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이 나지막이 말했다.“주희야, 남하윤 씨는 좋은 사람이고 너한테도 잘하니까 잘 만나 봐. 더 이상 그런 극단적인 짓을 하지 말고. 뭐가 소중한지를 알아야 해.”주희는 눈을 내리깐 채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고 나지막이 말했다.“누나는 그렇게 사는 게 좋아요?”온다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주희야, 내게는 사랑하는 아기가 있어.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너도 앞으로 나아갈래?”조용히 웃는 주희, 웃는 모습이 우는 것 같았다.“누나, 예전에 우리 셋이 약속했잖아요. 누나가 집을 받으면 함께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살기로. 이제 나는 돈이 부족하지 않으니 집을 받지 않아도 돼요. 나랑 함께 떠나는 게 어때요?”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강후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옛날 일을 가지고 역겹게 굴지 마. 나와 다연은 아이가 있고 곧 결혼도 할 거야. 죽고 싶으면 혼자 조용히 죽어.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주희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유강후를 가리켰다.“누구나 다 되지만 저 사람은 안 돼요. 유강후는 유씨 집안 사람이잖아요.”“형이 어떻게 죽었는지 잊었어요? 유씨 집안 사람한테 죽임을 당했잖아요. 누나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반대할 권리가 없지만 유씨 집안 사람은 안 돼요.”온다연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주희야, 그렇게 오랜 세월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도 알잖아. 이제 아기가 생겼으니 쓸데없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고, 내 아이의 아빠면 돼.”주희는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누나는 우리 형과의 약속을 잊었네요. 스물다섯 살 때...”온다연이 직접 그의 말을 잘랐다.“그건 나와 네 형 사이의 일이니 너와 상관없어.”그녀는 주희 옆에 있는 남하윤을 쳐다보았다. 남하윤은 극히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그 시선을 피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희야, 나는 앞으로 내 아이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거야. 더 이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을 거니까
유강후는 몸이 약간 경직되어 있었다. 그녀는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쳐든 후 그의 턱에 뽀뽀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우리가 그 일은 하지 않았다고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그녀를 안아 들었고, 몇 걸음 만에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가 자주 묵던 방에 들어선 그는 침대에 앉아 그녀를 자기 다리에 올려놓은 후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온다연은 그의 시선에 머리가 쭈뼛 섰다.그녀는 유강후가 정말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온다연은 어떻게 해야 화를 풀어줄 수 있을지 몰라 가녀린 손으로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아저씨, 저, 저는 정말...”유강후는 굳은 얼굴로 젤리같이 매혹적인 그녀의 입술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뽀뽀한 적은 있어?”온다연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연인도 아닌데 왜 뽀뽀를 하지?’하지만 이마에 뽀뽀한 적은 있다.그래서 그녀는 성실하게 대답했다.“이마에 뽀뽀한 적이 있어요.”그녀를 껴안은 유강후의 손에 갑자기 힘이 실렸다. 활활 타오르는 질투심 때문에 그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온다연은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처럼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비위를 맞추고 용서를 빌려는 의미가 다분했다.하지만 질투심에 불타는 유강후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응대하지 않았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예전처럼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그의 입술에 갖다 댔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이전에는 이 방법이 가장 잘 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가 뽀뽀해 주면 다 해결됐다.하지만 오늘은 뽀뽀해 줘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그의 차가운 태도는 그녀를 서럽게 했다.온다연은 당황해서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이 말했다.“저를 상대하기 싫어요? 그러면 저는 먼저 돌아갈게요.”유강후는 여전히 말없이 차가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더욱 서러워진 온다연은 천천히 그의 몸에서 내려
