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 가문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을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임씨 가문의 잔인함은 정말 대단했다.화재로 살인을 덮으려 하다니.소이연과 천우진은 결코 이 수단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오늘 위험이 있을 줄 알았다면 그들도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소이연은 이를 악물었다.다른 사람은 차치하고 그녀도 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눈앞의 길은 이미 불길에 휩싸였다.소이연과 육현경은 앞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주위의 불길은 점점 더 커져 연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다.소이연이 머뭇거리던 그때 육현경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뛰어가요."소이연은 육현경을 힐끗 바라보았다."옷이 아직 축축해서 불길이 솟아오리지 않을 거예요."육현경의 위로에 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외투로 머리를 감싸요. 내가 데리고 나가줄게요."육현경은 단호하게 소이연의 손을 이끌고 불길에 뛰어들었다.소이연은 눈앞의 불길을 바라보았다.무섭지 않다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소이연은 불길에 뛰어들면 그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들어갔는데도 계속 불길이 이어진다면 그들 앞에는 불타 죽는 결말만이 놓일 것이다.그러나, 지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제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죽을 수밖에 없다.소이연은 누구도 구조할 사람이 없다고 화신했다.구조한다고 해도 그들이 죽은 이후일 것이다.소이연은 육현경이 자신의 손을 더욱 힘 있게 감싸 쥐고 있음을 느꼈다.육현경은 다시 그녀의 손을 내려놓고 외투로 그녀의 머리를 완벽하게 감싸 쥐고 자신의 품 안에 가두었다.소이연은 반항하고 싶었다.그러나 이러면 육현경은 불에 탈 수 있었기에 그가 하는 대로 놔두었다.소이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육현경은 그녀를 안아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그녀의 몸은 전부 감싸졌지만 여전히 뜨거운 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감출 수 없는 아픔이었다.소이연은 너무 괴로워 소리를 질렀다.그러나 육현경의 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소이연은 육현경이 자신을 잘 감싸 보호하고
육현경은 눈을 뜨기 힘들었다.갑작스러운 아픔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그래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간신히 정신은 유지하고 있었다.그가 정신을 잃으면 소이연은 어찌할 것인가?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소이연이 땅에 버린 젖은 천을 집어 들어 그녀의 인중에 놓았다.소이연은 가슴이 아렸다.육현경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정신을 차린 후 제일 먼저 자신을 보호하다니.소이연은 너무 놀라 옷이 떨어져도 주울 정신이 없었다.너무 많은 연기를 먹어도 사람은 죽을 수 있었다.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때, 육현경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돌봐야 해요."그러나 육현경은 위험이 깃든 순간에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소이연은 그가 그녀의 안전을 위해 밀쳤기에 조명이 그의 등에 떨어진 것이다.소이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마음이 너무 복잡했다.하지만 지금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기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육현경은 바닥에서 기어 올라왔다.그가 상처를 입었어도 상처를 돌볼 시간도 없었고 휴식할 시간도 없었다.육현경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후 소이연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눈앞에는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물에 적셨던 옷은 이미 말라 온몸이 뜨거웠다.손에 쥔 젖은 수건도 큰 의미가 없었다. 코가 타들어 가듯 숨을 쉬기 어려웠다.'콰당!'소이연이 갑자기 바닥에 넘어졌다.무엇에 부딪힌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몸에 힘이 풀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육현경은 몸을 숙여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소이연도 몸을 일으켜 일어났다가 몸에 힘이 풀려 다시 넘어졌다.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몸이 너무 뜨거웠다. 아직 살이 타지 않았지만 온도가 너무 높아 피부가 견딜 수 없었다.그녀는 몸 전체가 아파왔다."날 신경 쓰지 말아요..."소이연은 바닥에 넘어졌다.그녀는 살고 싶었다. 절대 죽기 싫었다. 육민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더 이상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그래서 육현경에게 부담이 될 수 없었다.육현
