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성은 오대준이 말한 대로 아주 오래된 성이었다. 누가 지은 것이고 언제 지어졌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마치 늘 이곳에 있은 듯했다.무도성은 대부분이 성역의 큰 세력에 의해 나누어져 있었고 동서남북 방향마다 강대한 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들은 무도성 안에 거대한 상업 타운을 만들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모두 이곳에서 등가의 물건으로 거래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것들은 이도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성역에만 관심을 가졌다. 만약 무도성 사람들이 그를 성역으로 무사히 들여보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도현은 검을 뽑아서라도 들어갈 생각이었다.그는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표묘신공을 써서 앞으로 나아갔다.세속계에서 표묘신공을 사용하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고무계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무계에는 무사들만 있고 심지어 하늘을 짧게나마 날 수 있는 강자도 있었다. 단지 이도현처럼 강한 사람이 없을 뿐이었다.약 두 시간 후, 이도현은 거대한 성벽 앞에 도착했다. 성벽은 수십 미터에 달할 정도로 웅장했고, 성문의 위쪽 중앙에는 ‘무도성'이라는 세 글자가 철화은구체로 쓰여 있었다.이 세 글자만으로도 사람에게 아주 강한 압박감을 주었다. 필체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흘러나왔으며 이는 확실히 높은 경지에 이른 고수가 남긴 흔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이게 바로 무도성인가 본데 역시 남다르군. 성문마저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다니. 이 세 글자의 필체를 보아하니... 회도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저 정도의 수준이 나올 수 없어.’이도현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성문 쪽으로 걸어갔다.성문 앞에는 보초가 없었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평범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무도성 안으로 들어가자 눈앞에는 온갖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고, 길 양쪽의 점포들도 매우 북적거렸다.만약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강한 내공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이도현은 자신이 세속계의 번화한 거리에 들어선 줄 알았
매우 짜증이 나 있던 사내는 금기어라도 들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도현에게 물었다.“성역으로 가는 결계요.”이도현이 어리둥절한 채 말했다.‘성역이 뭐 금지구역도 아니고. 물어보면 어때서...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이도현이 속으로 투덜대고 있을 때, 그 사내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이도현의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상하좌우로 그를 샅샅이 살폈다.마치 신기한 동물을 보듯 눈빛에는 신기함, 놀라움과 불가사의가 가득했다.이도현은 사내의 시선에 말문이 막히고 당황스러웠다.‘젠장. 남자를 뭘 그렇게 신기하게 훑어보는지. 설령 여자였다 해도 이렇게 쳐다보면 안 되지. 설마 변태인 거 아냐?’이도현은 머릿속에 역겨운 장면들이 떠올라 점점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가까스로 참았다.“동생, 실례지만 한 가지 묻겠네. 자네는 성역의 어느 문파에서 선택받은 제자인가?”사내는 아주 열정적인 눈빛으로 이도현에게 물었다.특히 동생이라는 호칭을 아주 부드럽게 얘기했다.하지만 180cm의 건장한 체격에 근육이 가득한 사내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다른 남자를 동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말로 소름 돋는 일이었다.소심한 남자였다면 이미 이 말에 등골이 오싹했을 것이다.“아니에요.”이도현은 본능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그 사내와 거리를 두었다.그도 무서웠다.눈앞의 사내가 갑자기 안길까 봐 몹시 두려웠고 뽀뽀라도 당하면 이도현은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는 상상만 해도 역겨웠다.“아니라고? 그럼... 어느 왕조에서 부른 사람인가?”사내는 여전히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게다가 말하면서 계속 몸을 이도현 쪽으로 기울였다. 이도현은 마음속으로 움찔했다.“그것도 아니에요.”이도현이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그것도 아니라고? 그럼 혹시 성역에 있는 어느 강자의 제자인가?”사내는 체념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아니에요.”“그것도 아니야? 어느 큰 문파의 제자도 아니고, 어느 왕조에서 부른 사람도 아니고, 어느 강자의 제자도 아닌데
