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 1294화

작가: 유애
궁지에 몰리는 안왕

안왕은 하마터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 했다. 오늘 탄핵을 주청할 때 100% 확신이 있었는데 형부가 일을 이따위로 허술하게 할 줄 누가 알았나, 서류조차 제대로 확인을 안 하다니.

아니다, 이건 우문호의 고의다. 여러 사건을 제출해 시선을 헛갈리게 만드는 가 하면, 저 위태부는 다친 이후로 계속 조정에 출석하지 않았는데 하필 오늘 와서 자신을 질책하는데 힘을 보태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계획된 것이다.

위태부는 흥분한 나머지 지난번처럼 목숨을 걸고 간언하며 얼굴이 빨갛다 못해 자줏빛이 되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부짖듯, “폐하, 태자 전하의 위상이 요동쳐서는 안됩니다. 태자를 흔드는 것은 국본을 흔드는 것이요, 안왕 전하는 야심을 품고 태자 전하의 지위를 노리고 있습니다. 만약 계속 잘못을 고집하고 뉘우치지 않는다면 형제가 반목하고 상잔하는 비극을 초래해 황실은 비참하기 짝이 없어질 것입니다. 소신의 목을 걸고 폐하께 엄중한 조사와 처벌을 청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신 이 대전에 머리를 박고 자진할 생각입니다.”

명원제가 이 말을 듣고 머리속이 하얘지는 게 지난 번에 죽겠다고 기둥에 부딪혀서 놀라 자빠질 뻔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머리통이 달걀껍질처럼 얄팍한 상태로 한번 더 박았다간 견디지 못할 게 분명했다. 대전에 다른 사람 피를 뿌리는 건 모르겠지만 명원제의 제위 기간 동안 황제의 스승의 피를 뿌리는 것만은 절대로 사양한다.

명원제는 차갑게 안왕을 훑어보니 목까지 빨개져서 있다. 명원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태자의 지위를 넘보았느냐?”

대전의 문무백관의 눈이 전부 안왕에 쏠렸다. 안왕은 억지로 침을 삼키고, “폐하, 소신이 만약 그런 더러운 야심을 품고 있었으면 백 번 죽어 마땅합니다.”

명원제가 차갑게, “그럼 어디 설명 해 보아라, 오늘 너희 12명이 탄핵을 주청한 것은 공교롭게도 그렇게 된 것이냐 아니면 비공식적인 담합이 있었던 것이냐?”

안왕이 땅에 엎드려, “폐하께 아룁니다, 신은……신은 다른 대인들도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명의 왕비   제 1295화

    냉정언의 반격“잘 물어 보셨습니다!” 냉정언이 눈을 반짝이며 마치 그가 이렇게 묻길 기다렸다는 듯, “ 태자비 마마는 보름전에 매화장에 가셔서 대흥국의 임 선생님과 의술을 연구해 나병을 낫게 할 처방을 얻었습니다. 일단 이 일이 성사되면 나병은 북당에서 더이상 불치병이나 악질이 아니요, 천추에 길이 남을 큰 공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은 자연스럽게 태자 전하에게 돌아가겠지요, 때가 되면 민심은 태자 전하의 지위가 공고해 지는 쪽으로 향할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태자의 위치를 흔들고 싶다면 설상가상이죠.”문무 백관은 태자비가 나병을 치료할 약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 게 아니라 처음 들을 땐 추측에 불과하지 않을까 했지만 지금 주재상에 이어 냉정언까지 확실하게 단언하는 것으로 확률이 80~90%로 보인다.일시에 조정 대신들이 술렁거리며 조정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안왕의 죄를 물어야 하는지 생각도 않고 삼삼오오 우문호에게 몰려들어 질문을 했다.위태부는 비록 문둥산을 거론하는 것이 싫지만 냉정언의 이 말을 들으니 위태부의 마음속에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큰 소리로 사람들을 막지 않았다.우문호가 시원스럽고 자신만만하게, “원래 치료가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자비가 왜 걸핏하면 문둥산에 올라갔겠습니까? 임선생님이 오셔서 서로 상의하며 처방을 개선해 약효가 더욱 좋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임 선생님은 원래 이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전에 항간에 떠도는 말로 태자비가 문둥산에 가는 건 보여주기 식이라고 했으나 이 얘기를 한 사람은 멍청하기 그지없는 게, 아니 누가 치료할 자신도 없는데 자기 목숨을 걸고 보여주기를 합니까? 그리고 이 일은 백성들 사이에서 엄청난 난동을 불러일으키고 태자비는 심지어 습격까지 당했지요, 만약 정말 낫게 할 수 없으면 누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겠습니까?”“그렇다면 정말 잘 된 일입니다!”“예, 정말 나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북당의 복입니다.”“7국중에 오직 우리 북당만이 나병을 치료할 수 있고

