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궁의 결백주재상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내의원의 원판이 어의 몇명을 데리고 함께 회진을 했으면 충분히 신중한 것이 아닌가?”적국구가 주재상의 힐문에 마음이 켕기며 갑자기 조어의가 떠올라 얼른, “초왕부에 어의가 한 명 더 있지 않습니까? 같이 불러서 여쭤보는 게 좋겠습니다.”“일단 급하지 않네.” 주재상이 손을 뻗어 앉히더니, “말해보게, 자네 오늘 상소에 희상궁이 나병에 걸렸다고 했는데 어디서 나온 소식인가? 그리고 어떤 조사를 했지? 무릇 상소를 올릴 때는 명문규정이 있기 때문이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지, 헛소리는 상소로 올릴 수 없네.”적국구가, “아니 땐 굴뚝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가름이 난 게 아니지요.”적국구는 고개를 돌려 우문호에게, “전하 송구하오나 조어의를 나오라고 해 주십시오.”우문호가 웃으며, “좋소!”우문호가 손을 들어 조어의를 불러오도록 명했다.잠시 후 조어의가 약상자를 메고 거들먹거리고 오다가 본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예를 취하더니 의심스럽게, “서일, 희상궁이 병이 나서 나더러 와서 진찰해 달라는 거 아니었어? 대인들은 왜 여기 계시지?”적국구가 조어의를 보더니 구세주를 본 것처럼 얼른 붙들고 물으며, “조어의 마침 잘 왔네, 전에 내가 자네와 술을 마실 때 희상궁이 병을 얻어 태자전하께서 집에 가둬 두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태자비께서 오셔서 문둥병에 대해 물어보셨다고? 또 태자비 마마께서 시녀를 시켜 약방에서 문둥병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약을 지어오라고 했다 하지 않았는가?”조어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습니다. 그렇게 말한 게 맞습니다.”적국구는 조어의도 배반할 까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긍정하는 말을 들으니 기뻐서 대중들을 둘러보고 높은 목소리로, “만약 악질에 걸린 게 아니라면 어째서 한달이 넘도록 격리해야 했으며, 어째서 문둥병 처방을 약을 사오게 시켰을까요? 태자비 마마 설명해 주시지요.”원경릉이 보니 적국구가 수탉이 벼슬을 치켜세우고 우쭐거리는 꼴과
적위명은?적국구가 근거 없는 뜬소문으로 초왕부가 악질에 걸린 환자를 사적으로 감췄다고 상소했기 때문에 다음날 명원제는 조정에서 적국구에게 주의를 주고 벌로 일년의 녹봉을 감했으며 계급을 두 단계 낮추었다.녹봉을 제하거나 계급을 낮춘 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자매가 귀비로 궁에 있고 아버지가 대장군이니 승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하지만 명원제는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일 없이 오직 적국구에게만 벌을 내렸고 적위명에게는 쓴 소리 한마디 없었다.하지만 적씨 집안은 바로 알아차렸다. 주재상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는 것을 말이다.주재상도 처음 ‘공적으로 사적인 복수를 하는’ 의미로 적위명을 태상황 앞에 끌고 가 적위명이 적국구와 같이 희상궁이 악질에 걸렸다고 모함했으며, 이는 초왕부를 격리하고 태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해 북당의 근간을 동요할 목적이었다고 했다.태상황은 자기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주재상의 언사가 격렬해, 혈압이 급격히 높아져 혈관이 터질 듯한 조짐이 보였다. 태상황은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고, 적위명은 건곤전에서 죽으면 죽으리라 배짱이다.태상황이 곤란해서 적위명에게, “봐, 이 일은 확실히 자네 부자가 잘못 했어,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적위명의 마음은 진노하고 격분하기 그지 없었다. 이 일에 죄를 묻는다면 적위명에게 물어서는 안된다. 어쨌든 이건 적운이 한 일이다.하지만 지금 태상황은 바로 그들 부자가 잘못했다고 적위명을 싸잡아 말했다.적위명이 격분하여 무릎을 꿇고, “태상황 폐하, 소신은 처음부터 이 일은 알지 못했고,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조정에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적운을 지지한 것은 5년전 악질이 다시 퍼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에 세세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일념으로, 생각이 짧아 초왕부의 명성에 해를 입히고 말았습니다. 소신은 절대 다른 목적이 없었으며 태자 전하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거나 국가의 근간을 흔들다니, 더더군다나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하지만 소신이 이번에 확실히 경솔
