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만에 유강후는 꽤 회복되었다. 최고의 의료팀과 약물 덕분에 본래 건강한 그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경원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임 교수는 그가 반드시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여러 번 요구했지만, 유강후는 전통 한옥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했다. 그곳이 그의 개인 병원과 가까운 곳이라 임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특별히 간호사도 붙여주었다. 차에서 내릴 때, 온다연은 아직 깨지 않았다. 최근 며칠 동안 그녀는 더욱 잠이 많았고,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절반 가까운 시간을 잠자고 있었다. 그리고 입덧이 이전보다 심해져서 먹는 것마다 토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유강후는 반드시 경원시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부드러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연아, 집에 왔어.” 온다연은 깨지 않고, 그냥 몸을 돌려 그의 옷 속에 머리를 묻고 계속 잠을 잤다.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 장화연이 보자마자 급히 온다연을 받으려 했다. 유강후는 그녀를 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충분히 안을 수 있으니, 그렇게 큰일은 아니야.” 키 크고 다리가 긴 유강후는 몇 걸음 만에 거실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강해숙이 그를 불러 세웠고 이마를 찌푸렸다. “상처가 좀 나아졌다고 무모하게 구는 거냐?”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바로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야 다시 거실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강해숙은 창가의 흔들의자에 앉아 부드러운 양털 담요를 무릎에 덮고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유강후는 찡그리며 그녀의 담배를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미 끊었잖아요, 왜 다시 피우고 있어요?” 강해숙은 아들의 행동에 익숙한 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요즘 네 누나 꿈을 자주 꿔서, 깨고 나면 계속 잠이 안 와서 피우게 돼.” 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저 결혼해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제가 잘 알고 있어요.” 강해숙이 물었다. “너 온다연을 정말 좋아하니?” 유강후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아마 그렇겠죠. 이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다연이가 저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너무 아파요. 차라리 온다연이 내 손에 죽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주고 싶지 않아요.” 강해숙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병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거 아니야? 약으로 조절하지 않아?” 유강후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저는 병이 아니에요. 다들 저를 병든 사람으로 보지만, 저는 건강해요. 온다연에 대한 생각만 이렇게 강할 뿐, 다른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아요.” 강해숙은 아들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온다연도 너를 좋아하니?” 유강후는 대답했다. “아마 좋아할 거예요. 하지만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는 그녀가 저를 좋아하게 만들 거예요.” 강해숙은 침묵 속에서 그를 바라보다가 오랫동안 생각한 후 말했다. “내가 너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네가 이렇게 방탕해졌나 보구나. 하지만 지금은 너에게 신경 쓸 힘이 없어. 온다연한테 잘 대해 줘.”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 말했다. “나 아파. 의사가 3년에서 5년만 더 살 수 있다고 하더라.” 유강후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말했다. “무슨 병이에요? 치료할 수 없어요?” 강해숙은 대답했다. “그렇게 큰 병은 아니야. 지나치게 걱정한 탓이지. 인생의 끝에 다다랐다는 의미야. 의사는 짧으면 3년, 길면 5년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에게는 3년이나 5년이나 별로 상관없어. 나는 그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아.” 그녀는 돌아서서 유강후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 일은 네 외할아버지가 아직 모르셔. 마지막 순간에 알려줄 생각이야.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마. 남은 시간 동안 나는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어, 너의 아버지가 방해하길 원치 않아.”
