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건후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안쪽에 있는 자리로 들어갔다.“배 대표님의 취향대로 다 주문하세요.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강재민은 걸음을 옮겨 도아린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지금 뭐 하자는 거지?’원래도 어두운 배건후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날카로운 눈빛은 강재민을 난도질할 것만 같았다.방금 그는 체면을 생각하지 말고 바로 도아린의 곁에 앉았어야 했다.“제 넥타이 클립 예쁘죠? 아린 씨가 저한테 선물한 거예요.”강재민은 배건후가 잊었을까 봐 다시 자랑하기 시작했다.“6천만 원이 넘어서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아린 씨가 저한테는 아깝지 않은 선물이라고 하길래 거절하지 않았어요.”‘아린 씨...’오글거려서 못 봐줄 지경이었다. 메뉴판에 비닐을 덧대지 않았더라면 배건후는 진작에 찢어버렸을 것이다.그는 눈을 내리깔고 일부러 덤덤한 척 말했다.“안목이 항상 뛰어났어요. 전에 저한테 골라준 것들은 모두 유일무이한 것들이었어요.”확실히 도아린이 그에게 골라준 것들은 다 최고급인 것들이었다. 이는 그가 도아린의 마음속에서 강재민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아, 그래요?”강재민은 의아하게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도아린은 이렇게 유치한 화제에 끼고 싶지 않아 이마를 짚었다.“아린 씨가 그렇게나 잘해줬는데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다니, 아린 씨가 배 대표님을 버린 이유가 있었네요.”찍 하는 소리가 나고 메뉴판의 끝부분이 찢어졌다.“저기요, 여기 주문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종업원을 찾았다.빨리 먹고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남자 둘의 나이를 합치면 60살이 넘는데 6살짜리 어린 애보다도 유치했다.첫 번째 요리가 올라오고 배건후가 젓가락을 들자마자 도움을 요청하는 배지유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지만, 배지유가 전화에서 난리를 피웠다.“죄송합니다.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겠어요.”배건후는 몸을 일으켰다.강재민도 일어서서 배건후를 문 앞
배건후는 아파서 바들바들 떨며 힘겹게 차로 돌아가서 약을 찾아 삼켰다.위통이 사그라들고 나서야 그는 차에 시동을 걸고 떠났다.“일부러 그런 거죠.”도아린은 강재민의 마음을 읽고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끝난 인연이라면 죽은 사람처럼 더는 나타나지 않아야 하죠. 그런데 고집스럽게 아린 씨 앞에서 알짱거리는데 저라고 뭐 어쩌겠어요.”강재민은 손사래를 치고는 다시 넥타이 클립을 만지작거렸다.“저는 이 선물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도아린은 소파에 올려둔 그의 정장 외투를 흘깃 보았다. 그 소매 단추의 모양도 검은색 마름모였다.“누군가가 제 디자인이 표절이라고 고발했어요.”그녀는 시선을 내리깔고 음식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물었다.“재민 씨가 생각하기에 제가 스스로 증명할 방법이 있을까요?”그녀는 곁눈질로 강재민이 요리를 집는 동작이 멈칫했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다정하게 웃는 모습이었다.“팔찌의 제작 방법은 거의 다 공개되었고 드물게 몇 개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죠. 팔찌가 표절했다고 하는 주장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워요. 파리의 명품 가방에는 국내 디자인의 꽃무늬도 있는걸요!”강재민은 도아린이 라즈지만 먹는 것을 보고 그 요리를 그녀의 앞으로 밀어주었고 그녀에게 시원한 음료를 따라주었다.도아린은 잔이 놓여있는 식탁을 몇 번 손가락으로 두드리더니 그가 음료를 다 따르자 말했다.“티파니 주얼리라고 한 적 없는데 어떻게 그 디자인이라는 걸 알았어요?”“...”강재민은 살짝 멈칫했다.남자는 빠르게 다정한 얼굴을 하고는 젓가락을 들고 허공을 찌르며 도아린에게 말했다.“제가 아린 씨한테 쓰는 마음을 아린 씨가 절반이라도 배건후한테 썼더라면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거예요.”도아린은 라즈지를 한 조각 먹고는 미소를 지었다.강재민은 시원한 음료 잔을 들고 그녀와 잔을 맞추었다.“아린 씨는 제 누나의 눈엣가시에요. 당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죠. 당신이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을 찾아내기 위해 애를 쓰죠
