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온다연이 아주 피곤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더니 그녀의 손가락을 주무르며 물었다.“피곤해?”온다연은 고개를 들지 않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유강후가 고개를 숙이자 슬리퍼를 신은 그녀의 작은 발이 보였고 하얀 발가락이 밖으로 튀어나온 모습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졌다.“신발도 아직 고르지 않았는데.”대리상은 그 말을 듣자 비서에게 눈치를 줬다. 비서는 곧 신발을 안고 뛰어 들어와 재빨리 가지런히 전시했다.운동화부터 낮은 굽까지 그리고 하얀색, 은은한 파랑과 핑크색까지 모두 있었다. 신발 끈에도 하얀 진주가 박혔다. 모든 신발은 소녀다운 디자인이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걸상에 앉히고 한 켤레씩 신어보라고 했다.그녀의 발은 작고 발목은 특히 가늘었다. 발가락의 모양마저도 예뻐서 대리상 중 한 명은 그녀를 몇 번을 보고도 눈을 뗄 수 없었다.잠시 후 그는 재빨리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유강후가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강후의 눈에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고 언제든지 그를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자 대리상은 깜짝 놀랐다. 유씨 가문 셋째 도련님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다. 유강후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지독하다는 소문 말이다. 대리상은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고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온다연은 두 켤레를 신어보고는 더 이상 시도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작은 발가락을 슬리퍼에 걸치고 발을 동동 굴렀다.“삼촌, 다 너무 커요.”대리상은 그 말을 듣자 얼른 말했다.“225사이즈인데도 커요? 장 집사님이 분명 225라고 했는데...”그러자 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220밖에 못 신어요. 어떤 신발은 215도 신을 수 있고요...”그러자 대리상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렵게 얻은 미래 그룹과의 협력 기회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해했다.“당장 220 사이즈를 찾아와...”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온다연을 안은 채 거실로 걸어갔다.“일단 다 필요 없어요. 다음에
온다연은 유강후가 또 이상한 행동을 할까 봐 몸을 뒤로 움츠리고 옆에 있는 의사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유강후는 그제야 돌아서서 의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약을 발라주세요.”이 의사는 딱 봐도 소양이 아주 뛰어났고 약을 바르는 과정에도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묻지 않았고 온다연의 정체에 관해 묻지도 않고 조용히 치료에 집중했다.그리고 파상풍 주사를 맞고 물을 다치면 안 된다고 귀띔하고 떠났다.의사가 떠난 후 온다연은 다시 유강후를 마주할 생각에 머리가 아파졌다.오늘은 분명히 주말이 아닌데 유강후는 출근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미래 그룹을 인수했다는 사람이 이렇게 한가할까? 분명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처럼 쌓여야 하는 게 아닌가?유강후는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말했다.“오늘 오후에는 집에 있을 거야. 너도 푹 쉬어. 나는 서재에서 일할 거고 저녁에는 모임이 있으니 나랑 함께 가자.”온다연은 가기 싫다고 차마 말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사실 잠시도 이 방에 있고 싶지 않았지만 아침에 도망쳤다는 것을 생각하면 유강후는 분명히 다시는 자신을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방에서 자는 것밖에 없다.온다연은 겨우 반나절 밖에 있었는데 방 안에는 몇 가지 물건이 더 늘었다. 그녀는 이런 물건에 관심이 없었고 작은 베란다에 있는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고 나서 임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임혜린은 매달 며칠 동안은 전화도 안 되고 메시지도 답장을 안 하는 수상한 버릇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6, 7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다.온다연은 너무 지루해서 침대에 누워 뒹굴 수밖에 없었고 머릿속은 온통 유강후가 방금 뽀뽀한 장면이었다.생각할수록 끔찍했다. 온다연은 자기 입술을 만지면서 입술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서서히 유강후가 만졌던 모든 피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이때 마침 공기 중에서 은은한 장미향이 풍기