온다연은 맨발에 약간 헐렁한 홈웨어를 입고 있어 보기에 매우 여리여리해 보였다. 방은 따뜻했지만, 복도에는 바람이 불어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리며 더욱 조용하고 착한 모습으로 비쳤다. 그녀는 여기서 강해숙을 만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강해숙이 이곳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녀와 함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긴장했다. 유강후가 다가오자, 온다연은 정신을 차렸다. 유강후는 장화연이 건네준 분홍색 플리스 슬리퍼를 받아 반쯤 쪼그려 앉아 온다연을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겨 주면서 말했다. “왜 또 신발을 안 신었어? 맨발로 있으면 추워지잖아.” 온다연은 본능적으로 창가를 쳐다보았다. 강해숙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에게 작게 말했다. “아저씨, 강 이사님 우리와 함께 살 건가요?” 유강후는 대답했다. “내 어머닌데 당연하지.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너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거야.” 온다연은 강해숙이 본가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유강후의 어머니라는 특별한 신분 때문에 어떻게 장기적으로 함께 지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긴장이 더욱 커졌다. “저, 아저씨 어머니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유강후가 일어나 그녀를 놀리며 말했다. “시어머니와 어떻게 지낼지 모르겠다는 거야?” 온다연은 얼굴이 더 붉어졌고 말까지 더듬었다. “무, 무슨 소리예요...” 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강해숙 앞에 다가갔다. “어머니, 온다연이랑 이야기해요. 너무 공식적으로 굴지 말고, 다연이가 겁이 많아요.” 강해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조금 알고 지냈어.” 그녀는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임신했는데, 왜 전에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니?” 온다연은 당황스러워졌다. 강해숙은 정말 우아했고 말투도 부드러웠지만,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서 지내다 보니 그녀의 신분은 쉽게 무시할 수 없었
동시에 유강후는 온다연을 위해 더 좋은 한의사를 찾아서 관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아침 식사 후, 유강후는 서재에서 일하고 있었고, 온다연은 그의 옆에 있는 안락의자에 엎드려 그가 전화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최근 그녀는 점점 더 졸린 상태였고,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이 반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입덧도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대다수의 임산부는 세 달이 지나면 입덧 증상이 점차 사라지지만, 온다연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더 심하게 구토를 하고 있었다. 식사는 항상 조심스럽게 조절하고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너무 마르고 처참해 보였다.유강후는 회의 도중 그녀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자 회의를 중단했다. 그녀를 안아 올리자,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저씨 곁에서 자고 싶어요. 너무 멀리 있으면 잘 못 자요.” 유강후는 앉아 그녀를 무릎에 올리고, 애정 어린 목소리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곁에 있는 게 그렇게 좋아?” 비록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온다연은 이렇게 직설적인 사랑 고백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그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작게 말했다. “구역질 날 때 아저씨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면 좀 더 나아져요.” 그러면서 그녀는 조그마한 이마를 찡그렸다. “책에선 세 달이 지나면 구역질이 덜 한다고 했는데, 왜 저는 더 심해진 거죠?”유강후의 눈빛 속에는 슬픔이 스쳤고, 가슴속의 아픔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했다. “너의 몸이 좀 약하니까, 며칠 더 구토하는 건 정상이야.” 사실 의사는 여러 번 그에게 이미 경고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다연에게 문제는 점점 더 많아지고, 구토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이는 모체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임신을 종료하려는 과정이었다.초기에는 한약으로 조절할 수 있었지만, 후기로
