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온다연에게 미열 정상이 나타났다. 이건 감염의 징조다.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음울해졌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그 차가운 눈빛만 봐도 한 과실의 사람들을 소름 돋게 한다.새벽 3, 4시쯤 되어 신구시에서 의학교류회에 참석하고 있던 국제에서 유명한 정형외과 전문가가 경원시에 도착했다.수술은 그제야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극히 복잡하고 세밀한 수술 후, 전문가는 유강후에게 손가락은 지켰지만 쓰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그리고 불구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온다연의 새끼손가락이 전처럼 영활하게 움직일 수 없다고 기본 상 확정할 수 있었다.유강후는 이 말을 듣고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온다연이 수술 후 얼마 동안 자고 있었다면 유강후는 얼마 동안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운 것이다.온다연이 깨어나 장화연이 유강후에게 알리러 갔을 때 테라스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했다.장화연은 침묵을 하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셋째 도련님, 온다연 씨 깨어나셨습니다. 들어가 보실 겁니까?”유강후는 즉시 온다연을 보러 가지 않고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직접 온다연이 좋아하는 계화 디저트를 만들었다.유강후는 거의 주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인들은 유강후가 주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잘리는 게 아닌가 하고 긴장하고 있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디저트가 식고 나서야 들어갔다.들어가 보니 온다연은 이미 깨어있었다. 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한 채로 침대 머리에 기대있었다.유강후가 들어온 것을 보고도 온다연은 다른 반응 없이 아이패드에 나오고 있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하룻밤 사이에 유강후는 온다연이 더 마른 것 같았다.얼굴에 겨우 살이 조금 오른 살이 하룻밤 사이에 다 빠지고 턱이 뾰족해 진듯했다.유강후가 입을 열기 전에 온다연은 아이패드를 치우고 유강후가 가져온 도시락통을 받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저씨, 감사합니다.”다친 손은 왼손이어서 오른손은 정상적으로 쓸 수 있었다.유강후는 도시락을 들고 있었고 온다연은 숟가락을
유강후가 화를 낼까 봐 무서웠는지 온다연이 말했다.“다음에는 꼭 도움을 청할게요.”온다연의 말소리는 아주 작았다. 마치 이번 일이 별로 큰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유강후의 마음을 찔렀다.유강후는 마음이 아팠으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보며 물었다.“계속 정신을 잃고 자고 있었어?”온다연은 창밖을 쳐다보고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잘 모르겠어요. 중간에 누군가 들어왔던 거 같아요.”온다연이 고개를 돌려 유강후를 쳐다봤다.“아저씨가 저 보러 들어오셨어요?”눈동자는 까맸고 아주 맑아 아주 무고해 보였다.유강후가 온다연을 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은별이가 들어갔는데 네가 물었어.”온다연의 눈에 이상한 빛이 스쳐 갔으나 금세 평정심을 되돌아왔다.온다연이 고개를 떨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다 제가 못나서 그래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당시 정신이 흐릿해서 누가 들어왔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제가 누굴 물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온다연이 유강후를 바라봤다. 자신이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나은별 씨는 어떠신가요? 많이 엄중해요? 아저씨, 전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왜 제가 물었는지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유강후는 온다연을 보며 마음은 점점 무거워 났다.유강후가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괜찮대.”온다연은 계속 유강후를 쳐다봤다.“아저씨가 병원에 데리고 가셨어요? 엄중하대요?”유강후가 말했다.“봤어. 의사 선생님이 괜찮대. 그냥 파상풍 주사 맞았어.”온다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으면 다행이에요.”귀하신 나은별 아가씨께서 자기절로 자신을 물고 파상풍 주사를 맞다니. 자신은 손가락이 끊어지고 하루 동안 갖춰있었는데 끊어진 손가락을 밟히다니.이게 바로 대비다.운명은 참 불공평하다.온다연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아저씨 나은별 씨하고 결혼하실 거예요?”유강후의 손이 멈칫하더니 손끝으로 온다연
