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느낀 온다연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도로 힘껏 당기면서 말했다.“우리 이모는 내연녀가 아니야. 이모가 시집왔을 때 유하령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어.”고유정은 온다연이 말대꾸하는 것을 보자 화를 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도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천한 년, 3년 전부터 강후 삼촌이 네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던데 감히 강후 삼촌을 꼬셔? 이게 네가 할 짓이야? 이것만으로도 너를 죽을 때까지 괴롭힐 수 있어.”그리고 고유정은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그녀를 어두운 쪽으로 끌어당기자 온다연은 고유정의 팔을 잡고 세게 물었다.고유정은 고통을 호소하면서 이내 온다연을 뿌리쳤다. 고유정은 화가 나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온다연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금의 온다연은 마치 복수를 꿈꾸는 어린 짐승 같았다.“이 계집애가 감히 나를 물어?”고유정은 달려들어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이를 갈았다.“주한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하령이가 널 괴롭히려고 남자들을 불렀어. 그런데 그 자식이 너를 살려달래. 결국 널 대신해서 남자 세 명을 모시면서 잠자리했지. 세 남자가 주한이를 사정없이 갖고 놀았어. 그리고 동영상도 찍었지. 주한이 바지가 온통 피투성이로 될 만큼 말이야. 그리고 그걸 인터넷에 올리려고 했는데 주한이가 거절했지 뭐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뛰어내려 자살했지. 너는 모르지. 네년 때문에 주한이가 죽었어. 너를 위해 사정하지 않았더라면 세 남자한테 이렇게 놀림을 당하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뛰어내려 자살하지도 않았겠지? 남자한테 놀아나는 동영상이 아직도 내 핸드폰에 있는데 한번 볼래?”...온다연은 몸을 심하게 떨었고 숨이 막혀왔다. 그녀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솟아올랐고 이 악당들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다.주한, 주한, 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주한이가 이렇게 죽었다니.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비참한 고통을 겪으면서 죽었다니.주한이가 그렇게 죽었는데 이 나쁜 놈들은 왜 아직도 살아 있지?왜!!!온다연은 머릿
고유정의 비명에 금방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강제적으로 온다연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고유정의 목덜미를 있는 힘껏 깨문 그녀는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정말 살점이라도 뜯어낼 기세였다.고유정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온다연을 때렸다. 그런데도 그녀는 입을 놓지 않았고, 고유정이 힘이 풀릴 때까지 고집을 부렸다.유강후가 달려갈 때까지도 온다연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고유정의 목덜미를 물고 있었다. 눈빛도 평소와 달리 쑥스러움 하나 없이 독기가 서렸다.고유정은 욕설을 내뱉으며 온다연을 때렸다. 곁에서 한 사람은 있는 힘껏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런데도 그녀는 느껴지는 것이 없는 듯 치아에 힘을 풀지 않았다.인파를 뚫고 들어가 온다연의 손을 잡은 유강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다연아... 온다연...”차갑지만 힘 있는 손의 촉감과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온다연은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댔다. 그리고 천천히 고유정을 놓아줬다.초점 없이 흐릿하던 눈빛이 다시 또렷해지고 유강후의 얼굴이 보였다. 차가운 인상의 유강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녀를 얼려버릴 정도의 차가움이었다.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숙인 온다연은 바닥에 쓰러진 고유정을 발견했다. 그녀의 얼굴과 목덜미는 피범벅이 되었고, 말할 힘도 없는 듯 겁먹은 눈빛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온다연은 몸을 흠칫 떨며 자세를 바로 했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경찰차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아무래도 누군가 신고한 모양이다. 이 지역은 시내에 속해 있어서 경찰이 빠르게 출동할 수 있었다.온다연은 놀란 눈빛으로 경찰차를 바라봤다. 