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왕에 대한 우문호의 자세우문호가 찬찬히 생각해보더니, “그래서 아바마마의 이 조치는 넷째에게서 홍엽의 비밀 공작원을 찾아내려는 거다? 하지만 넷째를 기용한다고 쳐도 그쪽을 불 리가 없지, 자살할 일 있어?”“안왕 전하는 불지 않으시겠지만 일단 기용되시면 비밀 공작원들도 천천히 수면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안왕 전하께서 득세하는데 활동을 시작하지 않겠어요?” 탕양이 분석했다.탕양은 두 사람이 밖에서 맹렬히 싸우는 것을 보고,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전하 깊이 생각해 보세요. 제가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안왕 전하께서 오늘 이렇게 들이닥치신 것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적어도 전하께서 경조부 부윤 직에서 파면 당하신 뒤로 안왕 전하는 희망을 발견했고 그걸 꽉 붙들겁니다. 오늘도 보아하니 황제 폐하를 위해 화를 내시는 것 같은데 일종의 고육지책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우문호가 잔을 내려놓고 사지 근육을 쫙 풀어주면서, “좋아, 원대로 해주지.”“서일 물러서라!” 우문호가 일갈했다.서일이 실컷 싸웠는지 명령을 듣고 얼른 물러났다.우문호가 뛰어오르며 연환퇴(連環腿)로 안왕을 공격하자 안왕은 두 손으로 막았으나 점차 후퇴하며 욕지거리가 나오는데, “불효하고 불충한 놈, 형 된 도리로 널 제대로 가르쳐야지 안 그래?”안왕은 서일과 한판 하면서 힘이 떨어져서 원래는 우문호를 한대 패 준 뒤에 우문호 차례로 양보할 생각이었으나 우문호를 때릴 힘이 없어 우문호의 공격을 막는 게 최선이고, 이번 일격은 위왕에게 맞았을 때와 별 차이 없을 정도로 결국 반격할 힘이 없어졌다.만약 우문호가 먼저 그만두지 않았으면 내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코에 멍이 들고 얼굴이 퉁퉁 부은 안왕을 보고 우문호가 냉소를 지으며, “내가 어째서 불효하고 불충하다는 겁니까? 조정을 위해 생각한 게 불충입니까? 제가 한 행동을 따지고 드는가 본데 어떤 일이 불효 불충인지, 말만 뱉으면 다인 줄 아나 본데 같이 입궁해서 아바마마 앞에서 따집시다!”안왕은 원래 죄를 날조해서 퍼
그믐밥안왕은 초왕부를 나와 입궁해서 황제를 앞에 벌을 청했다.안왕이 금족령을 어겼으므로 명원제에게 한소리를 들었으나 혼을 낸 뒤 명원제는 어의를 불러 안왕을 치료하고 궁에서 귀비와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을 허락했다.며칠이 지나자 진짜 어떤 대신이 안왕의 죄를 사해달라고 상소를 올렸다. 전에 주재상이 우문군의 죄를 벗게 했던 것처럼 안왕의 공로를 열거했다. 이렇게 안왕의 금족령은 해제되었고, 비록 바로 관직에 복귀할 수는 없었지만 명원제는 연달아 자식으로 상처를 받았기에 특별히 안왕이 수시로 입궁해 곁에 있는 것을 허락했다. 이런 성은을 내린 것은 관직에 다시 임용한 것보다 긍정적인 신호로 일순간 폐하께서 안왕을 크게 사용하실 거란 소문이 돌며 안왕부도 이전의 쓸쓸함을 단숨에 몰아냈다.이때 선비 쪽에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독고 장군이 정권을 탈취해 왕좌에 등극했으며 나라의 국호를 숙(肅)으로 바꿔 선비가 숙나라(肅國)가 되었고 독고흥을 태자로 세웠다고 했다.선비의 정세가 크게 바뀐 것은 북당과의 관계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의미해 북당은 모두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숙나라 쪽에서 어떤 태도로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소식통에 따르면 숙나라와 북막이 협상을 통해 대주와 전쟁을 벌이겠다는 의도를 드러내 대주는 위기에 빠졌다.