이권은 조금 놀랐다.“하지만 지금은 저녁인데요...”유강후는 코트를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해서 나랑 같이 가.”유강후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이권이 아무리 반대해도 소용이 없다.한 시간 뒤, 유강후와 이권은 온다연이 이전에 살던 옛집 맞은편 골목 어귀에 나타났다.철거 예정이라 이곳의 도로와 담장은 보수되지 않은 상태였고, 비까지 내려 길이 매우 질퍽거렸다.가로등도 없고 근처의 고층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에 의존했다.이권은 한 손에 물건을 가득 들고, 다른 한 손에 방금 매점에서 구매한 손전등을 든 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일 다시 오는 게 어떨까요? 셋째 도련님, 길이 너무 형편없네요.”돌길에는 흙탕물이 넘쳐흘렀고, 양쪽의 집들은 비어 있는지 처마가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허름했다.유강후는 그의 손에서 손전등을 낚아채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이 길이 걷기 어려워? 권아, 넌 그동안 너무 편안하게 살았어.”이권은 유강후의 그 비싼 옷이 아까워서 한 말인데, 그가 이렇게 나오니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손전등을 비추며 골목 끝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집 안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그들이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두 사람이 속수무책일 때 옆집에서 누군가 나오더니 그들을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이 집 사람을 찾아왔어요?”이권이 급히 담배 한 대를 건넸다.“형씨, 이 집 할머니가 집에 안 계셔요?”그 사람은 담배를 받더니 약간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몰라요. 저는 그냥 물건을 가지러 잠깐 들렀을 뿐이에요.”“이 집은 할머니와 남편분이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집인데, 곧 철거에 들어가요. 아들이 몇 번이나 모셔가려고 왔지만 한사코 버티고 있어 철거팀과 주민위원회도 방법이 없나 봐요. 이 시각에 문을 두드리면 쫓아내려고 그러는 줄 알고 문을 열지 않을 거예요.”이권이 웃으며 말했다.“혹시 할머니 아드님 전화번호를 받
할머니는 뭔가 생각난 듯 유강후와 이권을 다시 한번 쳐다보더니 입을 다물었다.첫머리를 듣고 끝나 버리니 유강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이권은 급히 일어나서 할머니 아들을 한쪽으로 불러 또 돈을 찔러주었다.아들이 할머니 귀에 대고 뭐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이 일은 그 아이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라 원래는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당신들이 그 모자가 공정한 평가를 받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니 말할게요.”그녀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그 아이의 엄마는 둘째 아들을 낳은 후 자기 남편이 밖에 애인이 있고, 게다가 애인이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정신이 나갔어요. 그 바람에 두 아이가 고생이었는데, 그때 큰애는 예닐곱 살, 작은애는 네댓 살에 불과했어요...”“하지만 남편은 아내가 미친 후 더욱 낯가죽이 두꺼워져 동성 애인을 공공연히 집에 데리고 왔어요.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더군요.”“주한의 아버지는 정말 짐승 같은 놈이었어요.”“한번은 저녁에 그쪽을 지나다가 안에서 아이가 구슬피 우는 소리가 들려 들여다봤더니 그 아이가 아랫도리가 피투성이 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어요...”할머니는 흥분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짐승만도 못한 놈! 그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이 평생 후회돼요...”유강후와 이권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두 사람 모두 놀랍고 믿을 수 없는 눈빛이다.“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그때 당시 이 거리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때의 이웃들이 다 이사를 가서 조사하기 힘들 거예요.”“한번은 애가 심하게 반항하자, 그놈과 애인이 애를 거의 반죽음이 되도록 때리고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공중화장실에 버렸는데, 어떤 여자애가 구했대요.”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그때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했고, 그 짐승은 질겁해서 도망치더니 감히 돌아오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그 남자애의 생활이 좀 나아졌어요.”“미쳐버린 엄마는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 짐승이 한 짓을 알게 되어 몰래
