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송문수가 이렇게 강압적인 사람이 되었을 줄이야.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송문수에게 주먹을 날리려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는 또다시 그의 손을 붙잡더니 이번엔 주먹을 휘둘러 송승우의 복부를 강하게 가격했다.송승우는 이를 악물었다. 복부 깊숙이 파고드는 고통에 그는 몸을 제대로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문수야, 그만해!” 옆에서 송 어머니가 크게 외쳤다.하지만 송문수의 눈은 이미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송승우와 한번 붙고 싶었다고 말했다.송문수는 다시 송승우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다리를 거칠게 걷어찼다.예상치 못한 공격에 송승우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만해. 송문수! 당장 멈추라고!” 송 어머니가 그를 막으려고 다가갔다.송문수가 조금 힘을 줬을 뿐인데 송 어머니는 그에 밀려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그 모습을 본 하지수는 급히 송 어머니를 부축하며 말했다.“어머님!”“송문수 좀 말려! 제발 그만하라고 해! 승우가 이걸 어떻게 버티겠니!” 송 어머니는 두려움에 눈물까지 고이며 울먹였다.그 순간 송문수는 다시 송승우에게 다가가더니 이번엔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송승우는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성을 잃은 듯 송문수를 향해 무작정 주먹을 날렸다.몇 번은 적중했지만 대부분 헛손질이었다.반면 송문수의 주먹은 매번 정확히 그의 몸에 꽂혔다.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문수 씨!” 하지수는 이를 악물고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들었다.몇 번이나 멈추라고 외쳤지만 두 사람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듯 계속 몸싸움을 벌였다.하지수는 어쩔 수 없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두 형제의 주먹에 맞을 각오까지 했다.바로 그 순간 송문수는 갑자기 주먹을 멈췄다.주먹이 송승우에게 닿기 직전에 그는 곧바로 멈춰 섰다.그리고 다음 순간.“억.”송문수는 송승우의 주먹을 그대로 정통으로 맞았다.그 주먹은 그의
송문수는 단 한마디만 남기고 뒤돌아 떠나버렸다. 하지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쫓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팔은 여전히 송승우에게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지수야, 가지 마!” 하지수는 송문수가 떠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려 송승우에게 외쳤다. “날 놓아줘요!” “지수야!”송승우도 분명 화가 난 얼굴이었다. “지금 송문수한테 다가가면 다칠 수도 있다는 거 몰라!” “그는 내 남편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연히 그의 곁에 있어야 해요.” 하지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날 놓아줘요.”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야?” 송승우는 눈가를 깊게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지수야.” 송 어머니는 하지수를 부르며 나직이 말했다. 하지수는 송 어머니의 목소리에 격앙된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송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지금 송 어머니는 몹시 기력이 없어 보였다. 다시 침대에 몸을 기댔고 얼굴에는 아직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송 어머니는 힘겹게 입을 뗐다. “승우 말이 맞아. 지금 문수는 아주 위험한 상태야. 좀 진정되면 그때 찾아가.” “하지만 어머님. 문수 씨 감정이 너무 불안정해 보여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요.” “그런 일 없을 거야!” 송승우는 단호하게 끊어 말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사고 칠 때마다 다친 적 있었어? 항상 남들한테만 피해를 줬지!” “승우 오빠, 친형으로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하지수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송문수를 대신해 불만을 터뜨렸다. 송승우는 순간 멍해졌다. 아마도 하지수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의 편에 서 있었던 그녀였는데 이제는 송문수 편을 드는 걸까? 하지만 도대체 송문수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녀가 그를 그렇게 감싸는 걸까? 송문수는 그저 쓸모없
하지수는 계속 송 어머니 옆에 있었다. 그녀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하지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줬다. 돌아보니 소파에 앉아 있는 송승우의 얼굴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마 송문수에게 여전히 화가 난 상태일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송승우가 이렇게까지 송문수를 비난하는지. 결국. 그도 송 부모님 곁에 있지 않았고 송문수가 그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하지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송승우에 대한 정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그는 정말 그녀를 잘 대해줬으니까. 그녀는 송승우에게 상처 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송 씨 가문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단 송문수를 제외하고. 그녀는 항상 송문수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승우 오빠, 얼굴에 상처가 있는데 의사한테 가서 처리 안 해도 돼요?” 