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소이연이 나타나기 바쁘게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오늘 소이연은 허리를 잡아주는 검정색 수트를 입어 세련되고 유능해 보였다.그 진지한 태도도 기자들의 호감을 샀다.적어도 나오자마자 눈물을 흘리면서 동정심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오히려 소나은이 불쌍한 표정으로 옆에 서 있었다. 눈시울까지 붉어진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억울함을 당한 건 소이연이 아니라 소나은 같았다.그래도 모든 기자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소이연이 앞에 서자 기자들이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소이연 씨. 오늘 기자회견을 연 것은 어제 뉴스에 실렸던 몇 차례 외도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까?”“소이연 씨, 외도한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낍니까? 문서인과 헤어진 이유가 외도 때문입니까?”“예수진 씨가 개인 SNS에 소이연 씨를 지지하는 글을 올렸던데 무슨 혜택이라도 주었습니까?”“문서인 같은 훌륭한 남친에게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습니까?”“은하그룹이 당신 스캔들 때문에 파산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애초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친아버지한테서 은하그룹을 빼앗아 왔는데 직원들에게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까?”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소이연은 침묵하고 듣기만 할 뿐 반박하거나 조용히 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수많은 카메라 불빛이 반짝거리자 원래 하얗던 소이연의 얼굴이 몹시 창백해 보였다.한편, 문서인은 휴대폰으로 소이연의 생중계를 노려보고 있었다.벌써 수많은 댓글이 빠르게 스쳐 지나며 분위기를 고조로 이끌었다. 전국 각지에서 다 지켜보고 있다.‘소이연은 전국민의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구나.’문서아도 함께 있었다. 문씨 패션 홍보 건 때문에 회사에 들를 일이 많았다. 지금 문서인을 보러 와서 생중계를 보고 있다.문서아의 관심사는 소이연 외에도 소이연의 스캔들로 인해 예수진의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예수진이 조건 없이 소이연 편에 선 이상 소이연이 철저히 망하면 예수진도 말려들게 뻔하니까.문서아가 예수
그 말에 기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처음부터 기자들이 질문에 질문을 이어 끊임없이 묻느라 소이연에게 답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다들 질문이 끝났으면 조용히 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세요.”소이연이 의젓하게 말했다.“제 말이 끝난 뒤에 다시 질문을 받겠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모든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그제야 기자들이 한껏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은근히 화려한 반전이나 더 폭발적인 뉴스가 나오길 기대했다.“어제 뉴스에 보도된 사진들은 합성이 아닌 진짜임을 인정하겠습니다.”곳곳에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소이연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그래도 대다수 기자들이 조용히 앉아 소이연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전에 제가 문씨그룹 홍보부 직원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요. 그때 문서인과 함께 문씨그룹에취직했을 때 문씨그룹은 파산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후원사를 찾지 않으면 더는 일어설 기회가 없었죠. 그 사진에 찍힌 분들이 문씨그룹에 후원해 주셨습니다.”“그렇다면 문씨그룹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했다는 말입니까?”한 기자가 기다리지 못하고 질문했다.“그것으로 외도했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라도 그런 행위는 동정과 용서를 받을 가치가 없거든요.”다른 기자가 맞장구를 쳤다.소이연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제가 이 얘기를 하는 건 성공한 남성들과의 접촉은 단순히 비즈니스를 위한 접대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외도를 하지 않았는데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와 문서인이 사귀는 동안 문서인에게 미안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에 찍힌 신체 접촉은 그저 술을 마신 뒤 의도치 않게 접촉한 것일 뿐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추잡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진은 악의적으로 각도를 노려서 찍었습니다.”“그럼 누가 소이연 씨를 모함했다는 말입니까?”말이 끝나기 바쁘게 기자가 질문했다.“그게 사실이라면 문서인은 왜 나서서 해명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습니까?”“제가 모함을 당한 건 사실입니다.”소이연이 첫 물음에 대답하고 이