하도 당황한 탓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어느 순간 그녀는 어머니를 죽기 직전까지 때리고 경찰에게 잡혀갔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때도 경찰차는 이런 소리를 내며 다가왔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창문으로 몸을 던져 피떡이 된 채 숨을 거뒀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때 가로수 아래에 있던 온다연이 약간 꿈틀거리더니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머리 한 번 돌리지 않고 비틀비틀 인행도로 걸어갔다.인파 속에서 그녀는 금방 자취를 감췄다. 경찰과 경비는 그 구역을 세 번이나 샅샅이 뒤져보고 CCTV까지 확인했는데도 그녀를 찾지 못했다.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다친 채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고씨 가문에서는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소중한 딸이 머리에는 피멍이 들고 곳곳에 살점이 뜯겨 나갔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녀가 얻어맞는 영상은 빠르게 인터넷에서 퍼져가고 있었다.심하게 다친 고유정은 아직도 입원해 있었다. 뼈까지 다쳐서 수술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체면이야 어찌 됐든 회사 주식이 흔들린 것이 가장 용서할 수 없는 큰 문제였다.그들이 조사한 바로 온다연은 유자성의 재혼 상대의 조카에 불과했다. 어릴 적부터 유하령과 유민준에게 괴롭힘당한 건 물론이고, 부모도 없어서 늘 왕따를 당하고는 했다. 아무리 유씨 가문에서 자랐다고 해도 그녀의 명성은 도우미만도 못했다.그래도 고승철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유자성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유자성은 노발대발하면서 심미진을 탓하더니, 온다연은 유씨 가문과 일절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했다.고씨 가문은 이제야 시름을 놓고 경찰을 닦달했다. 3일 안에 온다연을 잡지 못하면 경찰까지 고소하겠다면서 말했다. 그들은 또 온다연을 잡은 사람에게 1억 원의 현상금을 준다고 했다.덕분에 온다연은 경원 전체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유씨 가문의 내연녀 심미진이 데려온 조카가 멋모르고 고유정을 건드렸다가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고 말이다.동시에 더 듣기 안 좋은 버전의 소문도 있었다. 온다연의 어머니도 사실은 내연녀였고, 남의 가정에 간섭했다가 버림받고 자살했다는 소문이었다.이런 소문이 생기자마자 여러 집안의 사모들이 입을 보탰다. 그들은 정말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온다연의 어머니가 어떻게 남의 가정에 간섭했을지 추측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유강후의 표정은 한결같이 차가웠다. 그러나 어두운 눈빛이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긴장할 것 없어요. 이 치마를 어떻게 얻었는지만 알려줘요.”말투에서부터 느껴지는 위압감에 사장은 감히 그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치마를 건네면서 말했다.“어제저녁 10시쯤에 고등학생 정도 되는 것 같은 여자애가 이 치마를 팔러왔어요. 4000만 원 정도 하는 신상인데 회수할 수 있냐고요. 저는 본 적 없는 디자인이라 당연히 가짜라고 생각하고 쫓아내려고 했죠. 근데 그 여자애가 끝까지 신상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짝퉁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본 적 없는 건 사실이니까 기부하는 셈으로 20만 원을 주고 팔았죠. 후에 다시 찾아보고 아직 판매하지 않은 다음 시즌 신상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단추에서 도련님이 남긴 흔적을 발견해 에이전시에 연락한 거예요.”말을 마친 사장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면서 유강후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유강후의 심기를 건드리면 그의 밥그릇이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유강후는 치맛자락을 매만지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 어때 보였어요?”사장은 기억을 되짚으며 대답했다.“어디 아픈지 안색이 좋지 않았어요. CCTV에 찍혔을 텐데 확인하시겠어요?”이때 이권이 밖에서 들어오면서 말했다.“찾았습니다. 근처의 오래된 아파트에 있는 모양입니다.”유강후의 어두운 표정은 저승사자를 연상케 했다. 이권도 감히 그를 직시하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너무 오래된 아파트라 기초 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CCTV도 없어서 인공위성으로 겨우 찾아냈습니다.”“앞장서.”이곳은 경원 최초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적어도 40년의 역사는 있을 것이다. 그런 곳이 이제는 빈민가가 되어 거의 만 명의 되는 가구가 살고 있다.멀지 않은 곳에서 보이는 신형 아파트와 이곳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골목길도 엄청 좁아서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차를 골목에 세우고 20분 정도 걸어 유
