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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작가: 온유
사실 안민아는 남자에 빠져 사리 분별이 안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아린보다 잘 살고 싶었고 도아린의 기를 꺾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도움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었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도유진을 동아줄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한테 회사 경영을 맡길 생각이에요. 아빠의 능력이라면 이 혼수는 분명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더 이상 할 말 없어.”

도아린이 이리 통쾌하게 동의할 줄은 몰랐다. 안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승리 직전의 기쁨을 만끽했다.

“다들 이의가 없다면 혼수를 얼마나 해줄 건지에 대해 의논해 보자.”

이때, 차화영이 다급히 입을 열며 외손녀의 손을 토닥였다.

“이 할미가 그동안 아껴 쓰고 모은 돈이야. 2천만 원 되는데 다 너한테 줄게.”

아껴 쓰기는 개뿔.

어렵게 살았던 차화영은 아들이 부자가 된 후부터는 욕망만 늘어났다.

아들딸 집에 갈 때는 간단한 음식들을 위주로 먹었지만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면 호의호식하였다.

사실 모아둔 돈이 2천만 원밖에 없는 건 아니었다. 그저 진범준한테 들으라고 한 소리일 뿐. 생활비를 더 뜯어내려는 목적이었다.

안민아도 외할머니한테 고작 2천만 원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할머니, 이 돈을 다 저한테 주시면 어떡해요? 젊었을 때부터 고생 많이 하셨는데 몸에 좋은 거 많이 사드세요.”

“역시 내 생각하는 건 우리 민아밖에 없다니까. 민아만 좋다면 이 할미는 뭐든 다 줄 수 있어.”

“엄마, 할머니께서 2천만 원을 주셨으니 엄마는 얼마 줄 거예요? 할머니보다 더 많이 내놓은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은데.”

핸드폰을 계속 주시하고 있던 윤명희가 무심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난 1600만 원 줄 거야.”

“그럼 난 1200만 원.”

차화영과 안씨 가문의 사람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편, 도유준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진씨 가문에 혼수를 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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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민아의 혼수는...”진범준이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자네도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한 사람이니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겠지. 새로운 사업을 한다는 소문만 조금 내면 합작하자고 찾아올 사람이 있을 거야.”화가 치밀어 오른 안준휘는 진옥경을 향해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등을 꼿꼿이 펴던 그녀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오빠, 다른 사람이 이 일에 끼어들면 결국은 민아의 혼수를 나눠 가질 거잖아. 그럼 부모 입장에서 우리가 뭐가 되겠어?”“그렇다고 너희 딸 혼수 때문에 내 딸의 사업이 물 건너가는 걸 어떻게 두고만 보니.”진범준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세은이는 그동안 밖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살았어. 세은이가 돌아왔을 때 너희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 그런데 지금 또 내 딸의 사업을 망치려 하는 거야?”그 순간, 안준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형님께서 도와줄 생각이 없다면 됐습니다.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수밖에요. 민아가 시집가는 날 남들이 형님의 험담을 하더라도 형님은 그저 모른 척하세요.”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안준휘의 모습에 도유준과 안민아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안 서방, 민아야...”차화영은 조급한 얼굴로 딸을 쳐다보았다. 진옥경은 따라가고 싶지 않았지만 혼수를 챙기지 못한 안준휘가 그녀를 괴롭힐 것이 뻔했다. 그러나 또 따라가지 않으면 더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앞까지 걸어간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진범준을 쳐다보았다.그러나 단호한 그의 모습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뒤돌아섰다. “옥경이가 돌아가면 분명 또 한 소리 들을 거다.”차화영이 소파를 내리치며 화를 냈다.“20억이 없으면 10억은? 어떻게 합쳐서 2억도 안 돼? 옥경이가 시댁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있겠니?”“어머님, 아가씨가 진씨 가문의 돈으로 시댁에서 고개를 들고 산다면 진작에 이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남편의

