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믿지 못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상처가...” 유강후는 대답했다. “찢어진 게 아니야, 그냥 너 때문에 열받아서 아픈 거야.” “네가 날 열받게 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거야.” 온다연은 반신반의하며 그의 옆에 누워 있었다. 유강후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더 자자. 이번엔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 온다연은 임혜린이 떠올라 말했다. “혜린이가 아직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혜린이와 잠깐 이야기해야 해요.” 그 말이 끝나자, 유강후는 미간을 찡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처가 또 아프네. 화가 나면 더 아파.” 온다연은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고 의심했지만, 그의 얼굴에 땀이 맺힌 것을 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손으로 그의 허리의 붕대를 가볍게 만지며 속삭였다. “화가 나면 상처가 아프다니요? 아저씨, 저한테 거짓말하는 거죠?”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고 싶으면 가도 돼. 나 신경 쓰지 마.” 그는 다시 미간을 찡그리며, 얇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정말로 고통을 참는 것 같았다. 온다연은 그의 몸에 네 군데 상처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럼 저를 안고 있어요. 그래도 아프면 임 교수님을 부를 거예요.” 유강후는 그녀가 더 편한 자세로 자신의 품에 기대게 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함께 잠깐 자자.” 온다연은 그의 품에 기꺼이 기대며 그가 자신을 감싸게 했다. 다시 깨어났을 때,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온다연은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가 언제부터인지 두 사람이 누울 수 있을 만큼 넓어진 것을 발견했다. 유강후는 그녀 옆에 앉아 있었고, 앞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 눈을 비비자 정신이 좀 맑아진 것을 느꼈다. “저 얼마나 잤어요?”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열 시간, 점심 열 시부터 지금까지.” 온다연은 깜짝 놀랐고 안 좋은 예감에 일어나서
며칠 만에 유강후는 꽤 회복되었다. 최고의 의료팀과 약물 덕분에 본래 건강한 그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경원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임 교수는 그가 반드시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여러 번 요구했지만, 유강후는 전통 한옥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했다. 그곳이 그의 개인 병원과 가까운 곳이라 임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특별히 간호사도 붙여주었다. 차에서 내릴 때, 온다연은 아직 깨지 않았다. 최근 며칠 동안 그녀는 더욱 잠이 많았고,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절반 가까운 시간을 잠자고 있었다. 그리고 입덧이 이전보다 심해져서 먹는 것마다 토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유강후는 반드시 경원시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부드러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연아, 집에 왔어.” 온다연은 깨지 않고, 그냥 몸을 돌려 그의 옷 속에 머리를 묻고 계속 잠을 잤다.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 장화연이 보자마자 급히 온다연을 받으려 했다. 유강후는 그녀를 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충분히 안을 수 있으니, 그렇게 큰일은 아니야.” 키 크고 다리가 긴 유강후는 몇 걸음 만에 거실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강해숙이 그를 불러 세웠고 이마를 찌푸렸다. “상처가 좀 나아졌다고 무모하게 구는 거냐?”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바로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야 다시 거실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강해숙은 창가의 흔들의자에 앉아 부드러운 양털 담요를 무릎에 덮고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유강후는 찡그리며 그녀의 담배를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미 끊었잖아요, 왜 다시 피우고 있어요?” 강해숙은 아들의 행동에 익숙한 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요즘 네 누나 꿈을 자주 꿔서, 깨고 나면 계속 잠이 안 와서 피우게 돼.” 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저 결혼해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제가 잘 알고 있어요.” 강해숙이 물었다. “너 온다연을 정말 좋아하니?” 유강후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아마 그렇겠죠. 이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다연이가 저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너무 아파요. 차라리 온다연이 내 손에 죽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주고 싶지 않아요.” 강해숙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병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거 아니야? 약으로 조절하지 않아?” 유강후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저는 병이 아니에요. 다들 저를 병든 사람으로 보지만, 저는 건강해요. 온다연에 대한 생각만 이렇게 강할 뿐, 다른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아요.” 강해숙은 아들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온다연도 너를 좋아하니?” 유강후는 대답했다. “아마 좋아할 거예요. 하지만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는 그녀가 저를 좋아하게 만들 거예요.” 강해숙은 침묵 속에서 그를 바라보다가 오랫동안 생각한 후 말했다. “내가 너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네가 이렇게 방탕해졌나 보구나. 하지만 지금은 너에게 신경 쓸 힘이 없어. 온다연한테 잘 대해 줘.”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 말했다. “나 아파. 의사가 3년에서 5년만 더 살 수 있다고 하더라.” 유강후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말했다. “무슨 병이에요? 치료할 수 없어요?” 강해숙은 대답했다. “그렇게 큰 병은 아니야. 지나치게 걱정한 탓이지. 인생의 끝에 다다랐다는 의미야. 의사는 짧으면 3년, 길면 5년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에게는 3년이나 5년이나 별로 상관없어. 나는 그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아.” 그녀는 돌아서서 유강후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 일은 네 외할아버지가 아직 모르셔. 마지막 순간에 알려줄 생각이야.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마. 남은 시간 동안 나는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어, 너의 아버지가 방해하길 원치 않아.”
