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가 화를 낼까 봐 무서웠는지 온다연이 말했다.“다음에는 꼭 도움을 청할게요.”온다연의 말소리는 아주 작았다. 마치 이번 일이 별로 큰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유강후의 마음을 찔렀다.유강후는 마음이 아팠으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보며 물었다.“계속 정신을 잃고 자고 있었어?”온다연은 창밖을 쳐다보고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잘 모르겠어요. 중간에 누군가 들어왔던 거 같아요.”온다연이 고개를 돌려 유강후를 쳐다봤다.“아저씨가 저 보러 들어오셨어요?”눈동자는 까맸고 아주 맑아 아주 무고해 보였다.유강후가 온다연을 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은별이가 들어갔는데 네가 물었어.”온다연의 눈에 이상한 빛이 스쳐 갔으나 금세 평정심을 되돌아왔다.온다연이 고개를 떨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다 제가 못나서 그래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당시 정신이 흐릿해서 누가 들어왔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제가 누굴 물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온다연이 유강후를 바라봤다. 자신이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나은별 씨는 어떠신가요? 많이 엄중해요? 아저씨, 전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왜 제가 물었는지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유강후는 온다연을 보며 마음은 점점 무거워 났다.유강후가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괜찮대.”온다연은 계속 유강후를 쳐다봤다.“아저씨가 병원에 데리고 가셨어요? 엄중하대요?”유강후가 말했다.“봤어. 의사 선생님이 괜찮대. 그냥 파상풍 주사 맞았어.”온다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으면 다행이에요.”귀하신 나은별 아가씨께서 자기절로 자신을 물고 파상풍 주사를 맞다니. 자신은 손가락이 끊어지고 하루 동안 갖춰있었는데 끊어진 손가락을 밟히다니.이게 바로 대비다.운명은 참 불공평하다.온다연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아저씨 나은별 씨하고 결혼하실 거예요?”유강후의 손이 멈칫하더니 손끝으로 온다연
유강후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심장이 당기는 듯한 고통이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침묵하다가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네 손인지 몰랐어...”한 번도 사과를 해본 적이 없는 경원시 도련님이 또 침묵하다가 난생처음으로 사과를 했다.“다 내 잘못이야.”온다연이 가볍게 웃었다. 눈빛은 붕대를 감고 있는 손을 스쳐 지나갔다.그 위에는 아직도 피가 나고 있었다.그런 뼈를 가르는 듯한 고통은 이번 생에 제일 고통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도 있다.하지만 온다연에게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게 했다.하는 말마다 다 거짓말이다. 자기한테 모든 걸 주겠다고 하고 아껴주겠다고 하고 자기한테 미래를 함께하겠다고 한 사람이다.유강후는 당시 그런 친밀한 자세로 다정한 애정 행위를 했었다.한번, 또 한 번 온다연에게 키스를 하며 꼭 껴안고 흥분했을 때는 몸이 떨리고 힘이 세 유강후의 품에서 으스러질 거 같았다.당시 온다연은 유강후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의 마음은 다시 깊은 늪으로 빠졌다.온다연의 운명이 원래 하천했지만 유강후가 직접 칼을 쥐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더러 온다연에게 칼을 꽂게 해서는 안 됐다.그리고 그 한 발을 나은별이 밟은 것이지만 유강후가 눈감아 준 것이다.유강후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렇게 온다연을 마음대로 짓밟아도 된다는 것인가?유강후는 나은별보다 더 나빴다.온다연은 도대체 뭐인 건가?그냥 하천한 애완견? 기분이 나쁘면 손가락을 끊여도 되고 좋아하는 사람은 온다연의 손가락을 세게 밟아도 된다는 것인가?이 일들이 유강후가 허락한 것이 아니면 누가 감히 할 수 있겠는가?이제 와서 왜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는 건가?온다연의 눈에는 차가움이 스쳐 지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온다연이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저씨. 안 아파요.”유강후는 온다연이 아래를 쳐다보는 눈과 입가에 연한 웃음이 아주 눈부셨다.안 아
