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국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걱정되었다.“도아린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면 배건후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아버지, 누나가 배씨 가문의 따님을 잘못 건드렸다고 해요. 지금 여행 중이라는 핑계로 집에도 돌아가지 않았대요. 배씨 가문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 배씨 가문에서도 나서지 않을 거예요.”도유준은 배씨 가문의 소식을 이나윤에게서 전해 들었다. 배씨 가문은 배지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여전히 주저하는 도정국의 모습에 도유준은 안타까운 듯 말했다.“아버지,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는 새 가게는커녕 아버지의 가게까지 망할 거예요. 평생의 노력을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릴 생각이세요?”마침 도정국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자 그는 멀리 가서 전화를 받았다.전화를 받고 난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 그런데 그 대회 입장권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더군.”“나윤이가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도유준은 가지고 있던 돈을 이나윤에게 모두 이체하면서 입장권 두 장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도아린은 방에 돌아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작업에 집중했다. 진경수는 그녀에게 밥을 가져다주고는 거실에서 잠시 머물다가 조용히 떠났다.대회 전날, 도아린은 열정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노트북을 덮었다.스타 대회는 해남에서 열렸고 소유정과 유진혁은 함께 갔다. 그들은 우연히 배건후와 같은 비행기였다.“와 봐.” 배건후는 여전히 강압적인 태도였다.도아린은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을 흘겨보더니 비웃음을 흘렸다.“작업을 도둑맞을까 봐 아무래도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비즈니스석으로 걸어갔다.배건후가 따라가려는 순간 진경수가 먼저 나서서 그를 가로막았다.손보미는 곁에서 작은 소리로 투덜댔다.“졸업하고 일도 안 해본 사람이 무슨 작업을 할 수 있겠어? 허세겠지.”“연예계에서 하던 짓거리를 여기까지 가져오지 마.” 소유정은 그녀를 밀치며 앞으로 지나갔다.도
배건후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도아린은 다른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잠시 후, 우정윤이 조용히 말했다.“대표님, 차가 도착했습니다.”배건후는 큰 걸음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손보미를 숙소까지 데려다줘.”“건후 씨는 어디 가려...”손보미는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우정윤이 그녀를 막아섰다.“보미 씨, 회장님께서 힘들게 따내신 자격을 저버리지 말고 얼른 대회 준비부터 하세요.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요.”손보미는 우정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회장님께서 따내신 자격이란 걸 알고 있는 분이시면 제가 배씨 가문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겠어요?”우정윤은 배건후가 택시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뒤 그녀를 향해 말했다.“손보미 씨, 배씨 가문에서 누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지 잊지 마세요.”...벤츠 행렬은 고가도로를 지나 시내를 벗어나더니 한 독립 저택 앞에 멈춰 섰다. 해남은 땅값이 매우 비싸다 보니 독채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사치인데 이 저택은 배씨 가문의 저택보다 두 배나 컸다.그들이 도착하자 윤명희는 얼른 마중 나왔다. 곁에는 도아린과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 서 있었다.“아린아, 드디어 왔네.” 윤명희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도아린을 꼭 끌어안았다.도아린도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친구들도 데려왔는데 폐를 끼칠 것 같네요.”“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여기가 네 집인데 네 친구들이면 진씨 가문의 친구들이지.” 윤명희는 도아린을 놓아주고 옆에 있는 여성을 불렀다.“이 아이는 민아야... 민아야, 왜 그래?”안민아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도아린을 바라봤다. 윤명희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안민아의 손을 살짝 터치했다.안민아는 곧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안민아라고 해요.” 그녀는 얼굴에 홍조가 살짝 피어올랐다.도아린은 호칭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몰라 그저 정중하게 악수를 건넸다.“도아린입니다.
