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현은 이번 일을 통해 자신의 상황이 스승이 말한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그가 선택한 방법은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었으나 도리어 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이도현은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 번잡한 도시에서는 도저히 마음을 차분히 할 수 없었다. 그가 겁을 주어 놀란 아이와 그의 행동에 겁먹어 얼굴이 창백해진 여인을 보자 이도현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사라졌고 그가 멈춰서 보니 이미 자신이 산속 깊은 곳에 와 있었다. 산속을 헤매며 이도현의 마음은 서서히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자연의 고요함은 그에게 일종의 깨달음을 주었고 이전의 초조함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 순간 이도현은 무척이나 가벼워진 기분을 느꼈다. 마치 마음속에 큰 짐이 내려간 듯 편안함을 느꼈다. “자연! 무위! 평온함! 이게 바로 자연의 도법인가? 이게 바로 스승이 말한 마음의 경지인가? 자연에 가까워지고 자신을 놓아주는 것. 그렇지만 이 깊은 산속에 사람이 어디 있겠어! 어떻게 인간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깨달을 수 있다는 거지? 혹시 스승의 뜻이 내가 원시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거야? 젠장!”이도현은 마음을 차분히 하고 경지를 높이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스승이 말한 것과는 다른 것 같았다. 스승은 그에게 인간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깨달으라고 했지만 이 깊은 산속에는 귀신조차 없었다. ‘어떻게 사람 사는 모습을 깨달을 수 있을까? 설마 이 산속에서 야생 멧돼지와 교감하라는 건가?’“젠장... 신경 쓰지 말자. 며칠 더 여기서 지내보자!” 이도현은 투덜거렸다. 그리하여 이도현은 며칠 동안, 이 깊은 산속에서 동굴을 찾아 거처로 삼고 야생 생존을 해보기로 했다. 아침에는 일어나서 명상을 했다. 단순히 명상만 하고 수련은 하지 않았다. 명상이 끝나면 산속에서 사냥을 하고 요리하며 그 즐거움을 누렸다. 밤에는 동굴
산에서 내려온 이도현은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가 며칠 후 고월진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비교적 외진 마을로 주변에 있는 농촌들은 고월진까지 이삼십 리 떨어져 있었고 마을에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끌벅적한 편이었다. 주변 몇몇 마을 사람들은 생필품을 사러 이곳에 오고 집에서 재배한 농작물을 가져와 여기서 팔면서 돈을 벌었다. 마을은 작지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했다. 소규모 상인들과 노점상들이 활발하게 거래하고 있었고 이도현은 이곳이 자신에게 딱 맞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정말로 인생의 여러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며 물건을 팔고 값을 흥정하며 서로 욕설을 퍼붓는 모습도 보였다. 아이가 간식을 사달라고 떼쓰며 울면 부모가 혼내는 모습도 있었다. 또한 소매치기를 잡아 거리를 내달리며 쫓는 사람들, 노점 관리인이 노점상에게 자릿세를 받는 모습도 보였다. 두부를 파는 과부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이곳은 마치 작은 사회처럼 다양한 생활 모습이 담겨 있었고 대도시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을 본 이도현은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인생의 여러 모습을 느끼기에 이곳이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집을 구할 수 있을지 알아보았다. 여기서 머물기로 결심한 이상 당연히 먹고 잘 곳을 해결해야 했다. 그는 주머니에 돈이 많이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인생을 경험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으니 그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이 돈이 넘쳐나는 경우는 없으니까 말이다. 돈이 많다면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돈을 벌며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이도현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다가 점점 더 마음이 평온해지는것을 느꼈다. 그의 스승이 했던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진료받으러 온 게 아니었군! 젊은 청년이 큰 병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일자리를 찾고 있었구나. 그럼 앉아서 기다리게, 줄만 새치기 하지 않으면 돼.”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이도현은 미소 지었다. 어디에서나 줄을 새치기하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바로 그때, 방금 진료를 마친 한의사 노인이 이도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네가 여기서 일자리를 구하려고?”