소나은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었다.그녀는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기자들은 소나은의 말이 흥미롭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의 주인공이 아니기에 딱히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소이연을 바라보면서 격동된 어조로 물었다.“소이연 씨는 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누가 소이연 씨를 일부러 함정에 빠드리게 한 거죠?”“그 사람은 소이연 씨한테 왜 그런 거죠? 소이연 씨를 질투라도 한 겁니까?”흥분한 기자들과 달리 소이연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문서인 씨와 만나고 있는… 아니, 저와 문서인 씨가 만나고 있을 때부터 그를 유혹했다가 바람피우신 여자분입니다.”기자들은 흥분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소이연은 그녀가 아닌 문서인이 배신하고 바람을 피웠단 뜻이었다.이것은 역대적인 반전이었다.“언니, 기자님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마. 언니가 우리 은하그룹을 위해서 언론을 돌리려고 애쓰는 건 알겠는데… 문서인 씨가 언니한테 잘해줬잖아. 그런데 언니 이익만을 위해서 물귀신 작전으로 이러면 문 씨 가문에서는 얼마나 불공평하다고 느끼겠어.”소나은은 정의롭게 나서서 말했다.소나은의 말을 들은 기자도 짐작이 가는 곳이 있었다.소이연이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려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소이연 씨, 과거에 겪은 일들에 대해서는 동정을 표하고 믿고 싶지만 소이연 씨 일방적인 발언으로는 모두를 설복시키기 어렵습니다.”한 기자가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소나은은 속이 다 시원해났다.소이연, 오늘 화제를 돌리려 했지? 웃기지 마.“소나은 씨, 문서인 씨와 소이연 씨의 교제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도대체 누가 잘못한 겁니까?”한 기자가 소나은에게 물었다.가까운 사람의 증언으로 확실히 하자는 뜻이었다.소나은은 제꺽 대답했다.“두 사람 사이는 아주 좋았어요. 항상요. 저희 언니는 문서인 씨를 많이 사랑했고 문서인 씨도 저희 언니한테 잘해주었고요. 헤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잘
“이… 이건 문서인 씨가 저한테 수영을 배워준 거예요!”소나은은 또 큰 소리로 해석했다.그러나 그녀의 말에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세 번째 장은 어두운 노래방 안에서 찍힌 것이었는데 소나은은 취한 채로 문서인 품에 안겨 쉬고 있었고 그의 손은 소나은의 옷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제가 취해서 문서인 씨가 저를 챙겨주고 있는 거에요.”소나은은 점점 해석하기 어려워졌다.마지막 한 장은 소이연과 문서인이 약혼하던 날 찍은 것이었다.문서인은 약혼 당일 멀끔한 정장 차림이었다.어느 VIP 메이크업 룸.문서인은 소나은을 화장대 앞에 앉힌 채 진한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소나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더 변명할 수도 없었다.소이연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나은을 차갑게 바라보았다.회의실의 불이 켜졌고 현장의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정말로 역대적인 반전이었다.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소이연이야말로 결백하고 묵묵히 헌신하던 사람이었고 좋은 남자, 신랑감 1위였던 문서인이야말로 배은망덕한 나쁜 사람이었다.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한 기자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소나은 씨, 문서인과 있었던 일 모두 사실입니까?”“소나은 씨, 형부를 유혹한 것은 도덕윤리를 어긴 것이 아닙니까? 수치스럽다고 느끼십니까?”“세 번째 장까지는 해석하시던데 마지막 장은 왜 변명하시지 않은 거죠? 넘어져서 입술이 닿은 것일 뿐이라는 변명도 있을 텐데요!”기자의 질문에는 가시가 잔뜩 박혀있었다.“문서인 씨를 감싸고돌더니 불륜녀였네요!”소나은은 기자들이 던지는 폭탄 같은 질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목놓아 울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하지만 여기서 그만 둘 기자들이 아니었다.“소나은 씨, 대답해 주세요. 눈물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소나은 씨, 언니 소이연 씨처럼 침착한 것부터 배우시는 게 어때요! 하는 거라고는 우는 것 밖에 없네요.”“첩의 딸이라 첩이 쓰던 수법으
