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내려가서 상황 좀 볼게요.”온다연이 손해 볼까 봐 걱정됐던 장화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경호원 수십 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으니 절대 여기까지 못 올라올 거예요. 개가 짖는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겨요.”장화연이 누굴 욕하는 걸 처음 들은 온다연은 웃음이 나왔다.하지만 유씨 가문 사람들을 생각하면 웃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자 분노에 찬 강해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유강후는 내 손자야. 손자 보러 왔는데 너희들이 뭔데 허락하나 마나야.”“당장 비켜.”“어르신, 대표님께서 유씨 가문은 아무도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저희도 이게 직업이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르신이 들어가는 순간 저희는 직장을 잃을지도 모릅니다.”“강후는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어. 분명히 그 미친 X이 옆에서 시켰을 거야. 우리 강후가 지금 저렇게 된 게 다 걔때문이잖아.”...온다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며 말했다.“욕쟁이 할머니가 따로 없네요. 입 안 아파요?”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단호함과 조롱이 배어 있었다.강해숙은 온다연을 보자마자 어제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무례한 말들이 떠올랐다. 게다가 오늘은 경호원들에게 저지당해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으니 이번 생에 가장 면목 없는 순간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강해숙은 이 모든 것을 초래한 원인이 온다연이라고 확신했다.온다연이 아니었다면 유하령은 주변 사람들에게 비웃음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민준도 갑자기 사생아를 낳지 않았을 것이다.일이 이 지경에 이르니 그들과 동등한 가문의 아가씨들은 감히 아무도 유씨 가문에 시집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시집오자마자 새엄마가 되는 신세인데 누가 그걸 원하겠는가?강해숙은 온다연이 유씨 가문의 사모님 자리에 앉으려고 유강후를 꼬셨다고 생각했다.심지어 유강후가 가족들과 멀어진 가장 큰 원인이 온다연이라고 확신했다.유
온다연은 말 한마디로 심미진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아니나 다를까 심미진은 발끈하며 화를 내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나는 네 이모야. 내가 없었다면 넌 진작에 길바닥에서 굶어 죽을 운명이었어.”온다연은 어이가 없었다.“참 고맙네요. 덕분에 유씨 가문에서 10년 동안 괴롭힘을 당했거든요. 유하령한테 잘 보이려고 날 욕하고 괴롭히며 모욕하던 사람이 그쪽 아닌가? 날 방패로 삼았던 모든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가증스러운 가면은 이제 벗어던지시죠?”심미진은 표정이 돌변하더니 비통한 심정으로 말했다.“다연아, 다 너를 위한 행동인데 왜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몰라주는 거니? 하령이가 성격이 제멋대로인 건 맞지만 절대 나쁜 아이는 아니야. 욕 몇 마디하고 때렸다해서 네가 죽은 건 아니잖아. 버젓이 살아있는데 왜 그때의 일을 아직까지 물고 늘어지는지 난 정말 모르겠다.”“그리고 민준이는 네 오빠야. 어떻게 오빠를 꼬실 수가 있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강후한테 손을 댄 거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심미진은 착잡한 표정으로 온다연을 바라봤다.“그렇게 착하던 애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온다연은 기가 막혔지만 더 이상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 단호하게 말했다.“강후 씨는 절대 당신들을 만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계속 소란 피우시면 경호원에게 쫓아내라고 부탁할 겁니다.”강해숙은 호통을 쳤다.“여긴 강후 명의로 된 병원이야.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아들 하나 낳았다고 유씨 가문에서 널 인정해 줄 것 같아?”온다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단호하게 말했다.“똑바로 들으세요. 제 아들의 이름은 강우림이에요. 유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당연히 인정 따윈 필요 없겠죠? 강씨 가문에서 사랑받으며 자랄 아이예요. 그러니까 제발 신경 끄세요.”온다연이 또박또박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강해숙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강씨 가문과 비하면 그쪽 집안