우문호 쪽도 정보를 들었는데, 대주의 대장군 진정정과 진근영 현주가 이미 국경으로 달려가 두 나라의 협공에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이런 긴장된 분위기 속에 연말이 다가왔다. 궁에서 있는 섣달 그믐밥을 먹는 자리에 우문호는 초대받지 못했다.태상황은 아직 별장에서 요양 중으로 궁으로 돌아가 그믐밥을 함께 먹을 수 없었지만, 해질녘 초왕부에서 한 사람이 후문으로 조용히 나가 말을 달려 별장으로 가더니 곧 초왕부 후문에 마차가 한대 오고 다시 별장으로 달려갔다.초왕부 밖에는 감시하는 사람이 있어 안왕에게 보고했다.안왕이 듣고 담담하게, “아바마마께서 다섯째에게 입궁해서 그믐밥을 먹도록 허락하지 않으셔서 별장에 태상황 폐하께
별장의 섣달 그믐그제서야 소요공이 입을 다물었으나 몰래 원경릉을 흘끔 봤다. 분명 원경릉이 허락하지 않는게 분명한데 이 호랑이 같은 며느리가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아주 짜증나게 군다.원경릉은 무표정하게 얘기를 듣고는 우문호를 끌고, “나랑 같이 좀 나가, 솥에 탕을 끓여 놨는데 같이 좀 옮겨 줘.”“사람 시키……” 우문호가 말 하려는 찰나 원경릉에 끌려 나갔다.두사람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태상황이 뒤를 홱 돌아보고 얼른 소요공에게, “따라봐, 얼른 따라!”“안 드시는 거 아닙니까?” 소요공이 이상해 하며, “완전 표리부동이잖아요?”“뭐 라는 거야 시끄럽게? 얼른!” 태상황이 마음이 급해서 직접 술을 빼앗아 마개를 열자 술냄새가 퍼지며 강렬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태상황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영혼까지 진동하며, “얼른 과인에게 한잔 줘.”주재상이 웃으며 자기 잔을 태상황에게 작은 잔으로 따라주며, “어서, 빨리 드세요.”태상황이 잔을 들고 혀끝으로 날름날름 하며 한 입에 털어 넣기 아쉬워서 깨작깨작 입에 대다가, 아주 조금 남았을 때 고개를 들고 훅 털어 넣으며, “좋다, 좋아!”소요공이 연민의 눈길로, “술 한 모금도 숨어서 몰래 몰래 마셔야 하다니 이게 사는 겁니까 원.”“네가 뭘 알아, 나이 먹고, 넌 네 목숨이 너 혼자만의 것 같지? 과인이 죽으면 저 많은 식구들은 어쩔 거야?” 태상황이 쉬쉬하고, 상선이 문 앞에서 망을 보게 하더니 소요공에게, “가득 따라, 가득.”소요공이 투덜거리며, “말이랑 행동이 왜 이렇게 모순되는 건데요?”말은 그렇게 하면서 태상황의 잔에 가득 부었다.태상황은 한잔 더 하고 아직 흥이 다 오르지 않았지만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술잔을 주재상에게 주고, “자네들이 내 대신 더 마셔.”우리 떡들이 옆에 앉아서 증조할아버지가 술 맛이 상당히 좋다고 하는 것을 보고 전부 먹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한잔만 달라고 난리다.태상황은 장난끼가 발동해서 젓가락 끝에 약간 찍어서 우리 떡들에게 맛을 보게
