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기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처음부터 기자들이 질문에 질문을 이어 끊임없이 묻느라 소이연에게 답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다들 질문이 끝났으면 조용히 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세요.”소이연이 의젓하게 말했다.“제 말이 끝난 뒤에 다시 질문을 받겠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모든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그제야 기자들이 한껏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은근히 화려한 반전이나 더 폭발적인 뉴스가 나오길 기대했다.“어제 뉴스에 보도된 사진들은 합성이 아닌 진짜임을 인정하겠습니다.”곳곳에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소이연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그래도 대다수 기자들이 조용히 앉아 소이연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전에 제가 문씨그룹 홍보부 직원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요. 그때 문서인과 함께 문씨그룹에취직했을 때 문씨그룹은 파산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후원사를 찾지 않으면 더는 일어설 기회가 없었죠. 그 사진에 찍힌 분들이 문씨그룹에 후원해 주셨습니다.”“그렇다면 문씨그룹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했다는 말입니까?”한 기자가 기다리지 못하고 질문했다.“그것으로 외도했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라도 그런 행위는 동정과 용서를 받을 가치가 없거든요.”다른 기자가 맞장구를 쳤다.소이연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제가 이 얘기를 하는 건 성공한 남성들과의 접촉은 단순히 비즈니스를 위한 접대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외도를 하지 않았는데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와 문서인이 사귀는 동안 문서인에게 미안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에 찍힌 신체 접촉은 그저 술을 마신 뒤 의도치 않게 접촉한 것일 뿐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추잡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진은 악의적으로 각도를 노려서 찍었습니다.”“그럼 누가 소이연 씨를 모함했다는 말입니까?”말이 끝나기 바쁘게 기자가 질문했다.“그게 사실이라면 문서인은 왜 나서서 해명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습니까?”“제가 모함을 당한 건 사실입니다.”소이연이 첫 물음에 대답하고 이
소나은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었다.그녀는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기자들은 소나은의 말이 흥미롭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의 주인공이 아니기에 딱히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소이연을 바라보면서 격동된 어조로 물었다.“소이연 씨는 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누가 소이연 씨를 일부러 함정에 빠드리게 한 거죠?”“그 사람은 소이연 씨한테 왜 그런 거죠? 소이연 씨를 질투라도 한 겁니까?”흥분한 기자들과 달리 소이연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문서인 씨와 만나고 있는… 아니, 저와 문서인 씨가 만나고 있을 때부터 그를 유혹했다가 바람피우신 여자분입니다.”기자들은 흥분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소이연은 그녀가 아닌 문서인이 배신하고 바람을 피웠단 뜻이었다.이것은 역대적인 반전이었다.“언니, 기자님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마. 언니가 우리 은하그룹을 위해서 언론을 돌리려고 애쓰는 건 알겠는데… 문서인 씨가 언니한테 잘해줬잖아. 그런데 언니 이익만을 위해서 물귀신 작전으로 이러면 문 씨 가문에서는 얼마나 불공평하다고 느끼겠어.”소나은은 정의롭게 나서서 말했다.소나은의 말을 들은 기자도 짐작이 가는 곳이 있었다.소이연이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려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소이연 씨, 과거에 겪은 일들에 대해서는 동정을 표하고 믿고 싶지만 소이연 씨 일방적인 발언으로는 모두를 설복시키기 어렵습니다.”한 기자가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소나은은 속이 다 시원해났다.소이연, 오늘 화제를 돌리려 했지? 웃기지 마.“소나은 씨, 문서인 씨와 소이연 씨의 교제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도대체 누가 잘못한 겁니까?”한 기자가 소나은에게 물었다.가까운 사람의 증언으로 확실히 하자는 뜻이었다.소나은은 제꺽 대답했다.“두 사람 사이는 아주 좋았어요. 항상요. 저희 언니는 문서인 씨를 많이 사랑했고 문서인 씨도 저희 언니한테 잘해주었고요. 헤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잘