“비슷한 일을 겪고 가정환경도 비슷해서인지 두 꼬마는 남매처럼 늘 붙어 다녔어요.”“여자애는 1~2년 사라진 적이 있는데, 친척이 데려갔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그 집에서도 잘 지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돌아올 때가 많았어요.”이 말을 들은 이권은 저도 모르게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어두운 불빛 아래서도 유강후의 하얗게 질린 얼굴과 불끈 쥔 주먹을 볼 수 있었다.“여자애는 머리카락이 잘린 채로 돌아온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남자애는 작은 의자를 가져와 여자애를 문밖에 앉히고 세심하고 다듬어 주었어요.”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렇게 착한 아이가 왜 그런 사나운 팔자를 타고났는지, 아껴주는 사람도 없고! 좀 큰 두 아이가 막내를 데리고 서로 의지하며 컸어요.”“막내는 병이 있었고, 병원비가 많이 들었어요. 남자애는 그림도 잘 그리고 피아노도 잘 쳐서 과외를 하러 다녔는데, 항상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운 병에 걸렸다는 뜬소문이 돌면서 며칠 못 가서 잘렸어요.”여기까지 말한 할머니는 침묵하며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 후에는요? 후에는 어떻게 됐어요?”할머니는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그 후 남자애가 괴롭힘을 당해 죽었다고 들었어요. 원래 배상을 받기로 합의됐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받지 못했대요.”이 말을 들은 유강후는 고개를 들고 이권을 지켜보았다.이권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나지막이 물었다.“그 후에는요?”“그 후에는 여자애가 그 어린아이를 맡았는데, 아직 미성년이라 쉽지 않은 것 같았어요. 가끔 저도 두 아이가 불쌍해서 고기와 채소를 넉넉하게 사서 조금씩 갖다주기도 했어요.”“여자애는 어렸지만 오기가 있어서 남의 물건을 잘 받지 않았어요...”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여자애는 점점 예뻐지고, 집안은 그런 형편이니 잘못된 길로 들어설까 봐 정말 걱정됐어요...”그녀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유강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르신, 그 부부의 일에 대해 또 아는 것이 있으신가요?”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며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주한의 일을 조사하러 온 거 아니었어요? 그 여자애 일은 왜 묻는 거죠? 혹시 그 여자애를 본 적이 있어요?”“옷을 잘 차려입은 걸 보니 많이 배운 사람인 것 같은데, 왜 허튼수작을 하려는 거죠? 그 여자애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거니까 가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염불하기 시작했다.이권이 아무리 좋을 말을 해도, 아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할머니는 마음을 굳게 먹고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할머니는 한마디도 하려 하지 않았다.어찌할 도리가 없는 유강후와 이권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떠나기 전에 유강후는 할머니에게 말했다.“어르신, 예전에 그 여자애에게 베푼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안심하고 이 집에 그냥 사십시오. 이 거리는 철거하지 않을 것이고, 며칠 뒤에 사람을 보내서 수리하고 정비할 것입니다. 이곳을 다시 개조해서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습니다.”할머니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유강후를 쳐다보았다.“누구신데, 총각이 말한 대로 되는 거예요?”유강후가 나지막이 말했다.“됩니다. 안심하고 지내세요.”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더니 일어섰다. 그녀는 낡은 수납장을 한참 동안 뒤져서 오래된 앨범을 찾아냈고, 그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서 유강후에게 건넸다.“그 두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이니 가져가세요. 사진이 유용하게 쓰여서 하루빨리 그 짐승 같은 놈을 잡았으면 좋겠네요.”유강후는 사진을 받아서 들었다.잘 보관하지 못해 색이 바랜 곳도 있었지만,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사람이 많았는데, 온다연은 주한의 뒤에 서서 옆으로 깨끗한 얼굴을 내밀고 카메라를 향해 수줍게 웃고 있었다.사진 속의 온다연은 여덟아홉 살 정도 되는 것 같았고, 일자 앞머리를 자른 모습이 유난히 순해 보였다.유강후가 본
