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들이 쏜 바주카포 두 발이 터지는 것을 지켜보던 임정남은 다급하게 물었다.“이강현이 그놈 죽었어!”“아니요, 방금 이강현의 속도가 너무 빨랐어요, 슈퍼맨처럼 그냥 숲더미를 넘어 나무더미 뒤로 숨었어요.”부하가 허둥지둥 말했다.토끼보다 더 빠른 건 봤지만 이강현은 토끼보다 훨씬 더 빨랐다. 아마 치타보다 속도가 더 빨랐을 것이다.임정남은 눈살을 찌푸리며 울부짖었다.“그럼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계속 쏴! 앞으로 가라고! 너희들 뭐하는 거야, 얼른 가서 죽이지 않고!”부하들은 모두 약간 망설였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임정남을 보면서도 그들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방금 특근팀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 모두 똑똑히 보았다.기본적으로 특근팀은 이강현 한 사람, 두 자루의 총에 눌려 고개를 들지 못했고, 반격할 힘이 전혀 없었다.모두들 칼부림에 피를 핥는 사람이라 특근팀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정말 앞으로 공격에 나서면 더 빨리 숨질 수밖에 없었다.“우리 안 가는 게 아니라 이강현 이놈은 정말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특근팀 정예도 상대가 안 되는데 우리가 나가도 헛수고입니다.”“그렇습니다, 저도 이강현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철수하고 이강현은 그 고수들한테 넘기세요, 죽더라도 개죽음은 당할 수는 없잖습니까.”임정남은 철수하려는 부하들을 보며 다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임정남이 분노를 터뜨리려 할 때 일련의 리드미컬한 총성이 울리고, 뒤이어 비명이 터져 나왔다.“가주를 보호하고 빨리 철수해, 이강현이 왔어!”“우리가 막을 게, 너희들 얼른 가주를 데리고 도망가!”최전방의 몇몇 부하들은 숨을 곳을 찾아 이강현을 막으려 하였다.임정남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하들을 지휘하려고 할 때 이미 한 무리의 부하들이 임정남을 일으켜 세우고 멀리 달아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날 내려놓지 못해?! 가법의 처벌이 두렵지도 않는게야?”임정남이 시큰둥하게 소리쳤다.“돌아가서
“귀이, 이게 무슨 빌어먹을 계획이야, 이강현을 이길 수 있을지 말 좀 해봐, 우리 데리고 죽자는 거야 뭐야.”“용한광, 너 언제 이렇게 겁이 많아졌어, 우리 이 많은 사람이 여기에 있는데 이강현 한 놈을 못 이겨?”귀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허허, 그 말 너는 믿어?”용한영과 말다툼을 할 여력이 없는 귀이는 수화기를 들고 한철두 등에게 연락하여 사방으로 이강현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한철두는 고수 몇 명을 데리고 이강현에게 접근해 이강현이 추적하는 길을 막았다.“야, 총 버려, 그럼 죽이지는 않을게.”한철두는 두 손을 허리에 짚으며 말했다.이강현은 웃으며 총을 땅바닥에 던졌다.“총 버렸어, 정말 안 죽일 거야?”“하하하, 이놈 머리가 안 좋은 가봐, 진짜 총을 버려? 이런 바보는 처음이야.”“우리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나 보지, 그래서 총은 버린 거고, 잘 됐지 뭐, 힘 빠지는 일도 없을 테니까.”“총을 버려 죽을 죄는 면했어도 쉽게 넘어갈 수는 없지, 너 무릎 꿇어, 우리한테 좀 맞아야겠어.”한철두 등은 이 묵묵히 총을 버린 행위가 웃긴다고 비아냥거렸다. 이강현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를 때리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너희가 능력이 부족하면 내가 너희를 때릴지도 몰라.”“닥쳐! 이 자식 입은 살아있네, 다 같이 덤벼, 이 자식에게 쓴 맛 좀 보여줘!”한철두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몇몇 고수들은 한철두의 부름에 응하고 각자 칼을 휘두르며 이강현에게 향했다.구절편, 쌍절곤, 비수, 사냥용 칼 등 무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빠르거나 느린 휙 소리를 내며 이강현을 때렸다.이강현은 냉소하며 오른손을 뻗어 제일 먼저 뽑아든 구절편을 잡았다. 이어 팔에 힘을 주고 구절편을 움켜쥔 고수를 잡아당겨 날렸다.“아! 놔!”구절편을 움켜쥔 고수는 당황하며 소리 외쳤다. 이강현의 힘에 휘둘려 하늘로 올라간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손은 네가 놓으라고 했다.”이강현은 웃으며 구절편을 움켜쥐고 한