도화주두 사람이 주방에 도착하니 희상궁이 아직 열심히 탕을 끓이고 있다가 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두 분이 왜 오셨어요? 이거 곧 돼요. 사람을 시켜서 들여보내겠습니다.”“황조부께서 술을 드시고 싶어하셔서 두어 모금 하시라고요.”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희상궁이 얼굴을 찌푸리며, “엄금하신 거 아니예요? 어떻게 드시게 되셨어요?”“소요공과 재상이 술을 가져오셨어요.” 원경릉이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오래 금주했으니 섣달 그믐에는 마음을 좀 달래야 죠.”희상궁이 듣더니 화를 내며, “아니 오시면 오시는 거지 술은 왜 가지고 오셨데요? 태상황 폐하께서 못 드시는데, 자기는 마실 수 있나요? 몇 번을 말해도 말을 안 듣고, 그분 몸도 안 좋으신데.”우문호는 정신을 못 차리고, “소요공이 몸이 안 좋으신가요? 제가 보긴 노익장을 과시하시던데 아주 좋아 보이셨어요.”“희상궁 얘긴 재상이셔!” 원경릉이 웃으며 우문호를 쳤다.우문호가 ‘아!’하더니 둘의 일을 기억하고, “희상궁, 잘 좀 얘기해 줘요. 확실히 건강에 유의하셔야 하니까. 제가 보기에도 재상 최근에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기억력도 떨어지시고.”희상궁이 듣더니 긴장해서, “정말입니까? 기억력이 떨어졌어요?”“기억력 뿐 아니라 머리 회전도 예전보다 많이 느려지셨어요.”원경릉이, “일부러 엄한 소리 하지마, 희상궁 놀래셔.”우문호가 변명하듯, “겁 주는 게 아니라 정말이야, 전에 재상은 무슨 일이든 다 뒤에서 작전을 세우고 마음을 확실히 꿰고 계셨는데 지금은 아바마마의 마음도 들여다보지 못하신다고.”희상궁이 우문호를 보는데 근심이 가득한 눈빛이다.원경릉이 얼른 다독이며, “희상궁, 태자 말 듣지마요. 사람 마음을 어떻게 확실히 꿰뚫어봐요? 기억력은 나이가 들면 결국 조금씩 나빠져요. 희상궁도 전에 저한테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했잖아요? 다 그런 거예요.”희상궁이 약간 낙담해서 한숨을 쉬며, “그래요, 늙었으니까요. 저도 늘 그이의 젊었을 때 모습만 생각했네요.”원경릉이 우문호
나때는 말이야“눈 늑대도 취했어요.” 유모가 한층 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원경릉과 희상궁이 들어가 보니 과연 눈 늑대 3마리가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데 자세가 한결 같은 것이, 혀를 밖으로 빼물고 쿨쿨 대자로 뻗었다.희상궁이 화가 뻗쳐 올라 성큼성큼 들어와 소요공의 귀를 잡고, “요 늙은이가 젊었을 때 사고 치고 다녔으면 됐지, 늙어서도 사고를 쳐? 이렇게 작은 아이가 어떻게 술을 마셔? 종일 그저 술생각만 하지 그 놈의 술 술 술. 당신이 건강한 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래, 빈둥거리고 있으니 자연 신체 건장할 수밖에, 종일 바빠서 잠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힘든데.”“좀 살살, 아야야 귀 떨어지네!” 소요공이 목을 움츠리고 변명하는데, “내가 아니라 태상황 폐하께서 준 거라고, 원래는 한 입만 살짝 주려던 건데 저렇게 많이 마실 줄 누가 알았나.”태상황이 요리를 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과인은 준 적이 없어.”“폐……” 태상황이 너무 순식간에 번복하니 소요공이 어이가 없지만 하는 수없이 희상궁에게 사정하며, “그래, 내가 잘못 했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거 좀 놔, 귀 떨어진다니까, 주대유, 주대! 사정 좀 해봐, 얼른.”주재상은 끼어들 생각이 없는 지 다른 데로 눈을 돌렸다.희상궁이 소요공을 놔주고 탁자 위에 술을 치우더니, “오늘 밤은 탕이랑 요리만 드세요. 술은 입에 데시면 안됩니다.”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소요공은 재미가 하나도 없는 게,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섣달 그믐을 보내는 건데 하며, “한번이라도, 우리가 모였는데 좋은 술이 빠진 적이 있던가?”늙은이가 ‘한번이라도’하고 뱉으면 이 말은 이미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었다는 뜻이다.여기 있는 세 명의 거두는 북당을 쥐락펴락하던 인물로, 아직 권세가 막강한 권력자라고 하지만 그들이 속했던 시대는 이미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술 마시면 안되고 탕을 마셔야 하다니 참 세월 무상하네. 우리가 처음 호원수(虎元帥)를 따라 출정했을 때 아직 기억하십