온다연은 맨발에 약간 헐렁한 홈웨어를 입고 있어 보기에 매우 여리여리해 보였다. 방은 따뜻했지만, 복도에는 바람이 불어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리며 더욱 조용하고 착한 모습으로 비쳤다. 그녀는 여기서 강해숙을 만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강해숙이 이곳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녀와 함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긴장했다. 유강후가 다가오자, 온다연은 정신을 차렸다. 유강후는 장화연이 건네준 분홍색 플리스 슬리퍼를 받아 반쯤 쪼그려 앉아 온다연을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겨 주면서 말했다. “왜 또 신발을 안 신었어? 맨발로 있으면 추워지잖아.” 온다연은 본능적으로 창가를 쳐다보았다. 강해숙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에게 작게 말했다. “아저씨, 강 이사님 우리와 함께 살 건가요?” 유강후는 대답했다. “내 어머닌데 당연하지.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너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거야.” 온다연은 강해숙이 본가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유강후의 어머니라는 특별한 신분 때문에 어떻게 장기적으로 함께 지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긴장이 더욱 커졌다. “저, 아저씨 어머니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유강후가 일어나 그녀를 놀리며 말했다. “시어머니와 어떻게 지낼지 모르겠다는 거야?” 온다연은 얼굴이 더 붉어졌고 말까지 더듬었다. “무, 무슨 소리예요...” 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강해숙 앞에 다가갔다. “어머니, 온다연이랑 이야기해요. 너무 공식적으로 굴지 말고, 다연이가 겁이 많아요.” 강해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조금 알고 지냈어.” 그녀는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임신했는데, 왜 전에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니?” 온다연은 당황스러워졌다. 강해숙은 정말 우아했고 말투도 부드러웠지만,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서 지내다 보니 그녀의 신분은 쉽게 무시할 수 없었
동시에 유강후는 온다연을 위해 더 좋은 한의사를 찾아서 관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아침 식사 후, 유강후는 서재에서 일하고 있었고, 온다연은 그의 옆에 있는 안락의자에 엎드려 그가 전화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최근 그녀는 점점 더 졸린 상태였고,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이 반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입덧도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대다수의 임산부는 세 달이 지나면 입덧 증상이 점차 사라지지만, 온다연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더 심하게 구토를 하고 있었다. 식사는 항상 조심스럽게 조절하고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너무 마르고 처참해 보였다.유강후는 회의 도중 그녀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자 회의를 중단했다. 그녀를 안아 올리자,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저씨 곁에서 자고 싶어요. 너무 멀리 있으면 잘 못 자요.” 유강후는 앉아 그녀를 무릎에 올리고, 애정 어린 목소리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곁에 있는 게 그렇게 좋아?” 비록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온다연은 이렇게 직설적인 사랑 고백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그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작게 말했다. “구역질 날 때 아저씨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면 좀 더 나아져요.” 그러면서 그녀는 조그마한 이마를 찡그렸다. “책에선 세 달이 지나면 구역질이 덜 한다고 했는데, 왜 저는 더 심해진 거죠?”유강후의 눈빛 속에는 슬픔이 스쳤고, 가슴속의 아픔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했다. “너의 몸이 좀 약하니까, 며칠 더 구토하는 건 정상이야.” 사실 의사는 여러 번 그에게 이미 경고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다연에게 문제는 점점 더 많아지고, 구토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이는 모체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임신을 종료하려는 과정이었다.초기에는 한약으로 조절할 수 있었지만, 후기로
