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온다연을 데리고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구급차가 이미 도착해 있었고, 몇몇 의료진이 피투성이가 된 유하령을 들것에 올려 이송하고 있었다.경찰이 묻기도 전에, 유강후는 먼저 나서서 매우 차분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경찰관님, 제 아내가 조금 전 옥상에서 이 부상자를 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제 아내를 함께 끌어내리려 했죠. 저랑 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목격자입니다. 저는 이 사람을 살인 미수로 고소할 것입니다!”그는 선수를 치며 유리한 입장을 확보했다.경찰은 공정하게 처리하겠다는 듯 친절히 말했다.“함께 경찰서에 가셔서 진술을 작성해 주셔야 합니다. 저희가 공정하게 처리하겠습니다.”그때 주변의 목격자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보탰다.“정말로 그 여자가 먼저 매달려 있었습니다.”“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위에 있던 사람도 내려왔어요.”“어떻게 된 거겠어요. 구하려던 사람을 끌어내렸겠죠.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알았으면 집에서 매트를 가져오지 말 걸 그랬어요.”“여기 왜 이러죠? 몇 년 전에도 여기서 한 소년이 떨어져서 끔찍하게 죽지 않았나요...”온다연이 아까보다 더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을 느낀 유강후는 재빨리 그녀를 데리고 현장을 떠났다.하지만 진술서를 작성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변호사가 매우 신속하게 도착했다.진술 과정에서 특별히 의심받을 만한 점은 없었다.상황은 거의 유하령이 스스로 떨어졌고, 온다연은 그녀를 구하려다 반대로 끌려갔다는 쪽으로 정리되었다.경찰서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유자성이 나타났다.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유강후를 바라보며 말했다.“강후야, 정말로 형제끼리 이렇게 싸워야겠니?”유강후는 차 문을 열어 온다연을 태운 뒤, 다시 문을 닫았다.그리고 차갑게 말했다.“형, 내가 형한테 기회를 주지 않은 게 아니야. 유하령이 이렇게 된 건 전적으로 형이 방임했기 때문이지.”그의 눈에는 잠시 슬픔과 아픔이 스쳤지만, 곧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갔다.“나는 형을 늘 존경했어. 하지
유강후는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아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유자성은 점점 멀어지는 차량의 후미등을 바라보며 눈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그 외부인 하나 때문에 친조카조차 구하지 않다니!유하령은 나무에 걸려 떨어지긴 했지만, 다리가 온전치 않을 것이다. 설령 치료가 된다 해도 절뚝거리는 장애인이 될 게 분명했다.이 모든 것이 다 그 고아 여자아이 때문이었다!그녀가 살아 있는 한, 유씨 집안에는 평온한 날이 없을 것이다.유자성은 갑자기 자신이 처음부터 온다연을 몰래 없애버리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했다.밤은 깊어가고, 어둠이 온 대지를 삼켰다.온다연은 이런 공포를 겪어본 적이 없어 온종일 악몽에 시달렸다.한밤중에는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유강후는 그녀 곁을 지키며, 이미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된 사건을 처리하고 있었다.새벽 3~4시쯤, 장화연이 차를 내와 들고 들어왔다.그는 컴퓨터로 무언가를 처리하는 한편, 자신의 가슴에 기대어 잠든 온다연을 쓰다듬는 유강후를 보았다.장화연은 차를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려놓으세요. 잠든 것 같습니다.”유강후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 번 바라보더니, 기분이 몹시 좋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다연이가 영상을 직접 올린 건가? 왜 막지 않았어?”장화연은 대답했다.“다연 씨가 직접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잘못했다고 보지 않아요. 사람은 성장해야 합니다. 강씨 집안의 사모님으로서 좀 더 용감해져야 하지 않을까요.”유강후의 손이 멈췄고,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기운이 더해졌다.“내가 있는 한 다연이는 용감할 필요 없어. 다연이는 하고 싶은 건 다 해도 돼. 마음껏 제멋대로 굴어도 상관없어. 그러니 장 집사의 고루한 생각은 다연이에게 주입하지 말도록 해.”장화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잠시 후,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미 새벽 4시입니다. 이제 좀 쉬세요. 계속 버티다가는 몸이 상합니다.”유강후는 대답했다.“며칠 후 우림이 퇴원하면 이 일도
