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목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지민이 찾아온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름없었다.주현정은 피식하더니 새우 딤섬을 밀어내고 옆에 있는 곡물 전병을 집어 들었다.“마침 지민 씨도 왔으니 같이 이야기하죠.”“지민 씨는 내 비서일 뿐이야.”배석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가더니 김지민을 한쪽으로 불렀다.싸늘하게 식어버린 눈으로 바라보는 그한테서 오랜 권력자의 위엄이 저절로 뿜어져 나왔다.“여기까지 왜 온 거야?”김지민은 그의 기에 눌린 채 조심스레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 건넸다.“시계를 저희 집에 놓고 가셔서요. 사모님께서 오해하실까 봐 얼른 가져다드리려고요.”그녀가 이렇게 찾아오는 게 주현정에게는 더 큰 오해의 빌미가 될 터였다.“중요한 일이 아니면 저택에 찾아오지 마.” 배석준은 시계를 건네받고 돌아서려 했다.김지민은 그의 팔을 급히 붙잡았다.“저랑 보미가 지유를 보러 가고 싶은데 가족이 아니라서 어려워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곧 나올 거라는 걸 알면 지유도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을 텐데 대회가 끝나면 도아린이 합의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알려주면 배지유도 기대를 할 수 있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주현정을 달래는 일이라 손보미가 소식을 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배석준은 전화를 걸려다가 또다시 김지민에게 팔이 붙잡혔다.“옆에서 하세요. 사모님께서 지유가 보미랑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세요.”배석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걸었다. 김지민은 그런 배석준을 숭배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모든 일이 정리된 후, 김지민은 배석준과 함께 돌아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그의 품에 안기며 쓰러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순간 김지민은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사모님,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발을 헛디뎠을 뿐이에요.” 그녀는
“단지 회장님 옆에 여비서가 있는 게 싫으신 거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네요. 사모님께서 회장님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회장님을 도와주진 않더라도 상처 주진 않으셨으면 해요.”김지민은 불쌍한 척하며 몰래 손톱으로 주현정의 손목을 꼬집었다. 주현정은 손목에 번지는 고통에 그녀의 손을 쳐냈다. 김지민은 소리를 지르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넘어질 뻔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자기 손목을 움켜잡았다.주현정은 손을 내린 채 소매로 손목의 상처를 가리며 남궁 유민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저택으로 들어갔다.“회장님,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아요.” 김지민은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저를 오해하셔도 괜찮아요. 전 그냥 회장님이 걱정되어서... 지난 세월을 어떻게 지내오셨을지 상상도 할 수 없네요.”배석준은 그녀의 손목에 남은 붉은 자국을 보더니 말했다.“차에서 기다려. 연고 갖고 올게.”그는 차 열쇠를 김지민에게 주고 걸음을 옮겨 저택으로 들어갔다. 남궁유민은 김지민을 흘겨보고는 따라 들어갔다.유민정은 주현정에게 한약을 가져다주려다 그녀의 손목에 난 상처를 보고 깜짝 놀라 손을 떨며 물었다.“사모님, 어쩌다 다치셨어요? 제가 얼른 연고 갖고 올게요.”그녀는 황급히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다소 화가 난 듯 말했다.“연고가 딱 하나 남아 있었는데 회장님께서 가져가셨어요. 지금 당장 사러 다녀오겠습니다.”“괜찮아요.” 주현정은 손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아줌마가 다녀올 때쯤이면 다 나을 거예요.”한편 밖에서 배석준은 김지민에게 연고를 건네며 말했다.“미안하네, 내 아내가 좀 심했어.”“괜찮아요. 저랑 보미가 지난번에 고가도로에서 하마터면 추락할 뻔한 적도 있었어요. 경찰의 과속 단속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라요.”배석준은 충격을 받은 듯 물었다.“그것도 내 아내가 계획한 일이란 말이야?”김지민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이미 지난 일인데요 뭐, 사모님께서 정말 이혼하시려는 건가요? 단지 여비서