온다연은 싸늘하게 웃었다.“강후 씨한테 약을 주사할 때는 걱정이 안 됐나 봐요?”“형제라는 핑계로 감성팔이 하지 마요. 어차피 나한테는 그런 게 안 먹히니까.”이때 아주 미세한 ‘딩’소리가 들려왔다.그러나 너무 경미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유자성에게 다가가 혐오스러운 말투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당신은 내가 지금껏 본 사람 중에 가장 역겹고 가증스러운 인간이야.”“회장님한테는 당신 같은 아들이 있다는 게 제일 큰 오점이야.”“물론 당신 딸과 아들도 마찬가지야. 똑같이 역겹고 이기적이거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법까지 어겼으니 유씨 가문이 무너지게 된다면 가장 큰 원인이 그쪽일지도?”“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 집에서 놀고먹는 백수래. 능력 있는 강후 씨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신세잖아? 게다가 철없고 멍청한 자식들까지 있으니 말 다 했지. 당신 자식들은 강후 씨 돈 쓰는 것밖에 할 줄 모르잖아?”온다연은 의도적으로 유자성의 화를 불러일으켰다.그 결과는 성공했다.늘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해왔던 유자성은 온다연의 말에 분노가 타올랐다.결국 온다연의 뺨을 때렸고 온다연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싸가지 없는 천박한 X. 내가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너 같은 건 바로 죽여버려.”온다연이 내뱉은 말은 그의 가장 아픈 상처를 건드렸다.아버지인 유재성은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라에서 인정해 주는 최고의 인재 중 한 명이다.동생인 유강후는 아버지 유재성을 능가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고 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중간에 끼어 볼품없는 신세가 됐다.정치적 안목이 탁월하고 전략을 잘 세우는 아버지에 비해 능력이 뒤떨어졌고 금융 천재인 동생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지난 몇 년 동안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못 들은 척 웃어넘겼다.그런데 하필이면 보잘 것 없는 온다연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으니 바로 뚜껑이 열렸고 오늘 온다연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로 마음
유강후가 답했다.“일어나면 좋은 거 아니야?”그는 온다연을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눈물 흘릴 가치도 없는 사람인데 왜 울어. 울지 말고 뒤에 가만히 있어.”유강후는 그녀가 심미진 때문에 울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매번 이런 상황이니 심미진이 유독 눈에 거슬렸고 싸늘한 눈빛으로 째려볼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억울한 심미진은 섬뜩한 유강후의 시선에 두피가 저릿해졌고 불길한 예감이 밀려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녀는 재빨리 다가가 유자성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소심하게 말했다.“자성 씨, 우리 이만 돌아가는 게 어때요?”그 말을 들은 유강후는 단호하게 말했다.“내 사람 건드려놓고 이대로 간다고요?”유자성은 그의 뒤에 드러난 작은 그림자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후야, 정말 모르겠어?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의도적으로 꾸민 일이잖아.”유강후는 차가웠다.“날 쓰러뜨리고 약물을 주사하고 모르는 여자랑 방에 가둔 것까지 다 다연이가 꾸민 일이에요?”미간을 찌푸린 채 서 있던 유자성은 여전히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듯 아주 당당했다.“강후야, 넌 지금 쟤한테 완전히 홀려서 제정신이 아니야. 이렇게 해야만 네가 마음을 돌릴 수 있다니까?”“닥쳐.”유강후는 여전히 차갑고 단호했다.“날 위한 일이라고? 너처럼 무능력한 인간이 내 형이라는 게 참 부끄럽네. 이제부터 우리는 형제가 아니야.”“그리고 이 일은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각오하는 게 좋아. 예전에 당신들이 다연이한테 했던 짓도 내가 끝까지 조사할 생각이고.”“또한 지난 몇 년 동안 형네 자식들한테 투자했던 모든 돈을 돌려받을 거야.”“3일 줄 테니까 한 푼도 빠짐없이 전부 원상복구 시켜놔. 안 그러면 미래 그룹과 우주 그룹의 법무팀 총동원해서 유하령, 유민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거니까.”유자성의 얼굴은 극도로 추악해졌다.“강후야, 그제 무슨 말이니?”유강후는 또박또박 냉혹하기 그지없는 말을 내뱉었다.“듣는 그대로야. 오늘부터 우린 형제가
