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배원경릉이 놀라서 작은 소리로, “사부님 말씀이 맞아요.”이리 나리는 표정을 가다듬고, “그리고, 이 일을 궁에서 어떻게 처리할지 난 모르지만 태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게 있어. 앞으로 소씨 집안과 선을 아주 분명히 그어야만 해. 조금의 구정물도 튀어서는 안돼. 만약 그렇게 되면 태자를 해치게 될 테니. 사람들이 하는 말이 왜 두려운 줄 알아? 사람들의 말은 대세와 타인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야.”원경릉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리 나리의 말뜻은 우문호를 소씨 집안에서 완전히 떼어놓으라는 것으로 결국 현비와 완전히 갈라서게 만들라는 것이다.말이 쉽지 모자 사이 어떻게 갈라놔?이리 나리가 일어나 씩씩거리며, “말로 하니까 열이 확 뻗치네.”이리 나리가 나가서 큰 소리로, “떡들아, 가자. 할아버지가 너희들 간식 줄게. 눈늑대도 데리고 가자.” 시름을 푸는 데는 눈 늑대가 최고다!말이 떨어지자 마자 쏜살같이 달려온다!반시진 후 우문호가 그늘진 얼굴로 돌아왔는데 망토를 들고 원경릉에게 입혀주며, “이렇게 추운데 안으로 좀 들어오면 안돼?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세배하러 올 거야.”오늘 여섯째 부부와 일곱째가 올 거다.일부러 방금 일은 우문호에게 얘기하지 않았다.우문호가 뭘 알아봤는지도 묻지 않았다.“좋아!” 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일어나 소월각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밖에 회왕 부부와 제왕이 왔다는 소리가 들렸다.미색은 분명 왔을 것이 이리 나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전부 가족이라 겉치레 인사말은 집어치우고 따듯한 방에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하지만 제왕은 하필 남이 감추고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하더니 결국, “형, 요 며칠 바깥에 사람들이 어찌나 험한 말을 하던지, 형도 들어봤어? 이리 나리가 말이야…… 하여간 전에 형이 공주부에서 형수와 있었던 일이랑 똑같이 떠든데.”제왕의 혀를 마음대로 놀렸지만 그래도 차마 그 말은 못했다.미색이 싸늘한 눈빛으로, “소씨 집안 사람들이 퍼트린 말이예요, 사람
어머니를 죽이라고?우문호가 천천히 손가락에서 힘을 빼자 팔걸이에 손바닥 자국이 생기고 가운데 금이 갔다. 우문호 얼굴이 점차 평정을 되찾으며, “흠, 알았어.”원경릉이 걱정스러워서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어젯밤 그 꿈이 떠올랐다.회왕이 얼른 화제를 바꾸어, “어? 우리 조카들 어디 갔죠?”원경릉이 시선을 거두고 쉰 목소리로, “이리 나리와 같이 놀러갔어요.”“아, 걔들이랑 놀고 싶었는데.” 회왕이 따스하고 해맑게 웃었다.원경릉이 괴로워하는 눈빛으로 한숨을 쉬는 것을 보고, 미색이 원경릉을 불러 같이 나가자고 하고 삼형제는 안에서 얘기하라고 남겨뒀다.둘이 복도를 따라 정자로 가며 미색이, “제가 이런 말 했다고, 절 원망하지 마세요. 사실 라만 스승님이 그저께 경성으로 돌아가시며 우리 집에서 밤새 얘기하셨어요. 스승님이 이리 나리를 굉장히 아끼시고 정말 자기 아들로 여겨서 금이야 옥이야 아끼시죠. 태자 전하께서 처리해야만 하실 일은 그래야 합니다. 불효자가 되는 걸 망설이시면 안됩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많은 일을 태자전하께 감추는 것은 첫째로 태자전하를 보호하기 위함 이고, 둘째로 사실은 본인도 현비 마마를 용납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라만 스승님은 원래 태자비 마마께서 태자 전하를 모시고 경성을 떠나게 할 생각이셨으나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오늘 태자전하 앞에서 일부러 이런 얘기를 한 겁니다.”원경릉은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일이 터질 거란 걸 알고 손발이 차가워지며, “하지만 소씨 집안 쪽에 폐하께서 처분을 내리지 않으시면 태자 전하께서 뭘 할 수 있겠어?”미색이 고개를 흔들며, “전 모르죠. 단지 대의를 위해 부모를 멸해야 할 거란 생각이예요.”원경릉이 가득 쌓인 눈을 보며 마음이 더욱 차가워져서, “누구를 멸해? 자기 엄마를 멸해?”“현비 마마가 밉지 않으세요?” 미색이 의아하다는 듯 원경릉을 쳐다봤다.“증오해!” 원경릉은 이 말을 잘근잘근 곱씹어 봤다. 어떻게 밉지 않을 수가 있어? 원경릉의 마음 속엔 현비가 죽기를 바라고 있