유강후는 그녀의 뾰로통한 모습이 귀여워 볼을 살짝 꼬집었다.“나쁜 짓을 하려고?”온다연은 그의 손을 쳐버렸다.“가슴 아파요?”말을 마친 그녀는 유강후를 뿌리치고 일어나려고 했다.유강후는 두 팔로 그녀를 휘감고 내려가지 못하게 하더니 손을 그녀의 아랫배에 올려놓았다.“내게 아이를 낳아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가슴 아파해?”온다연은 그의 손을 잡고 손등을 물었다.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났는데도 그녀는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언짢아하며 말했다.“그럼 낳아달라고 하지 그래요? 죽마고우라 잘 상의하면 될 텐데요.”유강후는 그녀의 얼굴을 돌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게 했다.“너 이렇게 질투가 심한 걸 전에는 왜 몰랐지?”유강후를 쳐다보는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유강후의 옷깃을 정리한 후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저한테 죽마고우가 있다면 어떡하게 할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한참 들여다보았다.“있어? 왜 난 모르지?”온다연이 열 살 때 유씨 가문에 왔으니 죽마고우라 할 만한 사람은 유민준밖에 없다.하지만 유민준은 아닌 게 분명하다.온다연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유하령이 그때 정말 깨끗이 처리한 모양이다.주한에 관한 모든 것이 흔적조차 없이 지워졌으니 유강후가 그녀의 과거를 조사할 때 주한에 관한 정보를 전혀 찾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그녀는 당시 의문이 들어 임정아를 통해 자료를 조회해 보았는데, 주한에 관한 모든 정보가 없어졌고 학교 생활 기록까지 깨끗이 지워졌다.이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주한 사건이 벌써 5년 전 일인데, 유씨 가문의 능력으로 4-5년 사이에 한 사람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그러면 유강후가 수집한 정보에 이 사람이 빠졌던 것도 말이 된다.하지만 모든 사람이 주한을 잊어도 그녀는 잊을 수 없다.주한은 그녀에게 사랑은 아니었지만, 사랑보다 백배 천배 중요한 보살핌과 따뜻함이었다.어린 시절부터 외로웠던 그녀에게 사랑보다는 추운 날의 뜨끈한 국
화를 내는데 목소리가 낮고 가냘프니 어리광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유강후는 그녀를 꼭 껴안고 손으로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을 눌렀다.“이렇게 질투가 심해? 대대로 교분이 있는 집안일 뿐 애정 같은 건 없어. 한재민이 좋아하는 여자야.”“하지만 다연아, 너는 죽마고우가 없잖아. 그러니 더 이상 이런 말로 나를 화나게 하지 마. 정말 화가 난단 말이야. 너의 모든 것은 내 거야.”‘넌 내 거야!’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강탈했다.그녀를 건드리지 않은 지 오래됐다. 보기만 하고 먹을 수 없는 건 너무 괴롭다.특히 얼마 전 그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체험한 후, 지금 억지로 참으려 하니 그야말로 고통스럽다.하지만 그녀의 현재 몸 상태를 고려하면 참을 수밖에 없다.어찌나 키스를 퍼부어 대는지 온다연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그녀는 유강후가 통제력을 잃고 함부로 할까 봐 도망가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유강후처럼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스러운 사람이 그녀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할 리 있겠는가?그 일은 못 해도 다른 건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졌다.유강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깨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는 참지 못할 것 같아.”온다연은 놀라서 울상이 되었다.“안 돼, 안 돼요. 놔요.”유강후는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내가 이전에 가르쳐 준 것처럼...”그렇게 끈적한 분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됐다.유강후가 온다연을 안고 나왔을 때, 장화연이 해바라기꽃을 한 아름 들고 와서 꽃병에 꽂고 있었다.현관, 테이블, 창턱이 온통 눈부신 해바라기 꽃으로 장식돼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에 약간의 따뜻함을 더했다.방금 만족을 얻어 기분 좋은 유강후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머리에 키스했다.“잔꾀가 진짜 많아.”피곤해서 움직이기도 싫은 온다연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 졸려요. 자고 싶어요.”“그래, 곧 잘 수 있어.”유강후는 그녀를 조심스레 침실로