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니었어.”“로운에게 연락해서 우림이 곧 퇴원한다고 전해. 잠시 국내에 머물게 하라고.”장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다음 날 아침, 인터넷에는 더 큰 뉴스가 터져 나와 학교 폭력 사건의 화제를 완전히 묻어버렸다.게다가 하루 만에 여러 톱스타들의 스캔들이 연달아 폭로되며, 네티즌들의 관심은 모두 그쪽으로 쏠렸다.며칠이 지나자 학교 폭력 사건의 열기는 완전히 사라졌다.모든 게시글과 영상도 자취를 감췄다.게다가 악성 댓글을 단 이들까지 모두 고소당하자 더 이상 이를 언급하는 사람도 없었다.모든 것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날씨는 점점 따뜻해졌고, 드디어 아이가 퇴원하는 날이 되었다.아침 일찍부터 온다연은 가장 좋아하는 옷으로 갈아입고, 옅은 화장을 했다. 그리고 유강후까지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아침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온다연이 서두르자마자 집을 나섰다. 유강후는 그녀의 모습이 못마땅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물었다.“그렇게 급해?”온다연은 그의 넥타이를 정리해 주며 대답했다.“몇 달 동안 기다렸잖아요. 우리 아들이 드디어 돌아오는 건데, 당연히 기쁘죠.”그러다 손을 멈추고 살짝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당신은 기쁘지 않아요?”유강후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주방 카운터에 앉히고,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며 말했다.“기쁘지 않을 리가 있나. 그런데 의사와 약속한 시간이 오전 8시라 아직 시간이 있어. 퇴원 전에 종합 검사를 한 번 더 해야 하고, 몇몇 친구들도 아이를 맞이하러 오기로 했어.”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희고 부드러운 귓불을 살짝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시간이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어. 우리, 어젯밤처럼 다시 한번 해볼까?”온다연은 금세 얼굴이 새빨개졌고, 귀까지 간질간질해졌다.그녀는 얼른 유강후를 밀어내며 말했다.“안 돼요! 너무 많아요. 하루에 네다섯 번은 좀 힘들어요...”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심스럽게 덧붙였
방 안에는 은밀한 숨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둘이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유강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온다연은 다리가 풀려 힘겹게 그의 품에서 내려오려고 애썼다.유강후가 그녀를 붙잡고 물었다.“왜 그래? 병원에 아들 데리러 간다며?”온다연은 아기방을 가리키며 말했다.“예쁜 아기 바구니 하나 골라야죠.”그녀는 유강후의 손을 잡아끌며 덧붙였다.“같이 골라줘요.”아기방은 귀엽게 꾸며져 있었고, 아기용품들이 가득했다.온다연은 기뻐하며 옅은 파란색 아기 옷을 꺼내고, 같은 색 계열의 작은 신발도 골랐다. 마지막으로 같은 색의 젖병도 꺼내 바구니에 넣었다.젖병을 고르던 온다연은 무심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가,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유강후는 그녀의 생각을 눈치챈 듯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이든 나중이든, 넌 절대 모유 수유하지 못해. 그러니 생각도 하지 마.”온다연은 얼굴이 더 붉어졌지만, 더듬거리며 말했다.“그, 그런데 모유 수유가 제일 좋고 과학적이라던데...”유강후는 냉소하며 말했다.“그래도 안 돼. 최고급 산후 관리사와 영양사를 부를 테니까, 넌 오직 내 것이기만 하면 돼.”그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리며 아기 바구니도 함께 챙겼다.병원에 도착했을 땐, 한이준과 송지원이 이미 신생아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거의 동시에 봉현수와 지예솔도 도착했다.온다연은 봉현수를 매우 못마땅해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봉현수가 아이를 안아보려 할 때마다 온다연은 즉시 아이를 데리고 도망갔다.봉현수는 어리둥절해하며 유강후에게 자신이 온다연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물었다.그러나 유강후는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앞으로 제 결혼식에도 오지 마요.”봉현수는 귀찮다는 듯 그의 말을 흘려버리고, 아이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지예솔을 붙잡고 억지로 아기 돌보는 법을 배우라고 했다.지예솔은 냉담하게 몇 마디를 했고, 그 말이 봉현수를 완전히 격분
아이가 집에 돌아온 이후, 온다연은 계속 아기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작은 아이는 이제 정상적인 개월 수의 아기처럼 자라 있었다. 비록 생김새는 온다연이나 유강후를 닮지 않았지만, 여전히 매우 사랑스러웠다. 다만 지나치게 조용해서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만 가끔 소리를 냈다. 밤이 되어도 온다연은 여전히 아기와 함께 있겠다고 고집하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유강후는 그녀를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온다연은 온 마음이 아이에게만 가 있었기에 그의 복잡한 눈빛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렇게 이틀, 사흘이 지나자 이상한 점이 생겼다. 유강후가 그녀와 아이의 접촉 시간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최고의 산후 관리사 몇 명을 불러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게 했다. 처음에는 온다연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결국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니 더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점점 이상해졌다. 그녀가 아이와 함께 30분 이상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유강후는 즉시 사람을 시켜 아이를 데려갔다. 