“이… 이건 문서인 씨가 저한테 수영을 배워준 거예요!”소나은은 또 큰 소리로 해석했다.그러나 그녀의 말에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세 번째 장은 어두운 노래방 안에서 찍힌 것이었는데 소나은은 취한 채로 문서인 품에 안겨 쉬고 있었고 그의 손은 소나은의 옷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제가 취해서 문서인 씨가 저를 챙겨주고 있는 거에요.”소나은은 점점 해석하기 어려워졌다.마지막 한 장은 소이연과 문서인이 약혼하던 날 찍은 것이었다.문서인은 약혼 당일 멀끔한 정장 차림이었다.어느 VIP 메이크업 룸.문서인은 소나은을 화장대 앞에 앉힌 채 진한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소나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더 변명할 수도 없었다.소이연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나은을 차갑게 바라보았다.회의실의 불이 켜졌고 현장의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정말로 역대적인 반전이었다.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소이연이야말로 결백하고 묵묵히 헌신하던 사람이었고 좋은 남자, 신랑감 1위였던 문서인이야말로 배은망덕한 나쁜 사람이었다.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한 기자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소나은 씨, 문서인과 있었던 일 모두 사실입니까?”“소나은 씨, 형부를 유혹한 것은 도덕윤리를 어긴 것이 아닙니까? 수치스럽다고 느끼십니까?”“세 번째 장까지는 해석하시던데 마지막 장은 왜 변명하시지 않은 거죠? 넘어져서 입술이 닿은 것일 뿐이라는 변명도 있을 텐데요!”기자의 질문에는 가시가 잔뜩 박혀있었다.“문서인 씨를 감싸고돌더니 불륜녀였네요!”소나은은 기자들이 던지는 폭탄 같은 질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목놓아 울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하지만 여기서 그만 둘 기자들이 아니었다.“소나은 씨, 대답해 주세요. 눈물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소나은 씨, 언니 소이연 씨처럼 침착한 것부터 배우시는 게 어때요! 하는 거라고는 우는 것 밖에 없네요.”“첩의 딸이라 첩이 쓰던 수법으
기자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그들의 질문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소나은을 궁지로 끝없이 몰아갔다.그녀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아직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체면이 구겨졌단 사실을 믿지 못하는 그녀였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는 진정하려고 애썼다.오늘 이 자리에서 제대로 된 해석을 하지 못한다면 후과가 참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랫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있는데. 나 소나은, 이대로 무너지지 않아. 소이연, 내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줄 알았어? 천만에.그녀의 눈빛에 악독한 기운이 서리더니 이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저와 서인 오빠는 서로 사랑했어요.”소이연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결국 인정했네?“언니가 속상해할까 봐 속이고 있었어요. 서인 오빠는 언니가 힘들어할까 봐 마음이 떠났는데도 계속 언니를 만났고 약혼까지 하려 했어요. 그 화재가 아니었다면 서인 오빠는 언니와 약혼도 했을 거예요. 저도 두 사람 사이에서 이미 빠졌고요…”“빠졌다고요?”한 기자가 그녀의 정곡을 찔렀다.“언니 몰래 계속 형부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눈 건 아니고요?”소나은은 기자의 물음에 난처해했지만 곧 강력하게 부인했다.“아니에요! 언니가 문서인 씨와 결혼했다면 저는 제3자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요. 저처럼 교양 있는 사람은 그런 짓을 계속 할리 없어요.”“소나은 씨, 저의 기억에 의하면 어머니도 첩이었다가 결혼한 거로 아는데요? 소나은 씨가 교양 있는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지만 유전의 힘은 아주 확실하네요.”기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그녀는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저…”그녀는 기자가 이렇게 독한 말을 뱉을 줄 상상도 못했다.문서인 이 자식은 매체에 아는 사람 있다며? 왜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 왜 여론이 내 쪽으로 기울지 않냐고!소나은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내가 어떻게 문서인을 좋아하게 된 거지? 쓸모없는 자식!소이연은 그런 소나은을 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산토끼를 잡으려다가 집토끼 놓친다더니.밑천도 못 찾는