적위명 물러나다귀영위의 사령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귀영위의 수장은 신비하기 그지 없는 군대를 통솔하는 자로, 이 군대의 능력은 가히 놀랄 정도로 침투와 전투가 모두 가능하다. 앞으로 태상황이 필요 없다고 하면 이 군대는 새로운 주인을 맞아들일 때까지 일정 기간동안 오직 수장만이 최고 존엄이 될 것이며, 그 수장이 적위명이란 사실이 안왕이 전반적인 정국을 통제하고 안정시키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렇게 대충 적위명을 수장의 자리에서 파면한다고?“응? 어째서 아직 성은에 감읍하지 않는 것이냐?” 태상황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투에 불쾌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적위명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고개 숙여 성은에 감사하며, “소신 태상황 폐하의 성은에 감사드립니다.”주재상은 다소 달갑지 않은 지, “태상황 폐하께서는 적위명을 감싸시는데 희상궁이 폐하의 시중을 든 기간이 적위명이 폐하와 함께 한 시간보다 오랩니다. 폐하께서 이토록 적위명을 감싸시니 희상궁이 마음으로 납득하기 힘들겠습니다.”“나중에 태자비가 몇 마디 위로하면 그뿐, 희상궁도 사리가 분명한 사람이니 대장군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공을 세웠는데 과인도 당연히 아낄 수 밖에 없다는 걸 알 거야” 태상황이 아주 사적으로 정을 주는 듯한 모습으로 적위명을 보고, “자, 귀영위의 병부를 내 놓으시게.”적위명이 하마터면 피를 토할 듯 전신이 분노로 덜덜 떨렸으나 간신히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비틀거리며 귀영위의 병부를 내놓고 고개를 숙여 절한 뒤 물러났다.건곤전을 나와 비로소 자신이 맞닥뜨린 건 두 마리의 늙고 교활한 여우였으며, 사전에 아무 조짐도 없었고 심지어 귀영위 사람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병부를 뺏기듯이 내놓았다.귀영위에서의 몇 년 동안 조금의 수확도 없이 병부를 내놓고 보니 분명 나장군 놈을 수장으로 임명할 게 분명하다. 이 사람은 원래 귀영위 수장으로 소집 명령과 연락 방법을 조정할 것이 분명했다. 적위명은 다시는 귀영위를 볼 수 없
우문호와 원경릉의 생일태상황이 멈칫하더니 곧 탁자를 치며, “맞아, 짐의 고모 경대공주(慶大公主)가 있지, 이제 98세가 되셨는데 아직 결혼을 안 하셨어, 있다가 고모를 꼬드겨 여아홍을 파내서 과인에게 가져와봐.”상선이 혀를 내밀어 술을 약간 찍어 먹더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향을 칭찬한 뒤, “태상황 폐하, 얼른 단념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경대공주 본인이 술을 좋아해서 여아홍은 벌써 파내서 다 드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있다가 궁중 창고에 가서 좀 물어봐, 경대공주가 술을 파냈는지 말이야.” 태상황이 말했다.상선이 ‘예’하고 대답한 뒤 천천히 술을 마시고 만족스럽게 나갔다.건곤전엔 두 사람 뿐으로 술잔을 내려놓고 서로 마주보며 주재상이, “이번에 태자의 계략으로 적위명에게서 수장자리를 빼앗아 적씨 가문 쪽은 진압한 셈이니 당분간 좀 여유로울 수 있겠습니다.”태상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 좀 느긋한 것도 좋지, 3년가량이면 태자가 전열을 가다듬기 충분할 테고, 우리가 대주의 무기를 제련하기도 충분해. 과인이 벌써 사람을 보내 홍엽공자를 주시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경성을 떠나지 않는 게 아마도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해.”“폐하 생각엔 무슨 속셈인 거 같습니까?” 주재상이 물었다.태상황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빛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큰 애를 만나던지 넷째를 만나겠지. 이런 종류의 사람은 반드시 실속을 챙기는 법이야, 일단 호랑이 굴에 들어갔으면 빈 손으로는 안 나오거든.”주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흠, 분석이 일리가 있네요, 태자가 일찌감치 사람을 시켜 홍엽공자를 주시하고 있던데, 보아하니 할아버지와 손자 생각이 같은 듯 싶습니다.”태상황이 물처럼 고요한 얼굴로, “이렇게 일견 태평성대인 듯 보일 때일수록 위험하지. 태자가 신중하게 구는 건 맞아, 하지만 어떨 때 보면 태자는 미숙해. 이 늙은이가 아직은 좀더 붙잡아 줘야 겠어, 다른 사람들이 걸었던 길로 가지 않게 말이야.”주재상이, “흠, 알겠습니다.”초왕부.탕양이 이날 땅