사내는 이도현의 말을 듣고 싸늘하던 눈빛이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더욱 뜨거워졌다.그 눈빛은 이도현이 옷을 벗은 연진이 선배를 바라볼 때보다도 더욱더 열정적이었고, 노골적인 소유욕이 담긴 시선은 이도현의 마음을 다시 한번 두렵게 만들었다.“형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이도현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아니, 동생! 자네 진짜 대진제국과 현천문에서 초대한 귀빈이야?”사내는 이도현을 안아줄 듯이 다가왔다.“형님, 침착하세요! 이상한 짓 하지 마시고요. 저 무술 할 줄 알아요...”이도현이 경고하며 말했다“이상한 짓이라니, 절대 아니야! 내가 동생한테 그럴 리가 있겠어? 대진제국과 현천문의 귀빈인데!”사내가 말했다.“정말 그런 거예요?”이도현은 사기를 당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그럼, 그렇고말고! 동생, 자네 진짜 대진제국의 귀빈이 맞아?”사내가 다시 확인했다.“그만 물어보시고, 성역으로 들어가는 결계를 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이도현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이렇게 큰 덩치의 사내가 어째서 이렇게 답답하게 구는지... 여자처럼 우물쭈물하기만 하고 전혀 시원스럽지 않았다.“알아! 내가 아니까 내가 데려다줄게!”사내는 극진한 친절함을 보였다.“그럼 정말 감사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도현이 깊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헤헤! 뭘 이 정도 가지고. 부탁이라고 할 것도 없어. 동생을 도와줄 수 있다면 내 영광이지!”사내는 아부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이도현은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분명히 속으로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그런데... 말이야 내 부탁 하나를 들어줬으면 해! 동생이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제발이야!”사내의 얼굴에는 더욱 아양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무슨 부탁인데요?”이도현은 입을 비쭉거렸다. 역시나 이런 전개가 나올 줄 알았다.“그... 그게... 말하기가 좀 쑥스럽네?”사내는 의외로 수줍어하기 시작했다.“아... 진짜...”사내가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자 이도현은 정말
“말해봐요...”이도현은 거의 울부짖듯이 내뱉었다.‘저놈이 결계를 열어줄 유일한 희망이 아니었으면, 당장 한 대 후려쳐서 저 자식을 골로 보냈을 텐데!’‘역겨워도 너무너무 역겨워!’“동생, 진정하게! 말할게, 이제 쑥스러움이고 뭐고 다 버리고 말할게! 사실은... 성역에 갈 때 나도 데려가 줄 수 있나?”“제발! 부탁하네! 난 평생 성역에 가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결계를 지키는 고수들을 이길 수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어”“동생이 초대로 받고 간다고 했으니 나를 데리고 가주게! 그렇게만 한다면 이제 내가 자네를 형님으로... 아니, 아버지로 모시겠네!”사내는 감동에 젖은 듯 눈물을 글썽이며 무릎까지 꿇을 기세였다.“그게 다 인가요...”이도현의 떨리는 입으로 물었다.“네! 이게 다입니다. 아버지! 부디 데려가 주십시오.”사내는 정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제 아예 ‘아버지’ 라고 부르고 있었다.“이 정도로 그냥 말을 하면 될걸. 뭘 사내가 처녀처럼 수줍어할 것까지 있나요? 아휴, 진짜!”“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요! 당신 같은 자식을 두었으면 진작에 목을 졸라 죽였을 테니까요! 사내가 되어서 쑥스러워하기나 하고. 나 참.”이도현은 정말 화가 날 대로 났다. 평생 남자한테 이렇게까지 열받아 보는 건 처음이었다.“알겠습니다, 아버지...”“닥치라고요!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내 주먹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이도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알겠네. 알겠네. 아버지라 부르지 않을 테니 화내지 마시오.”덩치 큰 사내는 아첨하듯 웃으며 그 표정은 효자라도 부끄러울 정도로 아부를 떨고 있었다.“됐어요! 나와 함께 성역에 가려면 지금 당장 결계로 길을 안내해요. 한마디만 더 하면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이도현은 미리 경고했다. 이 자식이 또 같은 짓을 반복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때는 진짜로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네, 아버지... 당장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쪽으로, 아버지...”결국 이도현이 ‘아버지’가 된 것은 기정