"날 내려줘요, 같이 죽을 필요... 없어요."소이연은 육현경을 다그쳤다."죽지 않아요."육현경은 단호하게 그녀에게 말했다."저번에도 구해줬듯이 이번에도 구해줄게요."소이연이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있을까."말하지 말고 체력을 남겨놔요. 우리 죽지는 않을 거니까."육현경은 이 말만 남기고 발걸음을 더욱 빨리했다.등 뒤에서 소이연은 눈을 감았다.더 이상 그의 힘을 뺄 수는 없어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육현경은 소이연을 업고 불길을 무릅쓰고 출구로 달려 나갔다.소이연은 온몸에 통증을 느꼈지만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그녀는 육현경의 등에 기대어 그의 급박한 숨소리를 느꼈다.육현경은 여러 번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서며 매 순간을 포기하지 않았다.소이연은 기절 직전이었으나 육현경은 그녀를 업고 속도를 높였다.소이연이 혼미해지기 직전에 눈앞에 몇 개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그러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천씨 가문의 사람이라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지만 임씨 가문의 사람이라면 육현경과 그녀는 모두 죽을 것이다.그러나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소이연은 의식을 잃었다.그때 육현경도 힘이 빠졌는지 바닥에 넘어졌다.바닥에 넘어지는 순간에도 그는 소이연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꼭 붙잡았다.그림자의 사람들이 재빨리 그들에게 다가왔다.그들은 방화복과 마스크를 완벽하게 착용한 상태였다."그녀를 구해줘요..."육현경은 아직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그러나 그의 몸은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았기에 말만 뱉어 소이연을 먼저 구해주게 했다."걱정마요."남성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그들은 육현경과 소이연을 빨리 연회장 밖으로 들어 올렸다.밖으로 나가자 사람들 틈에 몇 대의 구급차가 세워졌다."소이연!"천우진이 재빨리 달려갔지만 심문헌의 속도가 더 빨랐다.소이연이 의식을 잃은 모습을 보자 심문헌은 심장이 빨라졌고 눈시울이 빨개졌다.소이연은 의식이 돌아온 듯 대답을 하려 했으나 눈도 열리지 않았고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구급
"소이연을 구하러 들어갈 사람을 보냈어요."천우진은 심문헌을 안심스키려 일부러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심문헌은 천우진을 바라보았다."들어가면 다 죽는 거예요."천우진의 말에 심문헌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천우진의 앞에서 그는 항상 이성을 잃는 모습이었다.천우진도 소이연을 그 누구보다 걱정할 것이다.소이연은 그의 사촌 동생이었고 그들의 감정은 친남매보다 더 돈독했다.그러나 천우진은 이런 일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반면에 심문헌은 반대였다."걱정 마요. 이연은 아무런 일도 없을 거니까요."천우진이 그를 위로하자 심문헌은 그를 힐끗 보았다.그의 위로에 말할 수 없는 안심이 느껴졌다.천우진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천우진이라면 소이연을 구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심문헌도 언제부터 천우진에게 이런 신뢰를 느끼지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그그러나천우진을 몇 번 만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너무 깊어 오래 사귈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심문헌과 천우진은 연회장 안에서 초조하게 구조를 기다렸다.임씨가문도 이때 질서정연하게 인원을 체크하고 사죄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그들은 아마도 적극적으로 구조 작업과 후 처리를 하는듯 보였다.한참 후.심문헌은 지금 이 기다림이 한 세기의 기다림처럼 길어 보였다.다시 불길로 달려 들어갈 충동이 일어날때 쯤 안에서 몇 명이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중 두 명은 분명히 한 명을 안고 있었다.심문헌은 육현경과 소이연이 함께 할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마음속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거렸다.심문헌에게 소이연은 살아있으면 그걸로 족했다.그녀가 살아있기만을 바랐다.복도.심심문헌은쉬지 않고 끊임없이 갔다 왔다를 반복했다.천우진은 그런 심문헌을 힐끗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 심문헌의 불안한 모습에 언짢았지만 여전히 소이연이 걱정되었다.심문헌의 모습에 천우진은 더욱 걱정이 되어 몸을 일으켜 안으로 들어갔다.심문헌이 천우진을 막으며 물었다."어디 가