유강후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심장이 당기는 듯한 고통이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침묵하다가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네 손인지 몰랐어...”한 번도 사과를 해본 적이 없는 경원시 도련님이 또 침묵하다가 난생처음으로 사과를 했다.“다 내 잘못이야.”온다연이 가볍게 웃었다. 눈빛은 붕대를 감고 있는 손을 스쳐 지나갔다.그 위에는 아직도 피가 나고 있었다.그런 뼈를 가르는 듯한 고통은 이번 생에 제일 고통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도 있다.하지만 온다연에게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게 했다.하는 말마다 다 거짓말이다. 자기한테 모든 걸 주겠다고 하고 아껴주겠다고 하고 자기한테 미래를 함께하겠다고 한 사람이다.유강후는 당시 그런 친밀한 자세로 다정한 애정 행위를 했었다.한번, 또 한 번 온다연에게 키스를 하며 꼭 껴안고 흥분했을 때는 몸이 떨리고 힘이 세 유강후의 품에서 으스러질 거 같았다.당시 온다연은 유강후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의 마음은 다시 깊은 늪으로 빠졌다.온다연의 운명이 원래 하천했지만 유강후가 직접 칼을 쥐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더러 온다연에게 칼을 꽂게 해서는 안 됐다.그리고 그 한 발을 나은별이 밟은 것이지만 유강후가 눈감아 준 것이다.유강후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렇게 온다연을 마음대로 짓밟아도 된다는 것인가?유강후는 나은별보다 더 나빴다.온다연은 도대체 뭐인 건가?그냥 하천한 애완견? 기분이 나쁘면 손가락을 끊여도 되고 좋아하는 사람은 온다연의 손가락을 세게 밟아도 된다는 것인가?이 일들이 유강후가 허락한 것이 아니면 누가 감히 할 수 있겠는가?이제 와서 왜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는 건가?온다연의 눈에는 차가움이 스쳐 지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온다연이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저씨. 안 아파요.”유강후는 온다연이 아래를 쳐다보는 눈과 입가에 연한 웃음이 아주 눈부셨다.안 아
하지만 지금 두려운 건 또 다른 것 같았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심해 봤자 한바탕 괴롭히기나 하지 어떻게 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이렇게 생각하니 온다연의 마음은 그렇게 무겁진 않은 것 같았다. 또다시 붕 뜨는 것 같았다. 당시 주희가 죽었을 때처럼 온다연은 또 아무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 느낌도 좋은 것 같았다.온다연이 머리를 들고 유강후의 눈을 직시했다.“아저씨 꼭 보상을 해야한다면 돈 주세요.”유강후가 온다연을 쳐다봤다.그 검은 눈동자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했고 목소리도 나른했으나 어딘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유강후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정서두 알 수 없었다.“다연아, 뭘 사고 싶은데?”유강후는 온다연에게 돈을 주고 싶지 않았다.돈은 유강후에게는 그저 수자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온다연에게는 안전하지 않아 많으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돈이 없어도 달아날 생각을 하는데 돈이 생기면 무슨 수를 쓰든 달아나려고 할 것이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돈을 주기 꺼리는 것을 눈치채고 가볍게 웃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그래요. 어떤 건 아저씨랑 화연 씨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저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으니깐요.”이 대답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유강후는 눈빛이 좀 나른해지며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다연이 얼마 갖고 싶은데?”온다연이 유강후를 보며 말했다.“10억이요.”주희의 수술비가 대략 6억에서 10억 정도였다.본가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맞은 것 하고 유강후와 잠을 잔 돈과 손가락 하나를 더하면 10억도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라 이미 낮춘 가격이었다.유강후는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온다연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렇게 많은 돈으로 뭘 하려고 그래?”10억으로는 이곳에서 세상 어느 나라에나 도망갈 수 있었다.심지어 신분을 바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한평생 살 수도 있다.온다연은 고개를 떨구고 눈에 스쳐 지나간 냉기를 감추었다.많은가?유하령의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빛은 약간 어두웠다.이 녀석이 1억에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전에 해준 게 아직 부족한 것 같으니 더 많이 사줘야겠다고 유강후는 생각했다. 그 뒤로 온다연은 인터넷 쇼핑에 푹 빠진 듯했다.처음에는 별로 값어치가 없는 작은 물건을 샀다. 분홍색 공책, 햄스터 무늬의 붓 같은 물건을 한 무더기 샀다.그 후로는 구월이에게 작은 방울도 많이 사줬고 여자아이들만이 쓰는 포장 귀여운 스킨케어 제품도 이것저것 사들였다.별로 값어치가 없는 것들이지만 귀여운 것들이었다.양이 너무 많아서 장화연은 작은 방 하나를 비워 그녀의 이런 너저분한 물건들을 넣어줘야 했다.나중에는 천천히 더 비싼 것을 샀다.어떤 때는 새로 나온 이어폰을 사고, 어떤 때는 핑크의 작은 스피커를 산다.한 두 번 기분이 좋았을 때는 유강후한테 곰돌이 커프스 링크 한 쌍과 곰돌이 무늬의 컵을 사주기도 했다.유강후는 이 물건들을 받았을 때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저 장화연에게 대신 가지고 있으라고 했을 뿐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그의 냉랭한 태도는 마치 냉수처럼 온다연의 열정을 퍼부었다. 