두 사람은 여인들이 놀라 피하는 와중에 성역으로 통하는 결계 앞에 도착했다.결계 바깥에는 거대한 석문이 서 있었고 문 앞에는 몇 채의 집이 늘어서 있었다. 집 안에서는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의 위압감에 사내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얼굴이 새파래져 있었다.“아버지... 여기... 여기가 성역으로 통하는 결계입니다! 이 집 안에 있는 강자들은 모두 성역의 주요 세력에서 파견된 수호자들입니다. 그들은 성역에 들어가려는 자들을 막는 자들이죠!”“말하자면 정말 흉악한 놈들이라니까요. 성역이 뭐 자기들 집 마당도 아닌데, 왜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죠? 정말 열 받아!”“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가 막혔는지 몰라요. 처음에는 그냥 돌아가라고 권고만 하지만 만약 듣지 않고 억지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저들은 가차 없이 처리해 버립니다!”“그래서 많은 고수가 성역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관문에서 목숨을 잃었죠!”“그러다 보니 점차 성역에 가려는 사람들도 줄어들었고요. 모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목숨을 내놓을 용기가 없는 거죠!”사내는 설명을 마치며 석문 양옆의 집들을 경계하는 눈치로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아버지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는 대진제국과 현천문에서 초대한 귀빈이시니 그들이 감히 막을 수 없을 거예요!”“아버지,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부자가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사내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더니 아첨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버지 라느니 우리 부자라느니 참으로 효성스러운 호칭이었지만, 이를 들은 이도현은 어이가 없어 치가 떨렸다.갑자기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들이 생기다니... 그 누구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멘붕이 올 게 뻔했다.그는 문지해가 최고로 뻔뻔한 줄 알았는데 이제야 세상에는 더한 놈들이 널렸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이 아들은... 정말 인정할 수가 없었다!“그만 하라니까요!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다시 ‘아버지’라고
태허산.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절벽 위의 동굴 저택에 강력한 실력을 갖춘 인간이 살고 있다! 그는 세상 밖을 헤매며 자유롭고 한가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그런데 이렇게 신선 같은 인물이 지금 한 소년에게 지극히 시달리고 있다.“에라잇, 썩을 놈아! 썩 꺼지거라, 다신 내 눈에 띄지 마! 8년이다! 8년! 네 놈은 내가 이 8년을 어떻게 버텨온 줄 알기나 해?”“스승님......”“이 스승이 이렇게 부탁할게. 넌 이미 강력한 실력을 갖췄어. 그러니 제발 산에서 내려가거라. 난 좀 더 오래 살고 싶단 말이다!”노인은 울상을 지으며 소년을 향해 허리도 굽혀보고 듣기 좋은 말도 건네보았다.“스승님, 전 심장이 쫄려서 도무지 내려갈 수 없어요. 산 아래는 위험해요. 마취도 없이 척추를 빼간다고요. 어우, 소름.”“쫄리긴 개뿔! 남들이 널 무서워하면 모를까.”“그리고, 척추 얘기는 들먹이지 마! 나도 두렵단 말이다.”노인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스승님......”“썩 꺼지거라!”“…”“너 갈 거야, 안 갈 거야! 안 가면 나 확 죽어버린다!”노인은 허겁지겁 발밑에 있는 돌의자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순간 노인의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하지 마세요! 스승님! 갈게요!”이도현은 노인의 미친 행동에 깜짝 놀랐다.“꺼져, 당장 꺼져!”노인은 손을 흔들며 이도현을 내쫓았다! 동시에 보따리 하나를 밖으로 내던지고 동굴 저택의 문을 굳게 닫았다.드디어 세상이 조용해졌다.8년이다! 8년 동안 노인은 이도현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노인이 가장 후회하는 일이 바로 도깨비 같은 이도현을 북부에서 데려온 것이다.이도현의 천부적인 재능은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한다.무도, 의학, 별자리 점 등 노인이 평생 배워 온 것을 이도현은 8년 만에 모두 완벽하게 습득했다.심지어 어떤 부분은 스승을 능가할 정도이니, 노인은 얼굴이 뜨거웠다이도현을 쫓아내지 않으면, 노인은 언젠가 이 꼴 보기 싫은 자식 때문에 미쳐 죽고 말 것이다.“휴!