유강후는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마자 온다연의 손을 놓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좁은 공간에는 숨 막힐듯한 정적만이 가득했다.온다연은 불편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가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중얼거렸다.“아저씨...”유강후는 지금 화났다. 그것도 아주 많이.하지만 이제 유씨 가문과 사이가 틀어지기로 마음먹은 이상 유강후가 화났다 한들 자신의 선택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겉보기에는 현명하고 단호해 보이지만 이런 일에는 속이 매우 좁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유강후의 화를 풀어주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아니나 다를까 유강후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할 때까지 유강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를 나오고선 곧바로 병실로 향했다.온다연은 서러운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안에 가만히 서 있었다.“아저씨...”유강후는 그녀가 따라오지 못한 걸 의식하고선 흠칫하더니 걸음을 늦췄다.이를 본 온다연은 재빨리 달려가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왜 대답 안 해요?”유강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그는 생각 없이 행동하는 온다연이 미우면서도 걱정되었다.안 그래도 여린 사람이 혼자서 유씨 가문과 맞서 싸우려고 했으니 제 발로 호랑이굴에 걸어가는 셈이나 다름없다.유강후도 그들을 상대할 땐 정신을 바짝 차리는데 온다연처럼 연약한 사람이 그것도 혼자서 덤볐다가는 뼈조차 남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그녀의 무모한 행동을 생각하니 표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던 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병실로 걸어갔다.이 방법이 먹히지 않자 온다연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장화연은 차례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한 명은 냉담한 표정이고 한 명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마냥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그 모습을 본 장화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도련님, 계속 주무세요. 그러면 몸이 더 빨리 회복될 거예요.”그 말을 들은 온다연은 재빨리 유강후에게 다가갔다.“제가 옷 갈아입혀 줄게요.”그렇게
“우리 아빠 병원에서, 그 사람들이 내가 방심한 틈을 타 약물을 바로 주사했어. 1~2초 만에 정신을 잃었지.”“그 사람들이 나한테도 이럴 정도라면, 너한테는 더 가차 없을 거야. 다연아, 아까 장 집사가 네가 혼자 내려갔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그는 말을 끝내지 않았지만,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온다연은 유자성이 그렇게 대담할 줄 몰랐다. 유재성이 머물고 있는 병원은 최고급 관료들이 지내는 곳이다. 경비가 삼엄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유자성이 유강후에게 약물을 주사하다니.게다가 유강후는 그의 친동생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냉혹하고 수법이 교묘하더라도, 이번만큼은 온다연이 절대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다연아, 걱정 마. 이번에는 과거의 모든 빚을 깨끗이 청산할 거야!”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정말로 유씨 집안과 결별할 생각이에요?”사실 그녀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유씨 집안의 일원이었다. 유씨 집안은 그녀에게는 끔찍한 짓을 했어도, 유강후에게는 아무런 빚이 없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복잡한 감정이 담긴 깊은 눈빛을 띠었다.“결별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앞으로 우리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뿐일 거야. 만약 아버지가 형을 선택한다면, 나는 유씨 집안에서 발을 뺄 거야.”그는 잠시 멈추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내가 지금까지 유씨 집안에 얼마나 많은 것을 바쳤는지 알잖아. 내 몫은 모두 가져갈 거야. 그리고 너를 괴롭힌 사람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만들 거야!”온다연은 얼굴을 그의 가슴에 댄 채, 조용히 그 힘찬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말했다.“회장님은 당신의 친아버지이고 당신과 유자성 씨는 둘 다 그분의 아들인데, 그분도 괴로워하시겠죠.”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냉랭하게 말했다.“아버지께서 형에게 충분히 잘해 주셨지. 형 스
