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아직은 때가 아니야.생각을 마친 이강현이 웃으며 말했다.“그냥 너를 격려한 거지. 진짜 이유는 그 강상인한테 있는 거 아닐까?”강상인?그 이름을 들은 최순이 눈살을 찌푸리며 흥분해서 물었다.“우리 딸, 정말 그 사람이랑 관련있는 거니?”“아니, 멋대로 생각하지 마, 우리 아무 관계도 아니야!”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부릅뜬 그녀가 이강현을 잡아당겨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고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방금 그 말, 무슨 뜻이야? 당신도 나를 의심해?”화가 난 고운란의 얼굴이 붉어지고 눈가에 눈물이 약간 맺히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사람을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지금 자신을 이렇게 의심하고 있다니. 비꼬는 거야 뭐야?“당신은 남자도 아니야, 나 이제부터 당신 부인 아니야!”화를 내며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치는 그녀를 껴안고 이강현이 말했다.“당신이 오해한 거야. 내 말은, 지난번 그 일 말이야. 강상인은 당신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두려웠을 거야. 강성 그룹은 상장회사고 대기업인데 당신에게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예상컨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하러 올 거야.”고운란의 두 눈이 깜박거렸다.“정말?”“바보야, 내가 어떻게 당신을 의심할 수 있겠어. 사랑하기도 바쁜데.”고운란의 볼이 새빨개지는 동시에 갑자기 무언가 깨닫고 그를 세게 밀친 뒤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무슨 헛소리야, 무슨 사랑!”말을 마치자 곧 몸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며 입가에 웃음기가 떠오른 이강현은 휴대폰을 들어 강빈에게 연락했다.거실에 있던 최순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아이고, 여보, 우리 운란이가 정말 그 강성 그룹 도련님과 어떤 관계가 있다면 좋은 일 아니야?”최순의 머릿속에는 딸이 부자에게 시집가서 자신도 덩달아 덕을 볼 생각으로 가득하다. 고건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당신은 우리 집안이 온 도시에서 멸시와 조소를 당했으면 좋겠어?”“무슨 뜻이야? 내가 창피하고
멍해진 고운란이 방문을 쾅 닫은 채 혼자 방에서 울고 있다.이강현, 내가 어떻게 너를 믿을 수 있겠어?거실에서 이 모습을 모두 목격한 최순이 이강현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부엌 쪽으로 돌아섰다.22일, 카이사르 호텔에 대한 소문은 점점 더 심해졌다.매년 이맘때면 고 씨 집안은 증손녀의 생일을 미리 준비한다. 비록 고운란과 이강현이 늘 고흥윤을 비롯한 모두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존재지만, 고 씨 어르신의 증손녀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고 씨 집안이 유난히 조용하고 증손녀의 생일을 준비하는 기척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소문에 의하면, 집안 어르신이 이미 그 증손녀에 대한 애정을 잃었다고 한다. 바로 이강현 그 쓸모없는 자식이 수차례 어르신에게 대들었기 때문이겠지.게다가, 이번에는 카이사르 호텔의 소문도 피해갈 수 없다. 그 날 호텔을 빌린 부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신분조차 알려지지 않아 23일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커져가고 있다.과연 누구일까?고 씨 집안의 회사 내부, 친척과 회사 고위층 사람들이 하나같이 분개했다. 이강현과 고운란만 아니었으면 그들도 다른 사람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친척들이 요 며칠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숨어있고, 어르신조차도 집에 몸을 숨기고 있다.이전에는 집안 모두가 이맘때쯤 솔이의 생일을 대대적으로 준비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괘씸해! 고운란과 이강현만 아니었으면 우리 고 씨 집안이 이렇게 창피하지 않았을 텐데!”“이강현은 정말 남자의 수치야. 죽어 마땅하지!”“고운란도 그래, 그 여자 때문에 우리가 모두 다른 사람의 비난과 비웃음을 당하고 있잖아.”고 씨 가문의 몇 사람이 모여 분분한 의견을 나누며 한스러움을 토로했다.고흥윤은 오히려 담담하게 웃으며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왜 웃어? 설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집안 사람중 하나가 고흥윤에게 물었다.“너희들, 생각이 짧네. 이 일은 커질수록 좋아.”고흥윤은
