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유강후는 살짝 헝클어진 그녀의 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물었다.“깼어?”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인 온다연은 정현준을 힐끗 쳐다보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손님 계시니까 전 우림이 보러 갈게요. 편하게 얘기 나누세요.”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침착하게 말했다.“이분은 화양대의 정 총장님이셔. 다연이 미래의 교수님이기도 하지. 미리 인사드려.”온다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교수님? 난 이미 졸업했는데 갑자기 웬 교수님?’정현준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유씨 가문의 아가씨인 유하령이 화양대를 다니고 싶어 가족들이 이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눈앞의 이 아름답고 여린 소녀는 그가 예전에 봤던 유하령과는 많이 달랐다.“대표님, 혹시 화양대에 진학시키려는 게 이분인가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차분하게 말했다.“총장님, 앞으로 우리 아기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정현준은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챘지만 차마 섣불리 물어볼 수가 없었다.유강후가 무슨 일을 계획했는지 알지 못했던 온다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화양대요? 설마 대학원?”유강후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너 예전부터 계속 공부하고 싶어 했잖아. 화양대 바로 이 근처니까 한번 다녀봐. 금융학과나 경영학과를 다니면 나중에 보고서 보는 게 훨씬 쉬워질 거야.”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에 온다연은 두 귀를 의심했다.온다연은 지금껏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는 기필코 다시 공부에 전념할 거라고 꿈꿔왔지만 아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아이가 더 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동시에 유강후의 곁에서 계속 그를 설득하다 보면 반드시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확신했다.기적은 기대하지 않는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기 마련이다.기쁨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온다연은 손님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유강후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장현준은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물었다.“다연 씨 혹시 경원 사람인가요?”그 질문을 들은 유강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싸늘하게 물었다.“그게 진학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죠?”온다연은 유강후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부드럽게 말했다.“총장님, 전 경원 토박이입니다.”정현준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친척 중에 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나요?”온다연은 정현준이 뭘 알고 싶어하는지 모른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유강후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걸 보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없습니다. 총장님이 사람을 잘못 봤나 봐요.”정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20년 넘은 일이라 가물가물하네요.”곧이어 처음 도착했을 때의 우아하고 지적인 모습을 되찾은 정현준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실례를 범했습니다. 그럼 학교에서 뵙죠.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정현준이 떠난 후 온다연은 몸을 돌려 유강후의 허리를 휘감았다.여전히 유강후가 자발적으로 이런 일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아저씨, 지금 제가 꿈꾸는 거 아니죠?”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번쩍 안아 들고 서재로 향했다.“당연하지. 우리 다연이 사모님인데 이제부터 장부 어떻게 관리하는지 배워둬야지.”잔뜩 신이 난 온다연은 그를 꽉 껴안으며 귓가에 단호하게 속삭였다.“이미 결정한 일이니까 절대 번복하면 안 돼요. 알겠죠? 갑자기 학교 못 가게 막으면 아저씨를 엄청 원망할 거예요. 아니, 다시는 아저씨랑 얘기 안 할 거예요.”기뻐하는 온다연을 보며 유강후는 기분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유지했다.“무사히 졸업해야지. 그런데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세 개 있어.”온다연은 긴장하기 시작했다.“그게 뭔데요?”유강후는 그녀를 테이블에 앉혀놓고 나지막하게 말했다.“내가 말한 대로 여기에 쓰면 돼. 어기는 순간 벌을 받게 될 거야.”온다연은 방금까지 떠오른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럼 그렇지. 날 이렇게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잖아.’“그