온다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가 그 당시 상황을 대충 설명해 줬어요. 집사님 생각엔, 한재민이 죽고 나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이 누구일까요?”장화연은 온다연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은별은 한재민과 한때 관계가 있었잖아요. 아이는 끝내 태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한씨 집안의 배려를 받았겠죠. 그리고 한재민은 아저씨를 구하려다 죽었고, 그 과정에서 아이까지 잃게 됐으니 아저씨는 자연히 나은별에게 큰 빚을 진 셈이죠.”“그야말로 평생 갚을 수 없는 큰 빚이에요.”“나은별의 계산은 아주 치밀했어요. 아저씨가 죄책감에 자기와 결혼하면, 나은별은 유씨 집안과 강씨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 재벌로 살아갈 수 있고, 나씨 집안도 덩달아 번창할 테니까요. 만약 아저씨가 결혼하지 않는다 해도, 아저씨는 나씨 집안의 부를 유지시켜 줄 겁니다.”장화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연 씨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똑똑하시군요.”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하지만 아저씨처럼 똑똑한 사람이 왜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며칠 전에도 나씨 집안이 재정 문제가 생기자 몇백 억을 지원해 줬더라고요.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닌데... 아저씨는 누구보다 힘들게 일하고, 아파도, 피곤해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잖아요. 나는 아저씨가 더 이상 속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장화연은 잠든 유강후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그녀가 직접 키운 아이였다. 그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그녀는 다 지켜봐 왔다.“도련님은 한재민 씨와 형제처럼 가까웠어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면서 누구보다 돈독했죠. 아마 형제가 좋아했던 여자를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게다가 나은별 씨도 도련님과 함께 자란 사람이잖아요. 도련님은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 가장 정이 깊은 사람이에요.”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그 모
온다연은 단호히 그의 말을 끊었다.“이 통화는 녹음됐어요. 이 번호로 당신을 추적해서 법원 소환장을 받게 할 겁니다. 기다려 보세요.”그쪽에서는 크게 웃으며 전혀 믿지 않는 태도로 말했다.“남자 없이는 살지도 못하는 첩 주제에 스폰서를 고소하겠다고? 듣자 하니, 네가 하룻밤에 60만 원이라며? 오빠는 6백만 줄게...”온다연은 무표정하게 전화를 끊었다.처음으로 이런 변태와 온라인 폭력을 직접 대면하자 그녀의 손이 약간 떨렸다.그녀는 무심코 유강후를 바라보았다.그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깨어날 기미는 없었다.온다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이 번호가 유출됐어요. 더는 쓸 수 없겠지만, 들어온 전화와 메시지를 모아 지역 법 집행 기관에 넘기면 됩니다.”장화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번호는 암호화된 번호였어요. 보통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는데, 지금은 누군가 암호를 해독한 거죠. 배후에서 조종하는 자들이 대단히 뻔뻔하네요. 도련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온다연은 차갑게 말했다.“아저씨를 이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유씨 집안 말고 또 어디 있겠어요? 그 사람들은 아저씨가 정말로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거죠.”온다연은 장화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집사님, 저 집사님 도움이 필요해요.”장화연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온다연이 말했다.“아저씨는 유씨 집안 사람이고, 결국 그 사람들과 피를 나눈 가족이에요. 제가 아저씨에게 직접 그 관계를 끊는 나쁜 역할을 맡길 수는 없어요. 그렇게 되면 아저씨에 대한 외부의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설 겁니다.“하지만 전 유씨 집안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이 악역은 제가 맡을게요.”“집사님, 저를 도와주세요.”유강후가 잠든 동안, 온다연은 그의 컴퓨터에서 다른 영상을 찾아냈다.그 과정에서 그녀는 다른 영상도 발견했다.과거 그녀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감옥에서 작성한 반성문과 그 당시 진짜 배후가 누구인지 지목한 내용이었다.
