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자초한 일이잖아.”소이연은 차갑게 비웃었다.“난 네가 내 뒷조사를 할 줄은 몰랐어! 예전에는 무조건 나만 믿는다더니, 그런 헛소리는 이제 다 집어치워! 너라고 다를 것 같아? 우리 도긴개긴이야!”“문서인, 네 더러운 이름과 나를 함께 거론하지 마. 네까짓 게.”소이연은 차갑게 반박했다.“그리고 그 사진들, 내가 찍은 게 아니야.”“네가 아니라고? 내가 믿을 것 같…”소이연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네가 지질하다고 해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줄 알아? 문서인,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정의로운 사람도 많아! 그 사람들 눈에 너는 그저 추악한 악마일 뿐이야! 그래서 그 사람들이 네가 나 몰래 바람 피우는 사진을 찍어준 거야. 내가 문씨 그룹을 위해 미친 듯이 일할 때, 너는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내 동생과 사랑을 속삭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겠지!”휴대폰을 쥐고 있던 문서인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누구야! 누구냐고! 누가 감히 날 배신한 거야!’“나한테 누구냐고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어. 이 사진들은 약혼식 날, 화재가 일어난 후에 익명으로 받은 거니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나한테 알려주려고 그런 거겠지.”그녀는 바보처럼 문서인을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사람도 그녀가 너무 바보 같아서, 저런 남자 때문에 상처받지 말았으면 해서 남몰래 증거를 남겼을 것이다.그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아마 문씨 그룹의 사람인데 문서인한테 밉보이긴 싫어서 긴 마음의 투쟁 끝에 약혼식이 화재때문에 취소된 후 그녀에게 사진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녀가 사랑에 지나치게 빠져서 문서인과 헤어지지 않고 사진을 보낸 사람을 몰아갈까 봐 걱정되었던 것 같았다.익명은 서로에 대한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그녀는 이 사진들을 받았을 때, 세상에 공개해서 문서인과 소나은의 체면이 구겨지게 하고 손가락질 받게 하고 싶었으나 그녀는 결국 두 사람을 놓아주기로 했다.혹시라도 정말 사랑해서 그
“문서인, 네가 한 일은 다 고스란히 네게로 돌아갈 거야!”소이연은 문서인과 더 얽히기 싫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휴대폰을 쥐고 있던 문서인의 손이 계속 떨렸다.소이연한테 이 정도로 당했으니 그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그에 관한 부정적인 뉴스를 내리는 일이었다. 그는 뉴스를 보기 전에 매체에서 그를 비판할 줄은 알았다. 지금 그는 매체에 변명할 수도 없고 변명한다 해도 더 욕먹고 더 많은 기사가 날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이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만약 계속 이슈로 떠오른다면… 문서인은 두 눈을 감았다.그럼 다른 뉴스로 덮는 방법밖에 없겠지.……소나은의 사무실.기자회견이 끝난 후, 그녀는 너무 화가 나 여기서 나가지 않고 계속 울고 있었다.어릴 적부터 이렇게 창피한 적은 없었고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체면이 구겨진 적도 없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멘탈이 강했지만 뉴스에서 그녀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도저히 볼 용기가 없었다. 봤다가 정신적 충격을 받을까 봐 겁났다.사무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소나은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날 건드리지 말…”비서인 줄 알았던 것이다.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양화랑과 유백희였다.소나은은 순진하고 연약하게 생겼는데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으니 더 지켜주고 싶고 불쌍해 보였다.두 사람이 들어온 것을 본 소나은은 펑펑 울면서 의자에서 일어났고 곧바로 유백희의 품에 안겼다.“할머니, 나은이가 잘못했어요. 나은이가 못나서 저희 소씨 가문의 이름에 먹칠했어요. 언니가 자매간의 정도 뿌리치고 저를 난처하게 만들 줄은, 저희 소씨 가문을 난처하게 할 줄은 몰랐다고요…”예전부터 소나은은 유백희의 이쁨을 받았기에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잘 알고 있었다.유백희는 공평이고 뭐고 없었고 원칙은 더더욱 없었다. 누가 그녀를 기분 좋게 해주면 누구의 편을 들고 누가 소씨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면 맞든 틀리든 절대 용납 못하는