유강후는 그녀의 뾰로통한 모습이 귀여워 볼을 살짝 꼬집었다.“나쁜 짓을 하려고?”온다연은 그의 손을 쳐버렸다.“가슴 아파요?”말을 마친 그녀는 유강후를 뿌리치고 일어나려고 했다.유강후는 두 팔로 그녀를 휘감고 내려가지 못하게 하더니 손을 그녀의 아랫배에 올려놓았다.“내게 아이를 낳아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가슴 아파해?”온다연은 그의 손을 잡고 손등을 물었다.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났는데도 그녀는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언짢아하며 말했다.“그럼 낳아달라고 하지 그래요? 죽마고우라 잘 상의하면 될 텐데요.”유강후는 그녀의 얼굴을 돌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게 했다.“너 이렇게 질투가 심한 걸 전에는 왜 몰랐지?”유강후를 쳐다보는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유강후의 옷깃을 정리한 후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저한테 죽마고우가 있다면 어떡하게 할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한참 들여다보았다.“있어? 왜 난 모르지?”온다연이 열 살 때 유씨 가문에 왔으니 죽마고우라 할 만한 사람은 유민준밖에 없다.하지만 유민준은 아닌 게 분명하다.온다연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유하령이 그때 정말 깨끗이 처리한 모양이다.주한에 관한 모든 것이 흔적조차 없이 지워졌으니 유강후가 그녀의 과거를 조사할 때 주한에 관한 정보를 전혀 찾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그녀는 당시 의문이 들어 임정아를 통해 자료를 조회해 보았는데, 주한에 관한 모든 정보가 없어졌고 학교 생활 기록까지 깨끗이 지워졌다.이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주한 사건이 벌써 5년 전 일인데, 유씨 가문의 능력으로 4-5년 사이에 한 사람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그러면 유강후가 수집한 정보에 이 사람이 빠졌던 것도 말이 된다.하지만 모든 사람이 주한을 잊어도 그녀는 잊을 수 없다.주한은 그녀에게 사랑은 아니었지만, 사랑보다 백배 천배 중요한 보살핌과 따뜻함이었다.어린 시절부터 외로웠던 그녀에게 사랑보다는 추운 날의 뜨끈한 국
화를 내는데 목소리가 낮고 가냘프니 어리광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유강후는 그녀를 꼭 껴안고 손으로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을 눌렀다.“이렇게 질투가 심해? 대대로 교분이 있는 집안일 뿐 애정 같은 건 없어. 한재민이 좋아하는 여자야.”“하지만 다연아, 너는 죽마고우가 없잖아. 그러니 더 이상 이런 말로 나를 화나게 하지 마. 정말 화가 난단 말이야. 너의 모든 것은 내 거야.”‘넌 내 거야!’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강탈했다.그녀를 건드리지 않은 지 오래됐다. 보기만 하고 먹을 수 없는 건 너무 괴롭다.특히 얼마 전 그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체험한 후, 지금 억지로 참으려 하니 그야말로 고통스럽다.하지만 그녀의 현재 몸 상태를 고려하면 참을 수밖에 없다.어찌나 키스를 퍼부어 대는지 온다연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그녀는 유강후가 통제력을 잃고 함부로 할까 봐 도망가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유강후처럼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스러운 사람이 그녀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할 리 있겠는가?그 일은 못 해도 다른 건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졌다.유강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깨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는 참지 못할 것 같아.”온다연은 놀라서 울상이 되었다.“안 돼, 안 돼요. 놔요.”유강후는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내가 이전에 가르쳐 준 것처럼...”그렇게 끈적한 분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됐다.유강후가 온다연을 안고 나왔을 때, 장화연이 해바라기꽃을 한 아름 들고 와서 꽃병에 꽂고 있었다.현관, 테이블, 창턱이 온통 눈부신 해바라기 꽃으로 장식돼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에 약간의 따뜻함을 더했다.방금 만족을 얻어 기분 좋은 유강후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머리에 키스했다.“잔꾀가 진짜 많아.”피곤해서 움직이기도 싫은 온다연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 졸려요. 자고 싶어요.”“그래, 곧 잘 수 있어.”유강후는 그녀를 조심스레 침실로
문이 열리자, 나은별은 이내 고개를 들고 온다연을 바라보았다.온다연이 입은 옷을 본 그녀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온다연은 그녀와 거의 같은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아리따운 모습으로 문어귀에 서 있었는데, 불빛 아래서 피부가 희다 못해 빛이 났다.나은별은 순간적으로 자기가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게다가 온다연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소녀미는 그녀가 비싼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온다연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온다연의 눈에서 분노를 읽었다.이때 유강후가 온다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깼어? 