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잡고 수조 옆으로 왔다.유강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온다연이 먼저 수도꼭지를 틀었다.날은 아주 추웠다. 온열기를 켜고 있어도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온 물은 아주 차가웠다.온다연은 뼈가 시릴 정도의 차가운 물에 손을 씻었다.너무도 차가워 피부가 아릴 정도였지만 그녀는 새끼손가락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묵묵히 참고 있었다.그녀의 손은 어느새 추위에 빨갛게 되어버렸고 곧 피부가 까질 것 같았다. 그제야 손을 들어 유강후 앞에 내밀며 나직하게 말했다.“이러면 될까요?”유강후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의 새끼손가락으로 보았다.전에 부러진 적이 있었던지라 다른 손가락보다 더 붉었고 살짝 구부러진 상태였다.매번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볼 때 그는 가슴이 아팠다. 깊은숨을 들이쉬며 속에서 들끓는 분노를 잠재웠다.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린 채 문 옆에 있던 서랍 위로 앉혔다.그는 두 팔을 벽에 지탱하며 그녀를 위아래 훑어보았다.원래부터 차가운 이미지였지만 속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으니 온다연은 그의 위압감에 감히 고개를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두 사람은 침묵했다. 협소했던 공간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얼마나 지났을까, 유강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놈이 너한테 뽀뽀했어?”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앙다물며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유강후는 그녀가 직접 안 했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고개를 젓는 그녀의 모습을 본 그는 오히려 더 화만 날 뿐이다.그는 이를 빠득 갈며 한 글자씩 내뱉었다.“말해, 너한테 뽀뽀라도 했냐고.”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작게 말했다.“아니요.”나른한 그녀의 목소리에 유강후는 순간 분노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도 듣지 않고 만나지 말라던 유민준을 몰래 만나지 않았는가.그러니 반드시 그에 따른 벌을 줘야 했다.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턱을 잡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내가 말했잖아. 그놈 만나지 말라고. 그런데 왜 몰래 만난 거지?”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깐 채 작게
유강후가 무엇을 할지는 온다연도 몰랐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이런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그녀는 더 거세게 반항하게 되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유강후는 화가 났다. 조금 전 그녀와 유민준가 다정하게 손을 잡은 모습은 꼭 연인 같아 보였다. 그는 이렇게 해야만 그녀가 자신의 것이라고 확인할 수 있었다.온다연을 벽에 고정한 뒤 두 손을 제압해버리곤 남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힘을 조금만 주어도 그녀를 탐할 수 있었다.아무런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온 그의 키스에 온다연은 아팠을 뿐 아니라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어젯밤의 통증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는 또 그녀를 탐하려고 한다.고통에 목을 뒤로 젖히며 애원했다.“안 돼요, 아파요. 여기서는 싫어요. 아저씨, 여기서는 싫다고요!”유강후는 그녀를 탐하면 탐할수록 달콤한 맛에 빠져 점점 이성을 잃어버렸고 그녀의 호리호리한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말해, 왜 둘이 만나고 있었던 거지?”온다연은 너무도 아파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힘들게 대답했다.“그런 적 없어요. 민준 오빠가 절 보러 온 거예요. 제발 그만해주세요. 아저씨, 제발!”나른하면서도 울먹이는 목소리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고 말았다.그는 거의 이성을 잃은 채 자신의 것을 탐하는 짐승처럼 거친 숨소리를 내며 말했다.“그놈이 왜 너를 만나러 온 거지?”온다연은 통증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며 목을 뒤로 젖힌 그녀의 모습은 꼭 한 마리의 죽어버린 백조 같았다.유강후는 그녀의 목에 손을 감으며 억지로 목을 들게 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두 곳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온다연은 정신을 잃을 것 같았고 그의 몸에 기대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이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안에 계세요?”진우의 목소리였다.밖에 사람이 있었다.온다연은 화들짝 놀라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힘으로 욕망에 휩싸인 남자를 밀어
