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노 요시코가 매혹된 눈빛으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앞에 앉아 있던 이도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 네. 별문제 없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가문이 몇 개 있었는데 모두 저에게 살해당했습니다.”야노 요시코는 얼굴을 붉히며 다급하게 말했다.“그래. 잘했어. 권리는 불가침하니 강하게 나올 필요가 있어. 도발은 더더욱 안 돼. 도발하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죽여버려.”이도현이 냉담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주인님.”“표현이 좋으니까 이거 줄게.”이도현은 옥병 세 개를 꺼내 야노 요시코에게 던져주었다.야노 요시코는 옥병을 급히 받으며 의아한 눈빛으로 수중의 물건을 바라보았다.“옥병마다 담약이 한 개씩 있어. 하나는 너의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주안단이야. 불로장생은 할 수 없지만, 영원히 청춘에 머무르게 할 수 있어. 다른 하나는 구현단이야. 복용하면 백 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영모단이야. 복용하면 너의 수련 속도를 세 배 높일 수 있어.”“이 세 개의 담약은 모두 신물인 만큼 나도 수량이 많지는 않아. 네가 나를 위해 일을 하는 이상 나도 절대 너를 푸대접하지 않아. 네가 맡은 바 일을 잘해서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도 너를 잘 챙겨줄 거야. 이번 일을 끝내고 돌아간 후에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줄게. 그때 이 담약을 복용해서 가능한 한 빨리 내공을 돌파해.”“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강대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이도현이 말했다.야노 요시코가 이도현을 따른 이후로 그는 아직 야노 요시코에게 아무런 물질적인 혜택을 주지 않았다. 야노 요시코가 감지덕지하는 권리와 혜택은 이도현의 눈에 아무것도 아니었다.일을 시키기만 하고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충성스러운 사람도 마음속에 원한을 품게 될 것이다.한 사람이 끝까지 자신을 따르게 하려면 당근과 채찍을 모두 주어야 하는 법이다.개를 키워도 밥그릇을 챙겨줘야 하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아...”이도현의 말을
비행기는 곧 지국에 도착했고 로열 전용 공항에 착륙했는데 비행기 밖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맨앞에 보기만 해도 놀라울 정도로 가슴이 커다란 두 여성 장교가 서 있었다.두 장교의 커다란 가슴은 과학에서 흔히 말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듯했다. 그 단단하고 묵직한 것을 가슴 앞에 두고 여전히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다니, 역시 훈련받은 사람다웠다.이도현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 이 두 명의 영강국 여군관은 부리나케 이도현을 향해 달려오며 소리쳤다.“오! 맙소사. 드디어 오셨군요. 얼마나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요.”이렇게 말하면서 두 여군관은 이도현을 끌어안으려 했다.사실, 이 순간 이도현은 마음이 몹시 혼란스러웠다.이 두 여자는 비록 못생기지 않았지만, 이도현의 취향이 아니었다.그는 두 여군관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솔직히 그는 정말 그것에 숨이 막힐까 두려웠다.그는 이미 몇몇 선배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 가슴이 큰 사람을 보면 조금 두렵기 마련이었다.이도현이 그동안 무엇을 겪었는지 한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이도현이 야노 요시코에게 눈짓을 보내자 야노 요시코는 바로 이도현 앞에 나서서 그를 껴안으려는 두 여군관을 가로막았다.“물러가라. 너희들이 어찌 함부로 주인님을 범할 수 있겠어.”야노 요시코는 냉랭하게 말하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뻔뻔한 것들. 자신이 어떤 신분인지 보지도 않고 감히 주인님의 품에 안기려 하다니. 나도 엄두 내지 못하는 일을 너희들이 무슨 자격으로 하려는 건데. 난 그래도 주인님의 아랫사람인걸.’‘감히 내 자리를 빼앗으려 해? 주인님이 떠나거든 너희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아직 매를 덜 맞은 모양이군...’야노 요시코는 마음속으로 사악한 생각을 했다. 그녀는 이도현이 떠난 후 이 뻔뻔한 여군관들을 어떻게 혼낼지 생각했다. 사실 이도현이 이 두 명의 여군관을 이곳으로 보낸 이후로 야노 요시코에게 많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처음에 그녀는 이 두
