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다 했어? “송문수의 몸에는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그는 송승우를 보며 또박또박 물었다.하지수는 그의 손은 줄곧 잡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송승우를 때릴지 무서워하는 하지수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송승우와 한 판 싸우고 싶은 심정은 진심이었다.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는 송승우를 때리고 싶었다.하지만 누가 이기든 지든 결국 그의 부모님은 송승우에게만 관심을 가지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게다가 송승우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며 그와 싸우는 걸 꺼렸다.송승우가 가볍게 몇 마디만 하면 그의 부모님은 송승우의 곁에 서서 송문수를 때리고 꾸짖었다.“너에 대한 실망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송승우는 계속 자기 말만 해댔다.“승우, 그만해! “송 어머니가 소리쳐 불러세웠다.“어머니, 얘 이젠 서른이 넘었어요. 어머니께서는 왜 아직도 얘를 이렇게 계속 방치하고 있어요! 문수를 해치고 있다고요!”송승우는 엄숙하게 말했다.“지수, 먼저 문수를 데리고 돌아가거라. 아버지 쪽은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할게.”송 어머니는 송문수와 지수에 먼저 떠나라 하였다.송문수는 그녀의 아들이었다.그녀는 송승우가 계속 말하면 두 형제가 한바탕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네.”하지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송문수와 송승우가 정말 싸울까 두려웠다.누가 이기고 지든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지금 그녀는 송승우가 한 말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송문수를 끌고 떠났다.송문수는 철 덩어리처럼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문수, 가자.”하지수가 말했다.송승우는 하지수가 송문수를 잡아당기려고 애쓰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았다.그의 눈 밑에 질투가 가득했다.그는 하지수가 다른 사랑에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다른 사랑에 빠져도 송문수에 빠질 거라 예상을 못 했다.그는 어릴 때부터 송문수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정확히 말하면 송씨 가문 전체가 송문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고 송승우는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송문수가 이렇게 강압적인 사람이 되었을 줄이야.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송문수에게 주먹을 날리려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는 또다시 그의 손을 붙잡더니 이번엔 주먹을 휘둘러 송승우의 복부를 강하게 가격했다.송승우는 이를 악물었다. 복부 깊숙이 파고드는 고통에 그는 몸을 제대로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문수야, 그만해!” 옆에서 송 어머니가 크게 외쳤다.하지만 송문수의 눈은 이미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송승우와 한번 붙고 싶었다고 말했다.송문수는 다시 송승우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다리를 거칠게 걷어찼다.예상치 못한 공격에 송승우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만해. 송문수! 당장 멈추라고!” 송 어머니가 그를 막으려고 다가갔다.송문수가 조금 힘을 줬을 뿐인데 송 어머니는 그에 밀려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그 모습을 본 하지수는 급히 송 어머니를 부축하며 말했다.“어머님!”“송문수 좀 말려! 제발 그만하라고 해! 승우가 이걸 어떻게 버티겠니!” 송 어머니는 두려움에 눈물까지 고이며 울먹였다.그 순간 송문수는 다시 송승우에게 다가가더니 이번엔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송승우는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성을 잃은 듯 송문수를 향해 무작정 주먹을 날렸다.몇 번은 적중했지만 대부분 헛손질이었다.반면 송문수의 주먹은 매번 정확히 그의 몸에 꽂혔다.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문수 씨!” 하지수는 이를 악물고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들었다.몇 번이나 멈추라고 외쳤지만 두 사람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듯 계속 몸싸움을 벌였다.하지수는 어쩔 수 없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두 형제의 주먹에 맞을 각오까지 했다.바로 그 순간 송문수는 갑자기 주먹을 멈췄다.주먹이 송승우에게 닿기 직전에 그는 곧바로 멈춰 섰다.그리고 다음 순간.“억.”송문수는 송승우의 주먹을 그대로 정통으로 맞았다.그 주먹은 그의
송문수는 단 한마디만 남기고 뒤돌아 떠나버렸다. 하지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쫓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팔은 여전히 송승우에게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지수야, 가지 마!” 하지수는 송문수가 떠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려 송승우에게 외쳤다. “날 놓아줘요!” “지수야!”송승우도 분명 화가 난 얼굴이었다. “지금 송문수한테 다가가면 다칠 수도 있다는 거 몰라!” “그는 내 남편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연히 그의 곁에 있어야 해요.” 하지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날 놓아줘요.”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야?” 송승우는 눈가를 깊게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지수야.” 송 어머니는 하지수를 부르며 나직이 말했다. 하지수는 송 어머니의 목소리에 격앙된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송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지금 송 어머니는 몹시 기력이 없어 보였다. 다시 침대에 몸을 기댔고 얼굴에는 아직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송 어머니는 힘겹게 입을 뗐다. “승우 말이 맞아. 지금 문수는 아주 위험한 상태야. 좀 진정되면 그때 찾아가.” “하지만 어머님. 문수 씨 감정이 너무 불안정해 보여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요.” “그런 일 없을 거야!” 송승우는 단호하게 끊어 말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사고 칠 때마다 다친 적 있었어? 항상 남들한테만 피해를 줬지!” “승우 오빠, 친형으로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하지수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송문수를 대신해 불만을 터뜨렸다. 송승우는 순간 멍해졌다. 아마도 하지수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의 편에 서 있었던 그녀였는데 이제는 송문수 편을 드는 걸까? 하지만 도대체 송문수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녀가 그를 그렇게 감싸는 걸까? 송문수는 그저 쓸모없
