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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계약을 따냈다? 너,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이강현의 말을 들은 고흥윤이 즉시 비웃었다.

“계약을 따냈어? 그럴 리가! 고운란이 예쁘장하게 생긴 거 말고 무슨 재능이 있겠어, 만약 강성 그룹의 계약을 따냈다면, 내가 차에 치여 죽을게! 하하하!”

“어이가 없군! 저 모자란 게 아내의 체면을 세워주지는 못할망정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감히 큰소리치다니!”

“내 생각에는 이강현을 빨리 쫓아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고운란도 어서 사직해!”

가문의 운영에 관여하는 친척, 회사 고위층들도 폭소를 터뜨리며 거리낌 없이 둘을 조롱하고 있다.

고운란도 매우 화가 나서 이강현의 뺨을 때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호통쳤다.

“너, 도대체 뭐하는 거야? 누가 너더러 함부로 말하라고 했어!”

정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 지금 이런 말을 하면 나를 불구덩이에 밀어넣는 거 아니야? 설마, 이미 고흥윤과 한통속이 된 건 아닐까…….

화가 나고 억울한 그녀의 손에 맞은 이강현이 멍해졌다.

그때, 고흥윤이 조롱하며 말했다.

“고운란, 네 남편이 계약을 따냈다고 하는데, 계약서 좀 볼까?”

“그래, 꺼내봐!”

“계약서는 개뿔, 내가 보기엔 그냥 허세야. 강성 그룹 같이 성장세에 있는 회사가 어떻게 고운란 같은 거랑 계약을 해?”

“하하, 맞아. 모지리와 저런 여자라니, 천생연분이다 아주!”

연회장 내부가 여러 친척들의 놀림과 풍자로 가득했다.

메인 테이블에 앉은 최순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빌어먹을 이강현. 어딜 가나 저 자식이 문제야. 굳이 이럴 때 나서서 말을 하다니, 고의로 내 딸을 불구덩이에 던져?

“이강현, 이 몹쓸 놈아, 꺼져!”

화가 난 최순이 이강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 정말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 순간, 고흥윤은 고운란의 복잡한 얼굴을 보고 계약을 따낸 게 아니라고 짐작했다.

“네가 계약을 따내지 못한 이상, 지난번 내기를 지켜야 해. 지금, 모두의 면전에서 사직해.”

고운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작은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

“나는…….”

“그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이상 사직하고 자리를 양보해야지.”

“처음부터 마음에 안들었어. 그저 장식품이지, 예쁘기만 하고 아무 능력이 없잖아. 고씨 가문 회사에서 꺼져야 해!”

“맞아, 여자가 부사장의 자리를 꿈꾸다니, 가소롭기 그지없군!”

가문의 친척들이 다시 고운란을 겨냥하며 호통을 쳤다. 각종 욕설, 그리고 각종 비난… 그녀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머리를 숙인 채 눈물을 닦았다.

고씨 가문 어르신도 질려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운란아, 네가 계약을 따내지 못한 이상 사직해야 될 것 같다.”

“할아버지!”

고운란은 억울하고 마음이 급해졌다. 왜 모두 나한테 강요하는 거지? 내가 여자라서? 모두들 자신을 차갑게 보고 있었다. 이 순간, 그녀는 깊은 어둠을 느꼈다. 아무 힘도 없는 무기력한 느낌. 어쩔 수 없이 주먹을 쥔 채 입을 열였다.

“네, 사직할게요…….”

바로 이때!

갑자기 정문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강성 그룹 사장, 강빈 도착!”

와!

연회장 전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강성 그룹의 사장이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고 어르신은 벌떡 일어나서 흥분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짚고 가장 먼저 맞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니, 정문에서 양복과 가죽신을 신은 중년 남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뒤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네 명의 경호원이 동행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강성 그룹의 사장, 강빈?!

이제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번 만나보려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는데, 뜻밖에도 직접 연회장에 오다니! 고씨 가문은 정말 운이 좋다.

고 어르신은 활짝 웃는 얼굴에 매우 공손하고 알랑거리는 태도로 두 손을 내밀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강빈을 마주했다.

“아이고, 강 사장님! 직접 오실 줄 몰랐네요, 영광입니다!”

일가 친척들도 일어나 하나같이 공손한 얼굴로 웃음을 띠었다.

눈앞에 바로 강성 그룹의 사장이 있다니!

고흥윤도 바로 낮은 자세로 달려가 고씨 어르신의 곁에 서서 눈에 익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다음 장면이 모든 사람들을 얼어붙게 했다.

강빈은 고씨 어르신 등 많은 사람들을 무시한 채, 심지어 악수도 생략하고 곧장 이강현과 고운란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이미 문에 들어서자마자 구석에 서 있는 이강현을 보았었다. 그 옆에 있는 여자는 당연히 고운란일 터.