방은 공주 테마로 꾸며져 있었다. 온통 분홍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화장대와 캐노피 침대, 심지어 카펫까지 분홍색이었다. 그리고 방에는 온갖 인형과 공주 스타일의 드레스가 걸려 있었다.“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안민아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실망이 섞여 있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바로 다른 방으로 준비할게요.”도아린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모든 여자에게는 공주 꿈이 있다. 어릴 적 생일 소원은 예쁜 옷을 입은 인형을 갖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 방에 있는 인형들은 모두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것으로 값이 엄청났다.“죄송해요. 제 잘못이에요...” 안민아는 약간 울먹이며 말했다.“계속 비어 있던 방이었어요. 매번 생일이나 명절일 때마다 외삼촌, 외숙모, 큰오빠, 작은오빠가 선물을 사서 여기에 놓아뒀어요.”“싫은 게 아니에요.” 도아린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전 아니에요. 그분의 방을 누릴 수는 없죠.“하지만...” 안민아는 작은오빠의 당부가 떠올랐는지 잠시 얼굴이 굳어지더니 말했다. “우선 오늘 밤만 여기서 지내시고 내일 다른 방으로 옮겨줄게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급하게 나갔다.도아린은 정성껏 꾸며진 방을 바라보며 한편으론 부러움과 다른 한편으론 상실감을 느꼈다. 20년이 넘도록 자기가 도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다행히도 진씨 가문에서 친자 확인 결과를 보여주었기에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아니면 진짜 진씨 가문에서 잃어버린 아이가 그녀가 아닐지 착각했을지도 모른다.소유정이 찾아왔을 때 도아린은 마침 공주 드레스를 보고 있었다.“안민아 조심해.” 소유정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인터넷에 그런 소설 많잖아. 친딸이 사라진 뒤에 입양한 가짜 딸을 질투하고 뒤통수 치는 이야기 말이야!”도아린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난 친딸도 아닌데.”“하긴 그러네.” 소유정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아무리 네가
“아린이가 티파니 주얼리를 대표해서 대회에 참가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죠?”윤명희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짓고 물었다.“아니에요.”배건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으로 걸어가며 도아린의 손을 잡으려 했다.도아린은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피하며 담담히 물었다.“준비는 다 끝났어요?”배건후는 애써 불쾌함을 감추고 도아린 곁에 앉았다. “대회는 하루 종일 진행될 거야. 네가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리무진을 준비했어.”“굳이 건후 씨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진씨 가문에서 이미 준비해 두었어요.” 윤명희는 도아린을 향해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리무진뿐만 아니라 아린이 손을 위한 전문 치료사까지도 준비했어요.”도아린은 빠르게 진경수를 바라보았다. 진경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윤명희는 비록 연성에 없었지만 도아린의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배건후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서서히 움켜잡았다. 그는 진씨 가문이 자신에게 품고 있는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밖을 좀 둘러볼까요?” 도아린이 제안하자 배건후는 곧바로 일어섰다.그들이 나간 뒤 진경수는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 앉더니 입을 열었다.“아린이 너무 착한 거 아니에요? 저런 남자를 차버리지 않고 놔둬서 뭐 하는 거지? 명절에 튀겨 먹으려고?”윤명희는 그의 머리를 한 대 탁 쳤다. “네가 뭘 알아? 아린이를 뒷받침해 줄 사람이 없으니 배건후와 맞설 방법도 없잖아. 배씨 가문이 연성에서의 권력이면 아린이도 어쩔 수 없지.”진경수는 뒤통수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그럼 힘들게 찾아낸 아린이가 괴롭힘당하는 걸 그냥 지켜보겠다는 거예요?”윤명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대회가 계기야. 내가 시킨 일, 다 준비한 거지?”“했어요. 감히 어머니의 명을 거역할 수 있겠어요?”윤명희는 다시 말했다. “큰형한테도 미리 이야기해 둬. 집에 돌아가서 얼굴 굳히지 말라고, 아린이가 놀랄지도 모르니까.”“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진경수는 두 손을 벌리며 말했다. “얼음장 같은 얼굴이