특히 아이와 함께 잠을 자는 건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 온다연은 화가 나서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녀가 화를 내든, 소리를 지르든, 심지어 두 번이나 밤중에 홧김에 집을 뛰쳐나가든, 유강후는 항상 묵묵히 뒤따라왔다. 그녀가 지쳐 걸음을 멈추면 그제야 그녀를 강제로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일이 보름 정도 계속되었다. 온다연이 또다시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리자, 유강후는 마침내 이유를 설명했다. “남자아이는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안 돼. 나도 어렸을 때 하루에 어머니와 보낸 시간이 두 시간뿐이었어.” 온다연은 그의 말에 완전히 폭발했다. “오냐오냐 키운다는 게 뭔데요? 아직 이렇게 작은 데다, 예정보다 일찍 태어났잖아요! 다른 아이들보다 약하니까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온다연은 눈이 부을 정도로 울면서 말했다. 유강후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아려왔지
유강후의 가슴이 단단히 아려왔다. 그는 그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 그 아이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그는 온다연에게 한 아이를 빚졌고, 그녀의 평생을 빚졌다. 그는 고통을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연이는 이 아이가 그렇게 좋아?” 어딘가 의미심장한 말투에 온다연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요?” 유강후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는 알아채기 힘든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평소 온다연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고, 순한 편에 속했다. 그런데 아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고집이 유난히 셌다. 오늘 밤에도 아이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와 두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붉게 부은 눈가에, 몇 가닥 눈물에 젖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하얀 뺨에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가엾고 순수해 보였다. 그 순간, 유강후는 자신이 끔찍한 악당처럼 느껴졌다. 어미와 자식을 억지로 떼어놓으려 하다니. 하지만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강경하게는 안 되니, 이번엔 부드럽게 나서기로 했다.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한 방울씩 닦아주며 부드럽게 달랬다. “그렇게 좋다면, 오늘은 조금 더 함께 있어도 돼. 그리고 앞으로 밤에도 잠깐은 같이 있을 수 있게 해줄게.”온다연은 그의 뜻밖의 양보에 깜짝 놀라며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감히 더 묻지 못하고, 혹시 그가 마음을 바꿀까 봐 급히 그의 무릎에서 내려와 아기방으로 향했다. 유강후는 그녀가 떠난 뒤 서재로 가서 장화연을 불렀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부터 다연이에게 다양한 학습 과정을 배치해. 유화, 재무관리, 경영학 등 배울 수 있는 건 전부 배우게 해. 단, 한 가지 목표는 다연이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거야.” 장화연은 요 며칠 동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유강후의
그는 온다연이 항상 그의 시야 안에만 머물렀으면 했다. 다른 사람이 그녀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일은 절대 없게 하고 싶었다. 비록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았다. 이미 반달이나 지났다. 그녀는 그와 냉전 상태로 보낸 시간이 반 이상이었다. 아이 때문에 온다연은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겨우 붙은 살도 반달 만에 모두 빠져버렸다. 예전에 말랑말랑했던 발목은 이제는 뼈가 더욱 도드라졌다.화양대는 바로 근처였다. 걸어서 십여 분, 차로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매일 직접 그녀를 데려다주고 데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밤에는 그림을 가르칠 사람을 따로 배치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루의 일정이 끝나면 밤 9시쯤이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 온다연이 아이와 잠시 시간을 보내더라도 많지는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점심시간과 저녁에 그림을 배우는 시간에는 그가 그녀와 함께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분간 장 집사 말대로 해보지. 내일 화양대 교장을 초대하도록 해.” 그는 말을 마치고 방을 나와 아이 방으로 향했다. 아이 방은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30~40평 정도 되는 공간이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방 안에서는 온다연이 아이 옆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아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자장가를 낮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유강후가 들어서자, 아이 방에 있던 보조사가 그를 보고 급히 다가왔다. “대표님.” 