유강후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고 한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밖에 있던 사람은 문고리를 잡아 내려보았다. 내려가지 않자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안에 누가 있는 거죠? 계속 대답 안 하면 경비 부를 겁니다!”온다연은 초조해졌다. 울먹이며 있는 힘껏 유강후를 밀어냈다.유강후는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두 눈엔 욕정이 가득했다. 온다연의 허리를 만지작거렸던 탓에 온다연은 더 긴장하고 초조해졌다.무섭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너무도 아파 그녀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고 입에서는 끊임없이 애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인기척이 또 들리자 유강후는 그제야 끊임없이 소리를 내는 문고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내가 있으니까 당장 문 앞에서 사라져요!”밖에 있던 사람이 급히 대답했다.“대표님이셨군요.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드디어 인기척은 사라졌다. 온다연도 마음이 놓였다.유강후의 몸에 대롱 매달린 채 공중에 붕 떠버린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그는 붉게 물든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잠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말해, 대체 왜 그놈을 만난 건지. 그렇지 않으면 넌 이 문을 절대 나갈 수 없어.”온다연은 방금 일로 넋이 나간 상태였던지라 화를 낼 기운도 없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만나려고 한 적 없어요. 아저씨는 매번 제 말을 믿어주지 않으시잖아요!”그녀는 너무도 서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민준 오빠가 저 찾으러 온 거라고요. 제가 어떻게 대놓고 가라고 해요. 민준 오빠가 아저씨 집안사람인데, 미움을 살 수 없잖아요!”“민준 오빠는 매번 저한테 메시지를 보내요. 차단해도 소용없어요. 번호를 바꿔가면서 계속 보내고 있다고요. 행여나 아저씨가 보면 화를 낼까 봐 매번 삭제도 했어요. 민준 오빠가 자꾸 저한테 치근덕대고 있다고요!”그녀는 울분을 토하듯 한꺼번에 수많은 말을 뱉어냈다.“민준 오빠가 저한테 그랬어요. 이효진이랑 결혼
거의 무의식적으로 유강후는 그녀를 벽으로 다시 밀어버렸다.이번은 유달리 부드럽고 다정했다.온다연은 그에게 기대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처음에는 아팠지만, 그 뒤로 어떻게 된 것인지 유강후가 움직일 때마다 정신을 잃을 듯 기분이 좋았다.그녀의 반응을 유강후는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듯한 기분이었다.안에서 나왔을 때 시간은 어느덧 점심이었다.간단히 씻은 뒤 온다연은 임시 휴식실로 옮겨졌다.임시였어도 인테리어와 가구 배치는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유강후는 그녀를 침대에 눕힌 후 이불을 덮어주곤 이마에 키스했다.“배고파?”온다연의 홍조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목마저 빨갛게 물들었다.유강후를 똑바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방금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것만 떠올려도 저도 모르게 이불을 찢어버릴 듯이 꽉 움켜쥐었다.그녀는 방금 이성을 잃고 더 빨리해달라고, 멈추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방금 그건 정말로 그녀였을까? 왜 자신이 누구인지도 잃고 그런 말을 내뱉었던 것일까?분명 처음에는 아팠지만, 그 후에는 왜 그렇게 된 것일까?그녀는 일이 점점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반드시 빨리 끝내야 해!'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고개를 이불 속에 파묻으며 작게 말했다.“조금요.”유강후는 작은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사랑스러운 눈길로 보았다.“사람을 시켜 음식을 가져오라고 할 테니까 몇 분만 기다려.”말을 하던 도중에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작은아버지, 음식 가져왔어요.”유민준의 목소리였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갔다.문 앞에는 유민준이 도시락을 들고 주위를 두리번대며 사람을 찾고 있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도시락은 거기 내려놔. 그리고 넌 나가. 앞으로 내 허락 없이 내 방에 들어오지도 말고.”유민준은 도시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휴식실 쪽을 힐끔거렸다.“작은아버지, 다연이는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나가란 말, 안 들려?”유민준은 그럼에도 나가