“짝!”소이연은 눈을 꽉 감았다.유백희는 소이연의 뺨을 후려갈겼다.그녀의 하얀 얼굴에 선명한 손자국이 빨갛게 남았다.“빌어먹을 년! 감히 이런 일을 벌여? 네 동생더러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거냐! 우리 소씨 가문의 체면은 어떡할 거고? 소이연, 넌 소씨 가문의 영원한 오점이 될 거다.”유백희는 그녀의 뺨을 때리더니 이내 욕을 퍼부었다.소이연은 여전히 달아오르는 아픔을 찾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그 순간, 안 좋은 기억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소씨 가문에서 그녀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소나은이 소씨 가문으로 들어온 뒤로 소승영과 유백희의 환심을 샀고 소이연을 괴롭히기 시작했다.어릴 적 소이연은 반항할 줄도 모르고 참기만 했다.소승영과 유백희가 소나은이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소이연에게 벌을 주었기에 그저 꾹 참았던 것이다.유백희는 그녀를 굶긴 적도 있었다. 이틀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않고 물도 못 마시게 했다.그녀는 오늘 처음 유백희한테 뺨을 맞은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에 유백희한테 세게 뺨을 맞고서 바닥에 쓰러졌었는데 한쪽 귀가 한 달이나 들리지 않았다.벌을 서거나 무릎을 꿇고 있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소나은이 울면 모두 소이연의 탓이고 언니가 되어서 동생한테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그녀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지금은 알게 되었다.애초에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소씨 가문의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그녀의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소씨 가문에서 이 모녀에게 어쩌지 못한 것은 그저 어머니가 소씨 그룹을 꽉 잡고 있을 때라서 그랬던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혼자서 무너져가는 소씨 그룹을 성장시켜 장안시의 상류 기업에 등극하게 만들었다.하지만 소씨 가문은 고마워하지 않았고 그녀의 어머니의 모든 노력과 피땀은 강압적이라서 소씨 가문의 체면을 구겼다는 평가와 함께 묻어버렸다.그녀의 어머니는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룹은 소씨 가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곧바로 추악한 면
양화랑과 소나은은 옆에서 소이연이 유백희에게 괴롭힘당하는 것을 보며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소나은이 애써 숨겨온 감정이 조금은 분출된 것 같았다.소이연이 아까 언론에서 능력이 아무리 좋아 봤자, 그게 뭐 대수라고, 결국 유백희한테 똑같이 욕이나 처먹고.“소씨 가문이 도대체 어떻게 커온 건지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는 알고 있을 거예요. 전 당연히 당신이랑은 싸우지 않을 거고요. 세상 물정 모르는 가정주부랑 수준 높은 대화를 한다는 건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니까요. 제 입만 아파서.” 소이연은 차갑지만 평온했다.비아냥거리는 말투는 유백희의 눈에 핏발이 서게 만들었다.그녀가 다시 한번 손을 들어 그녀의 뺨으로 내리치려는 순간, 소이연이 유백희의 팔을 잡았다.어쨌든 그 누구도 계속 맞고 있어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뺨 한 대면 유백희에게 충분하다.“소이연 이거 놔! 너, 이 천박한 년!” 유백희는 화를 내며 욕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씨 가문에 한 발짝도 들일 생각 하지 마. 소씨 가문에 이렇게 너같이 천박한 년은 없어. 정말 우리 소씨 가문에 먹칠할 일이야!”소이연은 유백희의 팔을 세게 뿌리쳤다.“소씨 가문에 다시는 단 한 발짝도 들이지 않을 거라고요.” 소이연이 차갑게 말했다. “근데 재산은 잘, 깔끔하게 정산해야죠.”“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재산을 논해! 네가 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제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이랑 얘기할 게 아니죠. 어차피 못 알아듣잖아요......”“소이연!”“저는 그냥 당신이 내려친 이 뺨 한 대의 대가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고 싶을 뿐이에요!”“소이연, 네가 감히 날 협박해? 넌 네가 날 협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번 생에 내가 먹은 소금이 네가 먹은 밥보다 훨씬 많아......”갑자기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곧바로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들어왔다. “신고자가 누구시죠?”“저요.” 소이연이 대답했다.유백희는 매섭게 소이연을 노려봤다.“무슨 일입니까?” 경찰이 물었다