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 있어요.” 보조사는 온다연이 아이의 등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며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말할 수 없어 머뭇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이 집에 온 지 반달이 되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온다연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보조사는 알 수 있었다. 유강후가 온다연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마치 그녀를 자신의 보물처
유강후가 자신과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아이의 부드러운 얼굴에 가볍게 뽀뽀하며 해맑게 웃었다.“이것 봐요. 너무 부드러워요.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요?”온다연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보기만 해도 행복하네요. 너무 좋아요.”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졌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았다.“얼마큼 좋은데?”온다연은 아이의 작은 얼굴에 다시 뽀뽀하며 답했다.“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전 아이를 선택할 거예요.”말이 끝나자마자 온다연은 단번에 그의 품에 안겼다.유강후는 주저 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강압적으로 온다연의 입술을 깨물고선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실수한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해봐.”자기 아들마저도 질투하는 유강후의 모습에 온다연은 예상하지 못한 듯 웃음이 터졌다.그녀는 유강후의 목을 감싸며 귓가에 속삭였다.“아저씨, 아들까지 질투하는 건 너무하잖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분이 좋은 듯 마음이 나른해졌다.결국 참지 못하고 유강후에게 입을 맞추고선 부드럽게 말했다.“아저씨는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예요. 이제 됐죠?”유강후는 그녀의 애교섞인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고 품에 안긴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온다연, 네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무조건 나여야만 해. 아들이라도 안돼. 네 마음속에는 오직 나만 있어야 하니까.”온다연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답했다.“안 돼요. 아이를 가장 좋아하는 게 사실이니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아저씨 아들이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속 좁은 사람처럼 행동해요?”유강후는 마음이 심란했다. 질투하는 것도 맞지만 그것보다도 답답하고 착잡한 기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눈앞의 아이가 진짜 아들이라 할지라도 유강후는 온다연이 자신 이외의 사람들과 너무 가까워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그는 온다연을 품에 안은 채 밖으로 나갔다.“늦었으니까 이만 돌아가서 쉬자.”온다연은 마지못해 아이를 돌아보
그러나 온다연이 입구에 다다르기도 전에 문이 쾅 닫혔다.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는 온다연의 유일한 희망마저 닫아버렸다.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렸지만 밖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개를 돌린 온다연은 자신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오는 유강후를 보게 되었다.그녀는 겁에 질린 채 벽 모퉁이에 숨더니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마치 시간이 처음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유강후가 막 귀국했을 때 온다연은 지금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향기를 맡아도 숨이 막힐 정도였으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이제는 괜찮겠지 싶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두려움은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일지도 모른다.만약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온다연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도망칠 것이다.하지만 이 세상에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어느새 유강후는 그녀의 앞에 도착했다.그는 온다연을 번쩍 안아 올려 다시 의사에 앉혔고 온다연도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그녀는 주삿바늘이 자신의 피부를 찌르는 것 지켜보며 차가운 액체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걸 느꼈다.