유강후는 온다연의 볼을 꼬집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동의 안 해도 소용없어.”그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온다연의 입술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나는 다연이가 남자 동기나 교수랑 오랫동안 대화하는 게 싫어. 여러번이면 화낼지도 몰라. 그러면 다음날 학교 못 가게 막을 수도 있어.”“다음날에 좋은 컨디션으로 공부해야 하니까 일찍 자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낮에는 하루 종일 학교에 있을 텐데 나랑 보내는 시간이 없잖아. 저녁에는 나랑 있어야지.”어쩌면 이것이 핵심 포인트다.“세 번째 조항은 솔직히 무시해도 돼. 다연이가 방금 말한 두 가지 행동만 잘 지키면 절대 내 마음대로 변경 안 하거든. 내가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 막말로 이걸 하나하나 수정할 시간도 없어.”유강후는 이미 많이 양보했다.처음에는 남자 동기와 3분 이상 대화하는 것도 금지였다.온다연이 여전히 씩씩거리며 화를 내자 유강후는 종이를 휙 가로채고 태연하게 말했다.“동의 안 하면 어쩔 수 없지. 학교 안 가도 돼. 어차피 난 처음부터 원치 않았어.”그 말을 듣고 초조해진 온다연은 재빨리 종이를 빼앗아 와 다시 한번 훑어보았지만 여전히 불쾌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일찍 자는 건 얼마든지 지킬 수 있지만 남자 동기와 교수랑 얘기하지 말라는 건 정말 무리였다.“두 번째 규칙은 지킬 수 있어요. 그런데 첫 번째는 솔직히 너무 힘들어요. 무시해도 계속 말 거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해요.”유강후는 단호한 표정으로 싸늘하게 말했다.“그럼 그 사람 혀라도 뽑아버려야지.”온다연은 어이가 없었다.“다 서로 동기인데 말 걸었다고 혀를 뽑아버리는 건 너무 몰상식한 행동이잖아요.”그 말을 끝으로 온다연은 종이를 테이블에 던지고 등을 돌렸다.화난 온다연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 유강후는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부드럽게 달랬다.“다연이가 그 사람들을 멀리하거나 말 걸어도 신경 쓰지 않고 대충 답하면 나도 절대 화내지 않을 거야. 지키기 힘든 건 아니잖아. 안 그래?”온다연은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온다연은 뭔가를 깨달은 듯 아차 싶었다.“설마 아들보다 딸을 더 좋아하는 건 아니죠?”그녀는 유강후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화를 냈다.“아저씨의 아들인데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죠? 계속 이러면 나중에 아이랑 같이 도망갈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선 가볍게 등을 토닥였다.“다연이가 낳은 아이인데 싫어할 리가 없잖아. 난 뭐든지 다 좋아.”그녀의 하얗고 부드러운 귓볼을 보니 유강후는 또 참지 못하고 한입 깨물었다.“다 좋은데 다연이를 닮은 예쁜 딸이 있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그의 입맞춤에 온몸이 찌릿해진 온다연은 재빨리 몸을 피하며 말했다.“그건 싫어요. 너무 연약하고 만만한 성격이라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어요. 아저씨를 닮는 게 훨씬 좋죠. 비록 성질은 형편없지만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는...”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의 표정은 의미심장하게 변했다.‘성질이 형편없다고 말한 거야?’유강후는 모든 인내심을 온다연에게 쏟아부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백번 양보해 학교까지 보내줬는데 돌아오는 건 성질이 형편없다는 말뿐이다.기분이 상한 유강후는 혼내주기로 결심했다.그는 온다연은 안고 침실로 향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어제 보니까 치마 하나 더 있던데 지금 당장 갈아입어.”깜짝 놀란 온다연은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안 돼요. 너무 많이 해서 몸이 힘들어요.”그러나 두 걸음도 떼지 못한 채 유강후의 품에 안겼다.“날 먼저 유혹한 건 너잖아? 힘들어도 받아들여야지.”유강후는 그녀를 번쩍 안은 채 재빨리 침실로 들어갔다.곧이어 애원을 비는 목소리가 한참 동안 방안에 울려 퍼졌다.유강후가 다시 온다연을 안고 방에서 나왔을 때 장화연은 이미 점심을 두 번이나 데워놓은 상태였다.장화연은 온다연의 목덜미가 온통 붉은 자국으로 뒤덮인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참다못해 한 소리 했다.“도련님, 다연 씨가 곧 대학원 간다는 사실을 잊으신 건 아니죠? 목이 지금처럼 빨개진 채로 동기들과 첫인사를 하게 된다면 분명
유강후의 표정은 담담했다.“그게 뭐가 많아. 어차피 임혜린 마지막 주문인데 싸게 해준 셈인지.”온다연은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이에요? 설마 혜린이 작업실을 막아버린 거예요? 아저씨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이래요? 너무 하잖아요.”유강후는 표정이 싸늘해졌다.“너무한 건 임혜린이지.”“너한테 안 좋은 것만 가르쳐줬잖아. 내가 백번 양보해서 작업실만 막아버린 거야. 이 정도에서 끝내는 걸 다행이라고 알아야지.”“네 친구인 걸 봐서 체면을 세워준 거야.”솔직히 얼마든지 경원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온다연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유강후때문에 골치가 아팠다.그런 옷을 안 좋아한다기엔 주문을 또 대량으로 넣었기에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지 못했다.“혜린한테서 안 좋은 걸 배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럼 주문은 왜 300벌이나 넣었어요?”화가 치밀어 오른 온다연과 달리 유강후는 여전히 차분했다.“넌 내 사람이야. 