소이연이 큰일이라도 날까 봐 너무 무서웠다."이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천우진은 심문헌의 생각을 뀌뚫고 입을 열었다.심문헌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이연은 천우진에게도 소중한 사람이니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두려웠으리라.조용한 복도.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모든 기다림은 마치 지옥에 있는 것처럼 1분 1초가 괴로웠다.그때 응급실의 문이 열리며 의사가 걸어 나왔다.심문헌과 천우진이 빠르게 걸어가자 의사가 입을 열었다."걱정마세요. 환자는 생명의 지장은 없습니다. 짙은 연기를 과도하게 흡입하여 혈액이 산화되어 의식을 잃은 겁니다. 구급 조치로 현재 환자분은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호흡계통에 치명상을 입었고 몸에 열이 남아있기에 한동안 입원 치료를 하셔야 합니다. 가족분들은 입원 수속을 해주세요."심문헌과 천우진은 한숨을 돌렸다.살아있다.살아있으면 된 거다.소이연이 죽지 않으면 된 거다."입원 수속 하러 갈게요."천우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줘요."심문헌이 천우진을 쳐다보았다.심문헌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천우진이 큰 걸음으로 떠났다.그도 빨리 소이연을 보고 싶겠지만 입원 수속을 하러 떠났다...갑자기 천우진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이연이 응급실에서 호흡기가 달린 채 나왔다.그녀는 말을 할수 없었지만 눈은 뜬 채였다.심문헌을 보면서 소이연은 눈빛으로 그에게 인사를 전했다.그녀의 모습에 심문헌은 눈물을 쏟아냈다.소이연이 아직 살아있음에 감동했고 그녀가 호흡기를 꽂은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다."이연씨, 괜찮아요. 우리 병실로 돌아가요."심문헌은 한 편으로 소이연의 손을 잡고 다른 한 편으로 그녀를 보호하며 그녀를 병실로 데려다주었다.그의 목소리에 소이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말을 하려 했으나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목이 너무 아파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말하지 마요. 다 낳으면 그때 얘기해요."심문헌은 말하려는 소이연의 모습을 알아채고 말을 덧
그건 원망 어린 말투였다.소이연은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심문헌과 천우진이 더욱 가까운 사이로 되었음을 느꼈다."육현경을 보러 갔어."천우진이 입을 열었다.심문헌의 원망에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미 습관 되었다.그의 고집을 받아주듯이 심문헌의 얼굴색이 조금 수그러들었다.그제서야 육현경과 소이연이 함께 불길에서 구해낸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육현경은 오래전에 연회장을 떠났지만 둘이 함께 있었던 건 그가 다시 소이연을 구하러 돌아갔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마음이 불편했다.매번 중요한 순간은 항상 육현경이 차지했다.심문헌의 모든 생각이 얼굴에 나타나 표정이 계속 변했지만 소이연과 천우진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소이연은 천우진을 바라보았다.뒷이야기가 알고 싶은 것이다.소이연이 응급실에서 나올 때 심문헌에게 육현경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심문헌이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천우진은 아마 그녀가 원하는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지내다 보면 그가 정말 세심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생명의 위험은 없고 몸이 상태는 너랑 비슷해. 지금 병실에 있어. 임아영이 그를 보살피고 있어. 너보다 화상이 더 심각해, 하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는 아니야. 보기 싫은 흉터가 남을 거야. 그리고 갈비뼈도 2개 부러졌어."소희연은 눈을 부릅떴다.그 순간 그녀는 육형경이 갈비뼈가 부러진 이유는 위에서 떨어진 조명 때문임을 알았다.육현경이 갈비뼈가 부러진 상황에서도 그녀를 업고 떠나다니, 정말 놀라웠다...가슴이 아려왔다.이런 감정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천우진은 소이연의 기분 변화를 알아채고 심문헌을 돌아보았다.심문헌도 천우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를 보았다.