“나, 나도 모르는데…….”김미나의 얼굴에도 충격이 가득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강현 그 개자식, 정말 카이사르 호텔에다가 이런 준비를 하다니! 아니야, 오늘 이곳은 분명히 누군가가 빌렸다고 했는데, 어떻게 준비를 했대?쾅!문득 김미나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설마… 이강현이 바로 이 호텔을 둘러싼 소문 속의 신비주의 부자? 말, 말도 안돼!엘리베이터가 계속 위로 향하자 군중들의 격양된 함성 속에서 거대하게 활짝 핀 장미와 함께 크리스탈이 보였다.순결하고, 행복한 그 곳.이 순간, 아래쪽 군중 속의 여자들은 그 아름다움에 잇달아 울컥했다.고운란은 지금 머리가 멍해져서 엘리베이터 입구에 서 있다.“미나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날 여기로 데려왔어? 설마 이강현이 그러라고 한 거야?”그녀도 멍청하지는 않기에, 순간 뭔가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하지만, 여기는 카이사르 호텔이야. 분명히 신비주의 부자가 빌렸다고 했는데.김미나는 그녀를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운란아, 미안해. 나도 몰라. 이강현이 데려오라고 했어. 그런데, 나도 이럴 줄은 몰랐어…….”김미나의 속도 말이 아니었다. 이강현은 대체 뭐하는 짓거리야? 만약 남이 준비한 생일잔치에 잘못 뛰어들어 뺏는 꼴이 된다면, 우리 어떡하지?그때 갑자기, 귀여운 솔이가 거대한 크리스탈과 장미를 가리키며 말했다.“아빠, 아빠야!”고운란과 김미나가 동시에 두 눈을 치켜뜨고 바라본 곳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부드러운 음악이 울리는 순간, 아름다운 선율이 하나하나 요정처럼 카이사르 호텔 주변을 감쌌다. 동시에 순식간에 수많은 인파가 조용해져서 그 음악 소리를 듣고 있다. 모두들 고개를 들어 크리스탈과 장미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비록 남녀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 보이지 않지만 그 행복을 이미 느끼고 있는 듯했다.이강현은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마치 검은 기사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붉은 장미가 깔린 바닥을 따라 고운란의 앞으로 걸어갔다.고
고운란의 절친!그녀가 뜻밖에도 여기에 있었다니. 그럼 엘리베이터 안의 그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가 고운란이란 말이야? 아니, 이건 절대 불가능해.잘못 본 게 틀림없다고, 고청아는 부정하고 있었다. 고운란은 분명히 불량배에게 시집을 갔고 온 도시 사람들의 비웃음 대상이 됐다. 절대 카이사르 호텔에 나타날 수 없겠지.크리스탈 궁전에서 감동한 고운란은 진지하게 이강현을 보며 물었다.“다 당신이 준비한 거야?”“응,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 덕을 본 거야. 원래 예약했던 그 신비주의 부자가 안 왔거든. 카이사르 호텔 사장한테 연락했더니 한 시간을 빌려준다고 했어.”솔이를 안은 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 이강현의 설명을 듣고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사람이…….“운란아 미안해. 4년 동안 많이 섭섭했지. 오늘부터 누구도 더 이상 너를 무시하지 않도록 할게. 나도 솔이를 모든 사람 앞에서 아빠라고 부르게 할 거야.”고운란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 맺혀 마치 그전의 모든 억울함이 눈물과 함께 씻겨 내려갈 것 같았다.“당신 그거 알아? 사람들이 다 나보고 멍청이랑 결혼했다고 했어. 세 살 밖에 안 된 솔이한테 아빠가 없다고 했다구.”“아니야, 다시는 안 그럴 거야.”이강현은 고운란을 품에 안고 부드럽게 말했다. 세 식구는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인다.김미나도 옆에서 몰래 눈물을 닦았다. 이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혈육의 정과 모성애에 대한 갈망이 차올랐으나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고운란을 축복했다. 이강현의 말을 빌리자면 비록 한 시간만 빌린 장소이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온 도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장면이 결국 막을 내리고 하늘을 채운 불꽃놀이와 함께 끝났다.이강현이 고운란과 솔이를 배웅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공교로운 장면이 펼쳐졌다.“어머, 이강현과 고운란이잖아.”고흥윤과 한 무리들이 다가왔다. 고청아도 물론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고운란을 주시하며 함께 오고 있다. 고운란, 아까와는 다르게 블랙 이브닝 드레스를 입