문이 열리자, 나은별은 이내 고개를 들고 온다연을 바라보았다.온다연이 입은 옷을 본 그녀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온다연은 그녀와 거의 같은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아리따운 모습으로 문어귀에 서 있었는데, 불빛 아래서 피부가 희다 못해 빛이 났다.나은별은 순간적으로 자기가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게다가 온다연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소녀미는 그녀가 비싼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온다연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온다연의 눈에서 분노를 읽었다.이때 유강후가 온다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깼어? 이리 와.”온다연은 시선을 거두고 유강후에게 다가갔다.그녀가 가까이 가기도 전에 유강후가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뒤이어 그는 컴퓨터를 끄고 온다연을 자기 다리 위에 앉힌 후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카락에 키스했다.“왜 이렇게 예쁘게 입었어?”나은별은 창백한 얼굴에 당장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온다연은 고개를 쳐들고 천진한 표정으로 유강후를 바라보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이러지 말아요. 사람이 있는데.”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느새 새끼손가락을 몰래 유강후의 새끼손가락에 걸었다. 빨간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은 마치 키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그녀의 이런 잔꾀를 이내 알아차리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에 뽀뽀했다.“잔꾀가 진짜 많아.”온다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그의 어깨에 파묻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은별 씨가 있는데...”그녀는 말하면서 곁눈질로 나은별을 슬쩍 보았다.나은별은 화가 나서 얼굴까지 일그러졌다.온다연이 속으로 코웃음을 치다가 입을 열려는데, 나은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강후 씨, 두 사람...”유강후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극히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보다시피 우리 사귀어.”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우리 사귄 지 오래됐어. 은별 씨가 생각하는 대로야.”나은별은 유강후가 그 자리에서 인정할 줄은 몰랐다.그녀의 눈에 온다연
장화연은 표진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마 그냥 지나가는 말일 겁니다. 적어도 사모님 뒷말은 하지 마세요.”“잠시 후에 한 대표님과 봉 대표님이 오셔서 결혼식 장소에 대해 논의할 거예요. 차와 간식을 준비하세요. 한 대표님의 새로운 파트너분은 커피와 서양 과자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것도 준비하시고 나머지는 평소대로 하시면 됩니다.”“네, 장 집사님.”하인이 돌아서려는 순간, 장화연이 다시 말했다.“준비해 두세요. 결혼식이 끝난 뒤, 당신은 영운산 별장으로 가서 일하게 될 겁니다. 모든 일에 좀 더 신경 쓰세요. 셋째 도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장으로 가는 사람은 대우가 더 나아질 거라고 하셨습니다.”하인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알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저녁 식사 전, 한이준과 봉현수가 정말로 도착했다.다만 한이준 옆에 선 사람은 낯선 얼굴이었다.봉현수 옆에는 여전히 지예솔이 함께였다.온다연의 시선이 한이준의 파트너에게 스치듯 지나갔다.단정하고 청순한 외모로 임혜린과 몇 분 닮은 느낌이었다.하지만 곧 그녀는 무표정하게 시선을 돌렸다.그런데도 그 여자는 무척 친근한 척하며 달콤한 미소로 말했다.“유 대표님, 저 기억하시나요? 저는 이진이의 어릴 적 친구 곽혜영이에요. 예전에 모임에서 뵌 적 있는데.”유강후는 별다른 표정 없이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곽혜영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 있게 행동했다.저녁 식사가 무척 풍성하게 준비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곽혜영은 식사 중 활발하게 대화를 이끌며 마치 유씨 가문과 봉씨 가문에 아주 익숙한 사람처럼 굴었다.그러나 두 남자는 마치 포커페이스를 하듯 냉담한 표정을 유지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곽혜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국제 정세와 금융 이야기를 꺼내며 온다연과 지예솔을 가끔씩 흘끔거렸다.그 눈빛 속에는 미묘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곽혜영은 사전에 조사를 했었다.온다연과 지예솔은 얼굴로 자리를 차지한