도아린은 다급하게 차화영의 곁으로 가서 얘기했다.“재민 씨가 신혼집이랑 연회를 모두 강씨 가문에서 전담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프로젝트는 참여하지 않을 거라고 해요. 다른 사람들이 신부 측의 혼수를 탐낸다고 말할까 봐 그런다고 해요.”“그 사람들의 말이 맞아!”차화영이 동의했다.“강씨 가문에서 투자만 하고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혼수를 주는 것보다 못하지. 만약 끼어들어서 부러워한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쓴소리할 건더기를 주는 거야!”차화영은 드디어 도아린을 마음에 들어 했다.“네가 결혼을 해봐서 다행이다. 본인이 당해보았으니 어떻게 하면 민아한테 좋은 건지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진경수는 들어오자마자 이 말을 듣고 반박하려고 했지만, 도아린이 그를 향해 눈짓하는 걸 보고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다시 삼켰다.진경수는 문자를 보내는 척하면서 동생의 말을 들었다.이 계집애는 여우가 따로 없다. 누가 또 구덩이에 빠지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화영은 위층으로 올라갔고 안씨 가문에 어떻게 얘기를 했는지 이튿날 도유준과 안민아는 혼인신고를 하러 갔다.안준휘는 두 테이블 규모 정도의 연회를 열었고 진씨 가문의 사람들과 협력을 맺은 친구들을 불렀다.협력을 맺은 친구들은 강씨 가문을 탐내고 있으므로 안준휘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 안준휘는 기분이 좋아 술을 많이 마셨다.자리가 끝날 무렵, 차화영은 진옥경에서 마음속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그녀에게 손을 대자마자 그녀가 퍼뜩 몸을 떨었다.“왜 그래?”차화영은 서둘러 진옥경의 소매를 걷었다. 그녀의 팔뚝에는 속박의 흔적이 남아있었다.“사위가 그런 거야?”진옥경은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빠르게 소매를 다시 내렸다.“엄마, 괜찮아요.”차화영은은 마음이 아파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딸이 아들을 낳지 못해서 시댁에서 입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안준휘가 진옥경에게 이렇게 폭력을 행사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위로했다.“조금만 더 참아! 민아가 강씨
“안됩니다.”배건후는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육청아가 불만을 토로했다.“최지우 씨는 제가 추천한 거잖아요. 이제 계약을 맺으니 토사구팽할 생각이에요?”“당신이 도아린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는 건 간섭하지 않아요. 하지만 JS 픽처스의 프로젝트에 손을 뻗는 건 안 돼요.”배건후는 소파로 걸어가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육청아는 뜨거운 물을 받아서 그에게 주었고 그의 곁에 있는 팔걸이에 비스듬히 앉았다.“배 대표님, 도아린은 지금 JS 픽처스를 책임지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프로젝트가 네 개나 있는데 그중 하나에 제가 참여한다고 해도 JS 픽처스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예요.”“프로젝트 네 개에 두 개는 진씨 가문에서 투자를 했고 하나는 JS 픽처스에서 전체 자금을 투자했고 최지우 씨의 영화는 제가 투자를 했어요. 함부로 하면 안 돼요.”육청아는 그가 아무리 말해도 꿈쩍하지 않자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배건후는 일부러 손을 들어서 막았고 육청아는 하마터면 팔걸이에서 떨어질 뻔했지만, 다행히도 균형을 잡았다.그녀의 눈에서는 원망이 스쳐 지나갔지만, 배건후가 고개를 돌릴 때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최지우는 제 사람이에요. 영화가 순조롭게 잘 완성되면서도 도아린에게 혼쭐을 낼 수 있다고 약속할게요.”배건후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는 두 모금 피우고 나서야 대답했다.“지금까지도 그쪽이 LY에서 도대체 무슨 직무를 맡고 있는지 저한테 얘기하지 않았는데 제가 어떻게 믿죠.”육청아는 일어서서 문 쪽으로 갔고 밖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주머니에서 녹음 펜 같은 물건을 꺼냈다. 사실 그건 전파 교란기였다. 그녀가 지금 하는 말이 녹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저희 LY의 고위층은 네 명이 있고 코드 네임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예요. LY의 수장 코드 네임은 ‘라윤주’예요. 전임 수장은 이미 죽었고 후임 수장은 네 명의 고위층에서 선발할 거예요. 그중 제 상사가 ‘라윤주’가 될 가능성이 제일
상가는 말이 많았고 소식이 많으니 전하는 사람도 많았다.결국, 누군가가 안준휘의 프로젝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안준휘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강씨 가문으로 갔고 강재민은 강씨 가문에서 이 프로젝트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으며 프로젝트에 찍힌 인장은 다 위조된 것이라고 했다.저택 안에서는 축하에 미친 두 사람이 새로운 자세를 시도하려 하고 있었는데 대문이 갑자기 거칠게 열렸다.“도유준! 너 당장 나와!”도유준은 놀라서 바로 무기를 들었고 안민아는 그를 밀쳐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옷을 입었다.“우리 아빠가 왜 오신 거지?”도유준은 간사한 눈빛을 하고 바지만 입은 채 문을 나갔다.