하지수는 계속 송 어머니 옆에 있었다. 그녀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하지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줬다. 돌아보니 소파에 앉아 있는 송승우의 얼굴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마 송문수에게 여전히 화가 난 상태일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송승우가 이렇게까지 송문수를 비난하는지. 결국. 그도 송 부모님 곁에 있지 않았고 송문수가 그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하지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송승우에 대한 정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그는 정말 그녀를 잘 대해줬으니까. 그녀는 송승우에게 상처 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송 씨 가문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단 송문수를 제외하고. 그녀는 항상 송문수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승우 오빠, 얼굴에 상처가 있는데 의사한테 가서 처리 안 해도 돼요?” 하지수는 조용히 물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에 난 멍 자국을 보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송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지수를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별거 아니야.” 사실 하지수도 별거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가벼운 상처일 뿐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점점 송문수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무례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송승우를 때린 것도 분명 힘을 조절한 것이었다. 진짜로 죽일 듯이 때렸다면 송승우는 일어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방금 송승우가 날린 그 한 방이... 하지수는 약간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치료받고 가세요. 곧 회사로 돌아가야 할 텐데 이 상태로 동료들이나 상사에게 보이면 곤란할 거 잖아요.”하지수는 설득하며 말했다. 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없다는 건 곧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가시죠. 어머님은 잠드셨으니까 당분간 깨어나지 않으실 거에요. 제가 같이 의사 찾으러 가줄게요.” 송승우는 하지수를 한 번
“부모님께 대체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예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송승우를 바라봤다. “넌 뭘 것 같아?”송승우가 되물었다. “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하지수의 표정은 점점 차가워졌다. “지수야, 너 왜 이렇게 고집이 세졌어? 어릴 때부터 넌 항상 착하고 배려심 많은 아이였어.” 송승우는 어딘가 실망한 듯한 눈빛으로 하지수를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도 느꼈다. 송승우는 변했다. 예전의 송승우는 이러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늘 그녀의 감정을 배려해 주었고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든 웃게 했다. 그리고 절대 그녀를 힘들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예전에 너를 떠난 건 내 잘못이 맞아. 그때도 이미 설명했잖아. 그때는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말도 없이 떠났어. 난 네가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설마 아직도 그 일로 나한테 화가 난 거야?” 송승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수야, 이 몇 년 사이에 넌 너무 많이 변했어.” 하지수는 그저 조용히 그의 비난을 들을 뿐이었다. 입술을 꽉 깨물며 생각했다. 맞다. 그녀는 인정했다. 예전에 감정이 상했던 건 맞았다. 결혼식에서 버려지는 게 누구에게나 납득될 수 있는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로 인해 어떤 극단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속으로 끙끙 앓으며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든 견뎌내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중에야 송승우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녀는 정말로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다. 송씨 가문의 사람들도 미워한 적이 없었다. 그냥 더 이상 송승우와의 감정을 기대하지 않을 뿐이다. 한 번 어긋난 감정은 이유가 누구에게 있든 간에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바로 흔히 말하는 인연은 있지만 운명이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자신의 삶을