그녀는 기자들 앞에서 소나은을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제3자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소이연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소나은의 연기에 속을 뻔한 기자도 소이연의 한마디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렇다.아무리 장황한 변명이라도 첩은 그 자체로 잘못이다.소나은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녀도 소이연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언니가 아직도 화난 걸 알아.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잖아?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하지만 때로는 피가 물보다 더럽다.기자는 그런 소나은을 보고만 있지 못했다.“소나은 씨, 지금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했습니까? 보기보다 뻔뻔하시네요. 언니와 더 멀어지고 싶지 않다고요? 그래요, 소나은 씨 말대로 사랑에 빠진 게 죄가 아니라 칩시다! 하지만 일부러 사진으로 언니가 결백하지 않다고 모함한 건 어떻게 해석하실 생각인가요? 수치심이라는 게 없어 보이네요.”“저는 언니를 모함하지 않았어요. 언니에 관한 사진들에 대해 저는 정말 아는 게 없고요. 저는 그저 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고 언니가 잘 되길 바라는데 어떻게 언니를 모함하겠어요? 제가 은하그룹에 남아있는 것도 언니와 함께 은하그룹을 경영해나가면서 언니를 돕고 싶은 거예요.”소나은은 제꺽 부인했다.그녀는 소이연한테 이 사진들을 그녀가 제공했다는 증거가 없을 거라고 믿었다.문서인이 맡은 일이기에 증거가 있다면 문서인이 그녀를 배신한 것이다.‘문서인이 아직 날 사랑하는지는 모르겠고. 적어도 나와 같은 배에 탄 사이인데 문서인이 그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니까 괜찮아.’“소나은 씨가 아니라면 누구죠?”기자는 소나은임을 확신했다.“소나은 씨는 문서인 씨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네요!”“은하그룹을 책임졌던 소승영 씨가 은하그룹을 소나은 씨에게 물려주려고 했다는데, 그것도 소나은 씨가 소이연 씨를 내쫓기 위한 전략이죠?”기자들의 질문에 소나은은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부인하기에 급급했다.“제가 어떻게
이 녹음파일은 육현경이 그녀에게 보내준 것이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파일만 넘겼다.모든 결정권을 그녀에게 준 것이다.그녀가 녹음파일을 공개한다면 문서인의 이미지는 그대로 추락될 것이고 변명한다 해도 제 이름에 먹칠하는 식이었다.육현경은 그녀를 존중하고 배려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을 믿기 어려워했다.소나은은 이 녹음파일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문서인이 잘 생기고 능력도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세심하지 못하고 멍청할 줄은 몰랐다. 소이연에게 딱 걸릴 줄도 몰랐다.지금은 어떤 변명을 해도 쓸모없었다.문서인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문서인은 왜 매체에 소이연을 난처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겠는가? 어떤 말을 하든지 뻔한 거짓말이 될 것이 뻔했다.“소나은 씨, 더 할 말 있습니까?”기자는 큰 소리로 물었다.“소이연 씨가 갑자기 다친 이유도 소나은 씨와 문서인 씨가 짜고 친 판인가요? 무고한 얼굴을 하고서는 이렇게 악독한 사람일 줄 몰랐습니다!”“소나은 씨, 언니의 남자를 유혹하는 걸로 모자라 언니의 재산까지 뺏으려 했던 겁니까! 재물을 탐내서 목숨까지 해치다니, 보복 당할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문서인 씨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은하 복장의 매출이 문씨 복장과 직접적으로 관계되기 때문에 이런 일로 은하그룹을 무너뜨리려는 것 아닙니까!”기자들은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공개했다.소이연이 더 보태어 말할 것도 없이 이 일은 세상에 그대로 공개되었다.“저… 저 아니에요…”소나은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그녀라는 확실한 증거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그녀라고 손가락질해도 인정하지 않을 속셈이었다.“소이연 씨.”기자들은 소나은을 신경 쓰지 않고 소이연에게 물었다.“사랑했던 사람과 동생이 짜고 친 판에 걸려들었는데 이 두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소이연은 기자회견 내내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늘 기자회견을 연 것도 궁지에 몰려서 저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문서인 씨와 소나은 씨에 대해서