“네, 맞습니다. 저도 몇 년간 한의학을 배운 적이 있어서 여기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고 싶습니다.” 이도현이 웃으며 말했다.“한의학도 배웠다니, 참 잘됐군! 몇 년 동안 젊은 의사를 찾고 있었지만 적합한 사람이 없었어. 한의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은 필요 없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부담스러워서 말이지. 요즘 젊은이들은 한의학을 배우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지고 있고 우리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이 기술도 머지않아 사라질지 모른다니까! 너처럼 젊은 사람이 한의학을 배웠다니, 정말 드문 일이다!” 한의사는 칭찬하며 말했다.“과찬이십니다, 어르신. 저도 겨우 겉핥기식으로 배운 것뿐이라서요. 어르신 앞에서 감히 경솔하게 나서지는 못합니다.” 이도현이 겸손하게 말했다.그가 배운 의술을 아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도 욕부터 했을 것이다. ‘죽은 사람도 되살릴 정도의 실력을 두고 겨우 겉핥기식이라니,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하하하! 겸손하구먼. 한의학은 말이지, 서양 의학과는 다르게 시간이 필요하고 경험이 쌓이면 자연히 더 많은 걸 알게 되는 법이야. 한의학은 서양 의학처럼 기계로 병을 진단하지 않고 맥을 짚고 진단하는 방식이지. 한의학은 경맥, 기혈, 음양의 균형을 중시하고 몸속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하지만 서양 의학은 병의 원인을 외부의 세균 감염으로 보고 있지. 한마디로 서로 다른 도리가 있다고 해야겠지만 한의학을 미신이라고 하는 건 정말 어처구니없는 소리야. 한의학이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왔는데
“어르신, 문제를 내 주십시오!” 이도현은 허리를 굽혀 말했다. 그는 이 노인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화법이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하는 사람과는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좋아! 자네가 한의학을 몇 년 배웠다고 하니 저 환자의 증상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게나! 그리고 어떤 처방전을 내릴 건지 말해 보게!” 노인은 방금 진료한 여성을 가리키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제가 모자랄지 모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주세요!” 이도현은 겸손하게 말했다.“좋아, 좋아! 시작해!” 노인은 수염을 만지며 이도현의 겸손함에 만족한 듯했다.이도현은 여성의 맥을 짚는 척하며 행동을 시작했다. 사실 이도현의 현재 의술 실력으로는 이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도 없었다. 여성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 그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평범한 사람의 삶을 체험해 보고 싶었다.이도현은 여성의 맥을 짚고 몇 가지 질문을 하며 세심한 태도를 보였고 그의 진지한 모습에 노인은 더욱 만족했다. 이도현이 제대로 진단했는지는 둘째치고 그 태도만으로도 이미 한의사로서 훌륭한 자질을 보여주고 있었다.잠시 후, 이도현은 이제 다 됐다고 생각하고 일어나 말했다. “어르신, 진료를 마쳤습니다.”“좋아! 이제 자네가 진단한 병에 대해 처방전을 내리게나. 내가 한번 보겠네.”“알겠습니다!”이도현은 붓을 들어 평범한 처방전을 작성했다. 사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굳이 처방전을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는 이 여성이 앓고 있는 병은 은바늘 두 개만 있으면 해결될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 뛰어난 처방전을 써서 노인을 놀라기 하지 않기 위해 신중히 고민했다.심사숙고한 끝에 이도현은 아주 평범한 처방전을 작성해 두 손으로 노인에게 건넸다.노인은 처방전을 받아 수염을 만지며 살펴보다가 몇 가지 지적할 부분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도현의 처방전이 너무나도 완벽한
이도현은 이제 이곳의 직원이 되었다. 그는 일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거처 문제까지 해결되어 정말 좋았다.한의사 노인은 이도현을 앉히고 이도현이 작성한 처방전을 그 여성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선생이 준 처방전을 써보세요. 3일 동안 약을 먹으면 병이 나을 거예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선생님!” 여성의 말투는 다소 꺼림칙했다. 이도현이라는 풋내기 청년을 믿지 못한 듯했고 약도 여기서 받지 않았으니 처방전을 나가자마자 버릴 것 같았다....그 후 며칠 동안, 이도현은 한의원에서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직원이 되었다. 한의원의 주인이자 한의사 노인의 이름은 노문호로 집안 대대로 3대째 이어온 한의사였고 이 한의원도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노문호는 이 주변 마을에서 유명한 한의사였다. 