오늘 두 사람은 신 같은 남자 이도현을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자신의 주제를 까먹은 것이다. 두 사람은 야노 요시코를 까먹고 이도현에게 달려가 안으려 했다. 이는 이도현의 반감을 샀고 야노 요시코의 분노를 일으켰다.야노 요시코의 살의 가득한 눈빛을 보고 두 여군관은 바로 겁을 먹고 몸을 부르르 떨었으며 하마터면 소리까지 지를 뻔했다.“이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바로 나랑 야나기 가문으로 가지. 지국의 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하면 돼. 난 관여하지 않을 거야. 넌 내가 당부한 일만 잘 처리하면 돼. 이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든 그건 너의 자유야.”지국의 수많은 신하 가문 수령들이 모두 이 공항에 와서 그를 맞이한 것을 보고 이도현은 야노 요시코의 속셈을 바로 꿰뚫었다.그는 물건을 찾기 위해 야노 요시코를 남겨두었다. 애초에 지국의 황제를 단번에 죽인 것도 그들이 죽을 짓을 했기 때문이지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권력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자유를 만끽하던 그는 구속받는 것이 딱 질색이었다.사람은 권리를 얻는 동시에 권리에 속박당하기 마련이었다.하지만 한 사람이 충분히 강하면 그 어떤 권리가 낳은 규칙도 그를 가둘 수 없었다.“예. 주인님.”야노 요시코는 급히 대답하며 나머지 사람들을 돌려보냈다.이도현의 이 행동에 야노 요시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감격, 기쁨 그리고 말 못할 무언가를 느꼈다.이도현은 줄곧 말한 대로 행동했다. 그는 지국을 야노 요시코에게 맡긴 후 한 번도 정사를 간섭한 적이 없다.게다가 이도현은 그녀에게 임무를 맡기는 것 이외, 다른 시간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녀의 사생활을 간섭하지도 않았다. 즉 그녀에게 절대적인 자유를 준 것이다.야노 요시코는 비록 이도현의 아랫사람이지만 전혀 비천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고 심지어 예전보다 더 잘살고 있었다.지금 지국에는 그녀를 얕잡아보거나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고 대가족의 가장들도 그녀를 보면 무릎을 꿇어야 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도현
야노 요시코의 도움으로 이도현은 곧 야나기 가문에 도착했다.야나기 가문은 지국의 홍일점이라 할 수 있었다. 이 가문은 나랏일에 전혀 간섭하지 않고 오로지 무도와 강호에만 전념했다.그래서 지국의 황실이 이도현에 의해 멸망하고 지국의 수많은 가문이 이도현에게 통제당해도 야나기 가문은 시종 얼굴을 비추지 않고 나서서 오지랖을 부리지 않았다.이런 가문은 아마도 외적이 침입할 때만 손을 내밀고 내부에서 누가 황제가 되든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나라가 망해도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필경 가문이 멸망하지 않는 한 손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가문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 가문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백 년의 왕조, 천 년의 가문, 만년의 세가.지국의 많은 세가는 사실 염국과 마찬가지로 누가 황제가 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설령 다른 민족이 황제가 되더라도 신경 쓰지 않고 단지 그들의 가문이 예전과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만 신경 쓸 뿐이다.야나기 가문은 산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국은 여러 섬이 합쳐진 나라라 땅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야나기 가문처럼 작은 산 하나를 차지하고 가문을 세운 가문은 정말 드물었다. 이로부터 야나기 가문의 실력을 충분히 보아낼 수 있었다.“누구십니까? 거기 서십시오.”산에 얼마 오르지 않아 이도현과 야노 요시코는 두 명의 무사에게 가로막혔다.“실례합니다. 야노 요시코가 방문했다고 전달해 주세요.”야노 요시코는 자신의 이름을 댔다.“야노...”무사는 깜짝 놀라서 야노 요시코를 바라보았다.야나기 가문은 비록 나랏일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소식이 매우 빨랐다. 그들은 당연히 눈앞의 야노 요시코가 현재 지국의 실권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소인이 바로 전달하겠습니다.”무사는 말을 마치고 급히 뛰어 들어가 보고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가 뛰어나왔다.“야노 어르신, 우리 가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나기 가문은 예로부터 나랏일에 관여하지 않으니 어르신을
이도현을 제지하러 달려드는 무사와 인자는 모두 이도현에게 살해당했다.그중에서 많은 사람은 입을 열기도 전에, 이도현의 근처에 가기도 전에 은바늘에 당해 목숨을 잃었다.“당신 누구야? 무슨 배짱으로 감히 우리 야나기 가문에서 소란을 피워? 죽고 싶어?”이도현 앞에 낭인 옷을 입은 무사 한 명이 나타났다. 허리에는 두 자루의 칼을 찼고 발에는 나막신을 신었으며 몸에서 강한 기운을 내뿜었다.“한마디만 묻고 갈 거니까 야나기 가문의 가장 보고 나오라고 해. 좋은 말로 할 때 듣는 게 좋을 거야. 난 오늘 원하는 대답을 받기 전까지 떠나지 않을 거니까 잘 생각해.”이도현이 냉랭하게 말했다.“허허. 우리 야나기 가문이 개나 소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우리 가주님이 어떤 분인데 네가 나오라면 순순히 나와야 해? 이봐, 염국인. 야노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 지금 그냥 보내줄게. 