육현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소이연이란 여자는 그의 상상보다도 인내심 있고 강했다.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강한 걸까?육현경은 긴 손가락을 뻗어 타자를 해놓고는 메시지를 보낼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이제는 알겠어. 이연이가 왜 나를 자꾸 멀리하려고 하는지 말이야.가혹한 현실에 치여서 아무도 믿지 않으려 하는 거겠지.’갑자기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육현경은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귀찮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하도경.”“너 소이연 씨 기자회견 현장 라이브 봤어?”하도경은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봤어.”“와, 보는 사람이 더 속이 시원하던데? 나 소이연 씨가 좋아지려고 그래.”육현경의 낯빛이 어두워졌다.“너 소이연 씨와 무슨 사이야? 할아버지 생신 때 소이연 씨를 에워싸고 돌던데. 그 후로 아무 일도 없는 것 같고? 무슨 사이인데? 아무 사이 아니면 내가 소이연 씨한테 들이댈 거야.”“저번에 너의 아버지하고 식사했는데 아버지께서 너 유학 보내실 생각인 것 같더라. 나한테 외국에 어느 학교가 너한테 잘 어울…”“아니, 아니! 나는 그저 해본 말이지.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인데 내가 감히 넘보기라도 하겠어?”하도경은 다급히 그를 말렸다.그는 공부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기 때문이다.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벅차했기에 유학을 갈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아, 내가 왜 전화했냐면 너 이틀 후면 만으로 28살이잖아. 생일 파티는 해야지, 안 그래?”하도경은 화제를 돌렸다.육현경은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쳐다보았다.모레네.“아니면 내가 다 알아서 준비해놓을게.”하도경은 설명하기에 급급했다.“넌 바쁘잖아. 이런 일은 나처럼 한가한 사람이 하는 게 낫지.”“응.”육현경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육현경이 이렇게 쉽게 동의하는 사람이 아닌데… 놀랍네.오늘 소이연 덕분에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그럼 그렇게 정하는 거로 하고 이만 끊을게. 일 봐.”하도경은 전화를 끊었다.통화를 마친 후, 그는
누군가는 기뻐할 때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육현경과 소이연은 속이 시원했고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하지만 문서인은 노발대발했다.그는 전화를 바닥에 던진 바람에 박살 났고 곁에 있던 문서아는 놀란 나머지 숨이 멎는 것 같았다.아무도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문서인과 소나은의 체면이 구겨지고 명예가 실추했다.문서아는 조심스럽게 방금 뜬 뉴스를 휴대폰으로 보았다.소이연의 기자회견 현장에 관한 뉴스의 제목은 아주 흥미로웠다.“소이연 진실 밝혀, 사진 그리고 녹음파일로 문서인과 소나은 바람 증명”뉴스 아래에는 댓글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문서인, 소나은 진짜 더러운 사랑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내고 있네. 부끄러운 줄 알아, 제발!】【내 세계관을 뒤엎는 커플이네. 퉤!】【소이연이 했던 말 중에 “제3자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진짜 멋있다.】【아니지. “문서인 씨와 소나은 씨가 오래도록 사랑하기를 바랄게요.”이게 핵심이지. 끼리끼리 오래 사랑하겠네.】마지막 댓글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네티즌의 직설적인 댓글을 보고서 다른 네티즌들도 소이연의 말의 진정한 뜻을 깨닫게 된 것이다.소이연은 배려심이 깊고 예의 밝은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냐고?문서인과 소나은이 소름 돋을 정도였다.뉴스를 보던 문서아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다.문서인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그녀는 티를 내지도 못했다.방문이 벌컥 열렸고 문서인과 문서아는 고개를 돌렸다.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들의 아버지, 문덕수였다.그는 화가 잔뜩 난 채 들어왔다.“문서인, 방금 뜬 뉴스 어떻게 된 거야! 너 우리 문 씨 가문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어?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문서인은 올라오는 울화를 간신히 참으면서 주먹을 꽉 쥐었고 그 위로 선명한 핏줄이 드러났다.그는 소이연한테 이 정도로 당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문서인, 너 잘 들어. 이 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문 씨 가문에서 내쫓을 테니 그리 알아! 나에게 너 같은