그 후부터 온다연은 그에게 무엇을 선물하지 않았다.나중에는 오히려 장화연에게 작은 선물 두 개를 주었다.하나는 아이리스 모양의 브로치였고, 또 하나는 부드러운 양가죽 장갑이었다.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정성 들여 고른 것 같았다. 장화연은 그녀가 소파에 엎드려 수십 개를 비교하면서 한참을 고르는 것을 보았다.장화연은 선물이 맘에 들었는지, 한 번은 연회에 참석할 때 그 아이리스 브로치를 하고 갔다.그 뒤로도 온다연의 쇼핑을 계속했는데 유강후는 천천히 묻지 않기 시작했다.그는 몇천 원, 몇만 원짜리 작은 물건은 그녀가 사고 싶은 만큼 사도록 했다. 안 되면 옆에 있는 집을 사서 그녀를 위한 창고로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온다연이 나중에 휴대전화를 새로 사고 전화카드를 새로 사도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다.거의 한 달 후, 온다연의 손은
하지만 그녀는 뼛속까지 전형적인 백인이었다. 오면서 유강후랑 많은 얘기를 했는데 자기는 예쁜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밝힐 정도였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도 그의 곁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했다.하지만 온다연은 오해를 한 것 같았다. 그가 예쁜 여자애와 같이 오는 것을 보고는 잠시 멍해 있다가 옆방으로 숨었다.유강후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끌어내어 왜 숨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비로소 그 여자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새 친구를 사귀었나 봐요?”질투 섞인 말투였다. 마치 바람피우는 남편을 잡아낸 것처럼 말이다.유강후는 사실 속으로 좀 기뻐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온다연은 태도가 담담해서 그는 사실 줄곧 불안했었다.지금은 그녀가 질투하는 모습을 보니 불안해하던 마음을 놓았다.그는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냥 친구라고만 하고는 온다연을 데리고 갔다.오히려 그 여자애가 몇 번이나 따라와서 온다연의 전화번호를 따려 했다. 근데 이권이 막아냈다.하지만 온다연의 눈에는 이게 다른 그림으로 보였다. 유강후는 며칠 동안 어린 여친을 데리고 외국에 있다가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어린 여자 친구는 가기 싫어했지만 그의 경호원에 의해 쫓겨난 것으로 보였다.유강후는 온다연이 질투한 일을 생각하며 기쁨에 젖어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온다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는 집에 돌아와서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씻고는 온다연을 침대에 눕힌 채 덮쳤다.이번에는 유강후는 많이 부드러워진 듯했다. 통제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던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했다.온다연도 전에보다는 다소 얌전했다. 최대한으로 그를 받아들이려고 했다.이번에는 그래도 문제없이 잘 해낸 셈이었는데 유강후는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정말 너무 달았다. 그는 그녀가 성인이 되자마자 그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을 점점 더 후회했다.그 후의 시간은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었다.스킨십을 하는 것에서 유강후는 자기 생각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는 꼭 해야 했다.하지만 온다연이
말을 하면서 커다란 손이 온다연의 부드러운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 그리고 라인을 따라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동작은 느렸지만 느낌은 있었다.온다연은 몸이 굳었다.아저씨가 오늘 좀 심하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자기가 잠이 덜 깼을 때 이미 한번 해서 온몸이 아팠다. 점심까지 내내 잤더니 좀 나아졌다.저녁에는 당연히 안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흥이 오른 것 같았다. 아까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나 하고 온다연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아팠다. 여러 번을 해봤지만 아직 적응이 잘 안 되었다.하지만 그녀는 내일 꼭 영원시에 가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를 만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그녀는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주동적인 적도 없었다. 그저 그의 모습을 따라 하며 그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기만 했다.그런데 그녀는 이게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아저씨가 이렇게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녀의 서툰 손길은 마치 그의 몸에 불을 붙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더는 제어할 수 없어 몸을 돌려 그녀 몸 위로 덮쳤다.침대는 오랫동안 흔들렸고 낮은 오열 소리와 빠른 숨소리도 오래 이어졌다.하룻밤으로는 부족했다.