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됩니다.”배건후는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육청아가 불만을 토로했다.“최지우 씨는 제가 추천한 거잖아요. 이제 계약을 맺으니 토사구팽할 생각이에요?”“당신이 도아린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는 건 간섭하지 않아요. 하지만 JS 픽처스의 프로젝트에 손을 뻗는 건 안 돼요.”배건후는 소파로 걸어가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육청아는 뜨거운 물을 받아서 그에게 주었고 그의 곁에 있는 팔걸이에 비스듬히 앉았다.“배 대표님, 도아린은 지금 JS 픽처스를 책임지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프로젝트가 네 개나 있는데 그중 하나에 제가 참여한다고 해도 JS 픽처스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예요.”“프로젝트 네 개에 두 개는 진씨 가문에서 투자를 했고 하나는 JS 픽처스에서 전체 자금을 투자했고 최지우 씨의 영화는 제가 투자를 했어요. 함부로 하면 안 돼요.”육청아는 그가 아무리 말해도 꿈쩍하지 않자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배건후는 일부러 손을 들어서 막았고 육청아는 하마터면 팔걸이에서 떨어질 뻔했지만, 다행히도 균형을 잡았다.그녀의 눈에서는 원망이 스쳐 지나갔지만, 배건후가 고개를 돌릴 때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최지우는 제 사람이에요. 영화가 순조롭게 잘 완성되면서도 도아린에게 혼쭐을 낼 수 있다고 약속할게요.”배건후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는 두 모금 피우고 나서야 대답했다.“지금까지도 그쪽이 LY에서 도대체 무슨 직무를 맡고 있는지 저한테 얘기하지 않았는데 제가 어떻게 믿죠.”육청아는 일어서서 문 쪽으로 갔고 밖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주머니에서 녹음 펜 같은 물건을 꺼냈다. 사실 그건 전파 교란기였다. 그녀가 지금 하는 말이 녹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저희 LY의 고위층은 네 명이 있고 코드 네임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예요. LY의 수장 코드 네임은 ‘라윤주’예요. 전임 수장은 이미 죽었고 후임 수장은 네 명의 고위층에서 선발할 거예요. 그중 제 상사가 ‘라윤주’가 될 가능성이 제일
상가는 말이 많았고 소식이 많으니 전하는 사람도 많았다.결국, 누군가가 안준휘의 프로젝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안준휘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강씨 가문으로 갔고 강재민은 강씨 가문에서 이 프로젝트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으며 프로젝트에 찍힌 인장은 다 위조된 것이라고 했다.저택 안에서는 축하에 미친 두 사람이 새로운 자세를 시도하려 하고 있었는데 대문이 갑자기 거칠게 열렸다.“도유준! 너 당장 나와!”도유준은 놀라서 바로 무기를 들었고 안민아는 그를 밀쳐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옷을 입었다.“우리 아빠가 왜 오신 거지?”도유준은 간사한 눈빛을 하고 바지만 입은 채 문을 나갔다.“아버님...”짝하는 소리가 났고 안준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귀를 때렸다. 그리고는 프로젝트를 도유준의 얼굴에 던졌다.“제대로 해명해!”“사돈, 일단 화내지 마세요. 여기에는 반드시 무슨 오해가 있을 겁니다.”강홍련은 얼른 아들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강씨 가문에서 프로젝트 계약서를 준 걸 나는 왜 들은 적이 없어. 누가 준 거야?”안민아는 허겁지겁 달려 나와서 도유준의 얼굴을 붙잡고 말했다.“아빠, 왜 사람을 때려요!”사람을 때린다고? 지금 마음으로는 죽여버리고 싶었다.협력자들이 찾아와 돈을 토해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사기죄로 고소한다고 했다.그가 고생해서 이루어낸 회사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200억이 되지 않았다.안준휘는 사람을 잡아먹을 듯 사나운 늑대 같은 눈을 하고 말했다.“도유준, 오늘 제대로 얘기해봐. 왜 나를 속였어! 제대로 설명 못 하면 네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도유준은 아빠를 속이지 않았어요!”안민아는 도유준을 등 뒤에 숨기며 말했다.“그 프로젝트는 저도 알아요. 프로젝트는 가짜지만 투자는 진짜예요!”안준휘는 때리려고 손을 들었는데 진옥경과 도아린이 말렸다.“삼촌, 일단 화내지 말고 민아의 얘기를 들어봐요.”도아린은 진옥경이 불렀다.그녀는 만약 소란이 크게 번지면 자신이 안준휘를 막고 도아