문을 열자마자 심각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래도 조금 청소한 티는 났다.소파는 20년 전에 유행하던 목제 소파이다. 위에는 원래 모습을 알 수 없는 누런 천이 덮여 있었다. 나무 바닥은 전부 갈라져 있었는데, 한 발짝 옮길 때마다 기괴한 삐걱 소리가 났다.낡은 테이블에는 보온병, 종이컵, 그리고 두 개의 컵라면이 있었다. 덜렁거리는 창문 사이로는 계속 바람이 새어 들어왔고 공기 속에는 선명한 피비린내가 있었다.유강후는 점점 어두워지는 눈빛으로 온다연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몇 번 더 불렀는데도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도 없었다.이권은 황급히 말했다.“제가 경비한테 물어봤는데 최근 외출한 적 없다고 합니다. 아마 방에 있을 것 같습니다.”자그마한 집에는 방 두 개가 있었다. 유강후는 오른쪽 방을 힐끗 보더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 중앙의 침대 위에는 백옥같이 희고 작은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큰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가느다란 팔다리는 보라색 침대 시트 위에 완전히 드러났다.햇빛은 낡은 창을 통해 얼룩덜룩 그녀의 몸을 비추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머리카락은 침대 위에 마구 흩어졌고, 입술 색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보였다.입술 가장자리에서 목까지는 마르지 않은 검붉은색 핏자국이 있었다. 유강후는 그런 온다연을 보자마자 안색이 변했다.“다연아!”온다연은 침대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유강후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코에 손가락을 대보았고, 따듯한 숨결을 느낀 다음에야 한시름 놓았다.위험천만한 사고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던 유강후의 눈빛은 마치 심연에 빠진 것처럼 어둡고 차가웠다. 그는 손을 올려 온다연의 티셔츠를 벗겼다. 가슴과 복부 전체에 멍이 들어 있었고, 긁히면서 생긴 핏자국은 아직 마르지도 않았다.유강후의 손은 약간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잠긴 목소리로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다연아.”여전히 반응이 없자 유강후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 그
유강후는 온다연의 차가운 손을 잡고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그래, 병원에 가지 말고 집에 가자.”그는 이권이 건네는 담요를 침대에 깔고 온다연의 몸에 조심스럽게 감쌌다. 그리고 최대한 누운 자세 그대로 안고 아래층에 내려갔다.그의 아우라에 경비는 왜 사람을 이런 식으로 안고 나가는지조차 묻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병원에 가지 않고 한 한의원으로 향했다.노련한 한의사는 온다연의 상태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진찰을 시작했다.“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습니다. 내장이 손상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상태로 봤을 때 감염이 확실한 것 같군요.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합니다.”한의사는 거의 죽어가는 온다연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저는 한의사라 수술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저희가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다른 병원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그 순간, 온다연이 유강후의 옷깃을 잡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초점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한의사에게 말했다.“이곳에서 수술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술실 좀 빌리겠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원에서 가장 뛰어난 외과 의사가 헬리콥터를 타고 이 작은 한의원에 도착했다. 50대가 되는 최고 전문가도 온다연의 상태에 놀라며 즉시 수술을 결정했다.그러나 그녀의 부상이 심각하고 하도 오래 방치되어서 한의원의 장비와 시설로는 수술을 진행할 수 없었다. 의사는 빨리 큰 병원으로 이송할 것을 권했다.온다연은 여전히 유강후의 옷깃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몸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허약했다. 유강후는 맞은편의 사립 병원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다연아, 우리 병원에 가는 건 어때?”온다연은 입을 달싹거렸지만 소리를 내지 못했다. 분위기는 최고로 가라앉았고, 공기 중에는 죽음의 냄새가 감돌았다.한의사와 이권은 식은땀을 흘리며 유강후를 주시했다.