다행히도 수많은 남자 중에서 이도현은 유일하게 그녀에게 골수를 기부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었다.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이로 인해 강설미는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살려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강설미는 이도현과 결혼했고, 이도현은 강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었다.이도현은 팔자가 활짝 피어 편한 인생을 살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가 클수록, 현실은 그를 더 실망하게 했다.강설미와 결혼한 뒤, 강설미는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도현과의 첫날밤을 보내지 않았다.그리고 강씨 가문에서 이도현의 지위는 강회장이 기르는 개보다도 못했다.적어도 그 개는 식탁에서 메이드가 먹여주는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이도현은 식탁 앞에 앉을 자격조차 없었다.이도현은 꿈에도 몰랐다. 강씨 가문에서 강설미의 건강이 회복되는 내내 이도현의 골수만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그러던 그날, 강씨 가문에서는 단련을 이유로 강설미에게 이도현을 북부로 데려가 비즈니스 미팅에 함께 참석하게 했다.단둘이 지내는 그날 밤, 강설미가 정성껏 준비한 근사한 저녁 식사 분위기에 그는 흠뻑 취해버렸다.이도현은 그곳에서 드디어 그녀와의 첫날밤을 보낼 줄 알았다.하지만 술 한 잔 마신 이도현은 갑자기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곧장 잠이 들었고, 다시 눈을 떠보니 차가운 황야에 버려져 있었다.강씨 가문에서는 그의 골수를 모조리 추출하고 척추도 대부분 도려낸 뒤, 그곳에 유기해 죽길 기다렸다.이도현이 거의 목숨을 잃어갈 때쯤, 고아한 풍채를 가진 노인이 저승문 앞에서 그를 구원했다.노인은 이도현에게 구렁이의 척추 일부를 이식해 주었으며, 덕분에 이도현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그 후 이도현은 노인을 스승으로 모셨고, 8년 뒤의 이도현은 이렇게 다시 태어났다.8년 동안, 이도현은 절세의 무학을 배우면서 완전히 환골탈태했고 의술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지난 8년간, 그는 한순간도 강씨 가문의 배은망덕한 행동과 악독한 그녀를 잊은 적 없었다.8년을 그는 오직 복수를 위해 실력을 갈고닦았
산에서 내려온 이도현은 복수를 서두르지 않았고, 먼저 완성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염국 완성, 그곳은 그의 집이 있는 곳이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그가 살해되고 3개월이 지난 후, 그의 부모님과 여동생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여기까지 생각한 이도풍의 두 눈에는 살기가 가득 찼다.그 살기는 하늘도 찌를 것 같았다. 그는 묻고 싶었다. 도대체 왜 그랬냐고!“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을 거야. 당신들에게 절망이 무엇인지 내가 똑똑히 가르쳐줄게.”이도현이 두 주먹을 불끈 쥐자, 몸에서는 무서운 힘이 솟아오르더니 옷이 나부끼기 시작했다.그러던 그때, 미묘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이도현은 힘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그는 옆좌석의 산뜻한 옷차림의 성숙한 여자를 발견했다.목덜미가 길고 눈처럼 흰 피부를 가진 여자는 정장 차림에 포니테일을 묶었는데, 언뜻 보기에도 몸매가 아주 좋았으며 왠지 커리어 우먼의 기운을 풍겼다.창백한 얼굴의 여자는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셔츠의 단추가 열려 풍만한 가슴 라인이 훤히 보였다.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이도현에게 도움을 청했다.“저... 저기요... 저 좀 도와주세요... 지금 필요해요......”“뭐라고요? 여기서요?”이도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8년간 산속에 있었더니, 그새 세상이 이렇게 자유롭게 변한 거야? 이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데 필요하다고?’이도현의 의아한 눈빛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요? 여기서요? 확실해요?”이도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 번이나 되물었다.‘확실하게 물어봐야지. 난 바른 청년이니까.’“빨리요. 더는 못 참아요.”“그러니까... 저기요... 근데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전 바른 청년이라고요! 그러면, 화장실이라도 갈까요? 화장실이면 조금 편하지 않을까요?”이때 여자는 또 발밑의 작은 가방을 가리켰다.“콘돔요?”이도현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안전 조치.이때, 비즈니스석 커튼 뒤에서