  • 명의 왕비   제 1296화

    우문호가 못 마땅한 명원제신하들의 얘기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명원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태자의 탄핵을 주장한 12명에게 처분을 내려 전부 1년치 감봉 처분하고 만약 다시 작당하여 사리사욕을 도모하는 것이 발각될 시 즉각 면직하겠다고 엄중히 경고했다.라 후궁이 늑대파를 찾아가 태자비 살해를 교사한 일은 증거가 없으므로 추궁하지 않았으나 안왕을 크게 꾸짖었는데, 형제의 의리를 잊은 것과 형부와 경조부 일은 안왕이 관여할 일이 아닌데 손을 너무 멀리 뻗쳤으니 다음부터는 자중하라고 했다.명원제의 이 말은 안왕의 계책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나 마찬가지로 순간 아무도 안왕을 변명하지 못했다.그 다음 나병 건으로 명원제는 혜민서의 의원과 태자비는 같이 문둥산에 올라가 새로운 처방으로 병자들을 치료하고 만약 진전이 있으면 이 처방을 천하에 공표하라는 성지를 내렸다.드디어 원경릉은 문둥산에 가는 일이 떳떳해 졌고 다시는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되었다.안왕은 원래 오늘 우문호를 파직 시키고 자동으로 자신이 경조부 임직을 자원할 요량이었으나, 이제 처분을 받은 몸이 되어 한 마디도 감히 올리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물러나겠습니다’는 한 마디 후 얼른 나갔다.보랏빛 옷에 옥대를 한 능력자 태자는 휘파람을 불며 나가는데 명원제는 그를 어서방으로 불렀다.명원제는 우문호가 득의만면해서 거의 매력적이기까지 한 얼굴에 입이 귀에 걸린 것을 보고 욱하고 치밀어 올라, “넌 마음먹은 대로 된 걸 숨길 줄 모르고, 희로애락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구나. 이정도 마음대로 됐다고 평정심을 잃다니 조만간 맞아 죽을 놈, 꿇어라.”우문호가 고분고분 꿇어 앉았으나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아바마마, 소신 마음이 기쁜데, 기쁘면 웃어야지 숨기고 감출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형제를 함정에 빠뜨리고 기쁘긴 뭐가 기뻐?” 우문호가 눈부시게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깔깔 웃는 것을 보고 명원제는 화가 치밀었다. 우문호가 즐겁게, “소신이 즐거운 건 원 선생이 드디어 정정당당하게 산