유강후는 멈칫거리더니 천천히 말했다.“유씨 가문 사람들은 없어.”마치 무슨 설명이라도 하는 듯하여 온다연은 더 긴장되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다.하지만 이 말을 감히 내뱉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입 옆에 있던 점은 피가 날듯 말듯 한 빨갛게 되었고 그녀의 입술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유강후는 손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과 옆에 있는 점을 어루만졌다.그리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예전에 뽀뽀해 본 적이 있어?”안 그래도 긴장한 온다연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받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온다연의 눈빛에는 막막함과 당혹감이 느껴졌다.유강후는 그녀의 풋풋한 모습에 만족한 듯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넌 내꺼야. 알겠어?”그리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경고하는 듯 말했다. 무서운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말이다.온다연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유강후를 바라보았고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삼촌은...”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의 턱을 들어 올렸다.“겁이나?”그의 눈빛은 매섭고 차가웠으며 온다연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악함도 있었다.마치 온다연이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죽임을 당할 것처럼 말이다.온다연은 몸을 떨며 눈을 내리깔고 감히 유강후를 쳐다보지 못했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더욱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싫은 거야 아니면 겁이 나는 거야?”온다연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파요.”온다연은 고의로 아프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팠다. 유강후는 마치 통제 불능이 된 듯 그녀의 턱을 부러뜨릴 것처럼 꽉 쥐었다.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리고 미소가 사라졌고 온다연의 턱을 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빠지지 않았으며 공기 중의 냉기가 더욱 짙어진 것 같
무릎까지 오는 흰색 치마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얇은 큐빅이 박혔고 허리 쪽에는 태슬 벨트가 있었다. 이 치마에 어울리는 신은 낮은 굽의 회색 구두였다. 흰색 큐빅 핀까지 머리에 꽂으면 순하고 여려 보여 유강후가 선택한 옷과 나름 잘 어울렸다.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온다연에게 손목시계를 차주면서 자신의 시계도 들어냈다.두 시계는 똑같지만 사이즈가 달랐다.온다연은 유강후가 고의로 커플 시계를 준비했다고 의심했지만 감히 말하지 못하고 유강후에게 끌려 차고로 갔다.지하 차고는 수백 평에 달했고 매우 넓었다. 온다연은 차에 대해 잘 몰랐기에 모두 똑같은 검은 차로 보였다. 골드 로고를 가진 차가 몇 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유강후가 자주 애용하는 검은색 마이바흐였다.차에 오르자마자 유강후가 물었다.“마음에 드는 게 있어?”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유강후는 그녀의 잔머리를 귀 뒤에 넘겨주면서 말했다.“차가 있으면 이동하기 편리할 거야. 하지만 네가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기사를 붙여줄게.”이때 운전하고 있던 이난이 말했다.“괜찮은 코치를 알고 있어요. 인내심도 있고 성격도 좋습니다. 나이가 많아 듬직하기까지 하고요. 제 사촌 여동생이 그곳에서 운전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연 씨가 운전을 배우고 싶다면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매서운 눈빛으로 이난의 뒤통수를 째려보았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잘난 척 다했어? 처리해야 될 서류가 수백 개 있으니 오늘 밤 자지 말고 다 정리해.”그 말을 듣자 이난은 운전대를 꽉 잡았고 감히 반박도 못 하기에 속으로 이불 킥을 했다.가는 길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는 차가웠다. 온다연은 답답해서 창문 쪽으로 몸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면 유강후와 조금 더 멀리 떨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움직이자마자 유강후가 그녀의 허리를 덥석 끌어당겼다.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온다연, 앞으로 또 창문 쪽에 붙어 앉을 생각을 하면