그러고는 창가로 가서 온다연을 살펴보았다.장화연이 나지막이 말했다.“저녁 내내 도련님을 기다리다가 방금 잠들었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보고, 담요를 잘 덮어준 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야식은 뭘 먹었어요?”장화연이 대답했다.“안 먹었어요. 계속 도련님이 언제 돌아오냐고 묻다가 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묻더군요. 수제 만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저녁 내내 밀가루 반죽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밀가루 한 봉지를 다 쓰고도 제대로 된 만두를 한 개도 빚지 못했어요.”장화연이 주방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만두는 저쪽에 있어요. 도련님이 돌아오시면 삶겠다고 하더니 기다리다 못해 잠들어 버렸어요.”이 말을 들은 유강후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어디 있어요? 보고 싶어요.”“주방에 있어요.”주방에 들어서니 기괴한 모양의 만두 한 접시가 보였다.딱 봐도 밀가루 반죽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만두피가 터무니없이 두꺼운 데다 빚은 모양도 예쁘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못생긴 만두 한 접시가 유강후는 그저 귀엽게 느껴졌다.‘꼬맹이가 요리를 잘 못하고 주방에 관심도 없는 것 같았는데, 오늘 나한테 잘 보이려고 음식을 만들었나 보네.’그는 마음속이 살짝 달콤해졌고, 처음 온다연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주방에서 나온 유강후는 서재로 갔다.그가 직접 결재해야 할 중요한 서류가 있었다.절반쯤 봤을 때 서재 문이 열렸고, 온다연이 작은 접시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유강후가 화상회의를 하면서 서류를 결재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물러가야 할지 들어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유강후는 그녀를 못 본 척하고 일에 몰두했다.온다연은 그의 안색을 살피며 문 앞에서 몇 분 동안 서성이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다가왔다.그녀는 손에 든 접시를 책상 위에 놓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드셔 보세요.”유강후는 못 들은 척하고 계속 서류를 읽었다.온다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그녀는 기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한편으로는 유강후가 왜 성욕이 이렇게 강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알게 된 것보다 몇 배는 더 심한 정도였고 매번 무리한 요구를 하는 유강후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게다가 아직 몸이 완벽하게 나은 게 아니기에 작은 움직임에도 너무 아팠다.온다연은 서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안 돼요. 아직 아파요...”유강후는 새빨개진 온다연의 귀에 입을 맞추며 놀리듯이 답했다.“거절하는 거야?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네? 더 화내도 되는 거지?”그 말에 온다연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사실 온다연은 유강후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밤새도록 고민했다.유강후가 위압적이고 억지 부리는 사람인 건 맞지만 오늘처럼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지만 유강후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온다연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럼에도 주한은 온다연에 있어 영원한 비밀 같은 존재였기에 섣불리 얘기할 수가 없다.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점점 막막해졌고 유강후의 화를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몰랐다.처음에는 직접 만든 만두를 건네주며 사과하려고 했지만 밤새도록 빚어도 그럴싸한 모양이 하나도 없었고, 이런 못생긴 만두를 유강후에게 줄 면목도 없었다.계획이 실패하자 머릿속이 텅 비어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한 온다연은 큰 결심을 내린 듯 입술을 깨물며 속삭였다.“다른 방법으로 하는 건 어때요? 정말 아파서...”온다연은 말하면서 돌아서더니 고개를 들고 유강후의 목젖을 가볍게 깨물었다. 동시에 손을 그의 옷 속에 넣었고 부드러운 손길은 곧바로 벨트 방향을 따라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이런 건 어때요?”유강후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리드하는 법을 가끔 알려주기도 했지만 이런 스킬을 가르쳐준 적은 없었다.‘누구한테서 배운 거지?’“얘는 자기가 남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모르는 건가? 미치겠네.”유강후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붙잡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화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도련님은 요즘 정말로 일이 많습니다. 아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에요. 사모님...”그때, 온다연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집사님, 집사님이 만들어주시는 해산물 죽이 먹고 싶어요. 지금 가서 만들어서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그러자 장화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도련님은 며칠 후에 돌아오실 겁니다.”이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병실을 나섰다.장화연이 떠난 후, 온다연은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정아 씨, 부탁할 게 있어요.]곧바로 답장이 돌아왔다.