  • 또 한 번의 거절   제538화

    차화영이 계단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도아린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할머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너랑 얘기하면 화가 나고 머리가 아파. 난 얘기하고 싶지 않다.”“그래요? 민아한테 혼수를 해주고 싶어서 그런 거였는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뭐.”도아린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자. 얘기해.”손을 뻗어 문을 밀던 차화영은 문틈에 손가락이 끼여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문을 세게 내리쳤다.“넌 정말 나랑 궁합이 안 맞는 것 같구나.”도아린은 급히 차화영이 안으로 들어오도록 한발 물러섰다. 손끝에 멍이 생긴 차화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진작 그렇게 철이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오늘같이 난처한 상황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야. 그래, 넌 얼마를 보탤 생각이니?”그녀는 차화영의 손을 주무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 전 정말 돈이 없어요.”손을 빼고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돈을 구할 방법은 있어요.”차화영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똑바로 말해. 수작 부리지 말고.”“할머니, 제가 이혼할 때 빈털터리로 쫓겨나서 정말 돈이 없거든요. 진씨 가문에 기여한 게 없으니 아빠가 주신 주식도 받지 않았고 오빠가 주겠다고 한 회사도 거절했어요.”진지한 얼굴로 말을 하는 그녀를 보며 차화영은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주제 파악은 되는 애네. 돌아오자마자 돈을 요구하지 않은 걸 보면...“민아의 결혼은 큰일이에요. 제가 도유준을 계속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도유준은 아마 지금도 도정국과 인연을 끊지 못했을 거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큰 사업도 가져오지 못했겠죠. 전 다 민아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정말이냐?”차화영은 반신반의한 얼굴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사생아인 도유준이 안민아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강씨로 성을 바꾸라고 한 사람은 도아린이었다. 강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가? 해남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명문 가문이다. 만약 도유준이 도정국

  • 또 한 번의 거절   제539화

    안방 안, 진범준이 아내를 끌어안고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나 어땠어?”얼굴의 홍조가 아직 가시지 않은 그녀는 일부러 시치미를 뗐다.“아주 잘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우리 세은이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졌을 때, 말문이 막힌 그 사람들 보면서 내가 얼마나 통쾌한 줄 알아요?”“그거 말고.”“그럼요?”그가 그녀의 입술을 살짝 머금었다.“방금 말이야.”그녀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젊었을 때보다는 조금 형편없긴 했어요.”충격을 받은 진범준은 다음날부터 운동하기 시작했다. 정원에서 달리기를 하던 도아린과 진경수는 힘들게 턱걸이를 하는 진범준의 모습을 보고 다가갔다. “아빠, 운동은 왜 하세요?”“왜... 너희들만... 복근 만들라는 법 있어?”진경수는 그의 드러난 뱃살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엄마가 뭐라고 해요?”“뭐라고 하긴... 너희 엄마 그런 사람이 아니야.”철봉에서 내려온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이어갔다.“너희 엄마가 뭐라고 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거야. 애프터서비스는 충분히 보장해 줘야지. 너희 엄마가 나한테 시집왔을 때는 내가 너보다 훨씬 몸이 좋았어.”“네. 넓은 어깨에 가는 허리, 메뚜기 다리 맞죠?”진범준은 아들의 농담에 발을 뻗었고 진경수는 도아린을 끌고 이내 도망쳤다. “도망쳐. 아버지한테 맞으면 병원에 입원해야 할지도 몰라.”도아린은 깔깔 웃다가 숨을 들이마시며 딸꾹질을 해댔다.“아빠랑 엄마 두 분 사이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신혼처럼 알콩달콩한 두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한참을 뛰다가 진경수가 걸음을 늦추며 입을 열었다.“엄마가 아팠을 때, 아버지는 일을 하시면서도 엄마를 직접 돌보셨어. 형이 과묵해진 건 아버지가 고생하시는 걸 보고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더 일찍 아버지를 도와 회사 일을 하게 된 거고.”진경수는 고개를 들고 나뭇잎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태양을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가 갑자기