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그대로 쓰여 있었다.천우진도 어쩔 수 없었다.소이연을 속일 수도 없었다.그녀는 지금 육현경의 상황을 관심할 게 뻔했다.그리고 육현경은 이번에 소이연을 확실히 구해줬다.천우진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나도 더 이상 다른 테스트를 할 필요 없이 스파이를 연회장으로 불러 직원으로 위장시켜 우리를 구하러 오게 한 거야. 우리가 이미 빨리 탈출했기에 임씨 가문에서 막으려고 했을 때는 우리는 이미 안전하게 홀을 나간 뒤였어. 임씨 가문이 자신들이 한 일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지. 먼저 할아버지를 돌려보낸 후에 네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너를 찾으러 사람을 보냈어."소이연의 두 눈은 분노로 일렁거렸다.그녀는 임씨 가문의 살인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임씨 가문은 천씨 어르신만 죽이려고 했으나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었기에 함께 손을 쓴 것이다. 더욱이 임아영은 소연을 미워했으니 더욱더 죽이고 싶었으리라."먼저 휴식해."천우진이 입을 열었다."후에 너랑 상의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증조할머니가 왜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지, 단순히 권력 때문인 건지.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나타난 건지."소이연도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다.임씨 가문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원하고 있다.그러나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어쩌면 이건 임씨 가문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소이연이 눈을 감았다. 그녀도 쉬고 싶었다.오늘 죽음에서 탈출하느라고 참 힘들었다. 그녀도 기분을 전환할 시간이 필요했다."심문헌, 나를 따라와요."천우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연 씨와 함께할 거예요."심문헌은 조금 언짢았다. 자기가 가고 싶으면 혼자 가지. 그는 소이연의 곁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의 일을 겪고 난 후 그는 더욱더 그녀에게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뒤통수의 상처 치료해요."신문헌은 그제야 자신의 뒤통수에 상처가 있음을 발견했다.그는 뒤통수를 더듬었다."악!"느껴지는 아픔에 심문헌은 소리쳤고 얼굴도 일그러졌다."됐어요. 내가 4명이 보디가드를 불러 24시간 이연을 지키게 했으니까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병실 안.천우진과 심문헌도 함께 있었다.심문헌은 소이연에게 과일을 깎아 주고 있었다.예전에 해본 적이 없는지 볼품없는 솜씨에 천우진은 비웃음을 던졌다.심문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이걸 내가 직접 깎은 사랑의 사과에요. 아무리 예쁘지 않아도 먹으면 달콤해요. 그거면 됐죠,이연씨?"소이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밖에 서 있는 육현경을 보게 되었다.들은 데에 의하면 그의 상처는 그녀보다 훨씬 심각했다.그녀가 아직 바닥에 내려오는 것이 어려운데 그는 어떻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단 말인가."여기 왜 왔어요?"심문헌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바로 나타났다."이연 씨를 보러 왔어요.""당신이 볼 필요 없어요. 당신은 당신의 몸만 챙겨요. 다른 사람이 일에 끼어들지 말고."심문헌은 강한 소유욕을 내비쳤다.육현경은 소이연을 힐끗 바라봤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심문헌은 이때 사과를 다 깎았는지 작게 다듬어 친히 포크로 찍어 소이연의 입에 갖다주었다.그 모습을 보며 소이연은 심문헌이 참 유치하다고 생각했다.그는 육현경의 앞에서 일부러 이러는 것이다. 육현경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챘다.그리고 소이연도 심문원의 체면을 깎을 수 없었기에 입을 열어 받아먹었다.사과는 역시 달았다."맛있어요?"심문헌이 그녀에게 물었다."맛있어요.""그럼 많이 먹어요."심문헌은 한참이나 그녀에게 사과를 먹여주었다.육현경은 문 앞에서 그 둘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소이연이 사과를 다 먹자 심문헌이 물었다."더 먹을래요?""아니요.""그럼 화장실 갈래요? 데려다줄게요.""괜찮아요.""아니면 밖에 나가서 산책할래요? 오늘 날씨도 괜찮은데 햇볕 좀 쬐고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아니요.""의사 선생님이 당신이 몸이 많이 허약해서 누워서 많이 휴식하라고 했어요. 나도 조용히 있을 테니까 필요 없는 사람들은 다 나가라고 할게요."심문헌은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뱉었다.육현경은 문 앞에서 문신처럼 움직이지 않았다."문헌 씨.