이리 와.”온다연은 시선을 거두고 유강후에게 다가갔다.그녀가 가까이 가기도 전에 유강후가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뒤이어 그는 컴퓨터를 끄고 온다연을 자기 다리 위에 앉힌 후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카락에 키스했다.“왜 이렇게 예쁘게 입었어?”나은별은 창백한 얼굴에 당장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온다연은 고개를 쳐들고 천진한 표정으로 유강후를 바라보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이러지 말아요. 사람이 있는데.”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느새 새끼손가락을 몰래 유강후의 새끼손가락에 걸었다. 빨간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은 마치 키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그녀의 이런 잔꾀를 이내 알아차리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에 뽀뽀했다.“잔꾀가 진짜 많아.”온다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그의 어깨에 파묻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은별 씨가 있는데...”그녀는 말하면서 곁눈질로 나은별을 슬쩍 보았다.나은별은 화가 나서 얼굴까지 일그러졌다.온다연이 속으로 코웃음을 치다가 입을 열려는데, 나은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강후 씨, 두 사람...”유강후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극히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보다시피 우리 사귀어.”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우리 사귄 지 오래됐어. 은별 씨가 생각하는 대로야.”나은별은 유강후가 그 자리에서 인정할 줄은 몰랐다.그녀의 눈에 온다연
유강후가 어리둥절해하며 미처 입을 열기 전에 나은별이 소리를 질렀다.“이게 고양이 간식이야?”온다연은 순진무구하게 눈을 깜박였다.“네, 구월이 간식이에요. 장 집사님이 직접 구월이를 위해 만든 과자인데, 구월이가 좋아하는 벌레도 들어있어요.”나은별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강후 씨,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유강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단지 혼내는 의미로 온다연의 종아리를 꼬집었다.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회의 중이라 네가 뭘 먹는지 몰랐어. 그런데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것이면 사람도 먹을 수 있어. 죽지 않아.”나은별은 안색이 변하더니 목을 잡고 구역질했다.이때 온다연이 또 입을 열었다.“은별 씨는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지 않아요? 아침에 고양이 세 마리가 그 의자에서 잠을 잤었는데, 간지럽지 않으세요?”마침내 나은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나은별이 나가자 온다연은 유강후의 몸에서 내려왔다.그녀는 뾰로통해서 나은별이 앉았던 의자 앞으로 가서 양털 쿠션을 바닥에 던지고 남은 간식도 쓰레기통에 버렸다.유강후는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그런 그녀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잔뜩 화가 난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를 쏘아보았다.“왜 그 여자를 내 의자에 앉혔어요?”유강후는 앙탈을 부리는 그녀의 모습이 그저 귀엽고 웃겼다.그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는데, 그 여자가 제 마음대로 뛰어 들어왔어.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어디 앉았는지 어떻게 알아?”그가 이 일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을 보고, 온다연은 더욱 화가 났다.동그랗게 뜬 그녀의 예쁜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그리고 왜 그 여자에게 제 간식을 먹였어요? 장 집사님이 직접 저를 위해 만든 것인데 왜 그 여자에게 줬냐고요?”유강후는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나지막이 말했다.“구월이 간식이라며? 왜 또 네 간식이 된 거지?”온다연은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제 거예요. 장 집사님이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르신, 그 부부의 일에 대해 또 아는 것이 있으신가요?”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며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주한의 일을 조사하러 온 거 아니었어요? 그 여자애 일은 왜 묻는 거죠? 혹시 그 여자애를 본 적이 있어요?”“옷을 잘 차려입은 걸 보니 많이 배운 사람인 것 같은데, 왜 허튼수작을 하려는 거죠? 그 여자애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거니까 가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염불하기 시작했다.