  • 또 한 번의 거절   제540화

    차화영은 아무 말도 없이 밥을 먹고 난 뒤, 도아린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도아린은 그녀가 안민아의 혼수 때문에 자신을 재촉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할머니, 아빠, 오빠. 회사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그녀는 눈치껏 자리를 떴다. 한편, 그녀가 강재민을 찾아가기도 전에 강재민이 먼저 회사로 그녀를 찾아왔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묻는 전화가 끊기질 않네요.”어제 도유준이 가져온 그 사업 계획서가 강재민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안준휘는 투자할 능력이 되는 사람 몇 명에게만 이 일을 알려주었다. 강씨 가문의 사업이라는 걸 알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안준휘는 다른 사람이 권력을 가로채 갈까 봐 지분을 조금만 주겠다고 했다.하지만 돈은 많이 벌면 벌 수록 좋은 게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자연히 강재민과 직접 연락을 했고 안준휘라는 중개인을 따돌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준휘가 진 대표님을 찾아가 투자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들었어요.”강재민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다리를 포개고 미소를 지었다.“나랑 사업하기 싫은 건가?”“속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도아린은 이미 서대은에게 조사해 보라고 하였고 이 프로젝트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업이었다. 사실 그전에는 안준휘도 함께 이 일을 꾸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투자자를 찾는 걸 보면 안준휘 역시 속은 것 같았다. 강재민은 피식 웃으며 긴 손가락으로 책상을 몇 번을 두드리며 물었다.“내가 폭로할까요?”“조금만 더 기다려봐요.”안민아와 도유준이 결혼하고 모든 일이 다 결정되었을 때 이 일을 폭로할 것이다. 안씨 가문의 사람들이 더는 일어설 희망이 없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강재민은 그녀가 독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장난꾸러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적으로 협조할게요.”“지현이한태 농구 가르쳐준 거 고마워요. 오늘 점심은 내가 살게요.”도아린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든 다 돼요?”사악하게 웃는 그를 보며

  • 또 한 번의 거절   제541화

    이 미친 여자가 아빠를 이렇게나 망가뜨린 주제에 아빠의 돈까지 함부로 쓰고 있다.“엄마, 엄마랑 여동생의 금팔찌를 샀어요.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남동생이 결혼한다면서요? 해남으로 와서 금붙이를 사라고 해요. 제가 다 사줄게요. 맞아요...”김지민은 한 손으로 전화를 들고 한 손으로 휠체어를 밀었다.“신부 측에서 예물을 1억 정도 요구한다고요? 일단 서두르지 말아요. 회장님의 카드가 저한테 있는데 한도가 있을지는 모르겠어요.”김지민은 오늘 외출한 이유가 바로 한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몇천만 원짜리 금붙이는 문제가 없었다. 만약 2억을 긁을 수 있다면 해남에서 집을 하나 계약할 수 있었다.그다음에는 배석준의 자금을 조금씩 빼돌릴 수 있다. 배석준의 돈을 다 빼돌린 다음 배석준 다시 돈을 달라고 하면 그들은 배석준이 배를 곪지는 않게 할 것이다.김지민은 도아린과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도아린은 김지민과 배석준을 보았다. 그녀는 바로 일남에게 문자를 보내어 배지유를 유인하게 했다.하여 김지민이 부동산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배지유가 도착한 것이다.“김지민! 왜 우리 아빠를 데리고 여기로 온 거야!”직원은 두 부녀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지금은 둘 다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집을 사려고 왔지. 뭐하러 왔겠어.”김지민은 당당하게 말했다.“그럼 우리 길바닥에서 잘까? 너는 입으로만 아빠한테 효도한다고 하면서 언제 한번 아빠한테 밥을 먹여준 적이 있어? 아빠의 대소변을 청소한 적 있어? 너는 아빠한테서 돈을 달라고 할 줄만 알지. 네 아빠는 너 때문에 화가 나서 이렇게 되셨는데 무슨 낯으로 여기를 와!”배지유는 자신의 돈줄을 김지민에게 빼앗기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녀는 당장에 김지민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욕을 퍼부었다.“이 뻔뻔한 내연녀야, 네가 우리 아빠, 엄마의 사이를 이간질한 거야. 네가 우리 엄마 앞에서 터무니없는 얘기나 하고 함부로 지껄였기 때문에 아빠가 화가 나서 뇌졸중에 걸린 거야!”“