“왜 이래? 왜 갑자기 안 보이는 거야?”눈도 깜빡이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던 허영지는 갑자기 내려진 커튼에 슬픈 눈을 하고 병실을 나서는 간호사에게 물었다.“환자분 쉬셔야 하니까 일단은 다들 돌아가 계세요.”“난 안 가요. 내 아들 옆에 있을 거예요.”“환자분이 가족들 보는 걸 원치 않습니다.”간호사의 입에서 나온 믿기지 않는 말에 허영지는 또 눈물을 터뜨렸다.“왜 우릴 안 보겠다는 거예요? 안에서 혼자 있으면 힘들 텐데...”“환자분한테도 혼자만의 시간을 줘야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드릴 테니까 일단은 돌아가 계세요.”“난 안 가요.”허영지가 고집을 피우자 마찬가지로 송승우 옆에 있고 싶었던 송기명도 움직이지 않았다.“문수 넌 이제 그만 가.”“어젯밤도 샜으니 돌아가서 자.”쌀쌀맞은 엄마의 말투에서 저건 관심이 아니라 타박임을 눈치챈 송문수는 엄마가 저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전 호텔에 가 있을게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세요. 바로 올게요.”하지만 송문수의 말에도 허영지는 대답 없이 차가운 등을 보일 뿐이었다.그에 고개를 떨군 송문수는 돌아서기 전 마지막으로 줄곧 허영지의 곁을 지키며 한마디도 않고 있던 하지수를 쳐다보았다.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그녀도 제가 송승우에게 사실을 말해버렸다고 원망하는 것 같아서 송문수는 결국 씁쓸하게 발걸음을 돌렸다.하지만 하지수는 원망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송문수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송문수가 먼저 다리를 잘라냈다는 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믿고 있던 하지수는 그가 해야 할 말을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는 것 같아 입술을 말아 물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예전의 송문수라면 모르겠지만 함께 일 하면서 봐왔던 송문수는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만약 그가 정말 상황파악도 못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큰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지는 못했을 것이다.혹시라도 너무 속상해서 해명하길 거부하는 것일까 봐 하지수는 용기를 내어 시부모님을 보며 말했다
의사의 질문에 송문수는 입술을 말아 물며 답했다.“오른쪽 다리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그걸 말하면 어떡합니까! 아직은 회복도 채 안 됐고 그런 큰 충격을 받으면 회복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가족분들이 그 정도는 주의해주셔야죠.”의사의 말이 끝나자 허영지도 분노의 화살을 송문수에게로 돌려버렸다.“넌 어쩜 아직도 이러니? 승우가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 그 나이 먹었으면 할 말 못 할 말 정도는 가려야지. 만약 승우가 너 때문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허영지가 목놓아 울자 송기명도 미간을 찌푸린 채로 허영지를 다독이며 말했다.“오늘 일은 나도 실망이다 너한테. 서른 살 넘으면 뒤도 안 보고 일부터 저지르는 버릇은 좀 고칠 줄 알았는데.”가족들의 질타에 해명을 하려던 송문수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어릴 때부터 송승우와 송문수가 싸울 때면 부모님은 늘 송승우의 편만 들어줬기에 송문수는 지금 이 상황에 송승우가 스스로 알아챘다고 한들 저를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그래서 입 아프게 더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선생님, 그럼 이제 어떡해요?”“애가 제 몸 상태를 알았으니 죽겠다고 하면 어떡해요... 선생님,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이제 고작 서른 좀 넘은 앤데 미래가 창창한 애를 제가 먼저 보낼 순 없잖아요...”대성통곡을 하는 허영지를 향해 의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지금은 별문제 없는데 계속 이렇게 우울해하다가 갑자기 이성을 잃으면 그땐 정말 위험할 수도 있어요. 이미 환자분이 본인 몸 상태를 다 알게 됐으니 가족분들은 위로해주면서 환자분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세요.”“우리 아들 국내 최고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애예요, 어릴 때부터 1등을 놓친 적이 없던 애라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텐데... 승우가 제 몸 상태를 알게 됐을 때 얼마나 충격이 컸을지만 생각하면 저도 죽을 것 같아요...”“차라리 그냥 내가 다치고 말지,
장기들은 다 있는 것 같은데 오른쪽 다리에만 느낌이 없는 게 아무래도 불길했다.“형, 진정하라니까.”“마취가 아직 안 풀려서 그런 거야. 마취만 풀리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니까 좀 기다려봐.”“아니야, 아무 느낌도 안 나잖아. 그냥 없어진 것 같아...”송문수의 위로에도 흥분하며 몸을 움직이던 송승우는 점차 제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지금 송승우는 자신이 다리를 잃었다는 생각에 송문수의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환자의 강한 움직임에 여러 가지 중요한 수치가 변하자 중환자실에서부터 경보음이 울려고 빠르게 뛰어온 의사들은 모니터에 표시된 수치들을 보더니 곧바로 송승우를 수술실로 데려갔다.송승우의 심장박동이 놀라울 정도로 느려진 걸 본 송문수는 깜짝 놀라며 재빨리 의료진들을 도와 송승우를 수술실로 옮겼다.한편 하지수의 거듭되는 설득에 밥을 먹고는 송기명과 허영지는 아들 걱정에 일찌감치 병원으로 나왔는데 때마침 수술실로 뛰어가는 송문수와 침대에 누워있는 송승우를 보게 되었다.