두 사람은 여인들이 놀라 피하는 와중에 성역으로 통하는 결계 앞에 도착했다.결계 바깥에는 거대한 석문이 서 있었고 문 앞에는 몇 채의 집이 늘어서 있었다. 집 안에서는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의 위압감에 사내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얼굴이 새파래져 있었다.“아버지... 여기... 여기가 성역으로 통하는 결계입니다! 이 집 안에 있는 강자들은 모두 성역의 주요 세력에서 파견된 수호자들입니다. 그들은 성역에 들어가려는 자들을 막는 자들이죠!”“말하자면 정말 흉악한 놈들이라니까요. 성역이 뭐 자기들 집 마당도 아닌데, 왜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죠? 정말 열 받아!”“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가 막혔는지 몰라요. 처음에는 그냥 돌아가라고 권고만 하지만 만약 듣지 않고 억지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저들은 가차 없이 처리해 버립니다!”“그래서 많은 고수가 성역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관문에서 목숨을 잃었죠!”“그러다 보니 점차 성역에 가려는 사람들도 줄어들었고요. 모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목숨을 내놓을 용기가 없는 거죠!”사내는 설명을 마치며 석문 양옆의 집들을 경계하는 눈치로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아버지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는 대진제국과 현천문에서 초대한 귀빈이시니 그들이 감히 막을 수 없을 거예요!”“아버지,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부자가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사내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더니 아첨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버지 라느니 우리 부자라느니 참으로 효성스러운 호칭이었지만, 이를 들은 이도현은 어이가 없어 치가 떨렸다.갑자기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들이 생기다니... 그 누구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멘붕이 올 게 뻔했다.그는 문지해가 최고로 뻔뻔한 줄 알았는데 이제야 세상에는 더한 놈들이 널렸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이 아들은... 정말 인정할 수가 없었다!“그만 하라니까요!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다시 ‘아버지’라고
“말해봐요...”이도현은 거의 울부짖듯이 내뱉었다.‘저놈이 결계를 열어줄 유일한 희망이 아니었으면, 당장 한 대 후려쳐서 저 자식을 골로 보냈을 텐데!’‘역겨워도 너무너무 역겨워!’“동생, 진정하게! 말할게, 이제 쑥스러움이고 뭐고 다 버리고 말할게! 사실은... 성역에 갈 때 나도 데려가 줄 수 있나?”“제발! 부탁하네! 난 평생 성역에 가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결계를 지키는 고수들을 이길 수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어”“동생이 초대로 받고 간다고 했으니 나를 데리고 가주게! 그렇게만 한다면 이제 내가 자네를 형님으로... 아니, 아버지로 모시겠네!”사내는 감동에 젖은 듯 눈물을 글썽이며 무릎까지 꿇을 기세였다.“그게 다 인가요...”이도현의 떨리는 입으로 물었다.“네! 이게 다입니다. 아버지! 부디 데려가 주십시오.”사내는 정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제 아예 ‘아버지’ 라고 부르고 있었다.“이 정도로 그냥 말을 하면 될걸. 뭘 사내가 처녀처럼 수줍어할 것까지 있나요? 아휴, 진짜!”“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요! 당신 같은 자식을 두었으면 진작에 목을 졸라 죽였을 테니까요! 사내가 되어서 쑥스러워하기나 하고. 나 참.”이도현은 정말 화가 날 대로 났다. 평생 남자한테 이렇게까지 열받아 보는 건 처음이었다.“알겠습니다, 아버지...”“닥치라고요!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내 주먹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이도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알겠네. 알겠네. 아버지라 부르지 않을 테니 화내지 마시오.”덩치 큰 사내는 아첨하듯 웃으며 그 표정은 효자라도 부끄러울 정도로 아부를 떨고 있었다.“됐어요! 나와 함께 성역에 가려면 지금 당장 결계로 길을 안내해요. 한마디만 더 하면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이도현은 미리 경고했다. 이 자식이 또 같은 짓을 반복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때는 진짜로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네, 아버지... 당장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쪽으로, 아버지...”결국 이도현이 ‘아버지’가 된 것은 기정
사내는 이도현의 말을 듣고 싸늘하던 눈빛이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더욱 뜨거워졌다.그 눈빛은 이도현이 옷을 벗은 연진이 선배를 바라볼 때보다도 더욱더 열정적이었고, 노골적인 소유욕이 담긴 시선은 이도현의 마음을 다시 한번 두렵게 만들었다.“형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이도현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아니, 동생! 자네 진짜 대진제국과 현천문에서 초대한 귀빈이야?”사내는 이도현을 안아줄 듯이 다가왔다.“형님, 침착하세요! 이상한 짓 하지 마시고요. 저 무술 할 줄 알아요...”이도현이 경고하며 말했다“이상한 짓이라니, 절대 아니야! 내가 동생한테 그럴 리가 있겠어? 대진제국과 현천문의 귀빈인데!”사내가 말했다.“정말 그런 거예요?”이도현은 사기를 당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그럼, 그렇고말고! 동생, 자네 진짜 대진제국의 귀빈이 맞아?”사내가 다시 확인했다.“그만 물어보시고, 성역으로 들어가는 결계를 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이도현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이렇게 큰 덩치의 사내가 어째서 이렇게 답답하게 구는지... 