솔이는 화가 났다. 아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다니. 아빠는 방금 분명히 그 많은 꽃 속에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줬다. 소녀의 동글동글한 큰 눈은 보던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그러나 고흥윤은 즉시 피식 웃으며 비꼬았다.“꼬맹이가, 무슨 헛소리야? 너희 아버지가 너희를 데리고 그 크리스탈 궁전에 있었다고?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하니?”말하면서 고흥윤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목소리도 엄숙해졌다.“너희 아버지 같은 멍청이, 너희 엄마 같은 천한 것, 그리고 너 같은 게 감히 여기 나타나다니? 서울 전역에 너희 세 식구의 망신을 알리러 온 거야? 온 도시 사람 앞에서 우리 가문을 망신시킬거야?”겨우 세 살인 솔이가 어찌 고흥윤의 무지막지한 말을 견딜 수 있겠는가. 즉시 ‘우앙’하며 울음을 터뜨렸다.“고흥윤, 입 닥쳐! 우리 세 식구가 어떤지 당신이 상관할 필요 없어!”고운란은 가슴이 아파와 솔이를 안고 위로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우는 솔이.“나는 헛소리 한 적 없어, 엉엉…….”줄곧 안색이 좋지 않았던 고청아가 불쾌한 듯이 말했다.“울긴 왜 울어, 할아버지는 너를 좋아하지만 우리는 안좋아해! 너희 엄마는 천한 것이야, 너도 크면 그렇게 될 거고!”“하하, 청아 언니의 말이 맞아요. 그 엄마에 그 딸이죠.”“내가 말해두는데, 이강현 그 멍청한 놈 때문에 우리 고 씨 가문 체면이 말이 아니야!”“너네 둘도 정말 대단하다. 여기까지 와서 밥을 얻어먹다니. 내가 다 수치스럽네!”일시에 고 씨 가문 청년들이 잇달아 웃으며 비난의 말을 던졌다.이강현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고, 차가운 눈이 그들을 쓸며 말했다.“그만해! 솔이는 내 딸이고, 운란이는 내 아내야. 너희들이 이렇게 무례하게 모욕하는 걸 두고 보지 않을거야!”“와우! 무슨 소리야? 우리한테 무례하다고?!”고흥윤이 희롱하는 표정을 하며 손바닥으로 이강현의 뺨을 두드렸다.“네가 나한테 무례한거지.”이강현 얘가 미쳤나? 감히 나한테 이런
“고흥윤, 너 간도 크구나!”호되게 꾸짖는 목소리“젠장, 누구야!”화가 나서 고개를 든 고흥윤은 앞에 등장한 차갑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잔뜩 긴장했다.“김…김미나? 왜 여기 있어?!”당황과 동시에 의심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김미나는 서울 김씨네의 소중한 아가씨다. 김씨네 집은 서울에서 고 씨 집안보다 지위가 높아 고흥윤이 감히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데다가, 어릴 때 김미나에게 맞은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쳤다.겉으로는 안 그래 보이지만, 사실 머리에 든 것 없이 폭력만 좋아하는 미친 여자다!“내가 왜 여기 있는지 보고해야 되나?”김미나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흥윤을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보았다.이놈, 왜 이렇게 못난거야. 때리지도 욕하지도 않고 말대꾸도 못하고.“운란아, 널 괴롭힌 거야?”김미나가 손가락으로 고흥윤을 가리키며 물었다.“나… 나는 안 그랬어!”손가락에 놀란 고흥윤이 재빨리 설명했다.“됐어, 미나야, 우리 가자.”고운란이 말리자 김미나는 입에서 나오려는 말을 꾹 참고 다시 그를 노려보며 공중에 주먹을 휘두른 뒤 고운란과 이강현을 데리고 떠났다. 그들이 떠난 후에야 고흥윤은 분노하며 욕 몇 마디를 던졌다.“아 김미나, 사람 업신여기는 꼴 봐! 나도 어쨌든 고 씨 집안 장손인데, 김 씨 집안 진짜 오만방자하네!”옆에 있던 고씨 집안 사람들도 따라서 몇 마디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고청아는 김미나가 온 이후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김미나가 입고 있는 옷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그게 말이 돼? 내가 착각한 게 분명해.집에 돌아왔을 때, 최순은 거실에서 기다리다가 기다렸다는 듯 호통을 쳤다.“너, 내 딸을 어디로 데려갔어? 오늘이 무슨 날이지 알면서도 데리고 나가다니, 정말 우리 집안 망신을 제대로 시키려는 거야?”“장모님, 오해하셨어요. 저랑 운란이는…….”“너 입 닥쳐! 너희 둘 다 있으니 내가 지금 분명히 말할게.”최순이 기세등등하게 소파에 앉아 직접 주민등록등본과 이혼서류를 탁자에 꺼내며 말했다