한철두가 걸음을 멈추는 순간 콩알만한 땀방울이 이마에 맺혔다.이강현에게 펀치를 맞은 오른손은 부자연스럽게 축 늘어져 있었고 팔은 더욱 떨렸다. 떨리는 것은 이강현의 주먹에 뼈가 부서진 데다 이강현의 주먹의 엄청난 힘으로 한철두의 팔 근육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강해, 너무 강해, 비인간적일 정도로 강해.’이강현에 대한 한철두의 실력 평가이다.한철두는 조금의 이익이라도 탐내려고 귀이에게 홀린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강한 사람에게 미움을 샀으니 한철두는 더없이 후회하였다.나머지 몇 명의 고수들은 모두 한철두 뒤에 모였다. 이 중에서도 한철두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그들도 모두 한철두의 명을 따랐다.하지만 한철두 팔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고수들은 한철두가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다.“형, 괜찮아요?”“아직 살아있어.”한철두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몇 명의 고수들은 한동안 묵묵히 말이 없었다. 모두 이 상황에 놀라움을 그치지 못했다.이강현은 웃으며 한철두를 향해 걸어갔다.“이제야 감 좀 잡았지?”“네, 할아버지,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음번엔 절대 이런 일 없을 겁니다.”한철두는 주저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고달픈 출신인 한철두는 어려서부터 어렵게 지금까지 걸어와 무릎을 꿇는 일에는 많이 익숙하다. 하지만 무릎을 꿇을 때마다 한철두는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한철두에게는 목숨이 전부이다. 체면이고 뭐고 목숨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후퇴하여 도망치려던 고수 몇 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한철두를 바라보았다. 한철두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수가 무릎을 꿇다니, 이건 그야말로 더없이 창피한 순간이다.“형 뭐하는 거예요, 무릎을 꿇다니 미친 거 아니에요?”“체면이라는 게 있잖아요, 아예 버린 거예요?!”“정말 부끄럽네요, 형 같은 사람이랑 같은 팀에 있다는게, 서서 죽으면 죽었지 결코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을 거예요.”몇몇 고
“퉤!”고수 한 명이 침을 호되게 뱉더니 곧 돌아서려 하였다. 이강현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오른발로 땅바닥의 돌멩이를 걷어찼다. 돌멩이가 강하게 튀어나와 그 고수의 무릎에 맞았다.풍덩!그 고수는 돌멩이에 무릎이 깨지고 한쪽 무릎을 꿇고 고통에 눈에서 눈물까지 났다.“내 다리! 이강현 이 개자식, 나 가려고 하는데 너 이러는…… 아!”고수가 욕설을 퍼붓고 있을 때 한철두는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그 고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심하게 뺨을 두 대 후려쳤다.“네가 감히 내 할아버지를 욕해?! 맞아도 싸, 너희들 모두 얌전히 서있어! 할아버지가 가란 말이 없으면 한 놈도 떠나지 못해, 누가 불복하면 나한테 먼저 물어봐!”한철두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이강현에게 충성을 표했다.뿔뿔이 도망치려던 고수 몇 명이 의아해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이강현이 하나면 공포에 질린데다 배신한 한철두까지 겹쳐 살길이 뚝 끊겼다.“한철두, 너 너무한 것 아니냐, 다들 구면이라 살길은 남겨줘야지.”“우리가 뭘 어쨌다고 막는 거야! 네가 아양을 떨어도 우리에게 화풀이할 필요는 없잖아!”몇몇 고수들은 한철두를 비난하며, 한철두가 한 짓이 너무 지나치다고 말했다.한철두는 그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굽혀 웃으며 이강현을 바라보았다.“할아버지, 어떻게 할지 말해주시면 분부대로 처리하겠습니다.”몇몇 고수들의 마음이 싸늘해졌다. 한철두가 그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수법은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몇몇 고수들을 힐끗 쳐다보며 웃으면서 말했다.“나도 잔혹한 사람 아니야, 너희들이 순순히 말을 듣기만 하면 당연히 살길을 남겨주지.”고수들의 시선은 절로 무릎에 피구멍이 난 고수를 향했다. 그리고 속으로 이게 잔혹하지 않는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냥 도망가고 싶을 뿐인데 무릎에 구멍이 나서 후반생은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할아버지가 한 말 못 들었어? 얌전히 말 잘 들으면 살길을 주겠다고 하잖아, 말해, 말 잘 들