하지만 지금 두려운 건 또 다른 것 같았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심해 봤자 한바탕 괴롭히기나 하지 어떻게 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이렇게 생각하니 온다연의 마음은 그렇게 무겁진 않은 것 같았다. 또다시 붕 뜨는 것 같았다. 당시 주희가 죽었을 때처럼 온다연은 또 아무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 느낌도 좋은 것 같았다.온다연이 머리를 들고 유강후의 눈을 직시했다.“아저씨 꼭 보상을 해야한다면 돈 주세요.”유강후가 온다연을 쳐다봤다.그 검은 눈동자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했고 목소리도 나른했으나 어딘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유강후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정서두 알 수 없었다.“다연아, 뭘 사고 싶은데?”유강후는 온다연에게 돈을 주고 싶지 않았다.돈은 유강후에게는 그저 수자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온다연에게는 안전하지 않아 많으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돈이 없어도 달아날 생각을 하는데 돈이 생기면 무슨 수를 쓰든 달아나려고 할 것이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돈을 주기 꺼리는 것을 눈치채고 가볍게 웃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그래요. 어떤 건 아저씨랑 화연 씨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저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으니깐요.”이 대답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유강후는 눈빛이 좀 나른해지며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다연이 얼마 갖고 싶은데?”온다연이 유강후를 보며 말했다.“10억이요.”주희의 수술비가 대략 6억에서 10억 정도였다.본가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맞은 것 하고 유강후와 잠을 잔 돈과 손가락 하나를 더하면 10억도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라 이미 낮춘 가격이었다.유강후는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온다연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렇게 많은 돈으로 뭘 하려고 그래?”10억으로는 이곳에서 세상 어느 나라에나 도망갈 수 있었다.심지어 신분을 바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한평생 살 수도 있다.온다연은 고개를 떨구고 눈에 스쳐 지나간 냉기를 감추었다.많은가?유하령의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빛은 약간 어두웠다.이 녀석이 1억에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전에 해준 게 아직 부족한 것 같으니 더 많이 사줘야겠다고 유강후는 생각했다. 그 뒤로 온다연은 인터넷 쇼핑에 푹 빠진 듯했다.처음에는 별로 값어치가 없는 작은 물건을 샀다. 분홍색 공책, 햄스터 무늬의 붓 같은 물건을 한 무더기 샀다.그 후로는 구월이에게 작은 방울도 많이 사줬고 여자아이들만이 쓰는 포장 귀여운 스킨케어 제품도 이것저것 사들였다.별로 값어치가 없는 것들이지만 귀여운 것들이었다.양이 너무 많아서 장화연은 작은 방 하나를 비워 그녀의 이런 너저분한 물건들을 넣어줘야 했다.나중에는 천천히 더 비싼 것을 샀다.어떤 때는 새로 나온 이어폰을 사고, 어떤 때는 핑크의 작은 스피커를 산다.한 두 번 기분이 좋았을 때는 유강후한테 곰돌이 커프스 링크 한 쌍과 곰돌이 무늬의 컵을 사주기도 했다.유강후는 이 물건들을 받았을 때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저 장화연에게 대신 가지고 있으라고 했을 뿐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그의 냉랭한 태도는 마치 냉수처럼 온다연의 열정을 퍼부었다. 그 후부터 온다연은 그에게 무엇을 선물하지 않았다.나중에는 오히려 장화연에게 작은 선물 두 개를 주었다.하나는 아이리스 모양의 브로치였고, 또 하나는 부드러운 양가죽 장갑이었다.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정성 들여 고른 것 같았다. 장화연은 그녀가 소파에 엎드려 수십 개를 비교하면서 한참을 고르는 것을 보았다.장화연은 선물이 맘에 들었는지, 한 번은 연회에 참석할 때 그 아이리스 브로치를 하고 갔다.그 뒤로도 온다연의 쇼핑을 계속했는데 유강후는 천천히 묻지 않기 시작했다.그는 몇천 원, 몇만 원짜리 작은 물건은 그녀가 사고 싶은 만큼 사도록 했다. 안 되면 옆에 있는 집을 사서 그녀를 위한 창고로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온다연이 나중에 휴대전화를 새로 사고 전화카드를 새로 사도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다.거의 한 달 후, 온다연의 손은
하지만 그녀는 뼛속까지 전형적인 백인이었다. 오면서 유강후랑 많은 얘기를 했는데 자기는 예쁜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밝힐 정도였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도 그의 곁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했다.하지만 온다연은 오해를 한 것 같았다. 그가 예쁜 여자애와 같이 오는 것을 보고는 잠시 멍해 있다가 옆방으로 숨었다.유강후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끌어내어 왜 숨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비로소 그 여자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새 친구를 사귀었나 봐요?”질투 섞인 말투였다. 마치 바람피우는 남편을 잡아낸 것처럼 말이다.유강후는 사실 속으로 좀 기뻐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온다연은 태도가 담담해서 그는 사실 줄곧 불안했었다.지금은 그녀가 질투하는 모습을 보니 불안해하던 마음을 놓았다.그는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냥 친구라고만 하고는 온다연을 데리고 갔다.오히려 그 여자애가 몇 번이나 따라와서 온다연의 전화번호를 따려 했다. 근데 이권이 막아냈다.하지만 온다연의 눈에는 이게 다른 그림으로 보였다. 