다음날 온다연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일어났을 때 유강후가 이미 식탁 옆에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한 손으로 새하얀 찻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방금 배달된 신문을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늘 그렇듯 새하얀 줄무늬 셔츠에 검은색 슈트 바지를 입었는데 차갑고 귀 티 나게 보였다. 그는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세가 등등하였다.온다연은 그를 바라보았다. 어젯밤의 사람과 눈앞의 사람이 같은 사람이 맞는지 생각하면서 말이다.어젯밤의 유강후는 더없이 거칠었다. 마치 그녀를 잡아먹을 것처럼 눈 밑에 붉은 핏발이 가득 섰다.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은 거리감 있고 존귀한 느낌이 있었다. 찻잔을 들고 있는 모습마저도 귀 티 나고 우아했다.이게 한 사람이라니, 정말 놀라웠다. 온다연의 시선을 느낀 유강후는 들고 있던 찻잔
유강후가 온다연의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귀 뒤에 넘기며 말했다.“점심까지 자고 가도 돼.”온다연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 뜨거워 나는 작은 그릇을 쥐고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유강후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온다연의 손을 당겨다가 보니 하얀 손바닥은 이미 뜨거워서 빨개 났다.유강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온다연, 너 이제 또 뜨거운 거 손에 쥐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보여줄게.”온다연은 잘못을 한 소학생처럼 작은 소리로 변명을 했다.“안 아파요.”유강후는 이 소리를 듣고 가슴팍에 내려가지 않는 화가 다시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저번 일은 유강후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줬다.지금 온다연이 아프지 않다는 소리만 들어도 마음에 힘들다.온다연의 이런 극도의 참을성은 유강후를 난감하게 했다.손바닥이 찔리던, 아니면 새끼손가락이 끊어져도 참고 울고불고하지 않는다.더 무서운 것은 당시 갈비뼈가 부딪쳐 부러져 죽기 직전이었는데 유강후가 찾아가지 않아도 조용히 죽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온다연은 죽음을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이 세상에 여념할 곳이 없고 지금 당장 죽더라도 별로 큰 일이 아닌 듯 했다.이런 조용함과 인내심은 유강후에게 온다연은 틈이 없는 동그라미 같았다. 이렇게 오래됐지만 유강후는 조금도 온다연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했다.사실 며칠 전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필요하면 달라고 하고 싫으면 거절을 하게 하려고 기회를 줬다.어떨 땐 사람을 빡치게 하지만 귀엽다고 생각했다.유강후가 모든 것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실수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여기까지 생각을 하니 눈빛은 더 어두워졌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잡고는 다친 손을 손바닥에 놓고 새끼손가락을 살살 눌렀다.“아직도 아파?”온다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 새끼손가락에 대해 아무런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안 아파요. 아무 감각도 없어요.”사실 여전히 아프다. 특히 밖에 나갔을 때 새끼손가락이 아파
온다연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가느다란 두 다리를 꽉 조였다.그러자 유강후는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타일렀다.“남편한테 보여주는 게 뭐가 부끄러워요.”온다연은 목소리마저 떨렸다.“못생겼어요. 보지 마요.”“예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예뻐요.”말하면서 유강후는 손에 힘을 주고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분홍빛을 띄며 부드러워야 할 그곳은 이미 빨갛게 부어있었고 찢겨진 흔적도 보였다.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졌다.후회가 밀려온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졌다.“약 가지러 갈게요.”이미 수없는 애정 행각을 했음에도 온다연은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그만 봐요. 아까 의사 선생님이 약 발라줬어요. 그리고 이제는 많이 안 아파요.”유강후는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나갔다.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작은 연고가 들려있었다.“지난번에 상처에 쓰고 남은 건데, 다른 약보다 효과가 좋을 거예요.”유강후가 직접 약을 발라주려고 하자 온다연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혼자 할게요.”그걸 두고 볼 리가 없었던 유강후는 그녀를 달래며 침대에 눕혔고 직접 약을 발라줬다.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나쁜 손은 또 이리저리 만져대기 시작했다.거친 손길에 온다연은 얼굴이 상기된 채로 그를 세게 걷어찼다.그렇게 꽁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이 되고서야 유강후는 그녀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다음날 온다연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점심이 되었고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예전에는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유강후는 꼭 정해진 시간에 일어났기에 늘 늦잠 자는 건 그녀뿐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보다 더 깊이 잠들었다.옆에서 툭툭 밀었지만 유강후는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게다가 손에 느껴지는 그의 열기에 깜짝 놀랐고 유강후는 고열인 게 틀림없었다.온다연은 다급하게 집사를 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와 강현미가 부리나케 달려왔다.강현미는 아들의