하지수는 조용히 물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에 난 멍 자국을 보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송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지수를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별거 아니야.” 사실 하지수도 별거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가벼운 상처일 뿐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점점 송문수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무례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송승우를 때린 것도 분명 힘을 조절한 것이었다. 진짜로 죽일 듯이 때렸다면 송승우는 일어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방금 송승우가 날린 그 한 방이... 하지수는 약간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치료받고 가세요. 곧 회사로 돌아가야 할 텐데 이 상태로 동료들이나 상사에게 보이면 곤란할 거 잖아요.”하지수는 설득하며 말했다. 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없다는 건 곧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가시죠. 어머님은 잠드셨으니까 당분간 깨어나지 않으실 거에요. 제가 같이 의사 찾으러 가줄게요.” 송승우는 하지수를 한 번
“부모님께 대체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예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송승우를 바라봤다. “넌 뭘 것 같아?”송승우가 되물었다. “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하지수의 표정은 점점 차가워졌다. “지수야, 너 왜 이렇게 고집이 세졌어? 어릴 때부터 넌 항상 착하고 배려심 많은 아이였어.” 송승우는 어딘가 실망한 듯한 눈빛으로 하지수를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도 느꼈다. 송승우는 변했다. 예전의 송승우는 이러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늘 그녀의 감정을 배려해 주었고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든 웃게 했다. 그리고 절대 그녀를 힘들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예전에 너를 떠난 건 내 잘못이 맞아. 그때도 이미 설명했잖아. 그때는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말도 없이 떠났어. 난 네가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설마 아직도 그 일로 나한테 화가 난 거야?” 송승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수야, 이 몇 년 사이에 넌 너무 많이 변했어.” 하지수는 그저 조용히 그의 비난을 들을 뿐이었다. 입술을 꽉 깨물며 생각했다. 맞다. 그녀는 인정했다. 예전에 감정이 상했던 건 맞았다. 결혼식에서 버려지는 게 누구에게나 납득될 수 있는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로 인해 어떤 극단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속으로 끙끙 앓으며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든 견뎌내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중에야 송승우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녀는 정말로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다. 송씨 가문의 사람들도 미워한 적이 없었다. 그냥 더 이상 송승우와의 감정을 기대하지 않을 뿐이다. 한 번 어긋난 감정은 이유가 누구에게 있든 간에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바로 흔히 말하는 인연은 있지만 운명이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자신의 삶을
어릴 때부터 그녀는 송씨 가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한 적이 없었고 특별히 큰 욕심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그런데 지금 송승우는 그녀가 그에게 민폐를 끼쳤다고 비난하고 있었다.“승우 오빠, 제가 도대체 어디서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해요?”하지수는 차분히 물었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아직도 모르겠어?”송승우는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수야, 이 몇 년 동안 송문수와 함께 지내면서 정말 많이 망가졌어.”“제가 도대체 뭘 했다는 거예요!”하지수는 한 마디씩 똑똑히 말했다. 그녀의 태도도 점점 강경해졌다.“지금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이 그게 결국 내가 결혼식에서 떠난 일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려는 거 아니야? 그래서 일부러 나한테 쌀쌀맞게 굴고 내가 너를 달래게 만들려고 하는 거잖아?”송승우는 직설적으로 말했다.곰곰이 생각해 보면 송승우는 사실 그다지 인내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릴 때 그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항상 공부였고 그는 공부를 정말 좋아했다. 공부는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가 공부한다고 하면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좋은 학습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공부를 마친 후에야 다른 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하지수는 어릴 때부터 참 착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그녀는 송승우가 공부할 때는 절대로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어릴 때 자신을 잘 대해주고 그녀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송승우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법을 잘 알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았다.그녀가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때는 송승우가 바쁘지 않을 때였고. 송승우가 그녀를 달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손승우가 달래줄 때 이미 미리 감정을 정리해 놓았다.하지수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깨닫고 나니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집착할 필요가 없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말했다. “승우 오빠, 난 오빠가 달