유강후는 며칠 동안 어린 여친을 데리고 외국에 있다가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어린 여자 친구는 가기 싫어했지만 그의 경호원에 의해 쫓겨난 것으로 보였다.유강후는 온다연이 질투한 일을 생각하며 기쁨에 젖어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온다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는 집에 돌아와서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씻고는 온다연을 침대에 눕힌 채 덮쳤다.이번에는 유강후는 많이 부드러워진 듯했다. 통제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던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했다.온다연도 전에보다는 다소 얌전했다. 최대한으로 그를 받아들이려고 했다.이번에는 그래도 문제없이 잘 해낸 셈이었는데 유강후는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정말 너무 달았다. 그는 그녀가 성인이 되자마자 그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을 점점 더 후회했다.그 후의 시간은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었다.스킨십을 하는 것에서 유강후는 자기 생각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는 꼭 해야 했다.하지만 온다연이
말을 하면서 커다란 손이 온다연의 부드러운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 그리고 라인을 따라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동작은 느렸지만 느낌은 있었다.온다연은 몸이 굳었다.아저씨가 오늘 좀 심하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자기가 잠이 덜 깼을 때 이미 한번 해서 온몸이 아팠다. 점심까지 내내 잤더니 좀 나아졌다.저녁에는 당연히 안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흥이 오른 것 같았다. 아까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나 하고 온다연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아팠다. 여러 번을 해봤지만 아직 적응이 잘 안 되었다.하지만 그녀는 내일 꼭 영원시에 가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를 만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그녀는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주동적인 적도 없었다. 그저 그의 모습을 따라 하며 그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기만 했다.그런데 그녀는 이게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아저씨가 이렇게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녀의 서툰 손길은 마치 그의 몸에 불을 붙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더는 제어할 수 없어 몸을 돌려 그녀 몸 위로 덮쳤다.침대는 오랫동안 흔들렸고 낮은 오열 소리와 빠른 숨소리도 오래 이어졌다.하룻밤으로는 부족했다.다음날 온다연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일어났을 때 유강후가 이미 식탁 옆에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한 손으로 새하얀 찻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방금 배달된 신문을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늘 그렇듯 새하얀 줄무늬 셔츠에 검은색 슈트 바지를 입었는데 차갑고 귀 티 나게 보였다. 그는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세가 등등하였다.온다연은 그를 바라보았다. 어젯밤의 사람과 눈앞의 사람이 같은 사람이 맞는지 생각하면서 말이다.어젯밤의 유강후는 더없이 거칠었다. 마치 그녀를 잡아먹을 것처럼 눈 밑에 붉은 핏발이 가득 섰다.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은 거리감 있고 존귀한 느낌이 있었다. 찻잔을 들고 있는 모습마저도 귀 티 나고 우아했다.이게 한 사람이라니, 정말 놀라웠다. 온다연의 시선을 느낀 유강후는 들고 있던 찻잔
유강후가 온다연의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귀 뒤에 넘기며 말했다.“점심까지 자고 가도 돼.”온다연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 뜨거워 나는 작은 그릇을 쥐고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유강후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온다연의 손을 당겨다가 보니 하얀 손바닥은 이미 뜨거워서 빨개 났다.유강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온다연, 너 이제 또 뜨거운 거 손에 쥐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보여줄게.”온다연은 잘못을 한 소학생처럼 작은 소리로 변명을 했다.“안 아파요.”유강후는 이 소리를 듣고 가슴팍에 내려가지 않는 화가 다시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저번 일은 유강후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줬다.지금 온다연이 아프지 않다는 소리만 들어도 마음에 힘들다.온다연의 이런 극도의 참을성은 유강후를 난감하게 했다.