순간 새똥이 배건후의 정장에 떨어졌다.도아린은 흘겨보더니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그만 갈게.”“...”배건후는 소매를 흘깃 보더니 다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지희는 지금 안전하니까 넌 대회에 집중해.”도아린은 침묵을 지켰다.배건후가 다시 말했다. “진씨 가문에서 이유 없이 잘해줄 리 없으니까 조심하고.”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만약 여기서 지내는 게 불편하면...”“건후 씨, 제가 알아서 할게요.” 도아린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동안 모든 게 제 몫이었어요. 시어머니랑 시누이의 관계도 건후 씨는 일체 신경 쓰지 않았잖아요.”“시어머니가 저에게 잘해준 건 저도 고맙게 생각해요. 그리고 시누이가 한 짓도 전 기억하고 있고요. 이미 제 앞길을 헤쳐 나가는 데 충분한 경험이에요. 앞으로도 늘 하던 것처럼 저한테 신경 꺼주세요.”배건후는 말할 수 없는 답답함에 가슴이 아파왔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순식간에 혼란스러움이 엿보였다. 그는 해명하고 싶었지만 해명할 길이 없었다.“티파니 주얼리 팀이 곧 도착할 거야. 대회 전에 짧게 회의하자.” 진경수가 천천히 걸어왔다. “배 대표님, 조심해서 가세요.”배건후는 이렇게까지 대놓고 집주인에게 쫓겨나기는 처음이었다.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지만 그대로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도아린도 맞장구치며 말했다.“그만 돌아가세요. 배씨 가문에서 주얼리 시장에 진출하는 데 이번 대회가 특히 중요할 테니, 얼른 가서 준비하셔야죠. 공정하게 경쟁합시다.”그녀 역시 배건후를 붙잡아 두지 않았다.배건후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교양은 그녀를 억지로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해.”마침내, 그는 한마디를 남기고 진씨 가문 저택을 떠났다.그가 저택 입구에서 멀어지자 도아린은 그제야 몸을 돌렸다. “잠시 후 회의가 있다고 한 건... 건후 씨를 속인 거였어요?”진경수는 장난스러운
“이 사람이 대회에서 빠진다고 해도 도아린이 모건을 대표해서 대회에 참가하는 일은 없어. 대학교 졸업한 후에 경력이 하나도 없는 도아린은 감싸고 돌면서 왜 보미 씨는 안 봐주는 건데? 네가 그랬잖아. 대회의 성적은 중요하지 않고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두자면서? 왜 보미 씨가 참가한다고 하니까 이번 대회의 성적이 첫걸음이라고 하는 거야?”배석준은 도리에 맞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아들과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배건후는 차갑게 비웃음을 지으며 손으로는 계속 라이터를 돌리고 있었다.“도아린은 직장을 다니지 않고 있지만, 대학 시절 전국 대회에 참가했고 청년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도 있어요. 만약 그때 장인어른이 빚을 지고 도지현이 추락하는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쯤 외국에서 더 공부할 수 있었겠죠. 어쩌면 이미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었을 수도 있어요.”“...”손보미의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배건후가 농구 친선 경기에 참여하러 처음 그녀의 학교로 갔을 때 자원봉사자로 근무하고 있었던 도아린에 관해 물었었다.손보미는 도아린이 가정조건이 좋지 않아 일부러 돈이 많은 남자에게 접근하여 돈을 빼낸다고 거짓말을 했다. 상대방이 돈을 다 탕진하고 나면 차버려서 학교에서는 유명한 꽃뱀이라고 했다.손보미는 배건후와 함께 있을 때 도아린이 남자와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기만 하면 일부러 그녀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과장되게 했다.하여 이후에는 배건후 앞에서 도아린에 대해 말을 꺼내기만 해도 배건후는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도아린을 싫어하는데 도아린이 대학교에서 승승장구하던 과거를 어떻게 알고 있다는 말인가?배석준은 손보미의 능력이 도아린보다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수치를 느끼는 게 아니라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도아린이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회에 참가하게 하고 합의서를 갖고 내기를 했어? 너는 그 애가 지유를 용서하지 않아도 되도록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준 것이었어! 지유는 네 친동생이야. 어떻게
배석준은 짜증을 내며 손을 저었다. 주현정이 오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김지민과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주현정은 캐리어를 내려놓고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린아, 엄마가 너 응원하러 왔어.”“어머님, 정말 감사해요.”핑크색의 침대에 누워있는 도아린은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두 사람은 모두 친엄마가 아니지만, 친엄마보다도 더 자신에게 잘해주는 분들이셨다.“어머님, 대회가 끝나면 저랑 함께 검진을 받으러 가요. 해남 전문의들의 실력이 연성보다 좋다고 해요.”“그래, 네 말대로 하자. 아린아, 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어때?”두 사람은 한참 얘기를 나눴고 도아린은 주현정이 하품을 하는 소리를 듣고 먼저 전화를 끊자고 했다.도아린은 핸드폰을 켜서 대회 규칙을 알아봤다. 스타 대회의 창시자는 계획적인 방화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그의 얼굴은 심한 화상을 입었던 자국이 남아있었는데 오랜 시간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왔었다.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가면을 쓰고 대회에 참가했고 이것을 계기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이로부터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게 되었는데 현장에서는 임의로 자리를 배치받고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제조과정을 공개한다.