그러니까 널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임혜린은 그럴 자격이 없어.”더 이상 유강후와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 온다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유강후는 곧바로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앞으로 임혜린이랑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 싫어.”온다연은 이를 악물었다.“아저씨, 저번에 저랑 약속했잖아요. 친구 사귀는 건 간섭하지 않기로. 저도 친구가 필요한 사람이에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차갑게 말했다.“친구를 못 사귀게 막는 게 아니라 좋은 친구를 만나라는 거야. 이준이랑 헤어질 때 얼마나 뻔뻔했는지 알아?”“처음부터 돈 때문에 접근했어. 이준 어머님이 20억을 준다고 제안하니까 고민 없이 바로 헤어지겠다고 한 사람이 임혜린이라고.”온다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수년 동안 알고 지낸만큼 임혜린이 어떤 사람인지 온다연은 너무 잘 알았다.성격이 좀 급하면 돈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남의 재물을 탐하려고 접근하는 그런 파렴치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생각하면 할수록
한이준은 헛웃음이 나왔다.“그럴 줄 알았어. 수신인이 네 비서로 되어있더라고. 유강후, 내가 돈으로 임혜린을 막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도대체 왜 300벌이나 주문한 거야? 너 미쳤냐?”유강후의 태도는 여전했다.“내가 천 벌을 주문하든 만 벌을 주문하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이때 온다연이 그의 핸드폰을 갈아채고 한이준에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온다연입니다. 혜린이는 대표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에 환장한 사람이 아니에요. 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이지만 어릴 때부터 남녀 차별하는 집안에서 자라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가족이 많이 아파서 큰 금액의 돈이 필요했던 거예요.”한이준은 잠자코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차갑게 답했다.“그래서 뭐? 고작 그 이유때문에 날 ATM기로 사용해도 된다는 거야?”“정말 혜린이를 조금이라도 좋아했다면 인품을 의심해서는 안돼죠. 대표님처럼 명문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영원히 모를 거예요. 수백만 원으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요.”“혜린을 싫어하는 거면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대표님이 아니더라도 아껴주고 사랑해 줄 사람은 많거든요. 돈으로 옆에 묶어두면서 한편으로는 돈 때문에 굴복하는 모습을 업신여기는 게 참...”“역겹다는 생각이 드네요.”그 말을 끝으로 온다연은 곧장 전화를 끊고선 핸드폰을 유강후에게 건넸다.유강후는 흥미로운 듯 온다연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배짱이 점점 커지네? 날 욕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 내 친구까지 욕하는 거야? 속이 좀 후련해졌어?”온다연은 콧방귀를 뀌더니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작은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유강후는 하얀 국물이 담긴 삼계탕을 온다연에게 건넸다.“얼른 먹어. 장 집사가 몇 시간 동안 푹 삶은 거야.”“다 먹고 수강 신청하러 가자. 네가 좋아할 만한게 있을 거야.”온다연은 국물을 마시며 단호하게 말했다.“이번에는 아저씨 말 안 들을 거예요. 임혜린은 영원히 내 친구예요.”유강후는 못 들은 척 새우 껍질을 벗기더니 하얗고 부드러운
온다연이 몸을 떨고 있다는 게 느껴진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물었다.“왜 그래?”온다연은 작은 얼굴을 품에 파묻고 손으로 그의 코트를 꽉 움켜쥐며 눈물을 쏟아냈다.온다연이 답을 하지 않자 유강후는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었고 고운 얼굴에 몇 가닥의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었다. 조명 아래 비춰진 그녀의 피부는 눈이 부실 정도로 더욱 하얗게 빛났다.짙고 검은 눈동자로 애틋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온다연을 보니 그 청순함과 아련함을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온다연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매번 이런 눈빛으로 바라볼 때마다 유강후는 저도 모르게 음침한 생각이 들었다.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온다연을 가둬 평생 본인의 소유로 만들고 싶었다.가두고 나서는 매일 같이 괴롭혀서 울리고 이런 불쌍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게 하는 게 소원이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온다연을 학교에 보내는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아무리 꽁꽁 싸매도 온다연의 아름다움은 가려지지 않았고 오가는 남학생들은 뒤를 돌아볼 정도로 눈을 떼지 못했다.유강후는 마치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물건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밖에 내놓은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곧바로 손을 뻗어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럽게 물었다.