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철은 권건하의 거절을 듣자 권재민을 향해 비꼬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아까는 자기 입으로 뭐든 보상해줄 수 있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달라고 하니 못 주겠다고? 뱉은 말도 이행하지 못하다니. 권씨 집안 사람들한테 신용은 이렇게 가치가 없는 건 줄 몰랐네요. 말을 꺼내고 후회한다 한마디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디 불편해서 살겠습니까?” 송승철은 끝질기게 비아냥댔다. 송승철의 말에 재민의 눈빛은 점점 싸늘해졌다. 그렇게 연기를 해댄 목적이 사실 이거라는 게 참으로 가소롭고 어이없었다. 권건하와 김소혜도 송승철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백제 그룹 같은 대기업에서 신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거다. 그런데 송승철이 사람들 앞에서 권씨 집안 사람들을 모두 신용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이건 앞으로의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하지만 재민은 오히려 송승철과 남윤정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걸 빼앗으려고 이런 일까지 벌이다니. 두 사람이 말한 것들 중 어느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게 없다. 심지어 그중 하나라도 송씨 가문에 넘기면 두 집안의 세력에까지 영향 줄 수 있다. 그런데 그걸 한꺼번에 요구하다니 사람 용심은 참 끝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재민은 얼른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제가 어디 한번 하나하나 짚어드릴까요? 진실이 대체 어떤지 두 분도 알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진실은 묻으려고 한다니 하나하나 수면위로 끄집어내야 겠네요.”재민은 잠깐 숨을 돌린 뒤 말을 이었다. “전 처음부터 끝까지 이번 결혼에 동의할 생각 없었어요.” 재민은 송승철과 남윤정을 향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저 처음부터 지금까지 두 분의 딸한테 마음 한번 줘본 적 없어요! 그리고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저희 할아버지께서 저더러 기어코 두 분의 딸과 결혼하라고 해서 할아버지 체면을 봐서 잠깐 동의한 척 한 거지. 그러지 않으면 동의했을 리 없어요.”
송씨네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자 해나가 얼른 물었다.“아버지, 그 일은 어떻게 됐어요?”해나의 아버지는 답답했다. 그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어떻게 되긴, 재민은 상대하기 쉽지 않다.”해나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아버지, 적어도 재민 쪽에서 약간의 보상을 주겠다고 했으니 일단 받으세요. 그쪽도 뭔가 잃는 게 있어야죠.”말을 마친 해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앞으로 그에게 하나하나 다 받아낼 것입니다.”송 사모님은 다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해나를 보면서 이 일이 그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워했다.“해나야, 바보 같은 일을 하지 마.”해나는 잠시 침묵한 뒤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엄마, 안심하세요. 아직 복수는 시작도 하지 않았어요. 허튼짓은 당연히 없어야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게 만들려면.”이 결혼은 해프닝처럼 지나갔다.그리고 재민도 일부 주식을 송씨 집안에 증여하였다. 이에 따라 재민은 재정적 손실을 보게 되었다.그리고 이 소식을 알게 된 강윤아는 재민에게 미안했다. 그녀는 지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재민의 앞에 앉아 있다.“재민 씨, 미안해요. 이 일로 그렇게 큰 손해를 볼 줄은 몰랐어요.”윤아는 앞에 있는 재민을 보고 말했다.재민은 윤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그까짓 돈, 없어도 그만이에요. 당신만 있다면 다 내줄 수도 있어요.”윤아는 재민의 달콤한 말에 감동의 물결에 휩싸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재민은 윤아의 이런 모습을 본 뒤 연약해졌다. 곧장 일어나 윤아를 끌어안았다.그리고 재민은 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예뻐요.”윤아가 너무 예뻤다. 평생 지켜주고 싶을 만큼. 윤아가 없는 미래는 그려지지도 않았다.그 말을 들은 윤아는 쑥스러운 듯 얼굴이 더 빨개지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방 안의 분위기가 몽글몽글해났다.짧은 입 맞춤을 끝내고 재민이 윤아