아프거나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왔다.눈앞의 이 남자는 그녀에게 희망을 주고 또 절망을 주었다.남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본인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게 어쩌면 더 현명할 방법일지도 모른다.유강후가 스스로 두 사람의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으니 온다연도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안정제를 투여한 그녀는 곧바로 진정되었으나 두 눈은 초점이 없었고 공허함만 가득했다.유강후는 기운이 빠진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이 심란해졌다.예전처럼 순해졌지만 그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알 수 없는 착잡한 기분을 뒤로하고 곧바로 이성을 되찾아 정신을 차렸다.이제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온다연의 곁을 지키리라 마음먹었다.그녀에게 나쁜 물에 물들인 임정아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시술은 순식간에 끝났다.입술에
온다연은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싫어요. 다시 찍고 싶지 않다고요.”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막았다.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바라보듯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입술에 있던 점은 원래 위치에 그대로 찍어.”“눈가에 있는 점은 당장 지우고.”“그리고 머리도 다시 붙여.”말투는 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온다연은 호흡이 힘들 정도로 숨이 막혔다.온다연은 유강후가 강하고 지배적인 성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그녀 또한 평범한 사람인데 이런 취급을 받으니 마치 유강후의 장난감이 된 것 같았다.유강후의 세계에서는 그가 왕이었고 온다연은 자신의 머리카락조차 마음대로 자를 권리가 없었다.사랑하지 않더라도 그의 소유물은 반드시 취향에 맞게 그가 원하는 모양이어야 한다.유강후에게서 벗어나려면 반항하며 심기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말 잘 듣는 순진한 사람을 좋아하니 이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그만이다.온다연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의도적으로 그에게서 멀어졌다.“싫어요. 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의사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강제로 데려갔다.“착하지, 말 들어. 아프지 않을 거야.”그의 말투는 매우 차분했으나 온다연은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았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이런 말투가 가장 공포스럽다.온다연은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조금 했을 뿐인데, 유강후는 그것마저도 용납할 수 없어 그녀의 의지를 조금씩 억누르고 싶어 했다.이때 의사가 마스크를 쓰고 도구를 손에 든 채 다가갔다.온다연은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다.“싫다고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강후 씨, 제발 나 좀 놔줘요.”유강후는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한 채 단호한 말투로 얘기했다.“금방 끝날 거야. 조금만 참아.”의사가 다가오자 온다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작업대를 걷어찼다.이를 본 유강후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워졌고 그는 강제
하지만 두 발짝도 못 내딛고 곧바로 유강후에게 붙잡히고 말았다.그는 온다연의 턱을 움켜쥐었다.가느다란 손가락은 그녀의 얼굴에 생긴 작은 점에 닿았다.유강후는 듣도보도 못한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이거 뭐야?”온다연은 그에게 잡힌 턱이 이따금 아파졌다.그러나 이 정도는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온다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만 눈에 담긴 분노와 원망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졌고 숨 막히는 고통이 너무 괴로웠다.그는 온다연의 착함을 알았기에 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뜻밖에도 온다연은 임정아를 알고 있었고 게다가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처럼 보였다.그 말인즉 온다연은 사실 일찍부터 유강후의 통제에서 벗어났고 보이지 않는 곳에는 그가 모르는 수많이 비밀이 숨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손에 잡히지 않고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이 느낌은 온다연이 그에게 칼을 꽂는 것보다 훨씬 더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온다연은 여전히 도발적인 눈빛으로 유강후를 바라봤고 그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어두운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했다.