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이 들어오는 것을 본 강현미는 주스를 따라주라고 비서에게 시켰다.“수고했어. 그 배신자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온다연은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한 달 동안 편히 지내게 둔 게 아깝네요.”“역시 너의 아이디어가 좋았어. 한 달간 가만둬서 미래그룹 주가가 바닥을 친 후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권리주를 모두 회수한 덕분에 오늘 깨끗이 정리할 수 있었어.”“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낸 거예요. 저는 그저 실행만 했을 뿐이에요.”“너희가 4년 전에 혼인신고를 해서 다행이야. 이 혼인관계증명서가 없었다면 강후가 가진 것들이 사분오열됐을 거야.”온다연은 혼인신고 후에 찍은 기념사진을 손에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4년 전의 그녀는 아직 어려 보였고, 흰색 셔츠를 입은 모습이 마치 고등학생 같았다.이때까지도 유강후의 옆에서 그녀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이때 그들은 사이가 좋았고, 그녀는 자기가 원해서 유강후 곁에 있었으며 유강후와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어 했다.하지만 이 사진을 찍은 지 얼마 안 돼서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났다.게다가 그녀는 혼인관계증명서도 찢어버렸던 기억이 있다.그럼 이건 유강후가 후에 다시 발급받은 것인가?하지만 전혀 새것 같지 않았다. 모서리도 말려 있고, 사진도 낡아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수천 번 만진 것처럼.온다연은 사진과 혼인관계증명서를 어루만지며 유강후는 이것을 만질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했다. 지금 그녀의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다.그녀의 넋 나간 모습을 지켜보던 강현미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곽 박사님 말로는, 큰 문제 없대. 다만 너무 심하게 다쳐서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왔고, 그런 피를 받았으니 적응하고 신체 기능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나 봐.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 반드시 깨어날 거야.”“그동안 너무 지쳤어. 이번 기회에 쉬는 거라고 생각해.”온다연은 사진 속의 유강후를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 3년 동안 강후 씨는 어떻게 지냈어요?”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현미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고 나지막이 물었다.“지금도 입덧이 심해? 장 집사 말로는 요 며칠 더 심해졌다던데.”온다연은 혼인관계증명서와 사진을 가방에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오늘은 괜찮아요. 장 집사님이 매일 새로운 메뉴로 식사를 준비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죠.”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미래 그룹은 당분간 어머님께서 많이 신경 쓰셔야겠어요. 나온 지 오래돼서 병원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병원에 도착하니 염지훈이 와 있었다.그 역시 방금 퇴원했지만 유강후가 입은 부상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한 달 만에 만난 염지훈은 회복이 잘 된 듯했다. 그는 온다연을 보자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온다연은 코트 속에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부드러운 재질 때문에 배 부분이 약간 도드라져 보였다. 염지훈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벌써 배가 나오기 시작했어? 몇 개월 됐어?”온다연이 대답했다.“3개월이 거의 됐어요. 쌍둥이라 보통 사람들보다 배가 더 빨리 커져요.”염지훈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었다.“미래 그룹은 이제 정상화된 것 같더구나. 원래 두 달 더 머물며 도와주려 했는데, 이제 필요 없을 것 같다. 내일 동남아시아로 돌아가려고.”온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몇 시에 출발해요? 배웅하러 갈게요.”그녀는 말하면서 유강후의 침대 높이를 조절하려고 허리를 굽혔다. 염지훈이 얼른 그녀를 도와주며 말했다.“이런 일은 비서에게 시켜.”“강후 씨는 낯선 사람이 접근하는 걸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 물건을 만지는 것도 싫어해요. 제가 하는 게 나아요.”그녀는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셔 유강후의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머리가 좀 기네요. 이따가 미용사를 불러 다듬어야겠어요. 안 그러면 깨어나서 머리 스타일이 망가졌다고 화낼 거예요.”그러고는 또 유강후의 손을 잡고 꼼꼼히 닦아주었다.그러던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주변에 사람들