송문수가 사 온 물을 건네도 부모님은 고개만 저으며 손을 모으셨다.그래서 하지수에게 건네자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물을 받아들었다.서울에 온 뒤 송씨 일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줄곧 자리를 지키며 송승우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송승우가 눈을 뜨길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는 받아든 물이라 몇 모금 마시기는 했지만 물을 마시면서도 신경은 온통 송승우에게 쏠려있었다.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송승우의 몸을 보게 되었다.너무 아파서인지 아니면 힘이 없어서인지 몸은 미세한 떨림 외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송승우의 눈이 서서히 떠지고 있어 하지수는 잔뜩 흥분한 채 외쳤다.“승우 오빠 일어났어요!”“문수, 문수야! 얼른 의사 불러와!”하지수의 말에 정신을 차린 부모님이 송문수에게 의사를 데려오라 했고 송문수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의사는 중환자실에서 각종 검사를 진행했다.방음효과가 워낙 좋은 중환자실이라 의사와 송승우의 대화를 듣지 못했던 가족들은 또다시 초조해 났다.한참이나 지나서 중환자실 빠져나오는 의사에 허영지가 다급히 달려가 물었다.“선생님, 저희 아들은 좀 어떤가요?”“방금 검사 진행했는데 생명엔 아무 지장 없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하지만 아직 회복이 덜 돼서 여기서 며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일반병실로 옮겼다가 세균감염이라도 되면 큰일이거든요.”“알겠습니다, 입원은 며칠 하든 상관없으니까 저희 애 잘만 치료해주세요. 그런데 저희가 들어가서 같이 있어 주는 건 괜찮을까요?”“아직은 들어가지 마세요. 환자분도 방금 깨어나셔서 머리가 어지러울 겁니다. 오늘은 그냥 쉬게 놔두시고 내일 상태 좀 나아지면 그때 들어가 보시게 도와드릴게요.”“감사합니다 선생님!”“아닙니다.”감격 어린 허영지의 말에 의사가 한마디 더 보탰다.“환자가 아직은 본인 몸 상태에 대해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일 면회하실 때도 다리 절단한 사실은 일단 말하지 마세요. 환자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그 말에 허영지는 대성통곡을 했고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끄떡없던 송기명마저 아들 일에 눈물을 보였다.평소에 사이는 안 좋았지만 그래도 친형이었기에 송문수도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했고 하지수 역시 송승우가 다리를 잃는다는 말에 눈물을 떨어뜨렸다.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는데.어릴 때부터 본인 잘난 멋에 살던 사람이 자신이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되려 죽겠다고 난리를 칠 것 같아 하지수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목숨이 다리 한쪽보다는 더 중요했기에 결국 사인을 한 송기명은 온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기분 좋게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인 줄로만 알았는데 갑작스레 닥친 비극에 송문수도 아버지를 부축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이어지는 수술에 다들 정신을 반쯤 놓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요한 복도에 갑자기 인기척이 들리더니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가족들 못지않게 속을 태우던 장지석은 피곤한 듯 마스크를 벗는 의사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가 물었다.“승우는 좀 어떻습니까?”그제야 가족들도 정신을 차리고 하지수와 송문수가 어머니 아버지를 부축한 채 의사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다른 말보다 먼저 나온 게 의사의 한숨이라 허영지는 쓰러질뻔한 걸 간신히 버텨내며 물었다.“왜 그래요 선생님, 우리 아들 잘못된 거 아니죠?!”“생명엔 지장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런데...”“그런 데라뇨!”“환자분이 다리를 잃었으니 깨어나시고 나서도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할 겁니다. 가족분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오른쪽 다리 외에도 몸 각 부위가 다 강한 충격을 받아서 일단은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의식 돌아오고 모든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오면 그때 일반병실로 옮길 겁니다.”의사의 말에 허영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송기명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 그들은 전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있었다.그들도 송승우가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
만약 하지수가 송승우의 교통사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가 그런 하지수를 제대로 바라볼 수나 있을지 송문수는 지금 모든 게 미지수였다.송승우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그를 정말 친오빠처럼 생각했던 하지수는 역시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서울 가장 좋은 병원에 입원해 있대.”“나 서울 가야겠어.”“그래요 여보.”마침내 정신을 차린 허영지가 입을 열자 송기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나섰다.“갈 거면 다 같이 가야죠. 오늘 파티는 일다 취소하죠.”부모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문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내가 파티장 취소할 테니까 지수 너는 서울 가는 티켓이랑 차량 좀 준비해줘.”“알겠어.”이미 혼이 반쯤 나간 부모님을 모시려면 본인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기에 하지수는 바로 기사에게 연락하며 공항까지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다.그리고는 한 시간 뒤에 출발인 항공편까지 끊어놓았다.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송문수는 서둘러 파티를 취소하고 있었는데 직원을 시켜 손님들께 나중에 아버지와 직접 찾아뵙고 취소이유를 말씀드리고 사과까지 드린다는 말도 전하게 했다.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송문수는 여러 가지 일을 지시하느라 바삐 돌아치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차분했다.하지만 다들 송승우를 걱정하고 있어서 확 달라진 송문수에게 주의를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1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내린 송씨 일가는 바로 대기 중이던 차를 타고 서울 대학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하자 이미 나와 있던 송승우의 동료가 그들을 맞아주었다.“아주머니, 아저씨 오셨어요? 저는 승우 형 직장 동료 이찬혁이라고 합니다. 형은 안에서 수술 중이에요.”“우리 아들 많이 심한가요 지금?”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걱정을 멈출 수 없었던 송기명이 이찬혁을 붙잡고 묻자 그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저도 좀 전에 연락받고 온 거라 상태가 어떤지는 정확히 몰라요. 형이 실려 올 때는 의식이 있었다고 하니까 아마도...”