“악!”진경옥의 비명이 들렸고 그녀의 등은 재떨이에 세게 맞아 고통이 가슴을 파고들었다.그녀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엎어졌다.“엄마!”안민아는 놀라서 창백해진 얼굴로 달려가 진옥경을 안았고 미친 듯이 도아린을 향해 소리 질렀다.“왜 우리 엄마를 밀어! 내가 너보다 못 지내니까 기분이 좋지! 무슨 불만이 더 있길래 우리 엄마한테 화풀이하는 거야!”“민아야...”진옥경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아린이가... 나를 밀지 않았더라면... 나는 머리를 맞았을 거야...”커다란 손이 도아린을 잡아끌었고 불쾌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친 데 없어요?”강재민은 전화를 받은 탓에 그들보다 몇 분 늦게 들어왔고 들어서자마자 안준휘가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보았다.안민아가 도아린을 밀어버릴 때, 그는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그는 자신이 도아린을 먼저 올라오게 해서는 안 됐다고 생각했다.“괜찮아요.”도아린의 대답을 듣고도 강재민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래위로 한번 훑어보았고 그녀가 정말 다치지 않고 조금의 생채기도 생기지 않은 것을 보고 분노가 조금 사그라들었다.안민아는 강재민을 보고 마음이 무척 복잡해졌다.그녀가 결혼할 때, 강재민은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를 보고 싶기도 하지만 보기가 두렵기도 했다.강재민이 자신의 계획을 알고 그녀에게 실망할까 봐 두려웠고 또 그를 보게 된다면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오늘 그녀가 처량하게 가족들에게 질타를 받고 있는데 강재민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녀는 한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강재민의 신경은 온통 도아린에게로 갔었고 안민아의 마음속에는 질투심이 더욱더 날뛰었다.온 가족이 와서 그녀를 까밝히는 건 다 도아린이 선동한 것이다! 그녀는 강재민까지 데리고 왔고 일부러 그의 앞에서 넘어지기까지 했다!”“재민 씨, 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가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당황해서 그랬어요. 언니를 세게 밀지 않았어요!”강재민의 각진 얼굴은 엄숙한
...도아린은 안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보지 못했지만 얼마나 난리가 났을지 짐작이 갔다.차에 올라타기 전, 그녀는 뒤돌아 한번 보았다.“마음이 약해졌어요?”강재민이 피식 웃었다.“아니요.”안준휘는 항상 진범준에게 프로젝트를 놓쳤다느니, 강씨 가문에서 그에게 경고했다느니, LY에서 그를 겨냥하고 있다느니, 다른 사람의 함정에 빠졌다느니 하는 얘기들을 토로했다...다 거짓말이다.그는 진씨 가문을 돈줄로 생각했고 이런 이유로 돈을 빌리고 갚지도 않았다. 그래도 돈을 얻지 못하면 안민아의 결혼을 핑계로 고가의 혼수를 요구했다.도유준의 가짜 프로젝트는 사실 안민아가 생각해낸 것이었다. 그녀는 안준휘한테서 이런 것들을 배웠고 이게 결국 자신의 아버지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갔는데 어디에 투자했는지 소문이 없어요.”강재민은 핸드폰으로 도유준의 주소를 사기당한 사람들에게 보내주었다.“안준휘는 밖에 사생아가 있어요. 진옥경이 자신에게 난리를 피울까 봐 돈을 진작에 거기로 빼돌렸죠.”약혼식 날, 안준휘는 술에 취해 기사에게 진옥경을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하고는 자신은 사우나에 가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내연녀에게로 간 것이다.일남이 그를 따라갔다가 모든 걸 보게 되었다. 그들은 안민아가 강씨 가문에 시집가게 되어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축하를 했고 안준휘는 그날 거기서 밤을 보냈다.그들이 감히 진씨 가문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도유준이 사채로 돈을 준 사람들은 모두 서대은이 보낸 사람들이었고 결국 그 돈은 돌고 돌아 다시 진범준에게로 가게 되었다.“제가 맞장구를 쳐서 같이 연기를 해줬으니 저한테 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강재민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도아린은 턱을 괴었다.“둘째 오빠가 볼일이 있다고 저를 찾았던 게 갑자기 생각났어요.”“진경수도 연성으로 갔어요.”강재민은 그녀의 핑계를 눈치채고 기사에게 떠나자고 지시했다.오늘 밤에는 상류 인사들이 작은 모임이
“신사님! 손이...”지나가던 종업원이 발견하고 서둘러 그를 휴게실로 데리고 가서 처치하려고 했지만, 배건후는 듣지 않고 도아린에게로 걸어갔다.“재민 도련님!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요, 여자분을 데리고 오시다니요!”“재민 도련님께서 평생 혼자 지내실 줄 알았는데 여자의 치마폭에 결국 항복하셨군요.”재벌가의 후계자 몇 명이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강재민은 도아린의 팔을 놓고 자연스레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 안고 다정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이 사람이 겁이 많아서 겁먹고 도망간다면 모두 각오하세요.”도아린은 그와 너무 가까이 붙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강재민은 자연스러운 동작 같아도 사실 팔에 힘을 세게 주고 있어 철사처럼 그녀를 얽매고 있었다.도아린은 어쩔 수 없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저희한테 소개해주지 않으시겠어요?”누군가가 궁금해서 물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강재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말이다.