  • 또 한 번의 거절   제542화

    배석준은 그런 게 아니라고 힘겹게 몸을 흔들었다.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려면 가족의 사인이 있어야 했고 가족들과 등을 돌린 배석준의 곁에는 김지민뿐이었다.이 여자는 혼인신고를 하자마자 완전히 바뀌었다.식사할 때도 뜨거운지 아닌지 상관하지 않고 쑤셔 넣으면 끝이었다. 대소변을 청소한다는 것도 다 간병인이 하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해도 김지민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나이가 들어 전립선이 원래도 좋지 않았는데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해 염증이 더 엄중해져서 소변을 볼 때마다 벌을 받는 것 같았다.김지민이 계속 그를 보살핀다면 돈을 다 쓰기도 전에 그가 먼저 저세상으로 갈 것 같았다.“화내지 말아요. 몸조심해요...”김지민은 세게 배석준의 몸을 누르고는 불쾌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쳐다보았다.“네 아빠는 너를 보고 싶지 않아. 당장 돌아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배지유는 화가 나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이 방법이 없었다.경찰이 와도 두 사람은 부부인데 김지민이 아빠를 학대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증거가 없었다.그녀는 돌아가지 않았고 난리도 피우지 않고 김지민이 뭘 하는지 보고 있었다.김지민은 직원과 함께 자리를 떠서 몇 마디 나누더니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여보, 우리 둘만 살 집이니 너무 큰 게 필요 없을 것 같아요. 50평 좀 넘는 집을 하나 봤는데 오늘 바로 계약하죠!”배석준은 고개를 흔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당신도 동의했으니 절차를 진행할게요.”김지민은 배석준을 끌고 가서 사인했다. 그녀는 머리가 좋았다. 배석준의 손도장을 찍은 다음 자신의 이름을 사인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배석준이 건강을 되찾고 자신과 이혼을 하려고 해도 집의 절반은 그녀에게 줘야 했다.배지유는 다급하게 배건후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김지민 저 미친년이 아빠의 돈을 사기 치고 있어요! 아까는 몇천만 원짜리 금팔찌를 사더니 이제는 집을 사러 왔어요! 빨리 여기로 와요. 늦으면 아빠의 돈

