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윤아는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해할 수 있어요.”권재민은 비록 걱정되었지만 재아에게 티를 낼 수 없었다.“그래, 다행이네.”권재아는 침묵했다.“너도 엄마와 윤아의 사이가 좋아질 방법을 찾아봐. 아무튼 난 지금 윤아를 인정해. 하지만 엄마는 너무 까다로운 사람이라 나도 방법이 없어.”재민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알았어요. 일단 끊을게요.”전화를 끊은 뒤, 재민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그는 도저히 고부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차라리 퇴근하고 윤아와 상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집에 들어서자 윤아는 거실에서 재민을 기다리고 있었다.“왜 방에서 기다리지 않고 거실에 나와 있어요?”윤아는 뚱뚱한 배를 부여잡고 거실을 왔다 갔다 걸어 다니다가 재민이 들어오자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했다.“그럼 난 당신의 말대로 방에 갇혀 있어야 해요? 의사 선생님도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어요. 밖에 바람이 너무 세 집에서 산책하는 거예요.”“운동을 해야 하지만 너무 많이 하지 말아요. 힘들까 봐 걱정돼요.”재민은 윤아를 소파로 조심스레 부축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돌아온 거예요?”평소 재민은 도우미가 밥을 거의 다 지을 때가 되어야 돌아온다.그때 재민이 윤아의 곁에 앉았다.“일찍 돌아와서 당신과 상의할 일이 있어요.”윤아는 빨리 말하라고 눈썹을 치켜올렸다.“엄마가 또 입원했어요.”윤아는 순간 깜짝 놀라 다급히 물었다.“어머님이 또 어디가 아프신 거예요? 퇴원한 지 며칠 안 됐잖아요?”재민은 부드럽게 웃으며 윤아의 손을 잡았다.“걱정할 필요 없어요. 엄마를 잘 쉬게 하려고 누나가 병원으로 보낸 거예요.”윤아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그래서 당신에게 엄마와의 관계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으려고…….”재민은 도저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일은 강요하면 안 되기에 단지 윤아의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를 바랐다.“재민 씨.”윤아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나도 알아요. 내가 방법
최근에 윤기태한테 들었는데, 권재민이 일이 매우 힘들다고 한다. 요즘 명한 그룹과 프로젝트를 얘기하느라 바쁘다고 했다.재민은 업무상의 일에 대해 강윤아에게 거리낌이 없다.“맞아요.”최근 태성 그룹과 명한 그룹에서 큰 프로젝트를 협의하고 있다.명한 그룹은 국내에서도 꽤 유명한 그룹이고 경영 범위도 넓지만, 태성보다는 좀 떨어진다.다만 최근 명한 그룹이 경성에 지사를 차릴 의향이 있는 것 같고, 재민은 명한 그룹의 능력을 보고 이 프로젝트를 잘 따내려고 했다.“그럼, 일 잘하고 배고프면 말해요. 내가 밥 갖다 줄게요.”윤아는 재민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알았어요.”재민은 윤아에게 키스하고 바로 회사로 가서 일을 처리했다.이날은 권씨 가문의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다.재민은 원래 윤아를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윤아가 그날 몸이 좋지 않기도 했고 김소혜가 윤아를 괴롭힐까 봐 걱정 돼 집에 있게 했다.사실 재민은 가족 모임에 가든 말든 상관없었다. 다만 최근에 집에 이런 난장판이 생겼으니 반드시 나서서 일이 자신의 통제 가능한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았던 권건하도 가족 모임 때문에 돌아왔다.건하가 거실로 들어왔을 때 소혜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녀는 이제 이 남자의 정체를 똑똑히 본 셈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하지만 살아가야 하니 소혜도 너무 어색해하고 싶지 않았다.“아버지.”건하가 권승호에게 인사를 했다.승호는 아들이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 언짢아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래.”소혜는 권재아를 데리고 옆에서 웃고 떠들면서 한편으로는 어색함을 달래고 다른 한편으로는 건하에게 그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려 했다.건하는 사실 여자가 남편을 하늘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남성주의적인 면이 있다.소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건하와 결혼했으니 참을 수 있는 한 참고 있었다. 게다가 권씨 집안의 사람들도 그녀를 박하게 대해주지 않았고,