이난이 없어지자 차 안의 분위기는 더 차가워졌다. 온다연은 유강후가 숨을 쉬는 것조차 싫었고 숨이 턱턱 막혀오면서 긴장감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밖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인데 유강후가 또 이상한 행동을 할까 봐 걱정이었다.온다연이 다시 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만지려고 했지만 온다연은 피하면서 놀란 두 눈으로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삼촌, 밖에 사람들이...”그러자 유강후의 손은 허공에 멈춰 섰고 당황한 온다연의 얼굴을 2초 동안 바라보다가 손을 내렸다.“다연아, 누구도 내가 하려는 일에 참여할 권리가 없어. 난 결과따위를 생각하지 않거든.”유강후는 그렇게 말하고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그러자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유강후의 말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더 무서웠다.아무도 간섭할 수 없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것이다? 가족마저도 그를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일까?비록 미친 사람처럼 보였지만 온다연은 그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유강후는 열 몇 살 때부터 유씨 기업을 인수하기 시작했고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그의 어머니 강해숙의 사업을 인수했다.유강후는 유씨와 강씨 가문의 절대 권력자이고 진정한 금수저이다. 그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하지만 온다연은 너무 달랐다. 만약 유강후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온다연은 절대 막을 수 없을 것이다.온다연은 단지 고아일 뿐인데 유강후는 왜 이렇게 그녀에게 집착하는 걸까? 어떤 이득 얻으려고 이러는 걸까?나은별과 곧 약혼할 것이고 두 사람도 서로 사랑하는 천생연분인데 왜 계속 이러는 걸까?그러니까 세상 남자들은 다 똑같은 걸까? 자기 여자가 있으면서 또 누군가를 탐내다니.온다연은 그 생각을 하니 손이 떨리고 속이 쓰려왔다.잠시 후, 차는 경원시에서 가장 좋은 호텔 입구에 세워졌다. 유강후는 차를 멈춰 세웠고 온다연도 함께 내렸다. 유강후가 호텔로
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낮게 말해. 얘가 겁이 많단 말이야.”“어머. 챙기는 것 좀 봐. 이렇게 긴장하다니. 미성년자는 아니겠지?”그러자 온다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20살이에요. 대학 다니고 있어요.”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부드러웠고 남자들만 있는 회식 자리에서 유난히 주의를 끌었다.몇 사람은 먼저 어리둥절해하더니 곧 다시 웃기 시작했다.그러자 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으며 작고 하얀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조명 때문에 그의 얼굴은 더 하얗게 빛났지만 귀는 빨갛게 타올랐다.유강후는 그 모습을 보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차갑게 말했다.“밥 먹을 거야 말 거야? 먹지 않을 거면 꺼져.”그러자 웃음소리가 금세 그쳤다. 이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성격 여전하네. 3년이 지났는데도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자자자. 음식을 올리라고 해. 신구시에서 모셔 운 특급 주방장이야. 조상이 임금님에게 음식을 해줬고 대대로 그 솜씨를 이어오고 있어.”이제 곧 음식이 나올 시간이다.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떠들고 있었다. 온다연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주식, 정책, 부동산에 관한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비록 유강후는 말이 적고 가끔 몇 마디를 하지만 늘 새로운 화제와 대화의 흐름을 이끌고 갔다.이곳에서도 그가 주인공처럼 말이다.온다연은 음식을 먹으면서 몇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다섯 명 중 세 명은 아는 사이였다. 한 명은 경원시 가장 젊은 부시장 송지원이다. 그는 30대 초반으로 능력이 뛰어나고 가문 세력도 대단했다.한 명은 아시가 갑부의 아들 한이준이다. 그는 바람둥이로 소문이 자자하고 연예기사에 자주 등장했다. 사귄 여자 연예인이 부지기수이고 Z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낯이 익어 생각해 보니 바로 어제 뉴스에 나온 인물인데 젊고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나머지 두 명은 누군지 잘 몰랐지만 이 세 명의 신분으로 볼 때 그 두 명도 보통
유강후는 온다연이 음식을 별로 먹지 않은 것을 보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물었다.“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그러자 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웨이터를 불러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하더니 웨이터는 공손하게 온다연을 옆으로 안내했다.잠시 후 웨이터가 과일과 다양한 견과류 및 유제품을 들고 나타났다.온다연은 푹신한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기도 하고 창밖의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그는 유강후가 왜 그녀를 이런 곳에 데려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불편했고 특히 소이섭이 온 후 혐오감이 극에 달했다. 속이 쓰릴 정도였다.회식이 언제 끝났는지도 그녀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소이섭이 그녀 곁에 다가온 줄도 몰랐다.“다연 씨, 여기서 뵙게 돌 줄을 몰랐네요.”소이섭은 점잖게 생겼지만 온다연은 별로 소이섭에게 호감이 가지 않았다. 