  • 또 한 번의 거절   제543화

    배건후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안쪽에 있는 자리로 들어갔다.“배 대표님의 취향대로 다 주문하세요.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강재민은 걸음을 옮겨 도아린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지금 뭐 하자는 거지?’원래도 어두운 배건후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날카로운 눈빛은 강재민을 난도질할 것만 같았다.방금 그는 체면을 생각하지 말고 바로 도아린의 곁에 앉았어야 했다.“제 넥타이 클립 예쁘죠? 아린 씨가 저한테 선물한 거예요.”강재민은 배건후가 잊었을까 봐 다시 자랑하기 시작했다.“6천만 원이 넘어서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아린 씨가 저한테는 아깝지 않은 선물이라고 하길래 거절하지 않았어요.”‘아린 씨...’오글거려서 못 봐줄 지경이었다. 메뉴판에 비닐을 덧대지 않았더라면 배건후는 진작에 찢어버렸을 것이다.그는 눈을 내리깔고 일부러 덤덤한 척 말했다.“안목이 항상 뛰어났어요. 전에 저한테 골라준 것들은 모두 유일무이한 것들이었어요.”확실히 도아린이 그에게 골라준 것들은 다 최고급인 것들이었다. 이는 그가 도아린의 마음속에서 강재민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아, 그래요?”강재민은 의아하게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도아린은 이렇게 유치한 화제에 끼고 싶지 않아 이마를 짚었다.“아린 씨가 그렇게나 잘해줬는데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다니, 아린 씨가 배 대표님을 버린 이유가 있었네요.”찍 하는 소리가 나고 메뉴판의 끝부분이 찢어졌다.“저기요, 여기 주문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종업원을 찾았다.빨리 먹고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남자 둘의 나이를 합치면 60살이 넘는데 6살짜리 어린 애보다도 유치했다.첫 번째 요리가 올라오고 배건후가 젓가락을 들자마자 도움을 요청하는 배지유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지만, 배지유가 전화에서 난리를 피웠다.“죄송합니다.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겠어요.”배건후는 몸을 일으켰다.강재민도 일어서서 배건후를 문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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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후 씨.”손보미는 급히 배건후의 소매를 붙잡았다.“지유의 일은 내가 다 설명할게.”그녀는 일단 피하라고 급히 육청아에게 눈빛을 보냈다. 신사적인 사람은 아니었어도 여자에게 손을 대는 경우는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육청아에게 찻물을 뿌린 걸 보면 엄청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이런 순간에 그와 해명해 봤자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고 오히려 그를 더 화나게만 할 것이다. 이렇게 모욕당한 적이 없던 육청아는 마음속으로 이 분노를 삼킬 수가 없었지만 아직은 완수하지 못한 임무가 있으니 배건후와 사이가 나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애써 참으며 입술을 깨물고 돌아섰다. 육청아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저승사자 같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손보미는 그를 세재로 끌고 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그의 차가운 시선에 놀라 손을 움츠렸다. “건후 씨, 내 말 좀 들어봐. 어찌 됐든 내가 지유한테 차를 빌려줬으니까 내가 책임질게.”그녀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다친 사람은 지금 어느 병원에 있어? 내일 내가 한번 가볼게.”그녀의 손을 뿌리치던 그가 더럽다는 뜻이 소매를 툭툭 털며 차갑게 말했다.“집에 가 있어. 내 허락 없이는 함부로 외출하지 마.”그 말에 손보미는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지금 날 감금하겠다는 건가?무슨 이유로?차 사고를 낸 건 배지유고 난 병원비까지 부담하겠다고 했는데? 왜 날 가두어두겠다는 거야?내키지는 않았지만 뭐라 할 수가 없었고 그녀는 배건후를 따라 육청아의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직접 데려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배건후는 두 명의 경호훤에게 그녀를 맡겼다. 이건 뭐 압송이나 다름없었다.사실 그날 밤 배지유에게 차를 빌려준 건 다른 할 일이 있어서였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태운 차는 갑자기 경찰서로 향했고 아무리 발버둥 치고 소리치고 울고불고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 최지우가 ‘찬란한 인생’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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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윤은 왜 그러는지 물어볼 겨를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남자의 창백한 안색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고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괜찮으신지...”배건후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30분 후, 배건후는 육청아가 머물고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그녀는 손보미와 한창 뭔가를 축하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손에 와인을 들고 있었다. “건후 씨? 여긴 어쩐 일이야?”손보미는 급히 술잔을 내려놓고 허둥지둥 일어나더니 육청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반면, 육청아는 그녀보다 훨씬 침착해 보였고 미소를 지으며 그한테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보미 씨가 기분이 안 좋아서 위로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배 대표님이 오셨으니까 보미 씨의 기분도 많이 좋아졌을 거예요.”옆에 있던 손보미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요즘은 왜 나 찾아오지 않았어? 난 건후 씨가 정말 날 버린 줄 알았잖아.”배건후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스테이크와 와인을 힐끔 쳐다보고는 손보미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나 좀 봐.”말을 마친 그는 바로 서재로 향했다.손보미는 걱정스러운 듯 육청아를 쳐다보았고 걱정하지 말라는 육청아의 눈빛을 보고 나서야 그를 따라 서재로 갔다. “청아 씨 말로는 당신이 다쳤다고 하던데. 몸은 괜찮은 거야?”그녀는 말을 하면서 남자의 가슴팍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배건후는 팔꿈치로 그녀의 손길을 막고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지유한테 네가 차를 빌려줬어?”손보미는 입술을 깨물며 잔뜩 겁먹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지유가 빌려달라고 해서 거절하기 힘들었어. 왼쪽 다리를 다친 것뿐이니 운전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지유가 사람을 쳤어.”그가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남자의 날카로운 눈빛에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고개를 떨구며 손을 맞잡았다.“그래?”그녀의 반응을 보니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배건후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엄청난 압박에 그녀는 식은땀이 났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618화