여자처럼 우물쭈물하기만 하고 전혀 시원스럽지 않았다.“알아! 내가 아니까 내가 데려다줄게!”사내는 극진한 친절함을 보였다.“그럼 정말 감사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도현이 깊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헤헤! 뭘 이 정도 가지고. 부탁이라고 할 것도 없어. 동생을 도와줄 수 있다면 내 영광이지!”사내는 아부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이도현은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분명히 속으로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그런데... 말이야 내 부탁 하나를 들어줬으면 해! 동생이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제발이야!”사내의 얼굴에는 더욱 아양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무슨 부탁인데요?”이도현은 입을 비쭉거렸다. 역시나 이런 전개가 나올 줄 알았다.“그... 그게... 말하기가 좀 쑥스럽네?”사내는 의외로 수줍어하기 시작했다.“아... 진짜...”사내가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자 이도현은 정말
매우 짜증이 나 있던 사내는 금기어라도 들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도현에게 물었다.“성역으로 가는 결계요.”이도현이 어리둥절한 채 말했다.‘성역이 뭐 금지구역도 아니고. 물어보면 어때서...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이도현이 속으로 투덜대고 있을 때, 그 사내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이도현의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상하좌우로 그를 샅샅이 살폈다.마치 신기한 동물을 보듯 눈빛에는 신기함, 놀라움과 불가사의가 가득했다.이도현은 사내의 시선에 말문이 막히고 당황스러웠다.‘젠장. 남자를 뭘 그렇게 신기하게 훑어보는지. 설령 여자였다 해도 이렇게 쳐다보면 안 되지. 설마 변태인 거 아냐?’이도현은 머릿속에 역겨운 장면들이 떠올라 점점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가까스로 참았다.“동생, 실례지만 한 가지 묻겠네. 자네는 성역의 어느 문파에서 선택받은 제자인가?”사내는 아주 열정적인 눈빛으로 이도현에게 물었다.특히 동생이라는 호칭을 아주 부드럽게 얘기했다.하지만 180cm의 건장한 체격에 근육이 가득한 사내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다른 남자를 동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말로 소름 돋는 일이었다.소심한 남자였다면 이미 이 말에 등골이 오싹했을 것이다.“아니에요.”이도현은 본능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그 사내와 거리를 두었다.그도 무서웠다.눈앞의 사내가 갑자기 안길까 봐 몹시 두려웠고 뽀뽀라도 당하면 이도현은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는 상상만 해도 역겨웠다.“아니라고? 그럼... 어느 왕조에서 부른 사람인가?”사내는 여전히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게다가 말하면서 계속 몸을 이도현 쪽으로 기울였다. 이도현은 마음속으로 움찔했다.“그것도 아니에요.”이도현이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그것도 아니라고? 그럼 혹시 성역에 있는 어느 강자의 제자인가?”사내는 체념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아니에요.”“그것도 아니야? 어느 큰 문파의 제자도 아니고, 어느 왕조에서 부른 사람도 아니고, 어느 강자의 제자도 아닌데
무도성은 오대준이 말한 대로 아주 오래된 성이었다. 누가 지은 것이고 언제 지어졌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마치 늘 이곳에 있은 듯했다.무도성은 대부분이 성역의 큰 세력에 의해 나누어져 있었고 동서남북 방향마다 강대한 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들은 무도성 안에 거대한 상업 타운을 만들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모두 이곳에서 등가의 물건으로 거래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것들은 이도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성역에만 관심을 가졌다. 만약 무도성 사람들이 그를 성역으로 무사히 들여보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도현은 검을 뽑아서라도 들어갈 생각이었다.그는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표묘신공을 써서 앞으로 나아갔다.세속계에서 표묘신공을 사용하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고무계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무계에는 무사들만 있고 심지어 하늘을 짧게나마 날 수 있는 강자도 있었다. 단지 이도현처럼 강한 사람이 없을 뿐이었다.약 두 시간 후, 이도현은 거대한 성벽 앞에 도착했다. 성벽은 수십 미터에 달할 정도로 웅장했고, 성문의 위쪽 중앙에는 ‘무도성'이라는 세 글자가 철화은구체로 쓰여 있었다.이 세 글자만으로도 사람에게 아주 강한 압박감을 주었다. 필체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흘러나왔으며 이는 확실히 높은 경지에 이른 고수가 남긴 흔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이게 바로 무도성인가 본데 역시 남다르군. 성문마저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다니. 이 세 글자의 필체를 보아하니... 회도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저 정도의 수준이 나올 수 없어.’이도현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성문 쪽으로 걸어갔다.성문 앞에는 보초가 없었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평범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무도성 안으로 들어가자 눈앞에는 온갖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고, 길 양쪽의 점포들도 매우 북적거렸다.만약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강한 내공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이도현은 자신이 세속계의 번화한 거리에 들어선 줄 알았