원인을 따지자면 그녀는 유강후의 모든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고 유씨 가문과 관련된 모른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소이섭이 눈앞에 서 있기 때문에 그녀는 억지로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실내를 둘러보았다.유강후는 어디에 있을까?온다연의 생각을 꿰뚫은 소이섭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강후는 전화 받으러 나갔어요.”그러자 온다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빨대로 요구르트를 쿡쿡 찔렀다.그러자 소이섭의 눈빛은 수상하게 변했다.“강후와 은별이가 곧 결혼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온다연은 대답을 하지 않고 더 힘을 주며 뚜껑을 뚫었다. 그리고 소이섭을 바라보며 되물었다.“저랑 무슨 상관이에요?”소이섭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듣기로는 네 엄마가 내연녀 때문에 죽었다고 하던데.”그러자 온다연은 손을 떨면서 요구르트를 땅에 떨구었다. 그 말을 듣자 강력한 펀치에 가슴을 맞은 것처럼 아파졌다. 그녀는 소이섭을 당황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소이섭은 미소를 지으면 안경을 바로 썼고 부드럽게 말
잠시 후 유강후가 들어왔다. 그는 온다연이 창가에 앉아 넋을 잃고 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발견했다.이렇게 시끌벅적하고 으리으리한 곳에서 그녀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의 떠들썩함은 그녀와 무관한 것 같았다. 아무리 좋다 해도 그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유강후는 온다연에게서 젊은 여자아이가 가져야 할 패기를 본 적이 없고 우울하고 걱정이 많다는 느낌만 받았다.유강후는 천천히 걸어가 온다연의 손을 잡았더니 차가운 손바닥에 땀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또 속이 안 좋아?”온다연은 정신을 차리고 유강후의 친구를 훑어보았다. 마치 그들이 자기를 보는 것이 두려운 것처럼 말이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친구들이 담화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내 친구들이니 무서워하지 마.”온다연은 고개를 푹 떨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너무 답답한데 나가서 산책이나 하고 싶어요.”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말하지 않았다. 온다연은 아침에 인사도 없이 떠난 일 때문에 자기가 유강후 앞에서 신임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녀는 유리창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작은 정자와 연못이 있는 곳에 물고기가 사는 것 같아요.”유강후가 거절할까 봐 온다연은 말을 덧붙였다.“여기서 보면 제가 보일 거예요.”그녀는 모처럼 단숨에 이렇게 많은 말을 했다.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부드럽게 말했다.“너무 멀리 가지 마. 사람을 시켜 약을 가져다 달라고 할게.”갇힌 곳에서 풀려난 듯한 온다연은 눈을 빤짝이더니 가방을 들고 옆문으로 재빨리 걸어 나갔다.경원시의 저녁은 시원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실내보다 훨씬 편안했다. 온다연은 외진 곳을 골라 앉았다. 비록 여전히 눈에 띄겠지만 적어도 유강후와 그의 친구를 직접 대면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온다연은 가져온 케이트를 조금씩 물고기에게 주었고 산들바람이 불자 아까보다 훨씬 편안해졌다.2분도 되지 않았는데 듣기 거북한
김원도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여기는 경원시야!”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게 뭐 어때서? 다시 나를 건드리면, 경원시에서도 너를 죽일 수 있을 거야!”말을 마친 그는 총을 던지고는 돌아서서 차에 올랐다.차가 장원을 떠날 때까지 김원도는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송지원은 냉정하게 말했다.“김원도 씨, 내가 당신이라면 당장 경원시를 떠날 겁니다. 여기는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떠나는 유강후의 차를 예리하게 응시하던 김원도의 눈빛은 더욱더 악의에 차올랐다.송지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로운에게 말했다.“이 사람들 다 처치해, 서둘러!”한 시간 전, 고위층은 긴급회의를 열었다.그들은 미래 그룹이 비상 무기를 사용하고, 저격수들을 동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비록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바로 경원시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들은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조사 결과, 상부에서는 엄중히 경고했고 만약 30분 안에 모든 일이 정리되지 않으면 무력 진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그때에는 누구도, 설령 신선이라 해도 유강후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이 소식을 접해듣고 송지원은 급히 달려왔다.