도정국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걱정되었다.“도아린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면 배건후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아버지, 누나가 배씨 가문의 따님을 잘못 건드렸다고 해요. 지금 여행 중이라는 핑계로 집에도 돌아가지 않았대요. 배씨 가문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 배씨 가문에서도 나서지 않을 거예요.”도유준은 배씨 가문의 소식을 이나윤에게서 전해 들었다. 배씨 가문은 배지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여전히 주저하는 도정국의 모습에 도유준은 안타까운 듯 말했다.“아버지,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는 새 가게는커녕 아버지의 가게까지 망할 거예요. 평생의 노력을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릴 생각이세요?”마침 도정국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자 그는 멀리 가서 전화를 받았다.전화를 받고 난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 그런데 그 대회 입장권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더군.”“나윤이가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도유준은 가지고 있던 돈을 이나윤에게 모두 이체하면서 입장권 두 장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도아린은 방에 돌아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작업에 집중했다. 진경수는 그녀에게 밥을 가져다주고는 거실에서 잠시 머물다가 조용히 떠났다.대회 전날, 도아린은 열정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노트북을 덮었다.스타 대회는 해남에서 열렸고 소유정과 유진혁은 함께 갔다. 그들은 우연히 배건후와 같은 비행기였다.“와 봐.” 배건후는 여전히 강압적인 태도였다.도아린은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을 흘겨보더니 비웃음을 흘렸다.“작업을 도둑맞을까 봐 아무래도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비즈니스석으로 걸어갔다.배건후가 따라가려는 순간 진경수가 먼저 나서서 그를 가로막았다.손보미는 곁에서 작은 소리로 투덜댔다.“졸업하고 일도 안 해본 사람이 무슨 작업을 할 수 있겠어? 허세겠지.”“연예계에서 하던 짓거리를 여기까지 가져오지 마.” 소유정은 그녀를 밀치며 앞으로 지나갔다.도
배건후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도아린은 다른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잠시 후, 우정윤이 조용히 말했다.“대표님, 차가 도착했습니다.”배건후는 큰 걸음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손보미를 숙소까지 데려다줘.”“건후 씨는 어디 가려...”손보미는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우정윤이 그녀를 막아섰다.“보미 씨, 회장님께서 힘들게 따내신 자격을 저버리지 말고 얼른 대회 준비부터 하세요.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요.”손보미는 우정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회장님께서 따내신 자격이란 걸 알고 있는 분이시면 제가 배씨 가문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겠어요?”우정윤은 배건후가 택시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뒤 그녀를 향해 말했다.“손보미 씨, 배씨 가문에서 누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지 잊지 마세요.”...벤츠 행렬은 고가도로를 지나 시내를 벗어나더니 한 독립 저택 앞에 멈춰 섰다. 해남은 땅값이 매우 비싸다 보니 독채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사치인데 이 저택은 배씨 가문의 저택보다 두 배나 컸다.그들이 도착하자 윤명희는 얼른 마중 나왔다. 곁에는 도아린과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 서 있었다.“아린아, 드디어 왔네.” 윤명희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도아린을 꼭 끌어안았다.도아린도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친구들도 데려왔는데 폐를 끼칠 것 같네요.”“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여기가 네 집인데 네 친구들이면 진씨 가문의 친구들이지.” 윤명희는 도아린을 놓아주고 옆에 있는 여성을 불렀다.“이 아이는 민아야... 민아야, 왜 그래?”안민아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도아린을 바라봤다. 윤명희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안민아의 손을 살짝 터치했다.안민아는 곧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안민아라고 해요.” 그녀는 얼굴에 홍조가 살짝 피어올랐다.도아린은 호칭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몰라 그저 정중하게 악수를 건넸다.“도아린입니다.