“아버님...”짝하는 소리가 났고 안준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귀를 때렸다. 그리고는 프로젝트를 도유준의 얼굴에 던졌다.“제대로 해명해!”“사돈, 일단 화내지 마세요. 여기에는 반드시 무슨 오해가 있을 겁니다.”강홍련은 얼른 아들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강씨 가문에서 프로젝트 계약서를 준 걸 나는 왜 들은 적이 없어. 누가 준 거야?”안민아는 허겁지겁 달려 나와서 도유준의 얼굴을 붙잡고 말했다.“아빠, 왜 사람을 때려요!”사람을 때린다고? 지금 마음으로는 죽여버리고 싶었다.협력자들이 찾아와 돈을 토해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사기죄로 고소한다고 했다.그가 고생해서 이루어낸 회사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200억이 되지 않았다.안준휘는 사람을 잡아먹을 듯 사나운 늑대 같은 눈을 하고 말했다.“도유준, 오늘 제대로 얘기해봐. 왜 나를 속였어! 제대로 설명 못 하면 네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도유준은 아빠를 속이지 않았어요!”안민아는 도유준을 등 뒤에 숨기며 말했다.“그 프로젝트는 저도 알아요. 프로젝트는 가짜지만 투자는 진짜예요!”안준휘는 때리려고 손을 들었는데 진옥경과 도아린이 말렸다.“삼촌, 일단 화내지 말고 민아의 얘기를 들어봐요.”도아린은 진옥경이 불렀다.그녀는 만약 소란이 크게 번지면 자신이 안준휘를 막고 도아
“악!”진경옥의 비명이 들렸고 그녀의 등은 재떨이에 세게 맞아 고통이 가슴을 파고들었다.그녀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엎어졌다.“엄마!”안민아는 놀라서 창백해진 얼굴로 달려가 진옥경을 안았고 미친 듯이 도아린을 향해 소리 질렀다.“왜 우리 엄마를 밀어! 내가 너보다 못 지내니까 기분이 좋지! 무슨 불만이 더 있길래 우리 엄마한테 화풀이하는 거야!”“민아야...”진옥경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아린이가... 나를 밀지 않았더라면... 나는 머리를 맞았을 거야...”커다란 손이 도아린을 잡아끌었고 불쾌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친 데 없어요?”강재민은 전화를 받은 탓에 그들보다 몇 분 늦게 들어왔고 들어서자마자 안준휘가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보았다.안민아가 도아린을 밀어버릴 때, 그는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그는 자신이 도아린을 먼저 올라오게 해서는 안 됐다고 생각했다.“괜찮아요.”도아린의 대답을 듣고도 강재민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래위로 한번 훑어보았고 그녀가 정말 다치지 않고 조금의 생채기도 생기지 않은 것을 보고 분노가 조금 사그라들었다.안민아는 강재민을 보고 마음이 무척 복잡해졌다.그녀가 결혼할 때, 강재민은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를 보고 싶기도 하지만 보기가 두렵기도 했다.강재민이 자신의 계획을 알고 그녀에게 실망할까 봐 두려웠고 또 그를 보게 된다면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오늘 그녀가 처량하게 가족들에게 질타를 받고 있는데 강재민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녀는 한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강재민의 신경은 온통 도아린에게로 갔었고 안민아의 마음속에는 질투심이 더욱더 날뛰었다.온 가족이 와서 그녀를 까밝히는 건 다 도아린이 선동한 것이다! 그녀는 강재민까지 데리고 왔고 일부러 그의 앞에서 넘어지기까지 했다!”“재민 씨, 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가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당황해서 그랬어요. 언니를 세게 밀지 않았어요!”강재민의 각진 얼굴은 엄숙한
...도아린은 안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보지 못했지만 얼마나 난리가 났을지 짐작이 갔다.차에 올라타기 전, 그녀는 뒤돌아 한번 보았다.“마음이 약해졌어요?”강재민이 피식 웃었다.“아니요.”안준휘는 항상 진범준에게 프로젝트를 놓쳤다느니, 강씨 가문에서 그에게 경고했다느니, LY에서 그를 겨냥하고 있다느니, 다른 사람의 함정에 빠졌다느니 하는 얘기들을 토로했다...다 거짓말이다.그는 진씨 가문을 돈줄로 생각했고 이런 이유로 돈을 빌리고 갚지도 않았다. 그래도 돈을 얻지 못하면 안민아의 결혼을 핑계로 고가의 혼수를 요구했다.도유준의 가짜 프로젝트는 사실 안민아가 생각해낸 것이었다. 그녀는 안준휘한테서 이런 것들을 배웠고 이게 결국 자신의 아버지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갔는데 어디에 투자했는지 소문이 없어요.”강재민은 핸드폰으로 도유준의 주소를 사기당한 사람들에게 보내주었다.“안준휘는 밖에 사생아가 있어요. 진옥경이 자신에게 난리를 피울까 봐 돈을 진작에 거기로 빼돌렸죠.”약혼식 날, 안준휘는 술에 취해 기사에게 진옥경을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하고는 자신은 사우나에 가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내연녀에게로 간 것이다.일남이 그를 따라갔다가 모든 걸 보게 되었다. 