아직 돌아가기에 늦지 않았어.”무사가 말했다.“보아하니 그쪽도 말이 통하지 않는군. 그냥 싸우는 게 낫겠어. 내가 쳐들어가면 어떻게든 만나겠지.”“죽으려고.”무사는 고함을 지르며 칼을 내빼더니 양손에 칼을 들고 이도현을 향해 휘둘렀다.“살신일도참. 죽어라.”칼이 떨어지자 한 줄기의 강한 푸른색 검기가 이도현을 향해 세차게 떨어졌다.“꺼져.”이도현은 제자리서 움직이지 않고 소리를 한번 치자 몸에서 하늘을 찌르는 듯한 강한 힘이 솟구쳐 나오며 무사를 향해 덮쳤다.무사의 강한 검기는 이 기운을 만나자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러나 이도현이 뿜어낸 강력한 힘은 끊임없이 무사를 향해 나아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를 멀리 날려 보냈다.“이... 어떻게 이럴 수가...”“풉...”무사는 멀리 날아가 바닥에 세게 떨어졌다. 그는 가슴이 미어지고 오장육부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무사는 피를 한 모금 토했고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너...”무사는 기운을 모아 상처를 치료하려 했지만, 뒤늦게 단전이 텅 비어 있고 진원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염국인, 너무 오만한 거 아니야? 잘 생각해. 여기는 지국의 야나기 가문이지 네가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우리 야나기 가문의 사람을 죽인 이상 너는 무사하지 못할 거야.”“지금 당장 목숨을 내놓고 사죄하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손을 쓸 거야. 그때가 되면 넌 아주 비참하게 죽겠지.”노인은 검을 안고 시큰둥한 얼굴로 이도현을 쳐다보며 말했다.그는 이도현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고 그의 내공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도현이 하찮은 존재인 줄 알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네가?”이도현은 무시하는 말투로 말했다.말하는 도중에 이도현은 땅바닥에서 나뭇잎 하나를 주었다.“나는 이 나뭇잎 하나로 너의 머리를 베어낼 수 있어. 죽어라...”이도현은 다소 억지스러웠다. 그는 정보를 얻으러 야나기 가문에 온 것이지만 조금도 부탁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오자마자 사람을 죽였으니 말이다.그런데 지국의 짐승 같은 인간을 좋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그들은 비천하고 열등한 종족이라 좋은 말로 얘기하면 자신이 더 잘난 줄 알고 사람을 얕잡아보기에 십상이었다.하지만 매와 채찍으로 다스린다면 오히려 말을 잘 듣고 조상을 모시는 것처럼 공손하게 받들었다.이는 그들과 영강국의 관계에서도 보아낼 수 있었다. 영강국은 그들에게 제일 큰 피해를 줬지만 그들은 여전히 영강국을 공손하게 모시고 있었다.마치 손자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내시가 황제를 받드는 것처럼 공손하게 모셨다.그렇기에 그들은 천한 놈이 틀림없었다.하여 이도현은 그들의 비위에 맞춰 오자마자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혼 내주었다. 그리고 감히 그의 앞에서 떵떵거리는 사람은 바로 죽여버렸다.그는 그 사람들을 쓰레기 처리하듯이 죽였다. 전에 이도현이 지국에 와서 이 극악무도한 놈들을 죽일 때도 마음의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았으니 지금은 더더욱 없었다.약육강식에 익숙해진 이도현은 하나의 도리를 깨달았다. 바로 사람은 심성이 착해야 하고 덕으로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은 강자의 속임수였고
작디작은 나뭇잎 하나가 이도현의 손에서 날려 나가는 순간, 마치 공간을 자를 수 있는 절세의 흉기가 된 듯 강력한 힘을 내뿜었다.“그럴 리가...”무사는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날아오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강력한 기운에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그는 내공이 보이지 않는 녀석에게 이렇게 무서운 실력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단지 나뭇잎 하나로 이렇게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그는 다가오는 나뭇잎이 마치 신병무기처럼 느껴져 전혀 저항할 수 없었다.무사는 놀라움 속에서 정신을 차린 후 진원을 움직여 수중의 칼로 나뭇잎을 자르려 했다.탕.또랑또랑한 소리와 함께 무사의 칼은 나뭇잎과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이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나뭇잎은 이미 그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너...”쿵.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사의 머리가 폭발했고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튕겼다. 그 장면은 그야말로 끔찍했다.쾅.머리 없는 시체는 쿵 하고 땅에 떨어지면서 먼지를 날렸다.무사는 죽기 직전까지 이도현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염국의 젊은이가 정말 큰소리친 것이 아니라 나뭇잎 하나로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나왔으면 얼굴을 비추게. 