평소 그곳에서 진료받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가 의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한의원의 약값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비해 약값이 훨씬 저렴하고 비싼 검사비도 없었으며 간단한 질병은 여기서 만원짜리 약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또한 돈이 없어서 당장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노문호는 외상을 허락했다. 치료를 먼저 받고 나중에 돈이 생기면 갚으라고 하며 다른 병원처럼 돈이 없으면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과는 달랐다. 병원에서는 돈이 없으면 바로 약이 끊기곤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노문호의 영제당을 찾았고 적은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물론 노문호가 치료할 수 없는 병이 있을 때는 병원에 가보거나 더 나은 의사를 찾아가 보라고 권하며 환자의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문호는 이곳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며칠동안 일을 해본 후, 이도현은 노문호의 인품과 의덕을 매우 높이 평가했고 이 작은 한의원에서 일하면서 그는 마음이 편안해졌고 아주 만족스러웠다. 매일 매일 바쁘게 보내지만 그는 충실함을 느꼈다. 병이 나아 기뻐하는 환자들, 이미 회복할 수 없는 병으로 슬픔에 잠긴 환자들,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치료
“이선생, 이 환자 무슨 일인가?” 노문호의 목소리를 듣고 이도현은 조용히 은바늘을 거두며 대답했다. “이 환자가 배가 몹시 아프다고 했습니다. 너무 아파서 걷지도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빨리! 내가 이 환자를 진찰해 볼 테니 이선생은 뜨거운 물을 준비해!”노문호는 서둘러 가방을 내려놓고 남자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기 시작했다. 짧은 진찰 후, 노문호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지더니 이도현을 보며 말했다. “이 환자의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 약물 치료로는 너무 느려서 반드시 은바늘을 사용해 신장을 뚫어줘야만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 그렇게 말하며 노문호는 급히 가방에서 바늘가방을 꺼내 펼쳤고 그 안에는 길이와 크기가 다양한 은바늘이 꽂혀 있었다. 이는 한의들이 흔히 은바늘을 보관하는 방법이었다. 대부분의 한의는 보통 사람들로서 이런 방법으로 은바늘을 휴대했고 이도현처럼 은바늘을 자신의 공간에 보관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게다가 이도현은 자신의 몸 여러 곳에 은바늘을 숨겨두고 있었다. 은바늘은 그에게 있어서 생명을 구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는 살인 무기도 되었기 때문이다. 노문호는 양손으로 각각 네 개의 은바늘을 잡고 이도현에게 환자를 침대에 엎드리게 도와달라고 한 후 빠르게 은바늘 여덟 개를 남자의 신장 부근의 혈에 찔러 넣었다. 이도현은 이 혈자리를 잘 알고 있었고 노문호의 이 방법이 좋긴 했지만 두 개의 은바늘을 다른 혈자리에 놓으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은바늘을 꽂은 후에도 환자의 고통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노문호는 서두르지 않고 계속해서 은바늘을 조절하고 특수하게 처리했다. 1~2분 정도가 지나고서야 노문호는 손을 멈췄다. “환자의 상태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해서 화침을 더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술을 가져올 테니 너는 환자를 움직이지 않도록 보고 있어라.”그렇게 말하고 노문호는 급히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노문호가 떠나자 이도현은 재빠르게 두 개의 은바늘을 꺼내 남자의 두
맥을 짚고 나서 노문호는 놀랐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약을 다 지어주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같은 표정이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이도현이 호기심에 물었다. “이상하군! 아까 내가 처음 이 사람의 맥을 짚었을 때 환자의 신경이 이미 사기로 완전히 침범된 상태였어. 그런데 방금 다시 맥을 짚어보니 그 사기가 많이 줄어들었어! 이 상태라면 7일 치 약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 같군! 정말 이상하네,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많이 나아진 거지!” 노문호는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뭐가 이상한가요, 선생님의 침술이 그만큼 좋으신 거죠!” 이도현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소리야,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말거라. 우리는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가가 아니야. 환자를 대할 때는 항상 신중해야 해. 확실한 것은 확실하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한다. 