유강후는 손끝으로 그녀의 눈가에 찍힌 작은 점을 쓰다듬더니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그 사람을 기억하려고 이 점을 찍은 거야?”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온다연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차갑게 그를 바라봤다.그녀의 고집스러운 모습은 유강후를 미치게 만들었고 당장이라도 모든 걸 산산조각 내버릴 충동이 밀려왔다.그는 손에 힘을 주며 이를 악물고 몰아붙였다.“말해.”온다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단호하게 답했다.“맞아요.”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린 유강후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더했다.“온다연, 이제는 막 나가는구나.”“누가 찍으라고 했어?”“설마 이것도 임정아가 찍어준 거야?”온다연은 턱이 부서질 것 같은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을 긁었다
유강후는 눈시울을 붉히며 단호하게 말했다.“놔. 그냥 마음대로 하게 냅둬.”그는 온다연이 아직 자신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총을 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그러나 온다연은 결코 총을 내려놓지 않았고 오히려 총구를 그에게 겨누었다.“정아 씨는 잘못이 없어요. 제가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그 손 좀 풀어요.”임정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금방이라도 질식할 지경이었다.온다연은 다급함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순간 총알이 날아갔고 결정적인 순간에 경호원이 그녀의 손에 들린 총을 옆으로 쳐냈다.날아간 총알은 유강후 뒤에 있는 스크린을 명중했다.쨍그랑 소리와 함께 스크린이 산산조각이 났고 마치 지금 이 순간 유강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그는 손을 풀고 꼼짝하지 않은 채 멍하니 온다연을 바라봤다.사실 온다연도 자신이 총을 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헛걸음 물러섰고 많이 놀랐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그 시각 숨통이 트인 임정아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연거푸 기침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온다연은 재빨리 달려가 임정아를 부축했다.“괜찮아요?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찾아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말 죄송해요...”임정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잘못한 건 다연 씨가 아니라 저 사람이죠.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사람을 제멋대로 통제하고 괴롭히고 해치는 게 잘못된 행동이니까.”임정아는 싸늘한 눈빛으로 유강후를 째려봤다.“정말 너무하시네요. 대표님의 이런 행동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더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겠어요?”“대표님은 제정신이 아니에요. 단언컨대 나중에 이 모든 걸 똑같이 돌려받을 거예요.”이때 문이 열리며 송지원이 사람을 데리고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강후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임정아가 내 여자를 데리고 이딴 곳에 온 것도 모자라 남자까지 불러서 술 마셨어. 쟤를 어떻게 처리하든 내가 알바는 아니지만 다음부터는 조심
이때 경호원에게 제지당하던 임정아가 달려와 유강후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내가 잘랐어요. 문제 있어요? 머리를 자르든 말든 다연 씨의 자유가 아닌가요? 대표님이 무슨 자격으로 다연 씨의 자유까지 통제하려는 거죠?”“그리고 아까 그분은 옆에서 술 마신 게 전부예요. 손을 짓밟아 부러뜨리는 건 너무 잔인한 행동이 아닌가요?”“대표님처럼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아무런 시련도 없이 잘만 살고 있는 게 저는 솔직히 너무 억울해요.”“대표님도 봉현수랑 똑같은 미친X이잖아요. 당신들은 다른 사람의 진실한 마음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유강후는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았다.눈빛은 극악무도했고 마치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처럼 온몸으로 스산함을 뿜어냈다.그 모습에 임정아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더욱 분노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다연 씨도 사람이에요. 대표님 소유의 장난감이 아니라고요. 왜 머리를 자르는 것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는 거죠? 대표님이 뭔데요? 신이라도 되는 거예요?”임정아는 온다연을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다연 씨는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아요. 옆에 있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정말 모르겠어요?”“대표님이 능력 좋은 사람인 건 알겠어요. 이 바닥에서 대표님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알지만 그게 뭐 어때서요?”“다연 씨는 언젠가 대표님을 버리고 도망칠 거예요. 이건 시간문제라고요. 아무리 잡고 있어도 소용없어요.”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임정아는 눈앞의 유강후가 눈이 뒤집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은 임정아의 폭언에 끊어진 지 오래였고 순식간에 악마에 빙의되어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졸랐다.온다연을 조를 때와는 많이 달랐다. 지금의 유강후는 일말의 이성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그는 임정아를 죽이려는 마음뿐이었다.온다연을 데려간 건 둘째라 치고 머리를 자른 것도 모자라 클럽에서 남자까지 불렀으니 행동 하나하나 그의 마지노선을 넘어버렸다.특히나 마지막 한