“왜 울어? 학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다른 곳으로 바꿔줄까?”온다연은 그의 옷을 움켜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에요.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네요...”그녀는 유강후의 손에 얼굴을 비비며 조용히 말했다.“행복해요. 곁에 아저씨도 있고 아이도 있고 이제 공부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사실 꿈에서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거든요.”온다연을 코를 훌쩍이며 그의 따듯한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부모도 없이 무시만 받으며 살아온 저한테 이렇게 행복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한평생 복수만 하다가 죽는 줄 알았는데...”
온다연은 자신의 사소한 행동이 남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매점에 도착한 온다연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했다. 하나는 보온팩에 넣었고 다른 하나는 손에 쥔 채 유강후에게 다가갔다.온다연은 빨대를 꽂아 유강후에게 건넸다.“한입 먹어봐요.”그 시각 유강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온다연을 계속 쳐다보던 몇몇 남학생들을 째려봤다. 그러고선 보란 듯이 온다연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난 단 거 안 좋아해.”말투는 다소 차가웠다.“온다연, 앞으로는 남자들 보고 웃지 마. 이게 세 번째 조항이야.”속 좁게 질투하는 그의 모습이 이제는 익숙해진 온다연은 자연스레 달래주기 시작했다.온다연은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고선 다시 유강후에게 건넸다.“얼른 마셔봐요.”유강후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그러자 온다연은 옆에서 알콩달콩하게 밀크티를 마시는 커플을 가리키며 속삭였다.“봐봐요. 커플들은 이렇게 같이 마시잖아요. 나도 저런 거 하고 싶었는데...”그제야 안색이 풀린 유강후는 밀크티 한 모금 들이마셨다.너무 달아서 입에 맞지 않았지만 온다연의 기대에 찬 눈빛을 마주하니 싫어도 삼킬 수밖에 없었다.“달고 괜찮네.”온다연은 기분 좋은 듯 해맑게 웃었다.“그쵸? 단언컨대 이 세상에 밀크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여기는 맛이 살짝 별로네요. 심지어 하나에 3천 원이에요. 예전이랑 주한이랑...”말을 내뱉고서야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온다연은 재빨리 고개를 숙여 밀크티를 마시며 조심스럽게 유강후의 눈치를 살폈다.반응을 보아하니 화가 난 것 같지 않았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저랑 주한이는 아저씨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우리는...”유강후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그때도 이렇게 하나를 같이 먹었어?”거짓말하기 싫었던 온다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비쌌어요. 하나에 천 원이었는데 그때는 돈이 없었으니까... 가끔 기분 좋을 일이 있을 땐 같이 하나 서서 나눠 먹었거든요.”순간 입맛이 사라진 온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무려 임산부였다.게다가 그 남자의 품에 안겨 가냘픈 목소리로 아저씨를 찾기도 했다.남자는 그녀가 숨이 딸릴 정도로 입을 맞춘 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손을 쓰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그 꿈은 꽤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바람이 사납게 불고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내린 폭우가 쉼 없이 창문을 거세게 두드릴 때야 온다연은 몽롱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본 광경은 키 큰 남자가 창가에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었다.온다연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사람을 부르려던 찰나 그 남자가 다급히 제지했다.“부르지 말아요, 저예요!”낮은 목소리는 익숙했다.온다연은 잠시 멈칫한 끝에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그는 다름 아닌 꿈속의 그 남자였다!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인지 의문이 가득하던 찰나 온다연의 인기척을 느낀 경호원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온다연은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경호원들은 여전히 걱정되어 물었다.“아가씨, 천둥소리에 놀라셨습니까? 같이 있어 줄 사람이라도 필요하십니까?”“필요 없다니까요!”“아가씨,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거셉니다. 문을 열어주시면 창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저희가 검사해드리겠습니다!”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필요 없다고 말했잖아요. 귀찮으니까 더 말 시키지 말아요!”온다연이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경호원들도 잠잠해졌다.유강후의 옷과 바지는 모두 반쯤 젖어있었고 머리카락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강후의 기세만큼은 가려지지 않았다.게다가 옷이 젖은 탓에 거의 보일락 말락 한 그의 탄탄한 몸매에 온다연은 얼굴이 붉어졌다.“강 대표님이 왜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죠?”유강후는 창문을 닫고 몸을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깼어요?”온다연은 여전히 유강후가 창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는 듯 말했다.“여긴 2층이라고요!”유강후는 여