그들은 안민아가 강씨 가문에 시집가게 되어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축하를 했고 안준휘는 그날 거기서 밤을 보냈다.그들이 감히 진씨 가문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도유준이 사채로 돈을 준 사람들은 모두 서대은이 보낸 사람들이었고 결국 그 돈은 돌고 돌아 다시 진범준에게로 가게 되었다.“제가 맞장구를 쳐서 같이 연기를 해줬으니 저한테 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강재민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도아린은 턱을 괴었다.“둘째 오빠가 볼일이 있다고 저를 찾았던 게 갑자기 생각났어요.”“진경수도 연성으로 갔어요.”강재민은 그녀의 핑계를 눈치채고 기사에게 떠나자고 지시했다.오늘 밤에는 상류 인사들이 작은 모임이
“신사님! 손이...”지나가던 종업원이 발견하고 서둘러 그를 휴게실로 데리고 가서 처치하려고 했지만, 배건후는 듣지 않고 도아린에게로 걸어갔다.“재민 도련님!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요, 여자분을 데리고 오시다니요!”“재민 도련님께서 평생 혼자 지내실 줄 알았는데 여자의 치마폭에 결국 항복하셨군요.”재벌가의 후계자 몇 명이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강재민은 도아린의 팔을 놓고 자연스레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 안고 다정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이 사람이 겁이 많아서 겁먹고 도망간다면 모두 각오하세요.”도아린은 그와 너무 가까이 붙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강재민은 자연스러운 동작 같아도 사실 팔에 힘을 세게 주고 있어 철사처럼 그녀를 얽매고 있었다.도아린은 어쩔 수 없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저희한테 소개해주지 않으시겠어요?”누군가가 궁금해서 물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강재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말이다.“도아린 씨. 진씨 가문에서 오래전에 잃어버린 딸이에요. 티파니 주얼리의 디자인 총괄이고 JS 픽처스의 프로젝트 기획자예요. 그리고 탑 주얼리 디자이너인데 예명은 비밀이에요.”강재민은 도아린의 모든 정체를 한 번씩 다 말할 기세였다.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려 품 안의 사람을 쳐다보았다.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은 꿀이 떨어졌고 손으로 그녀의 잔머리를 넘겨주었다.“이 사람은 고생을 무척 많이 하고 저를 만난 거예요. 제가 이 사람을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건 운명이 정한 일이죠.”도아린은 몸을 돌려 그의 넥타이를 정리해주는 척하며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적당히 해요!”아주 연기 천재가 납셨다.“부족해요. 턱없이 부족해요.”강재민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저는 저의 전부를 당신에게 줄 거예요.”도아린은 그를 흘겨보았고 강재민의 웃음은 더욱 활짝 피었다.“도아린!”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그녀의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도아린은 굳은 표
스태프는 도아린에게 눈짓을 했고 잠시 후 그녀는 영문을 알아보러 갔다. 배지유는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변슬기를 보다가 시선을 옮겨 서서히 도아린과 눈을 맞추었다.“도아린, 내가 여기 설 줄은 몰랐지?”그녀의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었다. 하나는 그녀가 변슬기의 작품을 망쳤는데도 대회에 참가했고 수상까지 했다는 의미였고 하나는 그녀의 다리가 일반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너는 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싶겠지만 아쉽게도 너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 누가 뭐래도 나는 너보다 잘살고 모든 사람보다 다 잘 살 거야! 화나지?”배지유는 이 말을 물으면서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얼마나 오만한지 모른다.도아린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잠시 후에도 계속 이렇게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나는 남은 인생 다 이렇게 기뻐하면서 살 거야! 우리 오빠가 너 때문에 나를 처벌할 거로 생각했어? 전에 나를 다른 도시로 보낸다고 한 것도 다 너 속인 거야! 오빠는 동생이 나 하나뿐인데 나를 아껴줄 시간도 모자라!”배지유는 득의양양하여 방자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2분 정도 기다리다가 도아린이 그녀에게 상장을 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래, 지금 개인적인 원한을 이렇게 갚겠다는 거야?”육청아가 그녀의 손을 툭툭 쳤다. 