이권이 아무리 좋을 말을 해도, 아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할머니는 마음을 굳게 먹고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할머니는 한마디도 하려 하지 않았다.어찌할 도리가 없는 유강후와 이권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떠나기 전에 유강후는 할머니에게 말했다.“어르신, 예전에 그 여자애에게 베푼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안심하고 이 집에 그냥 사십시오. 이 거리는 철거하지 않을 것이고, 며칠 뒤에 사람을 보내서 수리하고 정비할 것입니다. 이곳을 다시 개조해서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습니다.”할머니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유강후를 쳐다보았다.“누구신데, 총각이 말한 대로 되는 거예요?”유강후가 나지막이 말했다.“됩니다. 안심하고 지내세요.”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더니 일어섰다. 그녀는 낡은 수납장을 한참 동안 뒤져서 오래된 앨범을 찾아냈고, 그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서 유강후에게 건넸다.“그 두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이니 가져가세요. 사진이 유용하게 쓰여서 하루빨리 그 짐승 같은 놈을 잡았으면 좋겠네요.”유강후는 사진을 받아서 들었다.잘 보관하지 못해 색이 바랜 곳도 있었지만,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사람이 많았는데, 온다연은 주한의 뒤에 서서 옆으로 깨끗한 얼굴을 내밀고 카메라를 향해 수줍게 웃고 있었다.사진 속의 온다연은 여덟아홉 살 정도 되는 것 같았고, 일자 앞머리를 자른 모습이 유난히 순해 보였다.유강후가 본
“비슷한 일을 겪고 가정환경도 비슷해서인지 두 꼬마는 남매처럼 늘 붙어 다녔어요.”“여자애는 1~2년 사라진 적이 있는데, 친척이 데려갔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그 집에서도 잘 지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돌아올 때가 많았어요.”이 말을 들은 이권은 저도 모르게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어두운 불빛 아래서도 유강후의 하얗게 질린 얼굴과 불끈 쥔 주먹을 볼 수 있었다.“여자애는 머리카락이 잘린 채로 돌아온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남자애는 작은 의자를 가져와 여자애를 문밖에 앉히고 세심하고 다듬어 주었어요.”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렇게 착한 아이가 왜 그런 사나운 팔자를 타고났는지, 아껴주는 사람도 없고! 좀 큰 두 아이가 막내를 데리고 서로 의지하며 컸어요.”“막내는 병이 있었고, 병원비가 많이 들었어요. 남자애는 그림도 잘 그리고 피아노도 잘 쳐서 과외를 하러 다녔는데, 항상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운 병에 걸렸다는 뜬소문이 돌면서 며칠 못 가서 잘렸어요.”여기까지 말한 할머니는 침묵하며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 후에는요? 후에는 어떻게 됐어요?”할머니는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그 후 남자애가 괴롭힘을 당해 죽었다고 들었어요. 원래 배상을 받기로 합의됐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받지 못했대요.”이 말을 들은 유강후는 고개를 들고 이권을 지켜보았다.이권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나지막이 물었다.“그 후에는요?”“그 후에는 여자애가 그 어린아이를 맡았는데, 아직 미성년이라 쉽지 않은 것 같았어요. 가끔 저도 두 아이가 불쌍해서 고기와 채소를 넉넉하게 사서 조금씩 갖다주기도 했어요.”“여자애는 어렸지만 오기가 있어서 남의 물건을 잘 받지 않았어요...”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여자애는 점점 예뻐지고, 집안은 그런 형편이니 잘못된 길로 들어설까 봐 정말 걱정됐어요...”그녀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유강
할머니는 뭔가 생각난 듯 유강후와 이권을 다시 한번 쳐다보더니 입을 다물었다.첫머리를 듣고 끝나 버리니 유강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이권은 급히 일어나서 할머니 아들을 한쪽으로 불러 또 돈을 찔러주었다.아들이 할머니 귀에 대고 뭐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이 일은 그 아이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라 원래는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당신들이 그 모자가 공정한 평가를 받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니 말할게요.”그녀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그 아이의 엄마는 둘째 아들을 낳은 후 자기 남편이 밖에 애인이 있고, 게다가 애인이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정신이 나갔어요. 그 바람에 두 아이가 고생이었는데, 그때 큰애는 예닐곱 살, 작은애는 네댓 살에 불과했어요...”“하지만 남편은 아내가 미친 후 더욱 낯가죽이 두꺼워져 동성 애인을 공공연히 집에 데리고 왔어요.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더군요.”“주한의 아버지는 정말 짐승 같은 놈이었어요.”“한번은 저녁에 그쪽을 지나다가 안에서 아이가 구슬피 우는 소리가 들려 들여다봤더니 그 아이가 아랫도리가 피투성이 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어요...”