기자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그들의 질문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소나은을 궁지로 끝없이 몰아갔다.그녀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아직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체면이 구겨졌단 사실을 믿지 못하는 그녀였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는 진정하려고 애썼다.오늘 이 자리에서 제대로 된 해석을 하지 못한다면 후과가 참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랫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있는데. 나 소나은, 이대로 무너지지 않아. 소이연, 내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줄 알았어? 천만에.그녀의 눈빛에 악독한 기운이 서리더니 이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저와 서인 오빠는 서로 사랑했어요.”소이연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결국 인정했네?“언니가 속상해할까 봐 속이고 있었어요. 서인 오빠는 언니가 힘들어할까 봐 마음이 떠났는데도 계속 언니를 만났고 약혼까지 하려 했어요. 그 화재가 아니었다면 서인 오빠는 언니와 약혼도 했을 거예요. 저도 두 사람 사이에서 이미 빠졌고요…”“빠졌다고요?”한 기자가 그녀의 정곡을 찔렀다.“언니 몰래 계속 형부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눈 건 아니고요?”소나은은 기자의 물음에 난처해했지만 곧 강력하게 부인했다.“아니에요! 언니가 문서인 씨와 결혼했다면 저는 제3자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요. 저처럼 교양 있는 사람은 그런 짓을 계속 할리 없어요.”“소나은 씨, 저의 기억에 의하면 어머니도 첩이었다가 결혼한 거로 아는데요? 소나은 씨가 교양 있는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지만 유전의 힘은 아주 확실하네요.”기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그녀는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저…”그녀는 기자가 이렇게 독한 말을 뱉을 줄 상상도 못했다.문서인 이 자식은 매체에 아는 사람 있다며? 왜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 왜 여론이 내 쪽으로 기울지 않냐고!소나은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내가 어떻게 문서인을 좋아하게 된 거지? 쓸모없는 자식!소이연은 그런 소나은을 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산토끼를 잡으려다가 집토끼 놓친다더니.밑천도 못 찾는
그녀는 기자들 앞에서 소나은을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제3자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소이연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소나은의 연기에 속을 뻔한 기자도 소이연의 한마디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렇다.아무리 장황한 변명이라도 첩은 그 자체로 잘못이다.소나은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녀도 소이연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언니가 아직도 화난 걸 알아.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잖아?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하지만 때로는 피가 물보다 더럽다.기자는 그런 소나은을 보고만 있지 못했다.“소나은 씨, 지금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했습니까? 보기보다 뻔뻔하시네요. 언니와 더 멀어지고 싶지 않다고요? 그래요, 소나은 씨 말대로 사랑에 빠진 게 죄가 아니라 칩시다! 하지만 일부러 사진으로 언니가 결백하지 않다고 모함한 건 어떻게 해석하실 생각인가요? 수치심이라는 게 없어 보이네요.”“저는 언니를 모함하지 않았어요. 언니에 관한 사진들에 대해 저는 정말 아는 게 없고요. 저는 그저 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고 언니가 잘 되길 바라는데 어떻게 언니를 모함하겠어요? 제가 은하그룹에 남아있는 것도 언니와 함께 은하그룹을 경영해나가면서 언니를 돕고 싶은 거예요.”소나은은 제꺽 부인했다.그녀는 소이연한테 이 사진들을 그녀가 제공했다는 증거가 없을 거라고 믿었다.문서인이 맡은 일이기에 증거가 있다면 문서인이 그녀를 배신한 것이다.‘문서인이 아직 날 사랑하는지는 모르겠고. 적어도 나와 같은 배에 탄 사이인데 문서인이 그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니까 괜찮아.’“소나은 씨가 아니라면 누구죠?”기자는 소나은임을 확신했다.“소나은 씨는 문서인 씨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네요!”“은하그룹을 책임졌던 소승영 씨가 은하그룹을 소나은 씨에게 물려주려고 했다는데, 그것도 소나은 씨가 소이연 씨를 내쫓기 위한 전략이죠?”기자들의 질문에 소나은은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부인하기에 급급했다.“제가 어떻게