어릴 때부터 그녀는 송씨 가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한 적이 없었고 특별히 큰 욕심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그런데 지금 송승우는 그녀가 그에게 민폐를 끼쳤다고 비난하고 있었다.“승우 오빠, 제가 도대체 어디서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해요?”하지수는 차분히 물었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아직도 모르겠어?”송승우는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수야, 이 몇 년 동안 송문수와 함께 지내면서 정말 많이 망가졌어.”“제가 도대체 뭘 했다는 거예요!”하지수는 한 마디씩 똑똑히 말했다. 그녀의 태도도 점점 강경해졌다.“지금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이 그게 결국 내가 결혼식에서 떠난 일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려는 거 아니야? 그래서 일부러 나한테 쌀쌀맞게 굴고 내가 너를 달래게 만들려고 하는 거잖아?”송승우는 직설적으로 말했다.곰곰이 생각해 보면 송승우는 사실 그다지 인내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릴 때 그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항상 공부였고 그는 공부를 정말 좋아했다. 공부는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가 공부한다고 하면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좋은 학습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공부를 마친 후에야 다른 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하지수는 어릴 때부터 참 착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그녀는 송승우가 공부할 때는 절대로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어릴 때 자신을 잘 대해주고 그녀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송승우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법을 잘 알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았다.그녀가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때는 송승우가 바쁘지 않을 때였고. 송승우가 그녀를 달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손승우가 달래줄 때 이미 미리 감정을 정리해 놓았다.하지수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깨닫고 나니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집착할 필요가 없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말했다. “승우 오빠, 난 오빠가 달
“그만하자. 지수야. 더 이상 너랑 말다툼하고 싶지 않아.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달콤한 말로 너를 달래지도 않을 거야. 나는 오직 내 행동으로 내 감정을 표현할 뿐이야. 네가 내 입장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송승우는 엄중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하지수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송승우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를 맞춰주면 그는 다정하고 자상한 오빠가 된다. 그러나 맞춰주지 않으면 그는 고집스러워 보였다. 자신의 관점을 끝까지 고수하며 다른 사람의 반박은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쟁이처럼 느껴졌다. 혹시 여태까지 그녀가 송승우에 대해 너무 이상적인 시각을 가졌던 걸까? 이제야 그 차이를 깨닫고 나니 실망감만 남았다.송승우는 하지수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였다고 착각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다소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마치 하지수에게 매우 관대하고 대범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도덕적 압박 같기도 하고 일종의 가스라이팅 같기도 했다. 하지수는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승우 오빠,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우리 사이에 더 이상 감정 같은 건 없어요. 우리는 이미 끝났어요. 저는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이런 말을 해서 오빠가 달래길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와 함께 있고 싶어요.” “지수야, 너 대체!” 송승우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지며 급격히 화를 내며 말했다. 그는 하지수의 단호한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그리고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오늘 송문수를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 했어요.” 하지수는 평온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듯했다. 더 이상 송승우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 그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바꿔서는 안 된다.그녀는 그녀 자신의 삶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더 이상 송승우의 감정을 신경 쓰
하지수는 사실 송 어머니가 이미 잠에서 깼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말할 때마다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송승우는 그러지 않았다. 그도 송 어머니가 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 됐다. 하지수는 더 이상 송승우와 예전과 달라진 점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그의 숨겨진 모습을 이제야 깨달았을지도 몰랐다. 지금 그녀가 바라는 건 단 하나였다.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 송문수와 함께. “난 이만 가볼게. 송문수도 다친 데가 있어서 그 사람 보러 가야 해.” 하지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돌아섰다. “하지수. 네가 지금 나한테 화가 나서 일부러 날 자극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 네가 오늘 정말로 이 문밖을 나간다면 우리 사이는 끝이야. 난 다시는 널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그리고 기억해 둬. 난 두 번, 세 번씩 중고품을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야.” 송승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하지수의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하지수는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제야 알았다. 