유강후의 혀가 그녀의 입안을 침범해왔다. 꼭 공략하고 있는 것처럼 탐했다.팔도 어느새 그녀의 허리에 두르며 행동을 제한해 버렸다.‘내 거야.'‘넌 내 것이어야만 해!'온다연이 숨이 점차 가빠져 숨 쉴 수가 없을 때 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갑작스러운 그의 키스에 온다연은 머리가 어질거렸고 눈앞도 몽롱해졌다.그녀는 몽롱한 눈빛으로 유강후를 보다가 하얀 손을 들어 그가 거칠게 빨아들여 상처가 생겨버린 입술을 만졌다.“아파요...”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나른했다.“아저씨, 살살해줘요. 너무 아파요...”유강후는 그녀를 빤히 보았다.이상하게도 그녀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눈을 가늘게 접으며 다소 깊어진 눈동자로 그녀를 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잠겨있었다.“다연아, 밥 제대로 먹을 거지?”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분명 그녀가 밥을 먹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람은 그였는데 말이다.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꼭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그녀의 뒤통수에 손을 올린 채 또 키스했다.그렇게 먹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니 따끈하던 도시락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고 깨끗하게 비우지 못했다.결국, 사람을 시켜 다시 따듯한 도시락으로 가져오라고 했다.온다연은 너무도 피곤했기에 겨우 밥을 먹은 뒤 침대에 누워버렸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그녀가 눈을 떴을 때 휴식실 안은 아주 어두웠다.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이 안으로 들어왔다.순간 어리둥절했다.그녀가 어둠을 두려워하게 된 후로 유강후는 매일 스탠드를 켜놓았기 때문이다.그는 그녀를 위해 특별히 은은하고 따스한 조명을 주문 제작하곤 침대 옆에 배치해 두었기에 방 안은 어둡지도 않았고 흔하지도 않아 잠을 자기에도 딱 좋았다.하지만 이곳에 그 스탠드가 없었기에 유강후의 방이 아니었다.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일어나 창가로 갔다.창문 틈 사이로 알록달록한 불빛이 켜진 바깥을
온다연은 관심 가득한 얼굴로 계속 물었다.“아저씨, 남부 지방에 아저씨 회사 많아요?”유강후가 답했다.“적지는 않지. 다만 대부분 번화한 도시에만 몇 개 흩어져 있을 뿐이지. 여기처럼 밀집되어 있지 않아.”온다연은 대충 자신이 알고 있는 남부 지방 도시 이름을 말했다. 그러다가 인지도가 낮은 도시의 이름도 입 밖으로 꺼낸 후 물었다.“여기에도 회사 있어요?”유강후는 오늘따라 그런 그녀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질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얼른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나직하게 말했다.“다연이는 지금부터 내 재산을 관리해주려고 물어보는 거야? 내 아내가 되고 싶어?”그는 그녀를 안아 올리며 벽으로 밀쳤다.어둠 속에서 그는 그녀에게 키스를 한 후 한참 지나서야 입을 뗐다.“내 재산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네가 열 명이라도 전부 다 책임지고 키울 수 있으니까. 옷이든, 보석이든, 빌딩이든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다 해줄 수 있어.”그 순간 뭔가 떠오른 그는 멈칫하며 말했다.“하지만 너무 많은 현금은 줄 수 없어.”온다연은 평소에 그의 앞에서 얌전한 모습을 보이었지만 사실상 뼛속까지 반항 가득한 사람이었다.만약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후 그의 아이까지 낳게 된다면 그때 다시 그녀에게 경제적인 자유를 줄 생각이었다.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남부 지방에 있는 회사에도 자주 출장 가요?”어둠 속에서 그는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기에 그녀의 눈빛에 서린 한기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는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다연이 네가 가고 싶다면 얼른 몸 건강부터 회복해야 할 거야. 그리고 날이 조금 따듯해지면 바닷가랑 가까운 도시로 며칠 놀러 가자, 알았지?”온다연은 경원을 벗어나 본 적 없었기에 바다 구경도 해본 적 없었다.예전에 누군가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 적 있었다. 언젠가 그녀를 데리고 바닷가로 가 드넓은 바다를 보
유강후의 신체 변화에 온다연은 깜짝 놀랐다.부단히 저항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안 돼요. 아직 아프다고요...”유강후는 그녀의 입술을 물며 손을 셔츠 안으로 넣었다.“괜찮아, 안 아플 거야. 점심때보다 더 기분이 좋을 거야...”다정하면서도 강압적인 태도로 그녀를 소유하고 있었다.온다연은 피할 수 없었다. 철썩이는 파도에 출렁이는 작은 배처럼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얼마나 흔들렸을까, 겨우 힘을 모은 그녀는 다시 한번 그를 힘껏 밀어내고 나서야 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녀를 깨끗하게 씻겨준 뒤 다시 옷을 입혀주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되었다.그는 잔뜩 피곤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지금 호텔로 데려다줄게. 이따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바로 말해. 사람을 시켜서 가져다주라고 할 테니까.”온다연은 그의 손을 잡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어디 가는데요?”유강후는 나른한 그녀의 모습을 아주 좋아했기에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저녁에 참석해야 하는 식사 자리가 있어. 네가 묵을 호텔 레스토랑에서 할 거야. 다연아, 너도 가고 싶어?”