일부 사람들의 콤플렉스를 가려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느낌까지 자아낼 수 있었다....이튿날, 진씨 가문의 롤스로이스 여러 대가 캠핑카 한 대를 둘러싸고 대회장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이 장면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캠핑카 안에서는 재활치료사가 도아린의 손을 살펴보고 있었다.“긴장하지 마. 절대 긴장하지 마!”소유정이 도아린 곁에서 진정하지 못하고 있자 유진혁이 그녀를 잡아당겨서 자리에 앉혔다.“긴장하지 않던 것도 너 때문에 긴장되게 생겼어.”“나는 긴장 안 해. 나는 긴장하지 않아...”“손이 이렇게 찬데도 긴장 안 하고 있어?”소유정은 유진혁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도아린의 곁으로 돌아가서 조심스럽게 물었다.“잘 생각한 거야?
도아린은 하나하나 다 대답하고 진경수의 비서와 소유정을 데리고 대기실로 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정문으로 들어가서 관중석에 앉았다.진씨 가문의 자리는 모두 귀빈석에 있었고 자리로 가면서 그들은 모두 배씨 가문의 사람들을 한 번씩 흘겨보았다.“...”배건후와 배석준은 말이 없었다. 주현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윤명희와 포옹했다.“우리 큰애가 스케줄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해요. 저희한테 와서 앉으실래요?”“물론이죠.”주현정은 진씨 가문이 모여앉은 자리로 갔고 배 씨 부자는 서로 눈을 맞추었다. 서로서로 못마땅해하고 있었다.문 앞에서 도유준과 도정국이 티켓을 확인하고 들어왔다. 그들의 자리는 멀고 구석져서 무대를 10분 정도 보고 있기만 해도 목이 뻐근해 왔다.“이 쓰레기 같은 자리가 6000만 원 가까이 한다고?”도정국은 불만을 토로했다.“그 가격도 나윤이가 친구한테 부탁해서 얻은 거예요.”도유준은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이따가 이렇게 보죠. 스크린을 확대하면 똑똑하게 볼 수 있어요.”대기실에서는 도아린이 신분확인을 마친 후 가면을 받았다.소유정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가면을 쓰는 것을 도왔다. 이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밀쳤고 소유정은 도아린을 보호하려고 품 안에 앉았다. 등에 메고 있던 노트북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튕겨 나온 USB를 누군가가 밟고 섰다.“미안해요. 일부러 한 건 아니에요.”김지민은 입으로는 사과하고 있지만, 도발적인 표정이었다.“스태프들한테 비상용 컴퓨터가 있을 거예요. 근데 이 안에 있는 것들이 복사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자리를 떴다.“미친...”소유정은 이성을 잃고 때릴 뻔했지만, 도아린이 그녀의 주먹을 잡았다. 도아린은 소유정의 뒤를 향해 고갯짓했고 소유정은 뒤돌아서 진경수의 비서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무슨 뜻이지?’진경수의 비서는 주최 측에 새로운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신청했지만, USB는 아쉽게도 열리지 않았다.이 소식을 들은
누군가는 사진 한 장을 들고 나타나 말했다.“도아린 곁에 있는 꽃미남이 사실 강재민이래.”과거, 두 사람이 함께 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했던 적도 있다는 이야기였다.그 말에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소문은 꼬리를 물고 번져갔다.그러던 어느 날.도아린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신인 배우가 몰래 찍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올라왔다.사진 속엔, 두 사람의 머리가 맞닿은 채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그 한 장의 사진은 결국 배건후의 정체를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고 그는 다시 한번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이번에도 역시 온갖 의심과 루머 그리고 비난이 따라붙었다.하지만 며칠 후, 연성 경찰청에서 공식 공지문이 게시되었다.바로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기 밀매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공지였다.공지문에는 고성만, 손보미, 자상훈 등이 인신매매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다 결국 장기 밀매까지 손을 뻗친 사실이 요약되어 있었고 그 수사에 협조한 익명의 자원자들에게 감사의 뜻도 함께 담겨 있었다.그 단 하나의 공지로, 여론은 완전히 반전됐다.정월 대보름, 해남엔 보기 드문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도로는 차들로 가득 막혀 10분이 지나도 백 미터를 채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천천히 가. 우린 여기서 내려서 좀 걸을게.”도아린은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일북에게 말했다.그리고 배건후와 함께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까지 걷기로 했다.배건후는 우산을 펼쳐 도아린의 머리 위에 씌웠다.도아린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외투 주머니 속에 꼭 쥐어져 있었다.“춥지 않아?”그가 우산을 더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안 추워요.”도아린은 입김을 내뿜으며 활짝 웃었다.발밑에서는 바삭거리는 눈이 소리를 냈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래전 기억이 스쳐 갔다.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시절.어느 회사 대표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눈밭에서 몇 시간을 버텼던 그날, 발이 얼어 서 있지도 못하고 결국 쪼그려 앉았던 그 순간