유강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볍게 말했다.“시세의 두 배를 주고 사들여.”이권은 그가 병원을 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미래 그룹에 이미 훨씬 좋은 병원이 있기 때문이다.이 병원은 그저 일시적으로 빌려 쓰는 것에 불과했다. 병원을 사들이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는 말이다.“이 병원은 투자할 가치가 없습니다. 규모가 너무 작고 장비도 뒤떨어져요. 전문가도 전부 외부에서 초빙해야 하는데...”“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유강후의 목소리는 매섭고 냉랭했다.“당장 가서 협상하지 않고 뭐해?”이권은 더 이상 말할 용기가 없어서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7시간이 지나고 온다연은 수술실에서 나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유강후는 그녀를 볼 수조차 없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 중 한 명인 임교수는 유강후에게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는 수술실에서 나와 고개를 흔들었다.“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최근 몇 년 동안 해본 수술 중 가장 어려운 수술이었어요. 사고가 나자마자 바로 이송되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감염이 너무 심해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두어 번 빨고는 바로 비벼서 껐다.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교수님, 저한테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잘 부탁드립니다. 꼭 문제없이 회복되어야 합니다.”임교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지금은 환자가 스스로 버텨낼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이 며칠을 견뎌내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견디지 못하면...”임교수는 말을 멈추고 화제를 바꿨다.“수술 중 가장 강력한 항생제를 사용했습니다. 아주 드물게 사용하는 특효약입니다. 며칠 동안은 제가 직접 지켜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부디 양해해 주세요.”국내 최고의 의사로 불리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유강후는 말을 잇지 않고 감사 인사만 한 후 병실을 나섰다.온다연이 입원해 있는 층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복도는 무섭도
이권은 USB를 건네면서 말했다.“여기 모든 영상이 담겨 있습니다.”유강후는 온다연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서리가 내린 듯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노트북을 가져와.”이권이 노트북을 가져오고 그는 USB 속에 담긴 영상 파일을 열었다. USB 안에는 수십 개의 영상이 있었다. 모두 온다연이 그동안 겪어온 학대와 폭력을 증명하는 자료였다.유강후는 무작위로 하나를 클릭했다. 오래 전의 영상인 듯했다. 화면 속 온다연은 13살이나 14살 정도로 보였고, 자그마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는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서 있었다.소리는 없었지만, 그들의 입 모양을 통해 얼마나 모욕적인 말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온다연은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발길질과 욕설을 견뎌냈다.장소는 분명히 학교였지만 아무도 이를 막지 않았다. 화면을 통해서도 그녀의 절망이 느껴졌다.유강후는 물끄러미 영상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는 점점 더 강한 분노가 일고 있었다. 이권은 그가 주먹을 틀어쥔 것을 보고 무안한 표정으로 눈치를 봤다.첫 번째 영상은 10분 남짓 지속되었고, 곧 두 번째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번에는 대학교에서 찍힌 영상 같았다. 화면은 흐릿하고 심하게 흔들렸다.온다연은 하얀 치마를 입고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녀는 한 걸음씩 계단 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네가 감히 준우 선배를 꼬셔? 너 죽여버릴 거야!”“너 우리 학교 남자랑 전부 잔 적 있다며? 그 더러운 주둥이로 준우 선배까지 유혹해?”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발걸음은 여자들에게 밀려 점점 계단 끝으로 밀려갔다.이때 키 큰 여자가 화면에 나타나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온다연은 짧은 신음을 냈지만 여전히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다시 비속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온다연은 계단에서 밀려 떨어졌다. 화면은 급격히 흔들리면서 멈췄다.이윽고 다음 영상이 재생되었다.이번에는 온다연이 도망치는 모습이었고, 역시나 화면은