비즈니스계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인데, 권건하가 어떻게 권재민의 뜻을 모를 수 있겠는가.다만 지금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건하에게는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을 것이다.재민의 미움을 샀으니 앞으로 재민이 자신을 겨냥하지 않도록 지금 건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재민에 대항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그리고 그 인재가 바로 권현우였다.하지만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 겉으로는 건하는 재민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재민아, 그동안 누가 너를 데리고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는지 잊었어?”건하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재민이 이렇게 주저 없이 김소혜를 선택했으니 그는 체면이 깎인 것 같았다.“아버지가 사생아를 데려오기로 했을 때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어요?”누가 자기 아버지가 다른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 싶어 하겠는가, 재민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비록 그는 하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지만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건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이 일은 확실히 그가 잘못 한 것이지만 그는 줄곧 이 문제를 마주 하고 싶지 않았다.“됐어, 내가 너희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어쨌든 미리 말해 두지만 난 너희가 허락하든 말든 현우와 연아를 반드시 데리고 올 거야.”건하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소혜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건하가 이렇게까지 집착할 줄은 몰랐고, 순간적으로 의기소침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그만해!”계속 말을 하지 않던 권승호는 그들의 대화를 차갑게 끊고, 시선을 몇 사람의 몸을 스치다가 마침내 잠잠한 목소리로 물었다.“말 다 했어?”“아버지, 전 제안을 하나 했을 뿐이에요. 현우는 명한 그룹과 그렇게 사이가 좋으니 그것을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 우리가 왜 더 어려운 방식을 채택해야 하는 거죠?”건하는 마치 정말로 회사를 위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진실한 표정을 지었다.애석하게도 승호는 건하의 이런 소심한 마음을
한편, 권재민과 김소혜 쪽의 분위기도 그다지 화기애애해 보이지 않았다.“엄마, 엄마도 알다시피 내 마음속엔 윤아 하나밖에 없어요.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재민은 심각한 얼굴로 소혜에게 말했다.방금 건하가 현우와 명한 그룹 아가씨의 관계가 아주 좋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소혜는 기분이 좀 좋지 않았다. 승호의 결정은 비교적 만족스럽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약간의 응어리가 있었다.건하의 사생아는 명문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만, 재민은 신분이 불분명한 여자와만 같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소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마음도 썩 달갑지 않았다.“그 자식 좀 봐, 사생아일 뿐인데 다른 그룹 따님과 잘 지낼 수 있잖아. 그런데 넌? 강윤아를 만난 이후로 다른 여자에게 좋은 표정 한 번 안 주고 있어. 소문이라도 나면 어쩔래?”소혜는 불만스러운 투로 말했다.윤아가 어떤 노력을 했든 지금 소혜의 마음속에는 그녀가 자기 아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항상 느끼고 있다.재민처럼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어떻게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얻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윤아는 재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엄마…….”재민은 참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린 채 소혜의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어쨌든 윤아는 그가 사랑하는 여자인데, 그녀 어떻게 윤아에 대한 어머니의 험담을 기꺼이 들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소혜는 현우에게 정말 자극을 받았는지 평소에권재민의 기분을 고려해 보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혼자만 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했다.“재민아, 말해봐, 도대체 그 강윤아가 뭐가 좋은 거야? 네가 찾고 싶다면 그녀보다 조건이 좋은 여자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그 여자만 고집해?”소혜가 계속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재민은 결국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한테 이런 얘기만 하고 싶은 거면 나 먼저 가볼게요.”