온다연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말했다.“왜 이렇게 속이 좁은지 이해가 안 되네요. 두 사람이 싸울 때 들었어요. 예전에 우리가 안 좋은 일로 헤어졌다면서요?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줘요.”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염 대표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헛소리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요. 우린 헤어진 적 없어요. 그 사람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해서 유나 씨를 빼앗아 가려고 했어요. 지금까지 살려둔 건 자비를 베푼 거죠.”온다연은 생각에 잠겼다.“우리 두 사람 사이에 꽤 많은 일이 있었나 봐요? 끼어들 기회가 엿보여서 이간질했던 게 아닐까요?”유강후가 답했다.“어차피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거예요.”“아니, 예전에도 기회를 준 적은 없어요. 내가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유나 씨를 데려갔거든요. 이제는 우리 사이에 끼어들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을 거예요.”“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걸 알면서 뻔뻔하게 끼어든 파렴치하고 비열한 놈이죠.”이때 온다연이 말했다.“예전의 기억을 되찾고 싶어요. 강 대표님이 실력 있는 최면사를 소개해주면 안 돼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유강후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많이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래서 유나 씨가 기억을 되찾는 걸 원치 않아요.”그러나 온다연의 태도는 확고했다.“아니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다해도 내가 직접 겪은 그때만의 추억이잖아요. 강 대표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좋든 나쁘든 놓치고 싶지 않아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아이가 태어나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 기억을 되찾아도 늦지 않아요. 이런 일로 아이한테 영향을 미치면 안 되잖아요.”유강후는 아이를 좋아하는 온다연의 성격을 고려해 일부러 이런 얘기를 꺼냈다. 아이가 생긴다면 과거의 안 좋은 일이 생각나도 결국 아이를 지키기 위해야 곁에 머물 테니까.그 말을 들은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차라리 아이가 없을 때 기억을 되찾는 게 좋지
강현미를 불러오려던 집사를 온다연이 나서서 말렸다.“별일 아니니까 얘기하지 마요.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약만 잘 바르면 금방 나을 거예요. 늦은 시간에 찾아가는 건 괜히 실례일 수도 있어요.”온다연은 도우미들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 알았으면 좋겠어요. 누가 물어보면 그냥 넘어져서 다친 거라고 얘기해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아무도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었다.온다연은 이제 의심할 여지 없이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다. 더군다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유강후의 태도를 지켜봐 왔기에 온다연의 명령을 거역하는 건 불가능했다.다만 겉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온다연이 일 처리할 때만은 매우 냉정하고 단호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다가갔다. 그러나 유강후는 고민도 없이 그녀를 안아 올려 침대로 내던졌다.부드러운 애무나 키스는 건너뛰고 유강후는 매우 거칠게 그녀를 다뤘다.그들은 신체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에 아무런 준비동작 없이 이어진 갑작스러운 행동에 온다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나 평소와 달리 유난히 확고한 유강후는 거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온다연은 유강후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여 예전처럼 아프다고 소리치는 게 아닌 오히려 힘을 풀고 자신의 몸을 열어 그를 꽉 껴안았다.전혀 자제하지 않는 유강후 때문에 온다연은 끝내 피를 보고 말았다.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여의사를 불러왔다.