고운란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떨려 이강현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순간, 마음 속이 약간 동요했다. 만약 그가 정말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어떨까? 근데… 그게 가능해?“강현아, 나를 달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이런 비현실적인 소리는 하지 마.”고운란의 눈에서 실망이 스치고, 이강현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겠어.”한밤중.땅에 누운 이강현은 누운 채 줄곧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옆의 침대에서 나는 숨소리를 들었다. 왠지 마음이 편하다.고운란은 이강현을 등진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머리 속에는 줄곧 영화를 틀듯이 오늘 저녁 카이사르 호텔의 그 장면이 재생되고 있다.3년만에, 다른 모습을 보여줬어.그런 생각이 들자 몸을 돌려 땅에서 자고 있는 이강현을 향해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올라와서 잘래?”“괜찮아, 됐어.”빙그레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언가를 깨닫고 후회하며 가슴을 쳤다. 고운란이 3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했는데, 멍청하게도 거절했다. 이어서, 그는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지? 다시 한 번 말해줄래?”고운란은 이미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이 멍청이! 내가 가까스로 용기를 냈는데 거절하다니! 괘씸해, 평생 땅바닥에서 자도 싸!“아무 말도 안했어, 자!”화가 나서 크게 몸을 돌렸지만 그래도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이강현은 어쩔 수 없이 기회를 놓친 괴로운 마음을 안고 잠들었다.이튿날, 고운란은 기쁘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회사에 왔다. 회사 안의 사람들이 모두 괴이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본다.“고 본부장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거예요?”“나도 몰라. 어제 카이사르 호텔이 그렇게 떠들썩했는데,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야?”“허허, 내가 보기에는 우리 앞에서 창피하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침착한 척 하는거야. 정말 불쌍해. 탓하려면 불량배에게 시
이 말을 듣고 고청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내 능력을 의심하는 거야?“빙빙 돌리지 말고 똑똑히 말해봐요. 우리 팀 실적이 나쁜 건 당신의 본부장 능력이 안 되기 때문 아닌가요? 본부장이면 부하들한테 이렇게 책임을 전가해도 되는건가요?”그녀는 줄곧 자신이 고운란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왔다.“그럼 왜 나는 본부장이고 너는 팀장밖에 못돼?”고운란은 담담하게 말하며 눈을 살짝 들어 화가 난 고청아를 보았다.“당신…….”고청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분노하며 소리쳤다.“본부장이라고 해서 뭐든지 다 된다고 생각하지 마요.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서 꺼질 테니까! 이 천한 것. 나는 당신 신세가 망하고 명예가 깨지는 그날을 꼭 보고 말거야!”탁!말을 마친 고청아가 책상에 서류를 내려놓고 돌아갔다.이른 아침부터 출근한 이강현에게 이목이 집중됐다.그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변 직원들이 던지는 이상한 눈빛을 느꼈고, 모두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마음이 좀 불편하긴 했지만 담담하게 행동하기로 결심한 그는 묵묵히 오늘의 당직명세서를 들고 옷을 갈아입은 후, 종업원대기실에 앉아 손님이 번호를 부르길 기다렸다.“아이고, 저 사람이 출근을 하다니, 창피한 게 두렵지도 않나봐.”“허허, 지가 창피할 게 뭐가 있어, 망신당한 부인이 더 비참하지. 어젯 밤 카이사르 호텔 일로 충격 많이 받았을 걸?”“쓰레기가 따로 없네. 저런 사람이 우리 가게에 있는 게 부끄럽다. 나였으면 진작 사직하고 그만뒀어.”흰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 몇 명과 분홍색 작업복을 입은 여자들이 이강현을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비웃고 있다. 이강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일어나 장소를 옮기려 했다.“이강현, 56번, 빨리!”갑자기 앞에서 번호가 불러져 서둘러 자신의 도구 상자를 들고 허리를 굽히며 대답한다.“네, 왔어요.”이 스파 마사지 가게는 실적에 따라 월급이 달라진다. 문에 들어서자, 이강현은 먼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엎드린 채 등을 드러낸 젊은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