송승우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이미 중고품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듣고 있었다. 누구라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모욕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 아마 그가 중요하지 않으니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송승우 앞에 섰다. 송승우는 하지수가 그의 경고 앞에서 끝내 떠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역시나 하지수가 그저 허세를 부릴 줄 알았다. 하지수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확신했다. 자신과 송문수중에서 하지수가 어리석게 그 열등품을 선택할 리 없다는 것을. 누구나 눈이 있다면 알 것이다. 그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지수야,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
회의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들은 혹시나 방금 들은 말이 착각이 아닐까 하는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송승우는 믿을 수 없었다.‘어린 시절부터 장난만 치고 아무것도 해낸 적 없었던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제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요. 다음 주 수요일쯤, 크레지 씨가 직접 회사로 와서 계약서에 사인하실 거라고 하셨어요.”송문수가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정말인가요?”오 이사님이 가장 먼저 물었다. 이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다른 이사님들도 모두 송문수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실 이사님들뿐만 아니라 송기명까지도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 거라 생각했었다. 기술 투자를 성사하지 못한다면 즉시 프로젝트를 멈추고 더 이상의 손실을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었다.그동안 들인 노력과 돈이 헛된 것으로 된다고 해도, 아쉽고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면서, 이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라면서 이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기술 투자를 따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이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국제적인 협력 또한 쉽지 않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경쟁 관계도 존재했으니 말이다.그럼에도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성사한 것이었다.“금방 크레지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송문수도 감격스러운지 여러 번 반복했다.“정말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오 이사님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다른 이사님들도 다들 같은 말만 반복했다.“문수 씨, 정말 대단하세요!”“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크레지 씨한테서 기술 투자를 따내다뇨... 크레지 씨는 성격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문수 씨, 이번에 정말 큰 공을 세우셨어요. 만약 이번 기술 투자가 실패했다면 회사는 최소 3년에서 5년 동
그녀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송기명과 허영지도 아마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니 말이다.그러나 송문수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해줬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유독 송승우만은 계속해서 송문수의 능력을 부정했고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하지수는 송승우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그러자 그때, 송문수의 전화가 울렸다.전화 화면을 확인한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송승우는 송문수의 행동을 지켜보며 마치 트집이라도 잡은 것처럼 말했다.“송문수, 회의 중에 개인 전화를 받으면 안 되는 거 몰라?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송문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회의실 구석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그러자 송승우는 더 화가 났다.그때, 오 이사님이 그를 꾸짖었다.“승우 씨, 지금 문수 씨는 이 회사의 회장입니다. 이 회사에 발을 들인 이상 문수 씨의 말대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문수 씨가 전화를 언제 받든 그건 문수 씨가 결정할 일입니다. 저희도 문수 씨랑 여러 번 회의를 해봤어요. 진짜 급하고 중요한 전화가 아닌 이상 회의 중에 절대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송승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송문수 이놈, 비밀리에 오 이사님이랑 뭔가 있는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왜 오 이사님께서 계속 송문수를 감싸주겠어?’이렇게 생각한 그는 다른 이사님들을 둘러보았다.다른 이사님들도 송문수가 회의 중에 전화를 받는 것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듯했다. 다들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송승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도대체 송문수가 이 사람들에게 뭘 해 줬길래 다들 이렇게 그를 감싸는 걸까?’회의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조용히 송문수가 전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송승우는 점점 더 짜증이 났지만 다들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도 더 이상 뭐라 말할 수 없었다.한참 지나서야 송문수가 전화를 끊고 돌아왔다.송문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송승우가 바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