둘만의 생일 여행?노마님은 전에 초왕부에 며칠 묵으셨다가 다시 정후부로 돌아가셨는데 도저히 우리 떡들 때문에 마음이 안 놓여서 며칠 간격으로 찾아오느라 상당히 부산하셨다. 하지만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맑아져서 병은 한결 호전되었다.탕양이 돌아와 원경릉에게 생신이 추석 당일이라고 말했다.원경릉이 흠칫 놀라며, 뭐가 이렇게 공교롭지? 현대의 원경릉 생일도 추석인데.우문호는 초열흘, 원경릉은 보름, 5일 간격이니 친구들을 부르지 않고 두 사람만 사적으로 축하해야 겠다고 원경릉은 생각했다.추석연휴가 3일간 단거리 여행도 다녀올 수 있고 문둥산이나 부근의 마을에 있는 명의를 방문해 볼 수도 있다.이것은 우문호의 생각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추석연휴엔 원경릉을 데리고 서주(西洲)에 갈 생각으로 서주는 경성에서 거리도 멀지 않은데 경치가 아름답고 유명한 만불산(萬佛山)이 있어 산책하고 놀기 좋으며, 호수에서 달을 감상하기 가장 아름답고 절묘한 장소다.원경릉을 설득하려고 우문호는 서주에 수많은 저명한 의사들이 있으며 우선 서주에 가서 이틀을 노는데 하루는 의사들을 찾아가고 하루는 호수에서 배를 띄우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겸사겸사 문둥산을 들르자고 했다.원경릉이 우문호의 스케줄을 듣고 만족해서 자신의 소원도 달성하는 것이니 동의했다.부모가 되고 보니 여행도 전처럼 자유롭지 못해서 자기가 세 아이들을 집에 떨어뜨려 놓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우문호와 원경릉이 여행을 간다는 소식이 사식이를 통해 원용의에게 전해졌고 원용의가 제왕에게 얘기해 제왕이 듣고 얼른 초왕부로 달려가서 원용의를 데리고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었다.우문호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은 게 겨우겨우 밖으로 나가 둘 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제왕과 원용의가 따라와서 뭐하지는 거야?제왕이 징징 생떼를 부리며 ‘이번 여행으로 원용의와 감정을 깊게 만들고 싶다. 한방에 승부를 봐서 이 기회에 홀아비의 숙명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우문호는 요지부동이었지만 원경릉은 설득되어
손주만 사랑하는 명원제적국구와 적위명의 일로 우문호와 원경릉이 얘기를 나눴는데, 지금 귀영위에 내통하는 사람이 없어졌으니 그들도 한시름 놨다.이 외에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조정의 일은 거의 거론하지 않는데, 첫째 우문호가 원경릉이 너무 많은 정국에 관련된 일을 아는 걸 원하지 않지 때문이며, 둘째 원경릉이 지금 문둥산과 학교를 여는데 전념하고 있기 때문이고, 셋째 역시 원경릉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 ‘아녀자는 정치에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도때문에 원 선생이 조정의 일을 묻는다는 것을 안왕 쪽에서 알게 될 경우 분명 황제에게 알릴 것이고, 알린다고 해도 무슨 큰일이야 생기겠냐마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여행 날짜가 정해지자 명원제에게 추석에는 궁에서 보낼 수 없다고 말해야 했다. 명원제가 듣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너희들이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너희들이 오고 안 오고 누가 신경 쓴다고? 손주들 오면 됐어.”우문호는 매정하기 짝이 없는 답을 듣고 상처받아서, “아바마마는 손자만 중히 여기시고 자식은 가벼이 여기십니다.”명원제가 돌직구로, “썩 물러가.”어리광을 부리고 싶던 태자는 아버지의 짜증난 얼굴을 보고, 전에 봤던 자상하고 온유한 미소는 세 꼬맹이를 대할 때만 나오고, 자신은 아버지의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꼬리를 말고 썩 꺼지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규정에 따라 태자는 추석에 궁에 있지 않으니 반드시 전에 가솔들을 데리고 입궁해 현비 마마와 먼저 추석을 쇠야 했다. 이건 고정불변의 규정은 아니고 단지 규례가 그렇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출장을 가서 경성을 떠날 예정인데 경성에 없는 동안 명절을 맞이할 경우 사전에 입궁해야 했다.게다가 추석은 태자의 생일이니 현비 마마에게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북당에서는 효(孝)를 상당히 중히 여겨 지금 현비가 금족령이든 다른 어떤 상황이든 태자는 더욱 만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경성을 떠나기 하루 전 우리 떡들을 데리고 현비와 한자리에 모여