문자를 본 허영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자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사모님, 무슨 일이라도 난 겁니까? 왜 그러십니까?”특종을 잡은 것마냥 달려드는 기자들에 송씨 일가 사람들도 다 같이 허영지를 주목했다.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진 그를 보며 송기명이 물었다.“여보, 왜 그래요?”아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시울만 붉히고 있자 조급해 난 송기명이 다시 한번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요?”“엄마, 무슨 일 있어요?”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긴장한 채로 물어왔지만 허영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리기 시작했다.그에 미간을 찌푸린 송문수는 아직 켜져 있는 엄마의 핸드폰을 가져와 문자를 확인했는데 그 역시 문자를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송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핸드폰으로 뭘 봤길래 사모님이 저러시는 겁니까?”기자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그는 바로 허영지의 핸드폰을 들고 기자회견장을 벗어났다.“대표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무슨 일인지 한 말씀 해주세요!”하지만 그런 무시에도 굴하지 않는 기자들이 송문수를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경호원들이 몸을 던져 그들을 막기 시작했다.송문수의 표정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아챈 하지수도 입술을 말아 물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가 복도로 나오자 송문수는 이미 통화 중이었는데 통화가 거듭될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송문수의 표정이 저 정도로 굳어있다는 건 무언가 큰일이 났다는 뜻이었다.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본 적 없던 표정이라 하지수는 자연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음주운전으로 잡혀갈 때도 침착하기만 하던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저러는지 하지수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한참 동안 통화를 하다 전화를 끊은 송문수는 입술을 말아 문 채 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하지수에게로 다가갔다.밖으로 나온 허영지와 송기명도 그저 장난 전화이길 바라며 송문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가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
“오해 아닙니다, 전에는 저 그런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변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송 회장님의 입원 때문입니까?”“제 우상이시던 아버지가 쓰러지신 것도 하나의 이유죠. 제 눈에 아버지는 늘 이 집안을 지키는 영웅이셨고 절대 늙지도 않을 것 같던 분이셨는데 갑자기 아프다고 하시니까 그때 이 집안을 책임질 사람은 저뿐이더라고요.”이젠 다 커서 자신의 고초도 이해해주는 어엿한 아들을 보며 송기명은 아주 감동스러워했다.“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제 아내인 하지수 씨입니다.”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모든 카메라도 그녀에게 집중되었다.갑작스러운 이목에 놀랄 새도 없이 송문수는 말을 이어나갔다.“제 아내가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회사를 지키기 위해 같이 밤을 새우면서도 불평불만 한마디 없었던 사람입니다. 성격 안 좋은 저를 보듬어주고 격려해주면서 제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줬어요. 그래서 저는 제 아내한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저를 언급하며 고맙다고 하는 송문수에 하지수의 심장은 아주 빠르게 뛰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두 분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하던데, 진짭니까?”“당연히 사실이 아닙니다.”“저희 사이좋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철이 없어서 아내한테 상처 주는 일도 많이 해서 사이가 위태로웠겠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지금 혹시 사모님한테 고백하시는 겁니까?”기자의 능청스러운 질문에 반박하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을 붉히는 송문수를 보며 다들 제 눈을 의심했다.파파라치한테 찍힐 때도 이미지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까지 휘두르던 사람이 언제 이렇게 쑥스러움이 많아졌나 싶어 다들 당황해하고 있는데 하지수는 그의 모습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으면 그간의 이상하던 태도와 관계를 피했던 이유도 더 이상은 따지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송승우 씨는 왜 오지 않으신 겁니까, 오늘은 불참하시나요?”“두 분은