온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염지훈이 문득 물었다.“너는 언제 H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야?”온다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강후 씨가 깨어나면 그 사람과 상의한 후에 결정할 거예요.”염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한 번 다녀와야 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그때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과거의 일은...”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후 염지훈이 나지막이 말했다.“네가 유씨 가문에 복수하든 용서하든 나는 항상 네 편이야.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온다연이 말했다.“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강후 씨가 빨리 깨어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염지훈은 혼수 상태로 누워 있는 유강후를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유강후와의 경쟁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것 같았다.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기 누워 있는 지금도 온다연의 마음속에는 그밖에 없었다.염지훈이 나지막이 물었다.“다연아, 유강후가 정말 그렇게 좋아?”온다연은 고개를 숙인 채 나지막이 말했다.“지훈 씨,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요?”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는 염지훈은 잠자코 있었다.들을 용기가 없었지만 듣고 싶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다시 폈다.그동안 살이 빠져서인지 이목구비가 더 뚜렷하고 준수해 보였지만 원래 남성미 넘치던 얼굴에 약간의 우울함이 감돌고 있었다.온다연은 죄책감에 잠깐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어린 소녀가 열 살 때 이모를 따라 명문가에 들어갔어요. 들어간 첫날, 소녀는 호화로운 홀에 서서 열등감에 고개도 들지 못했죠.”“그때 열여덟 살의 소년이 소녀를 도와줬어요. 감사한 마음이 든 소녀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소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죠. 하지만 소녀는 신분이 너무 존귀하고 잘생긴 소년을 어두운 구석에서 몰래 훔쳐볼 수밖에 없었어요. 어느새 소녀의 눈은 그
염지훈이 대답했다.“그건 예진 씨가 나를 돌봐준 대가야. 우리 둘 사이에 다른 일도 있었어. 보상이라고 생각해. 돈 말고는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권씨 집안에서 힘들게 지내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야.”“예진 씨가 권씨 가문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아요.”“알아. 하지만 그건 남의 집안일이라 참견하기 좀 그래. 돈이 필요하면 줄 수 있지만 다른 일은 나도 방법이 없어.”이쯤 되자 온다연도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두 사람이 한참 다른 얘기를 나누다가 염지훈이 떠나갔다.이때 날이 저물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유강후의 몸을 금빛으로 물들였다.그는 마치 잠든 것처럼 조용히 누워 있었다.온다연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또렷한 얼굴선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내가 말한 적이 있나요? 이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얼굴이라고.”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고 말을 이었다.“하지만 당신은 눈을 뜨고 있을 때가 더 보기 좋아요. 지금처럼 약해 보이는 모습은 내 취향이 아니에요.”“빨리 눈을 떠요.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 깨어나면 아쉬움이 남을 거예요.”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당겨 자기 배에 올려놓았다.“만져봐요. 벌써 배가 나왔어요. 이제 예쁜 원피스도 입을 수 없어요. 엄마가 되는 건 정말 힘든 일인가 봐요.”“나 혼자 버티기 힘들어요. 계속 이러고 있으면 정말 화낼 거예요.”...저도 모르게 말을 많이 하고 지친 그녀는 그의 곁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유강후의 손은 온다연의 허리에 올려져 있었다. 그 모습은 그녀를 품에 안고 잤던 평범한 어느 날 밤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부드럽고 애틋한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3개월 후, 미래그룹 본사 대표 사무실.요 며칠 강현미가 유럽에 출장 가서 사무실에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였다.게다가 중요한 국제회의도 예정돼 있어서 온다연은 하루 종일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다.이때 북아메리카는 이미 겨울이었다.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저