자기 땅에서마저 숨어 있을 생각인가? 야나기 가문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가문이었어?”이도현은 앞을 내다보며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곧이어 이도현의 시선이 머무른 곳에서 세련되고 묵직하고 목소리가 들렸다.“귀하께서 우리 야나기 가문을 이토록 괴롭힌 것이 너무한 것 아니야? 우리 야나기 가문이 귀하와 원한을 맺은 적도 없는데 어찌 들어오자마자 사람을 죽인 거지? 이 야나기 이치로오가 그렇게 우스워?”말소리와 함께 한 노인이 이도현과 야노 요시코의 시야에 나타났다.이어 노인은 자취를 감추더니 다른 방향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또 사라졌다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이렇게 몇 번 반복한 후 야나기 이치로오는 이도현의 눈앞에 나타났다.이것이 바로 지국의 인술이었다
“당신이 바로 이도현이라고?”야나기 이치로오는 안색이 확 어두워지더니 경악하며 말했다.지국에서 이도현은 거의 악마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도현의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엉엉 울던 어린이가 울음을 뚝 그칠 정도였다.울며 떼쓰는 아이에게 계속 울면 이도현이 찾아온다고 말하면 겁을 먹고 금방 울음을 그치기도 한다.이도현이 지국에서 이 정도로 악명을 떨쳤다.야나기 이치로오는 걸어 나올 때 원래 야나기 가문에 찾아와 시비 거는 사람을 죽이려고 생각했었다. 그게 누구든지 야나기 가문에 와서 일을 벌이는 자를 반드시 처참하게 죽여버리겠다고 생각까지 했었다.하지만 이도현의 이름 석 자를 듣자마자 이 생각들은 깨끗하게 사라져버렸다.그는 이도현의 내공을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지국의 황실을 박살 내고 지신사의 강자를 해치울 수 있는 자를 야나기 가문에서 죽일 능력이 없었다.죽일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잘못했다가는 야나기 가문까지 사려져 버리는 수가 있다.“그래. 나다.”“이 선생이 우리 야나기 가문에는 어쩐 일인가? 물어볼 말이 있으면 편하게 얘기하세.”야나기 이치로오는 순식간에 겁을 먹었다.야나기 가문의 실력은 나쁘지 않지만, 살인마귀 앞에서 그는 가문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이긴다고 해서 야나기 가문에 별 이득이 없고 지면 가문이 사라질 위험이 있다. 게다가 이길 확률은 남자가 아이를 낳는 확률보다 작았다.“야나기 가문 수장은 죽은 가문 사람들을 위해 복수할 생각이 없나? 내가 조금 전에 야나기 가문 사람을 여러 명이나 죽였는데.”이도현은 조롱의 말투로 말했다.조금 야비한 짓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그렇게 말한 건 이미 허리를 굽혔다는 뜻인데 이도현은 계속해서 남의 속을 긁으며 사람에게 흉을 주었다.“저는 귀하에게 상대가 안 되네. 손을 써도 죽기밖에 못 한다는 걸 알지. 이 선생이 온다는 것을 미리 부하를 통해 알렸더라면 이런 오해도 없었을 거로 생각하네.”“이 선생이 묻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른 물어보게. 저
두 사람은 여인들이 놀라 피하는 와중에 성역으로 통하는 결계 앞에 도착했다.결계 바깥에는 거대한 석문이 서 있었고 문 앞에는 몇 채의 집이 늘어서 있었다. 집 안에서는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의 위압감에 사내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얼굴이 새파래져 있었다.“아버지... 여기... 여기가 성역으로 통하는 결계입니다! 이 집 안에 있는 강자들은 모두 성역의 주요 세력에서 파견된 수호자들입니다. 그들은 성역에 들어가려는 자들을 막는 자들이죠!”“말하자면 정말 흉악한 놈들이라니까요. 성역이 뭐 자기들 집 마당도 아닌데, 왜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죠? 정말 열 받아!”“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가 막혔는지 몰라요. 처음에는 그냥 돌아가라고 권고만 하지만 만약 듣지 않고 억지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저들은 가차 없이 처리해 버립니다!”“그래서 많은 고수가 성역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관문에서 목숨을 잃었죠!”“그러다 보니 점차 성역에 가려는 사람들도 줄어들었고요. 모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목숨을 내놓을 용기가 없는 거죠!”사내는 설명을 마치며 석문 양옆의 집들을 경계하는 눈치로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아버지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는 대진제국과 현천문에서 초대한 귀빈이시니 그들이 감히 막을 수 없을 거예요!”“아버지,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부자가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사내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더니 아첨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버지 라느니 우리 부자라느니 참으로 효성스러운 호칭이었지만, 이를 들은 이도현은 어이가 없어 치가 떨렸다.갑자기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들이 생기다니... 그 누구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멘붕이 올 게 뻔했다.그는 문지해가 최고로 뻔뻔한 줄 알았는데 이제야 세상에는 더한 놈들이 널렸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이 아들은... 정말 인정할 수가 없었다!“그만 하라니까요!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다시 ‘아버지’라고