화장을 마치고 머메이드 드레스로 갈아입은 하지수는 불빛 아래에서 더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며 아무래도 자신이 허영지를 가리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송문수를 불러보았다.“문수 씨, 이게 진짜 괜찮다고?”정말 아닌 것 같아서 한 질문이었지만 송문수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걱정 마, 이거 네 거 맞다니까.”“진짜 어머님이 준비하신 거 맞지?”“너 나 안 믿을 거야?”송문수가 목소리를 깔며 말하자 하지수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입을게.”정말 허영지의 뜻이라면 하지수도 걱정할 게 없었다.사실 평소 하지수에게 검소하다는 말을 자주 하던 허영지였기에 그녀가 이런 드레스를 준비했다 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이번 기회에 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시어머니의 마음인가보다 하며 하지수는 나갈 준비를 마쳤다.“가자 이제.”“엄마가 인터뷰 있다고 빨리 오래. 사진도 찍어야 한대.”“그래.”차에 탄 뒤에도 송문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리를 덜덜 떨며 자꾸만 핸드폰을 확인했다.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하지수가 그를 부르자 송문수는 화들짝 놀라며 대꾸했다.“문수 씨.”“어?”“더워?”에어컨을 틀어 시원한 차 안에서도 땀을 흘리는 게 이상해서 한 질문인데 송문수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아니.”“땀 나는데?”“그래?”제 이마에 묻은 땀을 훔치던 송문수가 또 말을 바꾸자 하지수는 그를 수상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좀 더운 것 같기도 해.”“오늘 왜 이래? 당신 좀 이상한 것 같아.”“아무것도 아니야.”송문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어갈 하지수가 아니었다.“어디 아파?”“그럴 리가, 나 소처럼 건강한 남자야, 병도 잘 안 걸린다고.”“...”누가 봐도 오바하는 것 같았지만 사정이 있겠지 싶어 하지수도 더는 묻지 않았다.그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도 이른 시간이었지만 매체들에서는 더 빨리 와 있었기에 기자들과 송기명, 허영지 모두 그들 부
아침 일찍 디자이너를 불러 단장을 마친 송기명과 허영지는 나이 들면 가만히 잊지 못한다는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른 시간부터 호텔로 향했다.그리고는 아들이 아닌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차피 송문수는 전화를 잘 받지 않으니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하지수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이미 습관처럼 몸에 배 있었다.좀 전에 일어나서 스타일링을 받고 있던 하지수는 시부모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다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네, 저희 일어났어요. 문수 씨는 씻고 있고 저는 화장하고 있어요.”“네, 먼저가 계시면 저희도 금방 갈게요. 8시 전엔 도착할 거에요.”통화를 마친 하지수는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었다.본인이 주인공도 아닌데 화장이 너무 화려한 것 같았다.게다가 원래는 송문수와 커플룩으로 어머니께서 맞춰주신 복고풍 드레스를 입기로 했으니 어찌저찌 의상을 수정하다 보니 오늘 입어야 할 건 민소매인 머메이드 드레스가 되어버렸다.예쁘긴 예쁘지만 꾸민 티가 너무 많이 나서 고민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불렀다.“문수 씨, 나 진짜 이거 입어? 이거 어머니가 골라주신 것도 아닌데...”오늘 아침은 하지수보다도 더 빨리 일어난 송문수는 아까부터 소파에 앉아있었다.그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알람 소리에 눈을 뜬 하지수는 제 옆에 없는 송문수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었다.출근할 때도 알람이 몇 번이나 울려서야 화를 내며 일어내던 사람이 오늘은 웬일인가 싶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60세 생일파티라 신경을 쓰는 건가 싶어 하지수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었다.“뭐라고?”그런데 제가 한참 불러서야 모습을 드러낸 송문수가 혼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덜덜 떨고 있자 하지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신 오늘 뭐 발언이라도 할 거야?”“아니, 왜?”“그런데 왜 이렇게 긴장해?”“내, 내가? 아, 아니야! 그럴 리가!”“아직 잠이 덜 깨서 그래!”송문수는 말까지 더듬으며 손사래를 쳤고 하지수는 또