말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감탄했다.보기에는 여리여리하지만 옷감 아래 숨겨진 몸매는 정말 볼륨감이 있었다. 허리는 너무나 가늘어 아찔할 정도였고 가슴은 부드럽고 풍만해 전혀 작지 않았다.외부 사람이 있는 것을 본 온다연은 유강후의 팔에서 벗어나려 했다.눈가에는 아직도 약간의 붉은 기운이 남아 있는 채로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고르고 싶지 않아요. 아저씨가 결정한 일이니까 아저씨가 직접 골라요.”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 나가려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그녀를 다시 끌어안으며 성급함을 억누르고 달래듯 말했다.“결혼식이 이제 보름 남았어. 고르지 않으면 그날 입을 게 없잖아.”온다연은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유강후의 품에 갇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빠져나갈 수 없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표진아의 조수가 몇 벌의 웨딩드레스를 가져왔다. 모두 엄선된 고급 맞춤 드레스였는데 화려하면서도 신선하고 우아한 매력을 잃지 않은 디자인이었다.하지만 20벌이 넘는 드레스를 계속 보여줬음에도 온다연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너무 피곤한 듯 보였다.지쳐 보이는 온다연의 모습에 유강후는 안쓰러워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많이 힘들지? 내일 다시 골라볼까?”그러나 온다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드레스들 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며칠 동안 그녀는 계속 이런 상태였다.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아이를 잃었다는 소식은 그녀의 마음을 철저히 무너뜨렸다.오늘도 유강후가 계속 달래고 유도하며 울고 말하게 하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자 유강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곧 허리를 숙여 그녀를 안아 들고 나가려는 찰나, 표진아가 급히 말했다.“사모님께서 만족하지 못하신다면 제가 다른 시리즈를 준비해왔습니다. 트렌디한 전통 스타일인데 사모님의 기품에 딱 맞을 겁니다. 애프터 드레스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이런 큰 거래를
표진아가 뚫어져라 온다연을 쳐다보자 옆에 있던 집사가 입을 열었다.“저희 사모님입니다.”표진아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설마 미성년자를 만나는 건가?’부유한 집안의 아가씨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유강후라는 온실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처럼 보였다.‘이런 외모를 가졌으면 유 대표님 같은 분을 만나는 게 맞지. 안 그러면 이상한 사람이 얼마나 꼬이겠어.’표진아는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사모님이 생각보다 어리시네요. 미성년자는 아니겠죠?”집사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눈살을 찌푸렸다.“진아 씨, 도련님이 화낼지도 모르니 안에 들어가서는 절대 이런 얘기를 꺼내시면 안 됩니다. 사모님은 혼인신고까지 마친 성인이에요.”“그리고 사모님이 요즘 도련님과 갈등이 생겨 기분이 안 좋으시니 언행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표진아가 막 답하려던 찰나 커다란 문이 열리며 제네시스 한 대가 안으로 들어왔다.집사는 그녀의 옆에서 급히 속삭였다.“도련님이 오셨네요. 진아 씨는 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시죠.”표진아는 집사의 뒤를 따르며 걸음을 옮겼다.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다실에는 넓은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었고 창문을 열면 바깥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표진아는 천하의 미래 그룹 대표가 차에서 커다란 상자 몇 개를 옮기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그런 다음 부하들을 시켜 상자에 들어있는 물건을 꺼내 조립했고 순식간에 2,3m 높이에 달하는 고양이 집이 완성되었다.표진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유 대표님이 이런 일도 직접 한다고?’곧이어 목격한 장면에 그녀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평소 위엄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유강후가 허리를 숙여 조심스럽게 온다연을 달래주고 있었다.그러나 온다연은 가볍게 무시한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유강후가 옆에서 한참을 달래도 입조차 벙끗하지 않았다.곧이어 유강후는 비서에게 뭔가를 지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나왔다.고양이를 보고서야 온다연의 얼굴에는 미세한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그러나