배지유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서 보았는데 쟁반을 든 스태프가 무대 곁으로 돌아가서 조직위원회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게 보였다.누군가가 배지유를 쳐다보았는데 표정이 복잡했다.“무슨 일이죠?”배지유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침착해요. 아래에서 사람들이 영상을 찍고 있어요.”육청아는 관객을 향해 미소를 유지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마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에요.”“흥, 누군가가 일부러 저를 골탕 먹이려는 거겠죠.”배지유는 도아린을 째려보고는 고개를 쭉 빼 들고 조직위원회를 쳐다보았다.그런데 그들이 자신을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관객들도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2등을
배건후는 그 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강재민이 말끝마다 ‘우리 아린 씨’라고 해서 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는 두통을 참으면서 도아린의 눈에서 뭔가 읽을 수 있기를 바랬다.흑백이 분명한 도아린의 눈동자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잠시 후, 배건후는 뒤돌아 떠났다.강재민은 차갑게 피식거리고는 고개를 돌려 도아린을 쳐다보았다.“이런 집안에서 어떻게 2년이나 버텼어요?”배건후는 넓은 곳으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니코틴이 폐에서 맴돌았지만, 가슴속의 답답함을 해소하지는 못했다.우정윤이 다가와서 담배를 적게 피우라고 일깨웠다. 요즘 담배를 너무 자주 피워 건강이 걱정되었다.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멀리서 육청아와 함께 대회장으로 들어가는 배지유를 보았다. 그녀는 의족을 착용했지만, 아직 적응하지 못해서 걸을 때 살짝 부축을 받아야 했다.하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발을 삐었다고 생각할 뿐 의족이라는 것을 보아내지 못할 것이다.“나는 공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도아린을 벼랑 끝으로 떠미는 것인 줄 몰랐어.”“...”우정윤은 상사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배건후도 설명하지 않았고 담배를 뻑뻑 피우기만 했다.도아린이 떠나고 나서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들이었는지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어떻게 깨닫게 되었는가? 어쩌면 비서팀에서 자기들끼리 의논하는 얘기 중에서 깨닫게 되었을 수도 있고, 또 일을 처리하는 강재민의 완전히 반대되는 태도를 보고 깨달았을 수도 있고, 혹은 인터넷에서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언론을 보고 그랬을 수도 있다...그는 눈이 뭔가에 가려져 있었던가?도아린을 곁에 두었을 때는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고 잃고 나서야 자신이 잘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배건후는 담배를 다 피우고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조직위원회 자리로 걸어갔다.도아린은 게스트석에 앉아있었는데 관중석을 마주하고 있었다. 강재민은 배건후와 나란히 앉아있었다.강재민은 배건후를 자극한 게 모자랐는지 굳이
배건후의 심장은 마치 들끓는 기름에 던져진 것 같았다. 분노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그는 다른 것들은 생각할 새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똑바로 좀 해요...”도아린의 화사한 웃음이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강재민은 한 손으로 도아린의 턱을 잡고 한 손으로 속눈썹을 들고 있었다. 눈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지만, 입가의 미소는 비웃음을 띠고 있었다.“배건후 씨는 예의를 개나 줘버렸어요? 노크도 안 하시네요.”“...”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두 사람의 거리가 무척 가까운 것이 그를 아주 불쾌하게 했다.배건후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강재민은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그는 도아린의 얼굴을 바로 조절하더니 웃으며 말했다.“한 번만 더 기회를 줘요. 제대로 붙일 수 있어요.”도아린은 살짝 고개를 들고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그에게 맡겼다.강재민은 커플 간의 재미라면서 그녀에게 눈썹을 그려주고 싶었는데 도아린은 거절했다. 그녀의 눈썹은 색깔이 자연스러워서 진한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굳이 눈썹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강재민은 진행자가 속눈썹을 붙인 것을 보고 굳이 도아린에게 붙여주겠다고 했다. 