현비의 가족 연회명원제가 있을 때는 현비는 밥상을 정리하는 등 본분에 만족하며 일가족이 화목하고 고부관계 사이도 좋았다.명원제는 가족들이 밥 먹을 때 한쪽에서 우리 떡들과 놀아주고 작은 수저를 가져 다가 떡들에게 맑은 국물을 떠먹여 주기도 하는데, 계속 젖만 먹고 사람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우리 떡들은 엄청 흥분해서 제비새끼처럼 입을 쫙쫙 벌리고 분홍색 혀로 숟가락을 쪽쪽 핥는다.명원제가 넋을 잃고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더니, “천하에 가장 좋은 것도 이 작은 녀석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고, 울던지 웃던지 아무런 까닭 없이 사람을 기쁘게 하니 종일 아가들과 있으면 시름할 겨를이나 있을까?”원경릉이 미소를 띠고, “아바마마, 호비 마마께서 얼른 황자나 공주를 낳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땐 매일 아이를 어르실 수 있습니다.”오늘밤 모두 태평함을 꾸미며 일치단결해 우아하고 아름다운 색조와 화기애애한 모습의 한 폭의 그림 같은 가족을 연출했다.그런데 원경릉의 한 마디가 이 아름다운 그림을 쫙 찢어 놓고 말았다.현비의 얼굴이 순간 싸늘해 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밥 먹으렴, 말 안 한다고 아무도 널 벙어리라고 안 한다. 말만 많이 지껄여 봤자 헛소리밖에 더 하겠니, 예의도 모르느냐?”원경릉이 당황하며 그제서야 현비가 그 일이 신경 쓰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내고, “죄송합니다. 실수했습니다.”우문호는 술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원경릉이 억울한 걸 못 보겠기에 담담하게, “어마마마, 신경 쓰이시면 조용하라고 하시면 되지, 그렇게 엄하게 혼내실 필요 있습니까?”우문호가 말이 없을 때 그린 듯한 가족 모습으로 아직은 손 볼 여지가 있었지만, 그가 원경릉을 돕자고 나서는 순간 한 폭의 그림에 난 균열이 얼룩지다가 결국 갈가리 찢어지는 운명을 맞았다.현비가 ‘탁’하고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더니 열 받아 몸을 떨며, “불효자 같으니, 지금 네 아내에게 말 한 마디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거냐? 네 눈엔 나란 어미가 있기나 하니? 아내를 얻으면 어미를 잊는다더니
현비의 발악과 건곤전의 참사우문호가 이 말을 듣고 화를 참을 수 없으나, 명원제는 일부러 우문호를 위해 모자의 정을 살펴주며 평소처럼, “다섯째야,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가거라.”“아바마마!” 우문호가 명원제를 보니 명원제의 눈에 경고의 빛을 띠고 있어 우문호는 화를 가라앉히고, “예!”하는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이 희상궁과 유모를 불러 아이들을 안게 하고 식사도 채 마치기 전에 다섯식구는 총총히 자리를 떴다.명원제가 의자에 앉아 현비를 바라봤다.현비는 고집을 부리고 서서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폐하께서 신첩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면 신첩을 벌하셔서 계속 금족령을 내리시면 됩니다.”명원제는 엄지 손가락에 끼고 있는 옥가락지(엄지 손가락의 옥가락지는 권력을 상징)를 돌리며 눈을 감고 있으나 날카롭고 명료하게 생각하며 얼음장 같은 말투로 쌀쌀맞게, “현비, 금족령이 두려운가?”현비는 눈물이 불쑥 터지자 닦으며 고집을 부리는데, “두려우면 어쩌겠어요? 폐하께서 신첩의 마음을 반이라도 느끼고 아파하실 수 있으십니까? 폐하께서는 신첩이 왜 그렇게 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기나 하신가요? 신첩도 고심했습니다. 태자는 나라의 근본으로 가볍게 사람들에게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되는데 다섯째는 지금 머리속이 온통 원경릉 생각 뿐입니다. 너무 위험해요, 원경릉을 없애야 폐하께서도 두 다리 쭉 뻗고 걱정이 없지 않으시겠습니까?”명원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얼굴이 얼음같이 차가워 지더니, “지나치게 고심했군, 고작 후궁의 일개 부녀자가 나라의 근본이 어쩌고 어째? 자네가 할 말인가? 만약 태자비가 태자의 일에 간여할 가능성이 있어도 그건 단지 가능성일 뿐이지만, 자네는 직접 태자에게 간여하고 그것도 모자라 네 친정 형제들이 관직과 작위를 도모하는데 태자를 제어하려고 들었어, 짐이 자네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이제 막 태자를 책봉했으니 태자의 체면을 봐서야, 태후 마마께서 자네에게 한 번 경고했고, 이번에는 짐이 두번째로 경고하지, 금족령 정도의 단순한 벌이 두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