그 여자는 바로 그날 수상 레스토랑에서 진경수에게 벨트를 빌렸던 그 여자였다.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짧은 티셔츠와 청 반바지 대신 격식을 갖춘 정장 느낌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얘, 내 여동생. 그리고 이 사람은... 우리 제부.”진경수는 ‘제부’라는 단어에서 말끝을 흐렸다.여동생이 혼인신고까지 해놓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그건 진수혁도 마찬가지였다.“큰형님, 작은 형님.”배건후가 정중히 일어나 인사를 건넸고 도아린은 해맑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오빠들, 호칭 바꿨으니까 용돈 좀 주셔야죠?”“혼인신고도 우리 몰래 해놓고, 무슨 용돈이야?”진경수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배건후를 노려보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도아린에게 내밀었다.“다시 내 동생 울리기만 해봐. 그땐 진짜 널 갈기갈기 찢어서 물고기 밥으로 줄 거야. 명심해.”“고마워요, 둘째 오빠!”도아린은 싱긋 웃으며 봉투를 받아들었고 이번엔 진수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진수혁 역시 말없이 봉투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도아린은 봉투를 슬쩍 비춰보며 속으로 웃었다.‘안 봐도 이건 수표네.’그녀는 배건후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더니 말했다.“이건 제가 따로 보관할게요.”“감사합니다, 우리 아내님.”“...”진씨 형제들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쯧쯧, 벌써 아내한테 잡혀 사네...’하지만 상대가 도아린이라면, 뭐… 그럴 만했다.“근데, 여기 두 분은?”도아린은 일부러 모르는 척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진수혁은 변슬기를 소파에 앉히며 담담히 말했다.“예전 동료야.”변슬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진경수가 옆에 있던 여자를 품 안으로 확 끌어당기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부모님 말씀대로 아린이 일도 정리됐겠다... 이젠 내 차례지. 그래서 나도 결혼했어.”도아린과 배건후는 동시에 진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둘째 오빠를 좀 본받으세요. 뭐 하세요, 진짜.’“작은 올
“...”집사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는 당연하다는 듯 도아린의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고 도아린은 그런 그를 집사에게 소개했다.“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서재랑 아버지, 어머니, 큰오빠, 둘째 오빠 방만 빼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게 해주세요.”두 사람은 짐을 정리하자마자 곧장 외출에 나섰다.“앞에 있는 만둣가게, 진짜 맛있어요!”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도아린의 시선은 창가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던 진수혁에게 향했다.그 맞은편에는 변슬기가 앉아 있었고 다소 곤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설득 중이었다.“여긴 패스트푸드점이에요, 카페가 아니라고요. 여기서 일하시는 건 좀...”“카페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난 괜찮은데?”“그렇긴 해도 이렇게 계속 앉아 계시면 저희 가게 영업에 방해된다니까요!”그때 도아린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변슬기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도 선생님! 대표님 좀 말려주세요!”그 말에 진수혁은 고개를 돌리며 태연하게 말했다.“밥은 먹었어? 여기 만두 꽤 괜찮더라.”도아린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났다.‘사람을 회사에서 내쫓아 놓고선 정작 본인은 여기에 눌러앉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내가 말할게.”도아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변슬기와 함께 옆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그사이 배건후는 주머니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꺼내 진수혁 앞에 내려놓았다.“제가 이겼어요.”“...”진수혁은 조용히 종이를 펼쳐보고는 이를 악물었다.“너 이거 반칙 아냐?”“우린 내기했잖아요. 졌으면 인정해야죠.”“유럽 연수 그 자리, 잊지 말고 제 이름으로 신청해 주세요.”진수혁은 고개를 돌려 도아린을 바라보았고 마침 도아린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둘의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이 분위기 뭐야... 완전 닭살 돋게 하네.’그 순간, 배건후는 시선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형님도 제가 예전에