[무슨 일인데요?]온다연은 잠든 아이를 돌아보았다.작고 귀여운 얼굴로 평온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눈을 감고 낮게 속삭였다.“아가, 너 정말 엄마의 아이가 맞니?”물론 아기는 대답할 수 없었다.잠시 침묵한 후, 온다연은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고 자신의 머리카락도 뽑아 휴지에 싸서 보관했다.그리고 다시 임정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DNA 샘플 비교 좀 해줘요. 믿을 만한 기관으로 부탁해요.]그러자 임정아는 의아한 듯 답을 보냈다.[갑자기 무슨 DNA 비교예요? 설마 다연 씨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거예요?]온다연은 간결하게 답했다.[부탁할게요. 최대한 빨리 부탁해요.][알겠어요. 지금 어디예요? 내가 사람을 보낼까요, 아니면 다연 씨가 직접 가져올래요?][밖으로 나가기 좀 어려워요. 사람이 오면 좋겠어요. 지금 인평 병원에 있어요.][마침 내 비서가 그 근처에 있어요. 병원 밖으로 전달할 수 있겠어요?][고마워요.]온다연은 전화를 끊고 머리카락을 휴지로 싼 뒤 작은 약통에 넣었다.그리고 병실을 나가 어린 간호사를 찾아냈다.그녀는 몇만 원의 현금을 건네며 약통을 주고 말했다.“여기에는 특효 화상약이 들어 있어요. 병원 밖에 있는 제 친구에게 전달해 주시면 됩니다.”간호사는 온다연의 신분을 알아채고 돈을 받으
온다연은 그동안 한 번도 병원을 떠난 적이 없었다.비록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매일 아이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어느 순간 아이의 성장이 너무나도 빠른 날들이 있었다는 점을 말이다.그녀의 가슴이 세차게 조여들었고 목구멍에서 다시 쓴맛과 피비린내가 올라왔다.이 병원은 유강후의 소유였다.그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도 꾸밀 수 있는 곳이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온다연은 마음속으로 외쳤다.‘이 아이는 내 아이야. 그리고 그 사람의 아이이기도 해!’유강후가 아무리 차가운 사람일지라도 그녀와 이 아이를 이렇게 잔인하게 대할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가능성은 떠올리지 못했다.그 아이가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진실을 말이다.한참을 화장실에서 멍하니 있다가 온다연은 천천히 문을 열고 나왔다.밖에 서 있던 장화연은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과 젖어 있는 머리카락을 보고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사모님, 어디 안 좋으신 거예요? 주성원 선생님 불러올까요?”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 없이 침대로 걸어갔다.그리고 아이를 내려다보며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아이는 우유를 다 마시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작고 고운 얼굴이 평화롭고 사랑스러워 보였다.온다연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이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졌다.익숙한 온기와 은은한 우유 냄새...그 모든 것은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했다.‘아니야, 이 아이는 내 아이야!’그녀는 몸을 숙여 아이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가.”잠결에 아이는 손을 움직이며 온다연의 옷자락을 잡았다.그 순간, 온다연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뒤이어 그녀는 아이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침대 옆에 천천히 앉았다.장화연은 온다연의 이상한 모습을 눈치채고 조심스레 말했다.“그래도 주성원 선생님을 부르는 게 좋
온다연은 보고서를 내려다보았다.그것은 그녀의 아들 강우림의 혈액 검사 결과였다.한참을 훑어봤지만 겉보기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하지만 누군가 이렇게 일부러 보냈다는 것은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그녀는 보고서를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의사에게 보여주었다.의사는 데이터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몇몇 수치가 정상 범위를 약간 초과했으며 이는 폐렴 증상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만 설명했다.그 외에는 별다른 문제를 찾지 못했다.온다연은 이 정도로는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민 끝에 아이의 이름과 개인 정보를 모두 가린 뒤, 사진을 찍어 유명한 육아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다.그리고 조금 더 많은 답변을 받을 수 있도록 소액의 광고를 걸었다.약 한 시간이 지나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초반에는 별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 없었다.그러다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이 아이 부모님 혈액형은 어떻게 되나요?]그 댓글을 본 온다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만약 온다연의 기억이 맞다면 그녀는 B형이고 유강후는 O형이었다.