“그만하자. 지수야. 더 이상 너랑 말다툼하고 싶지 않아.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달콤한 말로 너를 달래지도 않을 거야. 나는 오직 내 행동으로 내 감정을 표현할 뿐이야. 네가 내 입장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송승우는 엄중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하지수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송승우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를 맞춰주면 그는 다정하고 자상한 오빠가 된다. 그러나 맞춰주지 않으면 그는 고집스러워 보였다. 자신의 관점을 끝까지 고수하며 다른 사람의 반박은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쟁이처럼 느껴졌다. 혹시 여태까지 그녀가 송승우에 대해 너무 이상적인 시각을 가졌던 걸까? 이제야 그 차이를 깨닫고 나니 실망감만 남았다.송승우는 하지수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였다고 착각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다소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마치 하지수에게 매우 관대하고 대범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도덕적 압박 같기도 하고 일종의 가스라이팅 같기도 했다. 하지수는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승우 오빠,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우리 사이에 더 이상 감정 같은 건 없어요. 우리는 이미 끝났어요. 저는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이런 말을 해서 오빠가 달래길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와 함께 있고 싶어요.” “지수야, 너 대체!” 송승우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지며 급격히 화를 내며 말했다. 그는 하지수의 단호한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그리고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오늘 송문수를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 했어요.” 하지수는 평온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듯했다. 더 이상 송승우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 그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바꿔서는 안 된다.그녀는 그녀 자신의 삶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더 이상 송승우의 감정을 신경 쓰
하지수는 사실 송 어머니가 이미 잠에서 깼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말할 때마다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송승우는 그러지 않았다. 그도 송 어머니가 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 됐다. 하지수는 더 이상 송승우와 예전과 달라진 점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그의 숨겨진 모습을 이제야 깨달았을지도 몰랐다. 지금 그녀가 바라는 건 단 하나였다.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 송문수와 함께. “난 이만 가볼게. 송문수도 다친 데가 있어서 그 사람 보러 가야 해.” 하지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돌아섰다. “하지수. 네가 지금 나한테 화가 나서 일부러 날 자극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 네가 오늘 정말로 이 문밖을 나간다면 우리 사이는 끝이야. 난 다시는 널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그리고 기억해 둬. 난 두 번, 세 번씩 중고품을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야.” 송승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하지수의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하지수는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제야 알았다. 송승우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이미 중고품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듣고 있었다. 누구라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모욕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 아마 그가 중요하지 않으니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송승우 앞에 섰다. 송승우는 하지수가 그의 경고 앞에서 끝내 떠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역시나 하지수가 그저 허세를 부릴 줄 알았다. 하지수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확신했다. 자신과 송문수중에서 하지수가 어리석게 그 열등품을 선택할 리 없다는 것을. 누구나 눈이 있다면 알 것이다. 그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지수야,