방은 공주 테마로 꾸며져 있었다. 온통 분홍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화장대와 캐노피 침대, 심지어 카펫까지 분홍색이었다. 그리고 방에는 온갖 인형과 공주 스타일의 드레스가 걸려 있었다.“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안민아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실망이 섞여 있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바로 다른 방으로 준비할게요.”도아린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모든 여자에게는 공주 꿈이 있다. 어릴 적 생일 소원은 예쁜 옷을 입은 인형을 갖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 방에 있는 인형들은 모두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것으로 값이 엄청났다.“죄송해요. 제 잘못이에요...” 안민아는 약간 울먹이며 말했다.“계속 비어 있던 방이었어요. 매번 생일이나 명절일 때마다 외삼촌, 외숙모, 큰오빠, 작은오빠가 선물을 사서 여기에 놓아뒀어요.”“싫은 게 아니에요.” 도아린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전 아니에요. 그분의 방을 누릴 수는 없죠.“하지만...” 안민아는 작은오빠의 당부가 떠올랐는지 잠시 얼굴이 굳어지더니 말했다. “우선 오늘 밤만 여기서 지내시고 내일 다른 방으로 옮겨줄게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급하게 나갔다.도아린은 정성껏 꾸며진 방을 바라보며 한편으론 부러움과 다른 한편으론 상실감을 느꼈다. 20년이 넘도록 자기가 도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다행히도 진씨 가문에서 친자 확인 결과를 보여주었기에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아니면 진짜 진씨 가문에서 잃어버린 아이가 그녀가 아닐지 착각했을지도 모른다.소유정이 찾아왔을 때 도아린은 마침 공주 드레스를 보고 있었다.“안민아 조심해.” 소유정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인터넷에 그런 소설 많잖아. 친딸이 사라진 뒤에 입양한 가짜 딸을 질투하고 뒤통수 치는 이야기 말이야!”도아린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난 친딸도 아닌데.”“하긴 그러네.” 소유정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아무리 네가
“아린이가 티파니 주얼리를 대표해서 대회에 참가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죠?”윤명희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짓고 물었다.“아니에요.”배건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으로 걸어가며 도아린의 손을 잡으려 했다.도아린은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피하며 담담히 물었다.“준비는 다 끝났어요?”배건후는 애써 불쾌함을 감추고 도아린 곁에 앉았다. “대회는 하루 종일 진행될 거야. 네가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리무진을 준비했어.”“굳이 건후 씨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진씨 가문에서 이미 준비해 두었어요.” 윤명희는 도아린을 향해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리무진뿐만 아니라 아린이 손을 위한 전문 치료사까지도 준비했어요.”도아린은 빠르게 진경수를 바라보았다. 진경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윤명희는 비록 연성에 없었지만 도아린의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배건후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서서히 움켜잡았다. 그는 진씨 가문이 자신에게 품고 있는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밖을 좀 둘러볼까요?” 도아린이 제안하자 배건후는 곧바로 일어섰다.그들이 나간 뒤 진경수는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 앉더니 입을 열었다.“아린이 너무 착한 거 아니에요? 저런 남자를 차버리지 않고 놔둬서 뭐 하는 거지? 명절에 튀겨 먹으려고?”윤명희는 그의 머리를 한 대 탁 쳤다. “네가 뭘 알아? 아린이를 뒷받침해 줄 사람이 없으니 배건후와 맞설 방법도 없잖아. 배씨 가문이 연성에서의 권력이면 아린이도 어쩔 수 없지.”진경수는 뒤통수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그럼 힘들게 찾아낸 아린이가 괴롭힘당하는 걸 그냥 지켜보겠다는 거예요?”윤명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대회가 계기야. 내가 시킨 일, 다 준비한 거지?”“했어요. 감히 어머니의 명을 거역할 수 있겠어요?”윤명희는 다시 말했다. “큰형한테도 미리 이야기해 둬. 집에 돌아가서 얼굴 굳히지 말라고, 아린이가 놀랄지도 모르니까.”“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진경수는 두 손을 벌리며 말했다. “얼음장 같은 얼굴이