유강후는 애정 어린 눈길로 온다연을 바라봤다.“걱정돼요?”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대답 좀 똑바로 하면 안 돼요?”그러자 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더니 가볍게 입을 맞췄다.“유나 씨랑 같이 있으면 그렇게 못해요.”온다연은 화가 난 듯 그의 손을 뿌리쳤다.“이럴 줄 알았으면 아빠한테 한 대 더 때리라고 할걸.”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를 거예요.”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던 온다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아무튼 그냥 내 곁에 있으면 돼요. 어디에도 가지 말고.”...곽혜진이 준 연고는 효과가 엄청 좋았다. 불과 일주일 만에 유강후의 몸에 난 흉터가 많이 회복되었다.나중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약과 큰 약수통을 보내왔고 유강후에게 매일 일정량을 욕조에 넣은 후 씻어야 한다고 당부했다.정말 혀를 내두를 수 있는 실력이다. 단 보름만에 유강후의 상처는 이미 절반 이상 회복되었다.점심 무렵, 이권이 욕조에 약수를 넣으려고 하자 유강후가 재빨리 말렸다.“이제 안 넣어도 돼.”이권은 의아했다.“혜진 씨가 이걸 넣어야 빨리 회복된다고 했어요. 이 약수가 진짜 보물인가 봐요. 도련님이 하도 빨리 회복하니까 병원에서는 체질이 타고났다면서 혈액 검사해 봐도 되냐고 연락이 왔다니까요?”유강후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넣지 말라고 하면 그냥 하지 마. 이정도 되면 천천히 회복해야 돼. 약수는 엄마랑 진씨 가문에 좀 보내고, 남은 건 네가 애들이랑 나눠서 가져.”이권은 마법의 약수를 얻었다는 생각에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도련님, 감사합니다. 혜진 씨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칭찬하는 줄 알았는데, 직접 실력을 보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아참, 도련님은 일부러 천천히 나으려고 이러시는 거죠?”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뭔 말이 이렇게 많아. 갖기 싫어서 이러는 거야? 그럼 다른 사람한테 줄게.”그러자
온다연은 어안이 벙벙했다.“왜 한 달 동안 사과를 깎았어요?”유강후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사과를 잘게 썰어 먹여달라고 얘기했다.그러나 몇 입 먹기도 전에 진수현 부부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찰싹 달라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진수현은 곧바로 표정이 어두워졌다.이때 안심이 옆에서 눈치를 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성질머리 좀 죽여요. 유나를 다친 게 한 것만으로도 부족해요?”진수현은 그제야 화를 참으며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유나야, 엄마가 상처 좀 확인하고 싶다네? 같이 나가봐.”온다연은 머뭇거리다가 손에 든 사과 접시를 내려놓더니 유강후와 진수현은 번갈아 바라봤다.“아빠, 때리지 마요. 이 상태에서 더 때리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온다연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그날은 제가 먼저 강 대표님한테 다가갔어요. 강 대표님은 아무 잘못 없어요.”진수현은 사랑을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딸 앞에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안 때리니까 엄마랑 같이 나가봐.”온다연이 나가자 진수현은 곧바로 얼굴을 찌푸렸다.“감히 내 딸을 사과 깎게 만들어? 손이 없어 발이 없어?”말을 내뱉고 나서야 유강후가 본인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작 이 정도로 끝났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사내자식이 그것도 못 버텨? 10대 맞고 쓰러진 게 남자니? 이렇게 약해빠져서야 되겠어?”유강후가 답했다.“아직 끝났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회장님이 어떻게 하시든 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진수현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유나가 며칠 동안 널 돌보겠다고 애원하지 않았다면 병문안 보내지도 않았어. 괜히 무안하게 만들거나 무시하고 괴롭히면 그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유나의 과거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어? H국 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강 대표는 알고 있지? 빠짐없이 얘기해 봐.”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말을 이었다.“네. 건강이 회복되면 직접 자료를 정리해서...”