“하는 짓을 봐서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게 뻔합니다.”유강후는 섬뜩한 눈빛으로 사진을 바라봤다.“로운 불러와.”곧이어 로운이 들어왔다.유강후는 단호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공격해. 경원으로 들어온 암살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죽여버려.”“시간은 딱 한 달이야. 난 한 달 안에 김씨 가문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어.”로운은 눈살을 찌푸렸다.“대표님, 열흘 정도만 더 기다리면 분명히 성공할 거라 확신합니다만 지금 바로 공격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로운.”유강후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이미 내가 참을 수 있는 최대 인내심에 도달했어. 한 달 후에 임무를 완수한다면 돈, 사람, 물건 네가 원하는 건 전부 다 줄 수 있으니까 넌 여기에만 집중해.”“계정에 나온 모든 암살자를 너한테 맡길 거야. 난 대답만 원하니까 넌 반드시 성공해.”로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맡겨주신 일은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로운이 나가자 이권이 입을 열었다.“도련님, 열흘이면 되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는 건...”“안돼.”유강후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화창한 봄날에 꽃 피는 언덕에서 가장 로맨틱한 결혼식을 올려주겠다고 다연이랑 약속했어.”“안 그래도 빚진 게 많은데 이런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면 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이권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벙끗했으나 끝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유강후는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굉장히 침착하고 이성적인 성향이기에 지금처럼 큰 위험을 감수할 때가 많지 않다. 남자로서 유강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리스크가 너무 큰 모험이다.온다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래 그룹의 앞날을 걸고 있는 격이다.유강후는 정말 뼛속까지 온다연을 사랑하고 있었다.봄은 갈수록 날이 길어졌고 햇볕은 점점 더 따뜻해졌다.그러나 생기가 넘쳐야 할 봄날과 달리 한옥은 조용하기 그지없다.듣기로 여주인은 정원 중앙의 나무 밑에 의자를 두어 그
온다연이 너무 안쓰러워 덩달아 괴로움이 밀려온 유강후는 끊임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아니야. 다연이는 최고의 엄마야.”“우리 아이는 다연이를 엄청 좋아해. 그러니까 계속 꿈에 나타나잖아.”“울고 싶으면 울어. 참지 않아도 돼.”온다연은 울먹였다.“꼭 돌아오겠죠? 강후 씨, 아이는 다시 절 찾아올 거예요. 맞죠?”“그런데 꿈속에는 신발 한 켤레도 없이 맨발이었어요. 너무 불쌍해요.”꿈속의 장면이 떠오른 온다연은 가슴이 터질 듯 울부짖었다.“그곳이 너무 춥대요. 왜 데리러 안 오냐고 원망하는데...”“강후 씨, 아이가 추워하나 봐요.”“나 너무 힘들어요.”“괴로워요.”...극심한 괴로움과 고통은 몸의 경련을 일으켰다.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느새 유강후의 옷자락을 적셨다.그는 온다연의 피와 살에 녹아들듯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돌아올 거야. 무조건 돌아오니까 걱정하지 마. 다연아, 이제 그만 아파해.”...한참 동안 울다가 지쳐버린 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흐느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안방 문을 열려 있었는데 침대는 깨끗이 치워졌고 도우미 몇 명이 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찾고 있었다.그에게 안겨있던 온다연은 발버둥 치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 팔찌가 부러진 곳에 무릎을 꿇더니 나무판자 틈을 따라 조금씩 이동하며 찾았다.온다연이 움직이는 방향 따라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마침내 호박석은 바닥과 벽이 맞닿은 틈새에서 발견됐다.온다연은 그것을 손에 쥔 채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아예 몰랐던 도우미들은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나지 않아 푹 숙인 채 입을 닫았다.유강후는 그녀 앞에 무릎을 반쯤 꿇고 품에 안았다.“다연아, 이제 찾았으니까 좀 쉴래?”온다연은 호박석에 담긴 아이의 체온이라도 느끼려는듯 손에 꽉 쥔채 놓지 않았다.“강후 씨, 아이가 잠든 곳에 가고 싶어요.”온다연은 몸이 너무