할머니는 흥분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짐승만도 못한 놈! 그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이 평생 후회돼요...”유강후와 이권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두 사람 모두 놀랍고 믿을 수 없는 눈빛이다.“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그때 당시 이 거리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때의 이웃들이 다 이사를 가서 조사하기 힘들 거예요.”“한번은 애가 심하게 반항하자, 그놈과 애인이 애를 거의 반죽음이 되도록 때리고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공중화장실에 버렸는데, 어떤 여자애가 구했대요.”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그때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했고, 그 짐승은 질겁해서 도망치더니 감히 돌아오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그 남자애의 생활이 좀 나아졌어요.”“미쳐버린 엄마는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 짐승이 한 짓을 알게 되어 몰래
이권은 조금 놀랐다.“하지만 지금은 저녁인데요...”유강후는 코트를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해서 나랑 같이 가.”유강후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이권이 아무리 반대해도 소용이 없다.한 시간 뒤, 유강후와 이권은 온다연이 이전에 살던 옛집 맞은편 골목 어귀에 나타났다.철거 예정이라 이곳의 도로와 담장은 보수되지 않은 상태였고, 비까지 내려 길이 매우 질퍽거렸다.가로등도 없고 근처의 고층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에 의존했다.이권은 한 손에 물건을 가득 들고, 다른 한 손에 방금 매점에서 구매한 손전등을 든 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일 다시 오는 게 어떨까요? 셋째 도련님, 길이 너무 형편없네요.”돌길에는 흙탕물이 넘쳐흘렀고, 양쪽의 집들은 비어 있는지 처마가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허름했다.유강후는 그의 손에서 손전등을 낚아채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이 길이 걷기 어려워? 권아, 넌 그동안 너무 편안하게 살았어.”이권은 유강후의 그 비싼 옷이 아까워서 한 말인데, 그가 이렇게 나오니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손전등을 비추며 골목 끝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집 안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그들이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두 사람이 속수무책일 때 옆집에서 누군가 나오더니 그들을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이 집 사람을 찾아왔어요?”이권이 급히 담배 한 대를 건넸다.“형씨, 이 집 할머니가 집에 안 계셔요?”그 사람은 담배를 받더니 약간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몰라요. 저는 그냥 물건을 가지러 잠깐 들렀을 뿐이에요.”“이 집은 할머니와 남편분이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집인데, 곧 철거에 들어가요. 아들이 몇 번이나 모셔가려고 왔지만 한사코 버티고 있어 철거팀과 주민위원회도 방법이 없나 봐요. 이 시각에 문을 두드리면 쫓아내려고 그러는 줄 알고 문을 열지 않을 거예요.”이권이 웃으며 말했다.“혹시 할머니 아드님 전화번호를 받
유강후는 몸이 약간 경직되어 있었다. 그녀는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쳐든 후 그의 턱에 뽀뽀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우리가 그 일은 하지 않았다고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그녀를 안아 들었고, 몇 걸음 만에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가 자주 묵던 방에 들어선 그는 침대에 앉아 그녀를 자기 다리에 올려놓은 후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온다연은 그의 시선에 머리가 쭈뼛 섰다.그녀는 유강후가 정말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온다연은 어떻게 해야 화를 풀어줄 수 있을지 몰라 가녀린 손으로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아저씨, 저, 저는 정말...”유강후는 굳은 얼굴로 젤리같이 매혹적인 그녀의 입술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뽀뽀한 적은 있어?”온다연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연인도 아닌데 왜 뽀뽀를 하지?’하지만 이마에 뽀뽀한 적은 있다.그래서 그녀는 성실하게 대답했다.“이마에 뽀뽀한 적이 있어요.”그녀를 껴안은 유강후의 손에 갑자기 힘이 실렸다. 활활 타오르는 질투심 때문에 그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온다연은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처럼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비위를 맞추고 용서를 빌려는 의미가 다분했다.