“도아린 씨. 진씨 가문에서 오래전에 잃어버린 딸이에요. 티파니 주얼리의 디자인 총괄이고 JS 픽처스의 프로젝트 기획자예요. 그리고 탑 주얼리 디자이너인데 예명은 비밀이에요.”강재민은 도아린의 모든 정체를 한 번씩 다 말할 기세였다.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려 품 안의 사람을 쳐다보았다.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은 꿀이 떨어졌고 손으로 그녀의 잔머리를 넘겨주었다.“이 사람은 고생을 무척 많이 하고 저를 만난 거예요. 제가 이 사람을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건 운명이 정한 일이죠.”도아린은 몸을 돌려 그의 넥타이를 정리해주는 척하며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적당히 해요!”아주 연기 천재가 납셨다.“부족해요. 턱없이 부족해요.”강재민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저는 저의 전부를 당신에게 줄 거예요.”도아린은 그를 흘겨보았고 강재민의 웃음은 더욱 활짝 피었다.“도아린!”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그녀의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도아린은 굳은 표
“그래서...”도아린이 물었다.“미팅 자리라고 할 수 있죠.”도아린은 하마터면 그네에서 떨어질 뻔했다.“지금 저를 데리고 미팅 자리에 온 거예요?”“당연히 아니죠!”강재민의 웃음이 점점 더 환해졌다.“저처럼 이렇게 나이가 많은 남자가 어렵게 솔로 탈출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와서 자랑해야죠.”도아린은 이마를 짚었다.“재민 씨, 우리 정말...”강재민은 그네를 멈추고 그녀의 앞으로 가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저를 거절하지 말아요. 적어도 당장 거절하지는 말아요. 저한테 기회를 한번 주세요. 그리고 아린 씨 본인한테도 기회를 주세요. 만약 우리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면 아린 씨한테 절대 매달리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요.”도아린이 뭐라고 말하려는 데 손가락이 입술을 막았다.쉿, 강재민이 작게 말했다.“분명 제가 먼저 아린 씨를 만났는데 당신의 눈에는 제가 없었어요. 저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저 경기를 졌을 뿐인데 어떻게 제 행복까지 지게 만들 수 있겠어요! 저는 집안의 사업을 이어받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홀로 사업을 시작했고 배건후가 경영하고 있는 사업을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도아린 씨,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지만 결국 시험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다고 통보를 받은 기분이 어떤 건지 아세요?”“...”도아린은 강재민의 눈을 쳐다보았다.그의 얼굴은 담담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은 촉촉하게 빛이 났다.도아린은 배건후에게 첫눈에 반했다. 마음속에 배건후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걸 바쳐서 그와 함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고 싶었다.그녀는 기꺼이 그를 위해 요리를 했고 그의 가족들을 돌봤다. 배건후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모든 마음을 기울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배건후는 한 번도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정한 말이라도 말이다.지금 이렇게 마음을 다해 고백하는 말에 감동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상처를 받아 흉터가 덕지덕
두 사람의 행동을 보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최지우는 육청아의 귓가에 대고 말을 몇 마디 했고 육청아는 갑자기 도아린을 쳐다보았다.그녀의 눈빛은 도발적이었다. 그 도발은 이내 불안으로 바뀌었다.“가요.”강재민은 도아린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그녀는 도아린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였지만, 시선은 여전히 육청아를 보고 있었다.육청아는 눈에 띄게 당황했고 도망가려는 듯했지만 어떻게 도망가야 소리소문없이 도망갈 수 있을지 모르는 듯했다.‘그녀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강재민인가?’이 생각이 도아린의 마음속에 피어올랐고 거의 확신하게 되었다.강재민이 바로 LY의 현무였고 육청아는 그의 부하이다. “왜 그래요?”도아린의 기분 변화를 느낀 강재민이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도아린은 어깨에 올린 손을 밀어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렇게 친밀하게 행동하지 않겠다고 아까 약속했잖아요.”강재민은 미소를 지으며 손은 주머니에 넣고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그는 신사적으로 차 문을 열고 도아린의 머리를 보호하면서 차에 오르게 한 다음 문을 닫았다.