송 어머니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그저 송승우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들 눈에 송승우는 정말로 모범적인 아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큰 걱정을 끼친 적도 없었고 늘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온 아이였다. 반면 송문수는 어릴 때부터 꾸중을 듣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인데 왜 송문수는 송승우처럼 그렇게 뛰어나지 못한 걸까. 하지만 지금 송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혹시 그동안 자신들이 송승우를 너무 완벽하게 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를 너무 완벽하게 생각했기에 그의 작은 결점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 건 아닐까? 송 어머니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승우야, 지수와의 일은 더 이상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말거라.” 송승우의 눈빛은 그 순간 부드러움에서 날카로움으로 변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송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랑 지수가 어떻게 억지로 엮인 거예요? 어머니도 잘 아시잖아요. 지수가 좋아했던 사람은 처음부터 나였어요. 결혼식 날 제가 어쩔 수 없이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 지수랑 결혼한 사람은 저였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너희는 이미 지나가 버린 사이잖니.” “그래서 그걸 바로잡으려는 거예요.” 송승우는 단호한 목소리로 정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송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승우야, 내가 말하는 건 끝났다는 거지 잘못됐다는 게 아니야. 문수랑 지수는 이미 부부야. 그리고 지금 그들도 점점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걸 축복해 주는 거지 네가 와서 그 관계를 깨는 게 아니야.” “왜 엄마까지 송문수 편을 드는 거예요?” 송승우는 어머니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전까지 알던 온화했던 아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송승우가 오랜 시간 우리와 떨어져 살았기 때문일까? 송 어머니는
이혼 시간까지 다 정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둘은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었다.그 숨 막힌 정적 속에서 한참을 앉아있던 송문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난 이만 가볼게.”말을 마친 송문수는 하지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등을 돌려 집을 나서버렸다.서울을 떠날 때처럼 미련 없이 돌아서는 송문수에 하지수의 시야가 흐려졌다.하지수는 뿌얘진 시야에 끝까지 그의 뒷모습을 담았다.이튿날, 하지수는 약속대로 송문수와의 이혼을 위해 법원으로 향했는데 송문수는 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하지수가 차에서 내리며 안에 앉아있는 또 다른 이와 뭐라고 말하는 걸 지켜보았다.그 안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송승우일 것이기에 송문수는 시선을 돌리며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이 금지된 상태였기에 그는 이런 식으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잠재우고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대화를 마친 건지 종종걸음으로 송문수에게 다가가 말했다.“오래 기다렸어? 미안해.”“아니야, 내가 빨리 온 거야.”그녀가 제게 다가오자 송문수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말했다.“들어가자.”“그래.”그렇게 둘은 법원으로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때 송문수가 합의서를 건네며 말했다.“내가 알아서 작성했는데 맘에 안 드는 거 있으면 바로 말해줘, USB 챙겼으니까 여기서 고칠 수 있어.”사실 어젯밤 송문수가 파일을 보내와서 하지수는 이미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으니 양육권 싸움도 없었고 이익을 따지는 사이가 아니니 재산분할에도 큰 문제 없었다.그럼에도 제게 40억을 주겠다는 송문수를 하지수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어차피 큰돈도 아니라서 헤어지는 대가로 주겠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가 그저 받기로 했다.송문수한테는 정말 적은 돈이긴 하니까.그리고 돈으로서 둘 사이를 깔끔히 정리하는 걸 송문수도 원할 것 같아 하지수는 결국 그걸 받는 조건으로 서류에 사인을 한 것이다.이혼서류를 제출하자 직원이 한 달간의 이혼 숙려기간이 있다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핸들을 잡은 손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제멋대로 날뛰는 심장임에도 송문수는 그걸 애써 무시하며 집으로 향했다.차가 멈추자 하지수는 송승우를 부축하며 차에서 내렸는데 송승우의 몸은 껌딱지처럼 하지수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그를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앉히는 모든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마치 매일 하던 행동인 것 마냥, 그래서 몸에 배어버린 것마냥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하지수, 송문수, 송승우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허영지와 송기명도 마침 도착해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 보름 동안 돌아오지 못했던 집이 그리웠던 허영지와 송기명은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아무리 편한 호텔에서 자도 제집만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먼저 잠부터 청했다.그리고 송승우도 피곤해해서 하지수는 휠체어를 밀며 그를 방에 데려다주었다.순식간에 혼자 남아버린 송문수는 소파에 앉아 하지수를 기다렸다.