‘호박석에 들어있는 게 정말 아이의 머리카락이라고?’온다연이 차고 있던 팔찌는 엊그제 영문도 모른 채 끊어졌고 그때 호박석을 잃어버렸다.그걸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온다연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아이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유일한 증거를 잃어버렸으니 죄책감이 밀려왔고 반드시 다시 찾으리라 다짐했다.‘찾아야 돼. 아직 그 방에 있을 거야.’온다연은 허둥지둥 침대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밖으로 뛰어갔다.이를 본 장화연도 얼른 뒤따라가며 그녀를 말렸다.“다연 씨, 건강이 회복되면 언제든지 아이를 만날 수 있어요. 지금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잖아요. 이대로 나가면 다칠 겁니다.”온다연은 주저 없이 장화연을 밀어냈다.“비켜요. 장 집사님이 참견할 일이 아니잖아요.”장화연은 경호원에게 눈치를 주고선 여전히 온다연을 부축했다.“그럼 뭐라도 좀 먹고 가세요. 엄마가 힘없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도 속상해할 겁니다.”그 말을 듣고 멈칫한 온다연은 곧바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내가 초라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도 싫어하겠지?’‘하긴 이런 엄마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온다연은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죽 먹을게요. 줘요.”장화연은 그녀를 작은 식탁으로 부축해 갔다.“아직 뜨거우니까 천천히 드세요.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온다연은 죽을 필사적으로 입에 밀어 넣었다.너무 급하게 먹은 탓에 속이 안 좋은지 곧바로 심한 기침을 이어갔다.장화연을 다급하게 죽그릇을 옆으로 치웠다.“이렇게 드시면 안 됩니다.”때마침 병실로 돌아온 유강후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기침하고 있는 온다연을 발견했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그는 다급하게 달려오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유강후는 병실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단호하게 호통쳤다.“사람이 몇인데 이런 일도 똑바로 못하면 어쩌자는 거야. 한 명을 케어하는 게 어려워?”병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문 채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이때 온다연이 유강후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그러고선 팔찌를 뚫어져라 쳐
장화연은 한숨을 내쉬며 진지하게 답했다.“다연 씨는 가족이 없잖아요. 아이가 유일한 희망인데 지금은...”“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도련님은 무조건 다연 씨의 편을 들어야 합니다. 망설임 없는 확고한 모습을 보여줘야 다연 씨는 안정감을 느낄 겁니다.”“잠드신 것 같은데 침대로 옮기시죠.”유강후는 신생아를 안은 듯 조심스럽게 온다연을 침대로 옮겼다.온다연의 연약함은 깃털과도 같아서 그가 조금만 힘을 줘도 금방 찢어질 게 틀림없다.하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소리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유강후는 침대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마치 이렇게 하면 온다연이 그에게 잡혀 영원히 도망칠 수 없을 것처럼 말이다.어느새 유강후도 잠이 들었다.꿈속에는 그는 온다연과 두 아이를 낳았다.아들은 유강후를 닮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는데 두 아이가 유강후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안아달라고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그들은 평범한 부부처럼 밤에는 격렬한 사랑을 나누고 아침에는 달콤한 입맞춤으로 하루를 시작했다.유강후는 매일 그녀에게 해바라기 한 송이를 선물했고, 온다연은 늘 밝은 미소와 부드러운 포옹으로 그에게 보답했다.그러던 어느 날 온다연이 선물이라며 그림을 주었다. 그림에는 해바라기로 가득한 꽃밭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담겨있었다.온다연은 이 그림의 이름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얘기했다.심장이 터질듯한 행복감이 밀려온 유강후는 이대로 떠나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자존심만 세우던 그는 비로소 자신의 고귀함을 벗어던지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남은 여생을 함께 해달라고 부탁할 용기가 생겼다.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듯이 가질 수 없는 게 제일 비참하다.그 시각 온다연도 꿈을 꾸고 있었다.꿈속의 온다연은 어두운 방에 갇혀 있었고 누군가에게 손을 밟혔다.유강후는 싸늘하게 말했다.“그러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이건 벌이야.”나은별은 그의 곁에 기대어 애교를 부리며 웃었다.“강후 씨, 벌이 너무 가벼운데? 말 잘