남자는 안윤희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채며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평범한 사람이라고?”“안 아가씨, 10년 전 금우역에서 불을 지른 일을 기억하나? 내 얼굴 좀 봐. 이 흉터, 네놈들이 지른 불 때문에 생긴 거야!”남자의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우리 부모님은 그저 평범한 농민이었어. 그들의 가장 큰 소원은 나를 잘 키워 공부를 시켜 성공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부모였어.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너희는 지나가다가 웃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분들을 악의 화신이라 규정했지! 그러고는 우리를 집 안에 가둔 채 불을 질러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어. 우리 부모님은 필사적으로 날 품에 안으셨고, 덕분에 나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어. 하지만 부모님은 그만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지.”“그분들이 무슨 죄가 있었지?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살아갈 자격조차 없었다는 거야? 몇 년 동안 너희를 찾아 헤맸어. 그렇게 한 명씩 제거했지. 너희가 세상을 정화한다고? 난 너희 같은 악마들을 정화할 거다!”남자는 안윤희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고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안윤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너희들 정말 잘 숨어 있더구나. 한 놈을 찾는 데 꼬박 반년에서 일 년이 걸렸어. 그런데 오늘은 누가 너를 직접 내게 데려다주고 돈까지 준 거야.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줄이야!”그는 안윤희를 거칠게 바닥에 내던지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형님들, 배 위에서 고기 구경 못한 지 오래됐지? 오늘 마음껏 즐겨보자!”“저기요, 이 아가씨는 신국 안씨 가문의 큰 아가씨입니다.”“걱정하지 마. 방금 뉴스에서 이 아가씨가 이미 죽었다고 나왔어. 심지어 시신도 확인됐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이 여자는 그저 안씨 가문의 아가씨를 닮은 여자일 뿐이야.”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안윤희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안 돼! 나는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너희가 날 건드리면 우리 이모부가
유강후는 진시현의 볼록하게 나온 배를 한 번 바라보며 웃음을 띠고 말했다.“얼마나 됐어?”진시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거의 다섯 달 됐어요.”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덧붙였다.“움직이기도 해요.”유강후의 눈에 잠시 어두운 빛이 스쳤다. 예전에 자신의 아이도 딱 이 정도였을 때...유강후는 곧 미소를 짓고 로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로운, 대단하네. 이제 아빠가 됐구나. 결혼식 때 참석 못한 게 많이 아쉬웠는데 나중에 네 아들 태어나면 큰 선물로 보답할게.”항상 무표정하던 로운의 얼굴에 드물게 미소가 번졌다.“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받았습니다.”유강후는 말했다.“전에 준 건 모두 준구 것이었지. 지난 몇 년 동안 잘 관리해서 자산을 두 배로 늘렸더라. 하지만 이제 아내도 있고 아이도 생겼으니 너 자신을 위해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그걸 나눠서 20% 지분을 네가 가져. 내가 네 아들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라고 생각하고.”로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뒤돌아 진시현의 볼록한 배를 몇 초간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 대표님.”“며칠 동안 도련님을 데리고 가서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조상님께 향도 한 번 올리고요.”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똑똑한 아이이니 지금처럼 잘 키우면 성년이 되기 전에 양씨 가문으로 돌아가 일을 맡길 수 있을 거다. 데려가는 건 좋지만 아직은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물론입니다.”유강후는 다시 물었다.“내가 찾으라고 한 자료는 확인했어?”로운은 묶어둔 자료를 꺼내 유강후에게 건넸다.“이것은 성염 조직에 대한 정보입니다. 인원은 많지 않지만 굉장히 단결되어 있습니다. 한 번 목표로 삼으면 끈적한 반창고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조직은 크게 두려워할 것은 없지만 상대하기엔 매우 불쾌한 존재입니다.”유강후는 자료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윤희는 여기서