그는 유강후가 경원시에서 무력을 사용할 정도로 미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제시간에 도착했으니 다행이지, 만약 10분만 늦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헬리콥터들이 점차 멀어져 가자, 송지원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새벽 2시, 서교 파출소 안에서 유강후는 진술서를 마친 뒤,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이번 일은 너무 큰 소란을 일으켜 상위층에까지 긴급 연락이 갔고, 필요한 절차들을 다 밟아야 했다.하지만 이 일을 벌이기 전, 그는 그 후폭풍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그의 개인 변호사, 미래 그룹의 수석 법무팀장인 허윤재는 이미 그에게 이번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며칠간 이곳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그때, 큰 파도가 몰려오며 유람선이 흔들리더니 갑판 위의 여자와 아이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김원도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달려가려 했지만, 누군가가 그를 가로막았다.그의 눈빛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그는 냉혹하게 말했다.“유강후, 네 여자가 죽는 게 두렵지 않냐?”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가더니, 바로 뒤에 있는 기둥에 박혔다.그와 함께 김원도의 머리카락 일부가 잘리며 떨어졌다.하지만 김원도는 그저 미동도 없이, 여유를 부리며 웃었다.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유강후, 이 정도로 나를 겁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렇게 한다고 내가 두려워할 것 같아?”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이럴수록 네가 도대체 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어. 영상 속의 모자로 나를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해? 어림없는 소리!”“나한테 아들이 하나뿐인 줄 알아? 그 애가 죽을 운명이면, 죽게 두면 되는 거지!”“유강후, 넌 여자 몇 명을 만나고 있어?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가 누구야?”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며, 서늘한 표정으로 유강후를 노려보았다.“맞춰볼까? 가장 사랑하는 여자, 온다연 맞지?”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죽일 듯 노려보며 손을 천천히 들었다. 순간, 검은 총구가 김원도를 겨누었다.김원도는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쏴, 내가 겁낼 줄 알아? 이곳은 경원시야. 법도가 있는 곳이지. 네 아버지가 아무리 대단해도 널 지킬 수 없어!”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아무 대답 없이, 손가락을 천천히 방아쇠에 올렸다.김원도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졌고, 그 순간 검은색 한 대가 급히 달려왔다.순간, 송지원이 차에서 뛰어내렸다.그는 달려와서 유강후의 팔을 붙잡았다.“유강후, 너 미쳤어?”유강후는 여전히 김원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로운, 네가 이 녀석을 부른 건가?”송지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백 명이 넘
“로운! 당장 저격수를 배치하고, 김원도의 은신처를 알아내!”로운은 유강후의 손을 잡아 제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아직 때가 아닙니다. 성급하게 움직이면 그동안 쌓아온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자는 이제 막다른 길에 몰렸습니다. 한 달, 길어야 한 달이면 끝장날 겁니다.”유강후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끈 튀어나오며, 차갑게 일갈했다.“닥쳐! 이해 못 했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로운은 그의 분노에 기세가 눌려 고개를 숙이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밤 12시, 수십 대의 대형 헬리콥터가 외곽의 한 산속 저택을 향해 돌진했다.개조된 수백 대의 허머 차량은 전투 차량처럼 산길의 아스팔트를 짓밟으며 저택 앞에 도착했다.저택은 희미한 불빛만 비추고 있었고, 헬리콥터들은 저공에서 낮게 맴돌며 마치 죽음의 전조처럼 낮은 굉음을 울렸다.아무도 문을 열러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곧 단단했던 철문은 허머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고, 전투 장비를 갖춘 저격수 수백 명이 중무장을 한 채 저택 안으로 돌진했다.차량과 사람들은 동양국 건축 양식의 저택을 완전히 포위하며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남기지 않았다.중앙에 멈춘 검은색 차량의 문이 열리고, 유강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검은 롱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차량과 한 몸이 된 듯 보였다.산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휘날렸고 저택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아래, 그의 눈에 스친 날카로운 살기가 바람에 흩어졌다.입구에 선 집사는 이런 압도적인 기세를 본 적이 없는지 다리가 풀려 주저앉더니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저택의 정문은 반쯤 열린 상태였지만 내부 상황은 알 수 없었다.유강후가 말문을 열기도 전에 로운이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곧이어 무겁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정문이 강제로 부서졌고,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다급히 걸어 나왔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잠옷 차림의 김원도였다.그는 유강후를 보자마자 눈을