하지만 질투심에 불타는 유강후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응대하지 않았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예전처럼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그의 입술에 갖다 댔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이전에는 이 방법이 가장 잘 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가 뽀뽀해 주면 다 해결됐다.하지만 오늘은 뽀뽀해 줘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그의 차가운 태도는 그녀를 서럽게 했다.온다연은 당황해서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이 말했다.“저를 상대하기 싫어요? 그러면 저는 먼저 돌아갈게요.”유강후는 여전히 말없이 차가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더욱 서러워진 온다연은 천천히 그의 몸에서 내려
온다연이 나지막이 말했다.“주희야, 남하윤 씨는 좋은 사람이고 너한테도 잘하니까 잘 만나 봐. 더 이상 그런 극단적인 짓을 하지 말고. 뭐가 소중한지를 알아야 해.”주희는 눈을 내리깐 채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고 나지막이 말했다.“누나는 그렇게 사는 게 좋아요?”온다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주희야, 내게는 사랑하는 아기가 있어.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너도 앞으로 나아갈래?”조용히 웃는 주희, 웃는 모습이 우는 것 같았다.“누나, 예전에 우리 셋이 약속했잖아요. 누나가 집을 받으면 함께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살기로. 이제 나는 돈이 부족하지 않으니 집을 받지 않아도 돼요. 나랑 함께 떠나는 게 어때요?”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강후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옛날 일을 가지고 역겹게 굴지 마. 나와 다연은 아이가 있고 곧 결혼도 할 거야. 죽고 싶으면 혼자 조용히 죽어.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주희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유강후를 가리켰다.“누구나 다 되지만 저 사람은 안 돼요. 유강후는 유씨 집안 사람이잖아요.”“형이 어떻게 죽었는지 잊었어요? 유씨 집안 사람한테 죽임을 당했잖아요. 누나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반대할 권리가 없지만 유씨 집안 사람은 안 돼요.”온다연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주희야, 그렇게 오랜 세월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도 알잖아. 이제 아기가 생겼으니 쓸데없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고, 내 아이의 아빠면 돼.”주희는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누나는 우리 형과의 약속을 잊었네요. 스물다섯 살 때...”온다연이 직접 그의 말을 잘랐다.“그건 나와 네 형 사이의 일이니 너와 상관없어.”그녀는 주희 옆에 있는 남하윤을 쳐다보았다. 남하윤은 극히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그 시선을 피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희야, 나는 앞으로 내 아이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거야. 더 이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을 거니까
이때 밖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이권이 뛰어 들어와 유강후의 손을 붙잡고 조용히 말렸다.“셋째 도련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이 사람이 죽으면 온다연 씨한테 뭐라고 설명하시겠어요?”유강후는 눈이 빨개지며 몸에서 독기를 내뿜더니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체형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 얼굴이 바꾸면 돼. 어차피 다연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알아보지 못할 거야.”그가 말하면서 손에 힘을 주자, 주희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조금 전까지 발버둥 치던 그가 갑자기 조용해졌고 눈도 감았다.온다연이 만나기 싫어한다는 말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잔인했다.이권은 곧 큰일 날 것 같아 필사적으로 유강후의 손을 잡아당기며 다급하게 말했다.“뭔가 하시더라도 여기서 하시면 안 돼요. 도련님, 손을 놓으세요.”이때 남하윤도 들어왔다.그녀도 이 장면을 보고 혼비백산하며 달려와 필사적으로 유강후의 팔을 잡아당겼다.“대표님, 제발 놔주세요. 주희가 성격이 안 좋아서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했을 거예요. 제가 즉시 데려가겠습니다.”하지만 그녀는 유강후를 움직일 수 없었다.엉겁결에 온다연이 생각난 남하윤이 즉시 소리쳤다.“대표님, 온다연 씨와 곧 결혼하실 텐데, 결혼 전에 인명 사고가 발생하는 건 좋지 않아요. 불길하잖아요.”“그리고 이곳은 병원이고, 온다연 씨가 바로 위층에 있어서 소동이 커지면 알게 될 거예요.”이 말을 들은 유강후는 눈에 더욱 독기가 서렸지만 천천히 손을 놓았다.이를 본 남하윤이 급히 주희를 붙들었다.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이건 마지막 경고야. 또 한 번 나와 온다연의 일에 참견하면 그때는 남씨 가문도 너를 지키지 못해.”그는 남하윤을 힐끗 보았다.“데려가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해요. 매번 선의를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음에는 남하윤 씨 체면도 봐주지 않을 거예요.”말을 마친 그는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잠깐 사이에 그는 차분하고 존귀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방금 사람을