소혜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고집부리고 있는 재민을 쏘아보았고, 어이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권재민은 어리둥절했다. 강윤아가 이렇게 빨리 알아맞힐 줄은 몰랐고, 순간 숨길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맞아요.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가 당신을 받아들이게 해줄 거예요.”재민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는 윤아가 그들의 집에서 너무 많은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고, 지금의 상황은 결국 그가 바꿀 것이라 마음먹었다.윤아는 재민의 진지한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나도 알아요, 그리고 나도 억울하지 않아요. 원래 남의 눈을 신경 안 쓰니 재민 씨만 신경 쓰면 돼요.”그러자 윤아는 재민의 품에 기대어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재민은 윤아가 자신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것을 보고 나쁜 기분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는 손을 들어 윤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또 한 번 감탄했다.하늘에 감사했다…… 윤아를 자기에게 보낸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였을 것이다.비록 그의 인생은 대부분 순풍에 돛을 달고 살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그것을 행운으로 여기지 않았다…….“당신이 억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재민이 나직이 말했다.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윤아를 매료시켰고 지금도 마찬가지다.윤아는 활짝 웃으며 재민의 어깨에 얼굴을 문질렀다.“알아요, 제가 재민 씨한테 말하고 싶은 건, 난 억울하지 않다는 거예요. 재민 씨 마음을 난 느낄 수 있거든요.”재민은 입술을 감빨았다. 마음은 따뜻했지만, 여전히 그렇게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그가 왜 윤아의 위로가 필요하겠는가?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윤아의 믿음이다.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 껴안고 잠자리에 들었고, 또 하나의 평온한 밤이었다.그러나 다른 한쪽은 그리 평화로워 보이지 않았다.현우 쪽에서는 어떻게 하면 빨리 권씨 가문에 들어가 권씨 가문의 주식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최근 권건하는 자주 집에 조연아를 찾아온다.건하의 마음속에는 소혜보다 조연아에 대한 애정이 더 깊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그렇게 되면 스스로 노력해 뭔가 좀 해내야 했다. 능력 있는
권씨 가문의 모든 하인은 눈앞의 이 사모님이 도련님의 지위보다 더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권재민의 마음속에서 강윤아의 지위는 은찬이보다 훨씬 높았다.윤아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집사님께 폐를 끼치기 싫어요. 이 물건은 제가 직접 사고 싶어서 그러니 안심하세요. 의사가 저에게 더 많이 돌아다니라고 했고 오늘 날씨가 꽤 좋아요.”윤아도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집에만 있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네, 그럼 기사님을 불러 모시겠습니다.”윤아가 마음을 굳히자 집사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요.”윤아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마당으로 나가 운전사가 차를 몰고 오기를 기다렸다.윤아는 차에 오른 후 집을 떠났다.집사는 윤아가 떠나는 것을 보고 즉시 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대표님, 작은 사모님이 나갔습니다.”재민은 얼굴을 찡그렸다.“나가서 뭐 하는 데?”집사가 대답했다.“물건을 사러 나간다고 했어요.”재민은 약간 언짢은 듯 책상을 두드리며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이런 일은 하인을 불러서 하면 되지 않아?”집사는 조금 난처했다.“대표님, 작은 사모님께서 직접 가시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어요.”“그래, 알았어.”재민도 집사가 꼼꼼한 사람이라 윤아를 괴롭힐 정도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 사람을 보내서 따라가게 하고, 절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네.”누군가 윤아를 따라간다고 생각해도 별일 없을 것 같다.이제 송해나라는 큰 걱정거리도 없어졌으니 말이다.한편, 재민의 집을 엿보고 있던 사람은 윤아가 집에서 혼자 나가는 것을 보고 황급히 전화를 걸어 권현우에게 보고했다.현우는 지금 집에서 느긋하게 영화를 보고 있었다.“정말?”현우는 영화를 잠시 멈추고 물었다.“이번에 텀블러나 뭐 챙긴 거 없었어?”지난번에 윤아가 나갔을 때 회사에 가서 재민에게 밥을 가져다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지키던 사람이 윤아가 나갔다고 하자, 현우는 얼른 하던 일을 내려놓고 서둘러 갔는데 결국, 태성 그