지기와의 술자리연말에 이부에서 공문을 냈다. 홍려시(鴻胪寺) 시경(寺卿)을 전근시키고 신임 홍려시 시경으로 안왕 우문안을 발령했다. 먼저 홍려시에 있던 손왕은 시승(寺丞)으로 발탁했다.우문호는 여전히 초왕부에 금족령 상태로 조정의 어떤 일에도 접촉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집으로 오는 발길이 점점 뜸해지더니 전부터 사이가 좋은 일부 친구를 제외하고 거의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다.긴 금족령 기간동안 소홍천은 거의 온 적이 없는데 계속 우문호를 위해 밖에서 분주했다.사촌 소형, 전진과 왕강이 가끔 와서 수다를 떨고 술을 마셨는데 이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보통 별별 얘기를 다 했고, 특히 왕강은 자신의 천문지식을 뽐내는 걸 좋아했다.전진은 지금 군에서 구황자인 우문천을 데리고 있는데 우문천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나이는 어리지만 대장의 자질이 있다고 했다.조정일을 얘기하자 본래 관심이 없던 왕강이 갑자기, “전하는 이렇게 계속 집만 지키고 계실 겁니까? 왕위다툼 안하세요?”우문호가 나른하게, “다퉈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요즘 얼마나 한가해, 조용하니 좋아 원했던 바야.”“하지만 결국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왕강이 말했다.“그릇이 아닌 걸, 태자도 감당 못하는데 뭘.” 우문호가 전형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사촌 소형도 담백하게 어차피 소씨 집안이 지금 완전 무너졌으므로, “맞아, 내가 보기엔 이렇게 지내는 거 좋기만 해, 전에 태자 전하가 바쁘실 때는 우리가 술 한잔 같이 하고 싶어도 보름 전에 미리 약속을 잡아 놔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 없이 술 단지 들고 털레털레 오면 되니 얼마나 좋아.”왕강이 웃으며, “그건 그렇죠. 한가하면 한가한 나름의 장점이 있네요.”조금 있다가 왕강이 다시 곤혹스러운지, “황제 폐하께서 이번에 안왕 전하를 홍려시로 보내신 건 무슨 뜻일까요? 안왕 전하께 직접 외교 업무를 맡아서 하라는 것과 같은 거 아닌가요?”“아바마마께서 넷째를 기용하시기로 하시면 나도 방법이 없지. 설마 나더러 가서 훼
숙나라 축하 사절“지금 친왕 중에 둘째 형하고 일곱째 두 사람만 관직을 맡고 있는데 일곱째 쪽은 걱정 안되는게 경조부는 먹고 들어오질 못해. 내가 이미 다 안배를 끝냈으니까. 그리고 일곱째 쪽에는 주재상과 원씨 집안이 지켜보고 있어, 넷째는 잠시동안은 별반 자기 주장을 하지 않을 건데 둘째형은 기댈 데가 없고 사람이 좀 흐리멍덩해서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용당하기 쉬워.”사촌 소형이 우문호의 분석을 듣고 그제서야, “널 위해 하는 거면 까짓 거 가면 되지.”우문호가, “형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 소씨 집안이 지금 몰락했다고 형도 따라서 무너진 건 아니야. 