도아린은 그 속눈썹이 꽤 자연스러운 것 같아 동의했다.접착제가 꽤 세서 삐뚤게 붙였다가 뗄 때 진짜 속눈썹까지 몇 가닥 떼어져서 아팠다.“눈을 떠서 한번 봐봐요.”강재민은 한 손가락으로 도아린의 턱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자신의 작품에 무척 만족한 것 같았다.“예뻐요. 우리 아린 씨가 제일 예쁘네요.”그는 날카로운 시선이 자신의 손에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웃음은 더욱 찬란해졌다.“제 영혼까지 다 빼앗긴 건 같네요.”도아린은 이렇게 돌직구 적인 강재민의 사랑표현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가 외국에 있은 지 오래되어 성격이 많이 명랑하고 개방적이기에 말이 직설적이었다.이런 돌직구는 도아린이 예상치도 못하게 와서 꽂혀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시선을 피했고 아무
육청아는 자랑스럽게 말했다.“민간조직이죠. 조직에는 많은 대단한 분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세요.”비서는 서류를 갖고 들어왔다. 육청아는 비서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계속했다.“배 대표님께서 LY와 합작하신다면 손해는 절대 없고 이득만 있을 겁니다.”배건후는 차갑게 피식거렸다.“이익이 없이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죠. 원하는 게 뭡니까?”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육청아는 시선을 피했고 책상 위의 피규어를 바라보았다.배건후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피규어는 안돼요.”“...”육청아의 웃음이 굳었다.그녀는 오자마자 비서한테 배건후의 취미를 물었었다. 비서는 그의 책상 위에 컴퓨터와 서류만 있고 사진이 한 장도 없다고 했다. 예전에 그가 비밀리에 결혼했을 때 모두 루머라고 생각했으니 사모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하지만 손보미와 약혼한다는 소식을 발표한 후로 대표님의 책상에는 수제 피규어 인형이 하나 늘었다.그 피규어는 표백제를 사용했다는 것을 단번에 보아낼 수 있었다. 두 갈래의 땋은 머리가 없었더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보아내기 어려웠다. 대표님이 첫사랑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배 대표님 그렇게 손보미 씨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면서 왜 이미지세탁을 도와주지 않는 건가요?”육청아는 그 피규어를 훑어보았다. 피규어의 얼굴은 손보미와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물론 손보미 씨의 명성이 바닥을 치고 있지만, 대표님이 돕고 싶다면 아직 되돌릴 기회는 있잖아요.”배건후는 시선을 내려 서류를 보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육청아에게 건넸다.“청아 씨가 책임지고 진행하세요. 프로젝트를 따내고 나서 다시 합작에 관해 얘기합시다.”육청아는 서류를 받아들고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배 대표님께서 제 상사와 만나는 그 순간을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그녀는 얇은 허리를 흔들거리며 사무실을 나갔고 배건후의 눈동자는 따라서 어둡게 가라앉았다.주말, 해남대학교의 디자인
여자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났다.안민아 모녀는 그 뒤를 따라 자리를 떴다.도아린이 무슨 볼거리가 남았냐고 강재민한테 물으려고 하는데 변슬기한테서 전화가 왔다.“도 선생님, 저 변슬기에요. 지금 바쁘세요?”“괜찮아요. 얘기하세요.”“제가 방금 민아와 민아 엄마를 봤는데 두 사람이 지금...”도아린은 변슬기가 그 음식점을 나오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저들이 누구에게 함정을 놓으려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안민아가 그 여자한테 돈을 주는 것을 봤어요. 그 여자한테 가서 유혹하라고 하던데 선생님의 남자친구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게 아닌가 걱정돼요.”“하하.”도아린이 웃었다.“고마워요. 경계할게요. 슬기 씨는 거기서 친구랑 식사하고 있어요?”“네?”변슬기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렸다.변슬기는 도아린이 2층 난간 쪽에서 웃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왔다.강재민과 만난 변슬기는 조금 어색해하는 것 같았고 강재민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면서 두 사람에게 얘기를 나눌 시간을 주었다.“아빠랑 현정 아줌마께서 쇼핑하고 계세요. 저는 병풍처럼 따라다니고 있었죠.”변슬기는 강재민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선생님 남자친구는 혼혈이세요? 정말 멋져요!”도아린은 떠보듯이 물었다.“두 분이 만나는 걸 슬기 씨 어머님께서는 괜찮으시대요?”“괜찮죠. 아줌마와 아빠의 관계는 남녀 사이의 감정을 훨씬 초월한 관계에요. 두 분이 쇼핑하는 건 아마도...”변슬기는 생각하다가 비교적 적절한 단어를 골랐다.“유명한 곳을 도장 깨기를 하러 다니시는 것 같아요. 두 분이 얘기를 나누시는 주제는 투자가 아니면 자식들 얘기세요. 두 분 본인의 얘기는 잘 안 하세요.”도아린이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생각이 또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그녀는 주먹을 쥐었고 저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도 선생님, 주말에 우리 학교에서 디자인 대회를 진행할 텐데 와서