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혼자 방에 있고 싶지 않아요. 혼자는 무서워요.”오전의 일을 겪었던지라 유강후도 그녀를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비록 식사 자리에 유민준도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녀를 눈앞에 두고 지켜보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유민준도 감히 온다연에게 접근하지 못할 테니까.회사에서 호텔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차로 10분 이동하면 바로 도착했다. 차는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호텔 앞에 멈추어 섰다.차에서 내리자 바로 누군가 웃으며 달려왔다.“유 대표님께서 저희 호텔에 며칠 묵으실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네요. 정말 영광입니다!”유강후는 평소와 같은 차갑고 도도한 얼굴로 돌아왔다. 꼭 모든 것이 그의 손아귀에 있는 것처럼 냉담한 모습이었다.이런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다른 인격이 존재하는 것
유민준에게 말을 건 사람은 영원에서 꽤나 권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유민준이 화를 내며 노려보니 더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민준 대표 여동생은 유하령 씨가 아니었어요? 그러면 친동생이 아니라 사촌 동생이겠네요?”유민준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수상한 기분이 들어 바로 말했다.“지금은 아니에요. 앞으로도 아닐 테니까 더는 궁금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그 쪽에겐 더없이 과분한 사람이니까.”그는 이미 분명하게 말했다. 온다연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안 남자는 더는 묻지 않고 웃는 얼굴로 상황을 정리하며 물러났다.찝찝한 유민준과 달리 온다연은 담담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점심을 거의 먹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기 전까지 그런 행동을 했으니 너무도 배고팠다. 그래서 먹는 것도 다소 급하게 먹게 되었다.유강후는 입맛이 살아난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계속 음식을 집어주었다. 그의 눈빛도 다소 부드러워졌다.테이블 아래로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천천히 먹어. 아직 나오지 않은 음식도 있으니까.”온지유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손을 빼냈다.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요.”유강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구기며 차가워진 어투로 말했다.“그래서 뭐. 보라고 해. 그렇게 남이 알게 되는 게 두려운 거야? 어차피 넌 우리 집안이랑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잖아.”그는 원래부터 숨길 생각이 없었다. 온다연의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 당연히 공개할 생각이었다.결혼은 미룰 수 있었지만, 혼인신고는 더는 미룰 수 없다. 온다연은 이미 성인이 되었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혼인 신고할 수 있었다.이때 어느새 분위기도 무르익었다.누군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유 대표님이랑 나은별 씨 결혼은 언제 하나요. 제가 듣기론 나씨 집안에서 이미 혼수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하더라고요.”그러자 바로 다른 사람도 맞장구쳤다.“맞아요. 며칠 전 나은별 씨를 만났는데, 정말 재벌 가문은
자연스레 유강후도 주성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흰머리 한두 가닥을 보게 되었다.그는 겁에 질린 채로 재빨리 다가가 온다연의 손목을 잡고 흔들었다.“다연아.”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유강후는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아직 뜨거웠다.가슴을 쥐어뜯듯 고통이 밀려왔다.유강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줬고 심지어 아이까지 보여줬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몰랐다.이때 주성원이 입을 열었다.“다연 씨의 현재 상태는 매우 심각합니다.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실대로 말했다.“대표님, 병원에 데려가 정밀검사를 받는 게 어떠신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자칫하다가 암으로 발전될 수도 있으니 검사를...”유강후는 고개를 휙 돌렸다.“뭐라고요?”주성원은 말을 이었다.“장난으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일만 30, 40년 해왔는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다연 씨는 위에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합니다.”“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상태가 악화된 거죠? 불과 한두 달밖에...”순간 유강후의 머릿속에는 막연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어쩌면 온다연이 아이가 없어진 걸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그저 이런 추측이 스쳐 지나갔을 뿐, 곧바로 그에게 부정을 당했다.