권은우가 성공적으로 따낸 프로젝트들은 권승호의 귀에도 전해졌다.권재민도 이번 가족 회식에 참석했다.연회석.권승호가 입을 열었다.“은우야.”은우는 열심히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어 승호를 바라보았다. 눈에 약간의 의심이 서렸다.승호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최근에 몇 개의 프로젝트를 따냈다지?”은우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습니다.”승호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잘했어, 성장했네. 능력도 많이 늘었고, 아주 좋아.”승호의 눈에는 권재민의 능력이 워낙 강했기에 은우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은우의 행동을 보면 꽤 쓸 만한 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은우가 가족 모임에서 승호에게 이렇게 칭찬받은 적이 있었나? 그의 얼굴에 뿌듯함이 보였다.“그럼 HY기술 회사를 네가 관리하는 게 어떻겠냐.”승호는 산뜻한 태도로 말했다. 은우가 좋은 성과를 가져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이 말을 들은 은우는 너무나도 기뻐서 그 자리에서 뛰쳐나갈 뻔했다. 회사를 관리하라니? 이런 적이 있었던가? 있어도 모두 작은 규모의 회사였기에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이젠 실제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HY 기술 회사는 권씨 집안에서도 중요히 여기는 회사 중 하나이다.은우가 감사의 말을 전하려는 순간, 권재민의 차가운 목소리가 식탁에서 울려 퍼졌다. “안 됩니다.”모두가 권재민을 바라보았다.권승호가 꺼낸 말을 재민은 반대했다. 은우는 재민을 노려보며 말했다.“형, 제 능력을 믿지 않는 건가요?”은우는 재민이가 자신의 앞길을 막을 것을 알고 있었다.재민이가 물었다.“그 프로젝트들에 들어간 자금이 엄청난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자금을 구했니?”은우는 프로젝트의 내막을 설명했다. 재민은 이미 그 내막을 알고 있었다.재민의 허를 찌르는 질문에 은우의 눈썹이 움찔거렸다.“또한, 투자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수익이 나지 않는데, 이런 거래를 한 네가 어떻게 기술 회사를 관리할 수 있겠어?" 재민은 미소를 띠며 은우를 경멸하는
두 사람은 한동안 키스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걱정하는 거예요. 저는 가족 회식에 참석한 것뿐입니다. 나는 가족 식사를 한 것입니다. 홍문연이 아니라.”“당신이 곤란해질까 봐요, 걱정되었습니다.” 권재민이 집을 나서면서부터 윤아는 걱정할 수밖에 없다.재민은 크게 웃었다.“바보, 다른 사람이 저를 난처하게 할 수 있겠어요? 경성에서 너와 은찬이를 제외하고 나를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윤아는 가볍게 재민의 가슴을 치며 그의 품에 폭 안겼다. 두 사람의 달콤한 시간이 시작되었다.은우의 집.저택을 떠난 후 은우는 조금 전 일이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재민은 한시라도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해.”은우는 옆에 있는 벽을 세게 걷어찼다.권씨 집안에서 꾹 참았던 화를 지금 마음껏 폭발시켰다.둘째 삼촌은 황급히 그를 말리며 말했다.“참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식을 모두 되찾는 것이야.”은우가 말했다.“자꾸 참으라고 하는데 이번에 또 기회를 잃게 생겼네요.”둘째 삼촌은 권씨 집안 둘째로서 줄곧 참고 지내왔기에 참는 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곧 네가 주인공이 날이 올 거야. 기회만 잘 잡는다면 너와 나, 모두 행복해지는 날이.”둘째 삼촌은 흥분한 표정으로 은우의 어깨를 잡았다.은우는 자기 아버지의 희망 어린 눈빛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알았어요, 아버지.”권씨 집안 다른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그 때문에 은우는 억울함과 분노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바로 이때 권지윤이 들어왔다.“고모, 무슨 일로?” 은우는 지윤가 온 이유를 몰랐다.“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격려하고 싶어서 들렸어, 잘해. 재민 그 녀석한테 절대 지지 말고, 아버지 쪽은 내가 말 잘해놓을게. 네가 많은 걸 희생하지 않게 만들 거야. 게다가 아직 아무것도 얻지 못했잖아.”지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은우는 약간 감동했다. 하지만 이내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생각에 담담하게 말했다.“고모, 감사합니다