  • 명의 왕비   제 1297화

    우문호의 생각우문호가 대답하며, “예, 소신은 물러가겠습니다!”우문호가 문을 나서는 순간 명원제가,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을 막론하고 태부를 놀라게 하지 말아라.”사사건건 대전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고 해서 아주 간이 벌렁거려 죽을 지경이다.우문호가 또 입이 귀에 걸릴 듯 웃으며, “그건 소신과 상관없는 일로 재상의 생각이었습니다. 재상말이 태부가 절 총애한다고 분명 소신이 대전에서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걸 못 견딜 거다, 그리고 태부가 비록 나이가 상당하다고 하나 걸핏하면 기둥에 머리를 박는데, 이 수를 한 번 쓰면 아무도 당할 사람이 없다더니 과연 그렇군요.”대전 밖에서 재상과 태부가 가만히 이 말을 듣고 태부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주재상을 노려봤다.주재상이 은밀히 고개를 돌려 정원의 낙엽을 바라보며 양손을 소매 속에 넣고 ‘우문호, 이 망할 놈.’우문호가 나가자 태부와 주재상이 모두 눈을 부라리며 잡아먹을 듯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복도 왼쪽으로 슬그머니 도망을 쳤다.우문호가 궁을 떠난 뒤 명원제가 대리사에 성지를 내려 경성에서 최근 일어난 몇 건의 사건을 이어받아 담당할 것을 명하고 사람을 보내 자수한 범인을 철저히 심문해서 반드시 배후에 사주한 사람을 토해내게 하도록 시켰다.이와 동시에 조정에서도 ‘태자비와 대흥국의 임선생님이 연구하여 새로운 약을 내놓았으며, 이 약으로 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명확한 요지의 공지를 천명했다.조정에서 공지를 천명함에 따라 관청에서도 밤을 새워 경성 각처에 방을 붙여 이 일을 알리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전에 나병으로 인해 발생했던 각종 소동은 뚝 그치고 항간에도 책을 줄줄 읊듯이 태자비를 칭찬하기도 했다.우문호는 초왕부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손에 금 담뱃대를 들고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기침에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탕양이 웃으며, “전하, 담배를 좋아하지 않으시면 피우지 마세요, 이건 태상황 폐하께 드리는 건데 전하께서 먼저 피우시는 겁니다.”“황조부께서 늘 피우시

  • 명의 왕비   제 1298화

    돌아온 원경릉탕양이, “지금 안왕 전하께서 아직 선비족과 결탁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만약 정말 궁지에 몰리면 안 그러실 거라고 감히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우문호를 보고 빙그레 아빠미소를 지으며, “전하께서 갈수록 성숙하고 침착하게 장기적 안목으로 생각하시는 모습이, 아마 폐하께서도 속으로 기쁘실 겁니다.”우문호는 그러던지 말았던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노인네가 좋아하던 말던 모르겠지만 원래는 날 불러서 잔소리를 한바탕 하려고 했는데, 내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태자비가 얼마나 억울했던가 선수를 쳤더니 노인네가 무안해서 날 처벌하지 못했지.”탕양도 기뻐서, “지금 밖에 백성들이 다들 태자비 마마를 칭찬하죠,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전에 그렇게 흉악하게 욕을 해대더니 공지가 선포되니 바로 말을 바꾸더라니 까요.”우문호가, “이건 아마 원 선생이 얘기한 ‘군중심리’라는 걸 꺼야. 전에 원 선생을 욕한 건 누군가 앞장을 선 것이고, 지금 아바마마께서 공지를 선포해 조정이 나서서 대외적으로 칭찬하니 백성들도 자연스럽게 또 그에 따라가는 거지. 거기다 문둥병이라는 게 그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공포로 위협해 왔는데 진짜 치료할 수 있다는데 감히 어떻게 욕을 하겠어,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탕양이 일리 있다는 생각에, “맞습니다. 태자비 마마께서는 오늘밤에 돌아오실 수 있으실 겁니다.”우문호가 일어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채로, “아내가 저녁에 돌아온 다니, 그럼 난 관아나 한바퀴 하고 올까, 대리사에서 와서 사건을 이어받아 간다고 하니 앞으로 며칠 간 원 선생이랑 같이 있게 짬을 내볼 수 있겠어.”탕양이 웃으며, “태자비 마마께서 전하와 같이 계실 짬이 없으실 것 같은데요, 오늘밤 급히 오셔서 내일 세자 저하를 맞으러 가시고, 모레 아침 일찍 혜민서 의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시고, 문둥산 일을 마친 뒤 의대를 개설하시느라 태자비 마마 일정이 바쁘십니다. 어디 한가한 태자 전하를 응대할 짬이 있겠습니까.”우문호가 흥이 깨져서 벽을 짚으며, 후