마음이 약해진 온다연은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속삭였다.“책임 안 진다고 한 적은 없는데...”“무조건 책임져야죠. 전 이미 진씨 가문에 얘기했고 유나 씨는 이제 우리 집안 며느리가 될 사람이에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다연은 몸을 일으켜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이제 그만 얘기해요.”부드러운 입술이 얼굴에 닿자 유강후는 순간 눈앞이 맑아졌다.예전에 온다연은 매일 아침 이렇게 그에게 입을 맞추곤 했다.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녀의 입맞춤을 얻으려면 살갗이 찢겨지는 고통과 바꾸어야 한다.유강후는 씁쓸한 마음에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움켜쥐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이렇게 해야죠. 볼에 한 건 무효.”온다연은 온몸에 상처를 입고 있음에도 제멋대로 행동하는 유강후가 걱정되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밀어냈다.“강 대표님, 정말...”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강후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눈을 감는 그의 모습이 보였고 거즈에 묻은 피는 점점 더 커져서 퍼지기 시작했다.온다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상처가 터진 거죠? 제가 가서 의사 선생님 모셔 올게요.”그러자 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가지 마요.”온다연은 그의 가슴에 묻은 엄청난 양의 피를 보며 몹시 걱정되었다.“안가 요.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온다니까요?”유강후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괜찮으니까 안 불러도 돼요. 유나 씨는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옆에 있어 줘요. 그럼 안 아파요.”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말을 듣고 온다연은 눈물이 차올랐다.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우리 예전에...”“예전에...”유강후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한 나쁜 여자가 있었는데, 약속을 어기고 3년 동안 아무 소식도 없이 떠났어요.”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마치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고 그 안에는 파란만장한 시간과 감정이 담겨있었다.하지만 온다연은 그가
온다연의 눈은 희미하게 충혈되었고 눈 밑에는 검푸른 다크써클도 내려왔다.딱 봐도 제대로 쉬지 못한 사람의 모양이었다.유강후가 깨어나자 그녀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드디어 깼네요.”“물 마실래요?”그러더니 따뜻한 물을 한 잔 부어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따라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뒤돌아봐요. 상처 좀 보게.”유강후는 상반신 전체가 거즈로 감겨 있어 움직임이 불편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찢어진 피부에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아주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눈앞이 어두워졌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온다연의 상처가 제일 먼저 걱정되었다.온다연은 순순히 돌아서서 등에 걸친 옷을 들어 올렸다.눈처럼 새하얀 그녀의 등에는 흉측한 상처가 있었다. 워낙 피부가 하얗고 부드러운 탓인지 유난히 흉터가 더 돋보였고 다소 충격적이었다.유강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았다.“아직도 아파요?”온다연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곽 의사님이 보내준 약을 발랐더니 많이 좋아졌어요.”“우리 아빠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면서 도대체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한 거예요? 숨겼어도 됐잖아요.”유강후는 그녀를 옆에 앉히고선 천천히 옷을 내려주며 말했다.“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잖아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않겠어요?”온다연은 유강후의 몸을 감싼 거즈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더니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흉터가 많이 남을텐데...”그러자 유강후는 무덤덤하게 말했다.“남자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그런데 유나 씨가 보기 흉하다고 하면 피부 이식받을게요.”그 한마디에 온다연은 몸 둘 바를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바라보며 말했다.“보기 흉하다고 한 적은 없는데...”유강후는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하얀 목을 보더니 가슴이 간질거렸다.오랫동안 고생만 하다가 이제야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하
그 말에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표정도 한층 부드러워졌다“괜찮아요. 당연히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죠. 다른 건 나중에 얘기해요.”“미안해요, 지훈 씨.”“미안해. 유나야.”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그리고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그러나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염지훈의 등 뒤로 젊은 여자가 나타났다.“차는 없어요. 아메리카노 가져왔으니까 마시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요.”그 여자는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꽤 늠름해 보였고 염지훈 앞으로 다가오더니 커피 한잔을 무심하게 툭 내려놓았다.그러나 곧이어 커피가 쏟아져 앞에 놓인 서류들을 적셨다.화가 난 염지훈은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권예진, 내가 일할 때 방해하지 말라고 얘기했지? 다시 한번 이러면 그 손목 잘라버린다. 명심해.”권예진이라고 불리는 여자는 아파서 소리를 지르더니 염지훈의 손을 뿌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아빠가 아니었으면 그쪽 비서 같은 건 죽어도 안 해요. 제발 빨리 죽어요.”“꺼져.”그러자 권예진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문이 닫히자 염지훈은 관자놀이를 비비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미안해. 갑자기 욱했네.”온다연은 다소 거친 염지훈의 행동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기억 속의 염지훈은 늘 부드러우며 다정한 사람이었고 소리높여 얘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온다연이 말이 없자 염지훈은 당황한 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오해하지 마. 우리 아빠랑 예진이 아빠가 절친이셨거든. 나랑 예진이는 어릴 때 잠깐 알고 지낸 사이였고 그 후로 연락 안 했어. 그런데 며칠 전에 아빠가 갑자기 돌봐달라고 부탁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온다연은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요. 나이가 어려 보이던데 화만 내지 말고 잘 타일러요.”염지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솔직히 돌봐줄 시간이 없어. 여러 가지 사건이 터지다 보니 쟤를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네. 내일 바로 비서한테 넘길 거야.”“아참, 아까 미안하다고 했지? 뭐가?