유강후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연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잖아요. 굉장히 내성적이고 뭐든 속에 담아두는 성향이에요. 제가 아무리 옆에서 달래도 절대 입을 열지 않거든요. 아마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렇게 된 것 같네요.”“혹시 다연이의 입을 열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주성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대표님이 공들여 유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연 씨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 어쩌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대화를 최대한 많이 하는 게 좋습니다. 속에 담아둔
온다연은 심장이 도려내는 듯한 고통에 비틀거리며 비웃었다.“대면이라뇨? 이번에는 또 어떤 연극을 하려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협조하길 원하는 거죠?”그녀는 천천히 침대 위 아이를 바라보았다.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아이는 참으로 순하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그녀의 마음은 누군가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것처럼 아팠다.내장이 모두 뒤틀리는 듯한 통증에 온다연은 견딜 수 없었다.지금 당장이라도 유강후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왜 자신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는지, 그리고 침대 위의 이 아이는 누구의 아이인지.하지만 만약 지금 모든 것을 폭로한다면, 유강후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그가 침대 위의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웠다.유강후는 차갑고 냉혹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아이 하나 없애는 건 그에게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온다연이 아이를 보며 움직이지 않자 유강후는 다가와 아이를 품에 안고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이 깼어. 안아 줘.”그는 아이를 온다연에게 건네려 했다.하지만 온다연은 받아들이지 않고 유강후를 밀쳐냈다.“꺼져요. 내 앞에서 위선 떠는 거 짜증 나니까!”그녀의 목소리가 다소 컸는지라 놀란 아이는 ‘와아’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던 유강후는 아이를 그녀에게 억지로 넘기려 했다.두 사람의 실랑이 끝에 결국 아이는 품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순간 두 사람 모두 얼어붙었다.온다연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아이를 안아 올려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다행히 방바닥에는 두툼한 카펫이 깔려 있었고 아이도 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 크게 다치지 않았다.그러나 충격을 받은 아이는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온다연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달랬다.그러나 왜인지 평소에는 얌전했던 아이가 이번에는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유강후는 장화연에
“내가 낳은 아이라고요?”온다연은 유강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어떻게 거짓말을 하면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지? 난 대체 얼마나 어리석었길래 이 사람의 모든 행동을 사랑이라 믿었고 진심이라고 여겼던 걸까?’갑자기 온몸이 지치는 듯한 피로감에 휩싸이더니 온다연은 차갑게 말했다.“아저씨, 나 속이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요?”유강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빛에 잠깐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널 속인 적 없어.”“속인 적 없다고요?”온다연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눈빛이 마치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평가하듯 차갑고 날카로웠다.유강후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으려는 듯 온다연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마침내 눈물까지 흘러내렸다.“속인 적 없다니... 아저씨, 아저씨 입에서 진실된 말이 단 하나라도 나온 적이 있긴 해요?”“하늘을 걸고 맹세해봐요. 날 속인 적 없다고. 정말 진실만 말했었다고요!”“할 수 있겠어요?”그녀는 한 번도 이렇게까지 감정을 폭발시킨 적이 없었다.목이 터질 듯 외치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들었다.하여 유강후는 온다연의 이마에 손을 대며 물었다.“어디 아픈 거 아니야? 주성원 선생님 부를까?”“손 치워요!”온다연은 그의 손을 세게 쳐내며 격렬히 숨을 몰아쉬었다.‘참을 만큼 참았어.’다정하면서도 유강후의 몸에서는 여전히 달달한 향수 냄새가 났다.역겨웠다. 정말 끔찍하게 역겨웠다.그와 얽혔던 모든 기억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녀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온다연은 유강후를 밀쳐냈다.“아저씨는 정말 역겨워요. 진짜 끔찍해요!”순간 유강후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창백한 온다연의 얼굴을 보며 그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온다연,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아? 방금 한 말 당장 취소해.”그러자 온다연은 차가운 웃음을