  • 명의 왕비   제 1299화

    아이들의 귀환밤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 일찍 부부는 우리 떡들을 맞이하러 입궁했다.태상황 쪽은 오히려 대하기 편해서 우문호가 금 담뱃대를 선물하고 원경릉이 살뜰히 챙기니, 태상황은 상당히 기분이 좋아져서 둘을 태후궁까지 아이들을 데려 가도록 보냈다.태후는 미련의 끈을 놓지 못했다. 요 근래 어렵사리 아이들 셋을 곁에 두고 희고 포동포동하게 키워 놨는데 다시 돌려보내야 하다니.상선이 따라 나오며 아이들은 아빠 엄마를 오래 떨어져 있을 수 없으니, 초왕부라는 태생에 귀한 곳에서 자라도록 해야 한다고 원경릉 부부를 두둔했다. 태후는 그제서야 아이들을 보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유모가 아이들을 안고 나가는 게 싫었다.아이들을 안고 나온 것을 보고 원경릉 부부가 깜짝 놀란 게, 아이들 얼굴이 꿀떡이 아니라 시루떡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뭘 먹인 거야? 어쩌자고 이렇게 쪘어!” 우문호가 만두를 안는데 묵직한 것이 적어도 서너 근(약2kg)은 늘었다. 양쪽 볼 살이 늘어져서 못생김의 신세계를 열고 있었는데 진짜 속이 꽉 찬 고기만두 같다.원경릉도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겠는 것이, 태후는 아이들이 배고플 까봐 최선을 다해 유모에게 젖을 먹이게 하는 바람에 찰떡이마저 적잖이 통통해 졌다. “왜 그러니? 애들은 자고로 포동포동해야 이쁘지.” 태후는 원경릉 부부가 ‘깜놀’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안 좋았다.“맞아요, 혈색 좀 보세요……혈색이 얼마나 좋은가.” 원경릉이 양심을 속이고 아첨을 하며, “어머나, 이빨도 많이 났네, 4개구나.”“그러게 말이다, 고기도 먹는다니까, 한 번에 고기 반그릇은 먹을 수 있더라.” 태후가 말했다.원경릉은 이 때 이유식을 하는 것도 적당하지만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여도 되는 걸까? 위장이 망가지겠어.두 사람은 별 말 없이 아이들을 안고 궁을 나왔다.돌아올 때 유모가 비로소 원경릉에게 우리 떡들이 원래 더 살이 쪘었는데 요 며칠 설사를 해서 어의를 불렀다고 했다. 어의 말이 너무 기름진 걸 먹였다며 고기를 못 주

  • 명의 왕비   제 1300화

    할머니와 세 아가원경릉 할머니는 가슴이 설레서 일찌감치 일어나 입구를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는데, 마침내 초왕부 마차가 돌아오는 것이 보이자 할머니는 얼른 돌계단을 내려가 맞이했다.말을 몰던 서일이 멀리서 보더니, “노마님은 왜 저렇게 얇게 입고 나오셨지? 오늘 바람이 찬데 감기 걸리시면 안되는데.”원경릉이 가리개를 젖히자 과연 할머니가 기라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시는데 이 추운 날 망토도 걸치지 않으시고 초왕부 문전에 서서 바람에 흔들흔들 휘청거리고 계셨다.원경릉의 마음이 아려 왔는데, 산에 있을 때 할머니는 줄곧 아이들 일을 물으시고 마음 속으로 만나보기를 간절히 바라셔서 왜 이렇게 늦나 한사코 눈이 빠지게 기다리셨던 것이다.마차가 멈추고 우문호가 먼저 만두를 데리고 마차에서 내려서 할머니에게 갔다.만두는 마차에서 자고 있었는데 마차가 멈추자 눈을 반짝 뜨더니 기지개를 폈다.우문호가 만두를 할머니 앞에 안아 올려 드리니 포동포동한 얼굴을 보시고 할머니는 한줄기 눈물을 흘리시며 아이를 안으려고 하시자 원경릉이 와서 한 손으로 할머니를 부축하며, “벌로 할머니는 아이 못 안게 할 거예요, 이 추운 날 면 홑옷만 입고 나오셔서 입술이 얼어서 파래진 거 봐요.”말을 마치고 할머니를 억지로 모시고 들어가는데 할머니가 아야야 하시며, “얘 좀 보기나 하자.”“들어가서 보시면 안돼요? 돌아왔으니 어디 안가요.” 원경릉이 다짜고짜 얘기했다.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사위가 안고 있는 아이가 큰 애니? 널 닮았네, 너 어릴 때랑 닮았어.”원경릉이 할머니의 눈물을 닦으며, “이거 봐요, 왜 아직 눈물을 흘리는데?”“좋아서 그러지!” 할머니가 작게 한숨을 쉬셨다.안에 들어가 할머니는 세 아이들이 자기 눈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눈물 맺힌 눈으로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침착하고도 목이 멘 소리로 아이들에게, “처음 보는 구나, 내가 너희들 증조 할머니란다.” 말을 마치고 또 눈물을 흘리셨다.할머니는 하나하나 품에 안으시더니 한없이 바라보시며