유강후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아니다. 우리 셋이 모이면 현수 씨랑 지원이가 서운하다고 난리 치겠네. 차라리 내가 미리 연락할게. 시간 괜찮다고 하면 이쪽으로 오라고 할게.”한재민이 답했다.“그래. 하루 정도는 여유 있으니까 나중에 시간 정하면 알려줘.”유강후가 다시 물었다.“이번에 형수님이랑 조카도 함께 온 거야? 같이 왔으면 데리고 오지. 아직 형수님을 만나 뵌 적이 없네?”아내와 아이를 언급하자 한재민의 표정은 한층 부드러워졌다.“같이 왔어. 은하 이번에 둘째를 임신했어. 혼자 두고 나올 수는 없어서 그냥 집에 있으라고 했어. 나도 그게 마음이 편하고.”유강후의 눈빛에는 부러움이 스쳤다.“우리 중에서 제일 먼저 아이를 낳을 줄은 몰랐네. 그것도 둘씩이나. 솔직히 제일 많이 놀았던 사람이잖아.”두 사람은 같은 생각이 스친 듯 갑자기 말이 없었다.“화장실 다녀올게요.”이를 알아챈 온다연은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 모두 오랜만에 만났으니 당연히 옛 추억에 대해 언급하고 싶을 것이고 그중에 여자 얘기가 빠질 수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온다연이 떠나자 한재민은 곧바로 물었다.“어릴 때 사람들이 우리 둘 다 나은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잖아. 사실 나는 네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챘어. 그런데 너무 깊이 숨겨서 아직도 그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다니까?”유강후는 눈빛이 부드러워졌다.“내 지금 아내야.”한재민은 온다연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그때 좋아하던 사람이 저분이라고?”“나이 차이가 꽤 있네?”“어쩐지 그렇게 숨기더라. 사람들이 수군거릴까 봐 얘기 못 했던 거지?”유강후가 답했다.“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건 대수롭지 않았는데 그때 다연이가 많이 어렸거든. 나도 일 때문에 집 비우는 일이 잦아서 옆에 있을 수가 없었어.”유강후는 그동안 온다연이 겪었던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많이 후회해. 그런데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한재민은 말문이 막혔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렸다.“누가 보면 우리가 살 능력이 없는 줄 알겠네.”“서혜윤?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네요. 한국인이면서 한국을 모욕하는 게 사람이 할 짓인가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직업이면 감지덕지할 줄 알아야지 어떻게 이용하고 무시할 생각을 하는 거죠? 이런 사람이 배우를 한다면 아이들이 뭘 보고 자라겠어요.”“출연금지 시키는 게 현명한 선택이네요. 오늘 찍힌 영상도 인터넷에 유포하는 게 좋겠어요. 사람들도 자기가 좋아하던 배우의 본모습은 알아야죠.”“삼촌인 저분도 같이 처리하는 게 좋겠어요. 피를 섞은 가족인데 어떤 사람인지는 안 봐도 뻔해요. 아무튼 앞으로 연예계에서 서혜윤은 보고 싶지 않네요.”유강후는 흐뭇하게 웃었다.“알겠어요. 유나 씨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요.”“또 뭐 사고 싶은 건 없어요? 쇼핑하러 나왔는데 괜히 저 사람들 때문에 기분 망치면 안 되잖아요. 들어가서 쇼핑할까요?”유강후는 온다연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뒤따라간 임혜린은 대뜸 온다연에게 말했다.“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 먼저 가볼게.”그렇게 말하고는 온다연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부랴부랴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다가 입구에서 어떤 잘생긴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다.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임혜린은 표정이 확 돌변했다.“한, 한이준...”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내 동생을 알아요?”임혜린은 그제야 이 남자가 한이준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라는 걸 알아챘다.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한이준보다 훨씬 성숙했다.깜짝 놀란 임혜린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한재민?”‘죽은 사람이잖아... 왜 살아있는 거지? 요즘은 죽다 살아나는 게 유행인가?’남자가 물었다.“저를 아세요?”임혜린은 멍하니 끄덕이다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모릅니다.”어렸을 때 멀리서 몇 번 본 게 전부라 아는 사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한씨 가문과 그 어떤 일로도 엮이고 싶지 않았던 임혜린은 재빨리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이때 그녀의
서혜윤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당당하게 말했다.“맞아요. 대작 영화죠. 아참, 방금 지나가신 분이 나 대표님인 것 같아요.”서혜윤은 입구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나은별은 보이지 않았다.“나 대표님과 아는 사이인가요?”유강후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곧장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그는 스피커폰으로 돌렸고 곧이어 한이준의 나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강후야, 회사 도착했는데 너 지금 어디야?”다른 사람은 괜찮았는데 임혜린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한이준 이 나쁜 X. 설마 유강후한테 끌려온 거야?’