누가 문주가 됐든 다 형편없을 것이었다.“주인님, 분부하십시오. 제가 꼭 잘해내겠습니다.”오대준은 시름 놓고 재빨리 대답했다.“나는 성역으로 가려고 한다. 그곳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가는지, 그리고 가장 빠른 길이 무엇인지 아느냐?”이도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성역이요? 주인님, 성역에 가십니까?”오대준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성역으로 가는 길을 아느냐? 모르냐? 내가 왜 성역에 가려는지는 묻지 말고.”이도현의 차가운 말투에 오대준은 깜짝 놀라 바로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성역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그는 서둘러 아는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성역은 고무계와 독립된 공간입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곳의 크기는 고무계 전체보다도 크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전혀 다른 세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성역 안에는 영기가 차고 넘치며, 수련 자원도 풍부한 데다가 안에서 나온 사람은 하나같이 엄청난 실력을 지녔고 심지어 무도의 경지를 넘어선 자도 있다고 합니다.”“고금동서, 고무계의 모든 무사가 성역에 들어가려 애썼지만 성공한 자가 극히 드뭅니다. 오직 성역의 강자에게 선택당한 천재들, 혹은 특정 종파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내공이 어느 정도에 도달해 무도성을 통과하여 성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오대준은 숨 쉴 틈조차 없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도현은 단순히 성역의 위치만 물었을 뿐인데, 오대준은 성역의 특성과 입성 조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솔직히 말해서, 이도현은 짜증이 치솟아 오대현을 죽이고 싶었다.“무도성이 어디에 있는지나 말해. 성역에 들어가려면 꼭 무도성을 통과해야 하는 거냐?”이도현이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네. 그렇습니다. 현재로서는 성역으로 통하는 결계가 무도성에만 있습니다.”오대준이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럼 무도성은 어디에 있는데?”“성역 동남쪽에 큰 성이
“사람을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너에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줬건만 아직 귀령문도 통합하지 못한 거야? 그러고도 귀령문의 문주가 되겠다고? 참 우습구나. 네가 쓸모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지금 보니 아무 소용이 없구나.”오대준이 사람을 데리고 말 안 듣는 제자들을 처리하려고 할 때 귀령문 밖에서 경멸에 찬 목소리가 전해졌다.“누구냐? 어디 감히?”오대준이 분노하며 소리쳤다.하지만 들어오는 사람을 본 순간 그는 완전히 굳어버렸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급히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들어온 사람은 그에게 있어서 악마이자 악몽이었다. 그는 이 사람만 생각하면 깊은 두려움에 떨었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 사람에 대한 악몽을 꾸며 공포에 떨다가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그 사람은 바로 악마 같은 존재, 이도현이었다.그리고 지금은 그의 주인이자 그를 누르는 사람이기도 했다.“주... 주인님... 어... 어떻게 오셨습니까?”오대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내가 오면 안 돼? 전에 너를 살려뒀던 건 네가 어느 정도 쓸모 있을 줄 알아서였어. 그런데 참 쓸모없는 놈이구나.”이도현이 경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주... 주인님... 아닙니다... 저는 큰 노력을 들였고... 이미 귀령문의 절반 이상을 통합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모두 전임 문주의 측근입니다. 이 사람들의 내공이 괜찮아서 아직 죽이지 않고 설득해서 주인님께 효력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깊은 뜻을 헤아려 주십시오. 주인님.”오대준은 변명하면서 땅에 계속 머리를 부딪쳤다. 그야말로 겁쟁이가 따로 없었다.“흥. 그게 무능한 거지. 변명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이 정도 일도 못 하면서 귀령문의 문주가 되겠다고 하기는.”이도현이 비아냥거렸다.하지만 그는 단지 경멸할 뿐 귀령문의 일에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아... 아닙니다, 주인님. 제가... 제가 귀령문을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기회를 한 번만 더 주