절대 대충 이 정도면 될 거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돼!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 한 가지 한 가지를 모두 신중하게 따져보고 생각한 후에 결정을 내려야 해. 절대 대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은바늘을 사용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은바늘은 작아 보여도 잘못된 자리에 침을 놓거나 깊이가 조금만 잘못돼도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앞으로 침술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이 점을 기억하거라. 꼭 명심해야 한다!” 노문호는 문제를 생각하며 이도현을 가르쳤다. 이도현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깨달음을 표현했다. 동시에 그는 노문호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다. 의술의 수준을 떠나 이렇게 신중한 태도를 가진 의사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싶었다. “아참, 이선생, 침술은 할 줄 아니?” 노문호가 갑자기 물었다. “저... 조금은 합니다. 다만 기초적인 정도입니다.” 이도현은 어떻게 대답할지 망설였다. “조금 할 줄 알면 됐다. 스승은 길을 가르쳐 줄 뿐 나머지는 스스로 익혀야 한다. 이런 것들은 스스로 연구하고
오늘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가 다녀갔다. 전부 농촌 사람들로 병도 다 보편적인 질병들이었다. 만약 초기에 치료를 받았다면 효과가 매우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농촌 사람들은 항상 그렇듯이 작은 병이나 통증은 스스로 견디다가 도저히 참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는데 그때쯤이면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그들은 큰 병원에 가지 않고 이렇게 작은 진료소에서 약을 조금 사서 먹고 통증만 사라지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치료가 되지 않는 병은 그냥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도현이 영제당에서 일한 지 반 달이 넘었지만 이런 상황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뭐랄까, 그는 이런 세상이 고통스럽다고 느꼈다.이 사람들의 삶을 보면 다시는 인간 세상에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몇 푼, 몇백 원, 이 돈은 이 사람들에게는 큰돈이다. 몇만 원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다.얼마 전에는 마흔도 되지 않은 한 남자가 찾아왔다. 평범한 농부로서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위에서 떨어진 시멘트 판에 다리가 으스러졌다. 공사 감독은 그의 실수라며 보상을 거부했고 그 남자는 병원에 가는 대신 작은 진료소 몇 곳에서 치료를 받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다리는 이미 썩어버렸고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감염되었다.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에 가족들은 영제당으로 그를 데리고 와 한의학으로 다리를 살릴 수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이 상태에서는 다리를 살릴 수 없었다. 아무리 이도현이라도 방법이 없었다. 치료할 수는 있지만 그 대가가 너무나도 컸고 몇 가지 약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확신이 없었기에 이도현은 섣불리 희망을 주지 않았다. 결국 노문호는 그에게 다리를 절단하고 생명을 구하라고 조언했지만 돌아온 것은 돌팔이 의사라는 말이었다.요즘 사람들은 한의학을 미신으로 취급하고 병을 치료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것으로 여긴다. 사실 병이 처음 나타났을 때 한의학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이도현은 형수가 차린 밥상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 문제라도 생길까 봐 다급하게 말했다.“형수, 저 먹고 왔어요! 번거롭게 차리지 않으셔도 돼요!”이도현은 말을 마치고 급히 노문호에게 눈길을 돌렸다.그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수유 중인 형수의 가슴이 너무도 풍만하여 이도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기세는 이도현이 침을 놓을 때보다 더 매서웠다.“노 선생, 그동안 잘 계셨나요? 집안에도 별일 없으시죠?”이도현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그럼요, 무탈합니다! 그저 한의원이 너무 바쁠 따름이죠. 게다가 도현 씨의 명성이 자자하여 한동안 많은 사람이 도현 씨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가 없다니까 그냥 돌아갔어요.”“그래도 우리 한의원이 이제 많이 유명해져서 예전보다 훨씬 바빠졌어요. 도현 씨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 늙은 몸이 곧 쓰러졌을 거예요.”“좋은 소식이네요. 이건 노 선생의 의술이 뛰어나기에 백성들이 다 믿고 맡긴다는 거잖아요.”이도현이 웃으며 대답했다.“에잇! 놀리지 말아요! 