“말해봐요...”이도현은 거의 울부짖듯이 내뱉었다.‘저놈이 결계를 열어줄 유일한 희망이 아니었으면, 당장 한 대 후려쳐서 저 자식을 골로 보냈을 텐데!’‘역겨워도 너무너무 역겨워!’“동생, 진정하게! 말할게, 이제 쑥스러움이고 뭐고 다 버리고 말할게! 사실은... 성역에 갈 때 나도 데려가 줄 수 있나?”“제발! 부탁하네! 난 평생 성역에 가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결계를 지키는 고수들을 이길 수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어”“동생이 초대로 받고 간다고 했으니 나를 데리고 가주게! 그렇게만 한다면 이제 내가 자네를 형님으로... 아니, 아버지로 모시겠네!”사내는 감동에 젖은 듯 눈물을 글썽이며 무릎까지 꿇을 기세였다.“그게 다 인가요...”이도현의 떨리는 입으로 물었다.“네! 이게 다입니다. 아버지! 부디 데려가 주십시오.”사내는 정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제 아예 ‘아버지’ 라고 부르고 있었다.“이 정도로 그냥 말을 하면 될걸. 뭘 사내가 처녀처럼 수줍어할 것까지 있나요? 아휴, 진짜!”“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요! 당신 같은 자식을 두었으면 진작에 목을 졸라 죽였을 테니까요! 사내가 되어서 쑥스러워하기나 하고. 나 참.”이도현은 정말 화가 날 대로 났다. 평생 남자한테 이렇게까지 열받아 보는 건 처음이었다.“알겠습니다, 아버지...”“닥치라고요!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내 주먹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이도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알겠네. 알겠네. 아버지라 부르지 않을 테니 화내지 마시오.”덩치 큰 사내는 아첨하듯 웃으며 그 표정은 효자라도 부끄러울 정도로 아부를 떨고 있었다.“됐어요! 나와 함께 성역에 가려면 지금 당장 결계로 길을 안내해요. 한마디만 더 하면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이도현은 미리 경고했다. 이 자식이 또 같은 짓을 반복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때는 진짜로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네, 아버지... 당장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쪽으로, 아버지...”결국 이도현이 ‘아버지’가 된 것은 기정
사내는 이도현의 말을 듣고 싸늘하던 눈빛이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더욱 뜨거워졌다.그 눈빛은 이도현이 옷을 벗은 연진이 선배를 바라볼 때보다도 더욱더 열정적이었고, 노골적인 소유욕이 담긴 시선은 이도현의 마음을 다시 한번 두렵게 만들었다.“형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이도현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아니, 동생! 자네 진짜 대진제국과 현천문에서 초대한 귀빈이야?”사내는 이도현을 안아줄 듯이 다가왔다.“형님, 침착하세요! 이상한 짓 하지 마시고요. 저 무술 할 줄 알아요...”이도현이 경고하며 말했다“이상한 짓이라니, 절대 아니야! 내가 동생한테 그럴 리가 있겠어? 대진제국과 현천문의 귀빈인데!”사내가 말했다.“정말 그런 거예요?”이도현은 사기를 당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그럼, 그렇고말고! 동생, 자네 진짜 대진제국의 귀빈이 맞아?”사내가 다시 확인했다.“그만 물어보시고, 성역으로 들어가는 결계를 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이도현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이렇게 큰 덩치의 사내가 어째서 이렇게 답답하게 구는지... 여자처럼 우물쭈물하기만 하고 전혀 시원스럽지 않았다.“알아! 내가 아니까 내가 데려다줄게!”사내는 극진한 친절함을 보였다.“그럼 정말 감사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도현이 깊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헤헤! 뭘 이 정도 가지고. 부탁이라고 할 것도 없어. 동생을 도와줄 수 있다면 내 영광이지!”사내는 아부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이도현은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분명히 속으로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그런데... 말이야 내 부탁 하나를 들어줬으면 해! 동생이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제발이야!”사내의 얼굴에는 더욱 아양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무슨 부탁인데요?”이도현은 입을 비쭉거렸다. 역시나 이런 전개가 나올 줄 알았다.“그... 그게... 말하기가 좀 쑥스럽네?”사내는 의외로 수줍어하기 시작했다.“아... 진짜...”사내가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자 이도현은 정말