권지윤은 물론 개방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리하여 지윤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있는 힘껏 밀어냈다.“저리 가, 건드리지 마!” 지윤은 비록 거세게 저항했지만 점점 나른 해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약효는 이미 작용하기 시작했다.남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의 거절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재밌을 거야.”남자는 웃으면서 지윤의 몸에 손을 댔다.남자의 공세 아래, 지윤은 점점 이성을 잃었다.지윤은 이 상황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게 도대체 어떤 느낌인지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한 시간 후, 온몸이 나른해질 때로 나른해진 지윤은 잠이 들었다.지윤과 성관계를 하면서 휴대전화를 한쪽에 놓고 사진을 찍었지만 지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지윤이 잠든 것을 보고 남자는 일어나 옷을 입은 뒤 휴대전화를 들고 떠났다.방을 나선 남자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송해나가 복도 모퉁이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상황을 보고 남자는 급히 걸어갔다.“미스 송, 일은 잘 처리되었습니다.”“응.” 해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 “사진은?”남자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 불미스러운 사진들을 해나에게 모두 보낸 뒤 기대하는 표정으로 해나를 바라보았다.“송 아가씨, 봐봐요, 어떻습니까?”해나는 사진을 본 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했어.”사진을 확인한 해나는 휴대전화를 가지는 대신 은행카드 한 장을 남자에게 건네주었다.“이 카드에 9000만원이 있어. 이 돈, 네가 가져. 그리고 아무도 너를 못 찾게 꼭꼭 숨어, 알겠지?”해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남자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돈을 주었으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예, 미스 송.”남자는 곧 이곳을 떠났고, 해나는 참지 못하고 그 사진들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지윤도 자신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겠지?’반드시 지윤이 고통의 맛을 느끼게 할 것이다.‘권씨 집안 사람들을 하나하나 밟아줄 것이야
권지윤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이튿날 정오의 시각이었다.태양은 일찍이 중간에 걸려 있었고, 따뜻한 기운이 유리 창문을 통해 침대를 비추면서 온화했다.눈을 비비며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지윤은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하려 휴대전화를 켰다.[15개의 부재중 전화]누군가가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 메시지는 백여건에 달했다.지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약간 찡그렸다. 무슨 영문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하룻밤 밖에서 외박했을 뿐인데, 평소에도 자주 외박했잖아?’ ‘그런데 오늘, 부재중 전화랑 메시지가 왜 이렇게 많아? 설마 또 무슨 중요한 일이 생겼나?’아버지가 여러 번 전화한 것을 보고 지윤은 숨을 들이쉬며 전화했다.“드디어 받았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아버지의 엄숙한 말투에 불만이 가득 서려 있었다.“저, 방금 깨어났는데 왜 그러세요, 아버지?” 지윤은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통화는 오랫동안 침묵으로 가득했다.“너 지금 당장 와.” 승호의 태도는 매우 냉담했고 어딘가 모르게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지윤은 영문도 모른 채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하려 했으나 이윽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10분 준다. 안 오면 네가 알아서 해.”말이 떨어지자 승호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지윤이가 말할 기회는 전혀 주지 않았다.어리둥절한 지윤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화장할 겨를도 없이 아무 옷이나 걸치고 별장으로 향했다.10분 후, 빨간색 벤츠 한 대가 별장 앞에 멈춰 섰다. 지윤은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겁에 질려 들어갔다.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친척들이 이미 도착한 것을 발견했다. 모든 사람이 단정하게 앉아 진을 치고 있었다. 특히 승호는 싸늘한 표정으로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노여움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지윤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승호는 부들부들 떨며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지윤이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뺨을 한 대 때렸다.“찰싹.” 아픈 느낌이