차에 시동이 걸리고 도아린은 백미러로 연회장 문 앞에 서 있는 배건후를 보았다.그의 주변에는 분위기가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았고 어떤 여자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지만, 그의 차가운 눈빛에 놀라서 돌아갔다.“뭐 먹고 싶어요?”가로등의 빛이 빠르게 달리는 차 안을 비춰 강재민의 옆모습은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천사와 악마의 모습이었다.그의 시선은 빠르게 도아린을 훑고는 계속해서 차를 운전했다.“양식을 먹을 거예요, 한식을 먹을 거예요?”“일식이요.”도아린은 대답하고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보았다.강재민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조금 열리자마자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서대은의 정보에 따르면 현무는 그녀가 은퇴한 후에 모습을 드러내 점차 전임 현무의 자리를 대체했다
그는 손을 중간에 놓고 있었다. 도아린은 밖을 쳐다보면서 손을 그의 손 위에 덮었다.강재민은 빠르게 손을 잡았고 손깍지를 꼈다. 말하는 말투도 훨씬 들떠있었다.“사실 제가 외국에 있을 때 혼자 요리를 해 먹었지만, 스테이크를 굽는 것밖에 몰라요. 어떻게 굽든 다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재민 씨.”도아린이 천천히 말을 건넸다.“제가 왜 성을 고치지 않은 지 알아요?”강재민의 말이 끊기도 그는 그녀의 말을 따라 대답했다.“진씨 가문의 재산을 받기 싫어서요? 사실 수혁이와 경수는 모두 아린 씨를 환영하고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모두 기꺼이 당신에게 주고 싶어 하는 거예요. 너무 부담을 느낄 필요 없어요.”“재혼할 때 다른 요소에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강재민의 옆모습을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저는 상대가 제일 먼저 좋아하는 게 저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누구의 딸이거나 어느 회사의 책임자여서가 아니라. 물론 이것들은 모두 호감을 높이는 좋은 요소들은 맞죠. 하지만 저는 제가 아무것도 없을 때 상대가 여전히 저를 받아주기를 원해요.”강재민의 표정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입가 근육이 살짝 움찔하였다. 그 비릿한 표정은 도아린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강재민이 다시 잡았다.“죄송해요. 오늘 그들에게 아린 씨를 소개한 것은 우리의 신분이 어울린다는 것을 증명하려던 게 아니에요. 저는 그저 배건후를 떠난 당신이 얼마나 반짝이는 존재인지 배건후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강재민은 세게 도아린의 손을 잡고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을 이용해서 배건후를 자극했으면 안 됐어요. 하지만 저는 그저 배건후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게 화가 나서 그랬어요.”그의 눈가에는 한줄기 살기가 스쳤지만 이내 사라졌다.진씨 저택에 도착해서 강재민은 도아린의 손을 놓았고 도아린은 손을 털었다. 세게 잡혀있던 손이 얼얼했다.“잘 자요.”“내일 영화 보러 갈래요?”강재민은 두 걸
도아린이 재혼이라는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반면, 강재민은 아무리 많은 연애를 했든 여자와 동거를 했든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어찌 됐든 초혼인 셈이다. 강씨 가문과 같이 명문 집안이라면 아마도 그 부분에 대해 꺼릴 것이다. 진씨 가문도 명문 가문이니 집안끼리 어울리기는 하지만 이혼녀인 도아린의 신분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강재민이 젊었을 때의 한을 풀기 위해 도아린을 만나는 거라면 진경수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결혼 얘기가 나와 가족을 핑계로 도아린에게 상처 주는 일은 없길 바랐으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윤명희도 그런 점에 대해 똑같이 걱정되었고 고개를 돌려 강재민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강재민의 눈빛은 단호하기만 했다.“아린 씨가 절 거절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아린 씨 손 놓지 않을 겁니다. 저희 가족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린 씨가 상처받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말을 하면서 그가 카드 지갑을 꺼내 도아린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카드에는 스카이 빌딩의 수익금이 들어있고 이 카드에는 회사에서 나오는 배당금이 들어있어요. 그리고 이 카드는...”카드를 하나씩 소개하고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예요. 아린 씨한테 다 줄 거예요. 당신이 쓰고 싶은 대로 써요. 그리고 이 블랙 카드는 해외에서도 사용 가능하니까 마음대로 써요.”“나 이런 거 필요 없어요.”그녀는 바로 그에게 카드를 돌려주었다. 그러자 그가 카드 지갑을 진경수에게 건네주었다.“내일 카드 비밀번호들 다 바꿀 거야. 아린 씨 생일로 할 거니까 오빠인 네가 일단 가지고 있어.”진경수는 사양하지 않고 바로 주머니에 넣었다.“알았어. 내 앞에서 연기하지 마. 내 동생 괴롭히면 네 돈 다 털어버릴 거야.”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강재민은 윤명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윤명희를 보고는 그가 그제야 도아린의 손