매우 짜증이 나 있던 사내는 금기어라도 들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도현에게 물었다.“성역으로 가는 결계요.”이도현이 어리둥절한 채 말했다.‘성역이 뭐 금지구역도 아니고. 물어보면 어때서...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이도현이 속으로 투덜대고 있을 때, 그 사내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이도현의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상하좌우로 그를 샅샅이 살폈다.마치 신기한 동물을 보듯 눈빛에는 신기함, 놀라움과 불가사의가 가득했다.이도현은 사내의 시선에 말문이 막히고 당황스러웠다.‘젠장. 남자를 뭘 그렇게 신기하게 훑어보는지. 설령 여자였다 해도 이렇게 쳐다보면 안 되지. 설마 변태인 거 아냐?’이도현은 머릿속에 역겨운 장면들이 떠올라 점점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가까스로 참았다.“동생, 실례지만 한 가지 묻겠네. 자네는 성역의 어느 문파에서 선택받은 제자인가?”사내는 아주 열정적인 눈빛으로 이도현에게 물었다.특히 동생이라는 호칭을 아주 부드럽게 얘기했다.하지만 180cm의 건장한 체격에 근육이 가득한 사내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다른 남자를 동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말로 소름 돋는 일이었다.소심한 남자였다면 이미 이 말에 등골이 오싹했을 것이다.“아니에요.”이도현은 본능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그 사내와 거리를 두었다.그도 무서웠다.눈앞의 사내가 갑자기 안길까 봐 몹시 두려웠고 뽀뽀라도 당하면 이도현은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는 상상만 해도 역겨웠다.“아니라고? 그럼... 어느 왕조에서 부른 사람인가?”사내는 여전히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게다가 말하면서 계속 몸을 이도현 쪽으로 기울였다. 이도현은 마음속으로 움찔했다.“그것도 아니에요.”이도현이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그것도 아니라고? 그럼 혹시 성역에 있는 어느 강자의 제자인가?”사내는 체념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아니에요.”“그것도 아니야? 어느 큰 문파의 제자도 아니고, 어느 왕조에서 부른 사람도 아니고, 어느 강자의 제자도 아닌데
무도성은 오대준이 말한 대로 아주 오래된 성이었다. 누가 지은 것이고 언제 지어졌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마치 늘 이곳에 있은 듯했다.무도성은 대부분이 성역의 큰 세력에 의해 나누어져 있었고 동서남북 방향마다 강대한 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들은 무도성 안에 거대한 상업 타운을 만들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모두 이곳에서 등가의 물건으로 거래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것들은 이도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성역에만 관심을 가졌다. 만약 무도성 사람들이 그를 성역으로 무사히 들여보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도현은 검을 뽑아서라도 들어갈 생각이었다.그는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표묘신공을 써서 앞으로 나아갔다.세속계에서 표묘신공을 사용하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고무계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무계에는 무사들만 있고 심지어 하늘을 짧게나마 날 수 있는 강자도 있었다. 단지 이도현처럼 강한 사람이 없을 뿐이었다.약 두 시간 후, 이도현은 거대한 성벽 앞에 도착했다. 성벽은 수십 미터에 달할 정도로 웅장했고, 성문의 위쪽 중앙에는 ‘무도성'이라는 세 글자가 철화은구체로 쓰여 있었다.이 세 글자만으로도 사람에게 아주 강한 압박감을 주었다. 필체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흘러나왔으며 이는 확실히 높은 경지에 이른 고수가 남긴 흔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이게 바로 무도성인가 본데 역시 남다르군. 성문마저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다니. 이 세 글자의 필체를 보아하니... 회도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저 정도의 수준이 나올 수 없어.’이도현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성문 쪽으로 걸어갔다.성문 앞에는 보초가 없었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평범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무도성 안으로 들어가자 눈앞에는 온갖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고, 길 양쪽의 점포들도 매우 북적거렸다.만약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강한 내공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이도현은 자신이 세속계의 번화한 거리에 들어선 줄 알았