달아난 고수의 뒷머리에서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이강현이 돌맹이로 그자의 목숨을 앗아갔다.한철두는 가슴이 덜덜 떨리며 방금 옳은 선택을 한 것 같아 은근히 다행스럽게 생각했다.눈앞의 이강현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철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이강현은 자신이 여태까지 본 모든 고수들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고수인 것 같았다.원래 도망가려고 했던 나머지 몇 명의 고수들도 모두 아까 그 고수의 죽음에 겁을 먹었다.근접전이 센 건 그렇다 치고 돌멩이로 던지는 원거리 공격에도 능하면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근접전과 원격을 겸비한 이강현에게 고수들은 마음을 접고 이강현의 분부를 얌전히 따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지휘차 안에서 귀이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5분을 기다린 후 용한영이 먼저 초조해하였다.“귀이, 할 거면 네가 계속해, 너희 쪽 사람들 아직 오지 않았어, 정말 내가 바보인 거 같아? 난 이대로는 못 있어.”귀이는 잠자코 용한영을 바라보며 냉소하며 말했다.“겁쟁이 주제에, 가려면 가, 그리고 앞으로 나 귀이를 안다는 소리 입밖에도 꺼내지 마라, 너처럼 배짱이 없는 사람 난 몰라.”“흥! 배짱과는 상관이 없어. 이용당하기 싫을 뿐이야.”용한영은 그렇게 말하고 차문을 밀고 내렸다. 그리고 훌쩍 뛰어올라 밀림 속으로 사라졌다.밀림 속으로 들어간 용한영은 그대로 도망치지 않고 이미 관찰해 놓은 산 중턱의 큰 바위를 향해 돌진했다. 잠시 후 용한영은 큰 바위 뒤로 숨었다.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핸드폰에 장착한 용한영은 핸드폰 녹화모드를 켜고 지휘차 근처를 살폈다.용한광은 귀이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이강현이 얼마나 대단한지 더 알고 싶었다.이강현이 정말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존재이면 용한광은 앞으로 이강현을 멀리 피하려고 하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몇 개의 익숙한 모습이 핸드폰 화면에 나타났다.용한광은 그 몇 명의 고수들이 지휘차에 접근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상황이 좀 이상한 것 같았다.몇 명의
사냥용 칼은 귀이의 몸에 큰 구멍을 냈고, 무섭게 보이지만 치명적이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그 뒤를 따라 주변에 매복해 있던 고수 몇 명이 달려나와 귀이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방금 그들이 이강현을 포위 공격하는 장면이 다시 나타났지만 귀이는 이강현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고수들의 갑작스런 맹공을 당해낼 수 없었다.“X발, 다 미친 거야! 왜 나를 공격해, 너희들도 다 배신했어?! 내가 준 돈이 모자란 거야?”귀이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몸에도 상처가 몇 개 더 생겼다.“이건 돈 문제가 아니야, 네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린 거 탓해!”“널 죽이지 않으면 죽는 건 우리야, 그러니 우리를 원망하지 마.”몇 명의 고수들은 더 이상 봐주지 않고 전력을 다했다. 귀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늘 여기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죽기 전 몇이라도 더 데려가려는 마음에 목숨을 걸고 몇 명의 고수에게 반격했다.궁지에 몰린 귀이가 한 수 위였다. 곧 목숨을 바치는 수법으로 두 명의 고수를 죽였다. 동시에 몸에도 상처가 더 생겼고, 입에서도 피가 광적으로 뿜어져 나왔다.나머지 네 명의 고수들도 약간의 상처를 입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을 것 같은 귀이에 비하면 그들의 부상은 상처라고 말할 수 없었다.“죽여!”한 고수가 이를 악물고 노발대발하며 먼저 귀이에게 달려들었다.귀이이는 처참하게 웃으며 달려드는 고수에게 비틀거리며 달려들었고, 상대의 장도가 가슴에 꽂히자 귀이이는 입을 벌려 상대의 목을 필사적으로 물어뜯었다.다른 세 명의 고수들은 함께 달려들어 날카로운 칼을 들고 귀신에게 일격을 가했다.훅훅훅.날카로운 칼날에 살갗과 근육을 찌르는 소리가 나더니 귀이의 콧구멍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입은 여전히 끈질기게 상대를 물어뜯으며 그대로 후두관을 뜯어냈다.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이강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돌아서서 더 이상 귀이를 보지 않았다.“너희들은 가도 돼.”살아남은 세 명의 고수는 숨을 헐떡이며 마음을 가다듬고 밖으로 달려갔다.한철두