그런데 아이의 혈액형은 AB형이었다!의학적 상식으로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머릿속이 어지럽고 귓속이 웅웅거렸다.심장은 마치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곧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댓글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어머니가 B형이고 아버지가 O형이라면 아이가 AB형일 수 있나요?]댓글을 남기고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아이는 조용히 쪽쪽이를 물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온다연이 아이의 손을 만지자 아이는 그녀의 엄지를 꼭 쥐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작고 맑은 눈망울은 너무나도 예뻐서 웃을 때면 별빛이 떨어진 듯 반짝였다.온다연은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떻게 내 아이가 아닐 수 있겠어?’그녀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이 아이는 내 아이야. 만약 이 아이
나은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며 경악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 사실이에요?”소이섭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 아이는 온다연과 강후의 아들이 아닙니다.”그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차가운 기운을 담아 덧붙였다.“정확히 말하자면 온다연의 아들이 아니에요. 강후 같은 사람이 남의 아이를 키울 리가 없으니... 아마 온다연이 아이를 갖기 어렵다는 걸 알고 대리모를 찾은 걸 겁니다.”이 충격적인 사실에 정신이 멍해진 나은별은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그 판단이 맞는 것 같네. 당시 온다연은 임신 5개월도 안 됐는데 아이를 낳았다고 했어. 그렇게 작은 달수로 어떻게 아이가 살 수 있겠어? 그웬이 있었어도 불가능했을 거야...”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분명 온다연의 아이가 죽은 후, 대리모로 얻은 아이를 데려와 모두를 속이려 한 거야.”“강후 씨 정말 온다연을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쓰는구나...”이 사실을 깨닫자 나은별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 찼다.“온다연 천한 년, 감히 아이 하나 생겼다고 자리를 굳혔다고 착각해? 그런 신분으로 어떻게 강후 씨의 아이를 낳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말 하늘은 공평하다니까...”잠시 아이를 떠올리는 소이섭의 눈에 씁쓸함이 스쳤다.“만약 그 아이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네다섯 살쯤 되었겠죠...”그는 나은별의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은별 씨가 원하는 걸 이루도록 도와줄게요. 하지만 은별 씨도 약속해줘요. 모든 일 끝나면 함께 떠나겠다고.”하지만 나은별은 말없이 손을 빼며 눈에 희미한 경멸을 감췄다.“지금 나씨 가문이 이런 상황인데 내가 떠날 수 있겠어?”그녀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소이섭은 소씨 가문의 둘째 아들일 뿐 첫 번째 상속자도 아니잖아. 이런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유강후 같은 남자뿐이었다.소이섭은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 우리 아이가 아직
온다연은 꿈속에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가슴은 누군가에게 심하게 짓눌려 폭발할 것처럼 아팠다.“아니야, 아니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었어.”그녀는 필사적으로 변명했지만 아이는 그저 울기만 했다.“엄마도, 아빠 모두 날 원하지 않았어요.”꿈에서 깨어난 후 온다연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베개마저 축축했다.그녀는 아이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무겁고 아팠다.분명 아이가 곁에 있는데 왜 그런 이상한 꿈을 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아이가 눈을 떴다. 검고 깊은 눈동자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가끔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미소에 텅 빈 마음이 서서히 채워지는 기분이었다.온다연은 아이를 꼭 안으며 그것이 단지 꿈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오후에 그녀는 한옥에 물건을 가지러 갔다. 그러나 어딘가에 부딪혔는지 늘 끼고 있던 팔찌가 끊어져 버렸다.바닥에 흩어진 구슬을 바라보던 온다연은 머릿속이 하얘졌다.그 팔찌는 유강후가 꼭 착용하라고 해서 그녀가 항상 끼고 있던 것이었다. 유강후 본인도 늘 팔찌를 차고 다녔다.가끔 그녀가 잊고 착용하지 않으면 유강후가 직접 손수 채워주곤 했다.“이 팔찌는 내가 대사님한테서 직접 구한 거야. 너를 평생 무사히 지켜줄 거야.”그가 이렇게 말했었다.그러나 지금의 그녀와 유강후 사이에는 더 이상 ‘무사함’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온다연은 허리를 숙여 구슬 하나를 주웠다.검은 흑요석은 아직 그녀의 체온을 머금고 있었다.매끄럽게 다듬어진 구슬은 사실 흔한 재질로 특별할 것 없는 물건이었다.하지만 그중 하나, 호박 구슬만은 조금 달라 보였다.온다연은 호박 구슬을 들어 세심히 살펴보았다.손끝이 구슬을 스칠 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아픔이 밀려왔다.가슴이 누군가의 손에 짓이겨질 것처럼 아팠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그 순간, 어젯밤 꿈이 떠올랐다.“왜 날 버린 거예요!”“여기 너무 추워요!”...꿈속의 아이가 했던 말들이 생