순간 새똥이 배건후의 정장에 떨어졌다.도아린은 흘겨보더니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그만 갈게.”“...”배건후는 소매를 흘깃 보더니 다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지희는 지금 안전하니까 넌 대회에 집중해.”도아린은 침묵을 지켰다.배건후가 다시 말했다. “진씨 가문에서 이유 없이 잘해줄 리 없으니까 조심하고.”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만약 여기서 지내는 게 불편하면...”“건후 씨, 제가 알아서 할게요.” 도아린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동안 모든 게 제 몫이었어요. 시어머니랑 시누이의 관계도 건후 씨는 일체 신경 쓰지 않았잖아요.”“시어머니가 저에게 잘해준 건 저도 고맙게 생각해요. 그리고 시누이가 한 짓도 전 기억하고 있고요. 이미 제 앞길을 헤쳐 나가는 데 충분한 경험이에요. 앞으로도 늘 하던 것처럼 저한테 신경 꺼주세요.”배건후는 말할 수 없는 답답함에 가슴이 아파왔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순식간에 혼란스러움이 엿보였다. 그는 해명하고 싶었지만 해명할 길이 없었다.“티파니 주얼리 팀이 곧 도착할 거야. 대회 전에 짧게 회의하자.” 진경수가 천천히 걸어왔다. “배 대표님, 조심해서 가세요.”배건후는 이렇게까지 대놓고 집주인에게 쫓겨나기는 처음이었다.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지만 그대로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도아린도 맞장구치며 말했다.“그만 돌아가세요. 배씨 가문에서 주얼리 시장에 진출하는 데 이번 대회가 특히 중요할 테니, 얼른 가서 준비하셔야죠. 공정하게 경쟁합시다.”그녀 역시 배건후를 붙잡아 두지 않았다.배건후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교양은 그녀를 억지로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해.”마침내, 그는 한마디를 남기고 진씨 가문 저택을 떠났다.그가 저택 입구에서 멀어지자 도아린은 그제야 몸을 돌렸다. “잠시 후 회의가 있다고 한 건... 건후 씨를 속인 거였어요?”진경수는 장난스러운
“이 사람이 대회에서 빠진다고 해도 도아린이 모건을 대표해서 대회에 참가하는 일은 없어. 대학교 졸업한 후에 경력이 하나도 없는 도아린은 감싸고 돌면서 왜 보미 씨는 안 봐주는 건데? 네가 그랬잖아. 대회의 성적은 중요하지 않고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두자면서? 왜 보미 씨가 참가한다고 하니까 이번 대회의 성적이 첫걸음이라고 하는 거야?”배석준은 도리에 맞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아들과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배건후는 차갑게 비웃음을 지으며 손으로는 계속 라이터를 돌리고 있었다.“도아린은 직장을 다니지 않고 있지만, 대학 시절 전국 대회에 참가했고 청년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도 있어요. 만약 그때 장인어른이 빚을 지고 도지현이 추락하는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쯤 외국에서 더 공부할 수 있었겠죠. 어쩌면 이미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었을 수도 있어요.”“...”손보미의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배건후가 농구 친선 경기에 참여하러 처음 그녀의 학교로 갔을 때 자원봉사자로 근무하고 있었던 도아린에 관해 물었었다.손보미는 도아린이 가정조건이 좋지 않아 일부러 돈이 많은 남자에게 접근하여 돈을 빼낸다고 거짓말을 했다. 상대방이 돈을 다 탕진하고 나면 차버려서 학교에서는 유명한 꽃뱀이라고 했다.손보미는 배건후와 함께 있을 때 도아린이 남자와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기만 하면 일부러 그녀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과장되게 했다.하여 이후에는 배건후 앞에서 도아린에 대해 말을 꺼내기만 해도 배건후는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도아린을 싫어하는데 도아린이 대학교에서 승승장구하던 과거를 어떻게 알고 있다는 말인가?배석준은 손보미의 능력이 도아린보다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수치를 느끼는 게 아니라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도아린이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회에 참가하게 하고 합의서를 갖고 내기를 했어? 너는 그 애가 지유를 용서하지 않아도 되도록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준 것이었어! 지유는 네 친동생이야. 어떻게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