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서혜윤을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북아메리카에 왔다고?”“응. 왜 계속 헛소리만 해.”안색이 어두워진 임혜린은 당장이라도 유강후의 살점을 찢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봤다.‘딱 봐도 정보 유출했네. 진짜 왜 이러는 거지?’유강후는 여전히 태연했다.“서혜윤이라고 알아? 하나 엔터 소속인 것 같은데?”서혜윤은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줄 알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유강후를 바라봤다.“들어본 이름이네? 왜? 마음에 들었어?”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한이준, 너는 함부로 놀리는 그 입이 문제야. 중요한 얘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기분이 상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알았어. 조심하면 되잖아. 중요한 얘기라는 게 뭐야?”유강후는 임혜린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녀의 극도로 화가 난 표정을 보고선 비웃듯이 말했다.“됐어. 다음에 얘기할게. 대신 처리해 줘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아.”“서혜윤이라는 여자 당장 끌어내려.”이 말이 나오자 모두가 놀랐지만 유독 임혜린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혜윤은 그제야 다급해지기 시작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저를 끌어내린다뇨?”유강후는 상대하기 싫은지 가볍게 무시하고선 핸드폰 너머의 한이준에게 말했다.“명심해. 어디에 출연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똑바로 처리해.”“다짜고짜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여배
서혜윤은 멍하니 얼굴을 가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안준을 바라봤다.“삼촌, 왜 때려요?”서안준은 버럭 화를 냈다.“입 다물라고 했잖아.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서혜윤은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주주라면서요? 그게 뭐 대단하다고. 기껏해야 주식을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잖아요. 고작 그걸로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예요?”서안준은 바보 같은 조카 때문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쇼핑몰 주주일 뿐만 아니라 미래 그룹의 대표야. 강씨 가문의 후계자라고. 이제 알겠어? 무식하면 입 다물고 있어야지. 너 때문에 괜히 나까지 밉보였잖아.”서혜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이분이 미래그룹 대표라고요?”마침 서혜윤은 이번에 미래 그룹이 투자한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다.소문에 의하면 미래 그룹의 고위 임원이 자신의 아내를 위해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영화는 그렇다치고 가장 중요한 건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 차기 미래 그룹의 쥬얼리 모델과 많은 고급 화장품 브랜드의 모델로 채택되어 무한한 혜택을 얻을 수 있다.서혜윤은 청순하고 섬세하게 생긴 외모 덕분에 캐스팅 때 어떠한 스폰서의 비서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분은 서혜윤이 실제 영화의 여주를 닮은 데다가 연기력도 나름 괜찮아서 후보에 올렸다고 한다.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미래 그룹의 회장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게다가 영화 속 여주인공의 실물도 보게 되었다.‘젠장. 망했네.’서혜윤은 곧바로 다른 대책을 생각했다.실제 여주인공을 닮았다는 건 눈앞의 이 남자도 분명 그녀에게 어느 정도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시밎어 서혜윤은 톱 배우 라인에서도 예쁘다고 소문이 났기에 애교를 부린다면 흔들리지 않을 남자가 없다며 자신했다.이를 생각한 서혜윤은 목소리를 낮추고 눈물을 글썽이며 유강후를 바라봤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에요. 이분이 대표님의 아내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을 거예요...”서
유강후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색이 어두워지며 이권에게 속삭였다.“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이권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며칠 후에 있을 영화제 때문에 협찬받으러 온 게 아닐까요?”유강후는 목소리가 싸늘해졌다.“심사위원팀에 연락해서 당장 명단에서 빼버려. 절대 행사장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돼. 이름 올리는 건 더더욱 안되고. 만약 이름이 올라가면 올해는 물론 이후의 모든 협찬이 취소될 거라고 단호하게 얘기해.”말하는 사이에 나은별은 이미 안으로 들어갔다.유강후는 여전히 싸늘했다.“끌어내. 꼴도 보기 싫으니까.”이권은 재빨리 나은별을 잡았다.“대표님께서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뵙기 곤란하다고 합니다. 옆에 있는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시죠.”