불이야어쨌든 많은 사람의 목표가 현비의 죽음인데, 왜 우문호 손을 더럽혀 괴롭게 만들 필요가 있어?그리고 우문호는 원경릉때문에 현비에게 화가 난 것으로 다음은……원경릉은 생각할 수록 놀랍고 떨린 게, 아이를 낳을 때부터 우문호와 현비 사이에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해, 우문호가 겉으로는 하하 웃는 모습이지만 모자의 혈연 관계를 위해 속으로 계속 분을 삭이며 태평한듯 가장해 왔다.이제 모든 일이 수면 위로 올라온 상황에 우문호는 뭘 할 수 있을까? 우문호 입장에서 뭘 하든 다 잘못이다.원경릉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고 미색도 당황하며, “제가 말을 잘못했어요?”원경릉이 부끄럽기도 하고 걱정스런 모습으로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말하지 말았으면 했는데 이미 다 얘기했으니, 태자 전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지켜보자.”미색이 작은 목소리로, “사실 제가 마마를 대신해서 불의를 보고 분개한 거기도 하고, 태자 전하께서는 분명 마마를 보호할 거예요, 모친이 뭐요? 한쪽은 아내와 정의, 다른 한쪽은 모친과 죄인데 어느 쪽을 택할지 태자 전하께서는 이미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태자 전하께서 현비 마마를 택할 까봐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그럴 리 없어요.”“태자 전하께서 현비 마마를 택할 게 걱정인 게 아니라……” 원경릉은 말해봤 자 소용없다 싶은 게 미색은 자신을 위해 얘기해 준 것으로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됐어, 미색, 고마워.”미색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기가 뭔가 또 일을 망쳤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우문호는 땅거미가 질 무렵 혼자 소씨 집안을 찾아갔다. 정월 초하루, 우문호가 외갓집에 들어서더니 두말없이 바로 때려 부수고 집에 불을 질렀다.소씨 집안 사람들은 놀라서 멍하니 있다가 얼른 사람을 보내 태후 마마를 찾았다.태후 마마께서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셨으나 소씨 집안을 구하라는 성지를 내리지는 않으셨다. 새해 정월 초하루에 소씨 집안에 큰 불이 나서 비록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저택은 싹 타버렸다.소씨 집안에서 바로 입궁해 황제
화난 태후우문호가 이렇게 욕을 하자 모두 소씨 집안 사람들이 공주와 혼인해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이리 나리에 대해 유언비어를 날조했으며, 불과 며칠만에 이리 나리에게 불리한 유언비어가 이렇게 퍼질 수 있었다는 걸 알았다.구경거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일이 크던 작던, 사실이던 아니던 상관없다. 게다가 태자가 자신의 신분도 개의치 않고 매제를 감싸는데 거짓일 리가 있나? 그래서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가 소씨 집안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기왕은 여기 이토록 많은 우여곡절이 숨어 있는 줄 생각도 못하고, 그저 태후의 비위를 맞추려던 것인데 이제 보니 소씨 집안의 심보가 악랄해 자기까지 연루 시켜 매를 맞게 하다니 똥물이 튄 걸 후회했지만, 우문호의 잡아먹을 듯한 얼굴을 떠올리고 꼬리를 만 채 터덜터덜 돌아갔다.소씨 집안은 태후가 나서서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으나 태후 쪽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고 기왕도 가고 자기들만 우문호의 분을 당해낼 수 없어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만아가 돌아가 원경릉에게 보고하는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소씨 집안 사람들이 비 오는 날 먼지 나듯이 태자 전하께 맞았다고 했다.원경릉은 조금도 웃지 않고 만아에게, “전하는?”“소씨 집안 사람들이 간 뒤에 전하도 나가셨어요. 어디로 가셨는지 몰라요.” 만아가 말했다.원경릉이 작게 한숨을 쉬며, “알았어.”우문호는 분명 입궁했을 것이다. 태후 마마는 소씨 집안에 대해 수수방관하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씨 집안 쪽 사람이 입궁해 현비와 소식을 주고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기도 하다.새해를 맞아 현비는 정말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공주의 혼사를 치르기 전이라 황제도 손 쓰기 뭐했다.우문호는 태후궁에 벌을 받으러 입궁했고, 태후는 그를 보지 않고 밖에 꿇어앉아 있게 했다.북풍한설이 몰아치는데, 우문호는 눈 위에 무릎을 꿇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궁인이 명원제에게 가서 보고하자 명원제도 탄식만 할 뿐 도울 수가 없었다.명원제는 잘 알고 있었다. 다섯째는 자신을 위해 불효자란