손바닥이 찔리던, 아니면 새끼손가락이 끊어져도 참고 울고불고하지 않는다.더 무서운 것은 당시 갈비뼈가 부딪쳐 부러져 죽기 직전이었는데 유강후가 찾아가지 않아도 조용히 죽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온다연은 죽음을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이 세상에 여념할 곳이 없고 지금 당장 죽더라도 별로 큰 일이 아닌 듯 했다.이런 조용함과 인내심은 유강후에게 온다연은 틈이 없는 동그라미 같았다. 이렇게 오래됐지만 유강후는 조금도 온다연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했다.사실 며칠 전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필요하면 달라고 하고 싫으면 거절을 하게 하려고 기회를 줬다.어떨 땐 사람을 빡치게 하지만 귀엽다고 생각했다.유강후가 모든 것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실수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여기까지 생각을 하니 눈빛은 더 어두워졌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잡고는 다친 손을 손바닥에 놓고 새끼손가락을 살살 눌렀다.“아직도 아파?”온다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 새끼손가락에 대해 아무런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안 아파요. 아무 감각도 없어요.”사실 여전히 아프다. 특히 밖에 나갔을 때 새끼손가락이 아파
온다연의 시선을 느끼고 유강후는 손을 멈추더니 말했다.“어젯밤에 제대로 못 봤어?”온다연은 멈칫하더니 순간 귀까지 빨개졌다.온다연은 얼굴을 붉히고 유강후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그런 말을 그렇게 막 내뱉지 마요...”유강후는 어떻게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일까.유강후는 온다연이 얼굴을 붉히고 놀란 모습을 제일 좋아한다. 이럴 때만 온다연의 정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온다연의 눈을 쳐다보며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말을 막하다니? 어젯밤 누가 보겠다고 한 거더라?”온다연은 얼굴이 뜨거워 터질 것 같았다.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난... 그런 말 한 적 없어요.”유강후의 눈빛은 평소보다 부드러워졌다. 허리를 굽혀 온다연을 안아 들고 귀 옆에 낮은 소리로 말했다.“말해도 괜찮아. 다연이가 원하는 건 다 해줄 수 있다고 했잖아.”뜨겁고 습한 기체가 귀에 닿자 온다연의 마음도 간지러운 것 같았다.머릿속에는 유강후의 어젯밤 모습이 가득했다.그땐 온다연도 제정신이 아니었다.비록 아프지만 또 다른 이상한 느낌, 그리고 부끄러움과 무력감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온다연의 얼굴은 타오를 것 같았다. 빨리 머리를 숙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만 말해요.”온다연의 귀가 빨개 피라도 떨어질것 같은 모습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아서 차에 태웠다.이곳에서 영원시까지 세 시간 정도 시간이 걸린다.차가 얼마 동안 움직였으면 온다연도 얼마 동안 잤다.온다연은 너무 힘들었다.어젯밤 너무 늦게 잠에 들었고 오늘 아침 또 일찍이 일어나서 너무 피곤해 유강후의 다리에 누워 영원시까시 자면서 왔다.영원시에 도착했을 때 유강후가 안아서 내리려고 했을 때 온다연은 서서히 잠에서 깼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정신이 말짱하지 않은 것을 보고 옆에 있는 상자에서 보온 그릇을 꺼내어 온다연에게 건네주었다.“아직 뜨거우니까 좀 마셔.”온다연은 별로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흐리멍덩한 상태로 몇 모금 마셨다.“도착했어요?”아까 마실 때 입에
자연스레 유강후도 주성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흰머리 한두 가닥을 보게 되었다.그는 겁에 질린 채로 재빨리 다가가 온다연의 손목을 잡고 흔들었다.“다연아.”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유강후는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아직 뜨거웠다.가슴을 쥐어뜯듯 고통이 밀려왔다.유강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줬고 심지어 아이까지 보여줬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몰랐다.이때 주성원이 입을 열었다.“다연 씨의 현재 상태는 매우 심각합니다.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실대로 말했다.“대표님, 병원에 데려가 정밀검사를 받는 게 어떠신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자칫하다가 암으로 발전될 수도 있으니 검사를...”유강후는 고개를 휙 돌렸다.“뭐라고요?”주성원은 말을 이었다.“장난으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일만 30, 40년 해왔는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다연 씨는 위에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합니다.”“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상태가 악화된 거죠? 불과 한두 달밖에...”순간 유강후의 머릿속에는 막연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어쩌면 온다연이 아이가 없어진 걸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그저 이런 추측이 스쳐 지나갔을 뿐, 곧바로 그에게 부정을 당했다.