누가 문주가 됐든 다 형편없을 것이었다.“주인님, 분부하십시오. 제가 꼭 잘해내겠습니다.”오대준은 시름 놓고 재빨리 대답했다.“나는 성역으로 가려고 한다. 그곳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가는지, 그리고 가장 빠른 길이 무엇인지 아느냐?”이도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성역이요? 주인님, 성역에 가십니까?”오대준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성역으로 가는 길을 아느냐? 모르냐? 내가 왜 성역에 가려는지는 묻지 말고.”이도현의 차가운 말투에 오대준은 깜짝 놀라 바로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성역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그는 서둘러 아는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성역은 고무계와 독립된 공간입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곳의 크기는 고무계 전체보다도 크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전혀 다른 세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성역 안에는 영기가 차고 넘치며, 수련 자원도 풍부한 데다가 안에서 나온 사람은 하나같이 엄청난 실력을 지녔고 심지어 무도의 경지를 넘어선 자도 있다고 합니다.”“고금동서, 고무계의 모든 무사가 성역에 들어가려 애썼지만 성공한 자가 극히 드뭅니다. 오직 성역의 강자에게 선택당한 천재들, 혹은 특정 종파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내공이 어느 정도에 도달해 무도성을 통과하여 성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오대준은 숨 쉴 틈조차 없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도현은 단순히 성역의 위치만 물었을 뿐인데, 오대준은 성역의 특성과 입성 조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솔직히 말해서, 이도현은 짜증이 치솟아 오대현을 죽이고 싶었다.“무도성이 어디에 있는지나 말해. 성역에 들어가려면 꼭 무도성을 통과해야 하는 거냐?”이도현이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네. 그렇습니다. 현재로서는 성역으로 통하는 결계가 무도성에만 있습니다.”오대준이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럼 무도성은 어디에 있는데?”“성역 동남쪽에 큰 성이
“사람을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너에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줬건만 아직 귀령문도 통합하지 못한 거야? 그러고도 귀령문의 문주가 되겠다고? 참 우습구나. 네가 쓸모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지금 보니 아무 소용이 없구나.”오대준이 사람을 데리고 말 안 듣는 제자들을 처리하려고 할 때 귀령문 밖에서 경멸에 찬 목소리가 전해졌다.“누구냐? 어디 감히?”오대준이 분노하며 소리쳤다.하지만 들어오는 사람을 본 순간 그는 완전히 굳어버렸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급히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들어온 사람은 그에게 있어서 악마이자 악몽이었다. 그는 이 사람만 생각하면 깊은 두려움에 떨었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 사람에 대한 악몽을 꾸며 공포에 떨다가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그 사람은 바로 악마 같은 존재, 이도현이었다.그리고 지금은 그의 주인이자 그를 누르는 사람이기도 했다.“주... 주인님... 어... 어떻게 오셨습니까?”오대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내가 오면 안 돼? 전에 너를 살려뒀던 건 네가 어느 정도 쓸모 있을 줄 알아서였어. 그런데 참 쓸모없는 놈이구나.”이도현이 경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주... 주인님... 아닙니다... 저는 큰 노력을 들였고... 이미 귀령문의 절반 이상을 통합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모두 전임 문주의 측근입니다. 이 사람들의 내공이 괜찮아서 아직 죽이지 않고 설득해서 주인님께 효력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깊은 뜻을 헤아려 주십시오. 주인님.”오대준은 변명하면서 땅에 계속 머리를 부딪쳤다. 그야말로 겁쟁이가 따로 없었다.“흥. 그게 무능한 거지. 변명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이 정도 일도 못 하면서 귀령문의 문주가 되겠다고 하기는.”이도현이 비아냥거렸다.하지만 그는 단지 경멸할 뿐 귀령문의 일에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아... 아닙니다, 주인님. 제가... 제가 귀령문을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기회를 한 번만 더 주