저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도현 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가서 좀 쉬다가 일하러 와요! 저는 계속 일해야 하니까 이만 가볼게요. 도현 씨가 돌아온 걸 축하할 겸 우리 저녁에 영식이네 집에 모여서 밥 먹어요!”“그... 괜찮을까요? 또 형수를 귀찮게 해야 하는데.”솔직히 말해서, 이도현은 형수 집에 가서 밥 먹고 싶지 않았다. 형수의 요리가 맛없는 것도 아니고, 꽃무늬 이불이 푹신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형수가 무서울 뿐이었다.“귀찮을 게 뭐 있어요. 도현 씨는 아이의 양아버지이고, 한집안 식구끼리 이런 말을 하면 섭섭하죠! 계속 그런 말을 하면 저희를 무시하는 거로 여길 거예요!”이도현이 거절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형수가 다급하게 말했다.이도현은 형수가 다급하게 그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고 더는 거절하지 못했다. 더 거절하면 그가 찔리는 것이 있어서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도현 씨, 현진
“이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내가 방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지. 이 젊은이는 부귀의 상이고 걸음걸이도 씩씩한 데다가 온몸에서 은은한 보라색 빛을 반짝이고 있어. 딱 봐도 부귀영화를 누릴 상이지, 절대 그렇게 소질 없는 사람이 아니야! 이제야 믿겠어? 내 말이 맞는다는 거!”제일 먼저 반응한 할아버지께서 나서서 이도현을 가리키며 듣기 좋은 단어만 골라서 칭찬했다.그러나 이도현은 계속 입을 삐죽거렸다. 바로 이 할아버지께서 조금 전까지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았는데, 지금에 와서 말을 바꾸다니 참으로 낯가죽이 두꺼운 사람이었다.“그러니까! 나도 그랬지. 이 젊은이는 딱 봐도 복이 있고 부귀한 사람이라고. 근데 너희는 귓등으로 듣기만 했어!”다른 사람도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이신의, 만나서 반갑네. 난 이춘식이야. 우리 같은 이씨로서 오백 년 전에 한 가족이었을 거야. 넌 정말 우리 이씨 가문에 큰 체면을 세워줬어!”“이신의, 난 김두만이라 하고 나의 외할아버지도 성이 이씨야. 우리도 한 집안이라고 볼 수 있어!”“이신의, 나도 이씨 성을 가진 외할아버지가 있는데, 자네와 똑같이 생겼어!”수염이 새하얗고 이가 싹 빠진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이도현은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연세가 이렇게 많으신 분이라면 이분의 외할아버지는 진작에 돌아가셨을 건데, 이렇게 나와 친한 척한다고! 자기 외할아버지더러 날 저승으로 데려가라는 거야 뭐야!’ “퉤! 뻔뻔스럽기는! 고아 주제에 어디 감히 외할아버지가 있다고 이신의와 친한 척하려고 해! 우리 어머니의 외할아버지야말로 이씨야!”뻔뻔한 사람이 또 한 명 나타났다.이도현은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이 어르신들이 너무 무서웠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할뿐더러 그럴듯하게 말하여 진짜인 줄 알았다. 이것도 모종의 경지라고 볼 수 있는 정도였다.이도현은 황급히 한의원 안으로 도망쳤고 그제야 고요함을 되찾았다.“도현 씨, 돌아왔군요! 하하하... 이 자식, 왜 이제야 돌아왔
이도현은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쭈뼛쭈뼛하게 내디딘 걸음을 도로 거두었다. 그는 성급 고수보다 눈앞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이도현이 자신이 이곳의 의사라고 설명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노영식이 한 할머니를 부축하면서 걸어 나왔다.“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만 떠드세요! 다 진료해드릴 테니까 새치기하지 말고 줄 서서 기다리세요.”“신의 양반, 우리가 진료 보는 데 방해하려고 떠들어댄 것이 아니라, 반반하게 생긴 도시 사람이 염치없이 새치기하려고 해! 규칙을 어기려고 해!”한 할아버지가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도현은 이 말을 듣고 얼굴색이 확 어두워졌다.‘이런! 내가 언제 염치없이 굴었어?’“새치기! 누가 새치기했어요?”노영식이 물었다.“이 사람이요!”“바로 저 젊은이예요. 도덕심이라고는 일도 없어요!”“맞아요! 염치가 전혀 없어요! 우리가 온 오전 줄을 서도 새치기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저 사람은 오자마자 새치기했어요. 그러고도 도시 사람이라고! 퉤!”또 한차례의 비난을 받은 이도현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그냥 들어가서 일하려는 것뿐인데,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잠깐 사이에 벌써 세 번이나 욕을 먹었어. 게다가 한의원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 설사 내가 진짜 진료받으러 왔다고 해도, 새치기하면 어때서? 한번 욕하면 그만이지, 끝없이 욕할 줄이야. 시골 사람이 제일 순박하다고 들었건만 왜 이 어르신들은 이렇게 다르지?’“이도현 씨... 돌아왔어요...”노영식은 이도현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기뻐하며 그에게 달려갔다.이도현은 손을 뻗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는 오늘 운이 안 좋았다.“언제 돌아온 거예요? 미리 전화하지 그랬어요. 저희가 알았으면 마중하러 가는 건데!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삼촌이 이도현 씨를 오랫동안 그렸어요... 그리고 저의 아내도 거의 매일 밤 이도현 씨 얘기를 했어요. 도현 씨가 돌아오기만 하면 아이의 양아버지로 모시겠다고!”노영식은 감