유강후는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차갑고 무심한 시선으로 안윤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성염 조직, 너랑 무슨 관계야?”안윤희는 고개를 확 들어 올리며 눈빛에 불안함을 담고 대답했다.“무, 무슨 성염이요?”성염 조직은 국제적인 테러 집단으로 극단주의자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그들은 불이 모든 것을 정화한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악으로 간주한 대상은 무엇이든 태워 세계를 정화하려 했다.그들의 활동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았고 그들의 눈에 악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이로 인해 암흑가뿐만 아니라 정계에서도 성염 조직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다.유강후는 안윤희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히 말했다.“네가 어떤 조직에서 왔든 상관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둬. 만약 네가 온다연에게 손이라도 대려 한다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거야. 너희 안씨 가문과 성염 조직 모두 비참하게 끝날 테니까.”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꽉 쥐고 말했다.“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유강후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뒤돌아 걸어 나갔다.안윤희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천천히 일어섰다.방금 발에 차여 바닥에 나가떨어진 그녀는 무릎이 긁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통증을 느끼는 기색은 없었다.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사라져가는 유강후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난 분명히 널 선택했어. 그런데 날 거부하고 그 재수 없는 여자만 원한 대가가 뭔지 제대로 보게 될 거야. 다연이가 그렇게 좋다면 두 사람 다 함께 끝장내주지.”“이모, 이모부. 저는 다연이를 해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애가 먼저 제 선택을 빼앗았어요. 뻔뻔한 사람은 다연이지 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저를 탓하지 마세요.”안윤희의 낮은 혼잣말은 복도를 스치는 바람 속에 흩어졌다. 그러나 그중 일부가 안심의 귀에 닿았다.안심은 다친 채 서 있는 안윤희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니? 왜 이렇게 엉망이야?”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제가 실수로 넘어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함께한 연인처럼 자연스러운 호흡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들만의 공간은 다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던 유강후가 온다연 앞에서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를 보일 줄은.유강후는 온다연을 마치 손바닥 위에서 소중히 감싸 보호하는 것 같았다. 유강후는 모든 일을 직접 나서서 처리하며 온다연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살폈다.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성과 인내를 아끼지 않았다.그리고 온다연은 그런 그의 행동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러다 부모님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서야 온다연은 자신이 유강후의 옷소매를 잡고 있었다는 것과 방금 그 소매로 입을 닦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황급히 손을 놓고 어쩔 줄 몰라 했다.방 안에는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안윤희만 질투 어린 눈빛으로 온다연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유강후는 이 어색한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듯 즉시 사람을 시켜 과일을 준비하게 했다.게다가 그가 준비한 과일은 전부 온다연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과일이 준비되고 나서 진수현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강 대표, 당장 나가!”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너무 오래 있었다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일을 준비했으니 다연이가 다 먹는 걸 보고 나가겠습니다.”진수현은 조금의 인내도 없이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다연이 부모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우리가 충분히 지켜줄 수 있어. 그러니까 네 도움은 필요 없어. 지금 당장 나가!”유강후는 움직이지 않고 과일 접시를 들어 올려 깎은 과일 하나하나에 이쑤시개를 꽂았다. 심지어 샤인머스캣조차도 빠뜨리지 않았다.그는 과일을 다 준비한 뒤 온다연 앞에 과일 접시를 내밀며 낮게 말했다.“먹어.”온다연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과일 접시를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딸기까지 반으로 잘랐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안윤희는 눈가가 붉어진 채 무언가 말하려다 문득 들어오는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피로가 얼굴에 드러났지만 강렬한 분위기와 또렷한 외모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그는 방 안에 있는 안윤희를 힐끗 바라봤고 단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안윤희의 온몸에 서늘한 전율이 퍼졌다.