지난 몇 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기억났고, 온다연은 자신이 과거에 정말 유강후를 알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두 사람은 연인이었을지도 모른다.그렇지 않다면 왜 처음 유강후를 보고 처음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토록 가슴이 미어졌겠는가?게다가 그녀는 항상 자신도 모르게 유강후에게 끌렸고 그의 무심한 눈빛만으로도 하루 종일 얼굴을 붉히곤 했다.‘우리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과거가 있었을까?’‘강 대표님은 왜 계속 회피하는 것 같지?’그가 건강을 회복하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만약 그들의 과거가 아름다웠다면 정식으로 다시 만나도 전혀 무방하지 않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온다연은 그의 침대 옆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그리고 그녀는 긴 악몽을 꿨다.꿈속에는 여전히 피가 가득했다. 유강후는 그녀를 구하려다 여러 번 칼에 찔렸고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거의 숨을 거둔 상태였다.온다연은 울고 비명을 지르며 애원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게다가 이 일로 유강후의 가족들이 그녀를 증오했다.꿈속에서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하고 험악한 말로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저주했다.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매일 넋이 나간 채 유강후의 병상 옆을 지켰다.나중에 그는 마침내 깨어났지만 온다연이 쓰러지고 말았다.또 한참이 지나 온다연이 의식을 되찾았을 땐 그에게 아이가 생겼다고 말했다.유강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표정에서 깊은 수심이 느껴졌다.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즐겁고 행복하던 나날은 아이가 태어나던 날에 갑작스럽게 끝났다.그날 아이가 떠났다.모든 게 꿈이란걸 알았지만 온다연은 온몸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그러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절벽 끝에 서게 되었다.큰 굉음과 함께 그녀는 바닥에 빠졌고 모든 것이 끝을 맺으며 온다연은 악몽에서 깨어났다.그녀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으며 부드럽게 유강후의 손을 잡았다.깨어 있는데
온다연은 극심한 고통에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억지로 버티면서 유강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아파요?”유강후는 눈시울을 붉히더니 무릎을 꿇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왜 갑자기 뛰어들었어요? 이건 나랑 회장님 사이의 일인데...”그녀는 유강후의 입가에 맺힌 핏자국을 닦고 싶었지만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시야가 어두워졌고, 결국 유강후의 품에서 의식을 잃었다.이를 본 유강후는 충격에 빠졌다.“유나 씨!”이때 진수현도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어 딸을 안으려고 했지만 안심이 그를 붙잡았다.“툭하면 욱하는 성질머리 좀 고쳐요. 언제까지 이럴 거예요?”유강후가 딸을 안고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에 진수현은 후회가 밀려왔다.“유나가 갑자기 달려들 줄은 몰랐어.”진수현은 다가가 온다연을 안으려고 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안심이 그를 또다시 말렸다.“강 대표한테 맡기죠.”진수현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하지만...”그러자 안심이 입을 열었다.“수현 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그런데 수현 씨도 한때 젊은 시절이 있었으니 잘 알잖아요. 진씨 가문이 예전에 우리를 어떻게 괴롭혔는지.”“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유나도 겪었으면 좋겠어요?”그 말에 이성을 되찾은 진수현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안심과 함께 그들의 뒤를 따랐다.병원에 도착하여 의사에게 직접 온다연을 넘겨주고 나서야 유강후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그의 등, 가슴, 복부 전체에는 이미 멀쩡한 살점이 없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핏자국이 옷과 함께 말라붙었고 옷을 떼어낼 때마다 살갗이 한 겹 벗겨지는 느낌이었다.때마침 눈을 뜬 온다연은 유강후를 만나겠다며 난동을 피웠고, 결국 응급실로 들어가자마자 의사가 피 묻은 옷을 찢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터뜨리며 달려가더니 의사에게 그만하라며 소리쳤다.안심이 강제로 그녀를 끌고가 상처를 치료할 때까지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진수현 역시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그는