폭행죄가 성립되었다.그녀가 원한다면, 상대방은 형사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소이연은 휴대폰을 켜 경찰에 결과를 전달한 뒤, 입원 수속을 밟았다.병상에 기대 휴대폰 화면에 띄워진 수없이 많은 부재중 전화를 보고는 다시금 ‘무시’를 선택했다.그녀는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지금 인터넷에는 모두 문서인과 소나은을 비난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심지어는 그들의 18대 가문까지도 언급되는 악랄한 수준이었다.이 정도까지 왔으니, 문서인과 소나은이 잃은 지위와 명예 외에, 문 씨 그룹과 소 씨 그룹에도 직접적인 손해를 끼쳤다. 예를 들어 두 그룹의 제품 불매운동, 주식시장 하락 등의 문제였다.소이연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그녀는 다시 SNS를 켰다. 문서인이 예전에 업로드 했던 게시물을 보았다.예전에는 해당 게시물을 상단에 고정해 두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욕하고 있다.가장 인기 있는 댓글은 【몸 파는 여자와 개새끼의 조합, 영원히 함께하길.】이었다.그 댓글 아래에 그 댓글보다 더 인기있는 댓글이 있었다.글은 없고, 치켜든 엄지손가락 이모티콘이었다.이 이모티콘을 남긴 사람은 플랫폼 공식 인증 마크가 있는 계정인 “육 씨 그룹 육현경.”이었다.그 아래로 더 많은 댓글이 달렸다. 【이거 육 씨 도련님이야? 육 씨 도련님도 SNS를 한다고? 】【이거 육 씨 도련님이 SNS에 남긴 유일한 글임.】【헐… 내가 육 씨 도련님이랑 소통을 하고 있다고? 죽어서도 연기 뿜을 듯.】【문서인이 한 짓은 육 씨 도련님도 차마 못 보겠다는 거지. 육 씨 도련님 너무 정직하시다!】그 아래로는 가식적인 칭찬이 이어졌다.소이연은 피식 웃었다.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머릿속에 갑자기 육현경의 댓글과 이 게시물이 떠올라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입꼬리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소이연은 입술을 문질렀다.입꼬리의 웃음이 다시 사라졌다.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겠지만, 육현경이 그녀에게 주는 영향은 점점 더 커졌다.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를 떠올리고 있었다....
“소이연, 네가 어떻게 네 할머니를 폭행죄로 신고를 해! 경찰이 그러던데, 너 합의 안하고 법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다며!” 소승영은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소이연이 이렇게까지 하다니.“예전에 공장 직원한테 합의 안 해준 건 그렇다 쳐도, 네 친할머니야. 너 그러다 천벌 받아!” 소승영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화를 냈다.“친할머니?” 소이연이 차갑게 웃었다. “할머니가 말씀 안 드렸어요? 당신네 소씨 가문에 나 같은 사람은 없다고요! 앞으로도 다시는 소씨 가문에 한 발짝도 들이지 않을 거예요!”“그땐 화나서 그런거고.”“저도 화났어요.”“그래도 네 할머니야. 너보다 연세도 많으신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나이가 많은 건 괜찮은데, 나잇값을 못 하면 안되죠.”“소이연, 넌 좋은 말로 하면 안 듣지?!” 소승영이 화를 냈다.소이연은 웃었다.좋은 말로 한다고?!도대체 어떤 말이 좋은 말이었을까.할머니의 잘못을 인정하기라도 했나?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기라도 했나?설명을 듣기라도 했나?됐다.소씨 가문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희망을 품은 적이 없었다.“안 들어요.” 소이연은 착잡하다는 듯 대답했다.“소이연!” 소승영은 화가 나서 펄펄 뛰었다. “너 내 체면 구기려고 작정했니?! 넌 진짜 네가 네 할머니한테 죄를 물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가 지금 언론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고 은하 그룹이 인지도가 조금 생겼다고 다 네 거라고 생각하냐고! 내가 장안시에서 지낸 시간, 우리 소씨 가문이 장안시에서 지낸 시간 동안의 명성이 있는데, 넌 정말 내가 널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네가 뼈도 못 추리게 할 수 있어......”“만약, 저까지 포함하면요?”소이연은 손가락이 굳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그녀는 육현경이 그녀의 휴대폰을 가져가 받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저는 육현경입니다. 저까지 포함하면요? 당신 어머니의 죄를 물을 수 있을까요?”소승영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애초에 육현경이 소이연과 함께 있으리