의사는 침대에 묻은 피를 보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나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온다연에게 조심스럽게 약을 발라주며 최근 며칠 동안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충고했다.온다연은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유강후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그제서야 유강후도 정신을 차렸다.3년 전 온다연을 잃었던 두려움과 무력감이 염지훈이 그녀를 데려간 순간 다시 솟구쳐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경호원이 건넨 약상자를 받아들며 그에게 다가갔다.“여긴 너무 어두워요. 차에서 발라줄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해줘요.”사실 그는 별장의 큰 유리창을 통해 온다연이 염지훈에게 약을 발라주는 걸 목격했다.그는 질투심으로 이미 미쳐가고 있었다.‘염지훈... 분명히 일부러 그런 거야. 보기에는 심각해도 솔직히 얼마 다치지도 않았잖아? 하여튼 꾀병은.’경호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려는 유강후를 말리지 않았다면 염지훈은 지금쯤 이미 병원에 누워있었을 것이다.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만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파요.”온다연은 쪼그리고 앉아 다친 부위를 주의 깊게 살폈다.염지훈이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여러 군데가 파랗게 멍들었고 피부가 벗겨진 곳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다친 걸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아픈 걸 잘 참는 유강후가 고작 이런 작은 상처에 아프다고 호소하니 온다연은 어이가 없었다.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치료해 줬다.“이제 됐으니까 가요. 남은 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의사 선생님한테 처리해 달라고 해요.”유강후가 손을 뻗어 힘을 가하자 온다연은 그의 다리 위에 주저앉았다.곧바로 턱을 잡더니 격렬한 키스가 이어졌다.그는 마치 분노를 표출하듯 온다연을 물어뜯었고 피비린내를 맛보고 나서야 그녀를 풀어주었다.온다연은 찢긴 자신의입술을 만지며 차갑게 말했다.“미쳤어요?”그러자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도착하자마자 온다연을 차에 앉히더니 문을 닫은 후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화들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유강후의 손을 붙잡았다.“정말 미쳤어요? 밖이잖아요.”유강후는 전혀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옷을 찢었다.불과 몇 초 만에 입고 있던 옷이 전부 벗겨졌다.온다연은 너무 화가 나서 그를 두 번이나 걷어찼지만 유강후는 이를 무시하고 셔츠를 벗어 그녀에게 입혔다.“나이도 많은 사람이 왜 이렇
재회가 됐든 다시 사랑에 빠지든, 온다연에게는 돌아갈 길이 없다.마음은 하나뿐이기에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도 단 한 명뿐이다.“감정이 격해진 것 같네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봐요.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얘기해요.”온다연은 붕대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이만 가볼게요. 푹 쉬어요.”염지훈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유강후가 그렇게 좋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믿을 정도로? 두 사람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긴 해?”온다연은 잠시 생각한 후 그에게 답했다.“지금은 믿고 싶어요. 과거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해도 피할 생각은 없어요. 만약 우리 둘 사이에 많은 오해가 있었다면 하나씩 풀어갈 거예요. 용서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때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그녀는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하지만 우리 둘 사이가 어떻게 되든 제 마음에는 지훈 씨가 없어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지훈 씨랑 결혼하는 건 너무 파렴치한 행동이잖아요. 지훈 씨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어요.”온다연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레스토랑에서 어떤 여자랑 밥 먹는 걸 봤어요. 그 여자분은 지훈 씨를 많이 좋아해요.”염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다연의 손을 잡았다.“뭘 들은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무것도 듣지 못했어요. 다만 지훈 씨를 바라보는 눈빛에 담긴 애정과 존경은 정확하게 봤어요. 그분은 지훈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염지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무 사이 아니야. 좋아하는 감정도 없고. 다연아, 내 마음속에는 오직 너뿐이야.”온다연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계속 이러면 더 이상 지훈 씨랑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저도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당분간 진정하고 괜찮아지면 다시 만나서 얘기해요.”염지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유강후한테 가고 싶어? 난 동의 못 해. 강씨 가문으로