“위층 화장실이 또 막혔다니! 후속 처리가 너무 엉망 아니야?”“그러니까, 요 며칠 내내 아래층까지 내려가야 하니 정말 불편하네.”...두 사람이 자리를 뜬 후에야 온다연은 천천히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유강후가 위층에 있는 걸까?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복도 모퉁이에 다다르자, 온다연은 로운이 한 여자를 부축하며 수술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곧바로 유강후가 그 여자의 붕대를 감은 손을 잡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거리가 멀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 스친 걱정과 안타까움은 너무나 선명했다.방금까지 마비된 듯했던 마음이 다시금 고통스럽게 저려왔다. 온다연은 숨을 참으며 허리를 숙여 자신의 배를 눌러야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이번에는 그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이 여자가 바로 진시현인가?’그녀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자신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니 장화연이 ‘대체품' 어쩌고 운운했던 것이다.하지만 실은 자신이 그 대체품이었다. 진시현이야말로 그의 진짜 연인이었다.온다연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 돌아서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그녀는 두려웠다. 더 보면 자신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달려들어 그를 추궁할까 봐. 그렇게 되면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질 테고, 서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될 거다.그리고 만약 그가 진시현을 위해 아이마저 외면한다면, 아이의 병은 언제 나을지 기약도 없을 것이다.의사가 아까 말했었다.“폐렴 치료는 짧아야 열흘에서 보름, 길면 한두 달은 걸립니다.”온다연은 속으로 다짐했다.‘참자, 아이가 안전해질 때까지만...’온다연이 돌아서는 순간, 로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됐습니다. 연기 그만하셔도 됩니다. 저쪽은 철수했습니다.”유강후는 다른 출구 쪽 문을 바라보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했다.“사람을 붙여. 당분간은 모르는 척해.”로운이 즉시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아래층.온다연은 마치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중환자
온다연은 영상 속 장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러다 또 다른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들어 옆에 서 있던 장화연을 바라보았다.장화연은 벽에 기대어 있었고,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없이 서 있었다.온다연은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다가가 추궁하고 싶었다.‘대체 강후 씨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숨겨왔어요?’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았다.장화연은 유강후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소리쳐봤자 장화연은 끝까지 그를 감싸기만 할 것이다.온다연은 알고 있었다.만약 장화연이 정말 자신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은 진실을 털어놓기에 충분했을 것이다.하지만 장화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 순간, 마음속에서 ‘신뢰'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온다연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장화연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창백하게 질린 온다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장화연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몸을 움직이려 하자, 온다연이 먼저 일어섰다.“장 집사님, 저 몸이 좀 안 좋아서 화장실에 다녀와야겠어요.”장화연은 그녀가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하는 줄 알고 조용히 말했다.“우림 도련님은 괜찮을 겁니다. 열이 떨어지기만 하면 곧 그룹 병원으로 옮길 거예요. 그쪽이 장비도 더 좋고, 의사들도 더 뛰어나니까요.”그럴듯한 위로를 들으며, 온다연은 주먹을 꼭 쥐었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화장실에 도착한 온다연은 손을 떨며 그 음성 메시지를 재생했다.“이 사람이 제 약혼녀입니다.”“온다연 씨 되시죠? 대표님께서 아주 각별히 아끼신다고 들었습니다...”“아니요, 저는 진시현입니다.”“아, 맞다, 진시현 씨. 제가 착각했네요. 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근데, 유 대표님이 온다연이랑 이미 혼인신고 했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혼인신고? 진짜인지 누가 알아? 나도 들은 얘긴데,