이 녹음파일은 육현경이 그녀에게 보내준 것이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파일만 넘겼다.모든 결정권을 그녀에게 준 것이다.그녀가 녹음파일을 공개한다면 문서인의 이미지는 그대로 추락될 것이고 변명한다 해도 제 이름에 먹칠하는 식이었다.육현경은 그녀를 존중하고 배려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을 믿기 어려워했다.소나은은 이 녹음파일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문서인이 잘 생기고 능력도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세심하지 못하고 멍청할 줄은 몰랐다. 소이연에게 딱 걸릴 줄도 몰랐다.지금은 어떤 변명을 해도 쓸모없었다.문서인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문서인은 왜 매체에 소이연을 난처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겠는가? 어떤 말을 하든지 뻔한 거짓말이 될 것이 뻔했다.“소나은 씨, 더 할 말 있습니까?”기자는 큰 소리로 물었다.“소이연 씨가 갑자기 다친 이유도 소나은 씨와 문서인 씨가 짜고 친 판인가요? 무고한 얼굴을 하고서는 이렇게 악독한 사람일 줄 몰랐습니다!”“소나은 씨, 언니의 남자를 유혹하는 걸로 모자라 언니의 재산까지 뺏으려 했던 겁니까! 재물을 탐내서 목숨까지 해치다니, 보복 당할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문서인 씨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은하 복장의 매출이 문씨 복장과 직접적으로 관계되기 때문에 이런 일로 은하그룹을 무너뜨리려는 것 아닙니까!”기자들은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공개했다.소이연이 더 보태어 말할 것도 없이 이 일은 세상에 그대로 공개되었다.“저… 저 아니에요…”소나은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그녀라는 확실한 증거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그녀라고 손가락질해도 인정하지 않을 속셈이었다.“소이연 씨.”기자들은 소나은을 신경 쓰지 않고 소이연에게 물었다.“사랑했던 사람과 동생이 짜고 친 판에 걸려들었는데 이 두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소이연은 기자회견 내내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늘 기자회견을 연 것도 궁지에 몰려서 저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문서인 씨와 소나은 씨에 대해서
육현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소이연이란 여자는 그의 상상보다도 인내심 있고 강했다.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강한 걸까?육현경은 긴 손가락을 뻗어 타자를 해놓고는 메시지를 보낼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이제는 알겠어. 이연이가 왜 나를 자꾸 멀리하려고 하는지 말이야.가혹한 현실에 치여서 아무도 믿지 않으려 하는 거겠지.’갑자기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육현경은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귀찮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하도경.”“너 소이연 씨 기자회견 현장 라이브 봤어?”하도경은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봤어.”“와, 보는 사람이 더 속이 시원하던데? 나 소이연 씨가 좋아지려고 그래.”육현경의 낯빛이 어두워졌다.“너 소이연 씨와 무슨 사이야? 할아버지 생신 때 소이연 씨를 에워싸고 돌던데. 그 후로 아무 일도 없는 것 같고? 무슨 사이인데? 아무 사이 아니면 내가 소이연 씨한테 들이댈 거야.”“저번에 너의 아버지하고 식사했는데 아버지께서 너 유학 보내실 생각인 것 같더라. 나한테 외국에 어느 학교가 너한테 잘 어울…”“아니, 아니! 나는 그저 해본 말이지.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인데 내가 감히 넘보기라도 하겠어?”하도경은 다급히 그를 말렸다.그는 공부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기 때문이다.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벅차했기에 유학을 갈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아, 내가 왜 전화했냐면 너 이틀 후면 만으로 28살이잖아. 생일 파티는 해야지, 안 그래?”하도경은 화제를 돌렸다.육현경은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쳐다보았다.모레네.“아니면 내가 다 알아서 준비해놓을게.”하도경은 설명하기에 급급했다.“넌 바쁘잖아. 이런 일은 나처럼 한가한 사람이 하는 게 낫지.”“응.”육현경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육현경이 이렇게 쉽게 동의하는 사람이 아닌데… 놀랍네.오늘 소이연 덕분에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그럼 그렇게 정하는 거로 하고 이만 끊을게. 일 봐.”하도경은 전화를 끊었다.통화를 마친 후, 그는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