“오랜만이야.”강재민이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네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그런데 손끝이 닿기도 전에 진경수가 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주먹에 강재민은 비틀거리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겨우 멈춰 섰다. “경고하는데 내 동생 건드리지 마.”진경수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를 향해 손가락질했다.“또 한 번 내 동생한테 집적거리면 주먹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난 눈에 뵈는 게 없는 놈이니까.”“오빠...”“걱정하지 마. 오빠가 네 편이 되어줄 거니까.”진경수는 그녀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온화하던 얼굴은 순식간에 차갑게 변하였고 그가 강재민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아린이는 우리 진씨 가문의 귀한 딸이야. 강씨 가문이 아무리 명문 가문이라고 하더라도 내 동생이 싫다면 넌 강요할 수 없어.”“오빠...”도아린이 그의 팔뚝을 잡고는 애교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재민 씨는 날 괴롭힌 적 없어요.”“똑바로 말해. 너 아까 울었던 거 아니야? 눈이 이렇게 새빨간데.”“운 건 맞아요. 하지만 화가 나서 운 게 아니라 재민 씨한테 감동받아서 운 거예요.”“들었지? 또 한 번만 괴롭히면 내가 정말 가만두지... 뭐라고?”진경수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감동받았다고? 저놈이 무슨 짓을 했는데?”입가를 닦고 있던 강재민의 눈 밑에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내 진심에 감동받은 거지.”그가 앞으로 다가가자 진경수는 도아린을 감싸며 이리저리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나 결국은 강재민에게 도아린의 한쪽 손을 뺏기게 되었다. 두 사람은 깍지를 끼고 진경수에게 보여줬다. “우리 애기가 내 마음 받아줬어.”우리 애기?진경수는 이를 꽉 물었다.그가 시큰둥하게 입을 삐죽거리며 여동생을 돌아보았다.“저 자식이 널 위협한 거라면 눈만 깜빡여 봐.”“오빠, 우리 두 사람 진지하게 만나보기로 했어요.”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얘기 끝난 일이에요. 만나보다가 안 맞으면 헤어지기로요. 매달리지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한 것 같다. 아쉬울 것 없이 잘살 때는 감정이 바위처럼 단단하다가도 일단 저울의 균형이 무너지면 여러 가지 이유에 휩쓸려 원래의 단단함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만다. 강재민은 두 손을 천천히 가운데로 모으며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울고 싶으면 맘껏 울어요. 다 털어버리고 이젠 깨끗이 내려놓아요.”부드러운 그의 목소리가 밤바람과 함께 그녀의 귓속으로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그녀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배건후는 그녀한테 첫사랑이었다. 그를 보면서 사랑에 대한 모든 환상을 품었고 몇 번이나 그에게 상처를 받아도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게 자신에게도 기회를 주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실망이 쌓이다 보니 아무리 깊은 감정도 사라지게 되는 것 같다. 현재 배건후에 대해서는 사랑보다는 가슴속에 맺힌 원망뿐이었다.멋대로 자신을 오라 가라 하는 그의 멸시가 원망스러웠고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꾸만 다가오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고 강재민은 그녀의 등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그녀를 달래주었다. “내가 가서 그 나쁜 놈 혼내줄까요? 감히 내 여자를 이렇게 아프게 하다니.”“아니요.”도아린은 그의 옷을 덥석 잡더니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그 사람 때문에 우는 거 아니에요.”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눈 밑에 희망이 차올랐다.“나 때문에 우는 거예요? 내가 아린 씨 괴롭혀서?”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피식 웃었다. “방금 영화관에서 일부러 그런 거죠?”이전부터 강재민을 알고 있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알고 지내게 된 건 그녀가 진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부터였다. 