“지훈 씨, 미안해요.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훈 씨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요. 솔직히 약혼 날짜를 미룰까도 고민해 봤는데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훈 씨는 그저 저한테 가족이나 오빠 같은 사람...”“듣기 싫으니까 그만해.”염지훈은 거칠게 말을 자르고선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온다연, 너 진짜 잔인하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잖아. 널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한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왜 유강후는 등장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는 건데? 왜 그 사람 말 한마디에 흔들리냐고. 도대체 왜?”온다연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박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약혼은 깬 건 그녀가 맞았기에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질책해도 말없이 그걸 견뎌야만 했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내 마음을 통제할 수가 없었어요...”“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다야?”고통을 이기지 못한 염지훈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불과 몇 초 만에 그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다.온다연은 재빨리 그를 말렸다.“지훈 씨, 이러지 마요.”그러자 염지훈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흐느꼈다.“그냥 잠깐 자리를 비운 것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어? 예전의 온다연은 어디 갔냐고. 돌려내. 돌려내라고.”“내가 아는 말 잘 듣고 착한 온다연은 다른 사람과 쉽게 사랑에 빠질 그런 여자가 아니야.”그는 힘껏 온다연을 밀쳤다.“넌 온다연이 아니야. 나가.”“나가라고.”뒤로 밀려난 온다연은 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고 곧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새빨간 피가 그녀의 하얀 뺨을 적시고 나서야 염지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는 온다연을 안아서 소파에 앉힌 뒤 약상자를 찾아와 지혈해 주려고 애썼다.그런데 온다연이 그를 제지했다.“됐어요. 지훈 씨가 더 심하게 다쳤잖아요. 제가 해줄게요.”온다연은 연고와 붕대를 집어들고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과 몸에 난 상처에 약을 발랐다.피투성이 된 손을
유강후는 주먹으로 문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꺼져.”가장 소중한 걸 잃은 듯한 괴로운 느낌이 또다시 밀려왔고 그는 문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경호원들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멀지 않은 곳에서 유강후를 지키고 있었다.그들의 눈에 비친 유강후는 우리에 갇힌 짐승이 따로 없었다. 평소 단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래 그룹의 대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이때 유강후가 대뜸 물었다.“두 사람... 안에서 뭘 하고 있을까?”경호원이 입을 열었다.“저희가 알고 있는 사모님은 선을 지키는 분입니다. 아마 염 대표님과의 약혼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겁니다.”유강후의 곁에서 오랜 세월 일하면서 그들은 두 사람이 어떤 풍파를 겪었는지 전부 지켜봤다. 더욱이 지난 3년 동안 유강후가 보낸 힘든 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그러기에 그에게 온다연이 어떤 존재인지는 더없이 잘 알고 있다.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으니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편하게 지내지 못할 테니까.그 시각 별장 안.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염지훈은 온다연을 덥석 끌어안았다.온다연은 몸부림치지 않고 그가 자신을 껴안도록 내버려두었다.하지만 염지훈의 힘은 점점 더 세졌고 마치 그녀를 몸속으로 밀어 넣을 듯 꽉 껴안고 놓지 않았다.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숨쉬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온다연은 입을 열었다.“이제 됐어요?”염지훈은 그녀를 놓아주더니 잔뜩 지쳐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연아, 기억이 돌아온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예전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염지훈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기억이 돌아온 것도 아닌데 왜 유강후를 만나는 거야?”염지훈은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 계속하여 현실을 부정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껴질 정도였다.“말도 안 돼. 내가 떠난 지 얼마 됐다고 유강후를 만나는 거야? 심지어 저 사람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어?”온다연