“예전에는 작은 도련님을 앞에 데려다만 놓으면 꼭 안아서 놓으려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만지려고도 하지 않아요.”잠시 망설이던 장화연이 이어 말했다.“사모님이 아마 이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것 같아요.”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그리고 장화연은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건네며 말했다.“차라리 이제 사실을 사모님에게 말하는 게 어때요?”유강후는 마음이 죄어드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안 돼. 견디지 못할 거야. 정말 죽을 만큼 아파할 거라고...”장화연은 한숨을 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이제는 제 말을 믿지도 않고 제게 응답도 하지 않아요. 진시현 씨 일은 직접 사모님에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강후는 고개를 돌려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방 안에서 온다연은 유강후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아이의 볼을 살짝 건드리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이제 이 아이만 보면 자신의 아들이 그 여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 고통은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했고 유강후에 대한 증오가 점점 깊어졌다.그의 무정함과 거짓말이 더욱 미웠다.장화연을 시켜서 외부의 여자가 자신의 대역이라는 말이나, 누군가 그녀를 암살하려 했기에 보호를 위해 대역을 세웠다는 말까지 하게 만들다니.온다연은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이런 허술한 거짓말을 대체 어떻게 만들어낸 걸까? 설령 누군가 내 목숨을 노렸다 해도 어떻게 내 아들을 그 대역한테 맡길 수 있어? 웃겨서 정말!’그의 입에서는 한 마디의 진실도 나오지 않았다.온다연은 멍하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너는 내 아기가 아니지만 명목상 내 아이니까 정말 좋긴 해. 걱정 마. 내가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작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널 데리고 나갈 거야.”“하지만 지금은 널 좋아한다는 걸 티 내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아저씨가 널 이용해 날 또 옥죌 거니까.”“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 내가 얼마나 괴
병원에서.며칠간의 치료와 정성 어린 간호 끝에 나은별은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그녀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며 소이섭이 깎아준 사과를 받아들었다.“그 사람은 어떻게 처리했어요?”소이섭은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죽었어. 너무 많은 걸 아는 사람은 살려둘 수 없지.”나은별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그 사람... 강후 씨 비서였잖아요. 갑자기 죽으면 의심을 사지 않을까요?”그러자 소이섭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강후는 지금 온다연이라는 여자애를 찾느라 온 세상을 뒤지고 있어.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야.”곧 나은별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이번 수는 제대로 먹혔네요. 비서를 이용해 강후 씨의 말을 왜곡해서 아래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하고 강후 씨가 온준휘를 구하지 않으려 한다는 오해를 만들었잖아요. 그 결과 온준휘는 골든타임을 놓쳐 죽게 됐고 지금 온다연의 눈에는 강후 씨가 살인범이나 다름없겠죠.”“온다연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했어요. 자신이 잠깐 돌봐줬다는 이유만으로 심미진이 온다연을 학대하고 유하령이 괴롭히게 놔뒀는데도 아직도 심미진을 잊지 못하더라고요. 그런 애가 가장 중시하는 건 가족이에요. 그런데 온준휘가 강후 씨의 무관심으로 죽었다고 믿고 있으니... 온다연이 강후 씨를 용서할 리 없겠죠.”“게다가 온다연은 강후 씨가 자기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버렸다고 믿고 있어요. 이제 강후 씨를 더더욱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근데 정말 보고 싶어요. 그 여자가 자기 아이가 사실 이미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해!”소이섭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차갑게 말했다.“지금은 온다연이 그 사실을 알게 하면 안 돼. 김원도와 계획한 대로 모든 걸 진행해야 해. 하지만 걱정 마. 온다연이 너한테 그런 짓을 했던 만큼 내가 온다연한테 그보다 더한 고통을 줄 거니까.”나은별은 이를 드러내며 비웃었다.“온다연 따위가 감히 나와 경쟁