그는 안도하면서 마음에 든다는 듯 강재민을 쳐다보았다.진범준은 문득 도아린과 강재민이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고 만만해 보이는 성격이지만 사실은 여우 같은 면이 있고 늘 생각지도 못한 수를 써서 상대의 화를 돋웠지만, 또 어쩔 수 없게 만들었다.“그들이 믿을 수 있게 아저씨는 요즘 무척 바쁜 척을 해야 할 겁니다.”“알고 있어!”진범준은 차를 다 마시고 일어서서 일부러 고뇌하는 듯 윤명희를 쳐다보았다.“나는 회사로 가봐야겠어. 요즘 일찍 출근하고 늦게 들어올 거야. 당신도 만날 사람이 있으면 가서 만나보는 게 좋아. 손실을 최소한도로 줄이자고.”“지금 바로 친구를 만나러 가려고요.”부부는 모두 외출했고 강재민도 도아린을 데리고 나왔다.집에는 차화영만 남아있었고 저녁 식사 때도 혼자뿐이었다.연달아 3일 동안 그녀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추궁 끝에 가정부는 모두 회사의 손실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바쁘다고 했다.차화영은 입맛이 없어졌고 절대 아들이 피해를 보지 말기를 기도했다....“이 방법이 통한다고?”진옥경은 선글라스를 쓰고 딸과 함께 백화점의 음식점에 앉아있었다.“도아린의 시어머니가 바로 내연녀 문제로 이혼했어요. 삼촌의 돈이 모두 숙모한테 있잖아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자고요. 두 사람이 이혼한다면 할머니는 무조건 삼촌에게 저희를 도와주라고 핍박할 거예요.”안민아는 자신이 미리 준비한 사람이 도착한 것을 보고 분석을 멈추고는 진옥경과 함께 지켜보았다.진범준은 매장에서 윤명희를 위한 마스크팩을 사고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뒤돌자마자 누군가가 쏟은 주스에 진범준은 흠뻑 젖었다.“죄송해요! 죄송해요!”여자는 다급하게 사과했고 진범준의 몸에 입은 명품 정장을 보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제가 외투를 드라이해서 돌려드릴게요!”“괜찮아요.”진범준은 매장 직원이 건넨 휴지로 먼저 닦았다.“제가 화장실로 가서 씻어드릴게요. 건조기에 말리면 빨라요.”여자는 말하면서 진범준의 옷을 벗기려 했다.진범준은 빠르게 뒤로 한발 물
안민아는 크게 기뻐하면서 세게 진옥경을 밀쳐내고 강재민의 앞으로 달아갔다.그녀는 도발적으로 도아린을 쳐다보고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재민 씨, 제 말은 다 사실이에요! 언니가 배건후한테 넥타이 클립을 골라주었는데 엄청 비싼 제품이에요! 언니는 처음부터...”짝!안민아의 얼굴이 돌아갔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강재민은 매너가 좋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그녀에게 손을 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이건 그저 경고일 뿐이에요.”강재민은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고는 쓰레기통에 툭 버렸다.안민아의 얼굴에 손을 댄 게 무척 더러운 것을 만진 것처럼 행동했다.“아린 씨를 모욕하는 말이 다시 내 귀에 들어온다면 이렇게 쉽게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진옥경은 딸의 한쪽 얼굴이 빠르게 부어오르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자신을 제일 아끼는 차화영을 쳐다보았지만, 차화영이 못 본 척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또 진범준 부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오빠, 올케, 민아가 맞고 있는 걸 보고만 있어?”“옥경 씨, 안과에 좀 가봐요. 민아가 맞은 것만 보이고 민아가 제 딸을 모욕한 건 안 보이나 봐요?”윤명희는 차갑게 피식거렸다.“그게 아니면 당신 딸의 체면은 중요하지만 제 딸의 체면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인가요?”진옥경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안민아가 강재민에게 도아린의 행실을 고발하는 건 잘못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누가 도아린한테 그렇게 행동하라고 했는가!안민아 한 사람만 본 것도 아니고 배건후의 현재 여자친구도 봤다고 하니 강재민이 알게 되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그래요, 그래요!”진옥경은 연달아 말을 반복했다.“우리 모녀는 오늘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그녀는 안민아를 끌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는데 마치 이 가문에서 그들에게 빚진 게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윤명희가 딸을 보호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안민아가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듣고 강재민이 불쾌해할까 봐 걱정했다.그녀는 강재민의 반응을 계속 살폈고