형은 제대로 나랏일을 찾아서 해야지, 둘째 형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으니 같이 하기 나쁘지 않을 거야. 더는 세월을 낭비하지 마, 형은 유능한 인재로 당연히 조정에 출사해 나라에 보답 해야지.”사촌 소형이 한숨을 쉬더니, “알았어.”소형이 간 뒤 탕양이, “전하 생각에 안왕 전하께서 손왕 전하를 이용할 것 같은 느낌이십니까?”“모르지, 단지 마음이 안 놓여서 그래. 두 사람 다 홍려시 관원으로 둘째형 성격 알잖아, 넷째와 조금만 맞지 않으면 말 몇 마디도 못 버텨, 넷째가 형을 흔들자고 치면 식은 죽 먹기 지. 그리고 만약 아바마마께서 함정을 만드신 거면 넷째를 홍려시 시경으로 임명하신 데 뭔가 있어. 뒤에 뭔가 따라올 게 분명해.”“확실히 선비……숙나라 정세가 변해서 독고 장군이 등극하고 바로 태자를 책봉했는데, 아직 6국을 초청해 연회를 열지 않고 있는데 이게 무슨 태도죠?”우문호가, “밀정의 보고에 따르면 독고 장군이 등극하고 짧은 내란이 있었는데, 이제 평정이 돼서 다음 조치가 이루어 질 거라고 했어.”“그럼 사태를 관망하면 되겠군요.” 탕양이 안도하더니, “이번을 전환점으로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습니다.”과연 예상대로 숙나라 국서가 바로 도착해 독고 집안의 자손 하나가 원래 부모 밑으로 입적함과 동시에 숙나라의 건립 및 다음 보위가 안정되었음을 축하하는
명원제의 큰 그림많은 사람들이 안왕일 거라고 생각한 게 안왕은 홍려시 시경이자 친왕 신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안왕이 가는 게 가장 적합하다.하지만 이 일은 이상한 분위기가 된 게 전에 선비와 북당의 관계가 점차 틀어졌기 때문에 비록 지금 선비국이 숙나라로 조대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국호는 바뀔 수 있어도 사람은 여전히 선비족이다.주재상이 그제야 황제가 왜 일단 태자를 냉대했는지 알아챘다. 우문호가 죄를 뒤집어 쓰고 금족령인 몸이라 쉽게 숙나라의 초청을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명원제의 이런 큰 그림은 세밀하고 정확한 정보 위에 그려져야 하며, 정보의 정확성과 세밀함은 독고 장군이 수개월 전에 책략을 세워 둬야만 가능하다. 그 말은 이번 행사는 단순한 경축 행사일 리 없다는 뜻이다.그리고 홍엽공자와 독고흥은 원래부터 북당에 첩자를 심어 놓아서 이번 연극은 반드시 연극이지만 진짜로 해야만 한다. 태자를 대전에서 반항하게 몰아갔던 것은 황제가 자신의 명성을 손상시켜서라도 태자를 지킨 것으로 만약 미리 태자와 상의했으면 태자가 응했을 리 없다.이번 계획과 희생에 주재상도 감동했다.과연 황제가 내각의 대신들을 불러모아 이 일을 상의하는데 안왕과 예친왕을 천거하는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명원제가 결정하지 못하고 회의를 물린 뒤 주재상과 냉정언을 어서방에 남게 했다.“두 분께서는 어떤 고견을 갖고 계신 가?” 명원제가 명단을 보고 있고 그들 둘도 안왕을 천거했다.냉정언이, “폐하, 신은 안왕 전하를 천거합니다. 두 달 간의 비밀 조사에 따르면 선비의 비밀 연락책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안왕 전하와 원래 왕래가 있었으니, 이번에 숙나라가 어떤 기회를 노리고 있는지 몰라도 쉽사리 안왕 전하를 다치게 할 리 없습니다. 비밀 연락책을 우리가 아직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발각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앞으로 안왕 전하를 쓰실 일이 많으실 겁니다.”“재상은?” 명원제가 주재상을 보고 물었다.“신은 냉대인의 말에 동의합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