원래는 송문수를 데려다주고 나가려 했는데 저에게 할 말이 있다는 하지수 때문에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솔직히 하지수가 언제 내려올지는 미지수였기에 송문수는 하지수가 잠에서 깬 다음에 내려올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하루를 꼬박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지만 송문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2층에서 홀로 내려오는 하지수가 보이자 송문수의 심장박동은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몸에 힘이 자꾸만 들어가며 뭐가 그렇게 긴장되는지 몸을 가만둘 수가 없었다.하지수가 자연스럽게 송문수의 옆에 자리 잡고 앉기는 했지만 둘 사이에는 아직도 어색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부부인데도 부부답지 않았고 가족임에도 가족 같지 않은 둘의 애매모호한 사이 때문이었다.이렇게 보니 제 인생은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것 같아 송문수는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나한테 할 말 있다며, 뭐야?”송문수는 더 이상의 희망을 품지 않기 위해, 하지수와 한 지붕 아래에서 얼굴을 맞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난 충동적인 적 없어요, 그리고...”하지수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송승우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그럼 너 나랑 다시 사귈 수 있어?”터무니없는 그의 말에 하지수는 적잖이 당황했는데 송승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네가 내가 아닌 송문수를 좋아한다는 걸 난 못 믿겠어. 난 아직도 네가 그때 내가 말도 떠난 일로 화내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나랑 다시 사귀자. 6개월만 만나보고 그때도 네가 송문수를 선택한다면 나도 깔끔하게 포기할게.”하지수는 자신이 송승우를 다시 좋아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가 완벽히 포기해야 끝나는 싸움이었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버렸다.하지수는 이제 송승우와의 이 지긋지긋한 인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좋아요.”하지수가 긍정적인 답을 하자 자신만만했던 송승우의 얼굴에는 바로 미소가 번졌다.자신이 한쪽 다리를 잃긴 했지만 송승우는 그래도 하지수의 사랑을 다시 거머쥘 자신이 있었다.송승우는 단 한 번도 송문수를 제 상대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하지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완벽한 저를 놔두고 멍청한 송문수를 선택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조건이 하나 더 있어.”“말해요.”“문수랑 이혼부터 해.”“네가 나랑 사귀겠다고 했잖아. 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게 싫으니까 당당하게 너랑 만나고 싶어.”송승우의 말에 하지수는 입술을 말아 물고 생각에 잠겼다.송문수와의 결혼 관계를 유지하며 송승우와 만나는 건 바람피우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데 그건 서로에 대한 존중을 깨는 거라서 하지수도 썩 내키진 않았다.“알겠어요.”하지수가 이혼만 하면 저와 재결합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기에 송승우의 미소는 아까보다 더 선명해졌다.“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요.”“뭐든 말만 해.”기분이 좋았던 송승우는 하지수가 제시한 조건을 고민도 없이 받아들였다.송승우는 하지수는 어차피 저 아니면 안 된다고 자신을 하고 있었다....일주일 뒤, 송승우가 퇴원하자 드디어 가족들이 전부
“네.”“회사 일을 이제는 문수가 다 책임지고 있으니까 빨리 가는 것도 맞지, 승우도 많이 좋아졌으니까 이제 매일 간호할 필요도 없잖아.”하지수를 직접 키워온 허영지는 그녀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걸 한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그래서 빈말이지만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네.”그런 허영지의 노력을 보아낸 건지 하지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도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저 이제 중환자실에서도 나오고 의사 선생님도 별문제 없다고 했으니까 두 분은 먼저 돌아가서 쉬고 계세요. 며칠만 더 있으면 퇴원도 가능하다고 하잖아요.”“그래.”송승우의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마음을 놓을 수도 있었고 또 지금 하지수와 단둘이 있고 싶어 하는 아들의 속내가 너무 눈에 훤해서 허영지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우린 그럼 먼저 갈게. 지수야, 승우 잘 부탁해. 네가 고생이 많다.”말이야 친절하기 그지없지만 사실은 하지수의 발을 여기 묶어두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네.”하지수 역시 제 시어머니의 의도를 알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하지수의 대답을 들은 허영지는 마음이 한결 놓여 송기명을 밀며 병실을 빠져나갔다.송기명은 등 떠밀려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데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허영지와 송기명이 나간 병실에는 하지수와 송승우 둘뿐이었다.“과일 좀 먹을래요?”“응, 고마워.”하지수가 먼저 그 어색한 정적을 깨며 묻자 송승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배를 집어 든 하지수는 열심히 깎기 시작했는데 송승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한참 지나 껍질을 다 깎아낸 하지수는 배를 작게 썰어 송승우의 앞에 놓아주었다.“천천히 먹어요.”“넌 안 먹어?”“입맛 없어요.”송승우는 입맛 없다는 하지수에게 굳이 권하지 않고 천천히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도도하고 자신만만하던 송승우의 모습을 다시 본 하지수는 송승우의 말대로 거기에 자신의 공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송승우의 병실을 빠져나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앞을 향해 걷기만 했다.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송문수를 기다리고 있는 차량이 보였다.