손을 들어 올리자 채찍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유강후의 몸에 떨어졌다.탁!둔탁한 소리에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유강후의 옷은 곧바로 찢겨졌고 살갗도 금세 갈라졌다.순식간에 등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보기 흉할 정도로 섬뜩했다.진수현은 차갑게 웃었다.“아파? 이건 시작일 뿐이야. 내 딸을 괴롭힌 대가는 치러야지.”유강후는 주먹을 불끈 쥐고 진수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계속하시죠.”그 말에 진수현은 어이가 없는 듯 피식 웃었다.“죽을 때가 되면 정신을 차리겠지.”말이 끝나는 동시에 날카로운 채찍이 연달아 날아들었다.채찍을 맞으며 유강후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꼈지만 등을 곧게 펴고 조금의 신음도 내지 않았다.진수현은 꺾이지 않는 그의 고집에 화가 난 듯 또다시 몇 차례 채찍질을 했다.이 채찍은 금속으로 특수 제작된 거라 특히나 무게감이 상당했고 일반인은 한 대만 맞아도 뼈가 부러질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세 대를 맞는 순간 의식 잃고 쓰러져 6개월 동안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유강후처럼 튼튼한 체격을 가졌더라도 여섯, 일곱 번의 채찍을 맞고 나면 슬슬 한계가 온다.아니나 다를까 그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반쯤 무릎을 꿇었다.입고 있는 옷은 전부 찢겨졌고 살갗은 뒤집혀 피투성이가 되어 끔찍하기 그지없었다.그는 한 손으로 바닥을 짚더니 등을 꼿꼿이 세운 뒤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닦으며 말했다.“계속하시죠.”그러자 진수현이 차갑게 말했다.“생각보다 대단하네. 하지만 내가 인정을 베풀 거라는 착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한대도 빠짐없이 때릴 거거든.”말이 끝나기 무섭게 작은 그림자가 뛰어왔다.“아빠, 그만해요.”진수현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막아.”그러자 경호원들은 즉시 온다연을 막았다.온다연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아빠, 제가 다 설명할게요. 정말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강 대표님은 절 괴롭힌 적이 없어요.”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유강후를 향했고 곧바로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
이권과 경호원들은 어쩔 수 없이 총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경계하며 총을 움켜쥐고 있었다.그들의 시선은 진수현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그가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듯 긴장함을 늦추지 않았다.진수현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참 잘하는 짓이다. 경호원들을 동원했다고 해서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아?”유강후가 입을 열었다.“전 싸우러 온 게 아니라 회장님과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그는 몸을 돌려 경호원들을 향해 소리쳤다.“다 나가.”경호원들은 눈치를 살피다가 마지못해 천천히 문 쪽으로 물러섰다.진수현은 피식 웃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총을 그에게 집어던졌다.“내 딸을 괴롭혀놓고 감히 뻔뻔하게 찾아와서 행패를 부려? 동의를 얻고 싶다고? 안될 건 없지. 다만 조건이 있어.”“첫째, 네 다리를 하나 내놓는다. 둘째, 서른 대의 채찍질을 받는다.”“이걸 할 수 있다면 진지하게 두 사람의 결혼을 고민해 보지.”유강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총구를 자신의 다리에 겨누었다.이를 본 이권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달려와 유강후를 감싸안았다.“안 됩니다.”유강후는 그를 뿌리치고 단호하게 말했다.“누가 들어오래? 나가.”이권은 그를 껴안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정말 다리를 쏠 생각입니까?”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마지막 경고야. 계속 내 옆에서 일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물러서.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어?”“도련님, 제가 어떻게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겠습니까.”유강후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손을 들어 이권의 목덜미를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눈앞이 캄캄해진 이권은 곧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데려가.”경호원들이 이권을 데리고 나가자 진수현이 차갑게 말했다.“왜? 이제 와서 겁나?”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총을 꽉 움켜쥐더니 총구를 자신의 왼쪽 다리에 겨누었다.그러고선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진수현은 여전히 눈 하나 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