이 비즈니스 제국은 마치 유강후 본인처럼 강력하면서도 사람을 불길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녔다.이 순간, 그녀는 마치 몇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그녀는 그림자 속에 숨어, 화려한 불빛 속에 서 있는 유강후를 바라보았었다.그 소년은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단 한 번의 눈길을 주었을 뿐인데, 그 후로 그는 그녀의 꿈속 단골이 되고 말았다.웅장한 건물들 옆을 지나는 차는 유독 작아 보였다. 그녀가 그의 앞에 서 있을 때와 꼭 같았다. 그토록 연약하고 하찮게.그러나 아무리 미약하고 저렴해 보이는 장난감일지라도, 그 자체의 존엄성은 있는 법.이제 그녀는 지쳤다.과거의 모든 것들은 이미 지나갔고, 앞으로 남은 인생은 새로운 시작이었다.온다연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기사님, 조금 더 빨리 가주세요.”병원에 돌아와, 온다연은 급히 옷을 갈아입었다.아이의 침대 옆에 잠시 앉아 있자, 장화연이 돌아왔다.온다연이 병실에 있는 걸 보자 마치 안도한 듯, 그녀는 다시 나갔다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그녀는 온다연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도련님께서 요즘 바쁘셔서 돌아올 수 없으세요. 한번 통화해 보세요.”온다연은 차분하게 전화를 받아들었다.유강후의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려왔다.“다연아, 요즘 내가...”온다연은 그의 말을 끊어버리며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알아요!”그녀는 휴대전화를 꽉 쥐며 속으로 말았다. “당신이 바쁜 거 알아요. 괜찮아요.”아프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하지만 그 아픔이 뭐가 중요할까?지금 그가 나오지 못한다는 건 차치하고, 설령 나올 수 있다 해도 그가 이 아이 곁으로 돌아올 리가 없었다.본처의 아이도 아프니 그는 원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유강후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천천히 말했다.“다연아, 나 보고 싶었어?”온다연은 잠시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그녀는 순순히 대답했다.“보고 싶었어요.”유강후는
하지만 문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뒤쫓아온 경찰이 그를 붙잡았다.“대표님, 함부로 행동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희도 곤란해집니다!”장화연과 로운도 따라왔다.“도련님, 왜 그러세요?”유강후는 차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장 집사, 다연이는 지금 어디에 있어?”장화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사모님은 병원에 계세요. 우림 도련님이 아프셔서 병실을 떠나지 않으려고 해요. 잠잘 때도 우림 도련님 곁을 지키고 계세요.”유강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여전히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남아 있었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온다연이 아이에게 얼마나 깊이 마음을 쏟고 있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을까?그는 아까 온다연이 그 차에 타고 있다고 느꼈었다!“장 집사 휴대폰으로 다연이에게 전화해 봐.”장화연은 곧장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유강후의 얼굴이 굳어졌다.“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거지?”장화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도련님, 사모님께서 핸드폰을 두고 화장실에 가셨을 거예요. 병원은 우리 사람들만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림 도련님께서 아프시니 사모님께서 어디로 갈 리 없으세요.”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경호팀에 연락해.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라고 해.”장화연은 말없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제 핸드폰도 아마 도청당할 수 있어요. 혹시 불안하시다면, 바로 돌아가서 다른 사람의 전화로 사모님과 연락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유강후는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고통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그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났다.“장 집사,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두 사람 잘 부탁해.”장화연은 고개를 숙여 말했다.“제가 해야 할 입니다.”그녀는 말을 마친 후, 차로 돌아갔다.그 차가 멀어져 사라지기까지, 유강후는 잠시 그 자리