강윤아는 권재민의 사이즈를 종업원에게 알려주었고 종업원은 강윤아가 원하는 옷을 가지러 갔다.윤아는 카운터로 가서 돈을 내고 계산원에게 카드를 건네주었다.“아가씨, 포장 다 했어요.”종업원이 정성스럽게 포장한 옷을 윤아에게 건넸다.윤아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방금 산 아기 옷을 들려던 순간, 그 봉지들이 옆으로 넘어졌다.윤아는 눈을 들어 봉지를 넘어뜨린 장본인을 쳐다보았다.권현우는 황급히 말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녜요. 제가 주워드릴게요.”현우는 얼른 쭈그리고 앉아 윤아를 대신하여 봉지를 잡았다.일부러 그런 게 아닐 것 같아서 윤아는 그 사람 혼자 줍게 놔두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천천히 쭈그리고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윤아는 봉지를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 현우도 마침 그 봉지에 손을 뻗었고, 두 손이 닿았을 때 현우는 윤아의 손을 슬쩍 만졌다.윤아는 황급히 손을 움츠리며 화가 난 어투로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현우는 일부러 윤아의 손을 만지려 했지만, 그래도 억울한 척하며 윤아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말했다.“뭐가요? 봉지를 주워주려는 거잖아요.”현우는 말을 하면서 이미 가까이에 놓인 봉투 몇 개를 집어 들었다.윤아는 현우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자신이 너무 예민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우가 위험한 사람인 것 같아 윤아는 그가 들고 있던 봉지를 빼앗으며 말했다.“내가 할게요, 고마워요.”현우는 윤아의 거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 물건을 건네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아이고, 그냥 손만 거들면 되는 건데, 형수님이 필요하시면 도와달라고 해도 괜찮네요.”강윤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당신을 몰라요. 당신 형수도 아니예요.”“형수님,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어쨌든 나도 권 씨 가족인데요.”현우는 윤아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겉으로는 신사다운 모습을 보였다.윤아는 주먹을 쥐고 불만스러운 듯 그를 쳐다보며 순간적으
집에 돌아왔을 때, 강윤아는 권재민이 이미 집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의아해하며 재민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재민 씨, 오늘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요?”재민은 그녀의 배를 의식적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왜 혼자 장 보러 나가요. 그런 일은 하인에게 맡기면 되잖아요. 윤아 씨는 아직 임신 중이니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요?”윤아는 재민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거예요? 잠깐 나갔을 뿐인데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요.”윤아의 말에 재민은 고개를 저으며 속삭였다.“윤아 씨가 그냥 어린애였다면 걱정하지 않아요.”윤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밀어 재민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그럼 다음에 같이 나갈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러면 걱정 안 하겠죠?”권재민은 그녀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허리를 감싸 안았다.“음, 그럼 내가 잘 지켜줄 거예요.”밖에서 현우와 마주친 일에 대해 윤아는 재민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일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재민이 또 이렇게 많은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윤아는 정말 짜증 났지만, 지금 집에 와서 재민을 보니 모든 나쁜 기분도 다 사라졌다.한편, 권재아는 최근 한 친구가 국내에 놀러 온다고 재아에게 연락해서 마중나오라 오라고 했다.오랜 친구였으니, 재아도 두말없이 승낙했다.“좋아, 케이티, 너 내일 오후에 도착하지? 내가 꼭 제시간에 데리러 갈게.”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김소혜가 물었다.“뭐야? 너 내일 나갈 거야?”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친구 한 명이 귀국해서 함께 놀자고 해요. 그래서 내일 데리러 가겠다고 했어요.”소혜도 크게 개의치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케이티와 함께 밖에서 식사를 마친 재아는 케이티를 데리고 권씨 가문으로 데려가려 했다.마침 소혜도 집에 있었는데, 재아가 케이티를 데려오는 걸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예쁘게 생긴 케이티는 보기만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