그래도 작별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차 문도 열지 못하고 망설이던 송문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결국 그냥 차에 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가 그를 불러세웠다.“문수 씨.”“장안시로 돌아가면 서울엔 다시 올 거야?”“안 올 것 같아 아마. 송승우도 많이 나았으니까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하겠지. 그럼 엄마 아빠가 송승우 집에 데려가서 보살피려 할 텐데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와 힘들게.”“그래서 나 혼자 여기 버려두겠다는 거구나.”하지수가 내뱉은 담담한 한마디에 송문수는 심장박동이 멎는 것만 같았다.숨을 내쉴 수조차도 없이 가슴이 아파와서 그는 이를 악문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여전히 침묵만 유지하는 송문수에 마지막 기대도 사라져버린 하지수는 이제 그만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송문수 말대로 자신은 그저 그가 마음을 다잡을 때 마침 옆에 있었던 여자일 뿐이니, 여기서 뭘 더 바라는 것도 욕심인 것 같았다.아무리 노력해봐도 송문수의 마음은 저를 향하지 않으니 하지수는 이제 그와의 사이를 끝내려 했다.“조심히 가.”이렇게라도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했으니 하지수는 그거면 된 것 같았다.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지만 저 짤막한 한마디만 내뱉고 웃으며 돌아섰다.그 작은 몸통이 외로이 돌아서는 걸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왔다.정말 제가 하지수를 버린 것만 같아서, 또 하지수를 혼자만 남겨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려왔다.주먹을 꽉 말아쥔 채 온몸을 떨어대던 송문수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그는 제 충동을 잠재우며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뎌 결국 차에 올라탔다.하지수에게는 송승우가 있었으니, 그녀는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혼자일 리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미련 없이 돌아서기로 했다.한편 한참을
송승우가 병실을 옮기고 나니 가족들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엄마, 아빠 고생 많으셨어요. 저 걱정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죠.”“너만 괜찮을 수 있다면 우린 뭐든 다 할 수 있어.”병원 침대에 누운 채 감성 어린 말을 하는 송승우를 향해 허영지는 감격에 겨워 말했다.허영지는 송승우가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았다.더 이상 나쁜 생각은 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씩씩하게 본인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 같았다.“제가 하루빨리 마음 다잡아서 이제 엄마 아빠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넌 한 번도 우릴 실망시킨 적이 없는 애야, 넌 계속 우리의 자랑이었어.”제 손을 잡은 채 저와 눈을 맞추며 말하는 엄마를 향해 송승우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정말 눈물 나도록 다정한 모자지간이었다.송승우가 병실을 옮긴다는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온 송문수도 병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의 대화에는 끼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라이터만 만지작거리는 그는 어쩐지 제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한편 허영지와 대화를 나누던 송승우는 하지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아직까지도 간호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물어가며 앞으로는 어떻게 재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묻고 있었다.자신의 일에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마워, 지수야.”“아니에요, 당연한 일인데요 뭘.”“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빨리 마음 다잡을 수 있었어. 너 아니었으면 현실을 이렇게 빨리 받아들이진 못했을 거야.”“나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하지수는 결국 그 감사 인사를 받아들인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다시 간호사를 보며 디테일하게 보호자로서 해야 할 일들을 물었다.다들 제 자리를 잡은 듯한 모습에 송문수는 그만 병실을 나가려고 몸을 일으켰는데 그때 송기명이 그를 불러세웠다.“문수야, 어디 가?”“장안시로 돌아가야죠 이제.”담담히 말하는 송문수에 송기명은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지금
허영지의 말에 다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고 그 시선 끝에는 하지수가 서 있었다.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서 있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지수야, 여긴 어떻게 왔어?”그런 하지수를 본 허영지는 다급히 그녀에게로 달려갔다.하지수가 송문수의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들었다면 둘 사이에 감정이 있든 없든 마음이 아플 것은 당연지사였기에 허영지는 하지수가 안쓰러웠다.하지수는 굳어버린 고개를 힘겹게 돌리며 허영지를 향해 말했다.“일어나보니까 호텔에 아무도 없어서 왔어요.”눈 떠보니 사라져버린 송문수에 빠르게 병원으로 달려온 거지만 혹시나 송문수가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오지 말라고 말릴까 봐 연락은 하지 않았었다.하지만 송문수가 또다시 허영지와 싸울까 봐 말도 없이 온 건데, 오자마자 하지수는 송문수가 내뱉는 차가운 말들을 모조리 들어버린 것이다.저를 물건 취급하며 송승우에게 넘겨주겠다는 송문수의 말에 하지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이제 좀 달라진 줄 알았는데, 송문수한테 저는 여전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란 걸 이렇게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모든 게 다 저 혼자만의 착각인 것 같아 하지수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아직도 많이 피곤해서 전 이만 호텔로 돌아가 볼게요.”