위험한 고비는 넘겼다더니 또 무슨 일로 수술실에 가는지 몰랐던 그들은 어두워진 의료진들의 안색을 살피며 놀란 심장을 부여잡았다.마음 약한 허영지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하자 송기명과 하지수가 그녀를 부축했고 하지수는 괜찮을 거라고 허영지를 다독이며 그녀와 함께 수술실 앞으로 다가갔다.가족들이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초조하게 문 앞을 서성이던 송문수를 하지수가 나지막하게 불렀다.“문수 씨.”그에 고개를 홱 돌린 송문수는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아까 의료진들을 도와 송승우를 수술실로 옮길 때 송승우의 손이 그의 손에 닿았는데 그게 사람의 손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가워서 송문수는 아직도 진정을 할 수가 없었다.“왜 그래, 말 좀 해봐.”“승우, 우리 승우 괜찮은 거지?”하지수는 하얗게 질린 송문수가 걱정됐지만 허영지는 송문수의 안색은 신경 쓰지 못하고 송승우의 안부를 물었다.송문수는 가족들의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송승우가 본
“너 혼자야?”힘겹게 내뱉은 목소리였지만 그게 너무나도 미약해서 송문수는 송승우에게로 가까이 붙은 채 몸을 숙여야만 그가 뭐라고 하는지 그나마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엄마 아빠도 너 걱정했어.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당분간은 면회 못한다고 해서 어제 호텔로 먼저 보냈어. 보고 싶으면 지금 바로 전화할게.”송문수의 말에 괜찮다며 고개를 젓던 송승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나 많이 다쳤어?”“생명엔 지장 없대, 그런데 교통사고가 워낙 크게 나서 장기들이 많이 손상됐대. 그래서 여기 당분간 있는 건데 최고로 좋은 의료진들만 붙였으니까 걱정 마, 곧 괜찮아질 거야.”“나 얼굴은 멀쩡해?”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멈칫하던 송문수는 솔직하게 말해주었다.“얼굴이 붕대로 다 감겨있어서 안 보여.”“눈, 코, 입, 귀는 멀쩡한 것 같아.”“팔다리는 다 있어?”하지만 또다시 들려온 질문에는 곧바로 답을 하지 못하는 송문수였다.이렇게 빨리 저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지만 교통사고에서 깨어난 환자가 가장 궁금해할 게 본인의 목숨과 몸 상태일 테니 송문수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교통사고에서 가장 흔한 후유증이 얼굴 흉터와 장애라서 저런 질문을 하는 건 알겠지만 송문수는 바로 대답을 못 하고 눈을 피하기만 했다.“송문수.”“다 있어.”결국 의사의 당부 때문에 송승우의 회복을 돕고자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송문수의 긴장한듯한 반응에서부터 송승우는 무언가 눈치를 챈 듯했다.그 힘든 와중에도 그는 흥분을 한 건지 언성을 살짝 높였다.“너 아까 망설였어.”“거짓말이지?”“아니야. 정말 다 멀쩡해.”“맹세해 그럼.”“맹세할게.”죄책감이 점점 켜졌지만 송승우의 감정변화를 느낀 송문수는 아직은 중환자라 큰 충격은 피해야 하는 송승우를 위해 일부러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그게 거짓말이면 넌 평생 하지수랑 같이 못 있어.”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하는 송승우에 송문수는 마른 침을 삼켜냈다.제 목숨을 담보로는 맹세할 수 있어도 하지수와의 감정을
예수진:[그럼 너랑 지수 다 서울에 있는 거야? 아직 병원이야?]예수진:[부모님은 좀 어떠셔? 충격이 크시지?]그들의 문자에 하나하나 답장을 하던 송문수는 점점 더 침울해졌다.누구한테 일어나도 참혹한 비극인데 그 일이 제 형한테 일어났으니 송문수는 어떻게 송승우를 바라봐야 할지 몰랐다.근심 속에서 밤이 깊어지자 하지수가 송문수에게 문자를 보냈다.[자?][아니.][병원에서 잘 수 있으면 어디서 눈이라도 좀 붙여. 문수 씨도 쉬어야지, 어머님 아버님이 못 버티시면 남은 건 당신뿐이야.][알아 나도. 넌 왜 아직 안 자? 시간 늦었는데.][당신이 걱정돼서.][뭐하러 날 걱정해, 난 괜찮아. 송승우가 문제지...]그의 문자에 어떤 말로 답을 해야 할지 몰랐던 하지수는 말을 잇지 못했고 송문수도 그만 대화를 끝내려 했다.[늦었으니까 얼른 자.][응.][나 대신 부모님 좀 잘 챙겨줘, 엄마 아빠 쓰러질까 봐 나 너무 무서워.][내가 계속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 마.]핸드폰을 내려놓은 송문수는 중환자실 앞에 놓인 딱딱한 의자에서 밤을 지새웠다.중환자실에서 나온 송승우가 바로 입원할 수 있게 병원에서 VIP 병실을 열어줬지만 송문수는 그 편한 곳도 마다하고 굳이 송승우 옆을 지키고 있었다.아무리 송승우라 해도 이런 곳에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 봐.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아침까지도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던 송문수는 간호사의 친절한 부름에 서서히 눈을 떴다.“보호자분?”잔뜩 충혈된 눈을 하고 몸을 일으킨 송문수는 의아한 눈으로 간호사를 바라보았다.“환자분이 보호자분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송승우 씨가요?”중환자실을 가리키며 당황한 듯 묻는 송문수를 향해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송문수 씨가 중환자실로 와줬으면 하세요.”“면회 안된다면서요?”“좀 전에 선생님이 또 몸 상태 체크하셨는데 이젠 다 정상수치로 돌아와서 면회 가능하시대요. 대신 시간만 좀 주의해주세요. 아직 몸이 약하셔서 이럴 때는 저희도 환자분 부탁이라면 뭐든 다