“3월 25일까지 한 달 남짓 남았는데, 그날이 정말 기대되네.”“그날이 되면 누나는 빨간색 스카프를 매고 형을 그리워할 거야.”“그 스카프는 누나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형이 생일 선물로 준 것인데, 누나는 정말 좋아했어. 그때는 아까워 매지 않았지만 형이 죽은 후 매년 그날이 되면 그 스카프를 매고 형을 추모했어.”유강후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무척 기분 좋아진 주희는 계속해서 그를 자극했다.“누나가 입은 흰색 옷들은 당신이 골라준 거지? 불쌍하네. 이렇게 오래됐는데 누나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도 몰라. 누나는 빨간색을 좋아하고, 해바라기색도 좋아해...”유강후는 움직이는 그의 입술을 보면서 속에서 분노가 조금씩 치밀어 올랐다.온다연이 해바라기를 좋아한다는 건 알지만 그녀가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다.하지만 주희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온다연은 확실히 빨간색 스카프를 가지고 있다.버들개지가 흩날리던 어느 날 저녁, 본가의 대문 밖에 온다연이 검은색 옷차림으로 서 있었는데, 평소에 본 적이 없는 빨간색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그때는 봄인데도 날씨가 추워서 스카프를 매는 게 정상이었다.하지만 그녀가 그 스카프를 맸을 때 얼마나 예뻤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그날 저녁, 유강후가 차를 몰고 그녀의 곁을 지나갈 때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이 바람에 휘날렸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그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다.석양 아래서 먹물 같은 머리카락과 검은색 옷차림 때문인지, 피부가 눈보다 더 흰 것 같았고 입술은 짙은 붉은색을 띠었다. 버들개지가 눈송이처럼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앉아 슬픈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그녀는 조금 전에 울었는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얌전히 거기 서서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당시 가슴이 쿵 하는 느낌이었다.바로 그 순간, 유강후는 인내심을 잃고 앞당겨 행동을 개시하기로 했다.그 후 얼마 지나지 않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보더니 말했다.“여기서 아기를 좀 더 보고 있어. 전화 좀 받고 올게.”아기에게 정신이 팔린 온다연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그래요.”방에서 나온 유강후는 직접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남하윤은 주희의 병실에 없었다.주희는 창백한 얼굴로 병상에 기대어 앉아 사람을 갈기갈기 찢으려는 듯이 날이 선 눈빛으로 유강후를 쏘아보았다.유강후도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키가 큰 데다 카리스마가 있어 같은 높이에서 마주 보아도 상대방을 작아지게 한다.그런 그가 이렇게 내려다보면 상대방에게 한없이 비천한 느낌을 준다.주희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강후가 그렇게 보고 있으니, 마음속에서 비천하고 어두운 생각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그는 지금처럼 자신의 출신과 무능함이 싫었던 적은 없다.하지만 유강후에게 이런 생각을 들키면 안 된다.그는 일부러 경멸의 눈빛을 지었다.“당신은 나를 구한 것을 후회하게 될 거야. 유강후, 나는 당신을 누나 곁에 두지 않을 거야.”유강후는 개미 한 마리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떻게 막을 건데?”“스타인 너의 인지도로? 아니면 남씨 집안 아가씨의 재력으로?”그는 말하면서 손가락에 낀 반지를 문지르더니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너를 죽이는 것이 개미 한 마리를 죽이는 것보다 쉬워.”“그리고 남씨 집안은 절대 너를 위해 나와 맞서지 않을 거야.”“주희야, 좀 똑똑하게 굴어. 네 형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다연의 마음을 잘 이용하고 나랑 얘기할 때 예의를 갖추면 너한테 많은 득이 될 거야.”“스타가 아니라 엔터 회사를 차리는 것도 문제 되지 않아.”그는 거들먹거리면서 주희를 힐끗 보았다.경멸에 찬 그 모습은 더없이 모욕적이었다.“안타깝군. 온다연의 관심을 끌려고 투신자살할 생각을 하다니.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아무도 너를 존중하지 않아.”주희는 화가 나서 이마에 핏줄이 섰지만 억지로 분노를 참으로 코웃음을 쳤다.“다른 사람의 존중 따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