조금 거친 섬섬옥수로 능수능란하게 계산기를 눌렀는데 그런 진지한 모습이 여자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듯했다.그 여자는 다름 아닌 노영식의 아내, 이도현의 형수였다.한의원이 확실히 아주 바빠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낳은 지 몇 달도 안 되는 형수가 이렇게 나와서 일을 도울 리 없었다.그러나 형수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한 것을 보아하니 그녀가 이 일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긴 한의원에서 일하면 한 달에 오십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고 게다가 지금 월급이 올랐을지도 모른다. 이건 농촌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일자리였다.그리고 지금 부부가 모두 한의원에서 일하기에 한 달에 최소 백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무조건 농촌에서 고소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더군다나 부부가 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가정을 돌볼 수 있었다. 일도 지체하지 않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이 일자리는 그야말로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것 못지않았다.이도현은 이 부부가 하는 일이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잔뜩 받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질투에 눈이 멀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이 부부도 충분히 빡세게 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형수는 아이를 낳은 지 겨우 몇 달밖에 안 되는데 벌써 일하러 나왔다.백성들은 역시나 응석받이로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1년은 쉬었을 것이었다.물론 도시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좋으니 휴식을 많이 취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거 아니겠어?이도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의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겨우 두 발짝 걸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러 세웠다.“에잇! 거기! 앞에 총각! 너 뭐 하는 거야! 양심이 있다면 뒤에 가서 줄을 서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 서고 있는 게 안 보이냐? 빨리 가서 줄 서!”“맞아! 맞아! 뒤에 가서 줄 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을 서는 거 못 봤냐! 어디서 새치기야! 뒤에 가서 얌전히 줄 서! 참! 요
이도현은 이 가족의 감사 인사를 마다하고는 남자에게 앞으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앙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어떤 일이든 도가 지나치면 본연의 가치를 잃기도 하는데 좋은 마음에서 출발한 일도 나쁜 일로 만들 수 있었다.특히 이번 일처럼, 만일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은 신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것이었다.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남자는 사람을 불러 아내와 아이를 들것에 싣고 산에서 내려왔다. 떠날 때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절의 스님을 쳐다보았다.그 표정은 마치 앞으로는 이곳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고, 돈을 어디에 쓰든 절대 너희 같은 양심 없는 가짜 스님에게 바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이도현도 떠나갔다. 그는 재물을 탐내고 하마터면 사람까지 죽일 뻔한 이곳에 1분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머무르다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질까 두려웠다.물론 그는 아무것도 폭로하지 않았다. 마치 하늘과 땅에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도리를 이루었다.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만약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 세상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었다.만물이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도리가 있는 법이고, 하물며 나쁜 사람은 그들보다 한층 더 나쁜 사람에게 응징받을 것이기에 이도현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이도현이 보기에는 이 스님들이 구제 불능한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어젯밤 이도현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임산부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스님이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결국은 여자의 남편이 너무 미신을 믿어서 출산을 앞둔 아내를 데리고 부처님께 예배드리러 왔다가 이런 일이 생겼던 것이었다.누가 옳은지 그른지, 또 누구의 책임인지 분명히 따질 수 없었다. 다행