유강후는 그녀를 꼭 껴안고 머리카락에 키스를 퍼부었다.“미안해. 내가 너무 오래 잤어.”온다연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그동안의 모든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서러움, 슬픔, 그리고 남자에 대한 약간의 원망까지 모두 터져 나왔다.그녀는 돌아서서 그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그는 그녀가 손을 휘두르는 대로 내버려뒀고, 그녀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미안해. 미안해...”그는 울고 있는 온다연을 끌어안았다.“왜 이렇게 오래 잤어요? 왜? 저 혼자 너무 힘들고 무서웠어요...”“나쁜 놈, 영원히 나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또 약속을 어겼어요...”“그리고 망할 놈의 회사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았어요. 저는 회사 관리에 관심도 없는데, 매일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와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그녀는 너무 속상한 듯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유강후는 그녀를 안고 등을 토닥이며 푸념을 들어주었다.그녀는 한참 울다가 지쳤는지 머리를 그의 가슴에 기대며 울먹였다.“벌써 임신 5개월 차가 되어 태동을 느낄 수 있어요. 이제야 깨어난 건 너무 무책임해요. 한번 만져봐요.”유강후는 볼록하게 나온 그녀의 배에 손을 올려놓았지만 아쉽게도 태동을 느끼지 못했다.온다연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너무 꽉 안았어요. 좀 놔봐요.”유강후는 그녀를 안아서 의자에 앉혔다.그러고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그녀의 배에 대고 조용히 그 속의 작은 생명을 느껴보았다.그 동작은 한없이 부드럽고 경건해 마치 가장 확고한 신앙을 확인하는 듯했다.5개월이 넘었다. 그는 너무 오래 잤고, 깨어나니 그녀의 배가 이렇게 불러 있다.정말 아쉽다. 매일 그녀의 곁에 있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많은 날을 놓치고 말았다.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은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그는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며 그 속의 작은 생명을 느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녀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피부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그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곳에서 더 큰 혹이 불쑥 올라왔고, 톡톡 튕기기까지 했다.유강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새로 나타난 혹을 바라보며 말했다.“둘이 같이 움직이는 거야?”온다연이 대답했다.“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걸 보면 둘이 맞는 것 같아요.”“보통 밤에 많이 움직이고, 낮에 이렇게 움직이는 건 처음이에요.”유강후는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하며 튀어나온 부분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그 결과, 그의 입술이 닿자마자 톡 튕겼다.온다연이 웃으며 말했다.“여기는 힘이 센 걸 보니 발인 것 같아요. 아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건 손이고요. 그래서 혹이 작았던 거죠.”유강후는 눈을 떼지 못하며, 그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계속 쫓아다녔다.유강후는 얼굴을 그녀의 배에 대고 중얼거렸다.“다연아, 너무 기다려진다. 애들을 빨리 보고 싶어.”온다연도 배를 살살 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도 보고 싶어요. 애들이 누구를 닮았을지 궁금하네요.”“임 박사님이 아들딸 쌍둥이라고 하셨어요...”“하나는 딸이라고?”유강후는 깜짝 놀라며 기쁨을 금치 못했다.“정말 하나는 딸이야?”온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해요. 임 박사님이 저를 속일 리 없잖아요.”유강후는 흥분한 나머지 그녀를 안고 몇 바퀴 돌더니 급히 내려놓았다.그는 책상을 붙잡고 숨을 고르며 말했다.“깨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적응이 안 되네...”온다연이 얼른 그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언제 깨어났어요? 왜 아무도 저한테 알리지 않은 거죠?”“오늘 아침 일찍 깨어났어. 아마 네가 병원을 떠난 직후일 거야. 내가 알리지 말라고 했어. 너한테 깜짝선물을 주고 싶어서.”“막 깨어났을 때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는데, 하루 종일 재활과 간단한 훈련을 하고 나니 괜찮아졌어. 완전히 회복되려면 며칠 더 걸릴 거야.”온다연이 뒤에서 껴안고 얼굴을 그의 등에 비비며 말했다.“병원에 있었어야죠. 전화만 하면 제가 바로 당신 곁으로 갔을 텐데.”숨을 돌린 유강후가