애초에 재민이가 회사로 돌아간 것은 바로 이 일을 해결하고 주식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것이었으나 이상하게 이 시점에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가 터지기 시작했다.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고 심지어는 태성 그룹까지 끌어들여 수많은 찌라시들이 돌아다녔다. 더욱 심각한 것은 태성 그룹의 탈세에 관한 스캔들이었는데 뜬금없이 터져 온라인이 떠들썩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상황에 대해 왈가왈부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태성 그룹의 신용이 금이 가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팔기 시작했고 네티즌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는 것 외에도 태성 그룹의 주식도 곤두박질쳤다. 대외적인 이미지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해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컴퓨터 화면에 비치는 주식 하락세를 보던 남자는 얼굴이 어두워졌고 눈빛은 흐리멍덩해 보였다. 이떄 기태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재민은 생각이 많아 보였고 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이곤 깊게 한 모금 빨았다. “대표님, 방금 관련 부문 윗선들이 와서 온라인에 퍼져있는 기사들을 추궁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미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실 겁니까? 그들이 필요 없으시면 다시 되돌려 보내겠습니다.”그들의 표정을 보아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느낀 기태가 건의하자 재민이가 거절했다.“필요 없어,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재민은 잠시 멈칫하더니 기태를 불러세웠다.“잠깐만. 지금 가서 이 상황을 만들고 지시하는 배후자를 알아봐, 특히 지금 주식을 가장 많이 내놓은 사람들, 이 일 계속 끌고 있으면 안 되니까 빨리 알아봐.”재민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기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 일은 지나치게 뜬금없이 일어났고 재민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세력이 조종하고 있는 듯 이 일이 심각해져만 가고 있었다.기태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는 몸을 돌려 떠났고 방안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재민은 주식시장을 흘깃 보더니 담뱃불을 껐고 방을 나갔다. 그가 방 밖으
재민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 알았어. 좀 더 조사해서 다른 유용한 정보가 있는지 알아봐.”기태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들어본 적도 없고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아마도 배후자가 있을 거야. 이름도 모르는 회사가 어떻게 우리 태성 그룹에 이런 영향을 끼칠 수 있겠어. 계속해서 이 회사에 대해 알아 와, 당장.”기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적수가 나타났지만 그는 이 적수가 누군지 몰랐고 그랬기에 근심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고 재민이 지시한 일들을 해내야 했다.기태가 사무실을 떠난 후 재민의 안색은 어두워진 것이 아무래도 쉽게 끝날 일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재만은 그 어떤 사람이 자신과 붙게 되든 간에 결국 지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한편, 송씨네 집.송해나는 방에 앉아 텔레비전에서 보도된 모든 것을 보면서 눈썹을 치켜세우며 득의양양했다. 현재 태성 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은 그녀의 작품이었고 그녀는 자신에게 가져다준 치욕과 경성의 상류사회에서 자신을 망신시킨 재민에게 복수를 한 것이었다.그러나 재민은 경성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남자답게 해결 잘했기에 해나에게 많이 휘둘리지 않았다. 다만 이는 복수의 시작일 뿐이며, 그녀는 재민으로 하여금 자신을 모욕한 대가를 똑똑히 치르게 할 심산이었다.해나의 사랑을 재민이 거부하자 도리어 원한으로 번진 것이었다. 해나의 모든 판타지와 짝사랑은 늘 재민에게 향했는데 그는 해나를 마음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참히 짓밟았고 그의 마음속에 티끌만한 자리도 없었다.자신의 오랜 감정이 보잘것없이 느껴졌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이 뻗친 해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잠시 후, 해나가 한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얘기할 게 있는데 혹시 시간 있어요?”수화기 너머에서 한 남자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연하죠. 미인의 초대는 거부할 수가 없는 법이죠.”해나는 지금 기분이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