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염지훈은 믿기지 않았다.“기억이 떠오른 게 아니라면 유 대표랑은...”“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 잠깐 자리를 옮겨서 얘기할까요?”그러자 염지훈이 답했다.“나 근처에 사니까 그쪽으로 가자.”염지훈이 지내는 곳은 불과 이곳에서 몇백 미터 떨어져 있었고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앞장선 염지훈의 뒤에는 온다연이 있었고 유강후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유강후가 온다연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염지훈은 돌아서서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곤 했다.극도로 어색한 분위기나 한참이나 이어졌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과 비슷한 거리를 두었다.별장에 다다르자 염지훈은 유강후를 가로막았다.“그쪽은 환영받는 사람이 아니라서...”그러자 유강후는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염 대표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허락한 거예요. 잊지 마요.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건 그쪽이니까.”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염지훈의 손에서는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고 당장이라도 유강후를 갈기갈기 찢을 기세였다.“무슨 낯짝으로 다연이의 곁에 있는 거죠? 그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연이를 어떻게 찾았는지 알려줄까요?”“강 대표님이 바꿔치기...”“닥쳐.”분노를 이기지 못한 유강후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염지훈의 손목을 잡았다.“상황을 이용한 비열한 놈이 누군데 감히 날 탓해?”“나랑 다연이 사이에 아무리 큰 문제가 있더라도 그건 우리 둘이 해결할 거야. 너 같은 제 3자가 끼어들 곳은 없어.”제 3자라는 말은 염지훈의 분노 버튼을 눌러버렸다. 결국 그는 또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쓰레기 같은 놈. 너랑 네 가족들이 다연이한테 했던 짓을 생각해 봐. 넌 평생 용서받지 못할 거야.”온다연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말린 덕분에 주먹은 유강후에게 떨어지지 않았다.“지훈 씨, 얘기할 생각 없으면 이만 가볼게요.”염지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저 인간
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염 대표?”‘염지훈이 왜 여기에 있지?’염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비꼬는듯한 어조로 말했다.“레스토랑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새로운 부인과 오붓한 데이트라도 하고 계셨나?”유강후의 시선은 그를 넘어 온다연에게 향했다.온다연도 염지훈을 본 게 분명하다.그녀는 일어나서 가볍게 입을 열었다.“지훈 씨.”부드러운 목소리에 염지훈은 날벼락을 맞은 듯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다가 갑자기 돌아섰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앞의 사람을 바라봤다.“다연이?”온다연은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맞아요.”염지훈은 시선은 오랫동안 그녀에게 머물렀고 여전히 이곳에서 온다연을 만나게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정말 다연이야?”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그러자 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쪽으로 와요.”염지훈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몸을 홱 돌리더니 사나운 눈빛으로 유강후를 매섭게 노려봤다.“또 그쪽이네요. 어떻게 찾았어요?”유강후는 그를 차갑게 바라보며 눈에 적의가 번쩍였다.“다연이는 처음부터 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염 대표님이 제멋대로 숨겼잖아요. 어떻게 감히...”말이 끝나기도 전에 염지훈은 분노하며 달려들더니 유강후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짐승만도 못한 게 무슨 낯짝으로 다연이를 찾아와?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넌 다연이 곁에 있을 자격이 없어.”유강후는 일부러 고개를 기울여 주먹을 맞았다.그러고선 달려드는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물러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절대 움직이지 마. 이건 우리 둘 사이의 원한이야.”그 말에 경호원들은 할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유강후는 외투를 벗어 차에 던지더니 곧바로 주먹을 날렸고 염지훈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냈다.두 남자는 실력이 엇비슷해서 싸우기만 하면 목숨을 걸었고 잠깐 사이에 모두 부상을 입었다.온다연은 싸움이 점점 심해지자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달려들었지만 곧바로 경호원에게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