‘정말로 배고픈 거야? 아니면 날 원하는 거지?’도아린은 배건후를 흘끗 쳐다보며 가위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끌려가 밥을 먹었다.배건후의 요리 실력은 한층 더 늘어 있었고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모양새도 훨씬 좋아졌다.“이제 영양식은 안 드세요?” 도아린은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전에 어떤 사람이 고기도 안 먹고 기름진 것도 안 먹고 오래된 것도 안 먹고 부드러운 것도 안 드셨잖아요!”배건후는 매운 닭 요리를 그녀 앞으로 밀어놓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때는 네 관심을 끌려고 그런 거야. 그리고 몸매가 망가져서 네가 싫어할까 봐 걱정도 됐고.”“그럼 이제는 몸매 망가지는 거 걱정 안 해요?”도아린은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배건후는 가볍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 한 사람이 요리하면 다른 한 사람이 설거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에게 설거지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그녀를 안아 위층으로 올라갔다.도아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배건후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를 삼켜버릴 듯한 눈빛을 보였지만 쉽게 다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도아린은 그가 마음속 어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그녀는 그의 목을 감싸안고 몸을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며 달랬다.“천천히 해도 돼요.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도아린의 위로는 곧 배건후에게 그대로 되돌아왔다.그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그녀의 흰 목 위로 떨어졌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도아린, 힘 빼... 너무 긴장했어...”도아린은 그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손가락은 그의 입에 물려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머릿속이 멍해졌고 마치 거친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배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재미를 본 배건후는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도아린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마치 어젯밤 온몸이 부서졌다가 다시 조립된 것처럼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고 특히 허리
“배 대표님! 모든 자산을 도 대표님께 넘기신 것은 이전에 하신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셔서인가요? 손보미 씨가 형을 선고받았다고 들었는데 손보미 씨를 꺼내줄 계획이 있으신가요?”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기자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챔피언십 선수들의 숙식 안전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습니다.”기자들이 더 질문하려 하자 도아린이 배건후의 손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숙식 문제에 대한 더 나은 제안이 있다면 제안서를 작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수한 의견을 채택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도아린은 카메라를 향해 당당하고 품위 있게 말했고 입가의 미소를 살짝 거두며 한층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제 개인적인 문제로 여러분의 시간을 뺏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배건후 씨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배건후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도아린이 배건후에 대해 말하려 하자 기자들은 앞다투어 마이크를 내밀었다.도아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배건후 씨는 여태까지 운영부의 팀장이었지만 오늘부터는 한경 그룹의 특별 자문입니다. 이후의 직책은 배건후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도아린의 시선은 배건후가 도아린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를 거냐고 묻던 기자를 향했다.“과학 연구자, 의학 전문가, 스포츠 선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성을 존경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그러자 그 기자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갔다.다른 기자들도 더 이상 질문을 할 기세를 잃었고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고유리를 보며 말했다.“기자분들 고생 많으셨으니 저녁 식사 후 차량을 준비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고유리는 기자들을 데리고 나가며 각자에게 돈 봉투를 나눠 주었다.그들은 어떤 내용을 발표할 수 있고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