아내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괜히 사람을 붙였다가 제 프러포즈를 망칠까 봐 겁났던 송문수는 결국 자신이 소이연, 예수진과 함께 꾸미는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그러자 친구들의 놀림은 당연했고 육현경과 계지원은 임신한 사람을 부려먹는다고 구박까지 했지만 프로젝트가 이미 막바지에 돌입했기에 송문수는 온갖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이면서 도와달라고 읍소를 했다.그렇게 가장 성가신 친구들한테까지 알리고 나니 모든 준비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기다리고 기다리던 송기명의 생일파티 당일이 되자 세상은 아주 시끄러워졌는데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계속 기사를 내대는 기자들 때문에 언론도 시끌벅적했다.그런데 기사의 대부분은 송기명이 아니라 송문수에 대한 것이었다.그에게 송승우라는 훌륭한 형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송 씨 그룹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게 망나니 같은 송문수라는 기사에 다들 놀라고 있었다.그러면서 그에 대한 찬양기사가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송승우도 그걸 보게 되었다.아버지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야근을 몰아 한 덕에 오늘 시간을 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던 송승우는 송문수를 추앙하는 기사들이 늘어나자 점점 언짢아졌다.몇 년 전만 해도 송문수는 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망나니였는데 이제는 제가 그의 배경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사람들이 제가 아닌 송문수에게 관심을 쏟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웠다.운전을 하면서도 방송을 듣고 있던 송승우는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송기명보다 송문수에 대한 말이 더 많이 나오자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미간을 펴지 못했다.지금 시간은 6시지만 비행기는 7시 출발이라 호텔에 도착하면 10시는 넘을 것 같아 송승우는 부모님께 먼저 연락을 드려 양해를 구했다.송승우에게 너그러웠던 부모님은 역시나 안 좋은 소리 한마디도 없이 오히려 서두르지 말라며 그를 걱정해주었다.어릴 때부터 받아왔던 편애였지만 오늘의 송승우는 왠지 그게 저에 대한 방치 같았다.이젠 부모님에게도 송문수라는 대단한 아들이 하나 더 생겼으니 저에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지수 씨의 의심을 풀어주는 거예요.]허를 찌르는 소이연의 말에 송문수는 조심스레 하지수를 바라보았다.하지수도 송문수에게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던 터라 제게 보내지는 시선을 느끼자마자 고개를 들어버려 둘은 의도치 않게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하지만 찔리는 게 있었던 송문수가 먼저 눈을 피하자 하지수는 입술을 말아 물며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송문수 역시 잘못한 것도 없는 제가 왜 하지수를 피하는지 몰랐지만 몸이 먼저 한 반응이라 어쩔 수 없었다.[그건 저도 모르겠어요.][아니면 오전에 어디 갔었다고 대충 둘러대기라도 해봐.][안돼요, 그럼 더 수상하잖아요. 우리가 방금 지수 씨 달래주자마자 문수 씨가 해명하면 지수 씨도 우리가 알려줬다는 거 눈치챌 거에요. 지수 씨가 우릴 탓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방법은 별로 인 것 같아요.][그럼 어떡해요?]예수진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소이연이 말했다.[그냥 이대로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 ?][? ? ?][서프라이즈는 원래 이런 거에요. 실망을 하면 할수록 감동이 큰 법이죠. 어차피 다음 주가 디데이인데 며칠만 더 버티다가 프러포즈 잘하면 되죠.]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왠지 불안했던 송문수가 물었다.[그게 서프라이즈가 될까요? 괜히 놀래키는 거면 어떡해요? 그리고 지수가 나 안 받아줄 수도 있는데...][너 진짜 바보냐? 아니다, 너한테는 바보라는 말도 아까워. 진짜 지수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거야?][걱정 마요, 절대 거절은 안 할 거예요.]예수진의 핀잔과 소이연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송문수는 그들을 믿으며 대화방을 나왔다.[알겠어요 그럼.]여자들과의 대화를 마치자 남자들의 단톡방에서 또 송문수를 찾아댔다.[문수야, 지수 씨는 요즘 괜찮아?][뭐가?][이연이랑 수진 씨 요즘 지수 씨 자주 불러내진 않아?][아니? 왜 그러는데.][수진이랑 이연 씨 요즘 이상한 것 같아서, 둘이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봐도 대답도 잘 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