두 시간이 지났다.아이에게 열이 났다는 걸 유강후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는 단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심지어 메시지 한 줄조차 없었다.도대체 무슨 일, 무슨 회의가 그렇게 바빠서, 전화 한 통조차 걸 시간이 없는 걸까?그는 항상 말해왔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바로 그녀와 아이라고.하지만 지금 온다연의 머릿속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이의 모습과 더불어, 전화 속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로 어지러웠다.그녀는 과연 그를 믿어야 할까, 아니면 자신이 들은 것을 믿어야 할까?유강후의 전화를 대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비서이거나 이권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남자였다.그녀가 혼란 속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휴대전화의 알림음이 울렸다.‘틀림없이 강후 씨가 보낸 메시지일 거야!’그녀는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하며 초조함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메시지는 낯선 번호에서 온 친구 추가 요청이었다.검은색 프로필 사진에는 두 개의 눈만 드러나 있었다. 그 눈은 마치 어둠 속에서 그녀를 노려보는 악몽 같았다.친구 요청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네가 원하는 답을 가지고 있어.]온다연은 프로필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친구 요청을 수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여러 개의 영상과 사진을 보냈다.온다연은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하나 눌러봤고, 곧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영상 속에는 유강후가 어떤 여자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영상은 꽤 먼 거리에서 찍힌 듯했지만, 그가 유강후라는 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는 여자를 품에 안고, 그녀의 품에 안긴 작은 아기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그의 얼굴에 스치는 다정함은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은 온기를 담고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아담하고 온화한 실루엣은 뚜렷했다.흰색 홈웨어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 온다연이 입
“그 빨간 점은 딱 심장을 겨냥한 위치였어요. 만약 그대로 맞았다면 분명 심장에 명중했을 겁니다. 설령 나은별 씨가 총알을 대신 맞았다고 해도, 그분의 키를 고려하면 그 상처는 턱 아래에 있어야 해요. 하지만 지금 그분의 상처는 왼쪽 가슴에서 어깨 쪽으로 치우쳐 있죠.”진시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판단으로는, 암살자가 나은별 씨가 나타난 걸 보고 즉시 무기의 위치를 조정한 겁니다.”그녀는 응급실 쪽을 한 번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암살범이 왜 나은별 씨를 보고 갑자기 위치를 바꿨을까요? 대표님, 그 이유는 직접 조사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유강후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로 수술실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때 로운이 다가와 진시현을 안아 들고 수술실로 향했다.진시현은 몸을 살짝 비틀며 저항했다.“팀장님, 괜찮습니다. 제가 걸어갈 수 있어요.”하지만 로운은 무표정하게 단호히 말했다.“움직이지 마.”결국 진시현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그의 품에 안겨 수술실로 들어갔다.그 시각, 대형 주택 내부에서는 온다연이 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해하고 있었다.우림이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오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아이가 오후 두세 시쯤 갑작스럽게 미열이 났다.처음에는 단순히 소화 문제일 거라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주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설명하고 소화제를 조금 먹였다.그러나 저녁 여섯 시가 되자 아이의 열이 갑자기 급상승했다.다급히 달려온 주 박사가 진찰한 결과, 폐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하지만 주 박사는 서양의학 전문의가 아닌 데다 전문 장비를 가져오지 않았기에 병원으로 즉시 데려가야 한다고 권했다.문제는 밖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집 주변에 수상한 사람들이 출몰해 장화연은 이 주택도 감시당하고 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그래서 병원에서 의사와 장비를 호출하려고 논의했지만, 전문 장비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소란이 클 것 같았다.게다가 이 건