나은별은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유강후를 바라봤다.“강후 씨, 3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 내가 그렇게 미워?”“내가 잘못했어. 김원도가 그렇게 미칠 줄 알았더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연 씨랑 바꾸는 걸 막았을 거야.”말을 하던 그녀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다연... 다연 씨...”이권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재빨리 나은별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대표님께서 지금 바쁘십니다. 저랑 같이 나가시죠.”너무 놀라 혼이 나갔던 나은별은 순순히 이권의 손에 끌려갔고 중요한 일을 잊은듯했다.나은별을 보자마자 온다연은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유강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를 본 순간 이를 알아채고 재빨리 다가갔다.“머리가 아파요?”온다연은 나은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예요?”유강후는 차분하게 말했다.“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예전에 유나 씨랑 갈등이 있던 사이라서 아마 머리가 아플 거예요.”옆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임혜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저 쓰레기 같은 X.”유강후는 경고하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이때 서안준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강 대
하지만 온다연은 서혜윤에게 꺼지라고 했다. 설마 블랙 카드 사용자일까?그 생각은 잠깐 스쳤지만 곧 부정되었다.불가능했다.블랙카드는 세 명의 대주주만 가진 것이다. 이들은 평소 바빠서 자주 오지 않으며, 설령 오더라도 상위에서 미리 통보하여 매장을 비우게 했고 절대로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니 이 여자는 블랙카드가 아닌 골드 카드 사용자일 것이고 여기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매니저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온다연을 직접적으로 폭로할 수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고객님, 어서 나가주세요. 이미 내부 가격을 드렸으니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쇼핑할 수 있어요. 꼭 여기서 살 필요는 없잖아요!”그 순간, 그는 말을 멈췄다.온다연이 손에 검은 카드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쇼핑몰의 블랙 카드였다.그는 눈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이건...”“블랙 카드예요.” 온다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이 사람들을 쫓아낼 수 있나요?”매니저는 깜짝 놀라며 다시 한 번 온다연을 살폈으나 그녀의 옷차림에는 명품이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 카드, 진짜예요?”“당연히 가짜죠!” 서혜윤은 바닥에서 일어나며 온다연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이 블랙카드를 가질 리가 없어요!”“경찰 불러요! 가짜 카드로 사기 치다니, 어서 신고해요!”매니저는 블랙카드를 유심히 살펴본 뒤, 잠시 망설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 카드, 가짜 같지는 않아요. 제가 진짜를 두 번 본 적이 있는데 이 카드와 똑같아요. 여기 저희 쇼핑몰의 보안 마크도 있어요.”그때 몇 명이 매장으로 들어왔고 서혜윤은 그들을 보자마자 다가가며 말했다. “삼촌! 여기에 계셨네요! 여기에 블랙 카드를 들고 사기 치는 사람이 있어요. 빨리 경찰을 불러서 잡아가게 해요!”그 사람은 쇼핑센터의 주주 중 한 명인 서안준이었다.서안준은 크게 화를 말했다. “북아메리카 최고급 쇼핑몰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어서, 저
온다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말해보세요.”그때 서혜윤의 옆 사람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만해, 저 여자, 너 찍고 있는 거 같아.”서혜윤은 손을 휘휘 휘둘렀다. “뭐가 두려워? 여긴 외국이야.”온다연은 손뼉을 한 번 치며 말했다. “서혜윤 씨, 참 거만하시네요. 제가 이 영상 인터넷에 올려서 당신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어요.”서혜윤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뭐라고요?”온다연은 서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못 할 것 같아요? 당신은 국내에서 벌어놓은 돈으로 국내 제품을 무시하고 소비자들까지 경멸하며 ‘촌놈’ 이라고 말했죠. 외국 제품을 좋아하는 건 자유지만 자기 나라 사람을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건 스타 자격이 없다고 보는데요!”“예진 씨, 영상 올리고 핫서치도 하나 사요.”권예진은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바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바로 올릴게요!”서혜윤은 크게 화를 내며 권예진의 핸드폰을 잡으려고 달려들었지만 권예진은 그녀를 밀쳐 바닥에 넘어뜨렸다.서혜윤은 분에 못 이겨 소리쳤다. “보디가드, 보디가드 어디 있어? 당장 불러서 이 년들 손목을 부러뜨려!”