이게 그들이 말한 보호란 말인가! 보호해 준다고 해놓고, 아내는 이 절에서 죽을 뻔했다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남자는 정말 후회스러웠다. 과거의 자신이 그저 미련한 바보 같았다. 자신의 월급 절반을 절에 바치고 돈을 그렇게 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막 정신을 차린 여자가 배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여보. 나 배가 너무 아파. 아마 곧 낳을 것 같아. 여보 나 좀 살려줘.” 이도현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휴. 하느님! 당신이 나를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의술은 자신 있지만, 출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남자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사라곤 그 혼자뿐이었다.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이 일은 그의 몫이었다. “세상에 대체 어떻게 이 타이밍에 애를 낳겠다는 거야? 조금만 더 참아서 내일 병원에서 낳으면 안 되나? 이 시점에서 출산이라니,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 아니야?” 이도현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단순한 치료가 아니다. 그는 해본 적도 없는 출산을 도와야 했다. “신의여! 제발 제 아내를 구해주세요! 그녀가 곧 아이를 낳아요!” 남자는 이도현 앞에 달려와 애원했다. “어서 뜨거운 물을 다시 준비해라. 정말 너희 집안에 큰 빚을 져서 갚는 것 같은 기분이다! 너는 남고 나머지는 다 나가라!” 이도현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네.”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급히 방을 나갔고, 겁먹은 동생만 남았다. “뭐 하려고 멀뚱히 서 있어! 얼른 산모의 바지를 내려! 안 내리면 입으로 애를 낳게 하려는 거야? 아이고! 너도 여자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냐?” 이도현은 짜증을 내며 그녀를 나무랐다. 당황한 여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언니의 바지를 내렸다.그 후 이도현의 지시에 따라 침대 시트로 여인의 하체를 가렸다. 그는 여인에게 침을 놓으며 기를 돌게 했다. 정신없이 손을 움직인 지 약 30분
어떤 것들은 정말 믿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한 이도현은 지금은 깊이 믿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행히 이도현은 얼마 전 주씨의 아내와 그의 장인과 관련된 일을 겪고 나서, 미리 대비해 몇 가지 부적을 더 준비해 두었다. 음양탑에 보관해 두면 급하게 필요할 때 주사와 황지를 찾아다녀야 했다. 주사는 약국이나 특수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집에 비축해 둘 법한 물건이다. 그러니 대비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지금처럼 바로 쓸 수 있게 말이다. 이도현은 임산부의 동생을 돌려세우고 그녀를 방에서 잠시 나가게 한 후, 황색 부적 한 장을 꺼내 임산부의 몸에 대고 몇 번 그리며 주문을 중얼거렸다. 임산부의 기운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비로소 멈췄다. 이 과정을 거친 그는 상당히 지쳤다. 몇십 분 동안 정신과 체력이 크게 소모되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제 언니는 어떤가요? 왜 아직 깨어나지 않는 거죠?” 여동생은 이도현의 치료가 끝나자 조급히 물었다. “나는 의사이지, 신선이 아니야.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는 법이야. 가서 그녀의 남편을 불러 몸을 따뜻한 물로 닦아 주게 해.” 이도현은 피곤한 얼굴로 답했다. 그의 의술은 뛰어났지만, 이 여인의 상태는 이미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억지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고, 마치 염라대왕과 생명을 놓고 다투는 것과 같았다. 만약 그렇게 빨리 효과가 난다면, 그는 진정 신선이 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여동생은 무언가 할 말이 있었지만, 방금 이도현이 보인 위엄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고 언니의 남편을 불러왔다. 두 사람은 이도현의 지시에 따라 여인의 몸을 따뜻한 물로 닦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 덕분에 여인의 미약했던 숨소리가 점차 강해지더니, 마침내 여인이 신음하며 눈을 떴다. “살았다! 내 아내가 살아났어. 그녀가 죽지 않았어.” 남자의 격한 말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