그래서 그녀는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병원을 나섰다.자신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는 하지수를 보며 허영지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하지수가 친딸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같이 키워왔던 아이였기에 허영지는 그녀를 친딸 이상으로 아껴주었다.부모도 잃은 아이가 저렇게 충격받은 모습으로 자리를 뜨는 게 가슴이 아팠지만 허영지는 끝내 송문수 더러 하지수를 위로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허영지는 이번에도 이기적이게 송승우를 위해 송문수를 희생시킨 것이다.송승우가 나을 수만 있다면 송문수와 하지수 사이에는 아무 감정도 없다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송기명은 그런 아이들을 두고 볼 수만
송문수가 병실에서 나오자 허영지와 송기명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맞아주었다.아까 분명 난리를 치던 송승우였는데 그걸 어떻게 진정시킨 건지가 궁금해서 나온 눈빛이었다.“걱정 마세요, 송승우 치료에도 협조 잘하고 더 이상 난동도 안 부릴 거에요. 그러니까 이제 마음 좀 놓으세요.”높낮이가 없는 송문수의 말에 허영지와 송기명은 아들의 감정을 도통 보아낼 수가 없었다.“뭐라고 했길래 승우가 네 말을 듣는 거야?”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발언권이 없던 송문수의 말을 그 자존심 강한 송승우가 고분고분 듣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허영지가 걱정스레 물었다.하지수의 일은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제가 계속 입을 다물면 허영지가 제 말을 믿지 않을 걸 알기에 입술을 말아 물던 송문수는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지수 그만 놓아주겠다고 했어요.”지수를 송승우에게 보내겠다는 뜻의 말을 들은 허영지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송문수, 넌 결혼이 애들 장난이야? 어떻게 그런 약속을 함부로 해! 지수한테는 물어봤어? 아니면 승우 속이고 치료받게 하려고 그런 거야? 속이는 거라면 언젠가는 진실을 알게 될 텐데 그때는 어쩌려고 그래! 넌 왜 항상 이렇게 생각이...”“그만 좀 해요!”또 송문수를 타박하는 허영지에 송기명은 참다못해 큰 소리를 내었다.“당신은 왜 문수 말은 안 믿어주는 거예요? 전에 당신이 나한테 우리가 문수한테는 좋은 부모가 돼주지 못했다고 했을 때 난 사실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야 알겠네, 정말 우리가 애한테 못 할 짓을 하긴 한 것 같아요. 어떻게 당신은 매번 문수를 나쁜 쪽으로만 생각해요?”“나는 그냥...”허영지는 아직 화가 가라앉은 것도 아니고 송기명의 말이 서럽기도 했지만 차마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송승우와 송문수 사이에 마찰이 있을 때면 그녀는 늘 송승우를 감싸주곤 했다, 그리고 그게 이젠 본능으로 자리 잡아서 허영지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더 이상 허영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송기명은
송문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던 송승우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자 송문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지금 이러는 거 다 지수 얻으려고 그러는 거잖아.”더 이상 상황을 회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송문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아무런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적나라하게 말하는 송문수에 송승우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렇게 앞뒤 재지 않는 게 또 송문수 답긴해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지수를 얻으려는 게 아니고 네가 지수한테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라서 그러는 거야. 너랑 함께하는 지수만 불쌍하니까.”남의 가정을 파탄 내고 남의 아내를 빼앗으려 하면서도 송승우는 마치 자신이 옳다는 듯 당당하기만 했다.하지만 그 말에 송문수는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사실은 반박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었다.한번 생각을 굳히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송승우임을 알기에 그한테 저는 언제까지나 하지수에게 한참 못 미치는 인간일 뿐이었다.“난 지수한테 더 안정된 가정을 줄 수 있어. 너처럼 다른 여자들 끼고 다니는 게 아니라 지수만 아껴줄 거라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수만 바라보면서 다른 여자한테는 손도 대지 않았어. 그런데 넌, 너무 더럽잖아.”송승우는 제 동생의 입장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송문수를 무참히 짓밟아버렸다.송승우의 말대로 예전의 송문수는 한없이 더러운 사람이었다.하지만 송문수는 자신이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하지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었는데 송승우의 말을 들어보니 그 모든 게 저만의 어리석은 생각인 것 같았다.“지금은 지수 찾지 말고 몸 회복하는 데만 집중해. 너 다 낫고 나면 지수는 내가 알아서 놓아줄게.”그래서 송문수는 구질구질한 변명대신 확실한 약속을 했다.그 말을 들은 송승우는 의외라는 듯 송문수를 바라보았다.물론 예전의 송문수는 헤프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송승우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하지수를 향한 송문수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그 마음이 진심이라서 송승우에게는 더 위협적이게 느껴졌던 것이고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