장태감과 황후장 태감은 큰 마님을 담 모퉁이로 끌고 가 목소리를 낮춰, “소인이 현비 마마께 적지 않은 보살핌을 받아 왔기로, 지금 소씨 집안에 어려움이 생겨 소인도 가만 있을 수 없으나 소인의 능력이 부족해 그저 마님을 대신해 경여궁에 말을 전해드릴 수 있을 뿐 그 뒤는 소인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큰 마님 결코 저를 공범으로 몰아가시면 안됩니다. 소인은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소씨 집안 큰 마님은 장 태감이 말을 전하겠다는 소리에 절대로 태감이 전했다고 자백하지 않겠다고 했다.장 태감은 그제서야 마님께 돌아가서 소식을 기다리라고 했다.장 태감이 큰 마님을 보내고 나서 바로 돌아와 중궁(中宫)에 가서 황후를 만났다.오늘 문영공주가 아이를 데리고 입궁해 있었는데, 장 태감이 왔다는 말에 황후는 문영공주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내전으로 가라고 했다. 장 태감이 들어와 무릎을 꿇고 보고하길, “마마, 예상하신 대로 소씨 집안에서 확실히 현비 마마께 말을 전하라고 소인에게 부탁했습니다.”황후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그럴 줄 알았지, 현비의 병이 중하면 왜 어의를 부르질 않고, 그 태자비도 진찰하러 자주 입궁하지도 않겠어. 음모가 있을 줄 알았지만 폐하께서 그녀를 없애려고 하실 줄이야.”“그……” 장 태감이 머뭇거리며, “현비 마마께 알려야 할까요? 만약 폐하께서 일찍부터 현비 마마를 처리하시려는 마음이 있으셨다면 마마께서 이 진흙탕에 들어가실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황후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아니야, 장 태감, 내가 모질지 못해서 오늘 이런 난처한 지위까지 떨어지게 된 거야. 다시 모험하고 싶지 않아. 태자의 생모는 반드시 죽여서 후환을 없애야 해. 너는 경여궁 사람에게 말을 전할 방법을 생각해라. 태자가 소씨 집안 저택에 불을 지르고, 몇 명이 죽었으며 태후도 태자의 행위를 지지한다고 전해. 그리고 경여궁을 지키는 수위들에게 은자를 좀 뇌물로 줘서 만약 현비가 소동을 피워서 나오려고 하면 너무 애써서 막지는 말라고 말이야.”
문영공주와 태자 문영공주는 고개를 흔들며 유감스럽다는 듯, “다섯째는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이에요, 만약 현비가 이 일로 아바마마께 사약을 받으면 다섯째는 그걸 짊어지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해요. 그리고 어마마마께서 장 태감에게 한 얘기는……진짜 너무 어이가 없어요. 소씨 집안에 죽은 사람 하나 없는데 현비가 이 얘기를 들으면 미치지 않고 배기겠어요?”황후가 문영공주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네 말은 현비가 죽어서는 안된다?”문영공주가, “현비가 죽어야 할지 말지 제가 감히 망령되게 판단할 것이 아니죠. 아바마마께서는 생각이 있으실 테니 다섯째는 이 일에 관계하지 말고, 최악의 상황으로 아바마마께서 현비를 사사하시면 다섯째와 아바마마 사이에 약간 틈이 벌어져도, 아바마마께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 아바마마께서 다섯째를 이 일에서 빼내려고 하자, 다섯째가 소씨 집안을 뒤엎어 놓은 바람에 황조모에게 죄를 짓고 현비를 궁지에 몰아 죽였다는 죄명을 덮어쓰게 되었으니 어마마마는 앞으로 다섯째를 어떻게 대하려고 이러십니까?”“큰 일을 할 사람이 이 만한 일도 못 넘기면 앞으로 어떻게 이 나라와 천하를 책임져?” 황후는 여전히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마음 속은 까닭 없이 허둥거려졌다.문영공주가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어마마마를 설득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 태감은 이미 경여궁으로 가버린 뒤라 앞으로 이 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게 되었다.현비는 재앙이 눈앞에 닥친 줄 모르고 태자의 생모라는 것과 영아가 곧 시집을 간다는 것을 빌미로 황제가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자신은 맞서 싸울 패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황후가 생각해 보더니 태후 쪽에서 태자를 보고 싶어하는지 아닌지 확인했다.곧 사람이 돌아와 보고하길 태자가 마당에 꿇어 앉아 있다는 것이다.황후의 안색이 하얗게 되더니, “아직 꿇어앉아 있다고? 벌써 저녁인데, 태후 마마께서