“아빠, 뭐래요? 언니는 그래도 할머니 신고하겠대요?” 소나은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소승영이 대답했다. 당연히 소이연을 설득하지 못했다.그는 아주 단단히 화가 났다. “넌 육현경 꼬신다고 한 거 아니었니? 이렇게 오래됐는데, 육현경이 왜 아직도 소이연이랑 같이 있는 거야!”더 억울해진 소나은은 눈 주변이 시뻘게지도록 울었다. “저도 육현경을 꼬셔서 우리 소씨 가문의 일이 다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요. 하지만 육현경은 지금 언니한테 목매고 있어서 애초에 제가 육현경한테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어요......”“당신, 애들한테 뭐라고 하지 말아요. 감정이라는 건 정말 서두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이번 일로 나은이도 울다가 쓰러지기 직전이었어요. 우리 어떻게 하면 소이연이 어머님을 신고하지 않을지 좀 더 잘 생각해 봐요. 만약 어머님이 정말 소이연의 신고로 형을 받아 밖으로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정말 집안 망신이에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씨 가문을 비웃겠어요.” 양화랑이 급히 나은을 대신해 해명했다.소승영도 여기까지 생각하니 화가 나서 핏대가 설 정도였다.“다 제가 못나서 그래요. 저만 아니었으면 할머니도 그렇게 언니를 혼내지 않으셨을 텐데.” 소나은은 또 불쌍한 척을 했다. “아니면 제가 가서 언니한테 사과할게요. 제가 가서 무릎을 꿇는 한이 있더라도 제가 할게요. 할머니가 형을 받지 않을 수만 있다면.”“이번 일은 다 네 책임만은 아니야! 네 언니도 소씨 가문 체면은 생각도 안 하고,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고, 소씨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다니, 네 할머니도 이런 꼴을 가만히 보고 계실 수 없어서 소이연을 찾아간 거야.게다가 문서인도 쪼잔해서는, 은하 그룹이 잘 되니까 소이연한테 가서 맞서더니, 소이연한테 되레 한 방 먹었잖아. 예전엔 그래도 문서인이 문씨 가문을 회생시켰으니, 인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계속 이렇게 가다 보면 문씨 가문도 다 무너질 거야.”양화랑은 공평하고 공정한 시선으로 이 일에 대해 평가
“어릴 때는 반항할 능력이 없었지만, 이제 다 컸으니 그렇게 쉽게 괴롭힘당하진 않아.” 소이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사실 그녀도 본인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말로 육현경을 위로하는 것이었다.왜 그를 위로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아마도 그가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게다가 이 세상에 정말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해 주는 사람은 몇 안 된다.“아파?” 육현경이 갑자기 물었다.그의 시선은 여전히 붓기가 남아있는 그녀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도대체 얼마나 세게 때리면 이렇게까지 부을 수 있는 걸까.소이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아프지 않다.어렸을 때 비하면...... 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어렸을 때는 마음까지 다쳤으니.지금은 소씨 가문 사람의 일에는 눈물 한 방울도 아까웠다.육현경은 그런 그녀를 보며 그의 얇은 입술을 계속 문질렀다. 온몸에서 한기를 내뿜는 것 같아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당연히 그녀는 그가 무섭지 않다.그녀도 그가 화난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나 사과 먹고 싶어.” 소이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화제 전환을 위해서였다.육현경은 시선을 살짝 돌렸다.“저번에 당신이 깎아준 사과 진짜 달았는데.” 소이연은 덧붙였다.육현경의 한기가 조금은 수그러든 것 같았다.그는 테이블의 과일 접시를 보고 몸을 일으켜 사과와 과도를 집어 들고 아주 조용히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길게 쭉 뻗은 마디가 명백한 손가락, 흉터 하나 없는 깨끗한 두 손.소이연은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스스로 정말 용기가 부족하다고 느꼈다.너무 많은 일을 겪은 터라, 모험을 하기엔 두려웠다.혹시나 정말 누군가를 잃을까.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차라리 가지지 못하는 것이 나았다.빠르다.작은 조각의 사과 한 접시가 소이연의 눈앞에 놓였다.“고마워.” 소이연은 접시를 받아 들고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그녀는 사실 과일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사과가 진심으로 맛있다고 느껴졌다.새콤달콤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