유강후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연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잖아요. 굉장히 내성적이고 뭐든 속에 담아두는 성향이에요. 제가 아무리 옆에서 달래도 절대 입을 열지 않거든요. 아마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렇게 된 것 같네요.”“혹시 다연이의 입을 열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주성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대표님이 공들여 유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연 씨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 어쩌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대화를 최대한 많이 하는 게 좋습니다. 속에 담아둔
온다연은 심장이 도려내는 듯한 고통에 비틀거리며 비웃었다.“대면이라뇨? 이번에는 또 어떤 연극을 하려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협조하길 원하는 거죠?”그녀는 천천히 침대 위 아이를 바라보았다.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아이는 참으로 순하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그녀의 마음은 누군가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것처럼 아팠다.내장이 모두 뒤틀리는 듯한 통증에 온다연은 견딜 수 없었다.지금 당장이라도 유강후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왜 자신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는지, 그리고 침대 위의 이 아이는 누구의 아이인지.하지만 만약 지금 모든 것을 폭로한다면, 유강후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그가 침대 위의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웠다.유강후는 차갑고 냉혹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아이 하나 없애는 건 그에게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온다연이 아이를 보며 움직이지 않자 유강후는 다가와 아이를 품에 안고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이 깼어. 안아 줘.”그는 아이를 온다연에게 건네려 했다.하지만 온다연은 받아들이지 않고 유강후를 밀쳐냈다.“꺼져요. 내 앞에서 위선 떠는 거 짜증 나니까!”그녀의 목소리가 다소 컸는지라 놀란 아이는 ‘와아’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던 유강후는 아이를 그녀에게 억지로 넘기려 했다.두 사람의 실랑이 끝에 결국 아이는 품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순간 두 사람 모두 얼어붙었다.온다연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아이를 안아 올려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다행히 방바닥에는 두툼한 카펫이 깔려 있었고 아이도 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 크게 다치지 않았다.그러나 충격을 받은 아이는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온다연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달랬다.그러나 왜인지 평소에는 얌전했던 아이가 이번에는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유강후는 장화연에
“내가 낳은 아이라고요?”온다연은 유강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어떻게 거짓말을 하면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지? 난 대체 얼마나 어리석었길래 이 사람의 모든 행동을 사랑이라 믿었고 진심이라고 여겼던 걸까?’갑자기 온몸이 지치는 듯한 피로감에 휩싸이더니 온다연은 차갑게 말했다.“아저씨, 나 속이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요?”유강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빛에 잠깐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널 속인 적 없어.”“속인 적 없다고요?”온다연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눈빛이 마치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평가하듯 차갑고 날카로웠다.유강후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으려는 듯 온다연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마침내 눈물까지 흘러내렸다.“속인 적 없다니... 아저씨, 아저씨 입에서 진실된 말이 단 하나라도 나온 적이 있긴 해요?”“하늘을 걸고 맹세해봐요. 날 속인 적 없다고. 정말 진실만 말했었다고요!”“할 수 있겠어요?”그녀는 한 번도 이렇게까지 감정을 폭발시킨 적이 없었다.목이 터질 듯 외치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들었다.하여 유강후는 온다연의 이마에 손을 대며 물었다.“어디 아픈 거 아니야? 주성원 선생님 부를까?”“손 치워요!”온다연은 그의 손을 세게 쳐내며 격렬히 숨을 몰아쉬었다.‘참을 만큼 참았어.’다정하면서도 유강후의 몸에서는 여전히 달달한 향수 냄새가 났다.역겨웠다. 정말 끔찍하게 역겨웠다.그와 얽혔던 모든 기억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녀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온다연은 유강후를 밀쳐냈다.“아저씨는 정말 역겨워요. 진짜 끔찍해요!”순간 유강후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창백한 온다연의 얼굴을 보며 그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온다연,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아? 방금 한 말 당장 취소해.”그러자 온다연은 차가운 웃음을