직원은 급히 온다연 일행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빨리 나가세요, 서혜윤 씨 삼촌이 여긴 주주예요. 정말로 싸움이 나면 여러분만 불리해질 거예요!”온다연은 코웃음을 치며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권 씨, 이권 씨 사람들 어디 있어요? 바로 CC 매장으로 와주세요, 누가 저한테 손대려고 해요!”전화를 끊은 후, 서혜윤의 보디가드들이 이미 매장으로 돌진해 들어왔고 서혜윤은 온다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때려. 특히 저 여자 얼굴을 망가뜨려!”그 얼굴이 너무 눈에 거슬렸고 볼 때마다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임혜린은 온다연 앞에 서서 막았다. “얘가 누구인 줄 알기나 해요? 손 대기만 해봐요. 당신 같은 작은 스타는 물론이고 그쪽 삼촌까지 와도 싹싹 빌 수밖에 없을 거예요!”그녀는 날카롭게 말하며 강한 존재감을
그때, 그 세 사람도 온다연과 그 일행을 보았다.세 사람 중, 맨 앞에 있던 이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온다연의 얼굴을 두 초간 바라본 뒤, 질투심이 치밀어 올랐다.그때 매장 직원이 그들을 알아보고 웃으며 다가갔다.“혜윤 씨, 오셨네요. 새로운 스타일이 많이 입고됐는데 오늘 한번 보실래요?”서혜윤은 눈꺼풀을 살짝 올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게 비워. 이런 촌놈들과 함께 쇼핑하기 싫어.”직원은 잠시 놀라며 임혜린이 옷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혜윤 씨, 그분들도 저희 고객님이세요. 이렇게 하는 건 조금 곤란할 것 같은데요.”그때 옆에 있던 다른 여자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우리 혜윤이는 대스타야. 최근엔 거액의 투자가 들어간 영화 에서 여주인공을 맡았어. 보안이 철저해야 하는데 누가 여기서 뻔뻔하게 몰래 촬영하고 있을지 모르잖아? 며칠 전에도 여배우가 옷 갈아입는 모습이 찍혔다는 뉴스까지 나왔고.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어.”직원은 서둘러 말했다. “혜윤 씨, 정말 축하드려요. 그런데 저희 매장에는 여러 개의 탈의실이 있고 모두 매일 점검하고 있어서 그런 염려는 전혀 없어요.”서혜윤은 턱을 살짝 올리며 온다연을 가리키고 말했다. “저 여자들, 나가게 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옷을 갈아입을 수는 없어.”직원은 난감해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이미 옷을 고르셨고 여기 오시는 고객님들 대부분은 배경이 있는 분들이라 쉽게 무시할 수 없어요.”서혜윤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삼촌이 이곳의 주주야. 잊었어? 이곳은 우리 집 매장이나 마찬가지야. 만약 내 심기를 건드리면 여기서 가게 못 차릴 줄 알아.”직원은 어쩔 수 없이 임혜린에게 다가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방금 중요한 고객님이 오셨는데 그분께서 매장을 비우라고 하셨어요. 뜻을 거스를 수 없는 분이니 고객님께선 다른 시간에 다시 오셔야 할 것 같아요.”임혜린은
“잠깐 쉬자, 나 좀 피곤해.”“나도 피곤해, 앞에 VIP 라운지가 있는데 거기 가자. 무료 음료수랑 다과가 있어.”권예진은 듣자마자 눈이 반짝였다. “다과가 무료라고요? 나 배고팠는데 잘됐네요!”온다연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이 소비했는데, 다과 하나 먹는다고 뭐라고 하겠어요. 얼른 가요.”VIP실은 꽤 넓었고 안에는 몇 명이 흩어져 앉아 있었다.온다연 일행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멀리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가 뭐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인 줄 아나?”“조용히 해, 들었으면 어쩌려고!”“뭐가 무서워? 저 사람들 옷차림 좀 봐, 뭐 같아?”“아마 싸구려 브랜드겠지. 명품도 입지 못하는 처지에 여기에 와서 쇼핑한다니, 창피한 줄도 모르나 봐.”“아까 그 여자랑 같은 매장에 있었는데, 이것저것 예쁘다고 난리를 치더라고. 촌뜨기 티 나는 저런 사람들이 뭐가 무서워.”임혜린은 미간을 찡그리며 다가가려고 했지만 온다연이 그녀를 잡았다. “됐어, 그런 사람들하고 싸울 필요 없어.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넘어가자.”임혜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 옷이 뭐 어때서? 국제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한정판으로 나온 거야. 전 세계에서 50벌밖에 안 나오는 거라 저 인간들은 주문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온다연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됐어, 그냥 내버려둬. 우리 지금 충분히 피곤하잖아. 여기서 또 싸우면 아마 더 이상 쇼핑 못 할 걸.”권예진도 덧붙였다. “맞아요, 신경 쓸 필요 없어요. 품위도 없고 남들을 배려할 줄도 모르는 걸 보니 좋은 사람들이 아닐 거예요.”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세 사람을 슬쩍 훑어봤다.그들은 유창한 한국어를 했고 그중 한 명은 낯이 익었다. 아마도 유명한 여배우였던 것 같은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세 사람은 그들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 비꼬는 말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떠나고 나서 온다연 일행은 한동안 편안하게 쉬면서 음료도 마시고 다과도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