유강후는 온다연이 다른 남자를 위해 애원하는 모습을 보며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만약 내가 안 된다고 하면?”온다연은 침묵했다.그녀의 손에는 지금 그를 위협할 만한 아무것도 없었다. 유강후가 지금 신경 쓰는 건 아마 그녀의 목숨뿐일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유강후는 아직 온다연을 완전히 가지고 놀지 못했다.한참을 망설인 끝에 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나쁜 소식을 들으면 나는 이곳에서 뛰어내릴 거예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까. 정말로... 너무 지쳤어요.”그녀의 눈에 가득한 피로감은 거짓이 아니었다.유강후는 가슴 한가운데가 쥐어짜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그녀가 또다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그를 위협하니 말이다.며칠 동안 그녀를 찾기 위해 유강후는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했다.염지훈과 그녀가 한 방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그럼에도 온다연이 김원도의 사람들에게 노출될까 봐 그는 끊임없이 조바심을 냈다.몇 차례 그녀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유강후는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그런 상황 속에서 아무도 그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몰랐다.사실 유강후는 한 번도 이렇게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어린 시절 임씨 가문의 미치광이가 유강후를 방 안에 가둬두고 불을 지를 때도, 납치되어 피를 뽑히고 총구가 이마에 겨눠졌을 때도, 심지어 고층 건물에서 떠밀려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도 그는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았다.하지만 온다연이 어딘가에서 고통받거나 모욕당할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심지어 그녀가 살해되었다는 거짓 소식을 들었을 때는 순간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릴 뻔했다.이런 이유로 그는 염지훈을 죽이지 않았다.그의 평소 성격대로라면 염지훈은 이미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비록 온다연을 데리고 갔지만 염지훈은 그녀를 김원도의 광기에서 철저히 보호했다.그런 점에서 염지훈을 죽이는 대신 단지 한 번 심하게 때리는 것으로 끝낸 것이다.물론 유강후는 여전히 염지훈을
그 대답을 들은 유강후는 애써 참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그는 천천히 온다연의 목에 감긴 붕대를 쓰다듬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참 안됐군. 너는 평생 나와 함께할 수밖에 없어. 죽어도 내 무덤에 묻혀야 하고 묘비에는 내 이름이 새겨질 거야.”이내 유강후는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낮게 물었다.“온다연, 네가 내 곁을 떠나 있었던 날들이 며칠인지 기억이라도 나?”온다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답했다.“기억도 안 나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저씨 곁에 없는 동안 훨씬 자유로웠다는 거예요.”유강후는 그 말에 가슴이 너무 아파 견딜 수 없었지만 차분히 온다연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하지만 네가 그랬잖아. 절대 날 떠나지 않겠다고.”그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고 그 눈빛 속의 감정은 더없이 서늘해 그녀의 숨을 막히게 했다.온다연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런 말 다 잊어버리세요.”그 순간, 유강후는 갑자기 그녀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며 말했다.“온다연,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그는 한 단어 한 단어를 곱씹어가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만약 이 일이 10년 전이었다면 난 염지훈을 내 손으로 죽였을 거고 너도 직접 목을 졸라 끝냈을 거야.”“5년 전이었다면 네 존재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웠겠지. 그리고 널 평생 감옥 같은 곳에 가둬뒀을 거야.”“하지만 지금은 내가 좀 나이를 먹었으니 참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 너 때문에 물러나 주는 거야. 이번 한 번만. 단 한 번뿐이야.”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경고했다.“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널 새장 속에 가둬둘 거야. 내 말 하나하나 다 진짜니까 의심하지 마.”그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온다연은 그의 말에서 뼛속까지 서늘해지는 차가움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유강후의 손을 피해버렸다.그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