온다연은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가세요.”장화연이 떠나자, 온다연은 곧바로 일어섰다.장화연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유강후는 회사에 아예 없었다.설령 회사에 있었다 해도, 그런 서류를 장화연이 가져갈 리는 없었다.직감적으로 장화연을 따라가면 그녀가 알고 싶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냥 나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온다연은 병원에서 간단히 간호사복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병원을 빠져나왔다.서교 파출소 앞까지 따라갔을 때, 온다연은 그가 뭔가 큰일에 휘말린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새벽의 사무실은 여전히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문 앞에는 경찰차들이 가득했다.장화연이 파출소에 도착한 순간, 유강후는 그곳에서 걸어 나왔다.그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하얀 셔츠 하나만 입고, 손목에는 은색 수갑이 뚜렷하게 빛났다.그리고 그의 옆에는 경찰 두 명이 서서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온다연의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녀는 택시 문에 손을 얹고 몸을 일으켰다.그때, 로운과 진시현이 다른 차에서 내렸다.온다연은 잠시 멈칫하며, 손을 천천히 문에서 떼었다.차가운 봄바람이 그녀의 뼈까지 시리게 만들었다.차창을 반쯤 열었지만 그 바람은 온몸을 휘감았는데 마치 그녀의 마음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외치고 싶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택시 안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택시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어 아무도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그때 로운이 멀리서 보이는 검은색 파사트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김원도 그 미친놈은 아직도 포기할 기미가 없네요. 대표님, 좀 더 연기해 주세요. 이제 그들이 시현이 신분을 의심하지 않게 될 거예요.”유강후는 검은 차를 오래도록 응시한 후,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진시현의 머리를 스쳤다.진시현은 낮게 속삭였다.“실례하겠습니다, 대표님.”말을 마친 그녀는 유강후를 부드럽게 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아이가 오늘 열이 났어요. 빨리 나와요. 네? 저 혼자 집에 있으면 너무 무섭다고
김원도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여기는 경원시야!”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게 뭐 어때서? 다시 나를 건드리면, 경원시에서도 너를 죽일 수 있을 거야!”말을 마친 그는 총을 던지고는 돌아서서 차에 올랐다.차가 장원을 떠날 때까지 김원도는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송지원은 냉정하게 말했다.“김원도 씨, 내가 당신이라면 당장 경원시를 떠날 겁니다. 여기는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떠나는 유강후의 차를 예리하게 응시하던 김원도의 눈빛은 더욱더 악의에 차올랐다.송지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로운에게 말했다.“이 사람들 다 처치해, 서둘러!”한 시간 전, 고위층은 긴급회의를 열었다.그들은 미래 그룹이 비상 무기를 사용하고, 저격수들을 동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비록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바로 경원시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들은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조사 결과, 상부에서는 엄중히 경고했고 만약 30분 안에 모든 일이 정리되지 않으면 무력 진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그때에는 누구도, 설령 신선이라 해도 유강후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이 소식을 접해듣고 송지원은 급히 달려왔다.그는 유강후가 경원시에서 무력을 사용할 정도로 미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제시간에 도착했으니 다행이지, 만약 10분만 늦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헬리콥터들이 점차 멀어져 가자, 송지원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새벽 2시, 서교 파출소 안에서 유강후는 진술서를 마친 뒤,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이번 일은 너무 큰 소란을 일으켜 상위층에까지 긴급 연락이 갔고, 필요한 절차들을 다 밟아야 했다.하지만 이 일을 벌이기 전, 그는 그 후폭풍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그의 개인 변호사, 미래 그룹의 수석 법무팀장인 허윤재는 이미 그에게 이번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며칠간 이곳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