“저 안갈 거예요, 할아버지 옆에 붙어 있을 건데, 아직 사람 부족하세요? 제가 문지기나 할까요?”한철머리는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기회를 꼭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과거에 한철두는 이런 방식으로 고수를 만나면 찌질함을 인정하고 옆에서 고수를 따라 배우곤 했다.이런 뻔뻔한 수법으로 한철머리는 동네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로 변신했다. 이제 한철두는 예전 기량을 다시 발휘해 계속 뻔뻔하게 이강현 옆에 붙어있으려고 하였다.이강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냉소하며 말했다.“나 문지기가 많아, 너 차례는 안 돼.”“저, 제가 다른 것도 할 수 있어요. 차도 지키고 개 훈련도 시킬 수 있어요.”한철두는 자세를 낮추어 말했다.“너 역시 뻔뻔한 놈이야, 여기 시체를 묻기 좋은 곳인 것 같은데 가지 싫으면 여기에 묻어줄까?”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헤헤헤, 아니에요, 할아버지를 도와 할 일도 남았는데,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앞으로 필요하면 꼭 불러주세요.”한철두는 이강현이 자기 수작에 넘어가지 않자 웃으며 돌아섰다. 계속 한성에 남아있을 건데 기회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강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철두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산속으로 발길을 돌렸다.……총소리가 그친 지 오래되었는데 이강현이 오지 않은 것을 보고 진효영은 급한 마음에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다.“사람은 언제 도착해,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화가 난 진효영이 신명훈에게 노호했다. 신명훈은 목을 움츠리고, 진효영의 분노에 놀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연락은 했습니다, 근데 일손을 모아 시내에서 이쪽으로 오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릴 것입니다.”총성과 바깥 시체에 놀란 고청아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담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밖을 내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밖에는 무슨 일이 있어? 혹시 이강현이…….”고청아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퉤퉤, 무슨 그런 말을 해! 좋은 말 할 줄 몰라?!”진효영은 주먹을 흔들며 말했다.“이강현 오빠 별일 없을 거야!”“맞
진효영이 낮은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무릎이 부러지고 두 손을 기대고 기어가던 모홍은 멈춰 서서 눈빛을 반짝이며 진효영이 걸어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무릎이 부러지는 바람에 오른쪽 다리가 완전히 망가진 셈이어서 일어서서 걷기도 힘들었다.기어다니며 탈출할 수밖에 없을 줄 알았던 모홍은 이제 풀숲을 통해 진효영을 바라보며 진효영을 납치해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예쁘게 생긴 걸 보니 이강현 여자인 게 틀림없어.’‘진효영만 잡으면 탈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몰라!’모홍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양손으로 몸을 힘차게 받쳐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왼쪽 다리를 들어 무릎을 반쯤 꿇었다. 걷기가 불편한 모홍에게 있어 이 순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일 것이라고 느꼈다.진효영은 손에 총을 쥐고 있어,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죽을 운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홍은 잘 알고 있었다.울창한 풀숲 속에서 모홍은 조용히 진횽영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진횽영이 나타나기 전, 모홍은 목덜미가 싸늘한 것을 느꼈다.깜짝 놀라며 모홍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강현은 모홍의 뒤에 쪼그리고 앉아 빙그레 웃으며 모홍을 바라보고 있었다.“너, 너 왜 내 뒤에 있어!”모홍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당황한 나머지 두 손으로 몸을 짚고 뒤로 물러서며 풀숲에 넘어졌다.진효영은 모홍이 갑자기 낸 인기척에 놀라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캬캬캬.총알을 다 쏜 돌격소총에서 빈탄 소리가 났지만 진효영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채 얼굴에 온통 놀란 기색이었다.“야, 그만 당겨, 총알이 다 떨어졌어.”이강현이 큰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몸에 총을 얼마나 맞았는지 알 수 없는 피로 물든 모홍을 보며 이강현은 고개를 저었다.“자업자득이야, 진작에 도망가질 그랬어.”이강현의 모습을 본 진효영은 놀란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손에 들고 있던 돌격소총을 버리고 성큼성큼 이강현에게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