  • 명의 왕비   제 1301화

    원외랑이 된 안왕할머니는 아이들에게서 손을 뗄 수도, 눈을 거둘 수도 없는 것이 서로 닮은 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부르르 떨려왔다. 깊은 떨림의 감정이 가슴에 가득 차올랐다. 시공을 넘어서도 피는 물보다 진하구나 느끼며 단지 아이들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이들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참 좋구나, 정말 좋아!”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온유하고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전부 남자아이들이구나, 여자 아이가 더 있어도 좋을 텐데.”원경릉은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실 줄 전혀 생각도 못하다가 한참 뒤 어이없이 웃으며, “할머니, 아직도 임산부 분만촉진 하시는 거예요?” 할머니도 머쓱한 지 손을 뻗어 경단이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할미는 네가 아들 딸 다 가지길 바라지만 이 시대엔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게 저승 문턱에 한 발 디디고 오는 걸 테니 할미도 당연히 널 또 고생시키고 싶지 않구나, 됐다. 그때 만아에게 들어보니 경성엔 버려진 아이가 많다면서, 나중에 하나 거둬서 네가 낳은 아이인 셈 치면 돼지.”원경릉이 ‘네’하고 대답하고 아이들을 양탄자 위에서 기어 다니게 풀어놓고 본인은 할머니 옆에 기대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우리 떡들이 외증조모랑 친해진 게 원경릉은 위안이 되었다. 이 아가토끼들은 철이 들었다니까.안왕부.안왕에게 성지가 내려 공부에 원외랑 직을 맡으라고 했다.안왕은 꿇어앉아 성지를 받는 얼굴이 차갑고 숙연했다.성지를 전한 대신이 가고 안왕이 서재로 돌아와 성지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냉소를 지으며, “원외랑? 이걸로 내가 나서지 못하게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여겼군.”아라가 슬쩍 성지를 줍더니 먼지를 털고 조그맣게, “왕야, 고정하세요.”“고정?” 안왕이 한손으로 서탁의 물건을 바닥으로 쓸어버리고 검푸른 낯색으로, “내가 지금 고정하게 됐어? 아바마마께서 그렇게 심하게 나를 속이시 다니, 그날 조정에서 아바마마께서 우문호의 계략을 눈치 못 채셨을까?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추측하