두 비서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자 온다연이 부드럽게 말했다.“강후 씨가 예전에 너무 엄격하게 관리해서 직원들이 회사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던데요. 그래서 내가 조금 자유롭게 지내도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요.”유강후는 그녀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알겠어. 우리 와이프 말을 들어야지.”온다연은 두 비서를 돌아보며 말했다.“너무 구속받지 말고 자유롭게 지내라고 했지, 그렇다고 상사 말을 엿들어도 된다고 한 적은 없어요. 오늘 밤 안에 최근 며칠 치 재무 보고서를 전부 정리해요.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전까진 퇴근하지 못해요!”두 사람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네! 반드시 완벽하게 정리하겠습니다!”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서고 한참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세상에, 대표님이 사적으로 저렇게 다정할 줄이야. 진 대표님 앞에서 거의 꼼짝 못 하던데, 혹시 머리를 다치신 거 아냐?”“그러니까! 염라대왕이라고 불리던 대표님이 실은 아내 바보였다니. 진짜 진 대표님 말은 다 들으실 것 같았어!”“근데 솔직히 나라도 저렇게 할 것 같아. 생각해 봐. 아내가 저렇게 아름다운 데다가 능력까지 출중한데, 그리고 몇 달 사이 미래 그룹을 완벽하게 관리하면서 배신자까지 다 쳐냈잖아. 너무 대단해. 인정할 수밖에 없어!”“맞아. 나도 처음엔 그냥 철없는 재벌가 아가씨인 줄 알았어. 근데 막상 일하는 거 보니까 유 대표님 판박이더라. 진짜 다행이야. 그때 라이벌 회사 제안을 안 받아서. 그랬으면 지금쯤 감옥에서 밥 먹고 있었겠지!”...그런데 이 모든 말이 유강후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가고 말았다.그는 온다연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내가 없는 동안 다연이가 포스 넘치는 여사장이 됐네?”온다연은 그의 목을 감싸며 투덜거렸다.“무슨 여사장이에요. 내가 경영하는 거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면서! 다 억지로 한 거예요! 강후 씨가 안 깨어나고 계속 자고만 있어서!”유강후는 그녀의 눈 밑에 드리운 다
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뇨, 난 강후 씨가 예전에 유하령한테 줬던 것만 원해요. 그리고 다음 내 생일엔 거실 벽을 가득 채울 만큼의 선물을 줘야 해요!”그녀는 손으로 크기를 가늠하며 말했다.“예전 유씨 가문 저택의 거실 벽만큼 커야 해요.”그러자 유강후는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웃었다.“선물이 그렇게 갖고 싶었어?”온다연은 눈가가 살짝 붉어졌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후 씨는 몰랐겠지만 내 생일은 유하령 생일 바로 다음 날이에요. 유하령 생일 때마다 강후 씨는 엄청난 선물을 보냈고 유하령은 그걸 자랑하느라 SNS에 사진을 올렸었어요. 그리고 내 앞에서 뽐내면서 날 비웃었죠. 난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는 불쌍한 아이라고 하면서요. 한 마디 축하도 받을 수 없는.”유강후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나도 네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어. 매년 선물도 준비했었고. 그런데 그걸 네 이모한테 전하라고 했는데 그 여자가 네게 주지 않고 가로챈 거야. 그리고 그때 난 너에게 너무 값비싼 선물을 줄 수 없었어.”“넌 너무 어렸고 괜한 소문이 돌면 네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그래서 눈에 띄지 않지만 실용적인 선물만 골랐어. 정말 신중하게 고른 선물들인데 네 이모가 그걸 한 번도 너에게 전하지 않았을 줄은 몰랐어.”온다연은 유강후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말이 진실인지 가늠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강후는 진지하게 말했다.“내 말 못 믿겠어?”그러자 온다연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사실 완전히 믿진 못하겠어요. 강후 씨처럼 바쁜 사람이 내 생일까지 기억했을까 싶어서.”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하지만 유하령의 말이 완전히 맞진 않아요. 그래도 내 생일을 축하해 준 사람이 있었거든요. 주한이가 매년 내 생일 선물을 챙겨줬었어요. 그러니 나는 축하받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었어요.”“또 주한이야?”유강후는 질투했다.“나도 선물을 준비했었다고! 네가 못 받았을 뿐이야! 그리고 앞으로 내 앞에서 주한 얘기 절대 하지 마. 우리 둘 얘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