시부모님의 몸 상태를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던 하지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송기명은 더욱이 쓰러진 지 얼마 안 된 터라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다가는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았다.“아버님, 어머님, 여긴 문수 씨한테 맡기도 우린 먼저 호텔에 가 있어요.”하지수의 거듭되는 권유에 송기명과 허영지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하라고 송문수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알겠다니까요. 걱정 마시고 가세요. 제가 입구까지 모셔다드릴게요.”송기명과 허영지를 차에 태운 송문수는 조수석에 앉은 하지수를 바라보았다.모든 감정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던 그녀도 송문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두 사람의 눈엔 미련이 가득했지만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그렇게 차가 출발하고 방향등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송문수는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중환자실 복도에 앉은 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좀 차리고 핸드폰을 켜보았다.역시나 수많은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그의 알림창을 꽉 채우고 있었다.다른 문자는 싹 다 무시한 송문수는 친구들과의 방, 그리고 소이연, 예수진이 함께 있는 단톡방, 이렇게 두 곳에만 답장을 했다.육현경:[대체 무슨 일이야?]계지원:[문수야, 너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아저씨 생신 파티는 왜 취소하는 거야?]하도경:[말 좀 해봐, 전화도 안 받고. 이러다가 다들 답답해 죽겠어,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또 다른 단톡방에 있던 소이연과 예수진 역시 걱정스러운 문자를 보내왔다.소이연:[문수 씨, 무슨 일 있는 거죠?]예수진:[송문수, 답장 안 해? 기사 보니까 아줌마 안색도 엄청 안 좋던데 무슨 일이 나긴 난 거지?]예수진:[말 좀 하라고 이 자식아!]소이연:[수진 씨 진정해요 일단. 문수 씨랑 지수 씨가 바빠서 답장을 못 하는 것 같은데 급한 일 다 보고 나면 우리한테도 알려줄 거에요.]예수진:[알겠어요, 기다려봐야죠 뭐.]자신의 화면을 가득 채운 문자를 보던 송문수는 손가락을 움직여
송문수가 사 온 물을 건네도 부모님은 고개만 저으며 손을 모으셨다.그래서 하지수에게 건네자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물을 받아들었다.서울에 온 뒤 송씨 일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줄곧 자리를 지키며 송승우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송승우가 눈을 뜨길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는 받아든 물이라 몇 모금 마시기는 했지만 물을 마시면서도 신경은 온통 송승우에게 쏠려있었다.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송승우의 몸을 보게 되었다.너무 아파서인지 아니면 힘이 없어서인지 몸은 미세한 떨림 외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송승우의 눈이 서서히 떠지고 있어 하지수는 잔뜩 흥분한 채 외쳤다.“승우 오빠 일어났어요!”“문수, 문수야! 얼른 의사 불러와!”하지수의 말에 정신을 차린 부모님이 송문수에게 의사를 데려오라 했고 송문수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의사는 중환자실에서 각종 검사를 진행했다.방음효과가 워낙 좋은 중환자실이라 의사와 송승우의 대화를 듣지 못했던 가족들은 또다시 초조해 났다.한참이나 지나서 중환자실 빠져나오는 의사에 허영지가 다급히 달려가 물었다.“선생님, 저희 아들은 좀 어떤가요?”“방금 검사 진행했는데 생명엔 아무 지장 없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하지만 아직 회복이 덜 돼서 여기서 며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일반병실로 옮겼다가 세균감염이라도 되면 큰일이거든요.”“알겠습니다, 입원은 며칠 하든 상관없으니까 저희 애 잘만 치료해주세요. 그런데 저희가 들어가서 같이 있어 주는 건 괜찮을까요?”“아직은 들어가지 마세요. 환자분도 방금 깨어나셔서 머리가 어지러울 겁니다. 오늘은 그냥 쉬게 놔두시고 내일 상태 좀 나아지면 그때 들어가 보시게 도와드릴게요.”“감사합니다 선생님!”“아닙니다.”감격 어린 허영지의 말에 의사가 한마디 더 보탰다.“환자가 아직은 본인 몸 상태에 대해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일 면회하실 때도 다리 절단한 사실은 일단 말하지 마세요. 환자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그 말에 허영지는 대성통곡을 했고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끄떡없던 송기명마저 아들 일에 눈물을 보였다.평소에 사이는 안 좋았지만 그래도 친형이었기에 송문수도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했고 하지수 역시 송승우가 다리를 잃는다는 말에 눈물을 떨어뜨렸다.