강재민의 천성은 뱀파이어처럼 변덕스럽고 악랄하며 때로는 오만방자하고 때로는 사악하고 독단적이었다. 귀신이 무서워서 사레까지 들리고 연약한 척 그녀한테 의지하는 건... 그의 본성이 아니었다.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뒤에 있던 사람이 배건후에게 앉으라고 주의를 줬고 그는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며 자리에 앉았다.그러나 강재민이 도아린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영화표를 뭉쳐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강재민은 이내 고개를 돌렸고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는 한 쌍의 커플만 보였다.그 커플은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고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이때, 도아린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코끝이 서로 마주쳤다.흠칫하던 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리고 계속해서 팝콘을 먹었고 강재민은 그 자리에서 얼굴이 빨개지고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 카리스마 넘치던 그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꽃가마를 탄 처녀처럼 긴장되고 설렜다. 사실 도아린이 배건후에게 그와 만나보려 한다고 했을 때 기분이 되게 좋았었다. 방금은 그녀의 콜라도 마셨고 지금은 코끝까지 부딪히고... 비록 짙은 스킨십은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가 한결 가까워진 듯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진 그는 몸을 꼬며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대었다. “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예요?”고개를 돌리던 그녀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푸흡!입안에 있던 팝콘이 그의 얼굴에 뿜어졌고 그는 급히 몸을 일으키고 옷을 털었다.도아린은 웃으며 그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그를 끌고 먼저 자리를 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그도 그녀가 웃는 것을 보고는 덩달아 크게 웃었다.“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한참이 지나서야 웃음을 그친 그녀가 그를 향해 물었다.“너무 심하게 웃었죠? 숙녀답지 않아서 내가 싫어진 거 아니에요?”그는 그녀를 마주한 채 길가의 울타리에 걸터앉았다.“나 잘 때 이도 가는데. 아린 씨는 괜찮아요.”“조금
위가 아픈 것을 참으며 뒤따라간 배건후는 강재민의 벤츠가 어둠 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지는 걸 보게 되었다. 급히 자신의 차에 올라탄 그는 육청아가 차에 오르기도 전에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상영관에 들어가기 전에 강재민은 팝콘과 콜라 두 잔을 샀고 두 사람은 티켓에 적힌 대로 제자리를 찾아가 앉았다.이번 영화는 스릴러 영화로 관객이 많지 않았고 상영관에 관객이 10명 남짓하였다.영화가 시작되자 누군가 허리를 굽힌 채 뒤로 걸어갔다. 도아린과 강재민은 셋째 줄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무서워요?”강재민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서워서 재민 씨 품에 안기는 일은 없을 거예요.”그녀가 팝콘을 내밀자 강재민은 팝콘을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그런데 난 무서워요.”그 말에 도아린은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이렇게 덩치가 큰 남자가 귀신을 무서워한다고?강재민은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갑자기 스크린이 번쩍였다. 스릴러 영화에 꼭 나오는 장면, 조명이 깜빡이면서 배경음악과 함께 귀신이 나타났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가 한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 채 한 손으로 팝콘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찰칵하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고 그는 정말 무서운 듯 한껏 긴장한 얼굴이었다. “외국에 뱀파이어 영화들도 많잖아요. 그것도 무서워요?”도아린이 웃으며 그를 향해 물었다.“뱀파이어는 머리가 잘려 나가고 혀를 내두르지는 않아요.”그는 말을 하면서 정신없이 팝콘을 입에 집어넣었다. 아악. 이때 구석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던 그는 팝콘이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미친 듯이 기침을 했다. 그녀는 급히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콜라를 건네주었다.벌컥벌컥 콜라를 마시니 조금은 진정되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려 콜라를 받침대에 놓는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그가 방금 마신 건 도아린의 콜라였다. “미안해요. 난...”그는 시한폭탄이라도 들고 있듯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었다. “미안해요. 내