“안녕하세요, 여기 우리 강성 그룹이 당신과 체결한 계약서입니다. 저는 이미 서명했으니 고운란님께서 여기 서명하기만 하면 바로 계약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강빈은 존경스럽게 말하며 뒤에 있는 수행원에게서 계약서를 받아 두 손으로 내밀없다.

고운란은 깜짝 놀랐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멍해졌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강성 그룹과 계약?!

이 장면을 본 고흥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고 씨 가문 친척들도 몸을 떨며 잇달아 입을 쩍 벌렸다.

“강… 강 사장님, 이게…….”

고운란은 강빈을 본 적도 없는데, 이 계약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러나 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그녀를 향해 몸을 살짝 굽혔고, 담담하게 서 있는 이강현에게도 가볍게 인사하더니 즉시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려 했다.

고 어르신이 어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즉시 달려왔다.

“강 사장님, 그냥 계약서만 전달하러 오신 건가요?”

강빈은 그제야 어르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웃으며 말했다.

“아, 고 씨 가문 어르신이셨군요, 맞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고려해 본 결과 이 회사가 우리 강성 그룹의 이념과 아주 잘 맞다고 느꼈습니다. 게다가 저도 고운란님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는데 아주 실력이 대단하시더군요. 축하드립니다.”

강빈이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고, 고 어르신은 멍하니 손을 내밀어 마주잡았다.

강빈이 떠난 후, 그제서야 연회장 내의 분위기가 완화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계약서를 들고 있는 고운란을 주시했다. 뜻밖에도, 정말 해내다니!

어리둥절하기는 고운란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이강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성 그룹의 계약을 꼭 따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었지. 설마, 정말 네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강현을 힐끗 봤을 때, 묵묵히 한쪽에 서서 바보같이 웃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운란아, 빨리 계약서를 나에게 보여줘!”

고 어르신이 정신을 차리고 흥분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할아버지, 보세요.”

재빨리 계약서를 받아 등불 아래에서 진지하게 바라볼수록 격양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좋아! 잘했어!”

고흥윤과 고청아는 어르신 뒤에 서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강성 그룹 계약이라니! 설마, 고운란 이 천한 여자가 강상인과 잠이라도 잤단 말인가?”

“할아버지, 이 계약은 틀림없이 가짜고 위조된 게 분명해요! 그 강빈이 진짜인지도 확실하지 않잖아요! 고운란이 계약이 성사되지 않자 사람을 구해서 연기를 시킨 게 분명해요!”

승복하지 않고 소리치는 고흥윤의 입가에 험상궂은 냉소가 가득했다.

“고흥윤, 헛소리하지 마!”

“허허, 헛소리라고? 그럼 이 계약을 어떻게 따냈다는 거지? 서울에 그렇게 많은 제약회사가 있는데, 강성 그룹이 왜 하필 고씨 집안 운생 제약회사를 골랐단 말이야?”

말을 마친 그가 고운란에게 다가가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아 참, 누가 그러던데? 너와 강성 그룹의 도련님이 시간차를 두고 같이 다이아 하우스에 들어갔다고. 설마, 계약 따내려고 그 집 도련님이랑 잤니?”

이 말을 듣고 이강현의 동공이 움츠러들더니 차갑게 고흥윤을 쳐다보았다.

“그런 적 없어!”

고운란이 소리치며 고 어르신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 그런 적 없어요, 저 사람이 모함하는 거예요!”

고 어르신이 손에 든 계약서와 고운란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자, 떠들지 마라. 계약을 따낸 것 자체가 우리 가문의 영광이야.”

“할아버지, 고운란에게 속지 마세요. 이 계약은 십중팔구 가짜예요!”

이간질을 하는 고흥윤에게 어르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계약은 가짜가 아니야. 위에 강성 그룹의 직인이 있고, 친필 서명도 있어. 이렇게까지 위조하지는 않았을 거야.”

어르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상 사람들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그저 경멸하는 눈빛으로 고운란을 보고 있다. 분명히 그 집 도련님과 잠을 자서 이 계약을 따냈다고 인정하는 게 분명하다. 악랄한 고흥윤!

“고운란이 저렇게 가벼운 여자일 줄 몰랐네. 계약을 위해 몸도 팔다니.”

“쯧쯧! 이강현 그 불량배만 불쌍하네. 딸도 딸이라고 하질 못하고 부인까지 저 꼴이라니. 나였으면 벌써 강에 뛰어들어 자살했을 걸?”

“정말 슬프다. 딸이 커서 자기 엄마가 그런 여자라는걸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경멸로 가득 차 있는 친척들의 눈을 보던 고운란의 눈에서 또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떨리는 몸을 느낀 이강현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그녀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없어!

이강현은 고운란의 앞에 서서 자신의 뒤에 숨기고 냉랭하게 소리쳤다.

“다들 그만하세요! 저는 운란이를 믿어요! 이번 계약은,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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