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는데.어릴 때부터 본인 잘난 멋에 살던 사람이 자신이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되려 죽겠다고 난리를 칠 것 같아 하지수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목숨이 다리 한쪽보다는 더 중요했기에 결국 사인을 한 송기명은 온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기분 좋게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인 줄로만 알았는데 갑작스레 닥친 비극에 송문수도 아버지를 부축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이어지는 수술에 다들 정신을 반쯤 놓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요한 복도에 갑자기 인기척이 들리더니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가족들 못지않게 속을 태우던 장지석은 피곤한 듯 마스크를 벗는 의사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가 물었다.“승우는 좀 어떻습니까?”그제야 가족들도 정신을 차리고 하지수와 송문수가 어머니 아버지를 부축한 채 의사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다른 말보다 먼저 나온 게 의사의 한숨이라 허영지는 쓰러질뻔한 걸 간신히 버텨내며 물었다.“왜 그래요 선생님, 우리 아들 잘못된 거 아니죠?!”“생명엔 지장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런데...”“그런 데라뇨!”“환자분이 다리를 잃었으니 깨어나시고 나서도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할 겁니다. 가족분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오른쪽 다리 외에도 몸 각 부위가 다 강한 충격을 받아서 일단은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의식 돌아오고 모든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오면 그때 일반병실로 옮길 겁니다.”의사의 말에 허영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송기명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 그들은 전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있었다.그들도 송승우가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
만약 하지수가 송승우의 교통사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가 그런 하지수를 제대로 바라볼 수나 있을지 송문수는 지금 모든 게 미지수였다.송승우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그를 정말 친오빠처럼 생각했던 하지수는 역시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서울 가장 좋은 병원에 입원해 있대.”“나 서울 가야겠어.”“그래요 여보.”마침내 정신을 차린 허영지가 입을 열자 송기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나섰다.“갈 거면 다 같이 가야죠. 오늘 파티는 일다 취소하죠.”부모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문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내가 파티장 취소할 테니까 지수 너는 서울 가는 티켓이랑 차량 좀 준비해줘.”“알겠어.”이미 혼이 반쯤 나간 부모님을 모시려면 본인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기에 하지수는 바로 기사에게 연락하며 공항까지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다.그리고는 한 시간 뒤에 출발인 항공편까지 끊어놓았다.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송문수는 서둘러 파티를 취소하고 있었는데 직원을 시켜 손님들께 나중에 아버지와 직접 찾아뵙고 취소이유를 말씀드리고 사과까지 드린다는 말도 전하게 했다.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송문수는 여러 가지 일을 지시하느라 바삐 돌아치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차분했다.하지만 다들 송승우를 걱정하고 있어서 확 달라진 송문수에게 주의를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1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내린 송씨 일가는 바로 대기 중이던 차를 타고 서울 대학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하자 이미 나와 있던 송승우의 동료가 그들을 맞아주었다.“아주머니, 아저씨 오셨어요? 저는 승우 형 직장 동료 이찬혁이라고 합니다. 형은 안에서 수술 중이에요.”“우리 아들 많이 심한가요 지금?”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걱정을 멈출 수 없었던 송기명이 이찬혁을 붙잡고 묻자 그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저도 좀 전에 연락받고 온 거라 상태가 어떤지는 정확히 몰라요. 형이 실려 올 때는 의식이 있었다고 하니까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