  • 명의 왕비   제 1302화

    나병 극복 잔치 준비며칠 뒤 문둥산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혜민서 의원들이 어의와 같이 진단한 끝에, 산 위에 병자들의 증상이 억제되었으며 일부는 이미 거의 완쾌된 상태로 태자비의 말에 따르면 전염력이 사라졌다고 한다.그리고 어의가 처방을 본 뒤 궁으로 돌아가 보고 하고 처방의 기묘함에 경탄했는데, 독을 제거하고 지혈, 피부 생성에 효과가 있고 병의 독소를 없애는 기능도 있어 이 처방을 사용하면 확실히 약으로 병을 없앨 수 있었다.명원제가 크게 기뻐하며 성지를 내려 천하에 사실을 천명하고 태자비에게 상으로 차용증 2~3장을 연달아 써 주었다.원경릉은 명원제에게 다음과 같은 대중 과학을 알리는 조서를 내려 주길 요청했다. ‘나병은 비록 전염성이 있으나 크게 두려워 할 것 없으며, 단지 잘 대비하고 격리한 뒤 치료하면 완치율이 높다’는 내용이다.이 일은 실지로 북당에 있어 중대 사안으로 명원제는 처방을 공개하는 것 외에 경성 및 전국의 관아에 경축 행사를 진행하도록 어명을 내렸다.경성에서는 당연히 대대적인 경축 행사가 이루어졌다.동지가 가까워서 이번 경축행사는 동지 축제와 같이 진행해 공무원들은 3일간 쉬고 관아는 민간과 같이 경축행사를 진행해 경조부 부윤 우문호는 밤에 불꽃 축제를 열기로 했다.불꽃 축제는 원래 정월 대보름에만 하지만 나병을 치료한 것은 거국적인 기쁨으로 명원제도 가난에 쪼들리는 와중에 호탕하게 천금을 내놓아 불꽃 축제는 제법 그럴싸하게 진행 했다.민관이 합동으로 축하하니 궁중에서도 연회를 베풀어 황실의 종친이 전부 입궁해 저녁 연회에 참석했다.원경릉 할머니는 시끌벅적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개를 좋아해서 초왕부에서 다바오를 산책, 훈련시키는 김에 눈 늑대도 훈련시켰다.개도 사람의 인성을 기막히게 파악하나 보다. 현대에서 할머니는 평생 ‘길냥이’와 버려진 개를 구조하는 일도 해서 개 고양이와 교제하는데 익숙했다.원경릉이 푸바오, 다바오와 이렇게 사이가 좋은 것도 어려서 부터 보고 들어 익숙해진 탓이다.점심때 원경릉은

최신 챕터

  • 명의 왕비   제3177화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 명의 왕비   제3176화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 명의 왕비   제3175화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 명의 왕비   제3174화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 명의 왕비   제3173화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 명의 왕비   제3172화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 명의 왕비   제3171화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

  • 명의 왕비   제3170화

    원경릉은 원가에서 이 혼사를 분명히 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노태군이 일곱째 아가씨를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에서 혼담을 꺼내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가의 유일한 문제는 일곱째 아가씨 본인이었는데, 그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십중팔구 성공할 것이다.역시나, 다음 날 탕양과 함께 원가로 향한 원경릉은 원가에서 심지어 점쟁이까지 청해 두 사람의 사주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의 사주를 본 점쟁이는 한참 확인하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두 사람의 사주가 다소 상충합니다.”원 노태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어디가 상충하는가?”“한 사람은 닭띠, 한 사람은 개띠입니다. 이는 닭과 개가 편치 않은 사주라, 혼사를 치른 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노태군은 탁자를 쾅 치며 말했다.“그럼 바꾸면 되지! 이제 보니 우리 딸은 말띠다. 방금 헷갈렸었다.”“말띠요? 말띠라면 괜찮습니다. 말띠는 올해 연분이 따르는 해 입니...”노태군은 점쟁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다니 됐다. 이제 길일을 골라주게.”그러자 점쟁이는 다시 손을 펴고 계산하더니 말했다.“올해 좋은 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연말쯤이어야...”“좋다. 이번 달 15일로 하지. 보름달이 뜨는 날, 사람도 오붓이 모이는 날이니, 좋지 않겠나?”점쟁이가 책자를 닫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예.”혼사는 원가에서 준비하니, 제시간에만 준비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15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원가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일을5일 안에 끝낼 수 있을까 걱정 되었다. 준비할 시간도 아직 부족했는데, 혼례복을 만드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원가는 이미 일곱째 아가씨를 위해 혼례복을 준비해 두었다. 3년마다 한 번씩 새로 만들었기에, 지금껏 서랍 속에 쌓여 있는 혼례복만 해도 7~8벌이나 되었다.혼수도 일찌감치 마련해 두고, 혼담을 꺼낼 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

  • 명의 왕비   제3169화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