    “일단 만나봐.”강재희는 테이블 옆에 있는 강태식의 발을 살짝 건드리며 눈짓했다.한편, 서재를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강태식은 화를 벌컥 냈다. “너까지 왜 그래?”“아버지, 다음 주에 보스를 뽑을 거예요. 일단 재민이를 달래서 주도권을 잡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잖아요.”“재민이가 만약 보스가 된다면 우리 강씨 집안은 더 많은 자원을 누릴 수 있을 거예요. 그때 가서 아버지가 반대한다고 해도 뭐 어쩌겠어요?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고.”“저놈이 쉽게 내 뜻에 따를 놈이더냐?”강태식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대놓고 반대를 했으니 분명 다른 방법을 생각할 거야. 재민이를 속였다가 나중에 알기라도 하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놈 아니냐?”“하지만 지금은 보스의 자리를 손에 넣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잖아요. 나중에 알았다고 하더라도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회사를 제 손으로 망치기야 하겠어요?”문밖에 서 있던 강재민은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입가의 사악한 웃음은 더욱 차갑고 매서워졌다. 한참을 서 있던 그가 자기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시각, 금방 샤워를 마치고 나온 도아린은 강재민한테서 걸려 온 영상통화를 받았다. 통화버튼을 누른 뒤, 그녀는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책꽂이로 가서 책을 찾았다.“무슨 일이에요?”“보고 싶어요.”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 그의 직구가 그녀는 아직도 익숙지가 않았다. 그녀는 책상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손에 쥐었고 영상 속 강재민은 밝은 그레이 실크 잠옷을 입고 있었다. 부드러운 잠옷 아래 탄탄한 그의 상체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키가 큰 남자는 창가에 서 있었고 달빛이 그의 조각 같은 옆모습에 내려앉아 더욱 매력적이었다. 어느 순간, 그녀는 그가 흡혈귀가 아닌 늑대인간처럼 보였고 둥근 달이 떠오르면 변신할 것만 같았다. “주작한테서 들었는데 새로운 보스를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재민 씨는 관심 없어요?”담담하게 묻는 그녀의 말에 그가 되물었다. “아린 씨는 내가 경선에 나서길

  • 또 한 번의 거절   제617화

    “난 반대야.”강태식은 찻잔을 테이블 위에 세게 내려놓으며 말했다.한편, 강재희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는 강재민을 쳐다보았다.나른한 자세로 앉아 있는 그는 하찮은 표정을 지으며 강태식이 화를 내는 모습에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유나 들어보자. 왜 싫은 건데?”강태식과 강재희는 LY조직에서 강재민의 지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음 주에 새로운 보스를 뽑는다는 걸 알고 기뻐했다.강재민의 능력으로 만약 그가 새로운 보스로 선택된다면 강씨 가문에는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강재민은 그 자리를 쟁취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강재민은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검은 보석의 단추만 쳐다보며 이리저리 만져보았다.“원한다면 쟁취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도 조건이 있어요. 아린 씨와의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그건 안돼.”강태식은 화를 벌컥 내며 고집을 부리는 아들을 노려보았다.“너만 원한다면 좋은 여자들이 줄을 설 텐데 왜 하필 그 여자야?”이 일에 대해 강재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협한 게 아니라 강재민이 강태식의 허락을 받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아버지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강재민은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지도 않고 그저 나른하게 소파에 앉아 다리를 접었다. “그런 저도 못합니다.”“네가 지금 날 협박하는 것이냐?”“협박은 아니고요. 연성의 프로젝트는 이미 중단되었고 LY조직의 사람들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주인이 바뀌게 될 겁니다. 해외에 있는 제 회사들은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강씨 가문의 국내 자원은 분명 영향을 받게 되겠죠.”그가 담담한 얼굴로 강태식을 힐끗 쳐다보았다.“아버지가 전에 하신 일들에 대해 제가 다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만약 누가 그 일들을 끄집어내기라도 한다면 아버지의 명성에 큰 오점이 남게 되겠죠.”“너 이 자식...”강태식은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게 협박이 아니면 뭐라 말인가..