그의 눈빛은 차갑고 어두웠으며, 마치 독을 품은 칼날처럼 사람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안윤희는 자신이 수많은 남자를 만나봤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무서운 눈빛을 가진 이는 유강후가 유일했다.안윤희의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고 유강후가 뭔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그러나 이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으며 관련된 사람들은 이미 모두 사라졌으니 불안할 필요가 없었다.죽은 사람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법이다.안윤희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머리를 매만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 안녕하세요.”유강후는 더 이상 안윤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곧장 온다연 앞으로 다가가 작은 약병을 건네며 말했다.“이건 곽 의사가 방금 보내준 약이야. 먹어봐.”그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세상에 수많은 아름다움이 있어도 그의 눈에는 온다연만이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인 듯했다온다연은 병을 받아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특이한 향이 풍겼고 어딘가 피 냄새와도 비슷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온다연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유강후는 병을 다시 가져가 약을 꺼내 직접 하나 삼켰다.“봐, 문제없어. 이 약 총 20알이야. 곽 의사가 그러는데, 재료가 워낙 귀해서 자기한테도 40알밖에 없었대. 그중 절반을 나한테 준 거거든. 이거 먹으면 건강 진짜 좋아질 거야. 어쩌면 앞으로 약 안 먹어도 될지도 몰라.”그가 말을 마치자 진수현은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약이 20알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하나를 먹었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야?”유강후는 아무 대꾸 없이 옆에 있던 곶감을 집어 온다연의 입가로
“너도 명색에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가문이 조금 어려운 상황이라지만, 여전히 명문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좋은 물건이 부족할 리도 없는데 왜 이러는 거니...”안심은 말을 멈추고 온다연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다연아, 그저 한 세트의 장신구일 뿐이야. 너무 기분 상하지 말고, 엄마가 더 좋은 걸로 새로 준비해 줄게.”온다연은 안윤희 눈에 잠깐 스친 뚜렷한 분노를 보고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배은망덕하다는 말이 딱 적합했다.“엄마, 더 큰 금고를 하나 마련해 주세요. 귀중한 물건들은 거기 보관하고 제가 직접 관리할게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안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물건은 네가 직접 챙기는 게 맞지.”안윤희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이건 분명 안윤희를 경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안윤희는 개의치 않았다. 고작 몇 개의 장신구일 뿐이었고 갚지 못할 정도의 거금도 아니었다. 대진 그룹의 부대표가 된다면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 온다연은 바보처럼 자신의 손에 놀아나게 되어 있을 것이다.안윤희의 눈에 스친 냉소는 온다연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지난 3년간 아버지 진수현 곁에서 많은 것을 배운 온다연은 속으로 생각했다.회사 관리를 원하지 않는 것과 관리 능력이 없는 건 엄연히 다른 거라고.비록 회사를 직접 관리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사업을 결코 남의 손에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온다연은 진수현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 말했다.“아빠, 이제 제 신분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대진 그룹을 정식으로 이어받아 앞길을 열어가고 싶습니다.”온다연의 말에 안윤희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윤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말했다.“다연아, 아직 몸이 좋지 않잖아. 건강을 회복한 뒤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아. 회사 일은 우리한테 맡겨도 되잖아.”온다연은 안윤희의 말을 무시한 채 진수현을 향해 말했다.“아빠, 언제까지 아빠 뒤에만 숨을 수는 없어요. 이