유강후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그러게 누가 남자를 부르래? 원래는 잘 살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너 때문에 앞으로 손도 못 쓰는 병X이 된다고. 알겠어?”“이 모든 건 네가 내 말에 복종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야.”유강후는 싸늘한 눈초리로 한번 훑어보고는 단호하게 말했다.“처리해.”유강후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경호원들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가 허한을 바닥에 눌렀다.곧이어 그의 손은 잔인하게 짓밟혔고 공기 중에는 뼈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허한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이를 본 온다연은 필사적으로 반항했다.“미쳤어요? 아무런 죄 없는 사람한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에요. 강후 씨는... 반드시 천벌 받을 거예요.”아무리 발악해도 유강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손은 점점 더 뭉개졌고 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한 허한은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하지만 이것은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온다연은 괴롭힘을 당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처럼 말이다.지금 이 순간 온다연은 허한에 빙의되었고 유강후는 끔찍한 가해자나 다름없었다.눈물이 앞을 가려오며 그녀는 목 놓아 울부짖었다.“강후 씨, 당신은 악마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그거 알아요? 나도 이렇게 강후 씨 조카한테 밟혔다는거? 걔도 지금처럼 내 손을 밟았어요. 강후 씨도 그 인간들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요. 위선적인 척 좀 그만해요.”“걔는 변태를 불러와서 날 성희롱까지 했어요. 강후 씨도 똑같이 그럴 거예요?”“심지어 영상까지 찍었어요. 그 영상은 모든 사람이 보게 되었고요. 똑같이 해봐요.”“마침 경호원들이 있네요. 시켜봐요. 유하령이 했던 것처럼 똑같게.”“벼락 끝으로 밀어붙이라고요. 그러면 나중에 뛰어내려서 죽을 거예요. ”“강후 씨, 난 당신을 평생 원망할 거예요.”...흠칫한 유강후는 정신이 번쩍 들어 이성을 되찾았다.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
온다연은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본 순간 표정이 급변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는 유강후 곁을 지키며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이다.곧이어 유강후의 그림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깜짝 놀란 임정아는 서둘러 온다연을 끌어당겼다.“다연 씨, 얼른 숨어요.”그러나 온다연은 꼼짝도 하지 않고 차가운 시선으로 유강후를 쳐다보며 답했다.“안 숨을 거예요.”이 큰 경원에서도 짧은 시간 만에 그녀를 찾아냈는데 작은 룸 안에 숨는다 한들 금방 들키기 마련이다.유강후의 싸늘하고 날카로운 눈빛에는 온다연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냉혹함이 잔뜩 배어있었다.그의 발걸음은 온다연을 향해 걸어갔지만 시선은 허한의 얼굴에 머물렀다.허한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목소리에는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다.“온다연, 이 사람 누구야?”온다연은 그저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허한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온다연이 의도한 것임을 알아챘다.주한과 매우 닮아있었기에 온다연은 이 점을 이용하는 게 틀림없다.‘간이 부었네.’도망친 후 염지훈과 함께 있는 것도 모자라 임정아를 따라 이런 곳에서 남자까지 불렀으니 유강후는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는 거지?’유강후의 심장은 이리저리 잔인하게 짓밟혔고 숨 막힐듯한 고통이 찾아왔다.늘 사람들의 관심과 대접을 받으며 살아온 그에게 이런 감정은 매우 낯설었다.그가 버리는 사람은 있어도 그를 버리는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이렇게 그의 마음을 갖고 노는 사람은 온다연이 처음이다.유강후는 그동안 온다연을 너무 내버려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무슨 행동을 하든 전부 감싸준 건 그만큼 유강후가 많이 사랑한다는 뜻인데 온다연은 이런 줄도 모르고 클럽에서 남자를 부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렀다.뭔가 잘못됐음을 눈치챈 임정아는 본능적으로 온다연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대표님, 지금 뭐 하시는 거죠?”유강후는 고민도 없이 그녀를 걷어찼
