 약도성은 이미 재건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다. 백성들도 마음을 다잡았고, 이제는 본격적인 발전만 남아 있었다. 이리 나리와 홍엽이 이곳에 왔을 때, 냉명여를 약도성에 남겨두었는데, 호명이 챙기려 했으나, 냉명여는 택란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꽤 고집이 센 아이기에 그는 그저 놔두기로 했다. 변경은 심지를 단련하기에 좋은 곳이었고, 호명이 보살펴 주며 저택 안에 거주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제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는 원래 약도성 접경 지역에 새롭게 지은 곳으로 옮겨졌고, 이름 또한 량주로 바뀌었다. 금나라는 이제 공식적으로 량주를 수도로 정했다.이 소식이 약도성에 전해지자, 택란은 무척 기뻐하며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이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도 될 것 같소. 금나라에 한 번 가볼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그 해 택란은 훌쩍 성장해 주 아가씨보다 조금 더 커 있었다. 주 아가씨는 때때로 그녀를 보며, 대나무가 환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 사이에 또 훌쩍 자란 것이다.택란의 아이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훨씬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도성의 거센 바람과 강한 햇빛 때문에 원래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빛을
우문호는 정정이 계란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보아하니 혼인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은 합의를 봐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정정 대장군 부부는 경성에서 반 달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정정과 우문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타거나, 군영과 산을 누비며 백성들을 살폈다.대두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비록 처음 이틀 동안은 계속 만두를 보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만두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는 란이와도 갈등을 풀었고, 오히려 제일 친해져서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했다.그렇게 2주가 지나 정정이 작별을 고하기 전, 우문호에게 대두의 배필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대두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누구요?”정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말할 수 없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잘못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네.”“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어딨소?”우문호는 그의 말에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그러자 정정이 더욱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들으면 자네가 조급해질까 봐 그러네!”우문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지금 이미 엄청 조급하네.”정정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철썩 때리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게. 계란이는 아니네. 계란이는 내 딸이기도 하니, 절대 며느리가 될 수 없소.”다른 남자가 계란이를 자기 딸이라 부른 건 처음이었지만, 우문호는 반감 없이 오히려 매우 기뻐, 활짝 웃으며 말했다.“맞네, 자네 말이 맞아. 계란이는 자네 딸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의 착한 딸이지.”근영군주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원경릉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우리가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맞는 말입니다!”원경릉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장구치자 근영군주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봅시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다는 말입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눈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