곧 이도현의 차가운 시선이 절 안의 스님들에게 향했다. 그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람을 살리는 동안 방해라도 한다면, 즉시 지옥으로 보내주겠다!”“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너희들이 듣든 말든 상관없지만, 감히 방해하려 한다면, 그 순간 너희의 마지막이 될 거다!”이도현은 말을 마치며 손을 휘저어 은침 하나를 던졌다. 은침은 대전 앞에 서 있는 돌사자를 명중했다.쿵!큰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사자가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이 광경을 본 절의 스님들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까지 하고 있던 생각들은 한순간에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마치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뒤로 물러섰다.이 정도로 강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작은 침 하나를 사용했을 뿐인데 돌사자가 산산이 부서져 버리다니, 이게 그들의 몸에 닿기라도 한다면 무사할 리 없었다.아무리 그들이 뚱뚱하다 해도 이런 강한 힘을 버틸 수는 없었다.“뭘 멍하니 서 있느냐! 빨리 방을 찾아서 이 사람을 안으로 옮겨!” 이도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이도현의 위압적인 분위기 아래, 스님 몇 명이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한 여인을 한 방으로 옮겨놓았다.“모두 나가라! 그리고 따뜻한 물을 준비해라. 내 허락 없이 누구도 들어오면 안 돼!”“너는 따라 들어와라!” 이도현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한 여인을 가리켰다. 아마도 이 부부의 친척일 터였다.“저요?” 여인은 자신을 가리키며 놀란 듯 물었다.“들어와!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따라 해! 산모와 어떤 사이냐?” 이도현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녀는 제 언니예요.”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방금 돌사자를 산산조각 내는 이도현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몸을 떨고 있었다.대답을 들은 이도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여인을 한 번 더 보고, 남편을 보며 더욱 할 말을 잃었다.아내가 이 지경인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아내와 처제를 데리고 산속으로 오다니, 대체
“스님. 제 아내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심장이 뛰고 있어요! 제발 그녀를 살려주세요...”남자는 거의 무너질 듯한 목소리로 떨며 외쳤다.보아하니, 아내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이런 스님들을 믿는 걸까? 그리고 아내가 이렇게 배가 부른데, 병원이 아닌 이 산으로 온 이유는 뭘까?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낳으면서 병원에 안 가는 경우가 있을까? 산간 마을이라고 해도 최소한 마을 의사나 경험 많은 산파나 어르신을 부르기라도 할 것이다.이 남자는 참으로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아내를 데리고 이 깊은 산속에 와서 아이를 낳으려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아미타불! 시주님, 이 여 시주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음을 편히 하세요. 이번 생의 죄업은 이미 갚았고, 업보도 끝났으니, 다음 생엔 반드시 큰 부귀와 건강을 누릴 것입니다!”“시주님, 이제 길을 비켜주세요. 이 썩은 껍데기를 태워버리게 해주세요. 아미타불, 꽃이 피고 지고, 사람이 나고 죽고,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생로병사는 모두 정해진 법입니다. 이 모두가 전생의 업이고 현세의 결과입니다. 시주님, 왜 그리 집착하십니까?”스님은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고선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이를 본 이도현은 속이 끓어올랐다. 대체 이게 무슨 허튼소리인가.스님의 신호를 받고, 젊고 힘센 스님 몇 명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남자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여인을 다른 곳으로 옮겨 불태우려는 참이었다.이쯤 되자, 이도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이건 두 생명이 달린 일인데, 이렇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멈춰!” 이도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단번에 여인을 태우려는 스님들을 발로 차며 막아섰다.“뭐 하는 거에요!” 여인을 태우려던 스님이 분노하며 소리쳤다.“뭐 하는 거냐고? 사람을 구하려는 거지. 저 여인은 아직 죽지 않았는데도 네가 사람을 태우려 하니, 정말 출가한 사람 맞는 거냐? 출가한 자는 자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