남자는 맞춤 제작된 검은 셔츠와 같은 색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범한 복장일 뿐인데도 그가 입으니 유난히 고급스럽고 품격 있어 보였다.다만 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날카롭고 주변을 압도하는 기세는 누구도 쉽게 눈을 마주칠 수 없게 만들었다.곧 그는 홀 안으로 들어섰고 강렬한 눈빛으로 주변을 휘둘러보며 차갑게 말했다.“사람은 어디 있나?”이권이 황급히 대답했다.“아직 찾고 있는 중입니다. 방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립니다.”그때 매니저가 나섰다.“이보세요, 손님.경원시의 소씨 가문 들어보셨겠죠? 저희 써니 클럽 그쪽과 조금 연계가 있는데 조금만 너그럽게 봐주시는 게...”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서늘한 살기를 내뿜었다.“임정아가 있는 방 번호가 어디지?”클럽의 규칙상, 손님의 신원이나 정보를 누설하는 것은 절대 금지였다.더군다나 임정아는 이곳의 최상위 VIP 손님 중 하나였다.매니저는 눈앞의 남자가 두려웠지만 규칙을 깨고 정보를 누설할 용기는 없었다. 하여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분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 아마 잘못 찾아오신 것 같...”“우두둑!”그러나 매니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뼈가 부러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그 소리는 명확하고 잔혹했다.매니저는 무릎을 꿇고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당신 대체 누구야!”유강후는 이미 모든 인내심을 잃었다.온다연이 임정아와 함께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는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그는 매니저의 무릎을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마지막으로 묻는다. 임정아 어디에 있어?”매니저는 공포에 휩싸인 눈으로 유강후를 바라봤다. 이 남자는 자신을 죽일 작정이라는 것이 확실했다.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매니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1103호, 1103호 방에 있어요!”1103호 방 안, 온다연은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마치 술을 마신 듯 몽롱해지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그 남자는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이런 화려한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깨끗한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얼굴 또한 맑고 단정했다.눈빛은 밝으면서도 약간의 풋풋함이 스며 있었으며 눈가에 찍힌 작은 ‘눈물점’은 마치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자리해 묘한 감성을 풍겼다.놀랍게도 그의 모습은 온다연이 알고 있던 주한과 무려 7,8할이나 닮아 있었다.온다연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임정아는 온다연이 그를 바라보며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를 마음에 들어 한 줄 알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참, 역시 어린 여자애들은 다 이런 스타일 좋아하더라. 저 사람 최근 대세인 주혜성이랑 닮았잖아요. 저 사람 고르는 손님이 정말 많다니까요? 근데 다연 씨도 이런 스타일을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그러더니 손짓하며 그를 불렀다.“야, 너, 이리 와봐!”그 남자는 주위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다가왔다.부드러운 조명이 그의 몸을 감싸며 마치 석양빛을 두른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그 모습은 온다연에게 과거 학교 끝난 오후,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던 주한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그는 항상 따뜻한 미소로 이렇게 말했다.“다연아, 오늘 저녁은 단팥죽 만들어 줄게.”금세 남자는 온다연 앞에 섰다.“안녕하세요. 저는 허한이라고 합니다.”‘주한? 허한?’온다연은 잠시 멍해지며 중얼거렸다.“한아...”허언도 잠시 멍해지더니 귀 끝이 빨개졌다.“한아라고 불러도 괜찮아요.”온다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예전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텔에서 술을 팔던 일을 했었기에 이런 곳의 규칙은 잘 알고 있었다.“여기엔 무슨 술이 있어요?”허한은 테이블 위의 메뉴판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원하는 거 아무거나 고르세요.”그러자 온다연은 몇 병을 대충 골랐고 임정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술을 마시겠다고요? 미쳤어요? 다연 씨 몸 생각은 안 해요?”하지만 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허한을 바라보며 멍한 눈빛으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