“예전에는 작은 도련님을 앞에 데려다만 놓으면 꼭 안아서 놓으려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만지려고도 하지 않아요.”잠시 망설이던 장화연이 이어 말했다.“사모님이 아마 이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것 같아요.”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그리고 장화연은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건네며 말했다.“차라리 이제 사실을 사모님에게 말하는 게 어때요?”유강후는 마음이 죄어드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안 돼. 견디지 못할 거야. 정말 죽을 만큼 아파할 거라고...”장화연은 한숨을 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이제는 제 말을 믿지도 않고 제게 응답도 하지 않아요. 진시현 씨 일은 직접 사모님에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강후는 고개를 돌려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방 안에서 온다연은 유강후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아이의 볼을 살짝 건드리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이제 이 아이만 보면 자신의 아들이 그 여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 고통은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했고 유강후에 대한 증오가 점점 깊어졌다.그의 무정함과 거짓말이 더욱 미웠다.장화연을 시켜서 외부의 여자가 자신의 대역이라는 말이나, 누군가 그녀를 암살하려 했기에 보호를 위해 대역을 세웠다는 말까지 하게 만들다니.온다연은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이런 허술한 거짓말을 대체 어떻게 만들어낸 걸까? 설령 누군가 내 목숨을 노렸다 해도 어떻게 내 아들을 그 대역한테 맡길 수 있어? 웃겨서 정말!’그의 입에서는 한 마디의 진실도 나오지 않았다.온다연은 멍하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너는 내 아기가 아니지만 명목상 내 아이니까 정말 좋긴 해. 걱정 마. 내가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작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널 데리고 나갈 거야.”“하지만 지금은 널 좋아한다는 걸 티 내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아저씨가 널 이용해 날 또 옥죌 거니까.”“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 내가 얼마나 괴
병원에서.며칠간의 치료와 정성 어린 간호 끝에 나은별은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그녀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며 소이섭이 깎아준 사과를 받아들었다.“그 사람은 어떻게 처리했어요?”소이섭은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죽었어. 너무 많은 걸 아는 사람은 살려둘 수 없지.”나은별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그 사람... 강후 씨 비서였잖아요. 갑자기 죽으면 의심을 사지 않을까요?”그러자 소이섭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강후는 지금 온다연이라는 여자애를 찾느라 온 세상을 뒤지고 있어.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야.”곧 나은별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이번 수는 제대로 먹혔네요. 비서를 이용해 강후 씨의 말을 왜곡해서 아래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하고 강후 씨가 온준휘를 구하지 않으려 한다는 오해를 만들었잖아요. 그 결과 온준휘는 골든타임을 놓쳐 죽게 됐고 지금 온다연의 눈에는 강후 씨가 살인범이나 다름없겠죠.”“온다연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했어요. 자신이 잠깐 돌봐줬다는 이유만으로 심미진이 온다연을 학대하고 유하령이 괴롭히게 놔뒀는데도 아직도 심미진을 잊지 못하더라고요. 그런 애가 가장 중시하는 건 가족이에요. 그런데 온준휘가 강후 씨의 무관심으로 죽었다고 믿고 있으니... 온다연이 강후 씨를 용서할 리 없겠죠.”“게다가 온다연은 강후 씨가 자기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버렸다고 믿고 있어요. 이제 강후 씨를 더더욱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근데 정말 보고 싶어요. 그 여자가 자기 아이가 사실 이미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해!”소이섭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차갑게 말했다.“지금은 온다연이 그 사실을 알게 하면 안 돼. 김원도와 계획한 대로 모든 걸 진행해야 해. 하지만 걱정 마. 온다연이 너한테 그런 짓을 했던 만큼 내가 온다연한테 그보다 더한 고통을 줄 거니까.”나은별은 이를 드러내며 비웃었다.“온다연 따위가 감히 나와 경쟁