안씨 가문도 명문가이긴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할 뿐 이미 속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만약 진씨 가문이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안윤희는 제대로 된 옷 한 벌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게다가 예전에 온다연에게서 가져간 물건 중 상당수는 이미 팔아버려 이제 와서 돌려줄 수도 없었다.그때 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윤희의 눈빛이 잠시 차갑게 빛나더니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다연아, 이러지 마. 예전에 네가 선물로 줬던 물건들을 이제 와서 돌려달라니, 말이 돼? 난 우리를 자매처럼 생각했는데, 네가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어...”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안윤희를 차갑게 바라보았고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잠시 후, 진씨 부부가 방으로 들어왔다.안심은 안윤희가 온다연의 병상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곤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온다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윤희가 먼저 말했다.“이모, 다연이가 제가 예전에 받았던 장신구들을 다 돌려달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뭘 받았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일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줬어요... 어젯밤에 제가 다연이를 제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혼자 둔 걸로 저를 원망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제 일이 있었는데 말이에요...”안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안심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다연아, 정말 그런 거야?”온다연은 상체를 일으키며 안윤희를 차갑게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짜증이 치밀었다.“언니, 연기 그만해. 그동안 언니가 내 물건 가져간 건 전부 언니 멋대로였잖아. 빌린다고 말했지만, 내가 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리고 어제 언니가 가져간 건 내가 결혼식 때 쓰려고 준비해 둔 장신구였어.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건데, 그냥 가져가더라. 난 허락한 적이 없었는데. 아니면 진씨 가문 물건은 언니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이야?”온다연의 말투에는 서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언제부터 진씨 가문이 안씨 가문과 한 식구가 됐는데?”
그때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에 표시된 번호를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몇 분 후, 안윤희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안윤희는 연한 하늘색 발목 길이 드레스를 입고 하얀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 있어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침대 위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온다연의 모습이 훨씬 더 사람들의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안윤희의 마음속에 묘한 질투심이 피어올랐다.안윤희는 방 안을 둘러보고는 유강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안윤희는 장미꽃을 창가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다연아, 몸은 좀 괜찮아졌어?”하지만 온다연은 원래부터 백장미를 싫어했다. 온다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윤희를 쏘아보며 물었다.“왜 왔어?”안윤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깨어났다고 해서 와봤어. 그런데 아직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혹시 누가 진씨 가문을 노리기라도 했어?”온다연은 이번 일에 안윤희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내가 깨어난 게 언니랑 무슨 상관인데?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언니가 더 잘 알지 않아?”안윤희는 순간 당황했다.온순했던 온다연이 요즘은 마치 가시가 돋은 듯 상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다연아, 혹시 어제 내가 목걸이를 빌려 간 것 때문에 아직도 화난 거야?”안윤희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제 급해서 미처 말 못 했을 뿐이야. 그리고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은 예전에도 많았잖아.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야?”온다연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빌린 거라고? 그럼 어제 가져간 장신구 다시 돌려줄래? 내가 다시 쓸 일은 없겠지만, 그건 어머니가 내 혼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거라 남에게 줄 수는 없어.”안윤희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돌려달라고 요구하다니, 감히!원래 그 장신구는 안윤희,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온다연이 중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