  • 또 한 번의 거절   제616화

    “어젯밤 교통사고 현장 CCTV 영상 찾아서 보내줘.”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도아린은 서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나도 할 얘기가 있어. 만나서 얘기해.”두 사람은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차에 올라탄 후 그녀는 진씨 가문의 하인에게 전화를 걸어 진옥경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당부했다.진씨 가문의 하인이 병실 밖에서 지키고 있는 걸 사실 차화영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도아린에게 남아서 간호를 하라고 강요했다. 딸의 사고가 당한 건 모두 도아린의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페에 도착한 도아린 씨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10분 뒤 서대은이 도착하였다. 그의 옷차림은 여전히 대학생과 같았고 이번에는 머리를 옅은 그레이 컬러로 염색하였다. 그가 다가와 웃으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어때?”그가 머리를 살짝 흔들며 핸드폰을 도아린에게 건넸다.“성숙해 보여.”그녀는 그의 머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 속, 빨간 람보르기는 과속한 상태로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고 신호등을 지나칠 때 차에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반복해서 영상을 살펴보았지만 운전자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긴 머리를 보니 분명 여자였다. “빛이 나는 곳을 나도 자세히 봤는데 옷 장식인 것 같아.”커피 두 잔을 주문한 서대은은 자신의 컵에 설탕 두 개를 넣고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여전히 달지 않아서 설탕 하나를 더 집어넣었다. 도아린은 그를 올려다보며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전에는 단 거 안 좋아했었잖아.”그 말에 눈빛이 변하던 그는 뭐라 설명하지 않았다.“뒤에 봐봐. 그 차가 도주한 후의 영상을 하나 더 찾았어.”그가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보고 그녀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계속해서 영상을 쳐다보았다. 사고 현장을 떠난 람보르기니는 CCTV가 없는 구간을 지나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이미 운전자가 바뀌어있는 상태였다. 앞 유리가 깨져서

  • 또 한 번의 거절   제615화

    진옥경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고 그 눈빛 속에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 “내가 진씨 가문으로 돌아온 게 싫고 민아의 모든 것을 내가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으면 나한테 복수를 했었어야죠. 내 가족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에요. 당신들이 진씨 가문에 가져간 모든 걸 다 되찾아 올 생각이에요.”진옥경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고 원망의 눈빛은 점차 애원의 눈빛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도아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거 알아요? 당신이 사고가 나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당신 남편은 병원비조차 부담할 생각이 없었어요. 당신의 목숨은 우리 진씨 가문에서 구해온 거예요. 그러니까 악착같이 살아요. 가족에게 못된 짓을 한 대가가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이때, 기계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도아린은 급히 벨을 누르고 의사들을 찾아갔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야 합니다.”중환자실을 나서자 차화영이 눈물을 훔치며 달려왔다. 진옥경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던 그녀는 도아린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병원비 내러 왔어요.”순식간에 말문이 막힌 차화영은 병실에서 의사가 응급처치를 하는 것을 보고 급히 물었다.“옥경이는 어떻게 됐어?”“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의사 선생님께는 돈이 문제가 아니니 최선을 다해 구해달라고 부탁했어요.”그 말에 안색이 조금 밝아진 차화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진작에 돈을 빌려줬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야. 결국은 이 모든 게...”도아린의 매서운 눈빛을 눈치챈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차화영은 진옥경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린 일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아무리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진옥경이 살해당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려하자 진범준은 그제야 그녀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중환자실 침대에 누워있는 딸의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 딸, 옥경아.”“전 일이 있어서 이만...”“

  • 또 한 번의 거절   제614화

    성대호는 그녀의 반응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할 때, 그가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모든 건 다 나한테 맡겨.”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꾹 누르며 애틋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잘해주는 건 오빠밖에 없어.“일단 밥부터 먹자. 이 일은 친구한테 부탁해 볼게.”그는 도시락을 그녀의 앞에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 안의 반찬들을 본 순간 그녀는 눈빛이 달라졌다.대학 다닐 때 학교 식당에서도 먹지 않았던 반찬들이다. 청경채 볶음, 야채 고기볶음, 고기볶음은 거의 기름진 고기뿐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걸 보면 생활이 이렇게 궁핍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빠의 도움이 없는 서씨 집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어울릴 수가 있겠는가?다행히 주제 파악은 되는 건지 키스는 하지 않았네...배지유는 이런 음식을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거의 한 끼도 먹지 않아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도저히 넘어가지 않았다. 배달 음식을 주문해달라고 말을 하려는 그때, 그가 창가에 서서 전화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난처한 듯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눈빛이 어두웠다.어려운 일인가?능력이 안 되는 건 아니고?교통사고일 뿐이잖아.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여자가 먼저 스스로 뛰어든 것인데...잠시 후, 성대호가 전화를 끊자 그녀는 급히 물었다.“어떻게 됐어?”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앉던 그는 한동안 침묵했다.“일반적인 부상이라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사람이 죽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해. 손보미의 차이긴 하지만 건후는 분명 손보미를 도와 이 일에서 빠져나가게 할 것이고 운전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겠지.”배건후가 손보미는 도와주고 자신을 돕지 않는다는 말에 배지유는 도시락을 식탁에 던져버렸다. “우리 오빠는 정말 여자밖에 모른다니까. 손보미 그 여자가 얼마나 더러운