안민아는 대답하지 않았고 시선이 요동쳤다.차화영은 외손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빠르게 딸의 손을 뿌리치며 선을 그었다.“옥경아, 얼른 돌아가. 사건이 해결되면 다시 와.”그녀는 남은 인생을 편히 보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두 아들에게 달렸다. 사건이 뉴스에 나올 정도로 심각한데 만약 진씨 가문이 사건에 연루되어 무너진다면 그녀는 농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그녀가 남편을 잡아먹었다고 말하던 고향 사람들은 이번에도 그녀에게 자녀들까지 잡아먹었다는 죄명을 씌워 그녀를 탈탈 털려고 들것이다.진옥경은 물러서지 않고 손을 뻗어 차화영을 잡았고 차화영은 빠르게 피했다.“엄마가 독하다고 탓하지 마. 이번 일은 너무 심각해!”차화영은 마음이 약해질까 봐 딸을 쳐다보지 않았다. “엄마, 저를 도와 어려움을 해결해달라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저한테 돌은 던지면 안 되죠. 발을 붙이고 쉴 곳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저희를 나가 죽으라는 거잖아요!”“사기를 칠 때는 이런 결말일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어요?”강재민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나른하게 도아린의 곁에 앉아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당장 돌아가세요. 오늘 당신을 본 적 없는 것으로 하죠.”진옥경은 예의를 차릴 여유가 없었고 불쾌하게 강재민을 쳐다보았다.“재민 도련님, 제 오빠와 올케도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저희 집안일에 참견하지 마시죠.”“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 아무 얘기도 하지 않으신 건 당신의 체면을 고려해주었기 때문이죠. 당신이 스스로 분수를 알고 떠나길 바라는 거죠. 당신이 스스로 체면을 저버렸으니 저도 봐줄 필요가 없는 거고요.”강재민은 도아린을 힐끗 쳐다보았다. 요염한 그 시선에는 애정이 가득했고 다시 진옥경 모녀에게로 시선이 향했을 때는 한없이 차가웠다.“도유준이 안씨 가문과 함께 계략을 꾸며서 강씨 가문의 이름으로 사기를 쳤죠. 저는 이 사건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린 씨가 제 여자친구이기 때문에 아린 씨와 관련된 일이라면
“악!”진옥경이 비명을 지르자 거실의 모든 사람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강재민과 그걸 받아들려고 하던 도아린도 그녀에게로 시선이 향했다.“왜 그래요? 제 꽃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강재민의 얼굴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지만, 진옥경 모녀가 느낄 수 있는 불쾌감을 내뿜고 있었다.“아니, 아... 그게 아니라...”진옥경은 안민아를 쳐다보았고 안민아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꽃이 너무 예뻐서 놀라워서 그래요. 엄마가 기뻐서 그러시는 거예요.”“맞아요, 기뻐서 그래요.”진옥경은 딸의 말을 따라 한마디 덧붙였다.강재민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고 꽃을 도아린의 앞으로 내밀었다.“아린 씨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붉은 장미꽃이 제 열정적인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아린 씨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고마워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도아린은 꽃을 받아들고 가정부에게 큰 꽃병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진옥경은 딸이 또 자기를 꼬집을까 봐 얼른 손을 차화영 쪽에 놓았다. 역시 안민아는 또 손을 잡으려 했지만, 허탕을 치고 나서야 엄마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자신의 손목을 꼬집었다.도아린은 강재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늘 말해왔었는데 지금은 강재민이 선물한 꽃을 받아주었다. 그녀는 강재민을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순진하게도 그녀의 말을 믿었다.강재민의 시선이 갑자기 안민아에게로 향했다. 안민아는 미처 질투와 분노로 얼룩진 눈빛을 감추지 못했고 강재민과 눈이 마주치자 빠르게 시선을 피하고는 애써 서러운 표정을 지었다.“두 분은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진씨 가문에서 구멍을 메꿔주기를 바라는 거예요?”강재민은 짐짓 엄숙해져서 마치 그들을 금방 본 사람처럼 굴었다.진옥경은 서둘러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도유준이 잘못한 일은 본인이 책임져야죠.”“안민아와 도유준은 부부이고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