하지만 이제 온다연에게 아이는 없다.아니, 어쩌면 오래전부터 이미 없었을 수도 있다.온다연은 더 이상 유강후가 본인을 속이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았고 그와 따지려는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이미 모든 것에 실망했으니 다시 누군가는 사랑할 능력과 용기조차 없었다.따스한 햇볕과 달리 그녀의 마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이 세상은 온다연에게 너무 각박했고 살고픈 희망을 가질때 쯤 잔인하게 짓밟아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유강후는 차가운 온다연의 손을 어루만지더니 담요를 가져다 덮어주며 말했다.“아침 바람은 쌀쌀하니까 여기에 앉아 있지 마.”그가 움직일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온다연은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나은별을 만나고 왔겠지?’‘이 향기는... 나은별에게서 나는 건가?’‘역시나 나보다는 나은별이 더 중요하구나. 전화 한 통에 밤새도록 자리를 비운 걸 보면...’‘됐다. 누굴 좋아하든 마음대로 해.’온다연은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이때 장화연이 죽과 함께 아침밥을 챙겨왔다.“도련님, 이쪽에서 드세요. 제가 다연 씨를 돌볼게요.”“내가 할게. 죽 이리 줘.”유강후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올려 소파 등받이에 기대게 한 후 푹신한 쿠션을 그녀의 허리 뒤에 놓아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만들어줬다.그럼에도 온다연은 힘이 없는 듯 똑바로 앉아 있지 못했다.그러자 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쿠션 두 개를 더 가져와 그녀를 지탱했고 모든 걸 마친 후 그는 죽을 가지러 걸음을 옮겼다.마침 장화연은 죽을 그릇에 옮겨 닮고 있었다.유강후는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위가 안 좋으니까 앞으로 이것보다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줘.”“알겠습니다. 이것도 2시간이나 고아서 만든 죽입니다.”“다연이 언제 깨어났어?”장화연은 온다연을 힐끗 쳐다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깨어난 지 여섯시간쯤 되었습니다. 눈을 뜨고도 지금껏 계속 말이 없었고 아침부터 저쪽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합니다.”그녀는
한바탕 난리 후 의사도 진땀을 뺐다.다행히 검사 결과 큰 문제는 없었다.보름이 넘도록 쉬지 못한 데다가 온다연이 걱정되어 줄곧 긴장한 상태였으니 몸이 지쳐 쓰러진 게 틀림없다.이런 상황에서도 온다연의 곁을 지키려고 하자 의사는 안된다며 강제로 수면제 한 알을 먹였다.곧이어 이권과 장화연도 들어왔다.장화연은 초췌한 모습의 유강후를 보며 가슴이 미어졌지만 표정만은 담담했다.“오늘은 푹 쉬세요. 다연 씨의 곁은 제가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유강후는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눈뜨면 바로 불러.”이권이 걱정스럽게 말했다.“도련님, 아무 생각 말고 얼른 주무세요. 이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전 어르신의 손에 죽을지도 모릅니다.”유강후는 여전히 온다연이 걱정되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수면제를 먹은 탓에 잠이 쏟아졌다.곧이어 깊은 잠에 빠졌다.그러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약병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간호사가 시야가 들어왔다.간호사는 잠에서 깬 유강후를 보더니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방금 누가 에센스 하나를 깨뜨려서 제 몸에 향이 배었습니다.”유강후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으니까 나가봐.”그렇게 말하고 그는 일어나 침대에서 나왔다.그래도 억지로라도 깊은 잠을 자고 나니 몸이 한결 개운해졌다.유강후는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확인하고서야 자신이 아홉시간 정도 잤다는 걸 알아챘다.바깥은 이미 해가 뜨고 날이 밝았다.기분이 언짢아진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권, 들어와.”서둘러 안으로 들어온 이권은 안색이 많이 좋아진 유강후를 보며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컨디션 좋아 보이네요. 어제는 정말 표정이 않았는데...”“왜 안 깨웠어?”유강후의 말투에서는 언짢음이 담겨있었다.“깊이 자고 계시길래 일부러 안 깨웠습니다. 도련님, 거의 1년 넘게 맘 편히 잠을 못 주무셨잖아요. 다연 씨는 장 집사님이 지키고 있으니...”“이권!”유강후는 싸늘했다.“이제 제멋대로 행동하는구나? 이번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