  • 또 한 번의 거절   제613화

    해남은 연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처리를 함에 있어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배지유의 오빠니까 여동생을 찾는 이유로 체크인 정보를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성대호를 조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같은 시각, 낡은 아파트 안.핸드폰을 꽉 쥐고 초조하게 소파에 앉아 있던 배지유는 성대호가 돌아오자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됐어?”성대호는 포장해 온 음식 봉투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살리지 못했대. 이미 죽었어.”“뭐?”그녀는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온몸이 차가워졌다.눈을 감으면 온통 사람을 치던 장면이었다. 청부살인과 달리 직접 사람을 치어 죽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어젯밤 그녀는 밤새도록 악몽을 꿨다. 그 사람이 현장에서 피를 토하는 모습은 보이지 못하였지만 차에 치이는 순간, 일그러져있던 그 사람의 얼굴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내 잘못이 아니야. 정말 내 탓이 아니라고. 그 여자가 스스로 뛰어든 거야.”배지유는 성대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던 그의 얼굴에 비아냥거리는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어떤 상황이든 배지유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았고 늘 상대방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사람이었다. “알아.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 사람은 결국 죽었고 넌 어젯밤에 도망쳤어. 그러니 뺑소니 사건으로 처리될 거고 넌 최소한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될 거야.”“나 감옥에 가기 싫어. 싫다고. 감옥에 가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어.”“정말 죽고 싶은 거야?”그 말에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고는 눈물을 닦았다. 성대호는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아끼고 보호했으며 그녀를 위해 배건후의 반대편에 서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하지만 다시 돌아온 그에게서 왠지 모르게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성대호는 다정하게 그녀를 쳐다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 또 한 번의 거절   제612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육청아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라갔다. “도아린 씨. 계단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배 대표님을 보러 온 사실이 가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요. 재결합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왜 배 대표님을 보러 병원에 온 건가요? 배 대표님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건가?”도아린은 그저 뒤에 껌딱지가 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그녀의 모습에 육청아는 얼굴이 일그러졌다.강재민의 경고와 배건후의 태도를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도아린 같이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가 이렇게 훌륭한 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니. 그것도 모자라 도아린을 차지하기 위해 두 남자는 엄청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그녀는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감히 반박하지 못하는 걸 보니 맞나 보네요.”육청아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진작에 당신의 속셈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경멸이 가득 찬 얼굴로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뒤로 두 걸음 물러선 도아린은 그녀의 손에 도시락통이 들려있는 것을 발견하였다.이 미친 여자가 설마 이걸로 날 때리는 건 아니겠지?두렵지는 않지만 먼저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예요?”“당신 진심이요. 당신 마음속에 아직 배 대표님이 있는 거죠?”한편, 주삿바늘을 뽑고 외투를 걸친 채 병실을 나선 배건후는 모퉁이를 돌다가 육청아와 도아린이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남 얘기를 엿듣는 것이 부도덕하기는 하지만 듣고 싶었다. 도아린의 진심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아니요.”도아린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거짓말하지 말아요.”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육청아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배 대표님한테 마음이 없다면서 왜 배 대표님이 추천한 배우를 쓴 거예요? 마음이 있으니까 배 대표님이 다쳤다는 소식에 이리 병원에 온 거 아닌가요?”“난 그 사람이 다친 줄도 몰랐어요. 알았다고 하더라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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