유강후는 온다연이 다른 남자를 위해 애원하는 모습을 보며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만약 내가 안 된다고 하면?”온다연은 침묵했다.그녀의 손에는 지금 그를 위협할 만한 아무것도 없었다. 유강후가 지금 신경 쓰는 건 아마 그녀의 목숨뿐일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유강후는 아직 온다연을 완전히 가지고 놀지 못했다.한참을 망설인 끝에 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나쁜 소식을 들으면 나는 이곳에서 뛰어내릴 거예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까. 정말로... 너무 지쳤어요.”그녀의 눈에 가득한 피로감은 거짓이 아니었다.유강후는 가슴 한가운데가 쥐어짜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그녀가 또다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그를 위협하니 말이다.며칠 동안 그녀를 찾기 위해 유강후는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했다.염지훈과 그녀가 한 방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그럼에도 온다연이 김원도의 사람들에게 노출될까 봐 그는 끊임없이 조바심을 냈다.몇 차례 그녀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유강후는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그런 상황 속에서 아무도 그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몰랐다.사실 유강후는 한 번도 이렇게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어린 시절 임씨 가문의 미치광이가 유강후를 방 안에 가둬두고 불을 지를 때도, 납치되어 피를 뽑히고 총구가 이마에 겨눠졌을 때도, 심지어 고층 건물에서 떠밀려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도 그는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았다.하지만 온다연이 어딘가에서 고통받거나 모욕당할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심지어 그녀가 살해되었다는 거짓 소식을 들었을 때는 순간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릴 뻔했다.이런 이유로 그는 염지훈을 죽이지 않았다.그의 평소 성격대로라면 염지훈은 이미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비록 온다연을 데리고 갔지만 염지훈은 그녀를 김원도의 광기에서 철저히 보호했다.그런 점에서 염지훈을 죽이는 대신 단지 한 번 심하게 때리는 것으로 끝낸 것이다.물론 유강후는 여전히 염지훈을
그 대답을 들은 유강후는 애써 참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그는 천천히 온다연의 목에 감긴 붕대를 쓰다듬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참 안됐군. 너는 평생 나와 함께할 수밖에 없어. 죽어도 내 무덤에 묻혀야 하고 묘비에는 내 이름이 새겨질 거야.”이내 유강후는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낮게 물었다.“온다연, 네가 내 곁을 떠나 있었던 날들이 며칠인지 기억이라도 나?”온다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답했다.“기억도 안 나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저씨 곁에 없는 동안 훨씬 자유로웠다는 거예요.”유강후는 그 말에 가슴이 너무 아파 견딜 수 없었지만 차분히 온다연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하지만 네가 그랬잖아. 절대 날 떠나지 않겠다고.”그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고 그 눈빛 속의 감정은 더없이 서늘해 그녀의 숨을 막히게 했다.온다연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런 말 다 잊어버리세요.”그 순간, 유강후는 갑자기 그녀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며 말했다.“온다연,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그는 한 단어 한 단어를 곱씹어가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만약 이 일이 10년 전이었다면 난 염지훈을 내 손으로 죽였을 거고 너도 직접 목을 졸라 끝냈을 거야.”“5년 전이었다면 네 존재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웠겠지. 그리고 널 평생 감옥 같은 곳에 가둬뒀을 거야.”“하지만 지금은 내가 좀 나이를 먹었으니 참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 너 때문에 물러나 주는 거야. 이번 한 번만. 단 한 번뿐이야.”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경고했다.“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널 새장 속에 가둬둘 거야. 내 말 하나하나 다 진짜니까 의심하지 마.”그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온다연은 그의 말에서 뼛속까지 서늘해지는 차가움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유강후의 손을 피해버렸다.그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