“5분이면 음식도 다 준비될 거예요.”강재민은 괜찮다는 듯 웃으며 한마디 내뱉었다.그러나 냅킨을 쥐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고 도아린은 그걸 눈치챘다.분명 내키지 않으면서 너그러운 척하기는...“배 대표님.”이때, 육청아가 앞으로 급히 달려왔다.“우리도 일단 주문부터 해요.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요. 강재민 씨가 아린 씨한테 할 얘기가 있는 모양이니까 방해하지 말고요.”그녀는 배건후의 팔짱을 슬쩍 끌어당겼고 그 행동에 배건후가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살짝 주눅이 들긴 했지만 배건후를 끌고 가지 않으면 보스가 또 무슨 벌을 내릴지 모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어 배건후를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일단 진통제부터 먹어요. 도아린 씨가 기회를 주더라도 지금 몸 상태로는 버티기 힘들 거예요.”고개를 돌리고 도아린과 강재민을 쳐다보던 그는 결국 육청아의 손에 끌려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자리가 바로 두 사람의 맞은 편이었다. 잠시 후, 강재민은 종업원에게 도아린의 물컵과 냅킨을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가는 게 싫으면 분명히 말해요. 겉으로만 아닌 척하는 거 나 정말 싫어요.”“속 좁은 남자라고 생각할까 봐 그래요. 아린 씨가 싫어할까 봐...”“내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고개를 치켜들고 그를 쳐다보았고 피식 웃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당신한테 상처 주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말을 마치고는 일부러 배건후 쪽을 쳐다보았다. 마침 배건후의 날카로운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예리한 눈빛과 사악한 눈빛, 그 누구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종업원이 음식들을 내오자 팽팽하던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음식이 다 나온 뒤, 강재민은 바이올린 연주자를 불러 테이블 옆에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하였다. 뭘 연주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배건후의 시선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그의 유치한 행동에 도아린은 미
“당신은 최지우가 왜 내 심기를 건드렸는지 그게 궁금한 거예요? 이 일이 당신과 무슨 상관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네요.”그 말에 육청아는 순간 멍해졌고 이내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꽉 움켜쥐었다. 자신이 도아린에게 속아 넘어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나 도아린이 알더라도 상관없었다.배건후가 영화 투자에 손을 떼라고 했기 때문에 도아린이 아무리 조사한다고 하더라도 그녀와 최지우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육청아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도아린 씨 참 유머러스하네요. 난 최지우의 팬이에요. 모처럼 컴백했으니 팬으로서 꽃길을 걷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에요.”“그 꽃이 불꽃은 아니길 바라요.”도아린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경멸이 가득 찬 웃음, 육청아는 그 웃는 모습이 너무 싫었다. 자기한테 자랑하는 것 같아서 정말 꼴불견이었다. 보스가 도아린의 편을 든다고 하더라도 그물을 빠져나간 인신매매범을 찾기만 한다면 결국은 자신의 편에 설 거라고 믿었다. 몇 마디 반박하려는 그때 도아린은 뒤돌아섰고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끼익. 이때, 자동차 한 대가 갑자기 튀어나와 육청아의 길을 막아섰다.화가 나서 운전기사를 노려보는데 배건후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고는 이내 화를 억누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안 오는 줄 알았어요.”배건후는 그녀를 한 번 흘겨보고는 핸들을 돌려 길가에 차를 세웠다.“이렇게 직접 그 여자를 찾아오면 어떡합니까?”남자는 차 문을 세게 닫으며 따져 물었다. 육청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담담하게 얘기했다.“이곳에 밥 먹으러 온 모양이에요. 우연히 만났고 인사만 잠깐 나눈 거예요.”미간을 찌푸리던 그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따로 룸을 예약하지 않은 강재민은 창가에 앉아 있다가 도아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이쪽이에요.”그녀가 웃으며 다가가자 강재민은 그녀의 가방을 받아 옆 선반 위에 걸어놓고 의자를 당겨주었다.신사다운 모습이었다.“고마워요.”“당연한 걸요.”자리에 앉