화난 태후태후가 나한상에 앉아 울고 있는데 눈이 퉁퉁 부었다. 덕비가 옆에 있다가 문영공주가 온 것을 보고 안도하는 게 태후가 원래 이 손녀를 예뻐 해서 한두 마디 들어 주실 것도 같아서 였다.문영공주가 꿇어앉아, “황조모, 고정하세요. 다섯째를 벌하지 마세요.”태후는 손수건으로 코를 닦는 데 코가 심하게 막힌 상태로 완전히 지친 몰골로, “꿇을 필요 없다. 쟤도 가라고 해. 꿇을 필요 없어. 별 일도 아닌데, 고작 친정이 없어진 정도 아니냐?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으니 다 태자 덕분이지. 사람들이 무사해 난 더 바랄 게 없다.”문영공주는 코가 시큰해 지며 무릎걸음으로 앞으로 와서 두 손을 황태후의 무릎에 올리고 애원하며, “황조모, 이 일은 다섯째가 경솔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할머니 곁에서 자라서 걔 성격을 잘 아시잖아요. 머리에 피가 솟구치면 물불을 못 가리는 거. 은자를 내서 소씨 집안 저택을 다시 짓게 시킬 게요. 다섯째에게 화내지 마세요. 걔도 잘못한 걸 알고 밖에 꿇어 앉아있는데 너무 불쌍해요. 얼어서 말도 제대로 못해요.”“저택을 다시 지어?” 태후가 쓴웃음을 지으며 분노의 눈빛으로, “그런 거로 구나? 내가 지금의 황태후인데 걔가 내 친정을 불살랐어, 소씨 집안이 무슨 큰 잘못을 했느냐? 만약 제때 피하지 못했으면 사람까지 같이 불살랐겠구나? 머리에 피가 솟구쳐서 물불을 못 가리면 내 친정을 태워도 되나 보지? 나도 어디 가서 초왕부를 태워볼까?”덕비도 달래며, “태후 마마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태자가 아마 순간 욱하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소씨 집안이 근래에 좀 분수에 넘는 짓을 했어요. 듣자 하니 태자비를 죽일 자객을 샀다고. 태자가 아내를 아껴서 순간 너무 심한 짓을 했나 봅니다. 어차피 터진 일인데 태후 마마께서 화를 내시면 태후 마마도 손해 시고, 걔도 벌을 받는 게 아닙니까?”태후는 원래 소씨 집안이 저지른 일을 알고 소씨 집안 편을 들지 않았다. 소씨 집안이 불에 탄 이후로 태후 눈에는 소씨 집안의 모든 것이
우문호에게 복수를경여궁 안.현비가 장 태감이 사람을 시켜 알려온 소식을 들었다. 태자가 소씨 집안에 불을 지르고, 몇 명이 죽었으며 죽은 사람에 현비의 모친이 있을 뿐 아니라 태후가 이 일을 지지했다는 말에 현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분노가 삽시간에 불타오르며 분노인지 치가 떨리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숨도 쉬어지지 않아 가슴을 쥐어뜯으며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흐느껴 통곡했다.현비는 흐느껴 울더니 광분해서, “그 불효자식은 지금 어딨어?”“마마께 아룁니다. 태자 전하는 지금 태후궁에 계시는데, 태후 마마께서 대외적으로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하기에 태자전하를 밖에서 가짜로 꿇어앉아 죄를 청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궁인이 답하는데 당연히 장 태감 사람이 시켜 한 말이다.현비는 화장대로 달려가 가위를 집어 들고 분노에 사로잡혀 걸음걸이조차 칠칠치 못하게 달려나가며 울부짖기를, “나가야 겠다, 문 열어!”현비는 가위를 자신의 목에 대고 미쳐 날뛰며 얼굴은 무섭도록 흉하게 일그러졌다.수문장은 일찌감치 명을 받아 감히 말릴 생각 없이 조금 권하는 척 하더니 바로 보내주고 한참 있다가 명원제에게 보고하러 갔다.현비는 미친년처럼 태후전으로 뛰어갔다.가는 길에 심복인 궁인들이 쫓아 왔으나 어떻게 된 건지 모두 따라잡지 못하고 소리쳐 부르기만 할 뿐이다. 누가 감히 나서서 말릴까? 그저 따라 갈 뿐이다.우문호는 아직 마당에 꿇어 앉아 있고 문영공주의 망토와 손난로가 있어 그나마 꽝꽝 얼어붙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어마마마가 흉악한 얼굴로 달려들고 있는데 손에서는 차가운 빛이 반짝였다. “불효자식,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가위가 왼쪽 어깨 뒤에 꽂혔고, 현비가 양손으로 우문호의 얼굴에 계속 따귀를 때리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하는데 여기까지 달려오면서도 힘이 하나도 소모되지 않은 듯 오히려 머리의 비녀를 빼더니 우문호의 가슴을 겨눴다.우문호도 그제서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