그러자 이내 수화기 너머에서 염지호의 잔뜩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뭐라고?”유강후는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당장 이난과 연락하고 직접 와서 확인하세요.”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전화를 끊고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전화했어. 그러니까 이제 칼 내려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칼을 내려놓았다.칼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유강후 또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재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상처를 확인했다.칼날은 매우 날카로웠고 그로 인해 생긴 상처는 생각보다 많이 깊었다. 만약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다.유강후는 그녀를 재빨리 안아 들고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차에 오르자마자 유강후는 경호원이 건넨 붕대를 건네받더니 온다연의 상처를 간단히 응급으로 처치를 해줬다. 그리고는 곧바로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상처는 꽤 깊어서 열 몇 바늘을 꿰매고 지혈제를 맞은 후에야 겨우 피가 멈췄다.그제야 유강후는 안도하며 온다연의 손에 시선을 돌렸고 그제야 아까 자신에게 밟힌 손가락 중 하나가 부어오른 것을 발견했다.그것은 바로 예전에 문에 끼어 부러졌던 그녀의 새끼손가락이었다.온다연의 손가락을 본 유강후의 심장이 다시 철렁 내려앉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낮게 물었다.“아프지? 왜 안 말했어?”온다연은 그런 유강후를 조롱하듯 대답했다.“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말하면 아저씨가 절 걱정이라도 해줄 것 같았어요?”“게다가 이 손가락도 아저씨가 부러뜨린 거잖아요. 한 번 더 부러진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겠어요?”유강후는 그녀의 눈에 깃든 증오의 감정을 보고 마음이 저려오는 듯했고 마치 누군가 그의 가슴을 쥐어뜯는 기분이 들었다.이내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온다연, 말 그런 식으로 하지 마.”하지만 온다연은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연기는 그만하죠. 구역질 나니까.”유강후는 그녀가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고 더 이상 대응하지 않고 곧바로 의사를 불러 검사를 요청했다.결국 예
온다연은 옆에서 모든 장면을 보고 있었고 겁에 잔뜩 질려 얼어붙은 채로 유강후의 팔을 붙잡으며 외쳤다.“그만해요! 제발 그만두세요!”하지만 그녀는 곧 경호원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염지훈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유강후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혹시 당신이 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사람의 생사까지 결정할 수 있는 줄 아시나 본데 그건 틀렸습니다. 유강후 씨가 이럴수록 온다연은 당신을 더 증오할 겁니다. 다연이를 보세요. 당신을 쳐다보는 것조차 싫어하지 않나요?”“유강후 씨가 아무리 다연이를 억지로 데려가도 쟤는 어떻게든 당신을 떠날 방법만 찾을 겁니다!”“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사람의 진심 어린 마음을 얻을 자격이 없거든요.”그 말에 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살기를 띠었고 그는 발을 들어 다시 염지훈을 거세게 찼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무자비했다.염지훈은 거친 기침을 하며 피를 미친 듯이 뱉어냈고 온다연은 깜짝 놀라 경호원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철저히 제압당해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 순간, 유강후는 온다연의 눈에 핏빛으로 물든 악마처럼 보였다. 그의 통제 불가능한 모습은 마치 염지훈을 죽일 작정인 것 같았다.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순간, 온다연의 시야에 방금 테이블 위에 놓였던 과도가 들어왔다.그러자 온다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집어 자신의 목에 갖다 댔고 경호원들은 깜짝 놀라 달려들며 외쳤다.“사모님, 안 됩니다!”“사모님, 칼 내려놓으세요!”온다연은 한 발짝 물러섰고 손에 힘을 주어 칼끝을 목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다가오지 마세요!”유강후는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온다연을 보고는 충격에 몸이 굳었다.하지만 온다연의 목에는 이미 날카로운 칼날이 깊이 박혀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온다연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본 유강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칼 내려놔. 온다연.”그러나 온다연은 벽 쪽으로 물러서며 단호하게 말했다.“다가오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