오대준은 원래 종파를 통합해 귀령문을 다시 강대하게 만든 후 이도현의 통제에서 벗어나 제일 강력한 문주가 되길 바랐다.하지만 제자들이 그의 뜻에 전혀 따르지 않았다. 만약 그가 당시 이도현 앞에서 그렇게 비굴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무릎을 꿇고 싹싹 빌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지금 그와 함께 귀령문을 재건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때 오대준의 행동은 제자들을 너무 실망시켰다. 그는 살기 위해 개같이 구걸했고 귀령문의 존엄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이는 귀령문 모든 사람의 존엄을 짓밟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여 그 뒤로부터 귀령문 사람들은 오대준을 마음속 깊이 경멸했다.그들은 비겁하고 나약한 오대준을 문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문주 될 자격이 없었다.그들이 보기에는, 설령 귀령문이 이도현의 손에 의해 멸망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당당히 맞서 싸웠다면 조상들을 볼 면목 정도는 있었다.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귀령문이 멸망하는 게 나았다.현재 귀령문의 대리 문주인 오대준은 문주의 자리에 앉아 얼굴을 찌푸린 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이 사람들도 오대준과 같은 부류였다. 다들 죽는 것보다 비참하게 사는 게 낫고, 무엇보다 목숨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그들은 살아있어야 희망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죽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자기와 상관없기에 늘 존엄과 체면보다 목숨이 더 중요했다.오대준은 얼굴을 찌푸리며 아래쪽 사람들을 보고 차갑게 말했다.“저놈들이 아직도 말을 듣지 않는가?”“네, 문주님. 태도가 여전합니다. 뜻을 따르려 하지도 않고 문주님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한 제자가 말했다.“흥. 주제넘은 놈들. 내가 정말 저들을 죽이지 못할 것 같아? 이 정도 봐줬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만약 계속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저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말 거야.”오대준은 잔뜩 화난 얼굴로 이를 갈며 말했다.“문주님, 제 생각에는 진작에 저들을 처리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잘난 척하는 놈들입니
“뭐하시는 거예요? 선배들... 갑자기 왜 이러세요? 어서 일어나요...”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이도현은 재빨리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장문님, 잘 다녀오십시오.”윤선아 등 네 명이 동시에 말했다.“어...”이도현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선배들, 왜 이러세요? 제가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요. 저는 언제나 선배들의 막내 후배예요. 자꾸 이러시면 앞으로 선배들의 얼굴을 못 보겠어요.”이도현은 이렇게 격식 갖추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는 선배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심지어 그중 두 명이 그의 마누라였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앞에 무릎을 꿇으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후배, 지켜야 할 예법은 그래도 지켜야 해. 저 세 사람은 오늘 너에게 처음으로 절하는 거야. 이번 한 번만은 받아줘. 앞으로는 예전처럼 편하게 대할게. 우리 태허산은 원래 예법을 크게 차리지 않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하는 거야. 이번 한 번만 하고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윤선아가 말했다.“알겠어요. 어서 일어나요. 딱 이번 한 번만이에요. 다시는 이러지 마세요. 전 이런 예법이 너무 싫고 선배들이 저에게 무릎 꿇는 건 더더욱 싫어요. 어서 일어나요, 선배들.”이도현은 앞으로 나서서 선배들을 일일이 부축했다.그러고는 선배들의 아쉬운 눈빛을 받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기화영은 진작에 비행기를 준비해 두었고 이도현을 태허산 근처까지 데려다주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이도현은 태허산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고무계로 통하는 결계로 향했다.그는 능수능란하게 결계를 통과하여 고무계로 들어갔다.고무계도 낯설지 않았다. 지금 이도현이 위치한 곳이 바로 공작제국의 땅이었다. 지난번 자미각에서 다들 무사히 빠져나와 별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넷째 황자인 진정이 여섯째 선배를 잡아갈 줄이야.그리고 현천문의 젊은 문주를 죽이니 그 대가로 그의 여자를 잡아갔다. 큰 문벌에서 이런 치사하고 비열한 행동을 하다니, 정말 꼴불견이었다.제대로 된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니까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