말을 마친 유강후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은별을 안아 들고, 거침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옆에서 소이섭도 서둘러 따라붙었다. 가는 내내 나은별의 피는 멈출 기색이 없었다.소이섭이 간단히 응급 처치를 해보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의식을 잃은 나은별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유강후, 은별 씨는 이런 사람이야. 널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다고!”그는 차갑게 비꼬듯 말했다.“그 고아 출신 여자애 때문에 네가 은별 씨를 몇 번이나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지? 앞으로도 계속 몰아세울 거야?”유강후는 이를 악물며 낮게 소리쳤다.“닥쳐. 내가 뭘 하든 네가 훈계할 자격은 없어!”소이섭은 냉소를 지었다.“그래도 말해야겠어. 넌 은별 씨한테 너무나 많은 빚을 졌어. 어떻게 갚을 건데? 돈으로? 네가 가진 돈이 만능이라도 된다고 생각해?”그 순간,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은 온다연이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떨려 있었다.“강후 씨, 아이가 열이 펄펄 끓고 있어요. 너무 높아서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어디예요?”유강후가 대답하려는 찰나, 소이섭이 낮게 속삭였다.“설마 은별 씨를 내버려두고, 그 고아 출신 여자애를 찾아가려는 건 아니겠지? 네 아들은 단순히 열이 나는 거고, 은별 씨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그다음 순간, 차갑고 무거운 총구가 소이섭의 머리 뒤에 닿았다.유강후는 전화를 손으로 가린 채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한마디만 더 하면 네 목숨은 끝이다.”소이섭은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총구를 치우고 나서 유강후는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다연아, 걱정하지 마. 지금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바로 못 가. 장 집사랑 병원으로 먼저 가 있어. 내가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하지만 온다연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배어 있었다.“주 박사님께서 진찰했는데, 대엽성 폐렴일 가능성이 크대요. 해열제도 소용이 없어서 아까 체온이 40도까지 올라갔어요. 빨리
술이 준비된 곳으로 걸음을 옮기니, 사람이 조금 뜸했다.진시현은 유강후의 팔을 조심스럽게 놓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우리가 이렇게 있으면 사모님께서 보시고 오해하시는 건 아닐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지금까지 잘 해왔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맡은 역할만 제대로 해.”그는 방금 전 험담을 늘어놓던 사람들 쪽을 아주 잠깐 바라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덧붙였다.“아까 수군거리던 사람들 찍어서 이권에게 보내서 처리하게 해.”진시현은 즉시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며 긴장된 표정을 띠었다.“김원도가 왔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다시 유강후의 팔을 친밀하게 잡고, 그의 몸에 기댔다.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강후 씨, 저 조금 추워요.”유강후는 손짓하자마자 누군가 부드러운 캐시미어 숄을 가져왔다.그는 직접 숄을 집어 들고 진시현의 어깨에 다정하게 걸쳐주었다.그리고 숄을 걸쳐주며 살짝 몸을 기울여, 마치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조심해. 저 근처에도 몇 명이 있어.”진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때 김원도가 다가왔다.그는 진시현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유 대표, 이분은 누구지?”유강후는 진시현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김씨 집안 사람이라면 강씨 집안의 휘장을 모를 리가 없겠지. 내 약혼녀야.”김원도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쓰다듬으며 낮게 웃었다.“유 대표는 정말 복이 많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곁에 있으니 오늘 밤에도 많은 여성분들이 마음 아파하겠어.”유강후는 김원도의 말을 무시한 채, 시선을 그에게서 돌려 방금 막 들어온 다른 남자를 바라보았다.그 남자는 김원도와 닮았지만, 그의 음험한 기운은 전혀 없었다.그는 유강후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원도에게 다가갔다.“형, 형도 여기 있었어?”김원도는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김원혁, 네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