그러자 이내 수화기 너머에서 염지호의 잔뜩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뭐라고?”유강후는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당장 이난과 연락하고 직접 와서 확인하세요.”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전화를 끊고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전화했어. 그러니까 이제 칼 내려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칼을 내려놓았다.칼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유강후 또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재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상처를 확인했다.칼날은 매우 날카로웠고 그로 인해 생긴 상처는 생각보다 많이 깊었다. 만약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다.유강후는 그녀를 재빨리 안아 들고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차에 오르자마자 유강후는 경호원이 건넨 붕대를 건네받더니 온다연의 상처를 간단히 응급으로 처치를 해줬다. 그리고는 곧바로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상처는 꽤 깊어서 열 몇 바늘을 꿰매고 지혈제를 맞은 후에야 겨우 피가 멈췄다.그제야 유강후는 안도하며 온다연의 손에 시선을 돌렸고 그제야 아까 자신에게 밟힌 손가락 중 하나가 부어오른 것을 발견했다.그것은 바로 예전에 문에 끼어 부러졌던 그녀의 새끼손가락이었다.온다연의 손가락을 본 유강후의 심장이 다시 철렁 내려앉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낮게 물었다.“아프지? 왜 안 말했어?”온다연은 그런 유강후를 조롱하듯 대답했다.“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말하면 아저씨가 절 걱정이라도 해줄 것 같았어요?”“게다가 이 손가락도 아저씨가 부러뜨린 거잖아요. 한 번 더 부러진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겠어요?”유강후는 그녀의 눈에 깃든 증오의 감정을 보고 마음이 저려오는 듯했고 마치 누군가 그의 가슴을 쥐어뜯는 기분이 들었다.이내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온다연, 말 그런 식으로 하지 마.”하지만 온다연은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연기는 그만하죠. 구역질 나니까.”유강후는 그녀가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고 더 이상 대응하지 않고 곧바로 의사를 불러 검사를 요청했다.결국 예
온다연은 옆에서 모든 장면을 보고 있었고 겁에 잔뜩 질려 얼어붙은 채로 유강후의 팔을 붙잡으며 외쳤다.“그만해요! 제발 그만두세요!”하지만 그녀는 곧 경호원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염지훈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유강후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혹시 당신이 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사람의 생사까지 결정할 수 있는 줄 아시나 본데 그건 틀렸습니다. 유강후 씨가 이럴수록 온다연은 당신을 더 증오할 겁니다. 다연이를 보세요. 당신을 쳐다보는 것조차 싫어하지 않나요?”“유강후 씨가 아무리 다연이를 억지로 데려가도 쟤는 어떻게든 당신을 떠날 방법만 찾을 겁니다!”“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사람의 진심 어린 마음을 얻을 자격이 없거든요.”그 말에 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살기를 띠었고 그는 발을 들어 다시 염지훈을 거세게 찼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무자비했다.염지훈은 거친 기침을 하며 피를 미친 듯이 뱉어냈고 온다연은 깜짝 놀라 경호원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철저히 제압당해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 순간, 유강후는 온다연의 눈에 핏빛으로 물든 악마처럼 보였다. 그의 통제 불가능한 모습은 마치 염지훈을 죽일 작정인 것 같았다.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순간, 온다연의 시야에 방금 테이블 위에 놓였던 과도가 들어왔다.그러자 온다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집어 자신의 목에 갖다 댔고 경호원들은 깜짝 놀라 달려들며 외쳤다.“사모님, 안 됩니다!”“사모님, 칼 내려놓으세요!”온다연은 한 발짝 물러섰고 손에 힘을 주어 칼끝을 목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다가오지 마세요!”유강후는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온다연을 보고는 충격에 몸이 굳었다.하지만 온다연의 목에는 이미 날카로운 칼날이 깊이 박혀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온다연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본 유강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칼 내려놔. 온다연.”그러나 온다연은 벽 쪽으로 물러서며 단호하게 말했다.“다가오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