나쁜 년.선진 투자 회사는 또 뭐야? 일부러 말을 돌려 날 괴롭히려고 한 거겠지. 그 남자에 의해 회사까지 끌려간 진옥경은 그 회사가 정말 도유준의 회사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도유준은 그녀를 본 순간 당황했고 그녀의 뒤에 서 있는 건장한 남자를 보고는 바로 창문을 넘어 도망쳤다.어안이 벙벙해진 그녀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한편, 도유준은 집으로 달려가 웃는 얼굴로 자신을 맞이하는 안민아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네 엄마가 빚쟁이들 데리고 회사까지 찾아왔어. 이제 막 돈을 좀 벌기 시작하는데 너희 엄마 때문에 다 일이 틀어지면 나 정말 가만 안 있을 거야.”...배지유도 구경하는 사람들 속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도아린을 향해 손가락질할 때, 그녀도 나서서 한마디 보탤 생각이었는데 도아린이 진옥경에게로 화제를 돌리고 그 자리를 쉽게 빠져나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도아린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자신이 화를 입게 될지도 모르니까.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다가 금은방을 지날 때, 그녀는 김지민이 남동생 내외를 데리고 물건을 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배석준은 옆에 버려진 지 오래였다. 그녀는 이내 택시에서 내려 그들이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 배석준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배석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침을 흘리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올케 마음에 들면 그냥 다 사.”남동생이 어렵게 잡은 여자 친구이기 때문에 그녀는 전폭적으로 지지할 생각이었다. 김지민은 두 사람에게 먼저 옷 구경을 하라고 하고는 계산을 하러 갔고 고개를 돌리니 배석준이 보이지 않았다. 도아린이 회사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재민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어제는 회사로 데리러 오라고 하던 사람이 오늘은 식당에서 보자고 했고 방금은 통화를 하다가 일이 있다고 먼저 끊어버린 그녀였다. 자신과의 데이트가 부담스러워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 강재민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 도착했어
운전기사한테 차를 옮기라고 한 뒤, 그녀는 주진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주 이사님, 편히 구경하시게 의자라도 하나 옮겨드릴까요?”주진모는 그녀가 남들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이리 사람을 끌고 가게 할 줄은 전혀 몰랐다. 진씨 가문에 들어간 뒤 오만방자한 것이 고모까지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소문도 두렵지 않은 건지?계속 남아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체면이 체면인지라 도아린이 그리 말하니 어쩔 수 없이 뒤돌아서서 차에 올라탔다. 주진모의 차가 떠나자 막혔던 차들이 줄줄이 떠났다.구경꾼들은 도아린의 정체를 몰랐고 그저 고모와 조카 사이인 것밖에 알지 못하였다. 윗사람은 땅바닥에서 떼를 쓰며 뒹굴고 있고 아랫사람은 횡포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순식간에 이론이 분분해졌다. “고모와 조카 사이라고? 얼마나 큰 원한이 있어서 저러는 거야? 어른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다니.”“듣기로는 얼마 전에 찾은 딸이라고 하던데. 집안 재산 때문에 저러는 거겠지. 지금은 남녀가 평등하니까 고모도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거잖아.”대화의 주제가 점점 산으로 기울어지자 도아린이 목청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다들 선진 투자 회사라고 들어봤죠? 요즘 엄청 잘 나가는 투자회사인데.”이때, 한 사람이 소리쳤다.“알죠. 수익률이 7%나 된다고 들었어요. 우리 친척들도 그 회사 주식 많이 샀거든요. 어제는 차까지 한 대 뽑았다고 하더라고요.”“선진 투자 회사요? 들어봤어요? 난 들어본 적이 없는데.”“들어봤죠. 그런데 2억 이하는 투자를 안 받아준다고 하더라고요. 난 그만한 돈이 없어서 남들이 돈 버는 거 지켜볼 수밖에 없네요.”도아린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진옥경은 큰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진세은, 그 투자 회사의 수익이 네 말대로 그렇게 좋은 거라면 고모한테 돈 좀 빌려줘. 나도 투자 좀 하게.”선진 투자 회사를 통해 돈을 그렇게 많이 벌 수 있는 거라면 이 소식을 얼른 안민아에게 알려야 한다. 딸과 사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