오대준은 원래 종파를 통합해 귀령문을 다시 강대하게 만든 후 이도현의 통제에서 벗어나 제일 강력한 문주가 되길 바랐다.하지만 제자들이 그의 뜻에 전혀 따르지 않았다. 만약 그가 당시 이도현 앞에서 그렇게 비굴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무릎을 꿇고 싹싹 빌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지금 그와 함께 귀령문을 재건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때 오대준의 행동은 제자들을 너무 실망시켰다. 그는 살기 위해 개같이 구걸했고 귀령문의 존엄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이는 귀령문 모든 사람의 존엄을 짓밟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여 그 뒤로부터 귀령문 사람들은 오대준을 마음속 깊이 경멸했다.그들은 비겁하고 나약한 오대준을 문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문주 될 자격이 없었다.그들이 보기에는, 설령 귀령문이 이도현의 손에 의해 멸망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당당히 맞서 싸웠다면 조상들을 볼 면목 정도는 있었다.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귀령문이 멸망하는 게 나았다.현재 귀령문의 대리 문주인 오대준은 문주의 자리에 앉아 얼굴을 찌푸린 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이 사람들도 오대준과 같은 부류였다. 다들 죽는 것보다 비참하게 사는 게 낫고, 무엇보다 목숨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그들은 살아있어야 희망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죽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자기와 상관없기에 늘 존엄과 체면보다 목숨이 더 중요했다.오대준은 얼굴을 찌푸리며 아래쪽 사람들을 보고 차갑게 말했다.“저놈들이 아직도 말을 듣지 않는가?”“네, 문주님. 태도가 여전합니다. 뜻을 따르려 하지도 않고 문주님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한 제자가 말했다.“흥. 주제넘은 놈들. 내가 정말 저들을 죽이지 못할 것 같아? 이 정도 봐줬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만약 계속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저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말 거야.”오대준은 잔뜩 화난 얼굴로 이를 갈며 말했다.“문주님, 제 생각에는 진작에 저들을 처리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잘난 척하는 놈들입니
“뭐하시는 거예요? 선배들... 갑자기 왜 이러세요? 어서 일어나요...”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이도현은 재빨리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장문님, 잘 다녀오십시오.”윤선아 등 네 명이 동시에 말했다.“어...”이도현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선배들, 왜 이러세요? 제가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요. 저는 언제나 선배들의 막내 후배예요. 자꾸 이러시면 앞으로 선배들의 얼굴을 못 보겠어요.”이도현은 이렇게 격식 갖추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는 선배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심지어 그중 두 명이 그의 마누라였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앞에 무릎을 꿇으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후배, 지켜야 할 예법은 그래도 지켜야 해. 저 세 사람은 오늘 너에게 처음으로 절하는 거야. 이번 한 번만은 받아줘. 앞으로는 예전처럼 편하게 대할게. 우리 태허산은 원래 예법을 크게 차리지 않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하는 거야. 이번 한 번만 하고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윤선아가 말했다.“알겠어요. 어서 일어나요. 딱 이번 한 번만이에요. 다시는 이러지 마세요. 전 이런 예법이 너무 싫고 선배들이 저에게 무릎 꿇는 건 더더욱 싫어요. 어서 일어나요, 선배들.”이도현은 앞으로 나서서 선배들을 일일이 부축했다.그러고는 선배들의 아쉬운 눈빛을 받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기화영은 진작에 비행기를 준비해 두었고 이도현을 태허산 근처까지 데려다주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이도현은 태허산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고무계로 통하는 결계로 향했다.그는 능수능란하게 결계를 통과하여 고무계로 들어갔다.고무계도 낯설지 않았다. 지금 이도현이 위치한 곳이 바로 공작제국의 땅이었다. 지난번 자미각에서 다들 무사히 빠져나와 별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넷째 황자인 진정이 여섯째 선배를 잡아갈 줄이야.그리고 현천문의 젊은 문주를 죽이니 그 대가로 그의 여자를 잡아갔다. 큰 문벌에서 이런 치사하고 비열한 행동을 하다니, 정말 꼴불견이었다.제대로 된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니까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